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연기념물 왕벚나무가 자손만대 번성의 길을 찾았다. 수많은 변이종이 탄생하고 있지만 DNA까지 완벽하게 일치하는 ‘순종’이 대를 이을 수 있는 ‘식물복제’ 대량생산에 성공한 것이다.
제주도 한라생태숲은 천연기념물 제159호로 지정·보호하고 있는 봉개동 왕벚나무자생지의 왕벚나무 조직배양과 묘목증식에 성공했다고 23일 밝혔다.
왕벚나무는 제주에서 자생하는 ‘토종’식물이건만 수세(樹勢)가 약하고, 자연상태 번식이 힘겨워지면서 ‘멸종위기’로 치닫던 상황을 끝낸 것이다.
제주도는 천연기념물 자생지 왕벚나무가 몇 그루 남지 않은데다 순수혈통 종자번식이 어렵고 꺾꽂이 등 무성번식도 안 돼 더 이상 자연 번식에 의한 묘목생산이 어렵다고 판단했다.
때문에 지난 2011년부터 조직배양 방법을 이용한 증식 사업에 착수했다. 또 종자번식 할 경우 변이가 발생해 혈통 보존이 어려운 현실을 뚫기 위한 도전에 나선 것이다.
그러던 중 지난해 봄에 왕벚나무 동아(잎눈)를 시험관에서 조직배양을 시작했고 지난 1월 하나의 씨눈에서 대량의 식물체를 얻는 시험관 번식에 성공했다. 이것이 1단계였다.
이어 한라생태숲 내 식물 조직배양실에서 순화과정을 거친 모종을 토양에 이식하는데 성공했다.
조직배양으로 생산된 왕벚나무 묘목은 현재 길이 8~10㎝, 뿌리 길이 8㎝ 정도로 자랐다.
앞으로 1년 동안의 온실 재배와 2년간의 양묘 시험포장 재배 등 적응시험을 거치면 외부토양에 심을 수 있는 묘목으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그동안 행정당국과 임목연구기관 등이 천연기념물 왕벚나무 조직배양을 통한 증식을 시도했다. 그러나 현재까지 양산체계를 갖춘 적은 없다.
결국 멸종위기로 치닫던 왕벚나무는 한라생태숲에서 뿌리를 내리고 그 꽃을 제대로 피우기 시작했다.
그는 전문가도 아니지만 오로지 ‘꽃과 나무’가 좋아서 식물에 열정을 보였을 뿐이었다. 그의 정성어린 열정이 빚어낸 결과가 이번 왕벚나무 대량 증식 성공이다.
2010년 한라생태숲 식물조직배양실에서 근무를 시작한 강씨는 전문지식과 경험이 전무한 상태에서 2년여 기간 배양실에서 살다시피 왕벚나무와 씨름을 했다.
각종 식물연구 문헌조사는 물론 왕벚나무 자생지를 수시로 넘나들며 전문가의 조언을 참고로 시행착오와 거듭된 실패를 거울삼아 이 성과를 이뤄냈다. 물론 한라생태숲 직원들도 ‘한번 우리가 해보자’는 의기투합, 강씨의 열정에 힘을 보탠 것도 사실이다.
그 결과 현재 한라생태숲에는 100여 그루의 왕벚나무 묘목을 생산, 적응 시험을 준비하는 단계에 이르게 됐다. 순화중인 모종 200여 그루, 시험관에는 2000여점의 식물체가 조직배양 중에 있다.
하지만 이미 조직배양 시험 성공률이 95%, 뿌리 내림(발근)이 70%, 토양이식 성공률도 80%로 나타나 대량증식의 꿈은 실현된 셈이다.
식물학자인 전 제주대 김문홍 교수는 “토종 왕벚나무의 유전자원을 보존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고 평가했다. 그는 또 “제주도 토종 왕벚나무 학술연구 및 복원사업에도 큰 변화가 일어 날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현재 천연기념물로 지정 보호되고 있는 왕벚나무는 제주시 봉개동과 서귀포시 남원읍 신례리에 모두 14그루만이 남아있다.
제주도 고영복 녹지환경과장은 “천연기념물 왕벚나무를 조직배양 번식을 통해 우량묘목을 대량증식 보급하고 왕벚나무의 우수성을 알리겠다”며 “제주시 봉개동 소재 왕벚나무 자생지 주변과 한라생태숲 등 11만㎡에 3만여 본을 식재, 후계림을 조성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제주 왕벚나무는 1904년 프랑스인 타케(Esmile J. Taquet)신부에 의해 제주에 자생하고 있는 것으로 처음 확인됐다. 이후 1964년 제주시 봉개동에 자생하는 왕벚나무 3그루가 ‘순종’인 것으로 확인돼 천연기념물 제159호로 지정됐다.
한라산 중턱인 해발 600∼900m에 조성한 한라생태숲(면적 : 196ha)은 구상나무숲과 참꽃나무숲, 단풍나무숲 등 13개의 테마 숲이 있다. 한라산 고지대, 1100고지 습지대, 능선에 서식하는 식물 등 129과 760종 29만여 그루의 식물이 자라 ‘한라산 식생의 축소판’으로 불린다. 훼손돼 방치됐던 야초지를 복원 조성한 곳으로 2009년 9월 개원했다. 식물 외에도 포유류와 조류 등 36과 60여종, 곤충 107과 500여종이 서식하고 있으며, 숫모르 숲길과 암석원, 연리목은 탐방객들이 즐겨 찾는 명소다. [제이누리=김영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