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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회의 '영화로 읽는 한국사회' - 리브 더 월드 비하인드(2)
고대부터 풀지 못한 숙제 ... 날로 커진 인간혐오 현상
인간혐오증 겪는 주인공 ... 탐욕이 만든 비인간성

뉴욕시에서 광고 마케터로 일하는 아만다(줄리아 로버츠 분)는 가족들을 끌고 충동적으로 주말 이틀 동안 뉴욕시를 탈출계획을 세우고 ‘나는 인간이 싫다’고 지껄인다. 요즘 심각한 사회문제로 떠오른 ‘인간 혐오’는 사실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인간 혐오는 고대 아테네 시대의 소크라테스도 심상치 않다고 미간을 찌푸렸던 고민의 영역이다. 소크라테스의 수제자 플라톤은 그의 저서 「대화(Symposium)」 중 ‘파이돈(Phaedo)’에서 이렇게 말했다. “소크라테스는 인간혐오의 원인을 ‘신뢰의 배신’에서 찾았노라. 전적으로 믿었던 인간에게 실망하거나 배신을 당했을 때 그 반작용으로 인간 자체를 불신하고 혐오하게 된다.”

영화는 아만다가 ‘모태 인간 혐오자’인지 소크라테스의 설명처럼 살아오는 과정에서 절대적으로 신뢰했던 누군가로부터의 배신에서 비롯된 것인지는 보여주지 않는다. 아내 말을 웬만하면 따라주는 영문학과 교수 남편과 사춘기 나이이지만 크게 질풍노도하지는 않는 듯 보이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 가족에게 배신당하지는 않은 것 같다.

아마 광고주나 직장상사나 동료로부터 몇번 눈알이 튀어나올 정도로 심하게 뒤통수를 얻어맞았는지도 모르겠다고 짐작할 뿐이다. 영화가 진행되면서 감독은 아만다의 인간혐오는 그것과는 조금 다른 원인에서 비롯된 것임을 짐작할 만한 장면들을 배치한다. 

아만다가 1박에 1000달러짜리 롱 아일랜드 고급 빌라에 도착해서 짐을 풀자마자 인근 마켓으로 장을 보러 간다. 감독은 아만다가 장을 보고 나오는 ‘포인트 컴포트 마켓플레이스(Point Comfort Marketplace)’라는 마켓 이름을 선명하고 큼지막하게 보여준다.

순간 어리둥절해진다. ‘포인트 컴포트’는 롱 아일랜드 지역인 아닌 분명 텍사스에 위치한 소도시 이름이다. 아무런 특별함이 없는 그 소도시 이름이 유명한 이유는 단 한가지밖에 없다. 폭발 사고다. 2005년 ‘포모사(Formosa)’라는 PVC 공장이 폭발해 일주일 동안 엄청난 유해가스를 뿜어내는 사고가 터진 곳이 바로 ‘포인트 컴포트’다.

러시아로 치면 거의 ‘체르노빌’의 이미지를 가진 지명이고, 우리나라로 치면 ‘낙동강 페놀’급 사건이다. 감독이 롱아일랜드 휴양지 마켓에 포인트 컴포트라는 엉뚱한 이름을 붙여준 이유는 곧 밝혀진다.
 

 

장을 보고 돌아온 아만다는 가족들과 해변으로 일광욕을 하러 간다. 그런데 이 가족들이 찾아간 해변 입구에 큼지막하게 ‘찰스턴 항구(Charleston Harbour)’라고 쓰여있다. ‘비치’가 아니라 항구다. 그런데 그 이름도 왠지 낯설지 않은데 결코 정다운 의미는 아니다.

찰스턴 항구는 사우스 캐롤라이나주州에 있는 항구 이름이고 1619년 서부 아프리카에서 ‘실려 온’ 흑인 노예들이 최초로 ‘하역’된 항구 이름이다. 저주받은 이름이다. 이 또한 롱아일랜드에 없는 지명이다.

어쨌거나 한적한 찰스턴 항구의 백사장은 눈부시게 깨끗하고 아름답다. 사람을 싫어하는 아만다는 ‘사람이 없다’고 안도하고 흐뭇해한다. 그런데 감독은 해변을 걷던 아들 아치와 딸 로지의 발길에 해초에 뒤엉켜 나뒹구는 무더기 플라스틱과 페트병 쓰레기를 비춘다. 그 아름다운 해변에 테러를 가하려는 듯하다. 아마도 감독은 이것이 포모사 공장에서 여전히 생산되고 있는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쓰레기라고 고발하는 듯하다.

포모사는 공장건설 비용을 절감하느라고 그 대형사고를 쳤지만 ‘달랑’ 벌금 15만 달러만 내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넘어갔다. 포모사가 망하고 공장이 폐쇄되면 일자리를 잃는 주민들의 걱정을 반영한 솜방망이 처벌이었다. 아치와 로지는 그런 쓰레기는 너무나 당연한 듯 신경도 쓰지 않는다.

아름다운 해변에서 각 잡고 휴식과 일광욕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돼 기묘한 일이 벌어진다. 저 멀리 수평선 위에 보이던 대형유조선이 점점 다가오는가 싶더니, 거대한 유조선이 끝내 멈추지 않고 모래사장을 가르면서 올라오고 만다. 설마설마하던 해변의 휴양객들은 혼비백산해서 짐도 못 챙기고 도망친다.

감독은 해변에 올라온 거대한 유조선 이름을 또 다시 큼지막하게 보여준다. ‘화이트 라이언(White Lion)’이다. 이 이름 또한 악명 높은 전설적인 선박 이름이다. 바로 1619년 포르투갈 노예상인들이 앙골라 등에서 ‘포획’한 흑인 1600여명을 컨테이너 박스처럼 겹겹이 쌓아 ‘선적’해서 ‘운송’했던 노예선 이름이다. 운송 중에 1000여‘개’는 ‘파손’돼 바다에 버리고 400여‘개’ 정도만 도착했다고 기록된다.

이 노예선에는 영악한 상어떼들이 항상 따라다녔다고 한다. 이 배에서 끊임없이 시체들을 바다에 버리기 때문이었다는 기록도 전해진다. 노예선 화이트 라이언호가 미국에 처음 도착한 지명도 버지니아주(州) ‘올드 포인트 컴포트’였다고 한다.
 

 

감독은 찰스턴과 포인트 컴포트라는 이름을 동원해서 인간들의 탐욕이 빚은 비인간적이고 추악한 면모들을 일깨운다. 자신도 인간이지만 도저히 인간들을 좋아할 수 없는 인간혐오자가 될 수밖에 없었던 ‘아만다의 변론’같기도 하다.

아만다의 인간혐오 선언은 아마도 개인적인 배신의 트라우마 때문이 아니라 인간들이 저질러왔고, 또 변함없이 저지르고 있는 인간 전체를 향한 배신감에서 비롯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어느 인간이 이런 짓들을 저지르는 인간들을 사랑할 수 있을까.

오늘도 인간의 탈을 쓰고 어떻게 저럴 수 있을까 싶은 온갖 참담한 뉴스들이 인터넷을 도배한다. 실정법상 죄를 물을 수는 없는 행위이지만 어쩌면 실정법 위반보다 더욱 끔찍하다. 환경오염 유발행위에 죄를 묻는다면 인간혐오증 유발행위도 죄를 물어야할 것 같다. [본사 제휴 The Scoop=김상회 정치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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