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상을 이루는 형태의 생(生) “삶은 형태이며, 형태는 삶의 방식이다. 자연 속에서 형태들을 이어주는 다양한 관계가 순전히 우발적인 사건에서 나오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자연스러운 삶이라 일컫는 것도 형태들 간의 불가피한 관계로 보인다. 따라서 형태가 없다면 자연히 삶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형태를 자연의 모든 삶의 근원으로 보는 이러한 앙리 포시용(Henri Pocillon)의 사유는 발자크(Honoré de, Balzac,1799~1850)의 한 문장에서 시작되었다. “모든 것이 형태이다. 그리하여 삶 자체도 하나의 형태이다"라는. 그렇다. 이 세상 모든 것들은 형태로 이루어져 있으며, 만물은 형태로 규정된다. 돌(石), 나무(木), 사람(人), 물, 눈(雪), 산소(酸素)마저도 형태를 이룬다. 눈에 보이는 형태와 눈에 보이지 않는 정신적 형태로 이루어내는 예술을 말함에 있어서 포시용은 어떤 미술작품이라도 형태적인 측면에서 파악되고 해석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결국 세계는 다양한 형태들의 전체라고 말할 수 있으며, 개별 형태들은 서로가 물질·공간·정신·시간의 관계를 맺고 있다. 인간은 자연에서 아름다움을 찾기도 하고, 인간 스스로의 사유활동에 의해서 찾아내는 아름다움도 있다. 다시 말해 인간은 자연을 모방하는 것, 즉 우리 세계에 존재하는 형태들을 복제하는 것과 실제 세계에 존재하지 않는 형태, 즉 순수한 인간의 정신 활동에서 나온 형태를 만드는 것이 있다. 그러나 객관적인 자연의 형태든 순수한 창작의 형태든 이 형태들에는 각각의 물질적 재료들이 관여한다. 물질(物質, substance)은 물리학에서는 일정한 질량을 가진 대상을 말하는데 화학에서는 균일한 조성을 가진 순수물질과 2종 이상의 순수물질이 모인 것을 혼합물질이라고 한다. 물질은 구성성분을 이루는 구조가 있다. 화학자들에게 구조란 순수한 화합물에서 어떤 원자가 어떻게 서로 연결되어 있고 공간에서는 어떻게 배열되어 있는가를 나타내는 말이다. 만일 하나의 암석에 성분이 다른 두 물질이 서로 분리될 수 있는 것을 분별결정화(分別結晶化)라고 부른다. 광물(mineral)은 보통 금, 은, 구리 등 땅속에서 나온 모든 것을 뜻하기도 한다. 이 광물은 규칙적인 결정구조와 일정한 화학 성분을 가지며, 자연적으로 산출되는 무기적(無機的) 고체(固體)로 정의 된다. 광물은 가장 흔하게 보이는 암석(rock)을 이루는 기본 블록(block)이다, 암석은 지구의 한 부분으로 자연적으로 산출되는 수많은 광물들과 비광물질로 이루어진 고체덩어리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암석들은 광물질의 집합체라고 할 수 있다. 광물을 포함한 모든 물질들은 원자라고 부르는 미세한 블록들로 구성되어 있다. 그래서 물질의 특성은 원자로 구성되지만 원자는 다시 더 작은 부분들로 나눌 수 있다. 그것들은 다시 전자, 양성자, 중성자들로 구분되고 얼마만큼 더 작게 나눌 수 있는 지는 불확실하다. 그리고 물질이 어떻게 처음 생기는 지 정확하게 아는 것도 불가능하다. 그러나 물질은 액체, 고체, 기체라는 세 가지 형태로 존재하고 모든 물질은 이 세 가지 중 하나로만 존재한다. 우리가 아는 물질을 공통적으로 구성하는 기본 입자 같은 것은 없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생성되고 사라지는 물질들 사이의 공간이 존재하는 것은 분명하다. 이 공간은 무한히 작은 공간에서 우주로, 또는 그 너머로 연속적으로 확장된다. 돌은 고체이다. 화강암도 소금 결정 같은 결정체로 만들어지고 조면암 또한 무수한 사각의 결정으로 분해된다. 돌을 이루는 결정들 자체는 매우 단단한 것 같지만 그 결정들은 각각 독립적으로 형성돼 있어 그 결정들 사이에는 간격과 구멍이 있기 때문에 미립자 사이의 결합은 사실상 그리 견고하지 않다. 물질의 특성은 그 물질의 구성 요소들이 이루는 형태와 그 구성 부분들의 결합 세기에 의해 결정된다. 그 구성 요소들이 견고하냐, 느슨하냐의 결합 정도에 따라 강한 물질인가 아닌가가 판명된다. 조각(sculpture)은 실재하는 공간 속에 존재하는 물체들에 대한 입체적이고 공간적인 재현예술이다. 조각은 스쿨페레(sculpere)라는 라틴어에서 유래하며 ‘잘라내는’, ‘깎아내다’라는 의미를 말한다. 조각가들은 이 어원에서 보듯이 쓸데없는 재료를 떼어내기도 하지만 반대로 재료를 덧붙이는 일도 한다. 덧붙이는 일인 소조(塑造)와 깎아내는 일(刻)을 합쳐 조소(彫塑)라고 하는 것이고 일반적으로 뭉뚱그려서 조각의 다른 표현으로도 쓰인다. 예술가가 사용하는 재료가 작업방식에도 영향을 미친다. 물론 재료의 성질상 사람마다 깎아내기를 선호하는 사람은 돌이나 나무 재료를 선택할 것이고, 덧붙이는 사람들은 찰흙으로 모형을 만들어 석고나 브론즈로 형상을 만든다. 또 현대 조각이나 설치미술에서 보듯이 개념적이거나 부피를 확장하거나, 또 부분들을 증축하며 이루는 것 등 조각은 매우 범위가 넓어졌다. 사실상 조각은 표면에서부터 심층으로, 그리고 심층으로부터 외부로 진행하는 두 가지 양식은 바로 재료의 특성으로써 규정할 수 있는 것이다. 조각은 의심할 여지없이 소묘에서 생겼고, 소묘는 평면을 소생시키는 것으로 파악되어야 한다. 소묘는 깊게 파여짐으로써 부조(浮彫)와 환조(丸彫)가 되었다. 소묘는 조각의 깊이를 더해 주는 형상을 만들어낸다. 머릿속에 그려지는 사각형의 돌이 서 있는 사람으로 탄생한다. 그러므로 형태란 막연한 어떤 것일 수가 없다. 예술마다 각각의 재료가 형태를 따른다. 포시옹의 말대로, 예술가의 정신 속의 형태는 붓, 크기, 면, 선(線)의 행로이자 반죽된 그 무엇이며, 색칠해진 그 무엇이고, 한정된 재료 속에 있는 덩어리들의 배열이다. 형태는 추상적인 것이 아니며, 형태 자체가 사물이라는 것은 아니다. 형태는 촉각적인 것과 시각적인 것을 끌어들인다. ◇ 동자란 무엇인가 동자는 어린아이(兒童)이다. 같은 말로 동치(童稚), 소사(小士)라고 한다. 아이는 천진무구하고 해맑은 모습이며, 우리가 알고 있는 동자의 머리 모양은 두 가닥 쌍계(雙紒)를 짓고 있거나 세 가닥으로 결발을 지은 머리, 그리고 땋은 머리나 풀어헤친 머리 모양 등을 하고 있다. 동자를 부르는 말에는 갓난아이를 적자(赤子)·영아(嬰兒)라 하고, 젖먹이 아이를 해동(孩童), 품에 안길 정도의 아이를 해포(亥抱), 네 살 된 아이를 소아(小兒)라 하며, 초등학교 다니는 아이를 아동(兒童), 열 살 된 아이를 유(幼), 어리석은 아이, 혹은 아직 장가들 기 전 아이를 동몽(童蒙)이라고 한다. 맹자는 중국 고대의 어린아이를 ‘5척 동자(五尺之童)’라고 불렀다. 당시 5척이면 아이들의 평균 신장이었는데, 전국시대에는 아이들의 키가 1척에 23㎝여서 5척이면 1m 15㎝가 된다. 그러나 당·송대(唐宋代)에 와서는 ‘아이의 키가 5척 동자가 3척 동자로 바뀌었는데 송대의 1척은 약 31.7㎝이므로 아이의 키가 1m 15㎝인데 아이의 키가 전국시대보다 당·송대가 작아졌다. ◇ 동자석의 명칭 제주 동자석은 제주인의 와음과 변음의 발음으로 동제석, 동ᄌᆞ석, 동주석, 동제상, 동자상, 애기동자1) 등으로 제주도 지역에 따라 다르게 부르고 있으나 가장 일반적인 명칭은 ‘동자석’이라고 한다. 동자(童子)+석(石:돌), 즉 동자석은 돌로 만든 아이 형상이다. 돌을 깎아서 만들었기 때문에 돌 조각(石彫刻) 유형이다. 그러니까 형식은 돌 조각이고 내용은 어린 아이(童子)가 되며, 범주는 현대조각 이전의 전통조각이 되고 조각의 성격은 유교의례용으로 수호적인 정면성을 보이고 있지만 여러 종교가 습합되었다. 동자석의 민속적 개념이 신당의 무속 기자석(祈子石)에서 유래하고 그 기자석이 마을 입구에 세워져 오가는 여인들이 아들 낳기를 바라고, 또 조선의 유교적 의례 전통에 기인한다. 동자석은 십자가, 꽃, 무속 기물, 뱀, 새, 까마귀, 오리, 숟가락, 젓가락, 술잔과 술병, 칼, 달거울, 창, 고리, 적(狄)꽂이 등 제주의 종교적 흐름과 연관이 있다. 도교 신선의 시중을 드는 아이〔侍童〕, 불교의 선업 동자, 무속의 기자석이나 동자석과 동자 판관, 유교의 학동(學童)이나 제사때 조상의 혼백을 대신하던 시동(尸童) 등이 복합적으로 어우러져 탄생한 석상인 것이다. 그러나 이런 자연물이나 선조각(先彫刻:자연물에 부분적으로 가미한 조각) 형상은 언제나 사상에 선행하는데 자연에서 형태를 찾아 상징으로 활용하는 것이 우리 인간이다. 또 동자석이라는 말은 왕릉의 난간과 난간 사이를 지지하는 ‘동자석주(童子石柱)’ 기둥이 세종 때에 등장하고, 자연석 입석을 ‘동자석(童子石)’으로 부른 것은 조선시대 선조 때에 나타나며, 그리고 ‘동자석인(童子石人)’이라는 말은 인조 때에 등장한다. 이와 같이 동자석은 도교, 불교의 석상, 왕릉의 난간 기둥〔童子石柱〕으로 불렀고, 또는 절간의 입구에 세우는 표석으로도 부르고 있어 조각예술로 개념적 정확성을 유지하기 위해서 이 글에서는 제주도 무덤에 세우는 아이 형상의 석상만을 동자석이라고 부르고자 한다. 현재도 동자석을 골동품으로만 보는 시각이 여전히 지배적이어서 미술관보다는 박물관 소장에 집중돼 있고, 연구자 또한 미술학적인 시각보다는 역사학 시각에서 다루다 보니 조각예술을 형태학적이고 미학적인 눈이 결여돼 조형성을 왜곡하는 한계를 드러낸다. 조형에 대한 뎃생력과 구성력, 미학적인 분석이나 미술적인 안목없이 다루다보니, 사실적이면 걸작이라는 말이 먼저 나오고, 무엇이 그 조형의 문제이고 서툰 것인지 의도적으로 고졸한 것인지를 알지 못한다. 동자석은 옛 문헌에는 아이 형상으로, 동자석주, 동자석, 동자석인으로 혼용해서 쓰고 있었다. 그렇다면 동자석과 동자석인에 대한 용어 출현의 역사적인 기록을 보자. 『세종실록(世宗實錄)』 에는 동자석주(童子石柱)를 왕릉의 난간 사이를 받치는 돌을 말한다. 성혼(成渾 1535~1598)은, 사찰 가는 길에 “옛사람이 두 개의 큰 돌을 골짜기 가운데에 서로 마주 보도록 세워서 표시하였는 바, 수십 보(步)마다 이러한 돌이 있는데 이 돌을 동자석(童子石)이라고 하였다(古人以兩石相對立于谷中以誌之, 數十步必有一對, 名其石曰童子石).” 여기에 언급된 동자석(童子石)은 사찰 입구에 서로 마주 보게 세운 입석을 말하고 있다. 즉 사찰로 가는 경계 표시로써 불교 신앙적인 의미가 있는 것이다. 이항복(李恒福 1556~1618)은 산릉(山陵)을 조성하는 역사(役事;노동) 가운데 항상 석역(石役:돌일)이 늦는 것을 염려하는 글에서 동자석(童子石)이라는 말을 썼다, “그 나머지 외면(外面)에 배열하는 문무석(文武石)·양마석(羊馬石)·망주석(望柱石)·동자석(童子石) 등은 결코 기한 안에 설치할 수 없는 형편인데 옛날에도 이렇게 해 놓았다가 성분(成墳)한 뒤에 추후 설치한 경우가 있습니다(其餘外面排列者如文武,羊馬,望柱,童子等石. 决不能及, 古亦有如此, 而追設於成墳之後者).” 