한국전쟁 시기 예비검속의 명목으로 집단 학살된 '제주 예비검속 사건' 희생자 유족에게 국가가 94억여원을 배상하라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2부(주심 조희대 대법관)는 9일 제주 예비검속 사건 희생자 유족 300명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 상고심에서 "국가는 이들 유족에게 총 94억4000여만원을 배상하라"며 원고 일부 승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대법원은 판결 선고 없이 심리불속행(審理不續行) 기각 처리했다. 심리불속행 기각은 상고 대상이 아니라고 판단되는 사건에 대해 대법원이 더 이상 심리하지 않고 상고를 기각하는 것을 뜻한다.
제주 예비검속 사건은 1950년 6·25전쟁 발발 직후 군과 경찰이 상부의 지시를 받아 사전에 작성된 명부를 바탕으로 4·3사건 연루 혐의자 등 200여 명을 대정읍 송악산 인근 섯알오름 폐탄약고 등지로 끌고 가 총살한 사건이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2007년 11월 이 사건을 '국가에 의한 불법 집단 학살'로 규명했고, 이에 유족들은 2010년 11월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냈다.
1심은 "당시 군과 경찰은 희생자들을 연행한 뒤 정당한 이유나 절차 없이 이들을 살해해 헌법에 보장된 국민의 기본권인 신체의 자유와 생명권, 재판을 받을 권리 등을 침해했다"면서 "이로 인해 유족들이 극심한 정신적 고통을 당했을 것이라는 것은 명백하다"며 92억2000여만원을 배상하라고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
하지만 정부는 “소멸시효인 5년이 지나 배상이 불가능하다”며 맞섰다. 반면 법원은 국가가 예비검속 피해를 인정한 2010년 6월을 기점으로 소멸시효를 계산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희생자들의 생명을 박탈한 후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다가 원고들이 소를 미리 제기하지 못한 것을 탓하는 취지로 소멸시효 완성을 주장하면서 채무이행을 거절하는 것은 현저히 부당하다”는 취지였다.
2심에서는 유족 숫자가 늘어나면서 배상액이 94억4000여만원으로 올랐다. [제이누리=양성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