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나이에 대학원을 가기 전 상처와 흔적을 테마로 한 대형그림이다. 이전에 소개한 대학졸업전에 출품한 작품의 연장선상에 있다. 대학원을 다니면서 작업 컨셉을 정리하기 전 중간 과도기의 작품이다. 결국 대학원 졸업시 작업논문인 ‘흔적에 관한 추상표현 연구’로 이어지게 된다. 여전히 미완의 컨셉으로 남아있다. 대학원을 다니면서 호구지책으로(지금도 그렇지만) 학원강사 생활을 하였는데 당시 학원 원장님이 배려와 격려 차원에서 감사하게도 이 작품을 매입해 주셨다. 감사할 일이다. 대학원 마칠 때까지 학원 한귀퉁이 한평남짓 작업공간을 할애해주신 그 따뜻한 마음에 감사를 잊지 않으려고 졸업 개인전 도록에도 감사의 글을 넣었었다. 조그마한 공간에서 졸업하기 위해 100호 10점을 작업했었으니 작업환경이라는 것은 공간이 크든 작든, 좋거나 나쁘거나의 문제가 아니라 어떠한 상황에서도 작가의 적응력과 의지의 문제라는 걸 알 수가 있다. 환경이 좋으면 나쁠 것은 없지만 작업에 큰 영향을 미치지는 않는다. 재료가 없으면 값싼 재료로 작품을 만들면 되고 주어진 공간의 크기만큼 그리면 되는 것이다. 풍족하지는 않지만 큰 결핍이 없는 상태도 감사할 일이다. 어쩌면 숨쉬고 있는 존재자체가 감사할 일이다. 더 어려운 환경에 처한 사람도 많기 때문이다. 정신도 사치를 부리면 욕심인 것이다. 그 시절 먹고사는 문제 때문에 번듯한 작업실도 없었고 시간적 여유도 나지 않았다. 작품의 완성도에 시간이 많이 걸리는 인물이나 산수풍경을 지긋이 앉아서 그릴 수 있는 환경 또한 안되어서 추상쪽으로 현실과 타협하여 작품실험을 하던 시기였다. 오히려 열악한 환경에서 환경을 극복하는 새로움을 추구할 수도 있는 것이다. 지나보니 이때 도움받은 학원 원장님 뿐만 아니라 지금까지도 여자분들 도움이 많았다. 현재 우리 가족 구성도 돌아가신 엄마 아래 누나 둘이 있고 그리고 조카들도 여자애들이고 내자식도 딸 둘이라 가족사진을 찍으면 10명 가운데 남자는 나혼자인걸 보면 내 인생은 여자의 도움 없이는 살아나가기 힘든 팔자인 것 같다. 여난이 아니고 여복일 것이다. 띠동갑인 큰누나가 아직도 내 뒤치다꺼리를 하고 있으니 미안하고 감사할 따름이다. 이 그림의 제목은 ‘언젠가는’이다. ‘언젠가는’의 의미는 현재의 삶보다 앞으로 더 좋아지고 나아지길 바라는 마음의 뜻일 것이다. 우리는 시간이라는 명제 앞에서 모두가 공평하다. 태어날 때부터 죽음이라는 사형선고를 받고 살아가는 유한한 삶 가운데 영원한 것도 없는 이세계에서 지나간 상처 또는 아픔과 추억은 과거로 남고, 알 수 없고 오지않은 미래인 미지의 세계를 우리 모두는 시간의 평등한 법칙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렇지만 시간의 속성인 과거 현재 미래는 어쩌면 우리의 관념이고 착각일 수 있다는 얘기를 최신 과학들은 전하고 있다. 현재 지금 이 순간 속에 과거 현재 미래가 동시적으로 존재할 수도 있다는 양자역학의 과학적 세계관이 그것이다. 영국의 물리학자 줄리안 바버에 따르면 “시간은 환상이다. 우주에 나열돼 있는 모든 것들이 각각의 지금이며, 어떤 지금들은 서로 연관성이 있어서 시간이 흐르고 있다는 착각을 일으킨다.“ 이처럼 각자의 상황에서 느끼는 시간은 상대적으로 다를 것이다. 시간은 우리 차원에는 해석할 수 없는 고차원의 문제다. 어느게 옳고 그름을 떠나서 '언젠가는'은 그야말로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순간, 화양연화가 도래할 것이라는 희망의 염원에 다름 아니다. 그리워하고 바라는 것은 그 만큼 현재의 삶에 결핍을 느끼고 있다는 것이며 에너지 대부분을 그런 생각에 쓰이고 있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이다. ‘젊은 날엔 젊음을 모르고, 사랑할 땐 사랑이 보이지 않았네’라는 어느 가수의 노랫말처럼 모든 것은 때가 있다. 시절인연이라고도 한다. 언젠가는 때가 되어 지나간 모든 슬픔 상처 고통은 오히려 과거가 미래의자양분이 되고 의미가 되어 과거는 오히려 소중했던 추억과 기억으로 남을 수 있다. 지나봐야 알게 되고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말 또한 시간의 연속성을 나타낸 말들이다. 아무리 힘들어도 시간이 지나면 상처가 아물고 고통이 지나가고 새로운 세계가 펼쳐질 수 있다는 희망의 속삭임을 주는 말들이다. 아픈 시간이라는 것은 동시에 치유를 내포하는 시간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언젠가는... 이 그림은 위와 같은 얘기를 담고자 표현했던 그림이다. 인고의 시간을 감내하며 도래할 희망을 지금도 꿈꾸고 있다. 진정 내가 찾고자 하고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다시 점검의 시간을 갖고 있는 이 시기는 결국 그 밑바탕에 결핍과 상실, 욕심과 집착이 깔려져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차라리 꿈이라면 깨고 싶지만 깨지도 못할거면 인정하고 받아들인다. 참고 노력하며 현재를 즐기려는 마음과 함께 감사와 희망을 놓지말자는 각성의 계기가 되길 바란다. 그림을 보면 바탕은 갈색의 퇴색된 물감의 우연적 펼쳐짐을 만들고 거기에서 나오는 우연적 결들을 명암을 살리며 입체적으로 정리하였다. 시간의 흐름속에 자의든 타의든 만들어진 부서지고 패인 상처같은 흔적과 스크래치를 바탕에 형상화하고, 그 위에 동양화 물감인 흰색 호분으로 파괴된 벽을 도배하듯이 속에 있는 상처를 메꾸고 감추려 했다. 하지만 그 또한 시간이 지나면 찢기고 뜯긴 또 다른 상처가 만들어지고 그러한 흔적이 계속 반복된다. 우리의 삶 또한 이러지 않을까. 언제까지 이 상처와 아픔이 끝날까. 이 상흔이 온전히 복구될 것인가. 다시 푸른 희망을 품어보는 푸른 획과 터치를 그 위에 더해본다. 찬찬히 전체적 조형적 구성을 점검하며 마무리 한다. 뭔가 부족하다. 그러나 손을 떼고 끝낸다. 미완성 자체가 완성이 된다. 완성과 정답은 없다. 늘 미완의 순간이 지금 이 순간이며 늘 부족하지만 또 다른 완성을 향해 나아가며 그것은 또 미완으로 끝을 맺는다. 굳이 설명하자면 이런 내용의 그림이다. 이태원 사고로 시끌벅적하다. 당사자든 당사자가 아니든 모두가 아픈 시간이다. 각자의 시간의 속도와 무게가 다 다르겠지만 슬프고 안타까운 공명의 시간임은 분명하다. 되돌릴수 없고 어쩔 수 없는 시간의 벽 앞에서 통곡의 울음소리가 짙다. 안전불감증과 도덕적 해이, 경각심을 각성해야 한다. 위정자들의 사과와 참회로 고통받는 이들이 위로받아야 한다. 돌아가신 영령들을 위령하고 부디 상처와 아픔이 빨리 아물기를 바란다. 이 또한 지나가겠지만 잊지말아야 한다. 겨울로 가는 길목인 11월이다. 올 겨울은 그 어느 때보다 힘들고 아픈 사람들을 배려하고 위로하는 계절이길 바란다. 힘과 살아갈 용기를 주는 따뜻한 겨울이 되었으면 한다. 나 또한 기운내 올바르게 살아갈 수 있길 바란다. 주어진 모든 것에 감사하며 아픈 영혼들을 위해 두손 모아 기도한다.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한상범은? = 제주제일고, 홍익대 미술대학 동양화과를 나와 홍익대 미술대학원에서 동양화를 전공했다. 담묵회 창립회원, 아티스트그룹 '정글' 회원, 민족미술협회 회원, 한국미술협회 노원미술협회 회원, 디자인 출판 일러스트작가, 한강원 조형물연구소 디자이너, 서울 제주/홍익조형미술학원 원장, 빛 힐링명상가로 활동하고 있다.
◆ 대축괘(大畜卦) 대축(大畜)은 풍성, 풍작의 축적이다. 풍작을 거두려면 천시, 지리, 인화가 모두 갖춰져야 한다. 인화가 중요하고도 중요하다. 풍작에는 인재의 도움이 필요하다. 유능한 인재를 모아야 한다. 선을 쌓고 덕을 행해야 한다. 그래야 끊임없이 축적된다. 단체가 강하지 않으면 어떻게 하여야 할까? 지도자가 되어 더 큰 성적을 거두려고 한다면 곁에 자신을 후원해줄 인재와 끝까지 목숨을 걸어줄 지사가 필요하다. 동시에 자기의 덕행을 끊임없이 닦아야 한다. 덕행이 높으면 높을수록 사업도 순리대로 풀 수 있다. 『주역』은 말한다. “대축은 곧음이 이롭고(이로우니), 집에서 밥을 먹지 않으면(아서) 길하니(고), 큰 내를 건너는 것이 이롭다.” 무슨 말인가? 풍성하게 축적되니 정도를 굳게 지키는 데에 이롭다. 어질고 재능 있는 사람을 곤궁하게 집에서 생계를 이어가게 만들지 말고 마땅히 조정으로 불러내어 국가의 봉록을 먹으면서 재능으로 국가에 공헌하게 하여야 길하고 큰 내를 건너는 데에 이롭다는 뜻이다. ‘홍루몽중인(紅樓夢中人, 홍루몽 배우를 선발하는 중국 대형오디션 활동)’ 오디션은 기적을 만들어 냈다. 2주 동안 홈페이지 클릭 수가 이천 만을 돌파하였다. 신청 인원이 순식간에 10만을 넘어섰다. 심지어 어떤 후보는 상당한 인기를 끌면서 사람 마음속의 ‘보대(寶黛)’, ‘십이금채(十二金釵)’의 대변인이 되기도 했다. 슈퍼 걸, 미남자를 선발하는 활동이 전 중국에서 풍미하는 현상을 보고 격정적으로 다음과 같이 호언하는 사람이 생겨나기도 했다 : 중국에 평민이 우상이 되는 시대가 왔다. 관중은 리모컨이나 메시지로 자기가 좋아하는 대변자를 뽑을 수 있다. ‘오디션’은 분명 ‘중국의 학문을 본체로 하고, 서양의 학문을 응용한’ 것이다. ‘슈퍼 걸’ 프로그램은 완전히 ‘아메리칸 아이돌(American Idol)’를 모방했지만 그런 프로그램의 성공은 조상들의 ‘유능한 인재를 모으는’ 전통도 승리의 비결이기도 하다. 전국시대에 권력이 있고 재물이 있는 사람은 재능 있는 사람을 부양하기를 즐겼다. 그런 사람을 문객이라 했다. 현재 연예기획사 소속 예능인과 비슷하다. 조(趙)나라 재상 평원군(平原君)은 세력이 방대해, 몇 천 명에 달하는 ‘예능인’을 부양하였다. 그중 모수(毛遂)라 불리는 문객이 있었다. 하루 종일 하는 일이 없었다. 현재의 ‘방치된 연예인’과 다름없었다. 나중에 조나라 국도인 한단(邯鄲)이 진(秦)나라 군대에 포위되어 위급한 상황에 처하게 됐다. 조나라 왕은 초나라와 조나라가 협력하게 설득하도록 평원군을 초나라에 파견하였다. 공동으로 출병해 진나라와 대항하도록 만들 셈이었다. 