『인조 실록(仁祖實錄)』 인조(仁祖) 4년(1626) 2월 3일 기사, 이정구의 말에 동자석인(童子石人)이라는 말이 나오며, 이정구(李廷龜, 1564~1635)의 『월사집(月沙集)』에도 한 쌍의 석인을 동자석인으로 대체하자는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6년이 지나(1632) 왕릉의 석물 중 동자석을 다시 문석(文石:文官石)으로 바꾸자는 의견이 나왔고 왕이 이를 허락한다. 이후 정조(正祖) 시대의 기록들에 등장하는 동자석주는 난간 사이에 세우는 작은 기둥을 말하기 때문에 동자석의 석상 의미와 혼동이 되고 있다. 따라서 석인(石人)이란 무덤 앞에 세우는 돌로 만든 사람의 형상으로, 왕릉이나 양반 사대부 등 신분이 높은 사람의 무덤 앞에 세우며, 그 종류로는 문관석인(文官石人·문석(文石)·문석인), 무관석인(武官石人·무석(武石)·무석인), 동자석(童子石) 등이 있다. 무덤 앞에는 다양한 석물이 있다, 그 석물은 조선시대 무덤에 사용되는 민간 석재품(石材品)으로 동자석, 문석인, 무석인, 비석, 망주석, 혼유석, 상석, 토신단, 제절(除節) 등을 통틀어 일컫는 말이다. 그러나 『증보산림경제(增補山林經濟)』에 동자석 금기(禁忌)라는 사뭇 다른 표현이 나온다. “(무덤에는) 절대 동자석(童子石)을 세우지 말 것이며, 다만 망주석(望柱石)은 세우지만 서민(庶民)에게는 금하는 법이 있다.” 라고 하여, 동자석이 양반 사대부의 신분적인 제약이 있는 석물이므로 산림에 사는 선비들은 사치하지 말고 검소하게 무덤에 동자석을 세우지 말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동자석은 정작 한양에서 멀어질수록 지방에서는 토호 향리층이나 돈 있는 서민들의 무덤에도 가문의 위세를 세우려는 기념물로 유행하였다. 특히 제주의 문석인은 복두를 쓰고 있고, 무석인은 돌하르방 모습으로 등장하며, 동자석은 댕기머리와 쪽진 머리를 하고 있어 육지 동자석과는 독특한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 골동품으로 취급된 동자석 동자석이 터부가 있는 무덤이라는 “성(聖)의 영역에서 사고 팔리는 일상의 속(俗)된 영역”으로 전락하게 된 것은 일제 식민지의 골동상품으로 인식한 군국주의의 폐해였다. 식민지란 남의 나라 것은 함부로 수탈하고 자기 나라 것은 적극적으로 팔아먹는 시장구조였기에 한국의 석상들과 전통 유물들이 일명 골동품이 돼버린 것이다. 일제 강점기 야나기 무네요시(柳宗悅. 1889~1961)와 같은 일본인들이 잠시 애잔함을 보이면서 식민지 조선의 골동품을 비감하게 수집하던 여파도 크거니와, 1970년대 초 새마을 운동으로 낙후된 구시대의 유물로 취급되면서 골동품으로 취급된 계기가 마련되었다. 골동품이라고 하는 소유 개념이 유행하면서 서민들은 안목이 없었고, 돈푼깨나 있고 어깨에 힘줄 수 있는 사람들은 싼값에 끌어 모았다. 1970년대는 유력 정치인과 식자층이 고미술이라는 이름으로 한때 호사(豪奢)했던 시절이었다. 새마을 운동은 근대화라는 기치를 걸고 농촌계몽이라는 이름으로 과거의 문화가치들을 일거에 정신 개조시키는 바람에 유물들은 한꺼번에 쓸모없이 버려지다시피 쏟아지면서 그 기회를 타고 골동품 시장은 인사동을 중심으로 호황을 누릴 수 있었다. 실체는 새로운 계기를 만들어내고 물질은 여러모로 생각을 다각도로 헤아리게 만든다. 어떤 보석도 가치를 알지 못해 흙 묻은 채 놔두면 그냥 돌일 뿐이고, 보물마저 결코 알아챌 수가 없다. 순진 어리숙한 섬사람들은 아는지 모르는지 1970년대를 전후로 무덤 석상들을 위시한 남방애, 문자도, 민화, 정주석, 궤, 허벅 등이 이때부터 대거 육지로 밀반출되었다. 동자석은 1970년대 이후 현재까지도 도굴돼고 있으며, 장묘제도의 급변으로 무덤의 남은 석물들은 파묻어버리거나 세간의 뜨락을 떠돌고 있다. 석상의 보물들이 역사 속으로 사라진 순간이다. 동자석은 기껏 이장하지 않은 무덤에 겨우 “수레바퀴 자국의 고인 물에서 겨우 숨만 붙어있는 붕어와 같은(涸轍鮒魚) 신세”가 돼버렸다. 골동품이 돈이 된다고 생각하니 최근에는 소위 가짜가 부쩍 늘었는데 여기서 가짜란 무덤의 유물주소가 없이 새로 조작된 이미테이션 석상을 말한다. 그것을 판별할 줄도 모르고 무식한 기록으로 남게 되면, 미술의 역사가 조작되는 것은 시간문제가 된다. ◇ 제주도 초기 동자석 육지의 동자석인 경우 조선 전기에 해당하는 15세기부터 동자석이 등장하지만 초기 형태라 그런지 매우 고졸하다. 조선중기에 해당하는 17세기에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의 여파로 말미암아 지배층에 대한 민중들의 불신이 확산되는 시기이며, 이에 위기를 느낀 지배층은 수령권을 강화하여 중앙집권화를 꾀하고 유교의 강고한 지배질서를 구축하려고 노력한다. 제주도 동자석은 17세기에 처음 등장하는 데 김만일 무덤과 아버지 김이홍 무덤에 있던 석물이 그것이다. 김만일 무덤의 동자석은 험상궂은 인상에 작은 손을 가슴 아래 모으고 있으며, 향을 꼽을 수 있게 작은 구멍을 뚫었다. 형태는 졸렬하면서 툴툴하고 둥그스름한 머리는 민머리를 하고 있다. 헌마공신 김만일 동자석의 편년은 1632년, 그가 타계한 연도로 추정할 수 있다. 김만일의 아버지 김이홍의 문석인과도 동일한 양식인 것으로 보아 아들 김만일의 석성을 조각할 때 여느 때처럼 윗대를 예우해서 만든 석상 임을 알 수 있다. ◇ 제주도 동자석의 양식적 독창성 동자석의 다음 7가지 기능은 필자가 지속적인 보완을 거쳐 구상된 것으로 제주도 무덤석물을 이해하는데 매우 중요한 모티프가 된다. ⦁숭배적 기능 : 사자(死者)에게 제례를 행하기 위한 공경(恭敬) ⦁봉양적 기능 : 영혼을 위한 심부름꾼, 정성으로 공양하는 시동(侍童) ⦁교훈적 기능 : 동심(童心)으로 수신(修身)하여 염치 있게 살라는 가르침 ⦁수호적 기능 : 사자(死者)를 악귀에서부터 수호하기 위한 임무 수행 ⦁장식적 기능 : 가문의 권위(權威)를 알리기 위한 무덤의 치장(治裝) ⦁주술적 기능 : 사자의 영혼을 위무(慰撫)하기 위한 종교·신앙적인 기능 ⦁유희적 기능 : 사자(死者)와 벗해 놀아주는 아이, 또는 말벗 제주도 동자석이 육지의 무덤 석상과 크게 다른 특징이 있다면 머리와 손에든 기물(器物)이다. ‘자(子)’가 남자와 여자를 모두 지칭하는 의미가 있으므로, 동자에는 남자 아이를 가리키는 동자가 있고, 여자 아이를 말하는 동녀가 있는데 이 차이는 머리의 모양에서 쉽게 구별된다. 필자는 2001년 ‘아름다운 제주석상 동자석전’을 열 때만 해도 풀리지 않은 것이 바로 여자의 쪽 진 머리였다. 동자석의 댕기머리는 동자를 말하고 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었지만 당시 만해도 동녀가 쪽 진 머리를 한다는 것을 이해할 수가 없어서, 쪽을 지었다는 것은 곧 혼인한 여자라고 생각하여 ‘시녀(侍女)’라고 임의적으로 기록했었다. 그러나 두 기 한쌍으로 세우는 석상의 형식상 동남과 동녀라는 의미는 맞았으나 동남과 시녀라는 개념이 영 맞지 않아 고민하던 중 고서(古書)에서 마침내 겨우 그 의문을 벗어날 수가 있었다. 제주 어사로 왔던 이증(李增, 1628~1686)의 『남사일록(南槎日錄)』에는 제주 여자아이들이 쪽진 머리 모양을 하고 있다는 기록이 있어 눈이 번쩍 트였다. 지금까지 동자석 중에 동녀를 나타내는 쪽진 머리를 시녀(侍女), 또는 부인(婦人)으로 여겼으나 이증의 기록 때문에 제주에서는 어린 여자 아이도 쪽을 지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남자와 여자는 길가에서 우뚝 서 바라보는데 남정들은 모두 가죽옷에 가죽 모자를 했고, ‘여인들은 비록 7, 8세 아이라도 모두 머리를 두 가닥으로 땋아 묶어 쪽을 지었다(女人則雖七八兒皆辮髮兩條爲髮髻)’.” 제주도 동자석의 독창적인 특성 중 손에 든 기물(器物)은 다음 기회로 미루겠다. ◇ 파격적인 동자석 동자석의 파격미는 우연이 아니다. 한 동자석에 구상과 추상 양식이 동시에 표현된 예는 전(全) 조각에서 찾아보기가 쉽지 않은데 이 동자석은 수준 높은 조각임을 보여주고 있다. 손은 직선으로 매우 단순하게 표현하면서 절묘한 조화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마치 인간의 육체는 단순한 자연에 머물지 않고, 형태와 구조상 그 안에서 곧 정신도 감각적이고 자연적인 현존재로 나타난다. 사실상 정면성의 의례 조각이면서도 긴장하여 경직되지 않게 표현된 조각인데 얼굴 표현을 보면 이목구비가 균형이 잡혀서 살 오르는 볼 처리하며 표정과 시선이 매우 자연스럽고 앳띠어 생기가 돌고 있다. 이마는 알맞게 튀어나와 머리에서 턱까지 전체 균형이 타원을 이루면서 목 선(線)을 타고 부드럽고 은은하게 상체와 합치고 있다. 목은 보이지 않게 옷깃을 세운 채 어깨로 스미듯이 하나가 된다. 입술은 살짝 다물고 있어 오히려 튀어나온 듯이 보여서 야무지다. 귀는 너그럽게 보이도록 큰 편이어서 얼굴의 긴장감을 잡아준다. 어깨 아래 몸체는 하부로 내려올수록 약간 비스듬하게 처리돼 밋밋한 전면(前面)이 무게 중심이 필요한 것을 알고 넓은 직사각의 긴 띠로 처리하고 있다. 두 손은 단순한 기하학적 직선으로 처리하여 디테일하게 세부 묘사된 얼굴과 대조로 이룬다. 정교함과 단순함, 돌출된 운동과 조용한 평정(平靜)이 한 석상에서 이질적으로 부딪치지 않고 서로 교감하고 있다. 머리는 쪽을 지고 있는 동녀이다. 맞은 편 동자석은 얼굴이 선묘 중심으로만 표현돼 있는데 이 동녀석보다는 제작 형식이 단조로운 것으로 보아 제작자가 다른 사람일 수가 있다.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1) 변정섭, 68세, 서귀포시 표선면 성읍리(2000년 채록). <참고문헌> 게오르크 빌헬름 헤겔, 『헤겔의 미학강의』, 두행숙 옮김, 은행나무. 2012. 김유정, 『제주도 동자석 연구』, 제주문화연구소, 2021). 김유정, 『제주도 돌담의 형태, 구조, 미학』, 제주문화연구소, 2022. 로얼드 호르만, 『같기도 하고 아니 같기도 하고』, 이덕환 옮김, 까치, 2018. 로제 카이유와, 『일반미학』, 이경자 옮김, 동문선, 1999. 이돈주, 『중국의 고대문화』, 태학사, 2006. 이만영 편저, 『재물보2』, 남종진 옮김, 세종대왕기념사업회, 2019, 李增 著, 『南槎日錄』, 金益洙 譯, 濟州文化院, 2001, Frederick K. 외, 『지질환경과학』, 함세영외 옮김, 시그마프레스, 2016. 크리스토퍼 윌리엄스, 『형태의 기원』, 고현석 옮김, 이데아. 2023. 힐데브란트, 『조형미술의 형식』, 曺昌燮, 옮김, 民音社, 1989. ☞김유정은? = 최남단 제주 모슬포 출생이다. 제주대 미술교육과를 나와 부산대에서 예술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미술평론가(한국미술평론가협회), 제주문화연구소장으로 일하고 있다. 저서로는 『제주의 무신도(2000)』, 『아름다운 제주 석상 동자석(2003)』, 『제주의 무덤(2007)』, 『제주 풍토와 무덤』, 『제주의 돌문화(2012)』, 『제주의 산담(2015)』, 『제주 돌담(2015)』. 『제주도 해양문화읽기(2017)』, 『제주도 동자석 연구(2020)』, 『제주도 산담연구(2021)』, 『제주도 풍토와 문화(2022)』, 『제주 돌담의 구조와 형태·미학(2022)』 등이 있다.
