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외 형무소에서 행방불명된 4·3희생자 5명과 도내에서 행방불명된 2명의 신원이 새롭게 확인됐다.
제주도와 제주4·3평화재단은 지난해 유해발굴 및 유전자감식 사업을 통해 행방불명 4·3희생자 7명의 신원을 새롭게 확인했다고 23일 밝혔다.
도외 신원 확인 희생자로는 대전 골령골에서 추가로 3명이 확인됐다. 앞서 2023년 대전 골령골에서 제주시 조천읍 북촌리 김한홍 희생자의 신원이 확인됐었다. 또 대구형무소 희생자들이 학살된 경북 경산 코발트광산에서 발굴된 유해에서 처음으로 2명의 신원이 확인됐다.
도내에선 2007년과 2009년 제주공항에서 각각 발굴된 유해에서 신원이 밝혀졌다.
제주읍 이호리 출신인 김사림(당시 25세)씨는 한라산에서 피난 생활 중 1949년 2월경 주정공장수용소에 수감된 이후 형무소로 끌려갔다는 소문을 마지막으로 소식이 끊겼다. 조사 결과 대전형무소에 수감된 사실이 확인됐다. 대전 골령골에서 일어난 집단학살로 희생당한 것으로 추정된다.
제주읍 도련리 출신인 희생자 양달효(당시 26세)씨는 1948년 6월경 행방불명됐다. 이후 주정공장수용소에 수감됐다는 얘기를 듣고 한 차례 면회한 것을 마지막으로 소식이 끊겼다. 조사 결과 대전형무소에 수감된 사실이 확인됐다. 대전 골령골 집단학살로 희생당한 것으로 추정된다.
강두남(당시 25세)씨는 제주읍 연동리 출신으로 1948년 10월경 한라산에서 피난 생활 중 가족과 소식이 끊겼다. 조사 결과 1949년 7월경 대전형무소에 수감된 사실이 확인됐다. 6·25전쟁 발발 후 대전 골령골 집단학살로 희생당한 것으로 추정된다.
애월면 소길리 출신인 임태훈(당시 20세)씨는 1948년 12월 경찰에 연행된 이후 행방불명됐다. 조사 결과 목포형무소에 수감됐다가 대구형무소에 이감된 사실이 확인됐다. 유해가 발견된 경산 코발트광산 집단학살로 희생당한 것으로 추정된다.
송두선(당시 29세)씨는 서귀면 동홍리 출신으로 1949년 봄 경찰에 연행된 이후 행방불명됐다. 1949년 7월경 대구형무소에 수감된 사실이 확인됐다. 6·25전쟁이 발발 후 경산 코발트광산 집단학살로 희생당한 것으로 추정된다.
제주읍 오라리 출신인 송태우(당시 17세)군은 1948년 11월 한라산에서 피난 생활 중 토벌대에 의해 연행된 후 바다에 수장됐거나 제주공항에서 희생됐다는 등 전해지는 말만 있었다. 유해는 제주공항에서 발굴됐다.
강인경(당시 46세)씨는 한림면 상명리 출신으로 1950년 6·25전쟁이 발발 후 경찰에 연행된 후 행방불명됐다. 모슬포 탄약고에서 희생당했다고 알려졌으나 유해는 제주공항에서 발굴됐다.
희생자의 신원 확인은 직·방계 유족의 채혈 참여를 통해 이뤄졌다. 김사림·임태훈의 경우 조카의 채혈 참여가, 강두남·강인경·양달효·송두선·송태우의 경우 손자와 외손자의 채혈이 결정적이었다.
이번 신원 확인으로 426구의 발굴유해 중 도내 147명, 도외 7명 등 모두 154명의 신원이 확인됐다.
도와 4·3평화재단은 올해도 4·3희생자 유해발굴 및 유전자 감식 사업을 추진할 계획이다.
올해 희생자 유가족 채혈은 다음달 2일부터 11월 30일까지 제주시 한라병원과 서귀포시 열린병원에서 진행된다.
오영훈 제주지사는 “7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유족들은 가족을 기다리고 있다”며 “방계 8촌까지 유족의 채혈 참여가 신원확인의 결정적 열쇠다. 많은 유족의 채혈 참여를 당부드린다”고 말했다. [제이누리=양은희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