평원군이 집으로 돌아간 후 식객 중에서 동행할 문무를 겸비한 인재 20여 명을 선발하였다. 그런데 식객 중에 19명밖에 마음에 드는 사람이 없었다. 평원군이 고민하고 있을 때 모수가 나서서 평원군에게 말했다. “제가 가장 적합한 사람입니다. 공자와 동행하기를 원합니다.” 그 후 모수는 아주 평온하게 초나라 왕을 설득해 냈다. 그때부터 평원군은 모수를 함부로 대하지 못하고 상객으로 대접하였다. 현재로 말하면 ‘한꺼번에 유명해졌다’고나 할까. 평원군이 성공한 까닭은 평소에 현명한 인재를 부양하였기 때문이다. 뾰족한 송곳은 가만히 있어도 뚫고 삐어져 나오기 마련이다. 뛰어난 재능을 가진 사람은 언젠가는 남의 눈에 띄게 된다. 빛을 발하는 황금과 같다. 기회가 주어지면 멋있게 등장한다. 두각을 나타내 찬란한 빛을 발한다. 한신(韓信)이 한밤중에 군영을 이탈해 도망치고 있다는 소식을 소하(蕭何)가 들었다. 소하는 급히 말을 몰아 한신을 뒤쫓았다. 한신이 사사로이 군영을 이탈하였기에 군법에 따르면 참수하여야 했다. 그런데 소하가 한신을 쫓아간 것은 그를 잡아다가 벌주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유방(劉邦)에게 중용하도록 추천하기 위함이었다. 소하의 안목은 예리하였다. 한신의 정치, 군사 재능을 우러러 탄복하여 여러 차례 한신을 중용하도록 추천했으나 유방은 명확한 태도를 보이지 않았다. 그러자 한신은 고독을 참지 못하고 한나라 군영을 몰래 벗어나려 했다. 소하는 말을 채찍질하며 앞으로 달려갔다. 이틀밤낮을 줄곧 내달려 가까스로 한신을 따라잡고는 한신에게 군영으로 돌아갈 것을 권했다. 유방이 소하를 크게 꾸짖었다. “하찮은 치속도위(治粟都尉, 군량 생산을 담당하였던 관직)에 불과한 한신을 그대가 쫓아가 불러올 정도로 가치가 있다는 말이요?” “대왕이시여. 어찌 그렇게 한신을 대하십니까?” 소하는 기회를 틈타 유방에게 한신의 장점을 말했다. “현재 중원에서 한신을 뛰어넘는 인재를 찾을 수 없습니다. 대왕께서 항우(項羽)와 천하를 놓고 다투고자 하신다면 한신은 주군께서 제왕의 업을 완성하도록 만들 수 있는 가장 적합한 인재입니다. 대왕께서는 한신을 중용할 계획이 전혀 없으시다는 말씀이십니까?” 가만히 듣고 있던 유방은 기뻐하며 말했다. “그럼 내가 그를 장군으로 봉할 것이요. 어떻소?” 소하가 엄숙하게 말했다. “그것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유방은 자신의 대업을 위하여 가장 큰 결심을 했다. “좋소. 내가 한신을 대장군으로 모시리다. 그대가 그를 불러오시오. 내 당장 예절을 올리리다.” 소하는 유방에게 주위를 환기시키며 말했다. “대장으로 모시는 예절을 올리는 것은 큰일입니다. 아무렇게나 대강해서는 안 됩니다. 대왕께서는 길일을 골라 목욕재계하옵고 대장군 격에 맞는 예대를 설치하여 성대한 대장군 모시는 의식을 거행하셔야 합니다. 그래야 한신이 대장군의 직권을 행사하면서 대왕의 제왕의 대업을 위하여 목숨을 아끼지 않을 것입니다.” 유방은 소하가 말하는 대로 따랐다. 한신이 대장군에 봉해진 후 과연 소하의 바람대로 됐다. 유방과 항우가 천하를 놓고 다투는 초한쟁패 시기에 연전연승하여 서한 정권 건립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 나중에 소하, 한신, 장양(張良)은 ‘한초삼걸’로 추앙받았다. ☞이권홍은? =제주 출생. 한양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나와 대만 국립정치대학교 중문학과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국현대문학 전공으로 『선총원(沈從文) 소설연구』와 『자연의 아들(선총원 자서전)』,『한자풀이』,『제주관광 중국어회화』 등 다수의 저서·논문을 냈다. 현재 제주국제대학교 중국어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아침저녁으로 서늘한 날씨가 옷깃을 여미게 하는 가을이다. 하늘은 높고 맑으며 땅은 그동안 일군 땀의 수고로움 속에 풍성한 수확으로 그 보상을 받는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어김없이 찾아오는 계절의 시간 앞에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가을은 또한 사색의 계절이며 외로움과 고독의 계절이기도 하다. 서정적이고 낭만을 자아내는 계절인 것이다. 나 또한 지나보면 가을을 타는 성정이 많은 것 같다. 속절없이 가는 시간 앞에 인간의 욕망이 무상함을 알면서도 어쩔 수 없는 욕망 앞에 불면의 밤도 깊어진다. 불혹의 나이를 훨씬 지났는데도 의혹됨이 아직도 많고 하심(下心)이 아직도 익지 않는 것을 보면 젊은 계절을 그리 열심히 살지 않았기 때문이리라. 부질없는 과거는 소각하고 유한함을 자각하는 하루하루를 소중히 보내야겠다는 마음이 앞서는 계절이기도 하다. 오는 겨울을 대비하는 사유의 계절, 가을이 깊어간다. 이 그림은 아내가 임신으로 부득이하게 친가살이를 할 때 2층방 한칸을 작업실로 삼아 수묵실험을 하며 만든 작품이다. 팍팍한 서울살이에서 남편으로 아버지로 작가로서 고민과 부담이 많이 있던 때라 그 감정과 번뇌를 수묵으로 형상화하고 상징과 은유로 표현해 본 작품이다. 뒤늦게 한국미술협회 노원지부 정기전에 발표하였다. 제목은 욕망과 추락이다. 욕망은 그림 배경에 보이듯 반복된 곡선과 직선의 결합을 통해 남자와 여자의 육적이고 성적인 형상을 드로잉함으로써 인간의 물질적 육체적 본능적 욕망의 시각적 표현을 선과 함께 알 듯 모를듯 형상의 상징과 은유로 표현되어 있다. 제작기법으로는 한지에 먹칠을 하고 먹지처럼 만들어 그 위에 손톱으로 곡선과 직선으로 자유 드로잉 한 것이다. 그 위에 담묵을 첨가해서 농담을 통한 입체적 분위기를 만들고 붓으로 표현할 수 없는 선의 느낌을 손톱으로 긋는 드로잉을 통해 실험적으로 표현해 본 것이다. 초창기 서예를 할 때 탁본에서 나오는 먹의 입자적 물성 효과와 긋는 서예의 획의 느낌을 좋아했었기에 필선의 느낌을 손톱으로 긁고 긋는 회화적 드로잉 표현으로 발전시켰고, 판화적 효과가 그림의 완성도를 더해주기 때문에 필요할 때 가끔씩 애용하는 표현 방법이다. 단순화된 초승달, 떨어지는 인간의 머리, 벌거벗은 여성 형태의 산 이런 형상들은 현실에서 늘 부딪히고 벌어지는 인간의 어리석은 생각, 분별심, 번뇌와 이룰 수 없는 욕구와 욕망, 결핍, 불안, 타락과 추락, 자연과 현실 등 다양한 의미로 해석할 수 있는 요소로 그림에 등장시키고 있다. 곧 이런 이미지들은 이 그림의 제목인 욕망과 추락의 상징과 은유로 형상화된 것들이며 여러 의미가 있다 하겠다. 보는 사람들도 제각각의 의미로 받아들일 것이며 공감도 할 수 있고, 의아해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평가와 해석은 각자의 몫이다. 이처럼 상징과 은유를 동반한 그림은 작가 자신만의 아이콘이 되기도 하고, 개성적 독창적 형상으로 발전되어 작가의 인지도를 극대화 시키키도 한다. 쉽게 예를 들면 이중섭의 그림에 보이는 소나 아이들, 게와 같은 것도 그렇다. 감상자도 상징과 은유를 통해 제각각 다양한 해석과 공감을 맛보며 보이지 않는 느낌과 익숙하지 않은 것들을 내면에서 발견하고 구현되는 카타르시스를 느끼기도 한다. 이처럼 상징과 은유는 예술적 표현에 있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 예로 예술, 특히 문학에 있어서 시와 그림은 밀접한 관계에 있다. 시화집이나 시화전처럼 시를 그림으로 표현해본 경험은 누구나 한번쯤은 있을 것이다. 한국화에서도 고래로부터 서화일치(書畫一致), 즉 글과 그림은 같다고 보았으며 ‘그림 가운데 시가 있고 시 가운데 그림이 있다’라는시중유화 화중유시( 詩中有畵 畵中有詩)가 그것이다. 상징은 추상적인 사실이나 생각, 느낌 따위를 대표성을 띤 기호나 구체적인 사물로 나타내는 일로 정의하고 있다. 은유(隱喩) 또한 비유법의 하나로 행동, 개념, 물체 등을 그와 유사한 성질을 지닌 다른 말로 대체하는 것을 일컫는 단어다. 암유(暗喩)나 메타포(metaphor)도 유사한 의미다. 우리가 인식하는 것 이상의 보이지 않고 알 수 없는 사물의 속성, 본질적 속성을 끄집어 내는 것이 예술의 중요한 특징임으로 상징과 은유는 필수 불가결한 요소이기도 하다. 더불어 분해, 해체, 결합, 조립 등의 조형요소로 새로운 조형적 미를 변화.발전시키며 새로움을 환기 시킨다. 이런 상징과 은유의 이면에는 규정된 말과 언어가 있다. 말과 언어는 사물에 존재의 의미를 부여하기도하고, 어쩌면 인간의 존재와 삶은 철저히 말과 언어에 의해 규정되어져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이데거는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 했고, 언어철학자인 비트겐슈타인은 "그 사람이 사용하는 어휘가 그 사람이 살아가는 세계"라고 했다. 말과 언어가 생각이 되고 행동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말과 언어를 통한 생각과 의식은 삶의 모습이 구현되는 근원의 장일 수도 있다. 예술이란 관조적 대상일뿐 학문이나 과학으로는 분석할 수 없다는 칸트 미학에 나는 동조한다. 학문화와 과학화는 경직성, 고정성, 구속성을 강화하여 존재의 본래성과 내적 의미를 상실케 한다고 본다. 그래서 규정할 수 없는 보이지 않는 세계는 상징과 은유로 나타날 수 밖에 없다. 시적 언어와 내용들은 과학적 언어와 구별된다. 과학적 언어는 수량화하여 객관적으로 표현되는 언어다. 반면에 시적 언어는 인간의 내밀한 감성을 자극하고 반영하는 언어이며 대상의 본질을 생생하게 드러내는 함축성 있는 언어다. 이런 점이 한국화의 시화일체 내용과 닮았다. 그림 안에 시적 상징과 은유의 세계가 담겨져 있는 것이다. 동양의 자연친화사상도 그렇다. 자연의 순리에 순응하고 자연의 생명들과 공존하고 더불어 살고자 했고, 합일하고자 했고, 그런 존재들에 늘 감사했다. 서로 다름을 인정하며, 공존하고, 공생하는 삶의 방식과 생명력을 추구하는 동양의 정신적, 자연친화적 삶은 현실을 넘어 상징과 은유속에 더 풍부해질 수 있다. 인디언의 생활과 언어들이 그 예다. 동양화는 의경(意境)과 사의(事意)의 세계다. 그것은 또한 상징과 은유의 추상세계와 다름 아니다. 이들 모두는 예술과 삶의 의의 안에서 깊이와 울림과 반향을 크게하는 중요한 요소들이다. . 이 소중한 가을의 계절에 시집 한 권을 읽건, 보고 싶은 영화 한 편을 보건, 전시장에 가서 그림감상을 하건, 한적한 오솔길을 걸어보건 나만의 여행을 떠나 사색해 보는 것도 허허로운 삶이 조금은 더 풍요로워 질 것이다. 깊어가는 가을을 맞으며 ‘내가 지나온 세월만큼 여물고 단단해졌는줄 알았는데 그저 익숙한 길에 길들여져 있을 뿐이였다'라는 어느 누군가의 말에 정신이 번쩍 든다. 곧 겨울이 머지 않았다. 모든 것에 감사하며 찰나찰나 잡을 수 없는 이 삶을 더없이 사랑하자.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한상범은? = 제주제일고, 홍익대 미술대학 동양화과를 나와 홍익대 미술대학원에서 동양화를 전공했다. 담묵회 창립회원, 아티스트그룹 '정글' 회원, 민족미술협회 회원, 한국미술협회 노원미술협회 회원, 디자인 출판 일러스트작가, 한강원 조형물연구소 디자이너, 서울 제주/홍익조형미술학원 원장, 빛 힐링명상가로 활동하고 있다.