제주지방법원에서 진행하는 ‘무료법률상담’을 다녀왔다.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법률을 잘 알지 못해 빌린 돈보다 더 많은 돈을 갚고, 갚을 필요가 없는 빚을 갚는 등 손해를 보고 있었다. 주로 나온 질문들 위주로 살펴보면 괜찮은 생활법률상식이 될 것 같아 정리해 본다. #1 이자제한법상 금전대차에 관한 계약상의 최고이자율은 연 20%(2023년 10월 10일 기준)이고, 연 20%를 초과하여 약정한 부분은 무효이다. 연 20%를 초과하여 이자를 받은 자는 형사처벌(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까지 받을 수 있다. 이자를 연 20%를 초과하여 약정하고 지급하였다면 초과 지급된 부분은 무효이므로 당연히 반환청구를 할 수 있다. 내담자는 1000만원을 빌리고 월 50만원씩 수년 동안 갚는 중이라 했는데, 연 60%에 해당하는 말도 안 되는 이자율이다. 20%를 초과하여 변제한 부분은 무효이므로, 이제까지의 변제로 채무는 이미 전부 변제된 사실을 설명해 드렸다. #2 부모님이 빚이 더 많은 상태에서 돌아가시더라도 자식들이 빚을 갚지 않아도 된다. 다만, 부모님이 돌아가신 사실을 안 날로부터 3개월 내에 한정승인(고인의 재산 범위 내에서만 고인의 채무를 변제할 것을 조건으로 상속을 승인하는 것 - 채무가 자식들에게 재차 상속될 수 있는 상속포기와 다름에 주의)을 해야 한다. 내담자는 몇 년 전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 아버지의 빚을 갚으라는 독촉을 받고 있었다. 결국, 한 채무자에게 3000만원 정도를 갚았는데, 다른 채무자가 또 나타났다는 것이다. 이 경우는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3개월 내에 한정승인 절차를 밟았어야 했으나, 3개월이 초과하였으므로 단순 한정승인으로는 어렵고, ‘특별한정승인’의 절차를 취해야 함을 설명해 드렸다. 위 사례 이외에도 일부 카드사 등에서 상속인들에게 ‘지금 돌아가신 부모님의 카드 값을 갚으면 50% 감면 해준다’며 변제를 독촉하는 경우가 있는데, 마찬가지로 변제할 필요 없이 한정승인으로 대응하면 된다. #3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특정 형제·자매에게 재산이 상당 부분 증여되었다면 유류분 반환청구(법정상속재산의 일정 부분을 받을 수 있는 권리)를 고려할 수 있다. 다만,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1년 내에 청구하는 것이 좋다. 유류분 반환청구권은 ‘증여를 한 사실을 안 때로부터 1년’, ‘상속 개시시부터 10년’이 지나면 소멸시효 경과로 소멸한다. 일견 부모님이 사망하고 10년 내에만 하면 될 것으로 보이나, 부모님이 사망하면 상속재산을 정리하므로 그 과정에서 ‘증여를 한 사실을 알게’ 된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기 때문이다. 원고 입장에서는 유류분 반환청구권의 항변사항인 ‘소멸시효의 완성’을 굳이 쟁점으로 만들 이유가 없으므로 기왕이면 부모님 사망 후 1년 이내에 청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김대현은? = 제주도 감사위원회, 법무법인 현답에서 근무하다 제주에서 개업했다. 대한변호사협회 대의원, 대법원 국선변호인, 헌법재판소 국선대리인, 제주지방법원 국선변호인 등으로 활동 중이다.
음식을 먹었을 때 체내에서 에너지를 만드는 3대 영양소는 탄수화물, 지방, 단백질이다. 탄수화물과 단백질은 섭취 시 1 그램 당 4 kcal의 열량을 내는데, 지방은 1 그램 당 9 kcal의 열량을 내는 고에너지 물질이다. 지방은 양질의 에너지원이고, 세포막을 구성하며 지용성 비타민의 흡수와 저장을 돕는 등의 중요한 기능을 한다. 또한 우리가 먹은 탄수화물과 단백질도 다 소모되지 않으면 지방으로 전환되어 지방 조직에 저장된다. 모든 것이 과하면 좋지 않듯이 과도한 지방 섭취는 비만, 성인병 등의 건강 문제를 야기할 수 있어 적절한 섭취가 필요하고, 지방이 인체에 축적되지 않도록 적절한 운동과 식사 조절이 필요하다. 지방은 유지라는 용어로도 불리는데, 우리가 먹는 콩기름, 올리브유, 카놀라유, 포도씨유 등의 식물성 유지와 버터, 소 기름, 생선 기름과 같은 동물성 유지를 통칭하여 식용 유지라고 한다. 이러한 유지를 구성하는 성분이 지방산인데 유지가 분해되면 지방산이 떨어져 나오고 품질이 나빠진다. 유지가 열이나 빛에 의해 에너지를 얻고 산소와 반응하면 산화 작용이 일어나 지방산이 떨어져 나오고 연쇄적으로 여러가지 건강에 좋지 않은 물질 들이 만들어지는 현상을 산패라고 한다. 유지를 공기(산소)와 오래 접촉하게 되면 불쾌한 냄새가 발생하고, 맛과 색이 나쁘게 변하는데 산패가 과도하게 일어난 유지는 먹지 않아야 한다. 튀김에 여러 번 사용한 식용유의 색이 나빠지고 안 좋은 냄새가 나는 것도 열에 의해 산패가 일어난 것이고, 빛에 노출되어도 산패가 일어날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먹는 유지가 일상 온도에서 경우에 따라 언제 고체가 되고 액체가 되는지에 대해 의문을 품을 수 있다. 고체는 분자 간의 거리가 촘촘하여 활동성이 낮고, 액체는 중간 정도이며, 기체는 분자 간의 간격이 넓어 활동성이 강한 상태이다. 즉 분자 간의 간격에 따라 고체가 되기도 하고 액체가 될 수도 있다. 유지가 고체인지 액체로 존재하는지는 유지의 구성 성분인 지방산에 의해 결정된다. 일반적으로 포화지방산이 많으면 고체, 불포화지방산이 많으면 액체가 된다. 유지를 구성하는 포화지방산과 불포화지방산은 화학적인 구조에서 차이가 있다. 포화지방산은 이중결합(=)이 없는 반면, 불포화지방산은 꺾인 구조의 이중결합(=)을 갖는다. 포화지방산의 탄소(C)는 모두 수소(H)로 채워진 포화 상태로 차려 자세처럼 일자로 구조가 만들어져 서로 촘촘하게 설 수 있어 고체가 된다. 불포화지방산은 탄소와 탄소 사이에 이중결합(=)이 꺾인 형태가 되므로 팔 벌린 자세처럼 충분한 간격이 확보되어 일상 온도에서 액체로 존재하게 된다. 팔 벌린 자세가 불편한 것처럼 불포화지방산은 불안정하여 산패가 잘 일어나는데 식물성 유지들은 산패를 막아주는 항산화 성분을 같이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항산화 성분을 적게 함유한 식용 유지들은 산패가 빨리 일어난다. 항산화 성분들은 유지의 산패를 막아주지만 자기자신은 계속 산화되어 소모되므로 시간이 지나면 소용이 없어지고 빛과 열은 산패를 촉진시킨다. 튀김에 사용한 식용유에서 나쁜 냄새가 나고, 오래된 들기름에 쩐내가 나는 것도 산패가 일어난 것이다. 불포화지방산은 이중결합이 깨지면서 탄소에 수소를 더 첨가할 수 있기 때문에 포화되지 않았다는 의미의 불포화로 불리고, 수소를 첨가하는 반응을 시키면 이중결합이 없어지면서 펴진 구조의 포화지방산이 되고 분자 간의 간격이 가까워져 고체가 된다. 즉 팔 벌린 자세에서 차려 자세가 되어 서로 촘촘하게 서게 되는 것이다. 액체인 식물성 식용유에 수소를 첨가하면 고체가 되는데 이렇게 만든 것이 마가린, 식물성 쇼트닝이다. 즉 마가린은 식물성 기름으로 만들었지만 주성분은 포화지방산인 것이다. 포화지방산은 동물성 지방에 많고 훌륭한 에너지원이지만 일상 온도에서 고체로 존재하기 때문에 인체에서 배출이 잘 되지 않아 혈관이나 체 내에 쌓여 심혈관계 질환, 비만, 성인병 등의 원인이 될 수 있다. 불포화지방산은 식물성 기름에 많이 들어있고 상온에서 액체로 존재하므로 우리 몸에서 배출이 잘 되고 나쁜 콜레스테롤의 수치를 낮추는 역할을 한다. 따라서 포화지방산보다는 불포화지방산의 섭취를 권장하는 것이다. 물론 불포화지방산도 열량이 높기 때문에 과도한 섭취는 좋지 않다. 한편 트랜스지방산도 이중결합을 가지는데 이것은 아래 그림처럼 꺾인 구조가 아니라 포화지방산처럼 차려 자세로 존재하므로 분자 간의 간격이 촘촘한 고체가 된다. 따라서 트랜스지방산은 오히려 건강에 해롭다. 트랜스지방산은 나쁜 콜레스테롤의 혈중 농도를 증가시켜 동맥경화와 심장질환의 원인이 될 수 있어 섭취를 피해야 한다. 트랜스지방산은 대부분 식품의 가공 과정에서 만들어지고 가공식품의 영양정보에는 트랜스지방의 함량이 필수적으로 표시되므로 이를 확인하여 식품을 선택하는 것이 중요하다. 식용 유지에서는 평소에 소비자들이 크게 관심을 가지는 오메가-3와 오메가-6 지방산에 대해 필히 다뤄야 하는데 내용이 많아 다음으로 미루고 여기서는 식용 유지의 적절한 사용에 대해서 얘기를 이어나가고자 한다. 소비자들이 식용 유지를 사용하다 보면 끓는점이 아니라 발연점이라는 용어를 많이 접하게 된다. 발연점은 식용 유지의 온도가 올라갈 때 푸르스름한 연기가 나면서 성분이 급격하게 파괴되는 온도를 뜻하는데 발연점이 높다고 해서 품질이 좋은 것은 아니다. 발연점은 각각의 식용 유지가 가지는 특성으로 각 요리에 적합한 발연점을 가진 기름을 선택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발연점이 160도 이하면 샐러드 드레싱, 나물 무침이나 가벼운 볶음 요리에 적합하고, 160~220도면 볶음이나 부침 요리에, 220도 이상이면 튀김, 볶음 요리에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주요 식용 유지와 발연점] 기름 아보카도 올리브 (extra light) 카놀라 콩기름 옥수수 포도씨 들기름 참기름 올리브 (extra virgin) 발연점 (℃) 271 242 238 232 232 216 202 177 160 *출처: The world healthiest foods 식용 유지는 원료를 열처리 후 압착하여 짜낸 상태 그대로 사용하는 비정제유와 정제과정을 거친 정제유로 나뉜다. 참기름, 들기름과 같은 비정제유는 대부분 발연점이 낮기 때문에 튀김 요리에는 적합하지 않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콩기름, 카놀라유, 옥수수유는 정제유에 들어가고 발연점이 높은 편에 속한다. 올리브유 중에 extra virgin(엑스트라 버진)은 비정제유로 발연점이 낮아 튀김 요리에는 적합하지 않지만, 고도로 정제된 extra light(엑스트라 라이트)나 pure(퓨어) 올리브유는 발연점이 높아 튀김용으로 사용할 수 있다.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유는 특유의 향이 강하고 천연 항산화제와 비타민을 함유하고 있기 때문에 열 처리하지 않는 샐러드 드레싱이나 빵을 찍어 먹는 용도에 적합하다. 오메가-3 지방산이 풍부한 들기름은 요리용으로도 사용하지만 기름을 생으로 직접 섭취하는 소비자도 늘고 있다. 식용 유지는 항산화 물질을 함유하고 있더라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산패가 일어나기 때문에 산패의 요인을 제거하는 것이 중요하다. 산패의 요인으로는 크게 산소(공기), 빛(햇빛), 열(높은 온도)을 들 수 있다. 따라서 식용 유지는 개봉 후에 공기와의 접촉을 최대한 피하고 마개로 잘 밀봉해 놓아야 한다. 물론 개봉한 식용유는 빛과 열을 최대한 차단하고 빨리 소비하는 것이 좋다. 또한 식용 유지는 빛이 없는 곳에 보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기름을 짜면 빛이 투과되는 투명 유리병에 담아주는 경우가 있는데 산패를 막으려면 빛이 차단된 용기에 옮겨 담는 것이 좋다. 특히 참기름이나 들기름은 빛에 많이 민감하므로 더욱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높은 온도도 산패의 요인이므로 더운 여름철에는 산패가 더욱 촉진될 수 있으니 냉장고에 보관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무엇보다도 색이 많이 변했거나 나쁜 냄새가 나는 산패된 식용유의 섭취는 피해야 한다.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 김동청 교수는? = 연세대 생화학과를 졸업했다. 연세대 대학원 생화학과 이학석사 및 서울대 대학원 농화학과 농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대상㈜ 중앙연구소 선임연구원, 순천제일대 조교수, 영국 캠브리지대 방문연구원, 성균관대 기초과학연구소 연구교수를 거쳐 현재 청운대 인천캠퍼스 화학생명공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식품기술사 자격도 갖고 있다.
