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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문학상 모옌(莫言)의 단편소설「밤 게잡이」(4)

오동명의 기획연재소설에 이어 올해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모옌의 단편소설 <밤게잡이>를 소개합니다. 국내 처음으로 번역, 소개되는 소설입니다. 영화 <붉은 수수밭>의 원작자로 잘 알려진 모옌의 작품성을 엿볼 수 있습니다. 중국문학 전문가인 이권홍 교수가 우리말로 옮겼습니다. 애독바랍니다/ 편집자 주

 

내 얼굴이 그녀의 짙은 향기 속에 휩싸였다. 머리가 어질어질해졌다. 그녀의 옷자락이 내 얼굴을 스쳤다. 시원하면서도 매끌매끌하여 편안했다.

 

여우는 미인으로 변할 수는 있지만 꼬리는 숨길 수 없다는 어른들의 말이 떠올랐다. “내게 엉덩이 좀 만질 수 있게 할 수 있어요? 꼬리가 없다면 당신이 여우가 아니라는 걸 믿을 수 있거든요.”

 

“어, 이 꼬맹이, 그 핑계로 아가씨 엉덩이를 만지려고?” 그녀는 정색하며 말했다.
“여우라는 게 들통날까봐 그렇죠?” 나는 조금도 양보하지 않고 말했다.
“좋아.” 그녀가 말했다. “만져 봐. 하지만 얌전히 만져. 가볍게. 나를 다치게 하면 물에 빠뜨려 죽여 버릴 테니까.”

 

그녀는 치마를 들어 올려 내 손을 뻗게 했다. 그녀의 피부는 매끈매끈했다. 두 엉덩이는 펑퍼짐하면서도 동글동글 했다. 무슨 꼬리가 어디에 있다고?

 

그녀는 고개를 돌려 물었다. “꼬리가 있니 없니?”
나는 미안해하며 말했다. “없어요.”
“그래도 내가 여우라고 우길 거야?”
“안 할 거예요.”

 

그녀는 손가락으로 내 이마를 콕 찌르며 말했다. “너 이 요망스런 꼬맹이!”
내가 물었다. “여우도 아니고, 신선도 아니면, 도대체 뭔가요?”
그녀는 말했다. “사람이지.”
내가 말했다. “어떻게 사람이란 말예요? 이렇게 깨끗하고, 향기로우면서 게도 잘 잡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그녀가 말했다. “요 꼬맹이. 네게 말해도 이해하지 못할 거야. 25년 후, 동남쪽 큰 바닷가 섬에서 우리 만나게 될 거야. 그때가 되면 이해될 거야.”

 

그녀는 귀밑머리에 꽂았던 하얀 꽃을 떼어내어 내게 향기를 맡게 했다. 그리고 내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말했다. “이 총기 있는 아이야. 네게 네 마디 말을 해 줄게. 확실히 기억해 두면 뒷날 쓸 데가 있을 테니 : ‘삽 도끼 총, 파 마늘 무 생강, 한없이 슬플 때 슬픔을 즐기고, 두리안 나무에서 빈랑이 열린다네.’**” 그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나는 눈이 거슴츠레해지면서 정신을 잃었다.

 

내가 깨어났을 때는 이미 붉은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냇물과 논밭들이 눈부신 붉은 빛으로 휩싸여 있었다. 일망무제로 펼쳐진 수수들은 정지된 혈해血海와 같았다. 그때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큰 소리로 대답하였다. 부모님, 숙부 숙모, 형과 형수들이 수수밭에서 뛰쳐나왔다. 아홉째 삼촌도 있었다. 삼촌은 나를 한 손에 휘어잡고 화를 내며 캐물었다.

 

“너 어디 갔었어?!”

 

삼촌 얘기에 따르면 이랬다. 내가 삼촌의 뒤를 따라 마을을 벗어난 후 수수밭에 들어서서 얼마 안 돼 삼촌이 넘어졌단다. 급히 일어났는데 내가 보이지 않았고 램프도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삼촌이 아무리 불러도 내가 대답이 없자 나를 찾으러 집으로 갔다는 거였다. 집에서도 나를 찾지 못할 수밖에. 그래서 놀란 가족들이 초롱을 들고 밤새 나를 찾았다는 것이다. 내가 말했다.

 

“나 이제까지 삼촌과 같이 있었는데, 뭘.”
“허튼소리!” 삼촌이 말했다.
“이 마대는 뭐야?” 형이 물었다.
“게.” 내가 말했다.

