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시사만화의 대명사였던 양병윤 화백이 급환으로 타계했다. 향년 71세.
캐릭터 ‘황우럭’을 통해 제주 시사만화의 역사를 써 왔던 양병윤(71) 화백은 27일 오전 급환으로 병원으로 이송됐지만 결국 이날 오전 9시16분쯤 별세했다.
양 화백은 지난 2012년 11월30일 시사만화 ‘황우럭’ 1만회를 돌파, '네 컷 촌철살인'의 역사를 다시 쓴 인물로 손꼽힌다. 일간지 시사만화 1만회 돌파는 국내에서는 김성환 화백의 ‘고바우 영감’에 이은 두 번째 기록이다.
27일자 한라일보의 '황우럭' 10600회는 결국 그의 마지막 작품이 됐다. 유작은 지난 주말 제주도민체육대회 육상 종목에 1등으로 골인해 우승컵을 받은 백수(白手)인 선수가 '나에게 급한 건 쌀 한 봉지…'라며 곧바로 전당포로 달려가는 모습을 그려 경제난에 쪼들리는 서민들의 애환을 담았다.
1968년 5월 10일자 제주신문(현 제주일보)에서 첫 인사를 한 양병윤 화백의 시사만화 ‘황우럭’은 장장 40여년이 넘는 세월을 도민과 함께 해왔다. 60·70년대 독재정권과 80년대 서슬퍼런 공안정국에서 특유의 풍자와 해학을 통해 사회비판의 시선을 보여줬다.
시대의 대변자 ‘황우럭’을 탄생시킨 양병윤 화백은 어려서부터 만화광이었던 소년이다. 작가의 꿈을 키우며 독학 습작을 하던 고교 2학년 때 서울에서 발간되는 학생잡지 『학도주보』에 만평이, 월간잡지 『아리랑』에 만화가 실리면서 세인의 주목을 받았다.
24세(1968)에 제주신문 화백 겸 기자로 입사, 시사만화 ‘황우럭’을 연재하기 시작한 양 화백은 제주신문 편집국장과 이사, 논설위원을 역임했다. 이어 제민일보·제주매일 논설위원 화백을 거치면서도 붓을 놓아본 적이 없다.
2009년부터 한라일보에서 시사만화 ‘황우럭’과 만평을 이어왔다.
1944년 제주시 한림읍 한림리 출신으로 한국시사만화가회.한국만화가협회 회원, 제주만화작가회 고문, 제주언론인클럽 이사로 활동했다. 한라일보 논설위원 겸 화백이다. 제주도 문화상, 송하언론상, 덕산문화상 등을 수상했다.
유족으로는 부인과 2남1녀가 있다. 빈소는 제주시 중앙성당에 마련될 예정으로 장례일정은 현재 협의중이다. [제이누리=양성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