충정과 한결같은 마음은 책임 있는 애정을 만든다. 애정은 일률적인 화조풍월(花鳥風月)이 아니다. 길고도 번잡한 세월 속에서 서로 보살피고 함께 난관을 이겨내어야 한다. 충정의 마음과 한결같이 하려는 의지가 없다면 애정은 천장지구(天長地久)가 될 가능성이 적다. 예부터 지금까지 울리고 웃기는 애정 이야기는 모두 충정과 한결같이 함께 하는 고난과 감동을 이야기하지 않는 것이 있던가? 고난이 있기에 귀한 것이고 감동이 있기에 구가할 수 있는 것이다. 애정의 충정과 한결같음은 양산백(梁山伯)과 축영대(祝英台) 같아야 한다. 살아 있을 때 서로 마음이 통하여 헤어지지도 버리지 않고 죽어서도 마찬가지로 오랫동안 서로 의지하며 지내지 않았는가. 충정의 애정은 바로 시간의 한계를 뛰어넘어 저지하고 방해하는 모든 장애를 돌파하고 바닷물이 마르고 돌이 썩는 영원을 모색한다. 그러나 경화수월의 명예와 복록을 위하여 일찍이 천장지구하자는 맹세를 한 애정을 희생하였던 사람이 몇몇이었던가. 시간의 침식과 사소한 일들의 잠식 아래 자신이 마음속으로 사랑하였던, 암암리에 서로 마음이 통했던 무게를 잃어버린 사람이 몇몇이던가. 어쩌면 한결같이 하여야 장구한 세월을 인증할 수 있고, 충정이 있어야만 비로소 영원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주역』은 말한다. “연못 위에 우레가 있는 것이 귀매(歸妹)이니, 군자가 그것을 본받아 끝을 영구하게 하여 사물에 무너짐이 있음을 안다.” 무슨 말인가? 택(澤)은 소녀를 대표한다. 우레는 장남(長男)을 대표한다. 여기에서는 남자가 여자를 혼인해 얻는 것의 표상이다. 군자는 마땅히 영원토록 부부 사이에 화목하고 백년해로 하면서 부부 관계의 파괴를 방지하여야 한다. 애정은 마음과 마음의 충돌이다. 애정은 순간적인 애모가 영원이 된다. 애정은 달콤함 속에서 함께 향유하는 것이다. 애정은 고통을 나누는 것이다. 애정은 어염시수(魚鹽柴水)의 생활이다. 애정은 풍우 속에서 함께 가는 것이다. 애정의 시작은 왁자그르르 소란스럽다. 이지를 초월한다. 감성적이다. 그렇지만 진정한 애정은 현실 생활 속으로 돌아와야 하는 것이다. 평담(平淡) 속으로 돌아와야 하는 것이다. 애정의 달콤함을 경영하는 것을 배워서 알아야 하는 것이다. 애정의 영원함을 유지하여 백년해로하고 인생의 마지막까지 함께 하는 데까지 이르러야 한다. 일단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그 사람은 가장 선량하고 가장 세심하며 가장 온유하다. 아무리 활기가 없는 사람이라도 애정 속에서는 신성하게 된다. 아무리 타락한 사람도 애정 속에서는 향상하게 된다. 아무리 불건전한 사람도 애정 속에서 표현하는 것은 완미하게 된다. 그런데 애정은 기후 조건의 변화에 따라 끊임없이 생활환경을 바꾸는, 봄을 쫓는 철새가 아니다. 애정은 신다가 오래 되어 더 좋은 모양이 나오면 갈아 신는, 신발이 아니다. 애정은 오래 되면 버려버리는, 양말이 아니다. 요즘, 아무렇게나 감정을 가지고 노는 사람이 있다. 쉽게 상대방을 버린다. ‘자유연애’를 핑계로 ‘삼각연애’나 ‘혼외정사’를 하기도 한다. 그러한 행위는 부도덕하다. 피차간에 거대한 상해를 입힌다. 도행지(陶行知)1)가 말한 바와 같다. “사랑이란 술은 달면서도 쓰다. 두 사람이 마시면 감로수이고 ; 세 사람이 마시면 식초이고 ; 아무렇게나 마시면 중독이다.” ‘삼각연애’나 ‘혼외정사’는 친구나 부부 관계에 악화를 불러올 뿐이다. 도덕윤리를 손상시킬 뿐 아니라 원만한 가정과 조화로운 사회를 해친다. 부부 사이에 어떻게 하면 금슬이 좋고 백년해로할까? 두 사람이 서로 이해하고 포용하여야 한다. 상대방에게 있어야만 하는 공간을 남겨두어야 한다. 피차간에 오해나 불만이 생기는 것은 정상적이다. 부부 사이에 다툼이 생기는 것도 정상적이다. 중요한 점은 반드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결혼은 손 안의 모래와 같다고 얘기하는 사람이 있다. 주먹을 꽉 쥐면 모래는 손가락 사이로 흘러나오고 손을 펴면 모래는 바람에 날려 사라진다. 기왕 가정을 세운 이상 두 사람이 심혈을 기울여 경영하여야 한다. 서로 더 많이 교류하자. 그저 상대방의 단점만 틀어쥐지 말고 더 많이 상대방의 장점을 보자. 두 사람이 일치된 목표를 가지고 행동으로 상대방을 사랑하면 당신은 분명 백년해로할 것이다. ***** 歸妹卦 ䷵ : 뇌택귀매(雷澤歸妹) 진괘(震: ☳)상 태괘(兌: ☱)하 귀매(歸妹)는 가면 흉하니, 이로울 것이 없다.(歸妹,征凶,无攸利.) 「상전」에서 말하였다 : 연못 위에 우레가 있는 것이 귀매(歸妹)이니, 군자가 그것을 본받아 끝을 영구하게 하여 사물에 무너짐이 있음을 안다.(象曰,澤上有雷,歸妹,君子以,永終,知敝.) [傳] 귀매괘는 「서괘전」에서 “점괘(漸卦)는 나아감이니, 나아가면 반드시 돌아옴이 있기 때문에 귀매괘로 받았다”라고 하였다. 나아가면 반드시 이르는 곳이 있기 때문에 점괘에는 돌아가는 뜻이 있으니, 귀매괘가 점괘 뒤에 있는 이유다. ‘귀매(歸妹)’는 여자가 시집을 간다는 뜻이며 ‘매(妹)’는 막내딸의 칭호다. 괘는 진괘(震卦☳)가 위에 있고 태괘(兌卦☱)가 밑에 있으니, 막내딸이 큰아들을 따르기 때문이다. 남자가 움직이고 여자가 기뻐하며 기뻐함으로 움직이니, 이 모두는 남자가 여자를 기뻐하며 여자가 남자를 따르는 뜻이 된다. 괘 중에 남녀가 짝하는 뜻이 포함된 괘는 넷이니 함괘(咸卦䷞)‧항괘(恒卦)‧점괘‧귀매괘이다. 함괘는 남녀가 서로 감응함이니 남자가 여자에게 낮춰서 두 기운이 감응하며 그치고 기뻐하니 남녀의 정이 서로 감응하는 상이다. 항괘는 떳떳함을 뜻하니 남자가 위에 있고 여자가 아래에 있으며 공손하게 따르고 움직여서 음양이 모두 서로 감응하니 남녀가 모두 집에 머물며 남편이 선창하고 부인이 따르는 일상적인 도리에 해당한다. 점괘는 여자가 시집을 감에 올바름을 얻은 것을 뜻하니 남자가 여자에게 낮추고 각각 올바른 자리를 얻어서 그쳐서 고요하며 공손하게 따르고 나아감에 점진적인 뜻이 있으며 남녀가 짝함에 도를 얻은 것이다. 귀매괘는 여자가 시집을 간다는 뜻이니 남자가 위에 있고 여자가 아래에 있으며 여자가 남자를 따르고 기뻐하는 막내딸의 뜻이 있다. 기뻐함으로써 움직이는데 기뻐함으로써 움직인다면, 올바름을 얻지 못하기 때문에 그 자리가 모두 합당하지 않다. 초효와 상효는 비록 음양의 자리에 해당하지만 양이 밑에 있고 음이 위에 있으니 이 또한 자리에 합당하지 않은 것이며 점괘와 정반대가 된다. 함괘와 항괘는 부부의 도에 해당하고 점괘와 귀매괘는 여자가 시집가는 뜻에 해당한다. 함괘와 귀매괘는 남녀의 정에 해당하고, 함괘는 그쳐서 기뻐하며 귀매괘는 기뻐함에 움직이니 둘 모두 기뻐함으로써 시행한다. 항괘와 점괘는 부부의 뜻에 해당한다. 항괘는 공손하게 움직이고 점괘는 그쳐서 공손하니 둘 모두 공손하게 따름으로써 시행하므로 남녀의 도와 부부의 뜻이 여기에 모두 갖춰져 있다. 귀매의 괘는 못 위에 우레가 있어서 우레가 진동함에 못이 움직이니 따르는 상이며, 사물 중 움직임에 따르는 것으로는 물만한 것이 없다. 남자가 위에서 움직이고 여자가 따르니 여자가 시집을 가서 남자를 따르는 상이며, 진괘는 큰아들에 해당하고 태괘는 막내딸에 해당하니 막내딸이 큰아들을 따름에 기뻐함으로써 움직이고, 움직여서 서로 기뻐하게 된다. 사람이 기뻐하는 대상은 막내딸이기 때문에 ‘매(妹)’라고 말했으며 여자가 시집가는 상이 되고, 또 큰아들이 막내딸을 기뻐하는 뜻이 포함되었기 때문에 ‘귀매(歸妹)’가 된다. 1) 도행지(陶行知, 1891~1946), 자는 세창(世昌), 중국의 유명한 교육자이다. 본명은 도문준(陶文濬), 왕양명(王陽明)의 ‘지행합일(知行合一)’ 학설을 좋아해 ‘지행(知行)’으로 개명하였고 나중에는 ‘행(行)은 지(知)의 시작이고 ; 지는 행의 완성이다.(行是知之始,知是行之成)라고 생각해 행지(行知)로 개명하였다. 민간교육운동에 헌신하며 창조적 형태의 학교를 개설하였다. ☞이권홍은? =제주 출생. 한양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나와 대만 국립정치대학교 중문학과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국현대문학 전공으로 『선총원(沈從文) 소설연구』와 『자연의 아들(선총원 자서전)』,『한자풀이』,『제주관광 중국어회화』 등 다수의 저서·논문을 냈다. 현재 제주국제대학교 중국어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진흙에서 별까지 - 아닐라 부카리(Anila Bukhari) 가지고 놀 장난감도 없는 초라한 진흙집에서 나비를 찾아 걷는 소녀의 마음은 너무나 담대하다. 그녀는 비둘기를 만지고, 비의 달콤한 향기를 맡고, 창문을 열고 달 앞에 앉아 만족한다. 그녀가 자는 동안 그녀의 어머니는 책 위에 눈물이 스며든 것을 보았지, 하지만 그녀는 내면의 분노에 힘입어 절대 포기하지 않고 공부했다. 어느 날, 그녀는 희망을 주는 사람이 되어 빛을 퍼뜨리고, 밤낮으로 별을 품고, 엄마를 안고. 외로운 순간, 그녀는 그들의 포옹에서 위안을 찾고, 사랑과 가족은 그녀를 인도하는 은총이다. 여행을 통해 그녀는 별처럼 빛난다. 가깝든 멀든 희망의 등대이다. From Mud to Stars (By Anila Bukhari) In a humble mud house, with no toys to hold, A girl walks in search of butterflies, her heart so bold. She touches pigeons, smells the rain's sweet scent, Opens her window, sits before the moon, content. As she sleeps, her mother feels her tears on the page, But she studies, never giving up, fueled by her inner rage. One day, she becomes a hopegiver, spreading light, Embracing the stars, hugging her mom, day and night. In moments of loneliness, she finds solace in their embrace, For love and family are her guiding grace. Through her journey, she shines like a star, A beacon of hope, no matter how near or far. ◆ 아닐라 부하리(Anila Bukhari) = 파키스탄에서 아동과 여성 인권 옹호자이자 헌신적인 평화 운동가이다. 16권의 책과 50권의 국제 선집을 집필한 작가인 그녀의 시는 국경을 초월하여 독자들을 사로잡았다. 작가로서의 여정은 16세의 어린 나이에 시작되었으며 그 이후로 그녀는 온라인 교육을 통해 1000명 이상의 고아 어린이를 교육하는 데 자신의 재능을 사용했다. 