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에서 춤추는 소녀 - 사긴 베르키날리에바(Sagyn Berkinalieva) 그래, 난 남자의 말을 믿었어요. 그리고 나는 조롱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그때 나는 너의 차갑고 검은 눈을 너무나 동경했는데, 하지만 나는 당신의 시야 너머에 있는 사랑을 찾고 있었습니다. 어쩌면 당신은 나를 연약한 영혼으로 생각하며, 남자의 존경을 받을 가치가 없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르지만. 그럼 왜 그렇게 당신은 사랑스러운 역할을 했나요? 그렇다면 나를 헐뜯도록 버려두십시오. 이 일방적인 사랑은 나를 화나게 하지 않을 것입니다. 나는 이성을 잃고 미쳐 가지는 않을 것입니다. 나는 당신 없이는 살 수 없습니다 – 예, 그건 안타깝습니다. 하지만 나를 다시 사랑해 달라고 애원하지 않을 거예요. 나는 나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무지한 사람이 내 가치를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참된 재판관은 전능자이에요. 당신에 대한 회한 없이 잘 살게요. 그리고 내 시가 호평을 받는다면 키르기스스탄에 영광과 명성을 가져다주겠습니다. 나는 굽히지 않는 전사입니다. 나는 피해자와 가깝다고 믿습니다. Girl dancing in the sky Yes, I let myself trust in the words of men And I became an object of derision. I so admired your cold, dark eyes then, But I was looking for love beyond your vision. Maybe you thought of me as a feeble soul, Unworthy of a man’s admiration. So why did you play such a loving role Then abandon me to denigration. This one-way love won’t drive me mad; I won’t lose my head and go insane. I can’t live without you – yes, that’s bad. But I won’t beg you to caress me again. I’ll do my best to sustain my dignity. How can the ignorant know my value? The one true judge is the Almighty I’ll live well with no regrets for you. And if my poetry earns acclaim I’ll bring Kyrgystan glory and fame. I am an unbowed warrior, me. I believe I’m close to vic ◆ 사긴 베르키날리에바(Sagyn Berkinalieva)= 1974년 키르기스스탄에서 태어났으며 2014년에 키르기스스탄 작가연맹에 가입했다. 키르기스스탄 작가연맹 회원, 중앙아시아 작가 연합 및 유라시아 창작 길드 회원이며 북미작가연맹 키르기스스탄 지부장이다. 오페라 클래식 작품에 관심이 많아 가끔 오페라를 부르며 무대에서 공연했으며 시낭송가이기도 하다. 사람의 본질과 내면세계를 감각적으로 인식하는 매우 특별한 시인으로 유명하다. 시집으로 ‘Girl Dancing in the Sky(하늘에서 춤추는 소녀)’ ‘A leaf covered with dust(먼지로 뒤덮인 나뭇잎)’, ‘Z Dancing in the Sky(하늘에서 춤추는 Z)" 등이 있다. ☞ 강병철 작가 = 1993년 제주문인협회가 주최하는 소설부문 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며 문단에 데뷔했다. 2016년 『시문학』에서 시인으로 등단했다. 2012년 제주대에서 국제정치전공으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제주대학교 평화연구소 특별연구원, 인터넷 신문 ‘제주인뉴스’ 대표이사, (사)이어도연구회 연구실장 및 연구이사, 충남대 국방연구소 연구교수, 제주국제대 특임교수, 한국해양전략연구소 선임연구위원, 제주통일교육센터 사무처장 등을 역임하고 현재 한국평화협력연구원 연구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제33대 국제펜클럽한국본부 인권위원이며 국제펜투옥작가회 위원으로 활동했다. 제34대 국제펜클럽한국본부 인권위원으로 재선임됐다. 국제펜투옥작가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신장위구르 자치구역의 대표적인 위구르족 작가 중의 한 명인 누르무헴메트 야신(Nurmuhemmet Yasin)의 「야생 비둘기(WILD PIGEON)」를 번역 『펜 문학 겨울호』(2009)에 소개했다. 2022년에는 베트남 신문에 시 ‘나비의 꿈’이 소개됐다. ‘이어도문학회’ 회장을 역임하였으며 이어도를 소재로 한 단편소설 ‘이어도로 간 어머니’로 월간 ‘문학세계’에서 주관한 ‘제11회 문학세계 문학상’ 소설부문 대상을 받았다. 한국시문학문인회에서 주관하는 제19회 ‘푸른시학상’을 수상했다. 강병철 박사의 시와 단편소설은 베트남, 그리스, 중국 등 여러 나라 언어로 번역돼 소개되고 있다. 최근엔 중국의 계간 문학지 《국제시가번역(国际诗歌翻译)》에도 강 작가의 시 두편이 소개되었다.
◆ 점괘(漸卦) 점(漸)은 점차, 차츰차츰 뜻이다. 사람이 끊임없이 자신을 끌어올려 향상시키려 하는 것을 비유한다. 특히 자신의 도덕을 향상시키는 것이다. 향상은, 단번에 이룰 수 없다. 차례대로 첨차 나아가야 한다. ‘두터운 덕으로 만물을 실어주는 것(厚德載物)’을 배워야 한다. 부단하게 자아를 향상시켜 목표를 실현하여야 한다. 조급하게 무모하게 돌진(突進), 분별없이 나아가면 어떻게 하여야 할까? 역사를 되돌아보면 우리는 많은 것을 알게 된다 : 전환기 때마다 난관에 부딪치지만 이외의 높은 곳까지 문명의 불꽃을 향상시켜서 신기원을 창출하였다. 거대한 전환기는 조그마한 변화에서 기원하였다. 하찮아서 말할 가치도 없는, 보잘 것 없는 기점에서 무한한 노정을 이끌어내어 다양하면서도 찬란한 역사를 엮어왔다. 기점이 만사만물을 배태했다고 말할 수 있다. 기점이 무궁한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고 무한한 희망을 품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만약에 발단만 보유한다면 모든 것은 공허하다. 다시, 완전한 기점은 영원히 존재할 수 없다. 뚜렷하고 명백하게 착실하고 성실하게 한 걸음 한 걸음 밟아가면서 탐색하지 않는다면 어찌 내일의 찬란함이 있다고 말하겠는가? 인생길에서 기점이 낮은 것은 대수롭지 않다. 순서에 따라 차츰차츰 진행하고 조금도 느슨하게 하지 않고 끝까지 견지해 나가며 세월이 쌓이듯이 날을 거듭해 나간다면 결국에는 낮은 곳에서 이상적인 피안으로 올라갈 수 있다. 『주역』은 말한다. “점(漸)은 여자가 시집을 가는 것이 길하니, 곧음이 이롭다.” 무슨 말인가? 여성이 시집갈 때 혼례 예절에 따라 순차로 행하는 것과 같이 일을 순서 있게 점차로 진행해 나가면 된다. 군자가 높은 산에 있는 나무가 점점 커다랗게 성장하는 상황을 보면서 덕행을 수양하고 사회의 풍모와 예절, 관습을 개선시켜 나간다. 일을 할 때 순서대로 점차 진행하여야 한다. 너무 조급하면 왕왕 서두르게 되고 일을 그르친다. 속히 이루려 하면 도리어 이루지 못한다. 결국 아무런 수확이 없게 된다. 끊임없이 자아를 향상시키려면 목표를 정하고 순서대로 점차 진행하듯 일을 해나가면 된다. 목적 달성에 급급하지만 않는다면 마침내 성공하게 될 것이다. 순서대로 차례차례 일을 진행하고 견실하게 일을 해나가려면 조급한 심리를 벗어나야 한다. 조급함에 대처하는 첫 걸음은 자신을 아는 것이다. 정확하게 자신을 평가하여야 한다. 주위에 능력 있고 뜻이 있는 사람이 너무나 많다는 것을 인정하여야 한다. 타인은 자신처럼 어리석지 않다는 것을 인정하자. 어떻게 되든 간에 두각을 나타내려고만 하지 않으면 된다. 간절히 원하고 바라면 반드시 이루어진다고 하지만 그것은 지향점이다. 성공하기 위해서는 개인의 노력이 필요하고 기회도 주어져야 한다. 좋은 운이 있다하여도 결코 조급해서는 안 되는 법이다. 목표를 너무 높게 잡지 않기 위해서는 모든 일이 진선진미(盡善盡美)하기를 바라서는 안 된다. 목표를 너무 높이 잡는 것을 피하려거든 모든 일이 진선진미하기를 바라지 마라. 첫째, 간명, 아담, 안정, 질서정연한 환경을 마련하여 정신적 긴장, 우울, 심리적 압박을 완화시키자.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색조를 선택해 방을 장식하자. 아름다운 시로 장식해도 좋다. 풍경화도 좋다. 서정적이 음악이 흘러나와도 좋다. 둘째, 일하는 데에 질을 강구하자. 너무 숫자에 매달려서는 안 된다. 개인의 정력과 능력은 한계가 있다. 지나치게 욕심 부리면 감당해 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다 감당할 수도 없으면서 욕심만 내면 왕왕 마음이 번거롭고 정신이 산란해진다. 바빠서 이리 뛰고 저리 뛰다보면 아무 것도 이룰 수 없게 된다. 급하게 이루려면 아무 것도 이룰 수 없다. 순서 있게 일을 처리하여야 한다. 한 가지 일을 정확하게 완성하는 것이 용두사미로 끝나는 여러 가지 일을 동시에 처리하는 것보다 훨씬 좋다. 셋째, 구체적이 일을 안배할 때에는 여지를 남겨두자. 예를 들어 3일이면 끝낼 수 있는 일이 있다할 때 4일이란 여유의 시간을 안배해 보자. 그 사이에 다른 일이 생길지는 모르지만 바빠서 두서없이 일을 처리하다 조급해지는 경우는 없게 된다. 오후 2시까지 처리가 가능한 일을 상대에게 승낙할 때에도 오후 3시까지 할 수 있다 얘기해 보자. 시간을 허비하는 경우는 있겠으나 약속을 이행하지 못하여 난처한 지경에 빠지지는 않게 된다. 이외에 고독을 즐겨라. 적막함을 이겨내라. 