물질생활이 나날이 발전하고 있는 오늘날은 그런 금욕주의 성격을 지닌 ‘공안락처(孔顔樂處)’1)는 어쩌면 과하게 제창할 가치는 없다하더라도 안회가 도달한 경지는 사람들의 추앙을 받고 있다. 냉정하게 논하면 우리 대부분은 엄격한 의미에서 군자도 아니요 철두철미한 소인도 아니다. 늘 그 둘 사이에 놓여있다. 바로 그렇기에 우리는 ‘탄탕탕(坦蕩蕩)’한 흉금도 지니고 있고 ‘장척척(長戚戚)’한 체험도 했다.2) 그러면서 오랜 세월이 흐르는 동안 도대체 어떤 상태가 더 본질적이고 더 행복하며 더 의의가 있는지 진정으로 깨우치고 이해하게 된 것이다. 세상에 살아가는 동안 우리는 개인적 수양을 끊임없이 하여야 한다. 모든 사람은 어쩌면 악마의 일면과 천사의 일면을 다 가지고 있을 수도 있다. 우리는 끝없이 수련하면서 자기 정신적 탐욕과 투쟁하여야 한다. 정직한 사람이 되어야 하고 동정심이 많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 자기 일생 동안 어떤 방면에서라도 업적을 세워야 한다. 자신에게는 엄격하고 타인에게는 관대하여야 한다. 탐욕을 너무 부려서는 안 된다. 지혜로운 자는 자신의 부족한 면을 인식할 수 있는 사람이다. 평상심으로 타인을 대하고 평상심으로 자신을 보면서 삶에 있어 너무 높은 요구를 하지 말고 일을 함에 있어서도 너무 과한 성취를 얻으려 하지 말아야 한다. 거리낌이 없어야 한다. 이해와 득실을 초월해 마음에 두지 말아야 한다. 그렇게만 할 수 있다면 일가를 이룰 수 있는 경지에 이른 것이다. 자신이 한 모든 게 옳다고 생각하고 타인이 한 일은 모두 그르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일이 발생하면 먼저 타인을 질책한다. 일에 부딪치면 늘 오만가지 후회를 하고 늘 고통과 책망 속에서 살아간다. 이런 부류는 인생을 너무 피곤하게 사는 사람이다. 끊임없이 번뇌하고 모든 것을 원망하며 즐거운 마음으로 살아가지 못한다. 과거 자책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살 바에야 자기 자신이 수행에 전념하여야 한다. 세상은 후회를 해결할 수 있는 약은 팔지 않는다. 과거사에 얽매여 벗어나지 못하면 자신만 손해다. 결국 타인이 자신에게 늘 잘못하고 있다고 판단하게 된다. 평온한 마음은 끝내 가질 수 없게 된다. 정서불안이 되고 건강까지 해치게 된다. 사람에게는 너그러움이 있어야 한다. 밝은 마음, 낙관적인 태도가 필요하다. 번뇌를 버려야한다. 열려있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넓은 가슴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스스로 정직하게 살아가야 하고 모든 것에 거리낌이 없어야 한다. 그래야 모든 번뇌가 눈 녹듯이 사라질 것이다. 위선을 이길 생각이 있거들랑 만족함을 알아야 한다. 안분지족의 의미를 알아야 한다. 너무 높은 수준으로 비길 생각을 버려야 한다. 이 산에 올라서는 저 산이 높다고만 생각해서는 안 된다. 현대 사회에는 좋은 직업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자기가 가지고 있는 직장보다 더 좋은 것을 원하는 사람이 있다. 어진 부인이 있으면서도 더 젊고 아름다우며 온유하고 지혜로운 여인을 갈구하는 사람도 있다. 욕망은 이렇게 끝이 없다. 직업도 부인도 만족하지 못해서 하나 바꾸고 또 하나 바꾼다고 하여도 결국 만족하지 못한다. 어쩌면 바꾼 것이 이전보다도 못할 때가 부지기수다. 만족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 사람에게 좋을 때도 있다. 하지만 너무 과한 비교는 지나친 요구를 하게 된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거짓이 될 가능성이 많다. 반복되면? 바쁜 나날을 보내야 하기에 영원히 안정될 수 없다. 결국 자기 스스로 환각 속에서 살아가야 한다. 그런 인생, 너무 불쌍하지 않는가? 삶은 현실이다. 한 걸음 한 걸음 땅을 딛고 걸어야 한다. 공명정대하게 모든 일을 처리하여야 한다. 그래야 여유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다. 마음 놓고 살아갈 수 있다. ***** 无妄卦 ䷘ : 천뢰무망(天雷无妄), 건(乾: ☰)상 진(震: ☳)하 무망은 크게 형통하고 곧게 함이 이로우니, 바르지 않으면 허물이 있을 것이므로 가는 것이 이롭지 않다.(无妄,元亨利貞,其匪正有眚,不利有攸往.) 「상전」에서 말하였다 : 무망으로 가면 뜻을 얻으리라.(象曰,无妄之往,得志也.) [傳] 무망괘(无妄卦)는 「서괘전(序卦傳)」에 “돌아오면 망령되지 않으므로 무망괘로 받았다”라고 했다. ‘복(復)’은 도(道)로 돌아오는 것이니, 이미 ‘도’로 돌아오면 바른 이치에 합하여 ‘무망(无妄)’이 된다. 그러므로 복괘(復卦䷗)의 뒤에 무망괘로 받았다. 괘는 건괘(乾卦☰)가 위에 있고 진괘(震卦☳)가 아래에 있다. 진괘는 움직임이니, 움직이기를 천도로 하면 무망이 되고 움직이기를 인욕(人欲)으로 하면 ‘망(妄)’이 되니, 무망의 뜻이 크도다! 1) 거친 밥에 물마시고 팔 굽혀서 그것을 베더라도 즐거움이 또한 그 안에 있음이니. 의롭지 않고 얻은 부(富)와 귀(貴)는 나에게 뜬구름과 같다.(飯疏食飮水,曲肱而枕之,樂亦在其中矣.不義而富且貴,於我如浮雲.)(『논어論語·술이述而』); 飯(반)먹다/밥 疏(소)거칠다, 食(사)밥/(식)먹다, 曲(곡)굽히다/굽다, 肱(굉)팔, 枕(침)베다/베개; 스스로 ‘인의예지(仁義禮智)’의 도(道)를 천하에 펴는 임무를 하늘로부터 부여받았다고 자부하였던 공자는 세속적인 부귀와 명예에 연연하지 않고 도를 즐겼기 때문에 거친 밥에 물마시고 팔베개하고 자더라도 즐거움이 그 안에 있고 또한 정당하지 않은 방법으로 부자가 되고 높은 지위에 오르는 것은 자신에게는 마치 허공에 떠다니는 구름과 같이 부질없는 일이라고 말한 것이다. 이러한 스승 공자를 본받아 제자 안회(顔回)도 한 대그릇의 밥과 표주박의 마실 것으로 누추한 골목의 허름한 집에 살면서 오로지 스승 공자의 가르침을 실현하고 학문과 진리 탐구에 파묻혀 사는 즐거움을 버리지 못했다. 이를 일컬어 ‘공안락처(孔顔樂處)’라 하여 후대의 학자들은 문하의 제자들에게 반드시 “공자님과 안회가 즐긴 도가 어디에 있는가?”를 엄하게 묻고 깊이 생각하도록 가르쳤다. 2)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군자는 평탄하여 여유가 있고, 소인은 늘 걱정스러워 한다.”(子曰:君子坦蕩蕩,小人長戚戚.)(「술이(述而)」) 무슨 말인가? 군자는 마음을 넓게 가져 언제나 평정심을 유지하는 데 비해 소인은 더 가지지 못해 안달이고 늘 걱정이 많다는 뜻이다. ☞이권홍은? =제주 출생. 한양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나와 대만 국립정치대학교 중문학과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국현대문학 전공으로 『선총원(沈從文) 소설연구』와 『자연의 아들(선총원 자서전)』,『한자풀이』,『제주관광 중국어회화』 등 다수의 저서·논문을 냈다. 현재 제주국제대학교 중국어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 무망괘(无妄卦) 망(妄), 황당하다, 터무니없다, 상궤를 벗어나다 뜻이다. 무망(无妄)은 황당하지 않다, 상궤를 벗어나지 않다, 속이지 않다 뜻이다. 자아를 표현해내야 한다. 객관적이어야 하고 진실하여야 한다. 한 말에 책임지고 말한 대로 행동하여야 한다. 일을 함에 정정당당하고 광명정대하여야 한다. 하늘을 떠받치고 땅 위에 우뚝 서야 한다. 위선적이면 어떻게 하여야 할까? 유명한 동화 『벌거벗은 임금님(The Emperor's New Clothes)』이 이야기이다 : 벌거벗은 임금님이 의장대의 호위를 받으며 거리로 나섰다. 도성의 사람들은 앞 다퉈 임금님의 새 옷을 보러 나왔다. 그들은 소리쳤다. “우리 임금님의 새 옷이 정말 예쁘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고귀한 옷이다!” 이처럼 우스꽝스럽다. 그러면서도 슬프기도 하고 가엽기도 하다. 이것은 무지와 권력의 압제로 만들어진 집단 허위(거짓)다. 사람됨은 솔직하여야 한다. 솔직하고 본분을 지켜야 착실한 삶을 살 수 있다. 모든 사람이 거짓되고 비열하면서도 도덕군자인양 점잔을 뺀다면 세상은 얼마나 무섭게 되겠는가. 『주역』은 말한다. “무망은 크게 형통하고 곧게 함이 이로우니, 바르지 않으면 허물이 있을 것이므로 가는 것이 이롭지 않다.” 무슨 말인가? 황당하지 않고 허황되지 않으며 터무니없지도 않아야 한다는 말이다. 처음부터 교류하고 소통하면 고찰해 묻기에 이롭다. 만약 언행이 정도에 맞지 않으면 재앙이 있게 된다. 행동하는 데에 적당하지 않다. 허위(거짓)는 허황되고 허망하다. 정리에 맞지 않는 것이다. 