그녀의 말은 인류가 직면한 문제를 강조할 뿐만 아니라 해결책을 제시하여 많은 사람의 마음에 희망과 긍정에 불을 붙이고 있다. 그녀의 프로젝트 "Hopeful Hugs"를 통해 천 명이 넘는 노숙자 고아 어린이들에게 인형을 제공함으로써 얼굴에 미소를 가져다주었다. 그녀의 시는 콜롬비아의 유명한 미술관과 전 세계의 수많은 커뮤니티 센터의 벽을 장식했다. 모든 어린이가 무료 교육을 받을 수 있고 평화가 만연한 세상을 만드는 것을 사명으로 여기고 있다. 그녀는 소녀 교육을 촉진하고, 고아 난민을 지원하고, 희망과 긍정을 고취하기 위해 자신의 말을 사용하는 데 노력을 집중하고 있으며 그녀의 글은 유명한 카페의 벽을 장식하여 더 많은 청중에게 그녀의 재능을 보여주었다. Anila의 영향력은 국제무대에서 파키스탄을 자랑스럽게 대표하기 때문에 모국을 넘어 확장되고 있다. 지역 사회 봉사에 대한 그녀의 헌신으로 2023년 런던에서 권위 있는 국제 지역 사회 봉사상을 받았으며 2021년에는 이탈리아에서 국제 도서 평화상을 받았다. ☞ 강병철 작가 = 1993년 제주문인협회가 주최하는 소설부문 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며 문단에 데뷔했다. 2016년 『시문학』에서 시인으로 등단했다. 2012년 제주대에서 국제정치전공으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제주대학교 평화연구소 특별연구원, 인터넷 신문 ‘제주인뉴스’ 대표이사, (사)이어도연구회 연구실장 및 연구이사, 충남대 국방연구소 연구교수, 제주국제대 특임교수, 한국해양전략연구소 선임연구위원, 제주통일교육센터 사무처장 등을 역임하고 현재 한국평화협력연구원 연구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제33대 국제펜클럽한국본부 인권위원이며 국제펜투옥작가회 위원으로 활동했다. 제34대 국제펜클럽한국본부 인권위원으로 재선임됐다. 국제펜투옥작가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신장위구르 자치구역의 대표적인 위구르족 작가 중의 한 명인 누르무헴메트 야신(Nurmuhemmet Yasin)의 「야생 비둘기(WILD PIGEON)」를 번역 『펜 문학 겨울호』(2009)에 소개했다. 2022년에는 베트남 신문에 시 ‘나비의 꿈’이 소개됐다. ‘이어도문학회’ 회장을 역임하였으며 이어도를 소재로 한 단편소설 ‘이어도로 간 어머니’로 월간 ‘문학세계’에서 주관한 ‘제11회 문학세계 문학상’ 소설부문 대상을 받았다. 한국시문학문인회에서 주관하는 제19회 ‘푸른시학상’을 수상했다. 강병철 박사의 시와 단편소설은 베트남, 그리스, 중국 등 여러 나라 언어로 번역돼 소개되고 있다. 최근엔 중국의 계간 문학지 《국제시가번역(国际诗歌翻译)》에도 강 작가의 시 두편이 소개되었다.
"몸이 따뜻해." "난, 마음이!" ☞ 오동명은? = 서울 출생.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뒤 사진에 천착, 20년 가까이 광고회사인 제일기획을 거쳐 국민일보·중앙일보에서 사진기자 생활을 했다. 1998년 한국기자상과 99년 민주시민언론상 특별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저서로는 『사진으로 세상읽기』,『당신 기자 맞아?』, 『신문소 습격사건』, 『자전거에 텐트 싣고 규슈 한 바퀴』,『부모로 산다는 것』,『아빠는 언제나 네 편이야』,『울지 마라, 이것도 내 인생이다』와 소설 『바늘구멍 사진기』, 『설마 침팬지보다 못 찍을까』 역사소설 <불멸의 제국> 소설 <소원이 성취되는 정원> 소설 <장군어미귀향가>등을 냈다. 4년여 제주의 한 시골마을에서 자연과 인간의 만남을 주제로 카메라와 펜, 또는 붓을 들었다. 한라산학교에서 ‘옛날감성 흑백사진’을, 제주대 언론홍보학과에서 신문학 원론을 강의하기도 했다. 현재는 지리산 주변에 보금자리를 마련, 세상의 이야기를 글과 그림으로 풀어내고 있다.
◆ 귀매괘(歸妹卦) 귀매(歸妹)는 누이가 시집가는 것이다. 넓게는 여성이 시집가는 것을 가리킨다. 특히 누이동생이 언니를 따라 시집가 첩이 되는 것을 가리킨다. 옛날에 여자가 시집가는 것을 귀(歸)라 했다. 평생의 귀결점이 생겼다는 말이다. 귀결점(귀착점)은 안전한 집이 있다는 것이다. 자신이 비교적 좋아하는 일이 있다는 말이요, 행복하고 즐거운 마음이 있다는 말이다. 집에는 사랑이 필요하다. 부부에게는 애정이 필요하다. 애정은 일단 확정되면 한결같아야 한다. 행복하고 즐거운 나날을 보내야 한다. 백년해로하는 그날까지 그렇게 행복하여야 한다. 애인(연인)을 찾기 힘들면 어떻게 하여야 할까? 사람들은 말한다. “모든 성공한 사람 뒤에는 여인이 있다.” 그렇다면 이 말은 어떤가. “모든 성공한 여성 옆에는 남성이 있다.” 남성은 여성을 벗어나지 못한다는 말이 아니다. 그런데 남성이 사랑하는 여성은 남성의 삶에 커다란 역할을 한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그렇다고 여성도 자기중심적일 필요는 없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버릴 수 있기에 그렇다. 관심을 가지는 남성을 잃어버릴 수 있기에 그렇다. 아름다운 삶을 유감으로 남을 필요는 없지 않는가. 마찬가지로 여성은 남성을 벗어나지 못한다는 말도 아니다. 여성이 사랑하는 남성은 여성의 삶에 주도적인 역할을 한다는 것도 부정할 수 없다. 그렇다고 남성도 자기중심적일 필요는 없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버릴 수 있기에 그렇다. 관심을 가지는 남성을 잃어버릴 수 있기에 그렇다. 아름다운 삶을 유감으로 남겨서는 안 된다. 누가 누구를 떠나든 살아갈 수 있다. 그런데 누가 누구와 함께 삶을 살아간다면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렇기에 상대를 소중하게 여겨야 한다. 서로 의지하고 서로 관심을 가지고 사랑하며 서로 신뢰하면서 한결같이 더불어 생활하면 완미하지 않겠는가. 『주역』은 말한다. “가면 흉하니, 이로울 것이 없다.” 무슨 말인가? 혼사를 치르면서 행위가 부정하면 앞쪽에 위험이 닥칠 수 있으니 좋은 점이 없다는 뜻이다. 혼인은 인생대사다. 혼인이 좋고 나쁨은 사람의 성공할 수 있느냐 없느냐를 좌우할 뿐 아니라 일생의 운명에 영향을 미친다. 심지어 한 세대의 성장과 건강, 가정의 원만과 행복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혼인의 좋고 나쁨은 결국 두 사람의 감정에 귀결된다. 감정적인 일은 일방이 준다고 바로 결과가 나는 것이 아니다. 감정 문제에 있어 적합한 말이 하나 있다 : 주동자와 피동자 중 상대적으로 피동자가 크다. 우리는 상대방에게 너무나 큰 희망을 가져서는 안 된다. 상대가 선택한 생활을 존중해 줘야 한다. 무슨 영원을 바라지 말자. 영원한 것이라고는 일월성신밖에 없다. 보잘것없는 인간이 무슨 영원을 얘기한다는 말인가. 일찍이 깊은 사랑을 줬던 유일한 사람이라 여기면 충분하다. 자기에게 잘해주는 상대가 있으면 물론 좋다. 그것보다는 역시 정신적인 교류를 더 중시하여야 한다. 비슷한 수준의 정신을 가지지 않은 두 사람이 함께 생활하면서 느끼는 고통은 사람을 견딜 수 없게 만든다. 우리는 성취욕(일에 대한 열정)으로 상대방을 관찰할 수 있다. 성취욕은 상대방이 생활에 대한 성실함과 발전적인 태도를 반영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업을 생활의 전부로 여긴다면 그 사업도 본래의 의미를 잃게 된다. 가장 좋은 선택은 사업과 가정을 함께 돌아보는 상대다. 그런 남성이 진짜 자신의 남성이다. 진정으로 능력을 갖춘 남성이다. 그런 여성이야말로 진정으로 삶이란 무엇인지를 아는 여성이다. 인생의 가장 큰 실패는 혼인의 실패다. 실패한 혼인은 실패한 인생을 야기할 수 있다. 불행한 혼인은 왕왕 진취하려는 의지와 삶의 믿음을 잃게 만든다. 심지어 자포자기하다 잘못된 길을 가게 만들기도 한다. 성공한 자의 배후에는 행복한 가정과 원만한 혼인이 있다. 그러나 주의하여야 한다. 애정의 행복은 서로 믿고 서로 이해하며 한결같이 함께 하려는 마음의 기초 위에 세워진다. 애정은 한결같아야 한다. 사람은 일생동안 추구하는 바가 많고도 많다. 고관대작이 되어 권력을 누리려 하는 사람도 있고 억만금을 벌어 나라와 대적할 만한 부자가 되려는 사람도 있다. 어촌이나 산림에 은거하면서 한가하게 떠도는 구름과 들에서 자유롭게 노니는 학처럼 아무런 속박 없이 자유자재로 다니기를 바라는 사람도 있다. 아무런 구속도 없이 자유롭게 검을 들고 천하를 돌아다니려는 사람도 있다. 다양한 추구는 지지하는 이유를 뭉텅이로 찾아낼 수 있다. 그러나 각양각색의 추구는 모두 경화수월(鏡花水月)과 같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서서히 퇴색돼 버린다. 오직 애정에 대한 추구만이 진실 되고 영원하다. 정(情) 한 글자로 인생을 살아가는데 애정이야 말로 인류가 영원히 구가하고 찬송하는 화제다. “십년을 수양해야 같은 배로 강을 건널 수 있고 백년을 수행해야 함께 베개 배고 잠을 잘 수 있다.”1) 애정이 오는 것도 힘들지만 서로 의지하고 살아가는 것은 더 어렵다. 오랜 세월 동안 애정의 격정은 범용하며 사소하고 잡다한 생활을 하면서 없어질 가능성이 많다. 애정의 성결함은 어염시수(魚鹽柴水)의 냄새와 잡것에 물들 수도 있다. 평범하면서도 자질구레한 일상생활 속에서 애정의 달콤함을 유지시키려면 충정이 필요하다. 한결같이 애정을 대하는 태도가 반드시 필요하다. 1) 원래는 “백년을 수양해야 같은 배로 강을 건널 수 있고, 천년을 수양해야 함께 베개 배고 잠을 같이 잘 수 있다.”(百年修來同船渡,千年修來共枕眠)(『증광현문(增廣賢文)』) ☞이권홍은? =제주 출생. 한양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나와 대만 국립정치대학교 중문학과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국현대문학 전공으로 『선총원(沈從文) 소설연구』와 『자연의 아들(선총원 자서전)』,『한자풀이』,『제주관광 중국어회화』 등 다수의 저서·논문을 냈다. 현재 제주국제대학교 중국어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나나차(Nanatea) - 사피예 칸(Safiye CAN) 우리는 나나차를 둘이나 여럿이 함께 마신 적이 없지 우리는 충분히 춤을 추지 못했고 우리는 함께 자전거를 타러 간 적이 없어. 네가 말할 때 코를 잡으면 어떤 소리를 내는지 알려고 코를 꼬집은 적도 없었지 우리는 거리에서 서로 키스를 충분히 하지도 않았지! 하지만 언제 충분히 키스할까? 서로 사랑할 때? 작년부터 담배를 안 피웠어. 나는 수년간 채식을 해왔고 그리고 달걀도 먹지 않았어. 