현대인은 대부분 화려함을 쫓고 번화한 것을 즐긴다. 적막함이나 고독을 참지 못한다. 사실 따지고 보면 창조적인 업무, 대대로 전해지는 명작은 대부분 적막한 환경, 고독 속에서 완성되었다. 헨리크 입센(Henrik Ibsen)은 『민중의 적』에서 말했다. “이 세상에서 가장 강한 인간이란 고독하고 혼자 사는 인간이다.” 성공한 사람 대부분은 장기적인 이익을 중시한다. 단기적인 향유를 버리고 큰 이익을 위하여 종사한다. 그런 일은 무미건조하고 단조로우면서 남들이 알아주지 않는 게 대부분이다. ☞이권홍은? =제주 출생. 한양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나와 대만 국립정치대학교 중문학과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국현대문학 전공으로 『선총원(沈從文) 소설연구』와 『자연의 아들(선총원 자서전)』,『한자풀이』,『제주관광 중국어회화』 등 다수의 저서·논문을 냈다. 현재 제주국제대학교 중국어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 이야기다. 대지진으로 폐허가 되어 버린 서울에서, 유일하게 멀쩡히 남은 황궁아파트로 생존자들이 모이며 시작한다. 아파트 주민과 생존자들의 갈등이 생기고, 주민 중에서도 ‘자가주민’과 ‘전세주민’을 나누며 사회의 궂은 면을 보여준다. 영화 내용 중 법률적 쟁점이 되는 줄거리만 추리면 다음과 같다. 대지진 발생 후 기온이 영하 26도까지 이르는 이상저온 현상이 발생하고, 생존자들이 혹한을 피해 황궁아파트로 몰려든다. 생존자들은 아파트 복도, 공동현관에서 생활하다가, 한 생존자가 아파트 호수를 차지하기 위해 아파트 주민을 찌른 뒤 불을 지르는 사건이 발생한다. 이 일을 계기로 아파트 주민은 주민회의를 통해 생존자들을 추방하기로 하고 물리력을 행사하여 추방한다. 시간이 지나고, 추방된 생존자들은 진열을 갖춰 황궁아파트로 진격하고 주민들을 살해한 뒤 아파트를 차지한다. 대지진 발생 직후, 아파트 주민이 아닌 생존자들이 아파트로 들어가도 괜찮은 것일까? 매정하지만, 어찌 됐든 타인의 주거지로 허락 없이 들어갔으니 주거침입죄가 성립하는 것은 아닐까? 형법에는 영화에서처럼 현존하는 위난을 피하기 위한 행위가 상당한 이유가 있는 때에는 벌하지 않는다는 원칙, ‘긴급피난’이 있다. 긴급피난에 해당하는 경우에는 위법성이 조각되어 처벌하지 않는다. 외부인들이 혹한을 피해 아파트에 무단 침입한 것은 현존하는 위난을 피하기 위한 행위임은 분명해 보인다. 작품에서 아파트 침입의 방법을 제외하고는 혹한을 피할 방법이 없어 보이고, 아파트 침입으로 보호되는 이익(생존자들의 생명)과 침해(아파트 주민들이 주거의 평온)를 비교해보면 보호되는 이익이 질적으로 우위에 있으므로 침입행위에 상당한 이유가 있다. 따라서 생존자들은 주거침입이라는 행위를 하였으나, 위법성이 조각되어 주거침입죄는 성립하지 않는다. 아파트 주민들이 외부인들을 추방하는 행위는 어떠한가. 아파트 외부는 영하 26도이며, 아파트 외에 혹한을 피할 장소는 없어 보인다. 결국, 이들을 추방하면 외부인들은 사망할 가능성이 아주 높다. 이러한 사정을 알면서도 외부인을 추방하였으니 살인죄가 될 것인가. 아니면 외부인들을 ‘죽이기 위해서’ 추방한 것은 아니므로 살인죄가 성립하지 않을 것인가? 여기서 등장하는 개념이 그 유명한 ‘미필적 고의’다. 아파트 주민들이 외부인들을 추방하면서, 자신들의 행위로 인해 외부인들이 사망할 가능성을 인식하였고, 그러한 위험을 용인하는 의사로 추방한 것이면 살인의 미필적 고의가 있다고 볼 수 있다. 다만, 추방행위와 외부인들의 사망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문제 될 수 있겠는데, 양자 사이의 시간적 근접성, 추방 당시 외부인의 건강상태 등 구체적 사안에 따라 달리 판단될 것이다. 외부인들이 아파트로 돌진하며 주민들을 살해하고 아파트를 차지한 것은 어떤가. 여전히 긴급피난으로 의율되어 살인죄의 죄책을 면할 수 있을까. 주민들에 대한 살인으로 침해되는 이익(생명)과 보호되는 이익(생명)이 질적으로 동등하므로 긴급피난의 상당한 이유가 결여되어, 살인죄의 죄책을 면하기 어려워 보인다. 형사법 관점에서 영화를 살펴보았으나, 당연하게도 법률 쟁점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점은 아니다. 영화는 재난에 대응하는 다양한 인간군상을 보여주고 관객에게 어떤 선택을 할지 묻는다. 외부인을 바퀴벌레라 칭하며 ‘방역’을 해야 한다는 아파트 주민, 반대로 외부인을 몰래 숨겨주는 주민, 아무런 조건 없이 다친 주인공을 도와주는 사람, 다른 사람들을 약탈하며 하루하루 연명하는 사람 등을 보여주면서, 관객에게 ‘당신은 어떻게 행동할 것인지’를 묻는 것이다.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처벌은 법의 문제이지만 법 이전에 인간에게 다가오는 건 도덕과 양심이다. ☞김대현은? = 제주도 감사위원회, 법무법인 현답에서 근무하다 제주에서 개업했다. 대한변호사협회 대의원, 대법원 국선변호인, 헌법재판소 국선대리인, 제주지방법원 국선변호인 등으로 활동 중이다.
◆ 간괘(艮卦) 간(艮)은 정지 뜻이다. 행동하여야 할 때에는 행동하여야 하고 행동하지 않아야 할 때는 잘 멈춰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해야 할 말은 하여야 하고 하지 말아야 할 말은 한 마디도 하지 말아야 한다. 손도 무겁고 입도 무겁고 행동도 무거워야 한다. 적당한 정도, 범위를 지키려면 어떻게 하여야 할까? 중국의 가장 오래된 중용의 도에서 강구하는 것은 ‘합적(合適)’이다. ‘꼭 알맞다’ 의미다. 과유불급(過猶不及), 이 말은 참 좋다. 어떤 일을 하든 간에 불편불의(不偏不倚)1)하여야 한다. 행동하여야 할 때는 행동하여야 하고 행동하지 않아야 할 때는 정지하여야 한다. 『주역』은 말한다. “간(艮)은 그침이다. 때가 그칠만하면 그치고 때가 다닐만하면 다녀서, 움직임과 고요함이 그 때를 잃지 않음이, 그 도리가 빛남이니, 그 그쳐야 함에 그침은 그 자리에 그치기 때문이다. 위와 아래가 적으로 대응하여 서로 함께하지 않기에 이러므로 그 몸을 얻지 못하며 그 뜰을 다녀도 그 사람을 보지 못하여 허물이 없다.” 간(艮)은 정지, 그치다 뜻이다. 멈춰야 할 때 멈춰야 한다. 행동하여야 할 때 행동하여야 한다. 행동과 정지 모두 시기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 그러면 가야할 길은 넓고도 밝다. 간(艮)이 말하는 정지는 멈춰야 할 장소에서 멈추는 것이다. 그래서 말한다. “그의 전신(前身)을 볼 수 없으면 정원에서 걷는 것과 같다. 둘씩 등을 지고 있어 타인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지 못한다. 이런 경지에 다다르면 해를 입지 않는다.” 1951년 6월, 중국은 외교부 부부장 이극농(李克農), 교관화(喬冠華) 일행을 한국으로 보내 정전 담판을 벌이게 했다. 떠나기 전에 주은래(周恩來)가 담판을 짓는 일에 대하여 전면적인 지시를 내렸다. 그러면서 소식(蘇軾)의 말을 인용하며 총결하였다. “가야할 곳으로 가고 멈추지 않으면 안 될 곳에 가서는 멈춰야 한다.”2) 소식은 「답사민사서(答謝民師書)」에서 사민사의 문장을 평하면서 말했다. “당신이 내게 보여준 서신, 시부와 잡문을 숙독했습니다. 대체적으로 구름이 떠가고 물이 흘러가는 듯이 처음부터 정해진 바탕이 없습니다. 그러나 언제고 가야할 곳으로 가고 멈추지 않으면 안 될 곳에 가서는 멈춥니다.” 사민사의 문장을 칭찬하고 있다. 벌여놓아야 할 곳에서는 강렬하게 묘사하고 일필휘지했으며 간략하게 묘사해야할 곳에서는 먹을 아끼기를 금같이 하고 적당한 정도에서 그치고 있다는 말이다. 하늘에 떠도는 구름과 흐르는 물처럼 다른 힘에 거스르지 않고 자연 그대로 유유히 움직이며 아주 통쾌하다는 뜻이다. “움직여야 하면 움직이라.” “멈춰야 하면 멈춰라.” 종합적인 목표, 형세의 변화, 허락된 조건에 근거해서 시세를 잘 살피어 거동과 진퇴를 확정하는 것이 관건이다. “움직여야만 할 때 움직이면”, 목적 없이 맹목적으로 행동하지 않게 되고 ; “멈춰야 할 때 멈추면”, 무원칙적으로 끌려가거나 양보하지 않게 된다. 종합적인 목표를 실현하는 데에 이익이 되느냐에 따라 진퇴를 판단하는 표준에 의거해 모든 결정을 하게 된다. 마치 이와 같다 : 품격은 3등급으로 나눌 수 있다. 첫 부류와 마지막 부류는 모두 극단과 부도덕이다. 가운데에 있는 것이 도덕 혹은 우월성이다. 비겁함과 무모함 사이에 있는 것이 용기다; 인색과 사치 사이에 있는 것이 관대함이다; 비굴과 교만 사이에 있는 것이 겸허, 신중이다; 괴팍함과 익살 사이에 있는 것이 유머다; 우유부단과 충동, 고집 사이에 있는 것이 극기, 자제다……. 그렇기에 윤리 혹은 행위에 있어 ‘합당’은 수학이나 공학 중의 ‘합당’과 다름이 없다. 그 뜻은 정확, 적합이다. 가장 효과적으로 가장 좋은 결과를 도출할 수 있다. 그러나 중용(中庸)은 결코 수학의 등비중항이 아니다. 정확한 계산을 도출해내는 양단의 평균값도 아니다. 중용은 환경에 따라, 좌우의 여러 가지 상황이 변화에 따라 변한다. 성숙되면서도 유연성 있는 이성이 있어야만 자기에게 발현된다. 물욕을 추구하는 사람도 있고 지나치게 검소한 사람도 있다. 무절제 하게 금전을 낭비하는 사람도 있고 털 한 가닥도 안 뽑는, 인색하기 그지없는 사람도 있다. 이 모두 정상적인 삶의 길이 아니다. 손과 같다고나 할까. 시종일관 주먹을 꽉 쥐고 있거나 손바닥을 펼쳐만 있는 것 모두 옳지 않다. 주먹을 쥐기도 하고 손바닥을 펴기도 하는 것이 정상이다. 마찬가지로 적당할 때 멈춰야 한다. 불편불의(不偏不倚)하여야 한다. 이것이 중용의 길이다. 어떻게 하면 일상생활에서 ‘중용의 길’을 실천할 수 있을까? “멈출 때 멈추고 행할 때 행할” 수 있을까? 세 가지 길이 있다. 첫째, 너무 힘들게 일하지 말자. 살면서 일하지 않을 수 없다. 모든 사람이 일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일함에 있어서는 당연히 부지런하여야 하지만 너무 자신에게 가혹해서는 안 된다. 