내용이 없이 공허하다. 현실 생활 이외의 것이다. 한 바탕의 꿈이다. 생각은 할 수 있으되 얻을 수는 없다. 꿈이 깨면 모든 것이 끝난다. 아무 것도 남아있지 않는다. 거짓이 지나간 후 공허만 남는다. 자기도 속이고 남도 속이는 고통만 남게 된다. 거짓을 이기려면 광명정대하여야 한다. 언행일치되어야 한다. 안팎이 같아야 한다. 정정당당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떳떳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첫째, 공명정대하여야 하고 마음에 거리낌이 없어야 한다. 도량이 좁아 조그만 일에 얽매여서 큰일은 생각하지 못하는 지경이 돼서는 안 된다. 둘째, 자기에게 솔직담백하여야 한다. 과실을 덮어 감추어서는 안 된다. 셋째, 일을 함에 공평하고 공정하게 처리하여야 한다. 좀도둑질하는 쥐나 개처럼 자잘한 속임수를 써서는 안 된다. 거짓된 위선자는 영원히 비천하게 된다. “도둑은 기척을 두려워하고 쥐는 밝은 것을 두려워한다.” 거짓된 자에게는 광명정대를 폭탄으로 삼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다. 노자(老子)는 ‘상선약수(上善若水)’를 극도로 추앙하였다. 무슨 뜻인가? 인류의 가장 아름다운 품행은 물과 같아야 한다는 말이다. 물의 그러한 선명한 특성은 우리에게 사람됨이 광명정대하고 솔직담백하여야 한다고 깨우치고 있다. “군자는 마음이 평온하고 너그럽다.” 마음속 깊이를 알 수 없는 자는 친한 친구나 훌륭한 벗을 찾기 힘들다. 우리는 물처럼 깨끗하고 순수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세속에 물들지 않고 자신의 순결을 지켜야 한다. 전혀 오염되지 않은 순결한 영혼을 간직하여야 한다. 영원히 건강한 몸을 유지하여야 한다. 『논어·술이(述而)』에서 말했다. “군자는 마음이 평온하고 너그러우며 소인은 마음이 항상 근심으로 조마조마하다.” 중국 역대 왕조와 시대에 군자와 관련된 격언이 많고도 많다. 그런데 세간의 군자는 많아지는 것은 볼 수 없고 오히려 갈수록 보기가 힘들어 졌다. 무슨 까닭인가? 군자 한 명이 사람들에게 어떤 좋은 점을 가져다주는 것일까? 현재의 지위나 재산을 중시하는 관점에서 볼 때 좋은 점은 하나도 없다! 좋은 점을 억지로 찾아내려고 한다면 그저 마음속 안위에 불과할 따름이다. 군자는 도량이 넓다. 마음씨가 순수하다. 그래서 마음이 평탄하고 넓다 ; 소인은 명예와 이득을 위해서라면 개처럼 파렴치하고 파리처럼 진득거린다. 공명과 출세를 위해서라면 방법과 수단을 가리지 않는다. 개인의 이해득실만 따진다. 일반에서 전해 내려오는 속담이 있다. “자신이 양심에 위배되는 짓을 한 적이 없으면 귀신이 문 두드리는 것을 무서워하지 않는다.” 나쁜 짓을 하지 않아 무서울 것이 없다는 말이다. 군자가 되면 마음이 편안하다. 반면에 소인은 뜻을 얻으면 그리 길게 가지 않는다. 알랑거리면서 관직에 오르고 사람을 함정에 빠뜨리고 사기 치면서 재물을 얻는 자들은 많고도 많다. 그런데 그렇게 관직에 오르고 재물을 모은 소인이 정말로 행복할까? 오늘 ‘단속’을 벌인다면 그렇게 모조품과 저질 제품을 만든 사람은 제 발 저리지 않을 수 있겠는가? 내일 ‘부정부패 척결’한다면 탐오하고 부패한 자 중에 두려움에 떨지 않을 사람이 어디에 있겠는가? 아침에는 자동차로 돌고 오후에는 식사 테이블을 둘러싸 돌고 저녁에는 치마를 둘러싸 돌면서 일 년에 몇 십 만을 낭비하는 그런 인간이 편안하게 잠들 수 있을까? 공자에게 3천 제자와 72명의 현자가 있었다고 한다. 그중 공자가 가장 만족한 인물은 과단하게 일을 처리하는 중유(仲由)도 아니요 다재다능하였던 염구(冉求)도 아닌 품행이 고상한 안회(顔回)였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 훌륭하도다, 회야. 한 그릇의 밥과 한 바가지의 물로 가난한 마을에서 살게 되면 다른 사람은 그 근심을 견디지 못하는데 회는 그렇게 살면서도 자신의 즐거움을 바꾸지 않으니 훌륭하도다, 회야.”(「옹야(雍也)」) ☞이권홍은? =제주 출생. 한양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나와 대만 국립정치대학교 중문학과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국현대문학 전공으로 『선총원(沈從文) 소설연구』와 『자연의 아들(선총원 자서전)』,『한자풀이』,『제주관광 중국어회화』 등 다수의 저서·논문을 냈다. 현재 제주국제대학교 중국어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무명의 꿈. 수레바퀴 - 사람은 덜커덕 덜커덕 거리며 가는 수레바퀴와 같다. 예전엔 비포장된 길이 많았다. 지금도 그나마 때묻지 않은 곳은 비포장된 길과 어우러져 있다. 그러나 사람사는 세상에는 포장된 길이 많고 또한 필요로 한다. 그속에 우리가 존재함은 분명하다. 그것은 건널수 없는 한계의 공간이면서 무한한 가능성의 색깔을 띠는 공간으로 남겨져 있다. 만남 - 걷다보면 수많은 길을 만나는 것처럼 우리는 어쩔수 없이 만나게 된다. 파이고 지워지고 다시 만들고 채워지고... 사랑 상처 아픔 망각 꿈... 우리는 어쩔 수 없이 만나게 된다. 비명비암(非明非暗) - 하나에서 시작되어 여러 가지로 불리우는 것들... 우리 주변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을 우리는 필요로 할 수 있으며 우리는 그것들을 거부할 수 있다. 아니 어쩌면 그 자체도 알 수 없어서 무작정 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짓거리 - 신은 무언의 몸짓을 하는 순간 행위를 낳고 그 행위는 원인이 되어 현재라고 불리우는 이 시점에 모습을 갖춰 고체화된 결정체로 시간과 공간속에 나타나게 된다. 그 딱딱한 결정체는 구조의 얽힘을 풀어 해체를 꿈꾼다. 아니 스스로 신이 되길 꿈꾼다. 현재는 미래를 꿈꾸며 현실은 비현실적 꿈을 꾼다. 이 네가지 챕터의 위와 같은 짧은 글은 이 그림들과 함께 졸업전 도록에 실려 있다. 나의 젋은 날 글을 보며 적지 않은 나이에 늦은 졸업을 하며 생각이 많았던 과거의 나를 다시금 본다. 지금은 시간이 지나 사라지고 없는 과거지만 바로 지금 여기 찰나찰나 영원한 현재는 지속되고 있다. 육조 혜능대사는 ‘자성이 곧 부처다’라고 하였다. 자성이 인문학에서는 영성이고 우리에게 있어서는 생각과 감정을 바라보는 근본의식이다. 젊을 때 내가 쓴 글에서 보이는 단어와 내용들을 보며 과거의 내 생각과 관심, 의식이 현재까지도 지속되고 있음을 보게된다. 사람은 잘 변하지 않는다. 무명, 각성, 법륜, 법계의 원리, 자연의 원리, 현상과 현상너머의 본질이나 이상, 만남의 인연과 연기법 등 현재도 관심 분야가 그대로다. 지금은 실천적 확장으로 명상, 기도와 참회 등으로 이어져 있어 나름 정리된 삶을 살고 있지만 그 끝은 아직도 요원해보인다. 다만 내 의식의 많은 부분을 채우는 삶이 과거부터 지금까지도 지속되는 것을 알 수 있다. 그것은 위와 같은 젊은날의 의식과 자기 인식은 과거나 지금이나 늘 매순간 의식으로서 변함없이 함께 있음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늘 보고 있는 그것!! 분별과 분리, 있다가 사라지는 가유의 세계인 현상을 넘어 하나로 연결되고 통합하는 본질의 세계에 대한 관심이 그 인연으로 현재의 명상과 참회, 기도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현재도 벌어지는 나의 고단한 삶 속에서 희망과 행복을 꿈꾸며 지금이 순간 영원한 현재를 의식하고 늘 처음 만나는 새로움의 지금 이 순간을 선물같은 축복으로 받아들이며 감사하고 늘 깨어 있고자 노력하고 있다. 실체가 없는 현상의 조그마한 괴로움으로 긍정의 밝은 의식을 잃어버린 느낌의 원인을 실망보다는 오히려 자성의 씨앗으로 삼고 내가 만든 모든 부족하고 부질 없었던 삶을 인정하고 받아들여 깨어나 냉철히 돌아보는 계기로 삼고자 한다. 다시 내 안에 깃든 자성의 밝은 빛으로 회광반조하는 삶이 되어 매순간 늘 행복한 삶이 펼쳐지고 있음을 의식하고 자성의 세계에 신심을 갖고 생각과 감정의 억지 힘을 빼고 순리에 맡기고 이완해 나가야겠다는 믿음과 의식이 거듭 깨어나기를 다시금 다져본다. 그림에 있어서도 어둡고 무거운 그림보다 밝고 긍정적인 그림이 되기를 바란다. 인연이 된다면 내 안에 있는 자성의 밝은 빛이 드러나고 근원의 뿌리를 추구하다보면 자연스럽게 그 결정체로 나타날 것을 상상한다. 상상은 현실을 창조한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그림이 그러한 것임을... 육조혜능은 자성이 부처다라는 말을 했다. 자성을 자각하고 실상의 삶을 살아갈수 있도록 더 노력해야 겠다.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한상범은? = 제주제일고, 홍익대 미술대학 동양화과를 나와 홍익대 미술대학원에서 동양화를 전공했다. 담묵회 창립회원, 아티스트그룹 '정글' 회원, 민족미술협회 회원, 한국미술협회 노원미술협회 회원, 디자인 출판 일러스트작가, 한강원 조형물연구소 디자이너, 서울 제주/홍익조형미술학원 원장, 빛 힐링명상가로 활동하고 있다.
