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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회의 '영화로 읽는 한국사회' - 이니셰린의 밴시 (2)
공동의 적 나타나지 않는 한 ... ‘주적’이 누구인지 놓고 분열
서로 생각하는 주적 다르니 ... 한마음 되고 동지 되기 어려워

“어서 차라리 어두워 버리기나 했으면 좋겠는데, 벽촌의 여름날은 지리해서 죽겠을 만치 길다.” 폐결핵 요양차 잠시 벽촌 시골마을에서 지내던 이상의 단편 수필 「권태」의 도입부 문장이다. 아무런 변화도, 할 일도 없는 벽촌에서의 무료함에 이상은 진저리친다. 무료함을 견디지 못한 마을 아이들은 논두렁에 나란히 쪼그리고 앉아 누구 ×이 더 굵은지 ‘×싸기 시합’을 하면서까지 필사적으로 무료함과 싸운다.

 

 

영화 ‘이니셰린의 밴시’의 무대는 아일랜드에 인접한 ‘이니셰린’이라는 가상의 작은 섬이다. 그 분위기는 문득 이상의 수필  「권태」를 떠올리게 한다. 이니셰린이라는 말은 아일랜드어로 ‘아일랜드의 섬’이라고 한다. 아일랜드도 섬이니 섬에 딸린 섬인 셈이다. 가뜩이나 외부와 단절된 섬에서 또 한번 단절된 곳이다. 갈라파고스 섬이 외부와 단절돼 진화가 멈춰버렸듯 이니셰린도 시간이 멈춘 듯하다.

바쁜 현대인은 가끔씩 일부러 바쁜 시간을 시간을 쪼개서라도 ‘멍 때리기’를 하는 모양인데, 24시간 멍 때릴 일밖에 없는 무료한 이니셰린 섬 사람들에게 무료함이란 맞서 싸워야만 하는 끔찍한 괴물이다.

이니셰린의 둘도 없는 친구인 파우릭과 콜름은 시간이 멈춰버린 듯한 권태로운 섬에서 무료함이라는 괴물과 함께 맞서 싸우는 동지이자 전우다. 하루종일 동네 펍(pub)에 죽치고 앉아 온갖 쓰잘머리 없는 이야기들로 무료한 시간을 죽인다. 이들이 용을 써서 이야깃거리를 짜내는 모습은 논두렁에 나란히 앉아 마렵지도 않은 ×을 싸느라 용을 쓰는 아이들 모습과 같다.

그러던 어느날 본래 음악가였던 콜름이 문득 다시 음악에 정진해 불후의 명곡을 남겨야겠다고 작심한다. 불후의 명곡을 남기기 위한 첫번째 스텝은 무료함에 함께 맞서 싸웠던 파우릭을 멀리하는 일이다. 음악에 매진해야 하는 콜름은 더 이상 파우릭과 더불어 무료함과 싸울 필요가 없다. 파우릭과 콜름 둘 사이를 끈끈하게 이어주던 무료함이라는 공동의 적을 잃어버렸다. 콜름에게 여전히 무료한 파우릭은 자신의 앞에 걸리적거리는 훼방꾼에 불과하다.

그렇게 무료함이라는 공동의 적이 사라진 파우릭과 콜름은 한순간에 동지에서 원수가 돼버린다. 콜름은 파우릭이 자기에게 말을 걸 때마다 자기 손가락을 하나씩 잘라 파우릭의 대문에 패대기친다. 파우릭의 애완 당나귀가 그 손가락을 먹다가 손가락이 목에 걸려 죽는다. 파우릭은 당나귀의 복수를 하기 위해 콜름의 집에 불을 지른다.
 

 

1945년 우리는 일본이라는 공동의 적이 사라지자 영국이라는 공동의 적이 사라진 아일랜드처럼 형제들끼리 총부리를 겨누고 불구대천지원수처럼 죽이고 죽이더니 그 후로도 사소한 일 하나에도 목숨 걸고 싸워왔다. 파우릭과 콜름이 벌이는 엽기적인 절교사건 모습 그대로다. 

아일랜드 출신의 맥도나 감독은 파우릭과 콜름의 비극적인 서사를 통해 조국 아일랜드의 비극을 조명하고 싶은 듯하다. 바로 어제까지 아일랜드인들이 형제처럼 단결해 독립을 위해 싸웠던 영국이 물러가자, 공동의 적이 사라진 아일랜드인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총부리를 겨누는 원수가 돼버린다. 영화의 시대 배경인 1922년은 아일랜드 내전이 한창이던 때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파우릭과 콜름이 해변에서 조우한다. 바다 건너 아일랜드에서 들리던 총소리도 어느샌가 멎어있다. 콜름이 “총소리가 멎은 걸 보니 전쟁도 끝난 모양”이라고 혼잣말처럼 중얼거린다. 파우릭과의 이 한심한 전쟁도 이쯤에서 끝내는 게 어떻겠냐고 은근히 제안하는 듯하다.

파우릭이 마치 지옥의 묵시록처럼 대꾸한다. “잠깐 멈췄을 뿐일 거다. 영국이 다시 쳐들어오지 않는 한 우리끼리의 전쟁은 또다시 벌어질 것이다.” 마찬가지로 둘 사이의 갈등도 함께 싸워야 할 무료함이라는 공동의 적이 다시 나타나지 않는 한 남남이 돼버린 그들의 갈등도 무한반복될 것임을 예언한다.

 

 

동아시아 외교사의 권위자인 스티븐 유얼리(Stephen Uhalley) 박사는 “한국의 기적적인 발전에 최대의 공헌을 한 인물은 김일성”이라는 역설을 제시한다. 김일성이 대한민국의 확실한 공동의 적이 돼줌으로써 한국 국민들의 단결이 가능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1989년 소련 연방 해체의 위기에 몰린 고르바초프(Gorvachev) 서기장은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미국을 향한 소련이 가진 가장 강력한 무기는 핵무기가 아니라 소련이 지구상에서 사라지는 것”이라고 미국을 협박하기도 했다. 소련이라는 공동의 적이 사라지면 미국도 숱한 내부 분열로 무사하지 못할 것이라는 것이다.

일본이라는 공동의 적이 사라지고 그렇게 갈라진 반쪽에서 또다시 우리의 ‘주적’이 누구인지를 놓고 분열하고 반목한다. 누군가는 우리의 주적이 북한이라 하고, 또 누군가는 여전히 일본이라고도 하고 혹은 미국이라고도 한다. 우리 내부가 단결하기 위해서는 우리 모두의 공동의 적이 필요한데 서로 생각하는 주적이 다르니 서로 한마음이 되고 동지가 되기 어려운 모양이다. [본사 제휴 The Scoop=김상회 정치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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