그렇지 않으면 문제를 처리하는 부분에 있어서 그늘을 남기게 되어서 오래할 수 없고 오랫동안 견지하며 견뎌낼 수 없다. 둘째, 즐기더라도 과하지 말자. 사람에게 물질생활이 없을 수 없다. 그렇다고 과하게 오욕(五欲)의 즐거움에 흥청거려서는 안 된다. 끝도 없이 낭비하면 큰 해를 입는다. “물질의 노예가 된다.” 물질이 너무 풍부하여도 어떤 때에는 부담이 되기도 한다. 복덕인연(福德因緣)3)은 천천히 향유하여야 한다. 과도하게 해서는 안 된다. 셋째, 사람을 대하는 데에 너무 박하게 하지 말자. 사람을 대하는 데에 가장 중요한 것은 관대, 너그러움이다. 상대를 고려하여야 한다. 더욱이 주관자가 되어 “자신처럼 대하라.” “관용으로 남을 대하고 자기에게는 엄격하라.” 사람을 가혹하게 대하거나 지나치게 방임하는 것은 정도가 아니다. 평상시에 우리는 일하는 데에 적당한 정도, 범위 내에서 하라고 말한다. 그것이 ‘중(中)’이다. 이른바 “멈출 때 멈추고 행할 때 행하는” 것이다. 중용의 길은 사실 불교의 ‘중도(中道)’와 닮았다. 같은 뜻이란 말이 아니다. 일상생활에서 너무 왼쪽으로 치우치지도 말고 오른쪽으로 경도되지 말라는 의미에서 상통한다는 말이다. 너무 팽팽하지도 너무 이완되지도 말아야 한다. 시시각각 적당한 정도와 범위를 생각해야 한다. 일을 할 때마다 적당과 합당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래야 흔들리지 않고 일을 순조롭게 이룰 수 있고 대나무를 그리기 전에 마음속에는 이미 대나무의 형상이 있는 것처럼 일하기 전에 전반적으로 고려할 수 있게 된다. ***** 艮卦 ䷳ : 간위산(艮爲山) 간(艮: ☶)상 간(艮: ☶)하 「단전」에서 말하였다:간(艮)은 그침이다. 때가 그칠만하면 그치고 때가 다닐만하면 다녀서, 움직임과 고요함이 그 때를 잃지 않음이, 그 도리가 빛남이니 그 그쳐야 함에 그침은 그 자리에 그치기 때문이다. 위와 아래가 적으로 대응하여 서로 함께하지 않기에 이러므로 그 몸을 얻지 못하며 그 뜰을 다녀도 그 사람을 보지 못하여 허물이 없다.(彖曰,艮止也.時止則止,時行則行,動靜不失其時,其道光明,艮其止,止其所也.上下敵應,不相與也,是以,不獲其身,行其庭,不見其人,无咎也.) [傳] 간괘(艮卦)는 「서괘전」에 “진(震)은 움직임이다. 모든 것이 끝까지 움직일 수 없어 그치게 되므로 간(艮)으로 받는 것이니, 간은 그침[지(止)]이다”라고 하였다. 움직임과 고요함이 서로 맞물리니 움직이면 고요하고 고요하면 움직이게 되지만, 어느 것도 늘 움직이기만 하는 이치는 없으므로 간괘가 진괘 다음인 것이다. 간(艮)이 그침[지(止)]임에도 지(止)라고 하지 않는 것은, 간(艮)이 산(山)의 상(象)으로서 안정되고 무거우며 단단하고 차있다[안중견실(安重堅實)]는 뜻이 있어서 지(止)의 의미만으로 다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건괘와 곤괘가 세 번째 사귀어 간괘를 이루니, 양효 하나가 음효 둘 위에 있다. 양(陽)은 움직여 위로 나아가는 것이지만 위에 다 이르면 그치게 되고, 음(陰)은 고요함이어서, 위는 그치고 아래는 고요하므로 간(艮)이 된다. 그렇다면 축(畜)의 그침[지(止)]과는 어떻게 다른가? 축의 그침은 억눌러 저지하는 뜻으로 힘으로 그치게 하는 것이고, 간(艮)의 그침은 편안하게 그친다는 의미이니 그 그쳐야 할 자리에 그치는 것이다. 1) 불편불의(不偏不倚), 한편에 치우치지도 아니하고 기대지 않는다. 중용(中庸)의 중(中)에 대한 뜻을 풀이한 말이다. 주자(朱子)는 말했다. “치우치지 않고 기대지 않아서 지나치거나 미치지 못하는 것이 없는 것을 ‘중(中)’이라 이르고 용(庸)은 평상(平常)한 것이다.”(不偏不倚,無過不及之謂中,庸平常也.)(『中庸章句』) 2) 행운유수(行雲流水), ‘하늘에 떠가는 구름과 쉬지 않고 흐르는 물’이라는 뜻으로, ① ‘일정한 본질이 없이 각양각색으로 변화함’을 이르는 말. ② 나아가서는 ‘조금도 집착함이 없이 사물에 호응하여 행동하는 것’을 비유. ③ 또한 ‘속세에서 떠나 초연한 심경(心境)에 있는 것’을 나타내는 말. ④ ‘일의 처리에 막힘이 없거나 마음씨가 시원시원함’을 비유하기도 한다. (「답사민사서(答謝民師書)」. “行雲流水,初無定質”에서 비롯된 말이며 행각승(行脚僧)을 운수(雲水)라고 일컫는 것도 여기에서 연유한다. 송대(宋代) 시인 소식은 사민사(謝民師)라는 친구의 작품을 칭찬하였다. “그대의 글은 마치 구름이 떠가고 물이 흘러가는 듯 처음부터 정해진 바탕이 없다. 그러나 언제고 가야할 곳으로 가고 멈추지 않아서는 안 될 곳에 가서는 멈춘다.”(大略如行雲流水,初無定質,但常行於所當行,常止於所不可不止.)라고 했는데 이것은 바로 자기 자신의 작풍(作風)을 가리킨 것이다. 그는 자신의 문학을 평했다. “내 글은 마치 만 톤이나 저장되어 있는 샘물의 원천과 같아서 땅을 가리지 않고 솟아나와 평지에서도 도도하고 세차게 흘러 하루에 천리를 흘러가기에 어렵지 않다. 산이나 바위를 만나면 물건에 따라 형체를 이루나 알 수 없다.”(吾文如萬斛泉源,不擇地皆可出,在平地滔滔汩汩,雖一日千里無難.及其與山石曲折,隨物賦形,而不可知也.所可知者,常行於所當行,常止於不可不止,如是而已矣.甚他雖吾亦不能知也.(『蘇軾文集』卷66「自評文一」)) 3) 『잡아함경(雜阿含經)』에 목련존자가 제석천에게 말했다. “먼저 선법(善法)을 닦아 그 복덕의 인연으로 이 수승한 과보를 얻는다.”(先修善法,福德因緣,成此妙果]) 『현우경(賢愚經)』에는 부처님께서 말하셨다. “이전에 내가 닦은 선근 복덕에 의하여 수승한 과보를 얻는다.”(吾今如是,由先修福,今獲妙果) ☞이권홍은? =제주 출생. 한양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나와 대만 국립정치대학교 중문학과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국현대문학 전공으로 『선총원(沈從文) 소설연구』와 『자연의 아들(선총원 자서전)』,『한자풀이』,『제주관광 중국어회화』 등 다수의 저서·논문을 냈다. 현재 제주국제대학교 중국어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1. 섬에 온 선교사 제주에 사진이 등장하게 된 것은 서양 열강 세력에 의해서였다. 선교사들이 신도들이나 송별 기념촬영한 것, 풍속을 소재로 삼은 것, 중요 인물의 초상 사진과 중요 사건을 찍은 것이 많은 것으로 보아 사진가 역할도 한 것이다. 그들은 먼저 선교를 통해 기독교를 전파하면서 서구 자본주의 문명을 이식하려는 목적도 있었다. 사실상 자본주의 제국을 위해서 시장을 넓히려는 식민지의 다른 전략도 있었다. 일찍이 동인도 회사에서 보았던 것처럼 열강들이 동쪽으로 온 까닭은 지난 우리 역사가 말해주었듯이 새로운 자본주의 세계체제를 구축하기 위해서 일 것이다. 1846년 영국은 청나라 개항장마다 한 척의 포함(砲艦)을 배치할 권리를 얻어냈다. 선교사가 현지에서 어려움을 당했을 때 신속하게 무장 함대를 보내어 무력으로 외교 문제를 처리하고자 한 것이다. 또 ‘바다의 안전’을 이유로 함대를 맨 먼저 파견한 나라도 영국이었다. 뒤이어 프랑스와 미국이 따라 들어왔다. 선교사들이 개항장에서 포교권을 얻은 뒤에는 현지인처럼 옷을 입고 현지어를 쓰면서 전국으로 포교를 확대하고자 했다. 선교사들은 겉으로 미신을 믿고 있는 야만의 땅을 개척하는 것이었지만 속내는 그들이 현지에서 얻은 정보들을 영국과 프랑스 등의 영사들에게 제공해주었다. 그들 선교사의 배후에는 자국의 정부들이 도사리고 있었다. 그래서 당시 선교사들은 '제국주의 첨병'이 된 적이 있었다. “종교가 오고 나면 군대가 온다”라는 말은 19세기 동양을 빗대고 한 말이었다. 선교사들을 부정적으로 본 역사적 사실들이 있는데, 때로 선교사는 전쟁 구실을 만들어준 긍정적인 존재이자, 동시에 말썽을 일으켜 일을 만들었을 뿐 아니라 신도들로 인해 현지 사회로부터 반서양·반외세의 기운이 일어나면서 통상에 방해되는 부정적인 존재이기도 했다. 기독교 포교 과정에서 선교사들이 현지 사회와 여러 가지 갈등을 일으킨 것을 청나라에서는 ‘교안(敎案)’이라고 불렀다. 제주도에 천주교가 들어온 것은 광무 2년(1898)으로 색달리 사람 양 베드로, 신 아오스딩, 그리고 보성리 사람 강 도비아와 김생원이었다. 이들은 당시 조선 교구장이었던 뮈텔 주교에게 제주에 선교사를 파견해 주도록 요청했다. 그래서 1899년 5월 프랑스 신부 빼이네(裵嘉祿)와 우리나라 신부 김원영(金元永)이 입도하여 제주읍에 근거지를 두고 포교를 시작하다가, 빼이네 신부는 건강을 이유로 제주를 떠나고, 1900년 그 후임으로 라크루(具瑪瑟) 신부가 왔다. 이들은 포교를 나누어 제주읍 안에서는 라크루 신부가, 홍로(烘爐, 서귀포) 지역에는 김원영 신부가 포교활동을 했다. 그러다가 1년 후 김원영 신부가 다른 곳으로 가고, 뭇세(文濟萬) 신부가 왔다. 조선 정부는 외국인 신부들을 특별히 우대하고 보호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이러한 특권은 후에 이를 도 넘게 호도(糊塗)한 신도들이 많은 문제들을 유발하면서 급기야 민중 봉기로 이어졌다. 2. '도롱이를 입은 농부(farmer Clad in a Straw Raincort)'(1890) '도롱이를 입은 농부((farmer Clad in a Straw Raincort)'(1890)는 당시 손에는 긴 나무 지팡이를 짚고, 모자를 쓰고 새(茅)로 엮은 우장(雨裝)을 걸쳐 나막신을 신었는데 원시적인 제주인의 모습이 생생하게 살아난다. 사진 촬영 연대로 보면, 지금으로부터 123년전 제주도의 삶의 리얼리티를 보여주고 있다. 누가 찍은 사진인지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수집처가 미국이나 유럽 등 해외에서 수집된 사진 중 일부이다. 이 사진은 제주도 현지인을 연출한 사진으로 빛의 방향을 감안하여 촬영각을 정확하게 조절하면서 모델의 시선과 위치, 초가배경의 자연스러운 각도, 화면의 비례, 노출 감도가 계산된 전문가의 사진임을 알 수 있다. 도롱이(Straw Raincoat)를 입은 농부 뒤에는 초가가 있는데 초가를 지을 때 벽으로 쌓는 담을 축담이라고 한다. 이 축담은 돌을 한 줄 쌓고는 진흙을 올리고 다시 한 줄을 쌓는 식의 방법으로 조적(造積) 한다. 