◆ 복괘(復卦) 복(復)은 복귀하다, 반복하다. 잘못을 저질렀지만 제때에 돌아오면 형통하다. 잘못을 고집해 깨닫지 못하여 헤매지 말라. 산에 호랑이가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산으로 가는 것은 어리석다. 결과를 뻔히 알면서도 기어이 그 일을 하려 들지 말라. 잘못해 옆길로 빠졌는데 스스로 빠져나오지 못하면 후회막급일지니. 잘못을 알면서도 고치지 않으면 어떻게 하여야 할까? 옛 그리스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Herakleitos, B.C544~484)는 명언을 남겼다. “우리는 똑같은 강물 속에 두 번 들어갈 수 없다.” 변화 이외에 영원한 것은 없다, 변화 이외에 남는 것은 하나도 없다는 뜻이다. 우리가 가장 잘 알고 있는 말도 있다. “사람은 같은 곳에서 두 번 넘어져서는 안 된다.” 잘못을 저지르는 것은 그리 대수로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잘못을 저질렀으면 고쳐야 한다. 잘못을 저지르고도 고치지 않고 다시 잘못을 저지르면 바보일 뿐이다. 『주역』은 말한다. “돌아옴에 혼미하여 흉하니, 재앙이 있어 군사를 동원하는 데에 쓰면 마침내 크게 패하고 그 임금에게까지 흉하여 십년이 될 때까지 가지 못할 것이다.” 방향을 잃고서도 반복하면 아주 위험하다. 재난이다. 만약 군사작전을 벌인다면 결국 대패하게 된다. 모두 군자가 저지른 위험이다. 10년 동안 출정하지 못한다. 한 국가가 반복해 같은 잘못을 저지르면 망국을 초래한다. 한 단체가 반복해 같은 잘못을 저지르면 연전연패한다. 한 개인이 계속하여서 같은 잘못을 저지르면 전진하는 길에 발걸음 내딛기가 무척 힘이 든다. 한 청년이 바삐 걸음을 재촉하다가 한 아저씨 앞을 건너다 넘어졌다. 아저씨는 청년을 가만히 쳐다보았다. 청년은 얼굴을 붉히며 일어서고는 화 난 듯이 말했다. “넘어진 사람을 여태 한 번도 보지 못했나요? 난 이미 혼자 일어섰거늘, 뭘 그리 쳐다보는 거예요?” 아저씨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지금 청년은 넘어지면 일어서는 것만 아는구먼. 중요한 것은 넘어진 까닭인데. 자신이 왜 넘어졌는지 되돌아보려고 하지는 않고.” 청년은 그 말을 듣고 멍해졌다. 넘어지면 스스로 일어서야 한다. 맞다! 그런데 그건 기본일 뿐이다. 일어설 수 있다는 것이 그리도 대단한가? 중요한 것은 무엇이 잘못인가 하는 점이다. 똑같은 잘못을 저지르지 말아야 하지 않겠는가. 『주역』은 말한다. “멀리 가지 않고 돌아옴은 자신을 닦기 때문이다.” 옛 사람이 해석하였다. “학문의 도는 다름이 아니라 오직 선하지 않은 것을 알면 빨리 고쳐서 선을 따르는 것일 뿐이다.” 지금부터라도 시작하자. 우리는 잘못이 있으면 반드시 바로잡아야 한다. 잘못이 있는데도 고치지 않는 약점을 가지고 있어서는 절대 안 된다. 그럼 도대체 어떻게 하면 자신의 잘못을 찾아낼 수 있는가. 당신은 냉정하게 자신을 자세히 살펴본 적인 없는가? 자기와 타인의 차이점을 분석해 보지 않았는가? 자신의 장점과 단점을 분명히 알지 못하는가? 있다면 어느 것이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는 천성이고 어느 것이 후천적으로 만들어진 것인가? 선천적으로 부족한 점이 있다면 후천적인 노력으로 보충할 수는 없는가? 이런 문제를 가만히 대답해 보자. 그러면 문제에 대한 해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지금부터 시작해보자. 과거에 저지른 잘못으로 받은 충격은 이제 지워버리자. 다시 자아를 찾아오자. 좌절을 한번이라도 겪지 않고 순풍에 돛을 올리듯 순조롭게 살아온 사람이 누가 있는가. 잠시라도 자신에 대한 믿음을 상실해보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생활 중에 아주 흔하게 잘못을 저지르고 실패를 당한다. 그런데 교묘하게도 그런 자그마한 좌절이 우리의 의지를 연마시킨다. 문제를 처리하는 능력을 제고시킨다. 작은 좌절은 당신이 순항하고 있고 자신만만할 때 당신에게 경종을 울린다. 곤란과 방해를 가져다주면서 당신이 커다란 좌절 앞에서 철저하게 무너지지 않도록 경험하게 만든다. 다른 쪽으로 일단 실패를 겪었다면 중요한 것은 자신을 검사하고 측정해 보는 것이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노력을 했다고 확신하는가? 자신에게 물어서 부끄럽지 않으면 된다. 나머지는 자신을 제고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여야 한다. 경험과 교훈을 총결해야 한다. 좌절을 당하면 그만큼 현명해진다. 자기 발전에 불리한 모든 요소를 감소시켜라. 같은 곳에서 두 번 넘어져서는 안 되지 않는가. 최후의 문제는 어떻게 잘못을 고치고 바른 길로 돌아오느냐이다. 첫째, 이전의 문제점, 잘못을 모두 열거해보자. 자신이 진보할 수 있는지 없는지를 심사하는 시험지로 삼자. 실천은 자기를 평가하는 가장 객관적인 수단이다. 자신이 잘못을 고치고 바른 길로 돌아올 수 있는지 검사하는 거울이다. 둘째, 당신이 일생동안 하고자 하는 일을 써보자. 리스트를 지갑에 넣고 다니다 자주 꺼내어 읽어보자. 인생은 목표가 있어야 한다. 계획이 있어야 한다. 주위를 환기시켜야 한다. 긴박감이 있어야 한다. 작은 목표를 하나하나 꿰어내면 당신 일생의 큰 목표가 된다. 자주 자신에게 물어야 한다 : 하루 또 하루, 일 년 또 일 년, 우리는 무엇을 얻었는가? 또 무엇을 잃었는가? 당신은 좋고도 아름다운 청춘시절을 잃어버리길 원하는가? 분투하는 격정과 투지를 잃기를 원하는가? 미래에 대한 아름다운 동경을 잃기를 원하는가? 순수하고 밝은 마음과 초롱초롱 빛나는 눈동자를 잃기를 원하는가? 당신은 그저 마비된 생활이 점점 버릇되기를 원하는가? 버릇은 혼돈의 세계에서 모호한 두 눈동자로 모든 것을 대한다. 정신을 아득하게 만드는 이 천지간에서 버릇은 자신의 마음을 천천히 딴 것으로 되게 만들어버린다. 자신조차도 낯설고 우스꽝스럽다고 여기게 만들고 싶은가? 스스로 묻고 정답이라 생각하거들랑 자세하게 사고하여야 하리라. 우리는 어떻게 이 세상에 오게 됐는가? 어떻게 교육받고 지도받았는가? 어째서 지금처럼 마비되어 버렸고 맹목적으로 변해버렸는가? 우리는 도대체 어떤 인물인가? 우리는 과연 어떤 배역을 맡고 있는가? 우리는 또 어떤 역을 맡아야 하는가? 우리는 어떻게 발전해 나가야 하는가? 같은 곳에서 한 번 넘어지면 이외라고 한다. 같은 곳에서 두 번 넘어지면 부주의했다고 한다. 같은 곳에서 여러 번 넘어지면 멍청하다고 한다. 인생이 그렇다. 잘못했으면 용감하게 대면하라. 잘못이 있으면 반드시 고치라. 제때에 고치면 발전할 수 있다. ***** 復卦 ䷗ : 地雷復(지뢰복), 곤(坤: ☷)상 진(震: ☳)하 복(復)은 형통하여 나가고 들어옴에 병이 없지만 벗이 와야 허물이 없을 것이다. / 복(復)은 형통하니, 나가고 들어옴에 병이 없고 벗이 옴에 허물이 없다.(復,亨,出入无疾,朋來无咎.) 「상전」에서 말하였다 : “멀리 가지 않고 돌아옴”은 자신을 닦기 때문이다.(象曰,不遠之復,以脩身也.) “돌아옴에 혼미하여 흉하니, 재앙이 있어 군사를 동원하는 데에 쓰면 마침내 크게 패할 것이고, 나라를 다스리면 임금이 흉하여 십년이 될 때까지 가지 못할 것이다. / 돌아옴에 혼미하여 흉하니, 재앙이 있어 군사를 동원하는 데에 쓰면 마침내 크게 패하고 그 임금에게까지 흉하여 십년이 될 때까지 가지 못할 것이다.(迷復,凶,有災眚,用行師,終有大敗,以其國君凶,至于十年,不克征.) [傳] 복괘(復卦䷗)는 「서괘전」에서 “사물은 끝내 다할 수 없으니, 깎아냄이 위까지 다하면 아래로 되돌아오기 때문에 복괘로 받았다”라고 했다. 사물에는 깎여나가 다하는 이치가 없기 때문에 박괘(剝卦䷖)가 다하면 복괘가 오고 음이 다하면 양이 온다. 양의 깎여나감이 위에서 다하여 돌아옴이 아래에서 생기고, 위에서 다하여 아래로 되돌아오니, 복괘가 박괘 다음에 있는 까닭이다. 괘에서 하나의 양이 다섯 음의 아래에서 생기니, 음이 다하여 양이 되돌아온 것이다. 시월에 음의 성대함이 이미 지극한데 동지가 되면 하나의 양이 땅 속에서 회복되어 나오기 때문에 ‘되돌아옴[복(復)]’이라고 한 것이다. 양은 군자의 도이다. 양의 소멸이 끝나 다시 돌아오고, 군자의 도가 소멸이 끝나 다시 자라기 때문에 선으로 되돌아오는 의미가 된다. ☞이권홍은? =제주 출생. 한양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나와 대만 국립정치대학교 중문학과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국현대문학 전공으로 『선총원(沈從文) 소설연구』와 『자연의 아들(선총원 자서전)』,『한자풀이』,『제주관광 중국어회화』 등 다수의 저서·논문을 냈다. 현재 제주국제대학교 중국어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젊은날 치기와 객기로 점철된 방황과 우여곡절이 있었다. 결국 늦은 나이에 대학을 졸업하게 되었다. 그 시절 때늦은 대학졸업전에 출품한 작품이다. 학번상으로는 87학번인데 1992년 졸업앨범에도 있고 한참후에 재입학하여 2000년도에 졸업했으니 학교 생활을 제대로 하지못한 결과다. 한편으로는 남과는 조금 다른 삶을 살았다는 위안도 없지 않다. 젊은날을 소환하여 다시 꺼내 보는 이유가 있다. 시간이 어떻게 흘러 갔는지 모르게 치기와 객기가 가득했던 오래된 젊은날의 생각이 요즘 불현듯 다시 들었기 때문이다. 미래에 대한 준비 없이 살아온 결과로 지금 겪는 물질적 위기, 미래에 대한 걱정, 불안이 있다. 간헐적 무기력, 우울감에 위축되기도 한다. 그동안 알았다고 생각한 것마저 과연 내가 제대로 알고 있는가 하는 의구심도 있다. 명상과 기도로 어느정도 삶의 의미를 찾았다는 생각 또한 오만이었음을 최근에 다시 깨닫게 되었다. 약하디 약하고 부족함 투성이인 것이 인간임을 ... 이 또한 분별심임을 알아차리고 있지만 현재까지 참 무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이런 부질없는 생각과 감정에서 벗어나기 위해 해묵은 습관, 그 뿌리를 생각하고 좇다보니 젊은날이 소환된 것이다. 그 당시의 나는 어떤 생각을 품고 있었을까. 그 뿌리깊은 에고(ego)가 지금의 나와 어떤 연관이 있을까? 그 어떤 안좋은 습식이 이런 결과를 만들었을까? 지금도 생각과 감정으로 수없이 명멸했다 사라지는 현상을 받아들인다. 조금이라도 이 괴로움에서 어떻게 하면 벗어날까를 고민한다. 삶의 본질과 의미를 다시 찾고자 생각과 감정을 지켜보며 침묵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나의 몸과 마음을 재배열 시켜보고자 뒤적여 본다. 이 그림을 만들 당시 남보다 늦은 나이에 미대를 졸업하는 나를 돌아봤다. 졸업전을 앞두고 작품고민에 빠졌다. 우여곡절 많았던 지난 삶을 반추해보는 것으로 가닥을 잡아가고 있었다. 