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드문’ 조직원들이 조직의 배신자를 바지선에 태우고 인천 앞바다쯤으로 보이는 가까운 바다에서 죽을 만큼 두들겨팬다. 그다음 산 사람 입에 강제로 ‘콘크리트’를 부어 넣고 드럼통에 넣어서 다시 드럼통을 콘크리트로 채우고 뚜껑을 밀봉해 바다에 수장한다. 영화 ‘신세계’는 이런 장면으로 시작한다. 어렴풋이 동트는 바다를 뒤로하고 조직원들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항구로 돌아와 시침 떼고 세상 속에 섞인다. ▲ 민주적 절차에 따른 협의에 의한 합의에 도달하는 과정에서 양극화는 점점 심해진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관객으로선 저런 무시무시한 조직이 우리 이웃에 평범한 얼굴로 돌아다닌다는 것이 공포스러울 수밖에 없는데, 다음 장면에서 구속됐던 ‘골드문’ 회장이 가석방으로 풀려나는 뉴스가 나온다. 회장님은 개선장군처럼 구치소를 나서며 대자대비한 미소를 머금고 미끈한 승용차에 오른다. 악마의 조직의 ‘대마왕’이 감방에 갇혀있어도 그 조직원들이 생사람의 배 속을 콘크리트로 채워 수장하고 날뛰는데 이제 ‘대마왕&rs
박훈정 감독의 ‘신세계(2012년)’는 우선 영화제목이 너무 평범해서 오히려 호기심을 자극한다. ‘신세계’라는 이름은 어쩔 수 없이 백화점 상호 ‘신세계’를 떠올리게 한다. 설마 백화점 홍보가 아닌 이상 감독은 ‘신세계’라는 제목에 무슨 의미를 담고 싶어 했을지 궁금해진다. ▲ '신세계'는 모두가 함께 꿔야 가능한 꿈이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백화점이 아니라면 ‘신세계’라는 말에서 연상되는 또 다른 이미지는 미국 신대륙의 장엄함과 희망을 담은 드보르자크의 ‘신세계 교향곡’쯤이다. 또 다른 것은 올더스 헉슬리(Aldous Huxley)의 현대문명에 대한 비판과 경고를 담은 소설 「멋진 신세계(Brave New World)」도 있다. 그다음으론 서구사회에서 줄기차게 문제를 제기해 왔지만 여전히 실체가 베일에 가려져 있는 전세계 엘리트들의 비밀조직 ‘프리메이슨(Freemason)’이 표방하는 ‘신세계 질서(New World Order)’
러드로 대령은 정의롭지 못한 ‘인디언 전쟁’에 환멸을 느끼고 젊음을 바친 군대를 떠난다. 러드로 대령이 보기에 그것은 ‘전쟁’이라기보단 ‘학살’이었다. 군인의 명예는 당연히 적군과 맞서 싸워 조국을 지키는 것일 텐데, ‘인디언 전쟁’은 그렇지 않았다. ‘인디언 전사’들과의 전투가 아니라 인디언 마을을 덮쳐 마을을 불태우고 인디언 아녀자들을 몰살했기 때문이다. ▲ '부정(否定)의 정의(定義)'는 '정의(定義)'가 아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러드로 대령은 명예롭지 못한 ‘전쟁’에 분노하고, 그 ‘학살명령’을 내린 미국정부에 대해서도 분노한다. 정의롭지 못한 ‘인디언 전쟁’에 치를 떨게 된 러드로 대령은 ‘반전주의자’가 되고, 또한 전쟁을 조장하는 정부에 분노하는 ‘반정부 인사’가 된다. 말 그대로 ‘anti-’의 정체성을 갖게 된다. 그리고 자신의 &lsq