이 축담은 두 가지 기능을 하는데 집으로 들어오는 바람을 막고 물을 막기 위해 진흙을 이용하고 있으며, 또 집과 지붕의 지지대 역할로써 견고해야 하는 건축의 특성을 감안한 것이다. 축담에 바르는 흙은 찰흙으로 ‘ᄎᆞᆫ헉’, 'ᄎᆞ녁'이라고 발음하는데, 모슬포에서는 찰기가 좋은 신평리나 무릉 2리 인향동의 흙을 선호했다. 먼저 이 찰흙을 마차에 싣고 와서 마당에 둥그렇게 깔고 가운데를 중심으로 물이 고르게 먹을 수 있도록 연못처럼 만들어가면서 점점 펴가고 끝 부분에 이르러 물이 새지 않도록 끝 둑처럼 올리면 물이 천천히 스며든다. 어느 정도 흙이 물을 먹으면 자른 산듸짚나 보리짚을 섞어서 발로 계속 밟아주어야 한다. 흙을 많이 쓸 경우 소를 이용하기도 한다. 이렇게 골고루 밟아서 어느 정도 찰기가 나오면 그 흙을 담돌과 함께 사용한다. 사실 이런 축담은 그 자체가 생태건축이다. 돌집이 그렇듯 여름에는 시원하기도 하고 겨울에는 포근하다. 흙은 사계절 습기도 잘 먹어서 공기를 조절하기 때문에 생활하기가 쾌적하다. 자연재를 이용한 건축이므로 환경적으로 풍토적인 조건에 잘 어울린다. 초가의 건축재료가 돌, 나무, 흙이 전부이기 때문에 매우 자연스럽지만, 화재에 취약한 것이 큰 흠이다. 또 돌과 흙으로 된 재료이고 보니 베록(벼룩), 게염지(개미), 주넹이·지냉이(지내), 게우리(지렁이), 두메기(풍뎅이), 집읏은 돌뱅이(민달팽이) 등 버렝이(벌레)들과 구렝이(구렁이) 독다귀(도마뱀), 중이·줭이(쥐) 등이 자주 나다닌다. 초가에는 ᄎᆞᆷ생이(참새)가 살고, 처마에는 제비가 집 짓는다. 특히 집 안팎으로 흙을 발랐기 때문에 비가 많이 오게 되면 외벽의 흙은 보수를 해야 한다. 비가 많이 와서 축담에 비가 내리치면 바른 흙이 씻겨나가기 때문이다. 이를 '헉 ᄇᆞᆯ른다(흙 바른다)'라고 한다. 3.'제주도(濟州島) 산저포(山底浦), Sanjeopo Harbor in Cheju Island'(1890) 사진 두 장이 있다. 썰물 때의 산저포(산지포)와 밀 물 때의 산지포가 그것이다. 하늘에서 내려다 본 부감시(俯瞰視) 각인데 반대편 높은 언덕에서 찍은 것으로 생각된다. 산지천 하류에 위치한 산지포는 하류를 중심으로 돛배(帆船)들이 모여있다. 산지천은 바다와 바로 연결돼 있어 조수 간만의 차이를 심하게 받는 지형이다. 썰물이 되면 건천(乾川)으로 변했다가 밀물 때면 바다와 하나가 된다. 배들은 주로 썰물에는 발이 묶여서 꼼짝하지 못하고, 밀물이 돼야 활동을 시작할 수 있다. 정박한 돛배는 주로 삼각 선수(船首)에 두 돛짜리 당도리배들인데 그 사이에 뱃머리가 평평하게 덧판을 대거나 반원의 나무를 덧댄 덕판배도 끼어있다. 산지포 마을은 마치 활대와 같은 타원의 형태로 이루어졌으며 돌담들은 외담으로 쌓아 강한 바닷 바람을 막기 위해 처마를 가릴 수 있게 쌓았다. 초가 지붕은 격자모양으로 촘촘히 묶여 있으며, 집집마다 연료용으로 ‘노람지’를 두른 지들커(떌감) ‘눌’들이 보인다. 포구 반대편 해안에서는 하역을 하고 있는 듯 배에 천막을 친 당도리배가 있었는데 밀물이 되자 그 배가 이동을 한 듯 보이지 않는다. 산지천 서쪽은 지금의 탑동 해변인데 매립되기 전에 까만 먹돌로 유명했다. 산지포는 큰 배들이 들어오기에는 수심이 얕고 포구가 좁아 일제 강점기가 돼야 본격적인 산지항 축항공사를 하게 되었다. 1926년 10월 일제는 약 30만원을 투자하여 제1기 공사로 연장 310m 서부두 방파제를 구축하기 시작, 1929년 3월에 준공하는 계획을 세우고, 또 부대시설을 만들기 위해서 약 5000평의 매립사업까지 병행하였다. 항만 공사는 계속 제2기, 제3기까지 총 120만원을 투입하였고, 이후 동부두일대 1만3594평을 매립하고 서부두 쪽으로 다시 510m의 방파제 공사를 추가로 모두 3차례의 계획으로 진행되고 있었다. 자연 지형이 열악했던 산지항은 1926년 인공항으로 계획되어 18척의 수심을 메우려면 엄청난 돌이 필요했는데 바다를 메울 돌을 확보하는 것이 시급한 일이었다. 급기야 돌을 캘 석산(石山)으로 주정공장 가까운 돌 언덕이 채석 현장으로 지정되었고, 돌을 캘 노동자들을 모집하여 이북 출신들이 채택되었다. 돌을 다루는 일은 숙련된 노동자들이 절실히 필요하다. 산지항 공사에 선정된 노동자들은 함경북도 청진 출신들인데 마침 청진항 공사가 마무리된 차에 돌일은 무척 힘들지만 다른 일보다 일당이 좋아 제주도 서부두 방파제 현장으로 급거(急遽) 내려왔다. 변변한 장비도 없던 때라 오로지 목도에 의지해야만 했던 채석 운반 작업을 순수 인력으로 시행하는 것은 대단이 어려운 일이었다. 그래도 일에는 변통(變通)이 있기 마련이어서 오로지 경험밖에 없는 이들은 지난 세월의 역량을 믿기로 했다. 이때 이들이 운반 방식은 ‘청진팔(淸津八)목도’였다. 긴 나무에 묶은 돌을 중앙에 걸고는 앞쪽에 4인, 뒤쪽에 4인 모두 팔명이 1조가 돼 동시에 목 뒤 어깨에 걸고 리듬에 따라 돌이 흔들리지 않도록 수평을 잡으면서 영차~영차~ 라는 구령에 맞춰 걸어가야 한다. 모두 8인의 힘을 공평하게 분배하는 것이 그들의 터득한 요령이었다. 누군가가 잔꾀를 부리게 되면 돌의 기울기가 한 쪽으로 쏠려서 돌에 깔리는 큰 사고를 당할 수가 있다. 8인 모두의 힘의 균형을 유지하면서 운반하는 것이 숙련된 그들만의 노하우였다. 이렇게 하루 종일 일한 대가는 3원, 당시 쌀 한 가마 가격이 5원이었으니 힘들지만 큰돈이었다. 연이은 공사로 인해 석산으로도 부족하자 일제가 눈독들인 돌은 바로 제주성을 쌓은 성돌이었다. 일제는 이 돌들을 실어다가 서부두와 축항 공사 밑돌로 삼았는데 8·15 해방이 되자 일제의 항만공사 계획은 미로에 빠졌다. 그러나 해방 이후에도 계속 그 성돌을 실어 나르는 것을 보았다고 한다(홍순만, 2014). 산지천 항만개발 재개는 박정희에 의해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에 의해서 진행될 수 있었다. 4.'제주도(濟州島) 도사 입구(島司 入口), Etrance Islahd Office Cheju Island', (1900) 이 사진은 제주성 남문루였던 정원루(定遠樓)이다. 남문루(南門樓)는 1512년(중종7) 제주목사였던 김석철(金錫哲, 1556~?)이 새로 건립했다. "제주성 남문에는 옛 누각이 있었는데 허물어서 거기에 새로 정원루를 지어 외적의 침입에 대비했다.” 김석철이 경상우도병마절도사로 있을 때 제포·부산포의 항거왜인(恒居倭人)들이 대마도주의 은밀한 지원을 받아서 삼포왜란을 일으키자 그는 즉각 조정에 보고하고 중앙 군사와 협심하여 신속히 왜인들을 진압함으로써 주위로부터 무재(武才)를 인정 받아 변방 외적에 대비케 하기 위해서 제주목사로 전출시켰다. 그는 변방 제주의 방어에 힘을 기울여 군비를 정비하면서 낡은 정원루를 신축하여 해이한 기강을 바로 세웠던 것이다. 제주성에는 3대문이 있었는데 남쪽 성문은 정원루로 남문로터리 북쪽 옛 MBC자리에 있었다. 서쪽 성문은 진서루(鎭西樓)로 무근성 입구 부근이며, 동쪽 성문은 연상루(延祥樓)로 동문 파출소 서북쪽에 있었다. 남문인 정원루는 성벽을 뚫어 놓은 개구부(開口部) 상부(上部)가 열려 있는 성문이며 이를 개거식(開据式)이라고 한다. 이런 형태의 성문은 오가는 사람들을 문루에서 쉽게 살필 수 있는 장점이 있어서 출입구와 망루의 역할을 동시에 수행 할 수 있다. 지붕은 팔작 지붕이며, 성담은 현무암 다겹담으로, 외부 마감돌은 귀물림 방식으로 쌓았다. 특이한 것은 바닥에 현무암을 자연스럽게 판석으로 이용하여 비올 때를 대비하고 있는데 큰 틈새가 곳곳에 보인다. 이런 개거식 문루(門樓)는 목관아 동헌으로 들어가는 정문에도 있다. 이름은 포정문(布政門). 2층 문루로써 1층에는 사람들이 지나 다니고, 2층 누각에는 종과 북을 매달아 아침과 저녁 성문을 여닫을 때 알리는 역할을 했다. 원래 이 문루는 진해루(鎭海樓)라고 부르다가 1699년(숙종25) 목사 남지훈(南至薰)이 개건하면서 탐라포정사(耽羅布政司)라고 고쳐 부르면서 이후 포정문으로 불리게 되었다. 이 문루는 일제 강점기 초까지 남아 있었다가 일제가 도청 청사를 건립하면서 철거해 버렸다. 지붕은 팔작 지붕이고 1층에는 비에 오래 견디도록 둥근 돌기둥 8개로 받치고 있으며, 2층 누각에는 나무로 기둥을 연결하였다. 오른쪽에 하마비가 세워져 있고 옆으로 이어서 좌어청(左衙聽) 영나졸방(營羅卒房)이 길게 돌집으로 쌓은 후 그 위에 붉은 색 기와를 얹었다. 사진의 제일 큰 장점은 시간의 기록에 있다. 사람은 가도 사진은 남는 법이라서 한 시절의 영화(榮華)라도 글보다는 이미지로 남는 것이 더 솔직하고 정확할 것이다. 사진이 대중화된 오늘에는 이미지가 둥둥 떠다닐 정도로 범람하고 있다. 각자의 모습, 시대의 역동적인 파노라마가 우리의 꿈 속에까지 어른 거릴 정도다. 그러나 결국 이 마져 모두 언젠가는 다 사라질 것이다. 자연이 우리를 그렇게 만들 것이기 때문이다.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참고문헌> 가와시마 신 外, 『 동아시아근현대통사』,책과함께, 2017.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우리배 용어사전』, 2020. 김원모·정성길 엮음, 『사진으로 본 백년 전의 한국』, 가톨릭출판사, 1997. 김봉옥, 『증보 제주통사』, 도서출판 세림, 2000. 朴用厚, 『濟州方言硏究』, 高麗大學校民族文化硏究所.1988. 좌승훈, 『제주땅 의미찾기, 포구』, 나라출판, 1996. 홍순만, 『사연따라 七百里』, 제주문화원, 2014. 후에다 코오이치로오 外, 『濟州島의 경제』, 濟州愚堂圖書館, 1999. ☞김유정은? = 최남단 제주 모슬포 출생이다. 제주대 미술교육과를 나와 부산대에서 예술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미술평론가(한국미술평론가협회), 제주문화연구소장으로 일하고 있다. 저서로는 『제주의 무신도(2000)』, 『아름다운 제주 석상 동자석(2003)』, 『제주의 무덤(2007)』, 『제주 풍토와 무덤』, 『제주의 돌문화(2012)』, 『제주의 산담(2015)』, 『제주 돌담(2015)』. 『제주도 해양문화읽기(2017)』, 『제주도 동자석 연구(2020)』, 『제주도 산담연구(2021)』, 『제주도 풍토와 문화(2022)』, 『제주 돌담의 구조와 형태·미학(2022)』 등이 있다.