그것은 현재보다는 과거에 대한 회한 속에 쌓아온 내 자신의 모습, 내 스스로 상처를 만들고 지니고 있는 나의 몸에 있는 상처의 흔적 등을 일종의 자화상으로 인물 없는 자화상을 표현하려 하였다. ‘나는 누구인가’의 화두처럼. 그래서 내몸을 주목했다. 곳곳에 난 상처의 흔적을 사진으로 찍고 포토샵으로 확대하여 한지에 프린트하고 그 위에 시간의 흐름을 붓으로 드로잉한 작품이다. 상처난 곳을 중심으로 만남과 충돌, 순환과 리듬, 율동, 파동같은 선으로 끊어질 듯 이어지고 연결하고 부서지는 표현을 동양화의 특질인 선으로 표현하였다. 예기치 않은 형상, 알 수 없는 형상이나 무의식적 상징을 드로잉 하기도 하고 ... 우리가 보는 세계는 사실 알 수 없다. 그 모름이 신비이고 현상 너머 본질은 형상 없는 연결된 통합된 비물질 의식의 세계다. 우리가 명명한 세계는 실체가 아닌 우리 생각이 만들어 놓은 홀로그램이자 실체가 없는 허상이라는 생각이 지금은 더 확고하다. 세월이 흐른 뒤에 명상을 통해 내가 알고 있는 세계란 분리가 아닌 서로 통합되고 연결된 하나의 세계임을 체득했다. 자연을 통해 희열로 체험한 것도 있고, 고통이 사라지는 경험 등 오로지 자신의 힘으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나이를 먹어 가면서 경험해 왔기 때문이다. 이 그림을 제작하던 시절은 갈증과 방황, 치기와 객기로 점철된 시기라 제목을 '흐르는 나'로 붙였다. 이 고민은 이후 지금 이 순간 만이 영원한 현재로 의식를 넓혀 ‘지금이순간’, ‘바로지금여기에서’라는 일련의 작품제목으로 표현 확장됐다. 대학원에서 '흔적의 추상표현연구'라는 논문으로 정리되어 갔다. 졸업하면서 본격적으로 작품활동을 하려던 때 결혼이라는 인연으로 공백이 생겼다. 그래도 살아가면서 이에 대한 관심은 여전히 진행형이고 고민중이다. 현상과 본질, 생각과 감정, 의식의 차이, 신과 인간의 관계 등 일련의 고난 속에서 방황과 고통을 마주하면서도 늘 주시하는 나의 의식은 현재 참회, 명상, 기도로 이어지고 있음도 그만한 이유가 있다 하겠다. 이 때의 그림과 함께 작업노트로 도록에 남겨진 몇 개의 글과 내용을 남겨본다. 미숙한 젊은날의 의식이지만 다시는 올 수 없는 젊은날 있는 그대로의 기록이다. 이제는 추억이고 이렇게 기록이 남아있기라도 해서 감사하다. 나이를 먹었다고 깊이가 있어진 것도 아니다. 아직도 한걸음 나아가기 힘든건 현상은 뛰어넘을수도 없거니와 그동안 얕은 체험으로 알았다고 생각한 오만을 알아차리지 못함과 오래된 습식에 굳어진 정신적인 벽이 크고 태생적 무지와 나태, 게으름일 것이다.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한상범은? = 제주제일고, 홍익대 미술대학 동양화과를 나와 홍익대 미술대학원에서 동양화를 전공했다. 담묵회 창립회원, 아티스트그룹 '정글' 회원, 민족미술협회 회원, 한국미술협회 노원미술협회 회원, 디자인 출판 일러스트작가, 한강원 조형물연구소 디자이너, 서울 제주/홍익조형미술학원 원장, 빛 힐링명상가로 활동하고 있다.
◆ 박괘(剝卦) 박(剝)은 싹둑 자르다, 벗겨내다, 쇠패(衰敗)하다 뜻이다. “삼십년은 황하의 동쪽이요 삼십년은 황하의 서쪽이라.”(『유림외사(儒林外史)』) 10년이면 강산도 변하는 것처럼 세상사는 돌고 도는 것이다. 발전과 쇠패는 결국 상대적이다. 정상적이다. 발전했다고 우쭐거릴 필요 없고 쇠패했다고 의기소침할 필요 없다. 태연하게 맞이하라. 시대의 추세에 순응하라. 적절하게 도움을 구하면 난관을 빨리 벗어날 수 있다. 쇠패하게 되면 어떻게 하여야 할까? 눈 깜짝할 사이에 모든 것이 다 ‘연기처럼 없어지거나 사라지’게 된다. 얼마나 많은 산이 평지가 됐는가? 높다란 건물이 얼마나 많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던가. 그렇다. 견고한 성벽도 무너질 때가 있다. 아무리 완벽하다 하여도 결국은 쇠패(衰敗)할 시간은 도래한다. 속세의 모든 것은 끊임없이 생겨나고 사라진다. 당신이 사물 발전의 규율을 파악했다면 쇠패는 늦출 수 있다. 심지어 쇠퇴(衰退)해 가는 형세를 만회할 수 있다. 쇠패를 마주하면 우리는 시대의 추세에 순응하면 된다. 『주역』은 말한다. “박(剝)은 가는 것이 이롭지 않다.” “박(剝)은 깎아냄이다. 부드러움이 굳셈을 변화시킨 것이니, ‘가는 것이 이롭지 않음’은 소인이 자라나기 때문이다. 따라서 멈추는 것은 상을 보았기 때문이고 군자가 사라지고 자라나며 차고 빔을 숭상하는 것은 하늘의 운행이기 때문이다.” 벗겨내는 것은 싹둑 잘라낸다, 없앤다는 뜻이다. 괘가 음이 다섯이고 양이 하나이니, 음이 처음 아래에서 생겨 점점 성대한 극치까지 자라나 여러 음이 양을 사라지게 하기 때문에 음이 양을 바꾸는 것이다. 행동하는 데에 불리하다. 소인이 일을 주관하기 때문이다. 온순하다. 걸음을 멈추고 나아가지 않는다. 상황을 관찰하여야 한다. 군자는 쇠락과 생장, 만족과 결손을 중시한다. 그것은 하늘의 운행이기 때문이다. 이화희(李化熙, 1594~1669)는 명나라 숭정(崇禎) 7년에 진사가 됐다. 그가 관리로 있을 때는 바로 틈왕(闖王) 이자성(李自成, 1606~1645)이 봉기한 시기다. 숭정 황제는 그를 유림(楡林, 섬서성 북부 명나라 장성 9진鎭의 하나) 삼변(三邊) 총독에 임명하고 10만 대군을 통솔해 틈왕의 봉기군을 방어하라고 했다. 그런데 이화희 부대가 다 배치하기도 전에 파죽지세로 달려온 틈왕의 대군이 북경을 공격하자 숭정황제는 매산(煤山)에서 목매어 죽었다. 이화희는 어쩔 수 없이 부대를 이끌고 고향인 산동 주촌(周村)으로 내려갔다. 시국의 변화를 자세히 살피기 위해서였다. 당시에 주촌은 전란의 고통을 겪을 대로 겪은 상태였다. 이화희가 군대를 이끌고 주촌에 도착하자 군수품을 가지고 오게 되면서 현지의 구매력을 증대시켰다. 전란으로 혼란한 시기에 상대적으로 안정된 대피소 역할도 했다. 주변의 향신(鄕紳), 관료, 상인과 백성이 잇달아 주촌으로 이주하였다. 인구가 증가하자 소비 요구가 대폭으로 증가하였다. 주촌은 전대미문의 번영을 맞으면서 산동 최고의 상업 중심지가 됐다. 청 왕조가 북방을 평정하였을 때 명 왕조가 쇠패하는 것을 본 이화희는 시대의 흐름에 순응해 청 왕조에 귀순하였다. 공부우시랑이 됐다. 나중에는 계속 승진해 형부상서가 되어 지위가 명 왕조보다도 현저하게 높게 됐다. 그런 중에 이화희는 요직에 앉아 있었으나 만주족 통치자가 한족 관원을 차별대우하는 것을 느꼈다. 청 순치(順治) 11년, 순치황제는 영대에서 여러 신하와 연회를 베풀었다. 대신들에게 부모의 상황을 물을 때 이화희는 곧바로 땅에 엎드려 황제에게 자신의 모친이 83세라 고향으로 돌아가 노모를 봉양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청하였다. 황제는 감동받아 당장에 그의 청구를 윤허하였다. 그렇게 이화희는 청 왕조에서 주동적으로 사직해 귀향한 한족 관리가 됐다. 당시 황제가 그에게 무엇을 원하느냐고 물었을 때 그는 고향의 세금이 너무 중하니 황상께서 은혜를 내려 특혜를 달라고 요구했다고 전한다. 황제는 잠시 생각하다가 국가의 세금을 면제할 수 없지만 그가 국가에 공이 많으니 하루 세금을 면하도록 해주겠다며 친필 지시를 내렸다. 이화희는 성지를 받들고 고향으로 내려가면서 마음속으로 하루 면세가 무슨 필요가 있겠느냐고 생각하였다. 곧바로 사당 아래에 묻어두었다. 그런데 생각지도 않게 매일 밤 성지를 묻어둔 곳에서 붉은 빛이 사방으로 발하면서 잠을 이루지 못하게 하는 게 아닌가. 이화희는 어쩔 수 없이 꺼내서는 집으로 가져갔다. 하루는 곰곰이 생각해 봤다. 황제께서 하루 세금을 면제해 준다는 것은 다른 뜻이 있는 게 아닐까? 갑자기 영감이 떠올랐다. 곧바로 지방 관리를 불러 성지를 비석에 새기게 하고는 큰길 북쪽 끝에 세우도록 했다. 그렇게 하니 사람들은 아무 날이라도 그 비석을 보기만 하면 ‘오늘은 면세’가 됐다. 이때부터 감히 터무니없이 무거운 세금을 징수하는 사람이 생기지 않으면서 주촌은 빠르게 발전하기 시작하였다. 물론 이 이야기는 민간전설이다. 가공한 흔적이 어찌 없으랴. 사물의 흥망성쇠는 사회가 발전하는 필연이다. 사람의 의지로 바꿀 수 없다. 그렇기에 우리가 인위적으로 바꿀 방법이 없다. 그저 시대의 흐름에 순응하면서 온힘을 다하여 일을 더 완벽하게 처리하려 노력할 뿐이다. 쇠패는 사람에게 훼멸적인 타격을 주는 경우가 많다. 개인 역량으로는 근본적으로 피할 방법이 없다. 그럴 때는 외부의 도움을 얻을 방법을 찾아야 한다. 도움을 얻어 자기의 역량을 증대시켜야 한다. 외부의 힘과 함께 쇠패가 가지고 오는 충격을 흡수하면서 손상을 최대한 줄여서 가볍게 하고 신속하게 원기를 회복하여야 한다. 『주역』은 말한다. “‘평상을 가로댄 나무에서 깎음’은 함께 하는 이들이 없기 때문이다.” 침대 다리를 없애버리면 지탱할 것이 없게 되어 버린다. 그렇다. 사람이 다리 한 쪽이 없는데 외부적으로 지탱할 것이 없으면 일어설 방법이 없다. 최소한 지팡이로 지탱해야만 다시 곤경을 벗어날 수 있고 자유를 얻을 수 있다. 그렇기에 우리는 주위의 모든 외부의 힘을 빌리는 방법을 알아야 한다. 그렇게 하여 빠른 시일 내에 쇠패에서 벗어나야 한다. 쇠패와 곤경은 두려운 것이 아니다. 두려운 것은 쇠패한 후 가지는 의기소침이다. 쇠패에 당면하였을 때 꿋꿋하여야 한다. 자신감을 잃지 말아야 한다. 용감하게 앞으로 나아갈 수 있어야 한다. 원조의 손이 당신의 손바닥 한가운데로 향할 때까지 나아가야 한다. 외진 곳에서 혼자 방향을 잃게 되었을 때, 당신은 윗옷을 벗고 높은 곳으로 올라가야 한다. 큰소리로 도움을 청하면서 한쪽으로는 윗옷을 흔들어야 한다. 도움을 구하는 신호를 보내면서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의 주의를 끌어내야 한다. 마음의 평형을 잃어 가치관과 신념이 거대한 충격을 받았을 때, 우리가 하여야 할 일은 친한 사람과 시원시원하게 얘기를 풀어내어 그 속에서 가르침을 얻는 것이다. ‘영혼을 위한 닭고기 수프’〔미국의 잭 캔필드(Jack Canfield) 등〕를 먹는 것처럼 마음을 치유하여야 한다. 사업이 쇠패하기 시작할 때, 우리는 마땅히 시대의 추세에 순응하면서 적절하게 외부의 도움을 구하여 다시 진용을 재정비하고 동산재기 하여야 한다. 