나는 너 없이 전염병에서 살아남았어. 치명적인 자연재해와 그리고 인종차별 테러로부터 난 너 없이도 살아남았어. 그런데도 제정신을 유지했지. 여름에는 손톱을 밝은 빨간색으로 칠하지 가을에는 청록색. 사람들에게는 많은 것들이 그대로 남아 있어. 나는 아직도 큰 소리로 웃는 것을 좋아해. 나는 사랑이 넘쳐 그 안에 생명을 담고 있는 모든 것에 대해서 그 안에는 생명이 없는 것에는 나는 사랑을 뿌리고 싶어 내가 밟는 곳마다 내가 절대 가지 않을 곳에도 난 온 세상을 내 품에 안을 거야 그리고 항상 간직하고 싶어 해를 입지 않는 삶을. 이 중 아무것도 성공하지 못하지! 우리는 나나차를 함께 마신 적이 없어 그리고 난 알아 지금은 절대 화해하지 못할 거야. Nanatea (By Safiye CAN) We never drank Nanatea together and on the whole we didn’t dance enough. We never went cycling together on the whole, I didn’t pinch your nose enough to hear what you sounded like when you talked. We didn’t kiss each other enough on the streets. But when is kissing ever enough when you love each other? I haven’t smoked since last year I’ve been vegetarian for many years and don’t eat eggs. I have survived a pandemic without you catastrophic natural disasters and racist terror attacks I have survived you without you and nevertheless have stayed sane. In the summer, I paint my nails merry-red in autumn blue-black. Many things stay the same with people I still love to laugh loudly. I overflow with love for everything that carries life inside it that carries no life inside it. And I want to sow love wherever I tread wherever I’ll never go. I’d take the whole world in my arms and always want to keep life from harm. Next to nothing of this succeeds. We never drank Nanatea together and I know we’ll never make it up now. (Translation from the German original into English by Martin Kratz, United Kingdom) ◆ 사피예 칸(Safiye CAN) = 독일 오펜바흐에서 태어났으며 프랑크푸르트 괴테 대학에서 철학, 법률 및 심리 분석학을 전공했다. 사피예 칸은 2002년 이후 독일어로 쓴 시와 이야기로 무대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다수의 잡지, 신문 및 애나톨로지에 등장한 후 2014년 첫 번째 시집 "Rose und Nachtigall"을 출판했다. 시집은 출간 첫 주에 둘째 판을 발행하며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그녀는 "Diese Haltestelle hab ich mir gemacht"(내가 이 정류장을 만들었다)와 "Kinder der verlorenen Gesellschaft"(잃어버린 사회의 어린이)라는 두 번째와 세 번째 시집을 출판하였으며, 각각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독일, 스위스, 오스트리아 및 미국에서 문학 콘서트로 잘 알려져 있으며, 그녀는 2004년부터 어린이를 위한 시 작업장을 개최하고 2014년부터는 "Dichter-Club"라는 이름으로 진행하고 있다. 독일 PEN 센터, 독일 작가 조합, 독일 번역가 협회 회원인 Safiye Can은 미국 Northern Arizona 대학 및 독일의 여러 대학에서 시에 대해 강의를 하였으며 그녀의 시는 영어, 불가리아어, 체코어, 프랑스어, 아랍어, 카바로어, 중국어 등 많은 언어로 번역되었다. 2022년 중국에서 발행된 'Rendition of International Poetry Quarterly Magazine' 106호에 수록된 그녀의 시는 해당 문예지 포털에도 게시되었다. ☞ 강병철 작가 = 1993년 제주문인협회가 주최하는 소설부문 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며 문단에 데뷔했다. 2016년 『시문학』에서 시인으로 등단했다. 2012년 제주대에서 국제정치전공으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제주대학교 평화연구소 특별연구원, 인터넷 신문 ‘제주인뉴스’ 대표이사, (사)이어도연구회 연구실장 및 연구이사, 충남대 국방연구소 연구교수, 제주국제대 특임교수, 한국해양전략연구소 선임연구위원, 제주통일교육센터 사무처장 등을 역임하고 현재 한국평화협력연구원 연구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제33대 국제펜클럽한국본부 인권위원이며 국제펜투옥작가회 위원으로 활동했다. 제34대 국제펜클럽한국본부 인권위원으로 재선임됐다. 국제펜투옥작가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신장위구르 자치구역의 대표적인 위구르족 작가 중의 한 명인 누르무헴메트 야신(Nurmuhemmet Yasin)의 「야생 비둘기(WILD PIGEON)」를 번역 『펜 문학 겨울호』(2009)에 소개했다. 2022년에는 베트남 신문에 시 ‘나비의 꿈’이 소개됐다. ‘이어도문학회’ 회장을 역임하였으며 이어도를 소재로 한 단편소설 ‘이어도로 간 어머니’로 월간 ‘문학세계’에서 주관한 ‘제11회 문학세계 문학상’ 소설부문 대상을 받았다. 한국시문학문인회에서 주관하는 제19회 ‘푸른시학상’을 수상했다. 강병철 박사의 시와 단편소설은 베트남, 그리스, 중국 등 여러 나라 언어로 번역돼 소개되고 있다. 최근엔 중국의 계간 문학지 《국제시가번역(国际诗歌翻译)》에도 강 작가의 시 두편이 소개되었다.
"우리가 하나되면 회색이 되나?" "뭐? 쥐가 된다고?" ☞ 오동명은? = 서울 출생.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뒤 사진에 천착, 20년 가까이 광고회사인 제일기획을 거쳐 국민일보·중앙일보에서 사진기자 생활을 했다. 1998년 한국기자상과 99년 민주시민언론상 특별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저서로는 『사진으로 세상읽기』,『당신 기자 맞아?』, 『신문소 습격사건』, 『자전거에 텐트 싣고 규슈 한 바퀴』,『부모로 산다는 것』,『아빠는 언제나 네 편이야』,『울지 마라, 이것도 내 인생이다』와 소설 『바늘구멍 사진기』, 『설마 침팬지보다 못 찍을까』 역사소설 <불멸의 제국> 소설 <소원이 성취되는 정원> 소설 <장군어미귀향가>등을 냈다. 4년여 제주의 한 시골마을에서 자연과 인간의 만남을 주제로 카메라와 펜, 또는 붓을 들었다. 한라산학교에서 ‘옛날감성 흑백사진’을, 제주대 언론홍보학과에서 신문학 원론을 강의하기도 했다. 현재는 지리산 주변에 보금자리를 마련, 세상의 이야기를 글과 그림으로 풀어내고 있다.
제주도에서는 매일 서귀포에서 제주시까지 각 지역에서 오일장, 매일장이 열린다. 시장에서는 온갖 상품들이 즐비하고, 이를 구경하고 사려는 사람들로 항상 붐비고 있다. 제주지방법원에서도 매주 화요일 시장이 열린다. 부동산 경매시장이다. 이 경매시장에도 소유권등기를 할 수 있는 과수원, 임야, 대지 등의 토지와 주택, 상가, 아파트, 빌라 등의 건물 뿐만 아니라 자동차, 선박 등 다양한 물건들이 쏟아지고 있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부동산 경매 시장이라고 하면 왜인지 전문 지식을 갖추어야 될 것 같고, 많은 돈이 있어야 될 것 같고, 온갖 문제가 많은 물건들이 경매 시장으로 나온다는 생각에 이에 대해서 쉽게 접근하지 못하는 것이 실상인 것 같다. 그런데 물건을 꼭 사지 않더라도 자꾸 옆에서 구경하다 보면, 부동산 경매 시장만큼 재밌는 곳도 없다는 생각이 든다. 우선 부동산 경매 시장은 작은 사회 그 자체다. 금리가 오르다 보면, 담보 대출금을 갚지 못하여 경매 시장에 부동산 물건들이 쏟아져 나오게 되고, 담보 대출 실행도 여의치 않아 부동산을 낙찰 받기도 힘들게 되는데, 이에 반해 돈이 준비된 사람들은 그 만큼 싼 가격에 좋은 물건을 살 수 있게 된다. 이는 요즘 부동산 현황과 같다. 또한 물건마다 사연이 없는 물건이 없다. 부동산 경매시장에서는 물건의 등기 뿐만 아니라, 현황조사서, 감정서, 전입신고서 등 물건에 관련된 자료들이 제공되는데, 이를 통해서 은행 대출을 갚지 못해서인지, 공사대금을 지급하지 못해서인지, 형제들 간의 싸움이 나서인지 등 물건이 경매 시장에 나온 이유를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그리고 어떤 이들을 보면, 유치권이 유효한 건물을 낙찰 받게 되어 낙찰 대금과 더불어 유치권으로 담보되는 공사 대금까지 떠안는 경우도 있고, 건물 안에 살던 임차인의 보증금을 책임져야 되는 경우도 있어 부동산 경매 시장이 위험천만한 곳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에 반해 굳이 이러한 위험을 감수하지 않더라도, 시세보다 훨씬 싼 가격으로 내 집을 마련하거나 농사를 지을 농지를 마련하는 사람들도 많이 볼 수 있다. 위와 같이 부동산 경매 시장에서는 세상의 온갖 법적, 경제적 갈등으로 인하여 시장에 쏟아져 나오는 물건들과 이를 낙찰받고 싶어 하는 수많은 사람들 간의 치열한 눈치싸움 등 부동산 경매 시장만의 묘한 매력이 있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부동산경매시장을 찾아가 보고 알아가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발품과 눈품을 팔다보면 어느새 요령도 생기고, 세상사 이치도 깨달을 수 있을 터. 결국 경험이 축적돼야 좋은 물건을 고를 수 있는 '횡재'의 기회도 다가온다. ☞홍광우는? = 대한변호사협회 부동산 및 형사전문변호사다. 현재 서귀포경찰서에서 경미범죄심사위원회 시민위원, 선도심사위원회 전문위원, 수사민원 상담센터 법률상담 변호사 업무를 맡고 있다. 