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무총리 소속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위원회(4·3위원회)’의 김종민(53) 전문위원이 재계약이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제주 4·3사건 문제 해결을 위한 현안이 여전한 상황에서 이뤄진 것이어서 그 배경에 의구심이 일고 있다.
김 전문위원은 2001년부터 전문 계약직 ‘나’급으로 계약이 체결돼 13년간 4·3위원회 전문위원으로 일했다.
그 동안 ‘제주4.3사건 진상조사보고서’를 작성했고 정부가 제주도민 4만여 명을 희생자 및 유족으로 공식 인정하도록 심사업무를 했다. 보수단체 등이 진상조사보고서 폐기와 희생자 결정 무효를 주장하며 제기한 송사를 맡아 재판을 승리로 이끈 4·3전문가다.
그런데 김 위원은 지난달 30일자로 계약이 만료된 뒤 추가로 계약이 이뤄지지 않았다. 그 동안 1~2년 단위로 재계약이 이뤄진 것에 비춰보면 이례적이다.
계약해지 통보는 안전행정부가 했다. 김 위원에게는 계약만료 통지서가 전달됐다.
하지만 현안은 산적하다. 지난해 4·3특별법 시행령이 개정됨에 따라 같은 해 12월부터 올해 2월까지 3개월간 추가신고 기간에 2만7792명(사망자 130명·행불자 116명·후유장애자 36명·수형인 68명·유족 2만7442명)이 접수됐다. 이들에 대한 심사가 남아 있는 터라 김 위원에 대한 재계약은 당연시 여겨졌다.
이번 계약 해지와 관련 4.3위원회 지원단 관계자는 “계약이 만료돼 재계약이 이뤄지지 않은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재계약이 이뤄지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4·3국가추념일 지정도 될 예정이다. 4·3문제 해결도 어느 정도 마무리 되고 있다. 추가로 접수된 희생자·유족도 대부분 유족이다. 공보만 확인하면 되는 업무여서 제주도에서 파견된 공무원이 심사해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그래도 위원회 운영이 만료되는 기간 동안 자문역할도 할 수 있는 전문위원이 필요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안행부 조직 관련부서에서 판단한다”고 지원단의 의견이 아님을 시사했다.
그는 항간에 나오는 보수 인사의 투서와의 연관성을 묻는 질문에 “투서와는 관련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최근 보수논객 지만원씨가 대표로 있는 ‘지만원의 시스템클럽’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에는 지난달 20일 게재된 투서가 올라와 있다.
‘제주도민 김OO’이라는 명의로 ‘김종민 과거사지원단 4·3전문위원을 퇴출하라’는 제목으로 올라온 글에는 김 위원을 ‘좌파’와 ‘선동꾼’으로 매도하고 있다.
김씨는 “좌경 영화에 출연해 국가를 비하하던 좌익적 인간이 대한민국 공무원으로 근무하다니, 피 같은 혈세를 들여 자기들이 진상보고서를 작성해 놓고는 국민들에게는 3만 명이 죽었다고 빨갱이 같은 선동을 하다니, 지금도 4·3을 선동하는 선동꾼이 있다니, 이런 자가 대한민국 정부의 안방에 들어앉아 있다니, 그럴 것이면 4.3 진상조사는 뭐 하려 했던가, 양심이 있다면 그 자리에서 물러서라, 너희들은 길거리 데모판에나 어울리는 선동꾼으로…”이라고 매도했다.
그는 또 4·3진상보고서와 4·3평화재단과 4·3관련 단체에 대해서도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너희들이 만든 4.3진상이야말로 하나도 믿을 것이 없다. 이런 인간들에게 아직까지도 국민의 혈세로 급여를 줘야 한다니, 이명박 정부는 뭘 했으며, 박근혜 정부는 무얼 하고 있는가”라며 “제주에 있는 4.3평화재단에는 1년에 30억여 원씩 국가예산이 지급되고 있다. 그러나 4.3평화재단의 예산은 4.3연구소, 도민연대, 민예총 등 좌파단체들의 돈줄 역할을 하고 있다”고 글을 올렸다.
그러면서 “김종민이가 계약기간이 얼마 남지 않은 모양이다. 박근혜 정부에서도 이런 자를 계속 채용해 국가의 녹을 먹여 준다면 안행부를 민주화시켜야 마땅하다. 이런 것은 청와대에 화염병이라도 던져야 될 일”이라고 성토했다.
하지만 정부가 4·3평화재단에 지원하는 예산은 대부분 4·3유족들의 의료비 지원 등에 쓰이고 있다. 4·3관련 단체에 지원되는 돈은 모두 2억여원 정도다.
이 투서가 눈길을 끄는 것은 김 위원의 계약 만료 기간을 앞두고 작성된 점 때문이다. 게다가 투서가 청와대 등 정부 부처에 들어간 것으로 파악되고 있기 때문이다.
김 위원의 계약 해지와 관련 4·3단체들은 걱정이다.
투서에서 ‘좌파단체’로 매도당한 제주민예총 박경훈 이사장은 “모두가 숨죽였던 시절 4·3을 맨 처음 파고든 공로자이자 전문가를 이념적 잣대를 들이대 쫓아냈다면 박근혜 정부가 이 정도 밖에 안 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유치한 행위”라며 “국가추념일을 지정하자는 마당에 4·3이 거꾸로 가고 있는 것 같아 실망스럽다”고 한탄했다.
4·3평화재단이 자신들의 돈줄 역할을 하고 있다는 주장에 대해선 “전혀 사실과 다르다. 대응할 가치조차 없다”고 일축했다.
현재 4·3관련 단체는 이번 김 위원의 계약해지, 투서 내용 등과 관련해 대책을 논의하고 있다.
김 위원은 재계약이 이뤄지지 않은 것에 대해 “그 이유를 모르겠다”고 말한 뒤 “1만4000여명의 희생자와 유족에 대한 심사를 해본 경험이 있기 때문에 추가 희생자·유족 접수에 대해서도 6개월만 해도 별 큰 무리 없이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황당하다”며 “1988년부터 25년 동안 지금까지 쭉 했다. 마무리를 깔끔하게 하면 마음이 편할 텐데, 이게 내 의지에 의해 그만둔 것이 아니어서 (마음이 편치 못하다)”고 심경을 토로했다.
그러나 그는 “까칠한 희생자 심사가 남아 있다. 다양한 케이스가 있어 심사가 힘들 수도 있다. 하지만 남아있는 공무원들에게 ‘유족들에게는 상당히 중요한 일’이라고 당부하면서 갖고 있던 자료를 전부 주고 왔다. 제대로 베끼기만 해도 되도록 했다”고 말했다.
그는 투서와 관련해서는 “글을 쓴 사람이 누군지 모른다. 주변에서 명예훼손으로 고소하라고 하지만 무장대에 의해 희생당한 유족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표현의 자유도 있는데, 내 의견과 다르다고 해서 남을 비판할 수 있겠느냐”며 고소하지 않은 이유를 설명했다.
그는 앞으로의 계획을 묻는 질문에 “마음과 몸이 치쳐 있는 상태다. 쉬면서 장래를 생각하고 있다. 고향에서 농사를 지을까 하는 생각도 갖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4·3관련 단체에 들어가지는 않을 것이다. 보수단체들이 말도 안 되는 논리에 대해서는 데이터나 자료로 논리를 만들어 반박할 수 있도록 사명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제이누리=김영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