그림자 속의 손 - 마리엘라 코르데로(Mariela Cordero) 그림자 속에 있는 손 무자비하고 애무의 왕국에서 추방되어 교류를 모르지 친밀감을 쌓거나 기도하는 이 손은 파열하지 살육의 퍼덕거림으로 그것의 움직임은 천하고 물결치지 학살당한 시체로 그것은 정밀하게 피부 아래를 찢어 상처를 세례 하네 그리고 선을 그리지 강철의 손가락으로 단지 당신에게 주기를 원하지! 흉터를 The hand in the shadow. There is a hand in the shadow devoid of clemency expelled from the empire of caresses it does not know the trade of building closeness or prayers. This hand bursts with the flutter of slaughter, its movements foul the waves of the assaulted body. It tears with precision the submissive skin, baptizes the wound and draws a line with his steel finger. Only wants to give you the scar. ◆ 마리엘라 코르데로(Mariela Cordero) = 1985년생으로 베네수엘라 발렌시아 출신으로 변호사, 시인, 작가, 번역가 및 시각 예술가로 활동하고 있다. 그녀의 시는 여러 국제 선집에 실렸으며 Third Prize of Poetry Alejandra Pizarnik Argentina (2014). First Prize in the II Iberoamerican Poetry Contest Euler Granda, Ecuador (2015). Second Prize of Poetry Concorso Letterario Internazionale Bilingüe Tracceperlameta Edizioni, Italy (2015) Award Micropoems in Spanish of the III contest TRANSPalabr@RTE 2015. First Place in International Poetry Contest #AniversarioPoetasHispanos mention literary quality, Spain (2016). Finalist Aco Karamanow International Poetry Prize, Macedonia (2022) Rahim Karim World Literary Prize (2022) 등의 문학상을 받았다. 시집 El cuerpo de la duda Editorial Publicarte, Caracas, Venezuela(2013) 및 Transfigurar es un país que amas(Editorial Dos Islas, Miami, United States(2020)를 출간했다. 여러 국제 문학 회의에 참여했는데 프린스턴 축제, Parque Chas 국제 시축제, Bitola Literary Remembrance 국제 시 축제, Xochimilco, X Iberoamerican Festival of Fusagusagá 콜롬비아 국제 시 축제 등에 참가했다. 그녀의 시는 힌디어, 체코어, 에스토니아어, 세르비아어, 쇼나어, 우즈벡어, 루마니아어, 마케도니아어, 한국어, 히브리어, 벵골어, 영어, 아랍어, 중국어, 러시아어, 폴란드어 등으로 번역됐다. ☞ 강병철 작가 = 1993년 제주문인협회가 주최하는 소설부문 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며 문단에 데뷔했다. 2016년 『시문학』에서 시인으로 등단했다. 2012년 제주대에서 국제정치전공으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제주대학교 평화연구소 특별연구원, 인터넷 신문 ‘제주인뉴스’ 대표이사, (사)이어도연구회 연구실장 및 연구이사, 충남대 국방연구소 연구교수, 제주국제대 특임교수, 한국해양전략연구소 선임연구위원, 제주통일교육센터 사무처장 등을 역임하고 현재 한국평화협력연구원 연구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제33대 국제펜클럽한국본부 인권위원이며 국제펜투옥작가회 위원으로 활동했다. 제34대 국제펜클럽한국본부 인권위원으로 재선임됐다. 국제펜투옥작가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신장위구르 자치구역의 대표적인 위구르족 작가 중의 한 명인 누르무헴메트 야신(Nurmuhemmet Yasin)의 「야생 비둘기(WILD PIGEON)」를 번역 『펜 문학 겨울호』(2009)에 소개했다. 2022년에는 베트남 신문에 시 ‘나비의 꿈’이 소개됐다. ‘이어도문학회’ 회장을 역임하였으며 이어도를 소재로 한 단편소설 ‘이어도로 간 어머니’로 월간 ‘문학세계’에서 주관한 ‘제11회 문학세계 문학상’ 소설부문 대상을 받았다. 한국시문학문인회에서 주관하는 제19회 ‘푸른시학상’을 수상했다. 강병철 박사의 시와 단편소설은 베트남, 그리스, 중국 등 여러 나라 언어로 번역돼 소개되고 있다. 최근엔 중국의 계간 문학지 《국제시가번역(国际诗歌翻译)》에도 강 작가의 시 두편이 소개되었다.
"널 보고싶어도 눈을 뜰 수가 없잖아, 웃어봐!" "웃은건데..." ☞ 오동명은? = 서울 출생.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뒤 사진에 천착, 20년 가까이 광고회사인 제일기획을 거쳐 국민일보·중앙일보에서 사진기자 생활을 했다. 1998년 한국기자상과 99년 민주시민언론상 특별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저서로는 『사진으로 세상읽기』,『당신 기자 맞아?』, 『신문소 습격사건』, 『자전거에 텐트 싣고 규슈 한 바퀴』,『부모로 산다는 것』,『아빠는 언제나 네 편이야』,『울지 마라, 이것도 내 인생이다』와 소설 『바늘구멍 사진기』, 『설마 침팬지보다 못 찍을까』 역사소설 <불멸의 제국> 소설 <소원이 성취되는 정원> 소설 <장군어미귀향가>등을 냈다. 4년여 제주의 한 시골마을에서 자연과 인간의 만남을 주제로 카메라와 펜, 또는 붓을 들었다. 한라산학교에서 ‘옛날감성 흑백사진’을, 제주대 언론홍보학과에서 신문학 원론을 강의하기도 했다. 현재는 지리산 주변에 보금자리를 마련, 세상의 이야기를 글과 그림으로 풀어내고 있다.
◆ 진괘(震卦) 진동(震動)은 천둥이 진동하다, 우레가 울다 이다. 우레가 우는 것은 하늘이 노한 것이다. 사람, 특히 군자는 마땅히 올바르게 행동하고 바르게 서야 한다. 자기 주변의 재난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문제가 생기면 자기의 행위를 반성하여야 한다. 태연스레 웃어야 한다. 태연자약 하여야 한다. 언행이 흔들려서는 안 된다. 모든 일을 제대로 처리하여야 한다. 겁이 많고 나약하며 비굴하면 어떻게 하여야 할까? 어떤 일을 하던 간에 자기 자신을 충분히 믿어야 한다. 평정심을 유지하여야 한다. 긴급 상황이나 돌발 상황을 만나게 되더라도 정서를 안정시켜야 한다. 마음을 가라앉혀야 한다. 감정을 눌러야 한다. 이 규칙을 준수하기만 하면 일을 하는 데에 목적이 생기고 힘들이지 않고 여유 있게 일을 처리할 수 있게 된다. 『주역』은 말한다. “진(震)은 형통하다. 우레가 옴에 조마조마 하면, 웃고 말함이 하하 하리니, 우레가 백 리를 놀라게 하는데도 국자와 울창주를 떨어뜨리지 않는다.” 무슨 말인가? 천둥이 친다. 신령에게 제사지낸다. 우레가 갑자기 치면 두려움에 엄숙하게 된다. 계속해서 태연하게 웃는다. 언행이 흔들려서는 안 된다. 천둥이 천리를 진동하고 놀라게 하지만 손에 들고 있는 국자와 맛있는 술은 떨어뜨리지 않는다. 인생에 있어 성패와 득실을 다 예측할 수 없다. 많은 일을 우리가 다 맡을 수도 없다. 그저 노력해 나갈 뿐이다. 우리가 지불해야 할 일에 대해서 태연자약할 수 있으면 된다. 그러면 즐거움을 얻을 수 있다. 인생은 짧다. 항구하지 않다.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 내일 어떤 운명이 우리를 어떤 방향으로 끌고 갈지 알 수 없다. 그렇지만 어떤 경우라도 평정심, 평상심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어떠한 환경에도 잘 적응하고 만족할 수 있어야 한다. 침착하고 여유가 있어야 한다. 안정과 고요를 가져야 한다. 태연하게 인생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이 변화무쌍한 인간 세상에서 어느 누구도 순풍에 돛을 올리듯 순조롭게 일이 진행될 수는 없다. 인생에 십중팔구는 뜻대로 되지 않는다. 역경에 처했을 때에도 불행을 한탄할 필요 없다. 고난은 일순간에 지나가는 과정에 불과하다. 노력하면서 기다리면 된다. 기다리면서 분투하여야 한다. 길이 없다고 생각하는 곳에서 버드나무 우거지고 백화가 만발하게 된다. 막혔던 앞길이 열린다. 불운이 극에 달하면 행운이 온다. 고생 끝에 낙이 오지 않던가. 음이 극에 달하면 양이 온다. 세상 만물은 모두 순환 반복의 과정에 있다. 흥망성쇠는 본래부터 있는데 총애와 모욕에 따라 놀랄 필요 있던가. 하늘은 담백하고 구름은 한가로이 떠있으며 물을 자연스레 흐른다. 산은 푸르고 푸르며 꽃은 꽃이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 아니던가. “하늘의 운행이 굳건하니, 군자가 그것을 본받아 스스로 힘쓰고 쉬지 않는다.”1) 생활을 향유하여야 한다. 욕망에 빠져들라는 말이 아니다. 향유할 것은 마음속 안정이며 고요함이다. 자신을 잘 대해줘야 한다. 우리가 동경하는 아름다움을 쫓지 말라는 게 아니다. 태연하게 자기 영혼을 대면하여야 한다. 희망은 늘 우리 눈 속에서 빛을 발한다. 우리는 새로이 길을 가야 한다. 시계추와 같은 일을 계속할 것인가? 격정적이지도 않은 생활을 계속해 나가야 하는가? 선택하여야 한다. 마음속 무기력함과 곤혹을 내려놓을 필요가 있다. 웃는 얼굴로 자기 영혼을 포장할 필요가 있다. 매 시간마다 귀중한 생명을 체득하여야 한다. 매일 생활이 부여한 활력을 향유하여야 한다. 노력으로 얻어진 모든 기회에 감사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우리가 당연히 해야 할 선택이다. 즐거움과 고통은 따지고 보면 일순간에 지나지 않는다. 인생 여정 중에서 태연하게 인생을 대면해야 생활이 더 멋들어진다. 단단히 쥔 두 주먹, 확고한 웃는 얼굴이 우리에게 자신감을 주고 행복을 준다. 인생길에서 태연하게 웃는 얼굴은 없어서는 안 된다. 흔들리지 않는 언행은 풍모를 더 멋있게 만든다. 선(禪)은 말하지 않던가 : 꾸미는 데에 고심하지 말고 태연자약하시라. 몸과 마음을 닦는 것을 중시하면 도를 얻을 수 있다. 상은 모두 공이거늘 고생스레 쫓을 필요 뭐 있는가. 태연자약하면 진짜 자아인데 몸과 마음을 닦아 마음을 편안하게 하시게. 태어나면서부터 사람과 사람사이에는 천성, 환경, 기회에 차이가 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어떤 때에는 이 차이가 너무 뚜렷하고 쉬이 바꿀 수 없기도 한다. 