인류의 행위는 대자연의 운행 규율에 순응하여야 한다. 위난이 잠복한 시기에는 앞질러 알아차리고 담담하게 여러 가지 담대한 결정과 마주하라. 어느 날, 여러 가지 어려움이 연속적으로 당신에게 정면으로 다가오거들랑 온힘을 다하여 최후의 일격을 준비하라. 과정에 전력투구하라. 결코 믿음을 잃어서는 안 된다. 아쉬움을 남기지 말라. 그러면 족하다. 흔들리며 변화를 구하는 시대에 처하였다면, 지향성이 있고 포부가 있는 사람이라면, 마땅히 참선해 삼매경에 이른 것처럼 하고 고인 물처럼 마음을 고요히 하여야 하리라. ***** 剝卦 ䷖ : 산지박(山地剝) 간(艮: ☶)상 곤(坤: ☷)하 박은 가는 것이 이롭지 않다.(剝,不利有攸往.) 「단전」에서 말하였다 : ‘박(剝)’은 깎아냄이다. 부드러움이 굳셈을 변화시킨 것이니, ‘가는 것이 이롭지 않음’은 소인이 자라나기 때문이다.(彖曰,剝,剝也.柔變剛也,不利有攸往,小人長也.) 따라서 멈추는 것은 상을 보았기 때문이고, 군자가 사라지고 자라나며 차고 빔을 숭상하는 것은 하늘의 운행이기 때문이다.(順而止之,觀象也,君子尙消息盈虛,天行也.) 「상전」에서 말하였다 : 산이 땅에 붙어 있는 것이 박(剝)이니, 위에서 그것을 본받아 아래를 두텁게 하여 집을 편안하게 한다.(象曰,山附於地,剝,上以,厚下,安宅.) ‘평상을 가로댄 나무에서 깎음’은 함께 하는 이들이 없기 때문이다.(剝牀以辨,未有與也.) [傳] 박괘(剝卦䷖)는 「서괘전」에서 “비(賁)는 꾸미는 것이다. 꾸밈을 다한 뒤에 형통하면 다하기 때문에 박괘로 받았다”라고 했다. 사물이 꾸밈에 이르면 형통함이 다하고, 다하면 반드시 되돌아가기 때문에 비괘(賁卦䷕)가 끝나면 박괘다. 괘가 음이 다섯이고 양이 하나이니, 음이 처음 아래에서 생겨 점점 성대한 극치까지 자라나 여러 음이 양을 사라지게 하기 때문에 박괘가 됐다. 두 몸체로 말하면 산이 땅에 붙어 있다. 산이 땅위로 높이 솟아 있어야 하는데 도리어 땅에 붙어 있으니, 무너져 깎이는 상이다. ☞이권홍은? =제주 출생. 한양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나와 대만 국립정치대학교 중문학과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국현대문학 전공으로 『선총원(沈從文) 소설연구』와 『자연의 아들(선총원 자서전)』,『한자풀이』,『제주관광 중국어회화』 등 다수의 저서·논문을 냈다. 현재 제주국제대학교 중국어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사교의 상황이 허락만 된다면 특별한 옷을 입고 모두의 주의를 끌 수 있도록 해도 된다. 그러면 타인이 멀리에서 우리를 보더라도 좋은 인상을 가질 수 있다. 어쩌면 상대방이 어떤 구실을 찾아 곁으로 오면서 물을 수도 있다. “죄송하지만, 제가 당신을 주의하여 봤는데, …… 입으신 게 뭐지요?” 이 방법은 여성에게 더 중요할 수도 있다. 그렇더라도 주의하여야 할 것이 있다. 의복의 독특성이 상궤를 너무 벗어나면 안 된다는 점이다. 그렇지 않으면 타인에게 환심을 사려고 별짓을 다 한다는 나쁜 인상을 심어줄 수 있다. 너무 최신 유행만을 따라가면서 유별난 옷차림을 하면 타인이 가볍고 천박하다는 느낌을 가질 수 있다. 더 심하게 말하면 웃기게 볼 수도 있다. 반면에 복식이 너무 시대에 뒤떨어지면 사람들이 융통성 없는 수구이고 낡아빠진 독단가로 여길 수 있다. 정결하면서도 적절한 복장 의용은 상대방에게 좋은 인상을 남기게 된다. 시기적절한 차림은 타인의 마음속 지위를 높일 수 있을 뿐 아니라 일종의 예의이기도 하다. 오늘날은 개성을 중시하는 사회다. 형상은 중요하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만 좋은 형상을 이룰 수 있을까? 첫째, 신용을 지킨다. 타인에게 동의하거나 승낙한 것은 빚을 진 것처럼 중요하다. 자기 친구 앞이라 할지라도 똑같다. 신용을 지키는 것은 개인 형상을 좋게 만드는 가장 중요한 요소다. 둘째, 공통점이다. 다른 사람과 공통점을 가질 수 있도록 노력하고 피차간에 공통의 지향이나 흥미를 발굴하면 서로 간의 거리를 좁힐 수 있다. 셋째, 관심과 배려가 있어야 한다. 우리 주변의 모든 일과 환경에 관심을 가지고 주의하여 관찰하고, 직장 동료와 친구들에게 배려해주어야 한다. 우리가 만든 인맥에 관심과 배려가 있어야 한다. 넷째, 근거가 있고 내용이 있는 말을 하여야 한다. 공수표를 남발해서는 안 된다. 호언장담을 해서는 안 된다. 자기가 결정할 수 있는 일에 책임감이 있어야 한다. 반드시 언행일치를 지켜야 한다. 다섯째, 자아표현 적당하게 우리 개인의 능력과 수준을 펼쳐보여야 한다. 타인에게 인정받고 싶으면 첫인상이 가장 중요하다. 그렇기에 형상을 수립하여야 한다. 개인 수양은 자아 형상을 수립하는 본질적인 요구이기에 수양을 높여야 한다. 우리 곁에는 다음과 같은 형상이 드물지 않다. 입을 열기만 하면 상스러운 말을 늘어놓는 사람이 있다. 공공장소에서 아무렇게나 침을 뱉는 사람도 있다. 타인에게 요구만 하고 자신이 풍격을 표현하고 발양해야 할 때에는 종적도 보이지 않는 사람이 있다. 이러한 문제를 처리하려면 우리는, “내가 하고자 하지 않는 바를 남에게 베풀지 말라.”(『논어論語·위령공衛靈公』) 라는 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이 말만 실천하려 노력하면 충분하다. 생각해 보라. 당신과 대화하는 사람이 입만 열면 욕이 튀어나오는 사람이라면 당신은 그가 하는 말을 참고 그냥 들을 수 있는가? 당신 앞에 앉아있는 사람이 아무렇게나 침을 뱉는다면 당신은 본체만체하며 계속 기쁘고 즐거워할 수 있겠는가? 당신과 왕래하는 사람이 하루 종일 당신의 흠을 들추어내고 우쭐거린다면 당신은 그와 계속 왕래할 수 있겠는가? 우리는 자신에게만 주의를 기우려 타인이 어떻게 보고 있는지를 도외시하는 경우가 많다. 타인의 느낌을 눈여겨보지 않으면 난처한 일이 많이 발생하게 된다. 타인이 보는 자신의 형상은 점차 와해된다. 이외에 쇼를 하는 것, 자기를 내세우는 것(주제넘게 나서는 것), 개성을 선양하는 것 3가지의 개념을 확실히 분간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이 치열한 경쟁 시대에 우리는 개성의 해방, 개성의 선양을 제창하고 있다. 개성을 선양하는 것만이 자기 자신이 뭇 중생 속에 매몰되는 것을 피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는 앞서 말한 3가지 개념이 서로 별개의 것임을 확실하게 알아야 한다. 쇼를 하며 나불거리는 것은 잔재주를 부리는 것이다. 거짓부렁 자태로 사람의 눈을 속이는 것이요 사람의 인식을 모호하게 하는 것이다. 쇼를 하는 것은 결국 간교함이 있는 얌체 같은 행동이다. 결론적으로 좋은 개인형상은 성공적인 사람 간의 교제를 통하여 점진적으로 수립된다. 우리가 성공적으로 사교하려면 교제하는 상대가 편함을 느껴야 하고 당신과 교제하기를 원해야 한다. 게다가 당신과 만남이 즐거운 일로 여겨야 한다. 우리가 노력하면 좋은 개인형상이 가지고 오는 무궁한 매력을 체험하게 될 것이다. ***** 賁卦 ䷕ : 山火賁(산화비) 간(艮: ☶)상 리(離: ☲)하 비는 형통하니(고) 가는 것이 조금 이롭다.(賁,亨,小利有攸往.) 「단전」에서 말하였다 : “비괘가 형통함”(“비”는)은 부드러움이 와서 굳셈을 꾸미기 때문에 형통하고, 굳셈을 나누어 올라가서 부드러움을 꾸미기 때문에 가는 것이 조금 이로우니 하늘의 문채이다.(彖曰賁亨,柔來而文剛,故亨,分剛上而文柔,故小利有攸往,天文也.) 하늘의 문채를 관찰하여 사시의 변화를 살피며, 사람의 문채를 관찰하여 천하를 변화시켜 이룩한다.(觀乎天文,以察時變,觀乎人文,以化成天下.) [傳] 사물은 꾸민 다음에 형통하기 때문에 “근본이 없으면 서지 못하고 문채가 없으면 행하지 못한다”고 하였으니, 실질이 있으면서 꾸밈을 더하면 형통할 수 있다. 문채로 꾸미는 도는 광채를 더할 수 있기 때문에 나아가는 데에 조금 이로울 수 있다. ☞이권홍은? =제주 출생. 한양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나와 대만 국립정치대학교 중문학과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국현대문학 전공으로 『선총원(沈從文) 소설연구』와 『자연의 아들(선총원 자서전)』,『한자풀이』,『제주관광 중국어회화』 등 다수의 저서·논문을 냈다. 현재 제주국제대학교 중국어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최근 귀향한 친구가 가게 문을 열면서 요청하고 그려준 그림을 소개할까 한다. 고향에 돌아와 예전 살던 동네에 있는 약 20여평 규모의 3층 옥탑이 있는 건물을 매입, 1층엔 본업인 공인중개사무소를 차리고, 2층에는 와인바를 만든다는 것이었다. 1층엔 부귀장수를 상징하는 모란그림 한점을, 2층에는 와인바에 걸맞는 모던한 느낌의 작은 그림을 4점 그려주었다. 2층 와인바에 이 그림을 포함하여 소품 3점이 현재 걸려 있다. 과거의 운치를 간직한 흰색 건물에 2층 창문 너머로 들어오는 은은한 풍경과 빛이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가게다. 소박한 가게는 자기가 살던 집 근처에 있다. 이 친구가 살아온 삶에 대해서는 자세히 모른다. 하지만 이 친구도 삶의 절박한 시절이 있었음을 지금은 안다. 지금은 그 고비를 넘겨 고향에 성공적인 정착을 하였으니 축복할 일이고 감사할 일이다. 이 친구의 평소 따뜻한 성정을 알기에 그림을 그려주고 싶었고, 향후 밝은 미래를 기원하는 축복의 마음을 담아 이 그림을 그렸다. 이 인연이 소중히 이어지길 바란다. 사람은 누구나 욕심을 부린다. 그러나 주어진 본분과 자기 모습 그대로 가족과 함께 감사하며 사는 이 친구가 부럽다. 여기에 오기까지 수없는 난관이 있었으리라 짐작을 하지만 작은 나무들이 있는 쉼터의 풍경에도 감사함을 느끼는 친구의 모습이 맑고 순수하다. 귀향하여 늘 가슴에 있던 고향 바다와 하늘, 가슴깊이 들어오고 나가는 맑은 공기, 언제나 힘을 주는 가까운 친구들이 이 친구의 가슴에 늘 충만함으로 넘치길 바란다. 그림 때문에 리모델링 중에 방문한 이 친구의 건물은 적당한 위치와 장소와 더불어 아름다움과 소박함, 편안함을 주고 있었다. 