도회로 나간 하버드 유학생인 막내아들 새무얼이 몬태나의 아버지 목장으로 약혼녀 수잔나를 데려온다. 아버지 러드로 대령과 큰아들 알프레도가 정장을 차려입고 기차역까지 마중을 나가 예를 갖춰 맞이한다. 그 자리에 둘째 아들 트리스탄은 없다. 목장에 도착했을 때 저 멀리서 말을 탄 트리스탄이 천천히 다가온다. ▲ 고대 그리스 시대 이래 자연법과 실정법의 관계는 항상 편치 못하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알프레도가 수잔나에게 트리스탄을 소개하지만, 트리스탄은 ‘만나서 반갑다’거나 ‘환영한다’는 간단하고 상투적인 인사조차 없이 수잔나 얼굴을 빤히 들여다보며 빙글빙글 웃기만 한다. 대단히 무례하다. 알프레도가 수잔나에게 그런 트리스탄을 가리켜 ‘원래 이놈은 우리 목장의 동물들보다 무례하다’고 양해를 구하지만, 정작 수잔나는 전혀 불쾌한 기색 없이 최고의 환영을 받은 듯 흐뭇하기만 하다. 잘생기면 좀 무례해도 모두 용서되는 모양이다. 얼굴이 ‘열일’한다.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새무얼이 전사하고 수잔나는 미망인 아닌 미망인이 된다. 러드로 대령은
‘가을의 전설’에는 곰이 3번 등장한다. 압도적인 존재감을 뽐내는 ‘신 스틸러’다. 곰으로 시작해 곰으로 끝난다. ‘한칼’의 내레이션에 의하면 15살 되던 해 트리스탄은 자신의 운명을 찾겠다고 느닷없이 야밤에 숲속에 찾아들어가 잠자는 곰을 깨워 맞짱을 뜬다. 교실에서 낮잠 자고 있는 학교의 ‘짱’을 깨워 한판 뜨자고 하는 ‘중2병’ 걸린 15살 소년의 모습이다. ▲ 경제야말로 무너져서는 안 될 현대사회의 '신전(神殿)'이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트리스탄은 가슴에 상처를 입지만, 대신 곰 발톱을 하나 뽑아버린다. 눈 비비고 일어나 비몽사몽 중에 발톱을 뽑힌 곰이 어이없어서 고개를 저으며 숲속으로 사라짐으로써 결투는 트리스탄의 승리로 끝난다. 곰이 잘했다. ‘중2’는 피하는 게 상책이다. 성인이 된 트리스탄은 어느날 사냥에 나섰다가 곰을 발견하고 총을 겨누지만, 이내 총을 거둬들이고 곰은 숲속으로 유유히 사라진다. 트리스탄은 아내의 죽음에 책임이 있는 주류밀매업자와 부패한 경찰
영화 ‘가을의 전설’의 서사의 시작과 끝은 ‘One Stab(한칼)’이라는 이름을 가진 인디언의 내레이션으로 이뤄진다. 아마도 미군에게 토벌당하기 전에는 인디언 부락에서 ‘한칼’ 했던 인물인 듯하다. 러드로 대령이 세상을 등지고 몬태나 산자락의 황야에 정착하면서 함께 목장을 일군 ‘창업공신’쯤 돼 보인다. ▲ 인디언 사회의 정신과 문화는 250년 이상 지속된 전쟁을 거치면서 철저하게 파괴되고 사라지고 말았다. [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몬태나의 산자락 목장에 은거한 러드로 대령은 자신이 토벌하던 인디언들과 함께 살아간다. ‘한칼’ 외에도, 러드로 대령의 목장 동료들은 인디언 여자들과 결혼해 가정을 꾸리고 평화롭게 살아간다. 러드로 대령은 인디언의 문화와 전통을 존중한다. 가장 사랑하는 둘째 아들 트리스탄의 교육은 거의 인디언 ‘한칼’에게 일임한다. 덕분에 트리스탄은 인디언처럼 자란다. 러드로 대령의 목장에서 인디언들은 어설픈 백인 복장을 하거나 인디언의 말을 버릴 필요도 없이 서로가 서로를