 

삼촌이 마대를 묶은 노끈을 뜯으니 거대한 게들이 총총히 기어 올라왔다.
“이게 모두 네가 잡은 거야?” 삼촌이 놀라 물었다.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올해 여름, 딸에게 줄 옷을 사겠다는 친구를 따라 싱가포르에 있는 백화점에 갔었다. 이리저리 물건을 고르고 있는데, 갑자기 익숙한 향기가 코를 찔렀다. 고개를 들어 돌아보니 커튼이 열리며 탈의실에서 젊은 부인이 걸어 나왔다. 가을 달 같은 얼굴, 검푸른 눈썹, 별처럼 반짝이는 눈. 그녀는 나풀나풀 날듯 걸었다. 놀라 날아오르는 기러기같이 경쾌하게 걷는다고 할까. 나는 멍하니 바라봤다. 그녀는 내게 매혹적인 웃음을 던지고서는 몸을 돌려 왁자지껄 오가는 인파 속으로 사라졌다.

 

그녀의 웃음은 날카로운 화살처럼 내 가슴을 뚫었다. 가슴이 두근거리고 어지럽고 눈앞이 캄캄해졌다. 오랫동안 정신을 차릴 수 없어 회랑 기둥을 짚고 서있었다. 친구가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아무 대답 없이 건성건성 고개만 저었다. 호텔로 돌아간 후 갑자기 내게 게를 잡아줬던 그 여인이 떠올랐다. 손가락을 꼽아 가며 셈해봤다. 시간으로는 마침 25년이 되었고, 싱가포르는 바로 ‘동남쪽 큰 바닷가 섬’이었다. <끝/ 삽화=오동명>

 

**옮긴이 주=이 말은 주술(呪術:乩语)이라 봐야 한다. 살풀이 개념이랄까. 삽과 도끼는 공산당의 상징이고, 총은 공산당이 천하를 다스리는 근본―폭력 혁명이다. 그러나 인민에게는 파 마늘 무 생강, 즉 먹고 사는 것이 중요하다. 이 소설의 배경은 60년대로, 이른바 ‘3년 자연재해’기간이다. 중국인들은 당시 먹고 사는 것이 극도로 어려웠다. 기본 생활 보장이 절박했다. 소위 ‘혁명’의 이상은 별개의 문제였다. ‘한없이 슬플 땐 슬픔을 즐기고’는 뒤따라오는 고난의 세월을 암시한다고 볼 수 있다. 문화대혁명 10년의 대재앙도 포함된 말이라 보면 된다. 그렇기에 공산당의 정치는 실제로 ‘두리안 나무에서 빈랑이 열리는’ 연목구어다. 목적과 행동이 상반됨을 비유했다고 이해하면 된다. 그리고 인생의 예측하기 힘듦도 은연중 표현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

 

 

 

모옌(莫言 Mò Yán 1955~)= 중국 소설가. 본명은 관모예(管謨業, Guǎn Móyè). 필명 ‘모옌’은 중국어로 “말을 하지 않는다.” 혹은 “말을 말라.”를 뜻한다. 민담, 역사, 현대 중국의 사회상을 섞어 글을 쓰는 독특한 스타일인 환영적 사실주의(Hallucinatory realism)를 대표하는 작가로 손꼽힌다.

 

산둥山東 성에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문화 대혁명 때 학교를 중퇴하고 정유 공장에서 일했다. 20살 때 인민해방군에 입대했으며 1981년 군인 신분으로 문학 활동을 시작했다. 1986년 중국 인민해방군 예술학과 문학과 졸업, 1991년 베이징 사범 대학을 졸업했으며, 루쉰 문학원 창작 연구생반 졸업과 함께 문예학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대표 작품으로 『붉은 수수밭』, 『홍까오량 가족』, 『술의 나라』, 『사십일포』, 『탄샹싱』, 『풍유비둔』, 『티엔탕 마을 마늘종 노래』, 『풀 먹는 가족』 등이 있으며 그의 작품은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 노르웨이어 등 10여 개 언어로 출판되었다. 2012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되었다.

 

☞옮긴이 이권홍은?=제주 출생. 한양대 중어중문학과를 나와 중국정치대학교 중문학과에서 석사·박사학위를 받았다. [신종문 소설연구]와 [자연의 아들]·[한자풀이]·[제주관광 중국어회화] 등 다수의 저서·논문을 냈다. 현재는 제주국제대학교 중국언어문화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 알립니다!!

 

내년 1월부터 신개념 웹연재소설 제2탄을 선보입니다. 우리네 일상의 소소한 삶의 이야기를 진솔하게 풀어내는 오동명 작가의 새 작품입니다. 내년 1월7일 그 첫번째 편이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변함없는 성원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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