우리는 어떻게 하여야 할까? 자기 본래 모습을 가지고 자신을 받아들이고 용납할 수 있어야 한다. 자기 단점을 가지고 타인의 장점과 비교해서는 안 된다. 북해에 대붕(大鵬)이라는 새가 있다. 날개를 한 번 펴서 날면 9천 리를 간다. 땅에 있던 참새가 날아가는 대붕을 보고는 부러워하지 않았다. 참새는 생각하였다 : 무얼 그리 높이 날고, 그리도 멀리 간다는 말이냐? 우리 같이 작고 깜찍한 몸은 조그마한 가지에 깃들 수 있지 않던가. 9천 리는 날지 못하지만 매일 아무런 구속도 받지 않고 자유롭게 살아가지 않더냐. 비교한다는 것은 우리 삶이 타인의 눈빛과 척도 속에서 살아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자아를 상실하게 될 뿐이다. 비교는 스스로 비하하게 만든다. 비교하면 할수록 남보다 못함을 스스로 부끄러워하게 된다. 배궁사영2)이란 말처럼 모든 일에 쓸데없는 고민에 빠지게 된다. 다시 맛볼 기회조차 우물쭈물하면서 앞으로 나아가지 않고 멈추어 서게 만든다. 사기, 용기, 의지 모두 사라져 버린다. 그런 까닭에 비교에서 오는 자괴감은 청년의 영혼이 본래부터 가지고 있는 활력을 잃게 만든다. 반드시 알아야 한다. 사람들이 사회에서 만든 여러 표준은 결코 고정불변의 것이 아니다. 빈궁과 부유, 즐거움과 비애, 성공과 실패, 고상함과 비천함, 건강과 병태 ― 이것에 대한 현대인의 관점이 갈수록 크게 변하고 있다. 하루 종일 그리 안정적이지 않은 표준을 가지고 자신을 따져볼 필요 없다. 비교하는, 그런 것을 절대 마음에 둘 필요 없다. 비교하지 않으면, 마음속에 평정과 침착함을 지킬 수 있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좋아할 수 있다. 자기가 하고 싶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비교하지 않으면 만족할 수 있다. 그것 때문에 마음이 번거롭고 정신이 산란하게 되지 않는다. 비교하지 않으면 본모습을 늘 유지할 수 있다. 다른 사람과 다른 진정한 자신을 이루어 낼 수 있다. 인도 사상가 라즈니쉬(Osho Rajneesh)는 말했다. “장미는 장미이고 연꽃은 연꽃이다. 그저 보기만 하라. 비교하지 마라.” 물론 타인의 장점과 능력은 우리가 참고로 할 수 있다. 그러나 총명한 사람은 자기의 마음을 매번 그들과 비교하지 않는다. 일단 맹목적으로 비교하는 잘못된 부분에 빠져들면 신선하고 개방적인 관점에서 사물을 보지 못하게 된다. 동시에 개인의 독창성을 말살하게 된다. 생명의 아름다움과 향기를 파괴하게 된다. 비교하지 않으면, 변변치 않은 음식도 다른 음식과 마찬가지로 향기롭고 맛있다. 거간꾼이나 심부름꾼도 누구나 똑같이 존귀한 존재라는 것을 인정하게 된다. 자신이 살아가려면, 자기 방법대로 살아가려면, 자신을 표현하고 싶으면, 태연하게 웃으라. 태연자약 하라. 어떤 것에도 언행이 흔들리지 말라. 이것이 인생 행위에 표준이 되는 길이다. ***** 震卦 ䷲ : 진위뢰(震爲雷) 진괘(震: ☳)상 진괘(震: ☳)하 진(震)은 형통하니, 우레가 옴에 조마조마 하면, 웃고 말함이 하하 하리니, 우레가 백 리를 놀라게 하는데도 국자와 울창주를 떨어뜨리지 않는다.(震,亨,震來,虩虩,笑言,啞啞,震驚百里,不喪匕鬯.) [傳] 진괘는 「서괘전」에 “제기[기(器)]를 주관하는 것은 맏아들만한 이가 없다. 그러므로 진괘로 받는다” 하였다. ‘솥[정(鼎)]’은 기물이고, 진괘는 맏아들이다. 그러므로 ‘제기를 주관한다’는 뜻을 취하여 정괘(鼎卦)의 뒤를 이었다. 맏아들은 나라를 전승하고 지위와 호칭을 잇는 자이다. 그러므로 제기를 주관하는 주인이 된다. 「서괘전」은 그 한 가지 큰 뜻을 취하여 ‘잇는다’는 뜻으로 삼았다. 진괘는 양 하나가 두 음 밑에 생겨 움직여 올라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레[진(震)]’가 된다. ‘우레’는 움직임이다. ‘움직임[동(動)]’이라고 하지 않은 것은 ‘우레’에 움직여 떨쳐 놀라게 한다는 뜻이 있기 때문이다. 건괘와 곤괘의 사귐이 첫 번째로 구하여 진괘를 이루니, 태어난 사물 가운데 맏이이다. 그러므로 맏아들이 된다. 그 상이 벼락이 되고 그 의미가 움직임이 된다. 우레에는 진동하고 떨치는 상이 있고 움직임은 놀라고 두려워한다는 뜻이 된다. 1) 天行健,君子以自彊不息. 2) 배궁사영(杯弓蛇影), 공연한 의혹으로 고민을 하다 뜻이다. 진대(晋代) 악광(樂廣)이 손님을 청하여 주연을 베풀었는데, 그 중 한 사람이 벽에 걸린 활 그림자가 술잔에 비친 것을 뱀으로 잘못 알고 뱀을 삼켰다고 생각하여 병이 난 고사에서 온 말이다. ☞이권홍은? =제주 출생. 한양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나와 대만 국립정치대학교 중문학과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국현대문학 전공으로 『선총원(沈從文) 소설연구』와 『자연의 아들(선총원 자서전)』,『한자풀이』,『제주관광 중국어회화』 등 다수의 저서·논문을 냈다. 현재 제주국제대학교 중국어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전화 중에 - 마영파(马永波) “어디야?”라는 것은 사람들이 있어야 할 집이나 직장에 있지 않다는 것을 말하지 탈출인가 순례자인가? 우리가 가는 길이라면 무슨 상관이겠는가? “무슨 일이야?” 그런 다음 뭐라고 말하지 하지만 자정에는 전화 요금이 가장 저렴해지면서 열정도 0도까지 떨어지고 신이 부르네 어두운 선반 위에서 진동하면, 아무도 대답하지 않아 솟아오르는 강물의 반짝이는 입자처럼 무언가가 사라지고 있어 전화하는 이유가 될 수도 있지 “별일 없어. 읽고, 일하러 가지. 뭐라도 써라. 만날 날짜를 정하자.” 다른 날, 후일에. 또 만나자 수화기를 내려놓고 사람들은 계속 걸어간다 어두운 땅에서 어떤 의미(또는 말)를 찾았던 잭 케루악(Jack Kerouac)과는 달리 위층으로 가. 나는 글을 쓰지. “흐렸다가 맑아진다. 세상은 거기에 있다.” 지금 누군가 낯선 사람의 침대에서 깨어나고 있다. (1998년) On the Phone “Where are you?” which suggests people may not be where they are supposed to home or workplace is it an escape or pilgrim? what does it matter if we are on the way “What’s up?” then say something But with phone bill reducing to the lowest at midnight Enthusiasm drops to zero degrees too, call from God shakes on the dark rack, nobody is to answer Something perishing like the shining particles in rising river may be the reason for calling “Nothing much. read, go to work, Write something. let's fix a date for meeting.” some other day, other day. see you Putting down the receiver, people continue walking But Unlike Jack Kerouac who spanned the whole dark land, searching for some meanings (Or words). go upstairs. I write on “Cloudy and then sunny. The world is there.” Now somebody is waking up on a stranger’s bed (1998) 打电话 “你在哪儿呢?”这说明 人们不在惯常称之为家和单位的地方 逃亡还是朝圣?总之是在路上 “有事儿吗?”那么说些什么吧 电话费在午夜降到最低,热情 也降到零度,上帝的电话 在黑暗的支架上震动,无人倾听 打电话的理由是一些事物的消失 像上涨的江水中发亮的东西 “我没干啥。看书,上班, 写点儿东西。找机会聚聚吧。” 那么改天吧,改天聚聚。再见 放下电话,人们继续在路上 但不是凯鲁亚克那样,去跨越 整片黑暗的大陆,寻找一些意义 (或者词语)。上楼,我接着写 “今天天气阴转晴。世界存在着。” 有人从陌生人的床上醒来 (1998) ◆ 마영파(马永波) = 1964년 헤이룽장 성에서 태어났다. 시인, 시 평론가, 시 이론가, 번역가와 작가다. 영국과 미국의 포스트 모더니즘시의 주요 번역가이자 연구원으로 1986년부터는 문학 작품에 대해 논평, 번역 및 집필을 하고 있다. 현재까지 8권 이상의 원본 및 번역 작품이 출판되었다. 시안 교통 대학 동문 문학 협회 회장, 장쑤 현대시 연구 협회 부회장, 《东三省诗歌年鉴》의 편집장이며 지방의 주요 과학 연구 프로젝트 "Longjiang Literature Department - Translation Literature Volume"의 편집장이다. 엘리엇 이후 가장 유명한 미국 시인 애쉬 베리를 처음으로 중국에 소개했다. 문학 박사로 현재 난징과학기술대학교 인문학부 부교수로 난징과학기술대학교 예술문학과(시학연구센터)에서 근무하고 있다. 주요 학문적 방향은 중국과 서양시, 포스트 모던 문학 경향, 생태 비평, 문학 및 예술 이론이다. ☞ 강병철 작가 = 1993년 제주문인협회가 주최하는 소설부문 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며 문단에 데뷔했다. 2016년 『시문학』에서 시인으로 등단했다. 2012년 제주대에서 국제정치전공으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제주대학교 평화연구소 특별연구원, 인터넷 신문 ‘제주인뉴스’ 대표이사, (사)이어도연구회 연구실장 및 연구이사, 충남대 국방연구소 연구교수, 제주국제대 특임교수, 한국해양전략연구소 선임연구위원, 제주통일교육센터 사무처장 등을 역임하고 현재 한국평화협력연구원 연구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제33대 국제펜클럽한국본부 인권위원이며 국제펜투옥작가회 위원으로 활동했다. 제34대 국제펜클럽한국본부 인권위원으로 재선임됐다. 국제펜투옥작가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신장위구르 자치구역의 대표적인 위구르족 작가 중의 한 명인 누르무헴메트 야신(Nurmuhemmet Yasin)의 「야생 비둘기(WILD PIGEON)」를 번역 『펜 문학 겨울호』(2009)에 소개했다. 2022년에는 베트남 신문에 시 ‘나비의 꿈’이 소개됐다. ‘이어도문학회’ 회장을 역임하였으며 이어도를 소재로 한 단편소설 ‘이어도로 간 어머니’로 월간 ‘문학세계’에서 주관한 ‘제11회 문학세계 문학상’ 소설부문 대상을 받았다. 한국시문학문인회에서 주관하는 제19회 ‘푸른시학상’을 수상했다. 강병철 박사의 시와 단편소설은 베트남, 그리스, 중국 등 여러 나라 언어로 번역돼 소개되고 있다. 최근엔 중국의 계간 문학지 《국제시가번역(国际诗歌翻译)》에도 강 작가의 시 두편이 소개되었다.