‘가을의 전설’에 등장하는 러드로 대령의 가문은 영국 콘월(Cornwall)계다. 영국계 이민자의 혈통인 셈이다. 한국의 김씨 중에도 여러 문중과 파가 있듯, 영국 앵글로색슨족에도 여러 파가 있다. 코니시(Cornish)로 불리는 영국 콘월 지방 출신의 앵글로색슨들의 자부심은 남다르다. 가장 유서 깊은 앵글로색슨이라 자부한다. 콘월 출신 미국 이민자들 역시 스스로를 ‘코니시 아메리칸(Cornish American)’으로 부르며 남다른 콧대를 자랑한다. ▲ 쇼펜하우어가 보기에 이 세상에 인간의 이성이나 의지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란 없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코니시 아메리칸’은 다른 앵글로색슨보다 앞서 미국에 이주하고 광산개발에 뛰어들었던 사람들이다. 미국의 해리 트루먼 대통령,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도 ‘코니시 아메리칸’이었으니, 이들이 유별난 자긍심을 느낄 만도 하다. 그래서인지 러드로 대령을 연기하는 앤서니 홉킨스는 알아듣기 어렵고 오만하고 딱딱한 영국 ‘코니시’ 억양을 구사한다. 무척 인상적이다.
러드로 대령(앤서니 홉킨스)은 ‘인디언 전쟁’에 참여해 아녀자들과 아이들, 노인들만 모여있는 인디언 마을을 불지르고 닥치는 대로 죽여야 하는 임무를 받는다. 자신의 의지는 아니지만 군인이 ‘국가’의 명령을 거역할 수 없는 일이다. ‘인디언 전쟁’ 아닌 ‘인디언 대학살’을 마무리 지은 러드로 대령은 군인의 상징인 칼을 패대기치고 국가와 군대를 버린다. ▲ 속세를 떠나 자연의 품에 안기고자 했던 인간들의 꿈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국가에 대한 배신감과 환멸, 그리고 학살의 죄책감에 무너진 러드로 대령이 찾아가 몸을 의탁한 곳은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몬태나주의 황량한 산기슭이다. ‘몬태나(Montana)’라는 이름 자체가 스페인어 ‘mo ntana(mountain)’에서 왔다. 문자 그대로 험준한 ‘산악(mountain)’ 지역이다. 그런 만큼 금광을 찾아나섰던 ‘골드러시’의 광풍이 휩쓸었던 지역이기도 하다. 몬태나주는 미국에
에드워드 즈윅(Edward Zwick) 감독은 남북전쟁을 다룬 ‘Glory’, 일본 개화기의 사무라이를 그린 ‘The Last Samurai’ 등 시대적 서사극을 솜씨있게 빚어내는 감독이다. ‘가을의 전설(Legends of the fall):1994’ 역시 역사 서사극(Epic Drama)이다. ▲ 인간은 역사의 꼭두각시 인형이다. [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서사극’은 그 속성상 거역할 수 없는 시대의 흐름과 격랑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인간 군상의 모습을 그린다. ‘주체적’이고자 하는 것은 모든 인간의 희망사항이고 때론 ‘인간’이 대단히 주체적인 존재인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그리고 대개의 인간들은 그렇게 주체적이고 독립적이지 못하다. 강물이 범람하고 쓰나미가 몰려오면 그 속의 인간들은 그저 흐름에 휩쓸려가고 운명이 결정되는 것처럼, 역사의 흐름이나 대사변의 소용돌이 속에 인간은 무기력하다. 그리고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그 흐름들이 운명이 되고 만다. 대개는