또 서귀포시교육청 지방공무원인사위원회 위원, 서귀포지역 건축사회 법률자문위원회 위원, 서귀포시 노인복지관 고충처리 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논어·자로(子路)』의 기록이다. “자하가 거보(莒父 : 마을 이름)의 읍재가 되어 정치에 대해 물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서두르지 말고, 작은 이익을 추구하지 마라. 서두르면 달성할 수 없고, 작은 이익을 추구하면 큰일을 이룰 수 없다.’” 자하가 정치하면서 어떻게 하여야 잘 할 수 있냐고 묻자 공자가 한 대답이다. 거창한 것 하나 없다. 간명하다. ‘서두르지 마라’, ‘작은 이익을 추구하지 마라.’ 어떤 일이든 빨리 끝내는 것은 그리 나쁜 일은 아니지만, 일을 빨리 처리하는 것만 능사가 돼서는 안 된다. 반드시 품질을 보증할 수 있고 좋은 효과를 거둘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 단순하게 빠름만을 추구하면 허술하게 된다. 조잡하게 된다. 심지어 오류가 생기고 손실을 입게 되기도 한다. 그러면 일을 빨리 처리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오히려 까다롭게 된다. 청나라 때 마시방(馬時芳)의 『박려자(朴麗子)』에 기록된 이야기이다 : 한 농부가 날이 곧 저물 때 귤 바구니를 지고 성으로 가고 있었다. 성문이 닫히기 전에 도착할 수 없을까봐 조급해졌다. 그때 앞에서 어떤 사람이 걸어오고 있었다. 물었다. “성문이 닫히기 전에 성에 들어갈 수 있겠나요?” 그 사람이 조급해하는 농부를 유심히 보다가 답했다. “당신이 천천히 걸어서 가기만 하면 도착할 수 있을 거요.” 농부는 그 사람이 고의로 자신을 놀리고 있다고 생각해 화를 내면서 말했다. “그래, 천천히 걸으면 성안으로 들어갈 수 있고 빨리 걸으면 성안으로 들어가지 못한다는 말이요!” 농부는 속으로 중얼거리면서 걸음을 재촉해 걷다가 실수로 넘어졌다. 바구니에 담긴 귤이 몽땅 땅에 떨어져 흩어졌다. 농부는 급히 귤을 주어다 바구니에 담았다. 한참동안 귤을 주어 바구니에 담다보니 날은 저물어 버렸다. 성문이 닫혔다. 농부는 그날 성안으로 들어가지 못했다. 『주역』은 말한다. “산 위에 나무가 있는 것이 점(漸)이니, 군자가 그것을 본받아 덕에 머물며 풍속을 선하게 했다.” 무슨 말인가? 점괘의 상징은 산에 나무가 있는 것이다. 군자는 그것을 근거로 삼아 고상함과 도덕을 지키면서 사회 풍조를 개선한다는 말이다. 자아를 제고시킬 생각이라면 사업에 성공하는 것 이외에 반드시 자아의 도덕 수양을 제고하여야 한다. 고상한 인품과 덕성이 있기만 하면 사업은 신속하게 발전해 나가게 된다. 덕이 두터우면 만물을 실어주기 때문이다. 반대로, 도덕 성품이 없는 사람은 사업에 성공을 거두기 어렵다. 『주역』은 말한다. “하늘의 운행이 굳건하니, 군자가 그것을 본받아 스스로 힘쓰고 쉬지 않는다.” “땅의 형세가 곤(坤)이니, 군자가 그것을 본받아 후한 덕으로 만물을 실어준다.”1) 무슨 말인가? 대지는 깊고 두텁기 때문에 만물을 실을 수 있다. 그 흉금과 품성은 끝이 없이 무한하다. 깊고 두터운 혜택은 사람을 기르고 만물을 이롭게 한다. 대체로 위대한 인물은 남다른 제세의 재능을 갖추어야 할 뿐 아니라 고상한 품성, 덕성을 가져야 하고 대중에게 행복하게 만들려는 헌신적인 정신을 갖추어야 한다. 재능도 있고 덕도 있어야 한다. 덕과 재능을 겸비하여야 한다. “곤(坤)의 두터움이 물건을 실음은 덕이 끝이 없음에 합한다.”2) 대지는 넓고 깊고 두터워 만물을 싣는다. 그러기에 좋은 품행으로 만물을 행복하게 하고 포용하지 않는 것이 없다. 그것을 ‘군자가 본받아 후한 덕으로 만물을 실어줘야 한다.’ 이 말은 앞 구절과 연관관계를 가지고 있다. 넓고 깊고 두터운 대지를 가지고 사람의 흉금, 기백을 비유하고 있다. 무슨 말인가? 군자는 마땅히 대지와 같이 넓고 깊고 두터운 좋은 품행을 가지고 만물을 실어야 한다는 말이다. 만물을 포용하고 만물을 키우며 만물을 행복하게 하여야 한다. 오늘 날 우리는 자아를 향상시키려 하고 사업을 성공시키려 한다. 그렇게 하려면 순서에 따라 점차적으로 진행하여야 한다. 강인한 열정 이외에 동양사상에서 기인한 덕을 배워야 한다. ‘덕’, 시대에 뒤떨어진 말이라 생각하시는가? 인간의 기본은 덕성에 있다는 옛 성현의 말도 되새겨야 할 때이다. ***** 漸卦 ䷴ : 풍산점(風山漸) 손(巽: ☴)상 간(艮: ☶)하 점(漸)은 여자가 시집을 가는 것이 길하니, 이로움이 곧기 때문이다./ 점(漸)은 여자가 시집을 가는 것이 길하니, 곧음이 이롭다.(漸,女歸吉,利貞.) 「상전」에서 말하였다 : 산 위에 나무가 있는 것이 점(漸)이니, 군자가 그것을 본받아 현명한 덕에 머물러 풍속을 선하게 했다./ 「상전」에서 말하였다. 산 위에 나무가 있는 것이 점(漸)이니, 군자가 그것을 본받아 덕에 머물며 풍속을 선하게 했다.(象曰,山上有木漸,君子以,居賢德,善俗.) [傳] 점괘는 「서괘전」에서 “간(艮)은 그침이며 만물은 끝내 그칠 수가 없기 때문에 점괘로 받았으니, ‘점(漸)’은 나아감이다”라고 하였다. 그치면 반드시 나아가게 되니 굽히고 펴며 융성하고 쇠하는 이치이다. 그침이 낳는 것 또한 나아감이며 반대되는 것 또한 나아감이니, 점괘가 간괘(艮卦䷳) 다음이 되는 이유이다. 나아감을 순서에 따르는 것이 점(漸)인데, 오늘날의 사람들은 천천히 나아감을 점(漸)이라고 여기니, 질서에 맞춰 나아가고 순서를 뛰어넘지 않아서 느리게 되었다. 괘는 손괘(巽卦☴)가 위에 있고 간괘(艮卦☶)가 밑에 있어서, 산 위에 나무가 있다. 나무가 높으나 산을 따르니 높음에 따름이 있는 것이고, 높음에 따름이 있는 것이 곧 나아감에 순서가 있는 것이다. 점(漸)이 되었다. 1) 天行健,君子以,自彊不息. ; 地勢坤,君子以,厚德,載物. 2) 坤厚載物,德合无疆. ☞이권홍은? =제주 출생. 한양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나와 대만 국립정치대학교 중문학과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국현대문학 전공으로 『선총원(沈從文) 소설연구』와 『자연의 아들(선총원 자서전)』,『한자풀이』,『제주관광 중국어회화』 등 다수의 저서·논문을 냈다. 현재 제주국제대학교 중국어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 돌을 역이용하는 사람들 필자는 일찍이 제주 전통문화의 키워드를 돌, 바람, 여자, 말, 가뭄을 상징으로 삼아서 ‘석다(石多), 풍다(風多), 여다(女多), 마다(馬多), 한다(旱多)’의 섬이라고 주장한 적이 있다. 이 다섯 개의 상징적 개념으로 제주를 보게 되면 생산 문화적인 의미가 쉽게 다가온다는 것이다. 그 중 석다(石多)는 현대 지질학적인 개념으로 생각지 않더라도 전통사회에 수많은 기록에서 보듯이 제주가 돌이 많다는 이유를 들어 ‘척박(瘠薄)’하다 라고 했다. “척박(瘠薄):땅이 가물어서 기름지지 못함”을 말한다. 화산섬이기 때문에 검은 색 화산회토가 대부분이고 “이 땅(제주)에는 바위와 돌이 널려 있어, 흙이 덮인 것이 몇 치 뿐이다.” “토질이 푸석푸석하고 메말라 밭을 개간 하려면 반드시 소나 말을 몰고 와서 밭을 밟아주어야 한다(밭ᄇᆞᆯ리기).” 그래서 사람들은 적어도 계속 농사를 지으려면 거름을 얻기 위해서 소나 말무리를 밭담 안에 몰아넣어 며칠을 가두어서 그들의 분뇨를 거름이 되게끔 밭 여기저기에 남기도록 했다. 이를 ‘바령’이라고 한다. 그렇게 바령한 밭은 기름지고 비옥하여 농사가 잘 되는 것이다. 삶은 생각보다 모질고 사람은 의외로 지혜롭다. 돌로 된 척박한 땅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야속한 땅이었지만 최선을 다해 식량을 구하고, 그마저도 여의치 않으면 여성들은 바다로 나가 ‘ᄌᆞᆷ네(潛女)’가 되었고, 남자들은 배를 타거나 목도일을 해야만 했고 수자리를 서거나 진상의 곁꾼으로 동원됐다. 18세기초 이형상 목사 때에 여성들이 많은 힘든 일을 도맡아 했다는 기록이 있다. 여염집(서민가) 여성들은 용천(湧泉)에서 물을 길어오는 일, 곡식을 베는 일, 땔나무를 마련하는 일, 나무통으로 물을 나를 때에도 등짐을 지지 않는다. 제주에서는 물건을 나를 때에도 머리에 이고 다니지 않는데 돌부리에 걸려 넘어져 다치기 때문에 등짐을 지고 땅을 보면서 걸어야 한다. 18세기 초 당시 제주 여인들의 복장들도 반나체나 다름없었다. 여인들은 삼으로 엮은 줄을 허리에 돌려 두르고 몇 자(尺)의 굵은 베를 바늘로 꿰매고는 그 삼줄 앞면에 매달아 오로지 음부(陰部) 만을 가려서 옷과 치마를 벗고 몸뚱이와 볼기짝을 드러내 다님으로 보기가 매우 참담했다. 유교 원리주의자였던 이형상 목사의 눈에 비친 제주 여성의 일상에서의 그 모습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고, 여인들에게 수치스러움을 알게 하여 급기야 영을 내려 꼴 사나운 그런 패션을 금지시켰다. 이형상은 「제주 풍속(土風)」 이라는 시에서 제주 풍속의 전모를 말하고 있다. 섬은 이름난 곳이어서 땅은 더욱 그윽한데 문재(文才)는 모자라도 무재(武才)는 뛰어나다네 휘파람으로 소를 몰아 밭을 모두 밟아줘야 하고 절구 찧을 때도 사투리로 함께 노래하네 여인이 물 긷고 물질하지만 남자는 반대로 한가하다네 백성들 가난하여도 사치에 들떠 있어 기이한 풍속이로세 사계절 가죽옷 입고 있어 풍정(風情)이 야박한데도 누가 헤진 옷에 잠방이 입은 사람 근심을 알아주랴. 많으면 많은 것을 이용하게 되므로 결국 그것이 부족하기에 이른다. 인구의 증가는 생산도 늘게 하지만 소비도 따라서 늘게 한다. 생산수단의 진보는 문명의 길을 따라서 온다. 농업중심의 조선시대 사회에서 중요한 것은 전답의 상태에 집중되었는데 농업 생산력의 증가와 농지의 안정적인 확보가 관건이었다. 이는 안정적인 수취제도에 목적이 있었다. ◇ 국가의 운영자금 전세(田稅) 이형상 목사 재임 시절의 밭의 등급은 하중(下中)이었다. 그 밭은 흙이 검고 부풀어 오른다. 그래서 곡식 씨는 마땅히 기장, 피, 산도, 차조, 콩, 보리, 메밀, 사탕수수 등을 심어야 하는데 특히 사탕수수는 맛이 달고 무성하게 자라는 것으로 보아 섬의 토질에 잘 맞았다. 논은 매우 적어서 대정현에 약간이 논이 있으며, 정의현에는 매우 적고, 제주목에는 더 적다. 1702년(숙종 28)의 제주의 전답은 3,357목(結), 33짐(負), 9뭇(束)이고, 정의현 전답은 140목, 32짐, 5뭇이며, 대정현 전답은 149목 91짐 4뭇이었다. 삼(參)은 잘 자라지 않았고, 면(綿)은 매우 귀해서 대정현에 목화(木花, 멘네)를 심은 자가 있었는데 솜털이 성글어서 옷 만드는데 좋지 않았다. 또 산림에 널린 것이 뽕나무이지만, 섬사람들이 누에를 치고 길쌈하는 방법을 알지 못했으므로 이형상이 삼읍에 재배법을 알아듣도록 가르쳤다. 