소송 등 법적 분쟁을 하는 것이 일상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변호사를 찾아오는 의뢰인들을 보면 여전히 변호사 사무실을 찾는 일은 심적으로 많은 부담인 것처럼 보인다. 가끔 내가 변호사가 되기 전에 법정 분쟁을 겪게 되었으면 어떻게 할까라는 생각을 해 본다. 나 역시도 변호사를 찾아가서 법적인 문제를 이야기 하는 것도, 그 많은 변호사 비용을 마련해야 하는 현실도 매우 큰 부담으로 다가올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변호사 비용은 부르는 게 값이라 보통 서민들이 부담하기에 매우 큰 금액인 경우가 많고, 더욱이 소송에서 패소하는 경우에는 상대방 변호사 비용까지 부담을 해야 되는 상황이기에 소송을 하기 전에 변호사 비용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민사 소송에서 변호사 비용 등 소송비용은 어떤 원리로 산정이 되고, 누가 부담하게 될까? 우선 원칙은 소송비용은 패소한 당사자가 부담하게 되고, 다만, ①승소자가 그 권리를 늘리거나 지키는 데 필요하지 않은 행위로 발생한 소송비용 ②상대방의 권리를 늘리거나 지키는 데 필요한 행위로 발생한 소송비용의 전부나 일부 ③승소자가 적당한 시기에 공격이나 방어의 방법을 제출하지 않아 소송이 지연되어 발생한 소송비용의 전부나 일부 ④승소자가 기일이나 기간의 준수를 게을리해 소송이 지연되어 발생한 소송비용의 전부나 일부 ⑤그 밖에 승소자가 책임져야 할 사유로 소송이 지연되어 발생한 소송비용의 전부나 일부에 대해서는 법원은 승소자에게 부담하도록 할 수 있다.(민사소송법 제98조, 제99조, 제100조) 또한 피소자가 부담해야 될 소송비용의 종류로는 인지액(민사소송비용법 제2조), 서기료(민사소송비용법 제3조), 당사자, 증인, 감정인, 통역인과 번역인에 대한 일당, 여비 등(민사소송비용법 제4조), 법관과 법원서기의 증거조사에 필요한 일당·여비와 숙박료(민사소송비용법 제5조), 감정, 통역, 번역과 측량에 관한 특별요금(민사소송비용법 제6조), 통신과 운반에 쓰인 비용(민사소송비용법 제7조), 관보, 신문지에 공고한 비용(민사소송비용법 제8조), 송달료(민사소송비용법 제9조), 변호사 비용 또는 소송서류의 작성비용 등(민사소송법 제109조)이 있어, 변호사 비용은 패소자가 부담해야 될 소송비용의 일부 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패소자가 부담해야 될 변호사 비용의 산정은 승소자가 그 변호사에게 지급한 변호사 비용 전부가 아니라, 변호사 보수의 소소입용 산입에 관한 규칙에 의해서 그 비용이 제한되는데, 그 기준은 아래와 같다. 예를 들어 A가 B를 상대로 300만원의 대여금 소송을 하면서, 변호사에게 1억 원의 변호사 수임료를 지급한 경우다. A가 승소를 한 경우, A는 B에게 변호사 비용 1억 원을 청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30만원의 한도 내에서만 B에게 청구를 할 수가 있는 것이다. 즉, 이러한 경우에는 A로서는 굳이 변호사 비용을 들여가면서 소송을 진행할 실익이 없게 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본인의 분한 감정을 해소가 위하여 많은 변호사 비용을 부담해서 진행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필자의 소견으로는 소송은 권리의 행사 및 의무의 이행 한도 내에서 진행이 되어야 하는 것이고, 단순히 개인적인 감정을 풀기 위해서 진행되어서는 안된다. 이는 시간이 지날수록 분노의 감정은 자연스레 사그라 들지만, 현실적으로 위와 같이 소송비용 부담 등의 문제는 여전히 본인 몫으로 남게 되기 때문이다. 감정 보다 앞서 소송에 나서기 전 반드시 명심해야 할 사안이다. ☞홍광우는? = 대한변호사협회 부동산 및 형사전문변호사다. 현재 서귀포경찰서에서 경미범죄심사위원회 시민위원, 선도심사위원회 전문위원, 수사민원 상담센터 법률상담 변호사 업무를 맡고 있다. 또 서귀포시교육청 지방공무원인사위원회 위원, 서귀포지역 건축사회 법률자문위원회 위원, 서귀포시 노인복지관 고충처리 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한번뿐이야." "놓칠 순 없지." ☞ 오동명은? = 서울 출생.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뒤 사진에 천착, 20년 가까이 광고회사인 제일기획을 거쳐 국민일보·중앙일보에서 사진기자 생활을 했다. 1998년 한국기자상과 99년 민주시민언론상 특별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저서로는 『사진으로 세상읽기』,『당신 기자 맞아?』, 『신문소 습격사건』, 『자전거에 텐트 싣고 규슈 한 바퀴』,『부모로 산다는 것』,『아빠는 언제나 네 편이야』,『울지 마라, 이것도 내 인생이다』와 소설 『바늘구멍 사진기』, 『설마 침팬지보다 못 찍을까』 역사소설 <불멸의 제국> 소설 <소원이 성취되는 정원> 소설 <장군어미귀향가>등을 냈다. 4년여 제주의 한 시골마을에서 자연과 인간의 만남을 주제로 카메라와 펜, 또는 붓을 들었다. 한라산학교에서 ‘옛날감성 흑백사진’을, 제주대 언론홍보학과에서 신문학 원론을 강의하기도 했다. 현재는 지리산 주변에 보금자리를 마련, 세상의 이야기를 글과 그림으로 풀어내고 있다.
◆ 석다(石多)의 고향 돌이 많다는 것의 평가도 시대에 따라 담론이 달라진다. 과거에는 제주가 석다(石多)의 변방이자 척박(瘠薄)함의 대명사로써 고작 말이나 키우는 황무지 목장으로 인식됐다면, 오늘날은 문화경관으로써 제주도의 독특한 특성을 보여주는 자연자원으로 인식되고 있다. 돌은 자연에서 나와 사람의 손을 거쳐서 구멍이 송송한 돌담이 된다. 오로지 제주에 현무암 재료가 많다는 이유로 대표적인 토산재(土産材)가 된 것이다. 그러나 흔하다고 가치가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양적(量的)인 것이 질적(質的)인 것을 새롭게 구현하기도 한다. 어떤 경우든 세상 만물은 그 무엇이라도 각각의 효용성과 오로지 그것만이 할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역할이 있다. 돌은 이 두 가지 양면성을 모두 가지고 있다. 돌은 섬땅을 거칠게 만든 원인도 되겠지만 반대로 섬의 모진 바람을 막아주는 매우 요긴한 결과도 있었다. 그러기에 돌을 모두 나쁘다고 하는 것도 틀렸고, 모두 좋기만 하다고 해도 꼭 들어맞진 않는다. 사물에는 그것만의 속성이 있고, 또 상황에 따라 그 사물의 상태가 달라지기도 하며, 대응하는 방법에 따라 효용성도 다르게 나타난다. 돌의 물리적 속성이 갖는 특성에서는, 밭농사를 매우 어렵게 만들기도 했지만 목축산업의 경계구분과 방풍을 위한 돌담의 역할에서는 더없이 이로운 기능을 수행했던 것이다. 한갓 하찮다고 생각했던 돌덩이라도 자신이 있어야 할 자리를 지킬 수 있다면 유용한 힘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고, 만일 그렇지 못하게 되면 그저 쓸모없이 구르는 파치(破治)로 취급되기 일쑤다. 사실 파치도 여러 모로 쓸모가 많다. 보석 원석의 부스러기도 다른 보석과 어울려서 아름다운 하모니를 이룰 수 있고, 감귤 파치도 훌륭한 주스나 요리 재료가 되기도 한다. 천차만별의 보통사람들도 저마다 제 눈의 안경이 돼 상대방의 가치를 알아볼 수 있었던 것이다. ◆ 유용과 무용, 쓸모 있음과 쓸모없음 파치는 정확히 말해서 상품이 못되는 제품, 즉 공산품을 말한다. 농산물도 상품이 되면서 상품으로 판정된 것만 인정하고 나머지는 모두 파치가 된다. 여기에 상품미학의 무서움이 있다. 오로지 해당 상품을 돋보이게 하는 일이 상품미학의 본질이라면, 본질이 어쩠더라도 상품 포장에 더 신경 씀으로써 상품의 가치를 인정받아야 하는 그 기준만을 위해서, 모든 역량을 집중하게 된다. 언젠가 나는 “기준은 권력이다”라고 말 한 적이 있다. 어떤 것에 기준을 조금만 완화하게 되면 많은 것들이 살아날 수 있고, 많은 사람들이 그 혜택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상품의 목표가 이윤을 창출해야만 하는 목적을 갖게 되면서 그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기준을 더욱 강화하게 된다. 사실상 기준이란 그 사회의 이데올로기에 불과한데, 그 이데올로기는 결국 소수를 위한 소수에 의한 자본주의 질서를 유지하려는 상품 생산자들의 마케팅인 셈이다. 만일 하나의 농산물을 생산품으로 본다면 기준에 못 미치는 작은 것이라도 버리지 않고, 용도를 달리해서 유통시키기가 쉽다. 생산품이란 대지에서 이룩한 모든 물적인 산물을 말하는 것으로써 모양의 차이는 있을지라도 맛의 차이에서 맛의 깊이만 다를 뿐 큰 차이는 없다. 상품보다는 생산품이 그만큼 유용한 쓰임의 범위가 넓어지게 되는 것이다. 자본주의 눈으로 보면 상품은 유용한 물건이고 파치는 무용한 물건이 된다. 반대로 생산자의 시각으로 보면 상품이나 파치나 다 유용한 물건이 된다. 거기에 기준이 설정되면서 잘 생긴 것을 상품으로, 못생긴 것을 파치로 여기게 된 것이다. 옛날에 돌은 골칫거리였다. 돌을 딴 데로 치우는 것도 버거 워서 밭 주변을 최대한 이용했던 것이 오늘날 돌담이었다. 그것으로 보면 돌은 그냥 무용한 물건에 불과했다. 그러나 강한 바람이 불고, 사유지가 생기고, 또 집을 짓는 재료가 되면서 농사를 위한 방풍(防風)과 경계 구분을 위한 담(墻, fence)이 되면서 마소의 침입 방지에 적합해서 점점 유용한 물건으로 인식되었다. 요즘에는 돌도 귀해서 돈이 되고 있다. 토산재로써 돌은 건축 분야에서 제주다움의 건축미를 위해서 매우 중요한 재료가 되고 있다. 돌은 무엇보다도 내구성(耐久性)이 좋으며, 형태를 가공할 수 있는 성형(成形)의 응용력이 뛰어나 제주 자연경관에 어울리는 건축미를 좌우한다. 한 마디로 돌은 자연친화적이라는 장점이 있다. 사실 돌이 등장하기 전에는 목재가 제주 지역을 지배했다. 목재는 비교적 부드러워서 다루기가 쉽고 가까운 한라산이나 곶(藪)의 천연 수림지대에서 쉽게 구할 수가 있어서 각광을 받았다. 그러나 목재는 물에 약하다는 것이 큰 약점이어서 외부의 설치물들은 점점 돌에게 내어주고 말았다. ◆ 낭(나무)에서 돌로 대체 시킨 환경 낭(남, 나무)의 효용도가 많아 도구의 역사 중에서 석기, 골각기, 목기(木器, 썩는 특성 때문에 오래된 유물을 보기 어렵다)는 인류 처음 시대에 해당해서 나타났다. 농기구, 가옥의 대문 등 내부에 두는 도구는 나무를 사용하면서도 외부에 축조하거나 설치되는 도구들은 물팡, 디딜팡, ᄆᆞᆯ팡돌, 정주석이 있고, 화로, 봉덕, 돗도고리 같은 도구들은 모두 돌로 대체되었다. 제주도의 목재 이용은 대개 도구에 집중되고 있다. 실내에서 사용하기 때문에 동백기름을 매기면서 내구성을 유지하였다. 목재로 만든 도구들을 보면, 잠대(쟁기), 절벤(동그랑떡, 빗살무늬로 해를 상징)과 솔벤(월변, 반달로 달을 상징) 떡본, 안반(나무 안반과 돌 안반이 있다), 솜빡(솔빡), 되약새기, 곰배, 도리께, 세답막개, 덩드렁막개, 당그네, 갈래죽(가래죽, 삽), 쉐질메, 마소 멍에, 테왁어음, 남도고리, 남박, 남테, 나막신, 마차, 혼백상자, 뒤주, 차경, 차경, 사둘, 산태, ᄃᆞᆯ체, 살레, 궤, 남죽, 남자, 괴움낭, 낭공쟁이, 목도낭, 목탕(목침), 남박새기, 참빗(쳉빗), 작박, 개판, 기둥, 포, 문지방, 고팡문, 대문, ᄌᆞ록, 선반, 돔베 등이다. 