에린모어 장군은 영국군 전방부대에 긴급 명령을 전달할 ‘요원’으로 스코필드 하사와 블레이크 일병을 지목한다. 그가 다소 ‘얼빵’해 보이는 블레이크 일병을 뽑은 이유는 단 하나, 그의 형이 전방부대에 있어서다. 블레이크 일병에게 임무 완수는 사랑하는 형을 구하는 일인 셈이다. 이보다 더 확실한 ‘동기부여’는 없다. 국가든 회사든 그들이 나와 가족을 지켜줄 수 있을 때 헌신할 뿐이다. ▲ 모든 전쟁은 나라 간의 전쟁 같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모두 ‘개인 간의 전쟁’이다. [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1차 세계대전 중 프랑스 서부전선에서 에린모어 장군은 영국군 전방부대에 총공격계획 중지를 긴급히 전달하기 위해 수많은 격전을 헤치고 살아남은 스코필드 하사를 선택한다. 그리고 또 한 명의 병사, 블레이크 일병을 스코필드 하사에게 붙여준다. 현명하다면 현명하고, 간교하다면 간교한 인선이다. 블레이크 일병이 선택된 이유는 단 한가지다. 그가 유난히 애국심이나 책임감이 강해서도 아니고, 일당백의 전투력이나 기민성을 갖춰서도 아니다. 단지 그의 친형
에린모어 장군으로부터 적진을 돌파해 최전방 영국군 부대에 긴급명령서를 전달하라는 특명을 받은 베테랑 병사 스코필드 하사와 블레이크 일병. 냉정한 스코필드 하사와 달리 마음이 따뜻했던 블레이크 일병은 적군을 구해주려다 되레 사망한다. 착한 사마리아인의 최후처럼 보인다. 하지만 착한 사마리아인이 비극을 맞는 것만은 아니다. 우리나라를 두고 하는 말이다. ▲ 폭염에 아무리 불편해도 얼굴 가득 마스크를 착용하고 다니는 우리 모두가 ‘착한 사마리아인’이다. [일러스트=게티이미지] 1차 세계대전 최대의 격전으로 기록된 ‘솜(Somme)강 전투’에도 참가했던 베테랑 병사 스코필드 하사는 에린모어 장군으로부터 적진을 돌파해 최전방 영국군부대에 긴급명령서를 전달하라는 특명을 받는다. ‘솜강 전투’는 바로 1년 전인 1916년 7월부터 11월까지 프랑스 서부 솜강 근처에서 벌어졌던 1차 세계대전 최악의 전투였다. 전투 첫날 영국군 희생자가 무려 5만8000명을 기록했고, 석달간의 전투가 끝났을 때, 영국·프랑스 연합군의 희생자 60만명, 독일군 희생자 40만명
1차 세계대전 프랑스 전선. 독일군과 마주한 최전선에서 명령만을 기다리고 있던 영국군 부대에 마침내 ‘내일 총공격하라’는 명령이 하달된다. 영국군 사령부는 공중정찰을 통해 독일군이 퇴각한다는 정보를 파악한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그 퇴각이 독일군의 기만전술임을 파악한다. 에린모어 장군은 급히 스코필드 병장과 블레이크 일병을 독일군 점령지역을 통과해 전방부대 매킨지 대령에게 공격취소명령서를 전달하도록 한다. ▲ ‘개싸움’에서라면 인정에 호소할 수도 있겠지만, 미사일엔 호소가 통하지 않는다. [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스코필드와 블레이크는 잔뜩 웅크리고 폐허가 된 채 버려진 독일군 점령지역을 통과한다. 길은 가시밭이다. 독일군이 버리고 간 참호에서 지뢰가 폭발해 매몰될 위기를 넘기기도 한다. 그럼에도 주인이 떠난 농가에서 소젖을 짜서 수통에 담으면서 전진한다. 스코필드와 블레이크는 농가에서 소젖을 짜 비상식량을 조달하면서 독일 전투기와 영국 전투기 몇대가 벌이는 공중전을 한가로이 올려다본다. 말이 ‘공중전’이지 커다란 글라이더 몇대가 한가롭게 하늘을 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