그리고 건물 앞 조그마한 정원같은 쉼터의 풍경과 함께 건물 내부의 창문 커튼 사이로 은은히 들어오는 빛! 씨줄 날줄의 에너지들을 나는 느꼈다. 그 느낌을 와인병에 담아 빛의 느낌을 전달해 보려 하였다. 투명하고 은은하게 들어오는 빛을 와인병을 매개로 하여, 빛의 수용과 굴절 반사를 납작붓에 물감을 뭍혀 가로 세로로 에너지를 담은 붓질과 획, 그리고 다양한 빛깔로 나타내 보았다. 그 술병 하나 하나가 우리의 모습임을 자각하고 또한 그 모든 것이 빛 하나로 공명하고 있음을 내용으로 하고 있다. 어둠에서 빠져나와 이제 안정된 이 밝은 에너지를 감사히 품고, 그 에너지가 언제나 서로 공명하며 살아있는 공간, 늘 풍족한 공간, 멋진 공간이 되기를 바란다. 그 어떤 공간이라도 생명력 있는 마음과 에너지가 담긴 그림이나 조각 같은 예술작품이 설치되어 있는 것과 인쇄된 그림이나 대량생산된 이미지가 걸려 있는 것과는 그 느낌이나 가치가 다르다. 사람이 만든 예술작품 하나로 혹은 진짜와 가짜의 차이로 이른바 그 가게의 품격과 분위기가 달라진다. 이 공간에 작품을 걸 수 있는 것도 어쩌면 나에게는 영광이다. 지금와서야 더 느끼는 것이지만 예술이라는 그 내재된 깊이를 점점 더 알 수 없다. 공부가 부족하고 나태와 과거의 습식에서 벗어나 새로움을 추구하는 마음을 내지 못함도 결국 내 문제다. 내 자신도 모르는 상태에서 예술을 하고 있다고 느끼는 요즘 드는 생각은 모든 생명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늘 공명하며 그 바탕은 사랑이고 자비라는 생각이 떠나질 않는다. 나의 무지가 깨져가고 다시 알에서 깨어나오듯이 더 큰 사랑으로 꽃피어나길 꿈꾸면서 말이다. 그런 마음이 담긴 작품이 성숙된 예술과 삶으로 이어져 가리라 믿는다. 모든 것과 사랑으로 공명하며 보편적 소통과 감흥이 일어날 수 있기를 꿈꿔본다. 또한 그 원천인 마음은 비물질적 너머에 있고, 외부에 없으며, 내 안에 늘 함께하는 그 무엇이다. 작가 스스로가 그걸 알고 있으며 늘 두드리고 현재에 깨어 있고 몰입하다 보면 그 원천에서 작가적 양심이 드러나고 예기치 않은 영감이 떠오르리라 믿는다. 또한 사랑과 용서, 자비의 근본이 없으면 외롭고 힘들고 삶의 의미가 없어지고 무기력 해진다는 것이다. 혼자서는 살 수도 없고 원하는 것을 이룰 수도 없다. 이 그림의 제목은 생명이라 명명하였다. 생명은 곧 공명이다. 남도 살리고 나도 살리는 길. 근원적 빛을 화두로 생명의 찬란한 노래를 담고 싶은 마음으로 그린다. 생명의 빛이 들어와 모든 무정물이든 유정물이든 모두가 그 근원의 빛, 원천의 빛으로 행복하기를 바란다. 강하고 세찬 가을 태풍이 한차례 지나갔다. 오만했던 인간도 자연 앞에서는 한없이 약해지고 두려워할 수밖에 없는 나약한 인간이 보인다. 태풍의 그 울부짖는 바람소리는 고통도 두려움도, 무지와 오욕에 물든 모든 것을 정화하고 치유하는 자연의 엄중한 소리로 들린다. 스스로 늘 밝게 빛나야 한다, 지금 이 순간도 끊임없는 생명의 호흡으로 들고 나며 본질인 나를 생명으로 존재케 하는 근원의 에너지를 믿고 감사하다. 자아(ego)의 오만과 편견을 내려놓고, 버리고, 한결 가볍게 한걸음 한걸음 내딛길 바란다. 빛은 생명이고 사랑이고 공명이다. 너와 나를 분리하는 좁은 벽을 넘어 하나로 공명하는 넓은 마음을 바라보며 오늘도 108배 참회 기도를 해본다. 누군가 내 그림이 위안이 되었으면 한다. 모든 것에 감사하다. 모든 것이 배움과 성장의 계기다.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한상범은? = 제주제일고, 홍익대 미술대학 동양화과를 나와 홍익대 미술대학원에서 동양화를 전공했다. 담묵회 창립회원, 아티스트그룹 '정글' 회원, 민족미술협회 회원, 한국미술협회 노원미술협회 회원, 디자인 출판 일러스트작가, 한강원 조형물연구소 디자이너, 서울 제주/홍익조형미술학원 원장, 빛 힐링명상가로 활동하고 있다.
◆ 비괘(賁卦) 비(賁)는 문식하다, 꾸미다 이다. 정치, 경제 제도 등을 포함한 인류의 생활방식은 바로 인류의 문식이다. 그래서 인문(人文)이라 한다. 사람의 복장, 형상, 기질, 수양은 인문에 속한다. 바로 인문이 있기에 인류의 광범위한 교류와 소통이 있다. 몸가짐과 옷차림이 맞지 아니하면 어떻게 할까? 개인 형상은 점포의 외관과 같다. 개인의 형상이 좋고 나쁨은 사람 간 교제의 성패를 직접적으로 결정한다. 개인 형상은 자신이 끊임없이 노력하여 자신의 도덕수양을 충실히 높임으로서 반영된다. 그래서 옛 사람이 말했다. “뿌리가 없으면 제대로 서지 못하고, 무늬가 없으면 제대로 실행되지 않는다.”(『예기禮記·예기禮器』) 우리는 살면서 어느 지도자는 친화력이 강하고 어떤 사람은 붙임성이 좋아 모두가 그와 교류하기를 원한다는 얘기를 자주 듣는다. 이것이 개인형상이 비교적 좋다는 표현이다. 개인형상은 하루사이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좋은 개인형상은 세월이 쌓여서 만들어진다. 좋은 방면을 끊임없이 타인에게 드러내면서 좋지 않은 점은 점차 개선해 나가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좋은 개인형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반드시 자신의 언행을 주의하여야 한다. 『주역』은 말한다. “비는 형통하니(고) 가는 것이 조금 이롭다.” 무슨 말인가? 문식(文飾, 문채:文彩)은 소통하는 까닭에 행동하는 데에 이롭다는 뜻이다. 『정씨역전(程氏易傳)』은 해석하였다. “문채로 꾸미는 도는 광채를 더할 수 있기 때문에 나아가는 데에 조금 이로울 수 있다.” 바꿔가면서 일거수일투족을 타인에게 남기는 인상에 주의하여야 하는 것 이외에 복식과 의용(풍채)의 치장도 중요하고도 중요하다. 만날 때에 복식과 의용은 곧바로 상대방 시계에 들어가기 때문이다. 직접적으로 개인의 수양과 기질, 정조가 반영된다. 왕왕 상대방이 우리의 외재된 가치를 판단하는 중요한 근거가 된다. 타인이 우리의 내재된 재능을 인지하기 전에 유일하게 노출되는 교류의 표준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윗옷 옷깃이 헤지거나 구두가 꾀죄죄하거나 양복의 양식이 지난 것이거나 넥타이가 단정하지 않다면 타인의 눈에는 우리가 빈털터리거나 아니면 그야말로 에누리 없는 칠칠치 못한 놈으로 볼 것이다. 반면 매일 침착하고 여유 있게, 선명하고 아름답게 사무실로 들어선다면 우리는 분명 아무런 이유도 없이 그의 사업이 하루하루 상승세를 타고 있다고 추측할 것이다. 교제 과정에 주의하여야 할 것이 있다. 적은 노력으로 많은 성과를 얻으려 해야 한다는 점이다. 처음 타인과 만날 때에 이런 방면에 공을 들여야 한다. 적절하게 포장해야만 타인에게 높은 평가를 받을 수 있다. 왜 ‘포장(包裝)’이란 두 글자를 쓰는 걸까? 두 글자의 문자 기원으로 보면 두 글자는 회의자로, ‘포(包)’1) 뜻은 뱀 한 마리가 가죽으로 싼 형태다. 그럼 ‘장(裝)’은? ‘의(衣)’로 ‘장(壯)’의 외관을 두르는 것이 ‘장(裝)’이다. 다시 말해 사람은 옷차림〔의장(衣裝)〕을 점포가 장식하는 것처럼 해야 한다는 뜻이다. 만약 우리가 능력이 있어 ‘용포’를 입는다면 자연스레 모든 것이 달라질 것이다. 좋은 깃털이 좋은 새를 만드는 것처럼 옷이 날개가 아닌가. 누구라도 옷만 잘 입으면 근사하다는 말은 포장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우리가 까다로운 교제 대상을 만날 때 모든 것을 세세하고 치밀하게 포장하여야 한다. 그래야 상대방의 주의력을 충분히 움직이게 하여 타인의 관심을 이끌어낼 수 있다. 이렇게 하는 데에는 많은 돈이 필요하지 않다. 관건은 자신의 수양과 품격에 있다. 옛 사람이 말하지 않았는가? “가난한 집이라도 깨끗이 청소하고 가난한 집 여자라도 단정하게 빗질하면 그 모습이 비록 화려하게 아름답지는 못할지라도 그 기품은 저절로 풍겨난다.”(『채근담』) 이 도리를 잊지 않으면 된다. 매일 일상 업무에 참가하면서 문을 나서기 전에 자신을 살펴봐야 한다. 구두는 닦았는가? 바지의 통은 줄이 나 있지는 않은가? 와이셔츠 단추는 잘 채웠는가? 수염을 깎았는가? 머리는 잘 빗었는가? 옷은 잘 다려졌는가? 물론 깨끗하고 말끔하게 차려입는 것 이외에 옷차림에서 중요한 점은 적절한가와 개성이 있는가이다. 복장과 옷차림은 개인의 심미 정서와 수양을 반영할 수 있다. 우리가 자신의 옷차림이 기질, 직업과 서로 일치시킬 수만 있다면, 형체와 연령과 서로 조화시킬 수 있고 분위기와 장소와 서로 어울리게 한다면, 의심할 여지없이 타인에게 예지 있고 신중하며 여유 있고 점잖으며 소탈하고 자연스럽다는 인상을 심어주게 된다. ‘포장’은 적절하여야 한다. 이것이 가장 기본적인 요구다. 복식의 개성도 타인이 우리의 심미관과 성격 특징을 판단하는 기준이 된다. 적절하면서도 개성을 갖춘 포장은 타인보다도 유행에 한 줄 앞서야 한다. 아름다우면서도 어엿하여야 한다. 그렇다고 너무 앞서 나가서는 안 된다. 그저 자신의 체형에 알맞고 멋있으면서도 새로운 뜻을 지닐 수 있는 의복을 입어야 한다. 그래야 타인이 우리가 빨리 적응하고 진취적인 기상이 충만하다고 느끼게 될 것이다. ☞이권홍은? =제주 출생. 한양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나와 대만 국립정치대학교 중문학과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국현대문학 전공으로 『선총원(沈從文) 소설연구』와 『자연의 아들(선총원 자서전)』,『한자풀이』,『제주관광 중국어회화』 등 다수의 저서·논문을 냈다. 현재 제주국제대학교 중국어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1) 회의다. 소전(小篆) 자형은 외변이 ‘勹’, 중간은 ‘巳’자다. ‘자(子)가 아직 이루어지지 않는 모양이다.’ ‘勹’는 ‘包’의 본자로 본 뜻은 ‘싸다(裹)’다. 사람이 회임한 모양이다. 巳가 가운데에 있다. 자(子)가 아직 이루어지지 않는 모양이다.(『설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