제주도 나무의 대표적인 수종으로는 소낭(소나무)에도 곰솔(흑송)과 비교적 해발고도가 높은 데 1000m 이상에서 사는 적송이 있고, 사옥(벚나무),굴무기낭(느티나무), ᄌᆞ배낭(구실잣밤나무), 북가시낭(ᄇᆞᆰ가시나무), 가시낭(종가시나무), 먹쿠실낭(멀구슬나무), 녹낭(녹나무), 폭낭(팽나무), 조록낭(조록나무), 노가리낭(주목), 비자낭(비자나무), 솔피낭(솔비나무), 후박낭(후박나무), 종낭(때죽나무), 구상낭(구상나무), 황칠낭(황칠나무), 돔박낭(동백나무), 굿가시낭(구찌뽕 나무), 윤노리낭(민윤노리나무) 등이 목재 도구의 재료로 쓰였다. 그러나 목재는 아무리 단단한 나무를 사용했다고 하더라도 제주도는 연 평균 강수량이 1800mm가 되고, 습기가 많아서 목재는 외부용 설치도구인 경우 10년을 넘기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조선시대에는 목장의 목책(木柵) 대신 돌담으로 교체되기도 했다. 아무튼 외부에서 수명이 짧은 목재의 약점을 보완하고자 등장한 것이 석재였다. 특히 외부용 설치 도구들은 장기간 존속돼야 교체하는 노동의 번거로움을 덜 수 있었기 때문에 주로 건축 관련 축조물에 이용되었다. 돌로 된 도구들이나 설치물들을 보면, 주로 마모나 동물의 움직이는 힘을 견뎌야 하는 것들에 사용되었다. 곡물을 계속 찧어 장만해야 하는 돌절구, 가루를 내기 위해 오래 돌려야 하는 ᄀᆞ래(맷돌)와 풀ᄀᆞ래, 받혀서 깨지지 않도록 힘이 센 돼지를 위해 마련된 돗도고리. 강한 불씨를 견뎌야 하는 돌화리(화로)나 봉덕, 지속적으로 옷을 두드려펴야 하는 돌안반, 물 묻은 물구덕을 보관해야 하는 물팡, 마소에게 물이나 ᄎᆞᆯ(꼴)을 먹일 때 넘어뜨리지 않도록 한 무거운 돌구시(구유), 눈과 비, 바람에도 잘 서도록 만든 정주석 등이다. 도구의 재료는 견고해야 선택되고, 또 도구의 사용에서는 시간을 절약할 수 있어야 실용적이라고 생각한다. 즉 도구는 제주 풍토가 비바람을 이겨내야 하는 환경 여건에서 생계를 이롭게 하는 기능성을 우선 생각하는 것이 도구 본연의 역할이 아닐까. ◆ 물질의 속성은 남아도 형태는 변한다 필자는 2015년 발행된 『제주 돌담』이라는 책에서 같은 현무암이라도 제주 안에서 지역마다 돌담이 다르다고 쓴 적이 있다. 화산 현무암 지대이지만 색깔이나 모양이 다룰 수밖에 없는 것은 돌이 생성될 때 마그마의 성분과 온도와 굳은 조건들이 달랐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돌이라면 그저 딱딱하게 죽은 무기물(inorganic matter)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돌과 같은 고체(solid)도 과학적인 개념의 ‘계(系,lineage)’에서는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분자들의 멈추지 않는 움직임이 있다. 물론 기체 상태에서 분자들은 활발하고 빠르게 움직이는 것이 사실이지만, 고체 상태에서는 분자들이 매우 천천히 느리게 움직일 뿐이다. 하지만 고체는 겉이 딱딱해서 정지된 것처럼 보여도 사실은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어 살아있는 것이다. 분자(分子, molecule)는 어떤 한 물질에서 그 물질의 특성을 유지하는 최소 단위를 가리키는 말이다. 단단한 고체인 돌도 분자운동에 의해 시간이 흐르면서 마모되거나 균열이 일어나 쪼개지고 , 마침내 작은 알갱이로서 가루가 된다. 지질학적 시간은 인간의 감각으로 보면 매우 더디고 지루한 연대기라고 할 수 있다. 하기야 인간은 수십억 년의 지질 연대에 비하면, 기껏해야 100년 수명을 채우기도 어려운데 더디고 더딘 암석의 변화 과정을 맨눈으로 관찰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하지만 인간은 대를 이어서 다시 뒷사람에게로 진화의 끈을 이어주어 문명의 힘을 빌려서 물질의 분자 운동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사실 돌이라는 고체 내부의 분자 운동이든, 외부적인 영향에 의한 풍화작용이든 돌의 형태들은 하루하루가 매우 천천히 변하면서 조금씩 형태가 달라진 것이다. 생각지도 않게 자신이 태어나던 해에 보았던 돌담이 노년이 돼서도 그대로 같은 돌담으로 서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도 결국 그때와 같은 돌담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기에는 우리가 너무 바쁘게 살고 있어서 그걸 몰랐던 것이다. 가령 작은 돌담의 변화도 모르고 살던 우리가 어느 날 내 주변 풍경이 눈에 띄게 달라 보이게 되면, 그때서야 화들짝 놀라는 자신의 뒤늦은 자각을 가리켜 우리는 미국의 지리학자 칼 사우어의 개념을 빌어 ‘풍경의 기억 상실‘이라고 부른다. ◆ 돌담, 대표적인 토산재(土産材) 지구상의 수많은 사람들도 같은 얼굴이 없듯이 그렇게 흔한 돌도 만인만상(萬人萬相)으로 다양한 색깔과 모양을 띤다. 쌓아진 돌담이 다른 것은 화산 분출시 대지를 뒤덮은 마그마의 화학 성분과 지역 간 온도나 강수량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제주도 송당, 김녕, 한림, 고산, 대정, 가파도, 서귀포, 성산포 등등의 돌담들은 형태와 색채에서 차이가 나는 것이다. 사실상 돌담이 마을마다 다른 이유는 세 가지로 볼 수 있다. 먼저, 시간과 시대에 따라 분출된 마그마의 성분이 다르다는 것이 그 하나이고, 돌담으로 쌓은 이후 각종 기후 변화에 의한 외부적인 풍화작용으로 변형되었다는 것이 그 둘이며, 마을 돌챙이(石匠)들이 시대마다 각자 개성적으로 쌓았다는 것이 그 세 번째 이유라고 할 수 있다. 분출된 마그마의 성분이 다르다는 것은 같은 현무암이어도 파호이호이 용암, 아아용암, 조면암으로 구분할 수 있고, 용암의 가스 함양에 따른 기공(氣孔)의 크기, 실리카의 함량에 따라 달라지는 돌빛깔이 결정된 후에도, 다시 바람, 기온, 비, 햇볕에 의해 변하는 외부적인 기후 조건까지, 돌의 변색이나 마모, 변형은 오히려 자연스러운 현상일 것이다. 그리고 사람의 솜씨에도 천부적인 재능이 있듯이 돌을 다루는 기술에도 돌챙이(石匠) 개인마다 특성과 장점이 있다. 비록 하나의 섬에서도 기후 조건이 비슷할지 모르지만 그곳의 세부적인 풍토적 조건이 지질이나 지형, 풍화 조건에 따라 지역마다 차이가 있을 수 있다. 특히 석질과 풍화적 환경조건이 그렇게 만드는 것이다. 현무암이라도 해안에서 깎인 돌이냐, 내창(乾川)에서 구른 돌이냐, 아니면 드르팟(野)이나 곶(藪)에서 기후에 의해 풍화된 돌이냐에 따라 빛깔, 모양, 형태가 다르다는 것을 말했다. 섬 둘레가 400여리(1리:0.4km) 남짓하고 섬 자체가 화산으로 이루어진 섬이지만 제주의 석질은 크게 현무암 내에서 파호이호이 용암과 아아용암, 그리고 조면암 지역으로 구분할 수 있다. 우리는 이것을 토산재(土産材)라고 부른다. 토산(土産)이란 자신이 살고 있는 땅에서 나는 돌을 말하는 것이다. 인간은 자신이 사는 곳에 적응해 가면서 살아간다. 그래서 여러 가지 주변 사물이나 기후 현상이 같은 등질지역(homogeneous region)에서 무리를 지어 살면서 서로 이웃을 이룬다. 그러나 만약 그곳에 동화되지 못한다면 우리는 그 장소를 떠나 새로운 곳으로 이주해야만 한다. 이주(移住)란 작게는 집을 옮긴다는 이사를 말하지만 넓게는 삶을 누릴 수 있는 곳을 찾아 떠나는 것이다. 도외나 해외 이주가 그것이다. 최근 지구는 난민들의 이주로 인해 떠들썩하다. 이주는 자신이 살던 곳의 정치적 상황이 악화되거나, 경기가 폭망(暴亡)하여 실업으로 경제적인 희망을 잃어버리게 되면 새로운 땅을 찾아서 먼거리를 마다하고 위험을 감수하는 것이다. 어쩌면 인류의 문명사는 누가 뭐래도 길고 긴 이주의 대장정(大長程)의 생존 드라마라고 할 수 있다. “문명은 자연적 장애물에 대한 투쟁의 결과다”라고 한 프랑스의 인문 지리학자 블라쉬(Blache,1845~1918)의 말에는 자연·환경적 조건에서 하루하루 살아갈 수 있는 생계수단을 확보해야 한다는 의미가 들어있다. 문명은 분명히 자연과의 싸움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이 이룩한 도구와 편의시설의 역사인 셈이다. 알베르티(L.B.Alberti, 1404~1471)는 말한다. “자연의 힘은 너무도 커서 간혹 장애물에 의해 가로막히거나 다른 곳으로 흐름이 돌려질 수는 있을지언정, 그럼에도 불구하고 맞서고 가로막는 그 어떤 것들도 항상 꺾어버리고 파괴할 것이다.” 그는 자연의 위력을 절대적으로 생각하고 있어서 “사람의 손으로 이루어진 얼마나 많은 것들이 자연에 맞선 까닭에 살아남지 못한 것을 우리는 읽고 또한 보았지 않은가?”라고 반문한다. 결국 사람들이 어떤 장소에서 유랑을 멈추게 된 것은 안정적으로 정착할 수 있는 삶의 요소들을 모두 갖출 수 있었기 때문이 아닌가. 그 삶의 흔적인 자신의 공간에서 자연에 맞서는 돌담을 다시금 볼 필요가 있다. ◆ 마을의 입지 조건이 만들어 낸 돌담 풍경 바닷가 마을은 바닷가 마을의 돌담 풍경(landscape)이 있고, 내창〔乾川〕 마을 가까이에는 그 곳의 돌의 특성이 배어든 돌담이 있다. 아아용암이 흔하거나, 그 돌이 가까이 있는 마을에서는 그 아아용암 석재를 건축에 이용할 것이다. 바닷가 먹돌이 많은 지역에선 먹돌로 돌담을 쌓는 것과 같다. 조면암이 발달한 지역에서는 조면암 석재를 쉽게 구할 수 있어서 그것으로 돌담을 쌓을 것이다. 그렇지만 재료가 많아도 그 재료가 단지 돌담만을 쌓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다. 석질 자체가 상징적인 예술에도 이용이 가능 하다면, 죽은 자를 위무하기 위해 무덤 석상이나 비석으로도 사용할 수 있다. 비석은 특성상 망자의 생애를 새겨야 하기 때문에 석질이 글자가 잘 보여야 하는 돌을 선택하게 된다. 석상 또한 사실적으로 아이나 선비의 형상을 새겨서 묘주를 기념해야 하기 때문에 좋은 석질이면 금상첨화라고 할 수 있다. 조선시대 제주에서는 비석과 석상 제작의 재료가 조면암이 많이 생산되는 화순리와 신예리, 그리고 영락리에서 주로 생산되었다. 제주도 남부지역과 서부지역에 해당하는 지역들인데 이 지역의 돌담들은 조면암 산지라는 이점 때문에 석물을 만들면서 깨트린 담돌들을 손쉽게 이용하고 있다. 그렇다면 조면암 산지가 아닌 다른 지역에서는 어떻게 무덤의 석물 재료를 공급했을까. 국가이념이었던 예사상의 전파는 전조선을 조상숭배의 도그마로 몰아넣었다. 공동체 사회가 한꺼번에 성리학 도그마에 휩싸였을 때 남들이 다 무덤에 석물을 세워가니 자신도 덩달아 그러해야 하는 것처럼 집단무의식이 발동한다. 그래서 무덤의 석물 재료가 신통치 않더라도 손 놓고 있는 것 보다는 그래도 낫다는 생각으로 자신의 마을 주변에서 글자를 새길 수 있을 정도의 조면질 현무암을 캐어다가 조면암 대신 비석을 만들고, 아아용암으로는 비록 석질이 나쁘지만 궁여지책을 삼아 석상을 만들어 세우기도 했다. 효도를 권장하는 사회에서 돌은 매우 중요한 ‘발견된 상징적 재료’가 되었고, 유독 제사를 잘 받드는 우리로서는 그런 돌의 발견이야말로 곧 국가 이데올로기에 충실한 신하의 역할을 다 한 것이 아니었을까?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김유정은? = 최남단 제주 모슬포 출생이다. 제주대 미술교육과를 나와 부산대에서 예술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미술평론가(한국미술평론가협회), 제주문화연구소장으로 일하고 있다. 저서로는 『제주의 무신도(2000)』, 『아름다운 제주 석상 동자석(2003)』, 『제주의 무덤(2007)』, 『제주 풍토와 무덤』, 『제주의 돌문화(2012)』, 『제주의 산담(2015)』, 『제주 돌담(2015)』. 『제주도 해양문화읽기(2017)』, 『제주도 동자석 연구(2020)』, 『제주도 산담연구(2021)』, 『제주도 풍토와 문화(2022)』, 『제주 돌담의 구조와 형태·미학(2022)』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