그렇다면 전답과 관련해서 공납을 대신하여 소위 새로운 조세법, 즉 대동법에 대해서 알아보자. 조선의 조세체계는 근본적으로 조용조(租庸調) 체계였다. 즉 토지가 있으면 조(租)가 있어 전답에 부과하여 곡물로 징수하는데 이를 전세라고 한다. 몸이 있으면 용(庸)이 있어 사람에게 부과하여 요역을 징발하고, 호(戶)가 있으면 조(調)가 있어 집에 공물을 징수하였다. 특히 전세는 국가를 경영하는데 필요한 경비를 충당하기 위한 근본이 되는 세금이기 때문에 상세(常稅)라고 했다. 즉 전세는 나라의 경상비인 녹봉과 군사비 등의 지출을 위한 세금이었기 때문에 국초부터 그 과세 체계를 법으로 제정하여 철저히 관리했다. 전세가 무엇보다도 쓰임새가 중요하기 때문에 조세 규모도 컸고, 토지면적 조사에 그만큼 민감하게 반응했다. 조선의 토지제도는 삼국시대부터 내려온 결부제(結負制)인데 토지파악과 조세 부과의 기준이 되어 결(結:목) 부(負:짐), 속(束:뭇), 파(把:줌)의 단위로 측정했다. 전세 부과 원칙은 9등연분법(九等年分法)과 전분6등법(田分六等法)을 시대에 따라 채택하기도 했다. 임진왜란 이전에는 전국적으로 170 만결에 달하던 토지 면적이 왜란 후에는 3분의 1로 줄어서 54만 결 밖에 안 되었다. 당장 조세 수입에 비상이 걸렸다. 이에 토지의 개간을 장려하고 양전(量田)을 실시한 결과 숙종(1674~1720) 때에는 토지 면적이 140만 결로 증대하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가의 조세 수입은 그에 상응하여 늘어나지 못했다. 그것은 왕자·옹주 등에게 준 궁방전(宮房田)이나 관청·군영 소속의 둔전(屯田:주둔한 군사들에게 군량을 지급키 위해 마련한 밭)과 같은 면세지(免稅地)가 증가했기 때문이었다. 또 중앙의 세도가인 권신(權臣)이나 지방의 토호들의 토지 점유가 늘어난 것도 같은 이유가 되었다. 이와 같은 문제로 인해 조세의 감소에 대한 대비책이 긴급히 필요하게 되었다. 조세 수익의 부족은 국가 재정의 위기가 되었으므로 이미 임진왜란 이전부터 일부에서 주장해오던 공납(貢納)을 미곡(쌀과 곡식)으로 바치게 하는 수미법(收米法) 이 다시 논의 되면서 급기야 시행되기에 이른다. 1608년 광해군의 즉위년에 영의정 오리(梧里) 이원익(李元翼, 1547∼1634)의 주장에 따라서 먼저 경기도에서 시행되었고, 인조 원년(1623)에는 강원도에 실시되었다. 그리고 효종(1649~1659) 때인 효종 2년(1651) 1월에 김육(金堉, 1580~1658)은 영의정에 오를 수 있었고, 이에 충청도와 전라도에 대동법을 실시하였고, 더욱이 김육은 효종의 총애가 커지면서 김육의 손녀(차남 김우명의 딸)를 세자빈으로 세울 수 있었고, 그에 따라 외척으로서 막강한 권력을 쥘 수 있었다. 대동법은 김육이 사망한 한참 뒤인 1708년(숙종 34)에 드디어 전국적으로 시행될 수 있었다. 대동법이란 대동미(大同米)라는 명칭 아래 밭(田) 1결에 대하여 미(米) 12말(斗) 씩 징수하게 되었는데 이를 혹은 포(大同布)나 돈(大同錢)으로 납부할 수 있게도 하였고 이를 관할하는 관청이라고 하여 선혜청(宣惠廳)을 두었다. 이 대동법이 시행된 후에도 필요에 따라 농민들로부터 공물을 받아들이기는 하였으나, 원칙적으로 공납제도는 폐지되었다. 『만기요람(萬機要覽)』에 대동법이란 ‘ᄂᆞᆷ의 대동’ 이라는 말이 있듯이 원래 경기 삼남에는 1결에 쌀 12말을, 양전(量田)이 되지 않은 읍에는 4말을 더하며, 영동(대관령 동쪽)·영서(대관령 서쪽)에는 2말을 더하고, 그리고 해서(황해도)에는 상정법(詳定法)을 시행하여 15말을 거두니, 이를 통틀어 ‘대동(大同)’이라 하였다. 이형상의 저서인 『남환박물(南宦博物)』 「부역(賦役)」에 대한 기록을 보면, 당시 제주 세법의 윤곽을 알 수 있다. “세법이 바르지 않다. 당초 경계를 지을 때 이미 측량하지 않았다. 곧 올해의 세금도 적게 내었다. 묵힌 밭과 재해를 입은 것을 제외하고, 결(結)에 따라 거두어 들인다. 전세(田稅)는 매 짐(負)마다 쌀과 콩은 1되 5홉이고, 산미(山米)와 전미(田米)는 곧 7홉 5작이다. 이른바 대동(大同)이라고 하는 것은 위아래 할 것 없이 남정(男丁)들을 뽑아 한 사람에게 전미 5되를 매긴다. 이밖에 결역(結役)은 없다. 표고버석과 백랍(白蠟)은 군병(軍兵)에게서 받고, 미역과 전복, 물고기, 게 등은 포한(鮑漢:포작인)에게서 받는다. 무릇 여러 역역(力役:요역;노동력)과 땔나무, ᄎᆞᆯ(꼴), 꿩(산촌의 남자에게), 닭(해안의 남자에게)들의 물품은 모두 백성들에게 부담 지운다.” ◇ 제주도 보물 그림첩 『탐라순력도(耽羅巡歷圖)』 『탐라순력도』는 지금으로부터 320년 전의 제주의 군사, 관방, 지리, 풍속 등을 알 수 있는 매우 귀중한 기록화다. 이 『탐라순력도』는 당시 제주 목사였던 병와(甁窩) 이형상(李衡祥, 1653~1733)이 1702년(숙종 28) 3월 제주목사로 도임하여, 같은 해 10월 29일부터 11월 20일까지 22일 동안 제주 전역을 순력하였는데, 이 때 제주의 화공(畵工) 김남길(金南吉)을 시켜 기록화로 그 과정을 상세하게 남겼다. <탐라순력도>는 제주도 지도 1면, 순력 장면 40면, 서문 2면 등으로 1703년 8월에 완성되었다. 이 기록화는 320년 전 제주의 문화와 풍물, 관방을 이해하는데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도첩으로 시사, 강사, 사후, 시회, 조점, 점마, 전최, 배잔, 양로, 공마, 감귤봉진, 시취, 구마, 수렵, 방록, 풍악, 범주 등이 포함되어 있다. 이 도첩은 1979년 병와 이형상 저작들과 함께 일괄 보물 제625호로 지정되었으며, 제주시가 1998년 이형상의 후손으로부터 원본을 입수하여 현재 국립제주박물관에 위탁 소장하고 있다. 이 『탐라순력도』는 18세기 실경산수의 사실적인 단계를 새롭게 이해할 수 있는 그림첩이다. 『탐라순력도』는 기록화의 일종으로 우리나라에 이런 이름으로 전해오는 그림으로는 유일무이(唯一無二)하다. “순력(巡歷)이란, 매번 봄과 가을에 절제사가 직접 방어의 실태와 군민의 풍속을 살피는 것(每番春秋節制使親審防禦形正及軍民風俗謂之巡歷)”이라고 서문에서 말하고 있듯이 변방에 부임하는 수령이 제주도 방어체계인 3성(城) 9진(鎭)의 군기(軍器)와 군사들의 실태를 점검하는 그림으로, 제목, 순력 그림, 좌목 등 3단 구성으로 제작된 기록화이자 실용화라고 할 수 있다. 이런 3단 구성의 이전 사례로는 여말선초(麗末鮮初)의 계회도(契會圖) 양식을 계승하고 있으며, 다시 이 3단 구성 방식은 「제주도문자도」에 그대로 계승되고 있다. 『탐라순력도』 서문을 쓴 선비가 오노인(吳老) 필(筆)이라고 했으나 1703년 5월 19일 오시복(吳始復)의 간찰에 “말씀한 서(序)를 쓰려고 하니 요즈음 기분 나쁜 생각이 들어 붓을 잡을 틈이 없었는데 조금 기다리면 며칠 사이에 즉시 그에 부응하려합니다만, 인편으로 즉시 드리지 못하여 깊이 탄식하고 있습니다.”라는 편지글이 있으므로 오노인(吳老)이 감산 유배인 오시복이라고 알려지게 되었다. 순력 행사는 이형상 목사 이전에 이미 제주 목사 이원진(李元鎭, 1594~?), 제주안핵겸순무어사 이증(李增,1628~1686) 등이 정기적으로 군사를 점검하기 위해 순력을 다녔는데 변방 제주의 3성 9진 체계를 중심으로 군민(軍民)을 점검했었다. ◇ 최초로 몰골법으로 그린 돌담 『탐라순력도(耽羅巡歷圖)』 성을 지키려고 쌓은 돌담을 성담이라고 한다. 세 읍성과 아홉 진성이 이에 해당한다. 「관방도(關防圖)」에 나오는 성담들은 대개가 계화(界畫)로 그려졌다. 계화법이란 자를 이용하여 정밀하게 사물(성곽)의 윤곽선을 그리는 회화 기법으로 건물, 누각, 성벽 등을 그릴 때 주로 사용한다. 『탐라순력도(耽羅巡歷圖)』 에서는 계화법으로 그리는 곳이 「제주전최(濟州殿最)」 나 「감귤봉진(柑橘封進)」 등의 기와집이나 담장, 그리고 여러 진(鎭)에 소속된 봉수대나 연대의 돌담을 직선으로 그릴 때 사용하고 있다. 특히 「제주전최(濟州殿最)」의 성담은 직사각형 모양의 장대석 돌을 하나씩 엇갈리게 3단으로 쌓고 있으며, 목관아(濟州牧官衙) 사고석 담장에도 적용하고 있는데 담장에 쌓은 돌은 사각형의 현무암을 백회를 바른 후 조적(造積)하였다. 관청의 담장은 경계구분이 주된 목적일 것이며, 또 각 관청이 업무를 효율적으로 진행하기 위해서 시각적인 차단을 하여 관청의 고유 기능을 보호하도록 하는 역할이 있다. 그러나 『탐라순력도(耽羅巡歷圖)』에 나오는 3성 9진의 성담들은 모두 오히려 자유로운 곡선으로 선묘를 하고 있는데 그 3단의 돌담을 나타내는 선묘는 그냥 손으로 프리하게 그려서 성담을 두르고는 3개의 선으로 된 성담 바로 위에 성가퀴를 요철(凹凸) 모양으로 그리고 있다. 그러나 「귤림풍악(橘林風樂)」의 돌담은 사뭇 다르다. 과수원을 보호하기 위해 밖으로는 돌담을 둘렀으며 그 안에는 크게 자란 대나무가 바람을 막아주고 있다. 직선으로 높이 자란 대나무 사이로 방풍용 돌담을 쌓은 것을 알 수 있다. 이 과원 방풍용 돌담을 축성(築城)이라고 한다. 축성은 말 그대로 성처럼 쌓은 것이고, 그것의 목적은 오로지 바람을 보호하는 것이다. 축성은 겹담으로써 일종의 잣벡담과 같은 모양이면서 견고하게 쌓고 있다. 축성을 그린 기법으로는 몰골법을 적용하여 단번에 붓에 묻은 먹의 농도와 번지는 것만으로 물체를 표현하는 동양화 기법이다. 붓을 한 번에 눌러 단번에 형태를 나타낸다. 축성을 표현하려고 농도를 조절한 모습이 역력하다. 몰골법으로 돌담을 그린 최초의 그림이 「귤림풍악(橘林風樂)」 대나무 뒤에 숨어있다. 돌담 그림을 최초로 그린 화가는 김남길이다. 그가 제주의 화공인지 아니면 공재 윤두서의 제자인지는 알 수는 없지만 1703년 이형상의 명을 받아서 기록화를 그렸다.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참고문헌> 김왕직, 『한국건축용어사전』, 동녘, 2007. 오기수, 『대동법』, 보림, 2019. 이형상, 『남환박물』, 이상규, 오창명 역주, 푸른역사, 2009, 이형상, 『탐라록』, 이진영 역주, 제주특별자치도민속자연사박물관, 2020, 李基白, 『韓國史新論-新修版』, 一潮閣, 1990, 한국역사연구회, 『한국사강의』, 한ᄋᆞᆯ아카데미, 1991. ☞김유정은? = 최남단 제주 모슬포 출생이다. 제주대 미술교육과를 나와 부산대에서 예술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미술평론가(한국미술평론가협회), 제주문화연구소장으로 일하고 있다. 저서로는 『제주의 무신도(2000)』, 『아름다운 제주 석상 동자석(2003)』, 『제주의 무덤(2007)』, 『제주 풍토와 무덤』, 『제주의 돌문화(2012)』, 『제주의 산담(2015)』, 『제주 돌담(2015)』. 『제주도 해양문화읽기(2017)』, 『제주도 동자석 연구(2020)』, 『제주도 산담연구(2021)』, 『제주도 풍토와 문화(2022)』, 『제주 돌담의 구조와 형태·미학(2022)』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