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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회의 '영화로 읽는 한국사회' - 파고(Fargo) (13) 불행 자초하는 남과의 비교
정치꾼들에겐 만병통치약 ... 부끄러운 일 터지면 비교질
상대 당 지적하며 제 허물 잊어 ... 이들에게 표 줘야 하는 국민만 진땀

말이나 글이나 영화나 대개 그 구성은 서론·본론·결론으로 나뉜다는 점에서 크게 차이가 없는 듯하다. ‘스토리텔링’에서 결론은 지금까지 말하거나 보여줬던 것들을 압축적으로 요약하든지 가장 상징적인 말이나 장면으로 이야기를 매듭짓는다.

 

 

‘파고(Fargo)’의 결론은 엽기적이고 난장판으로 일관한 서론·본론과는 다르게 제법 따뜻하다. 반전이라면 반전이다. 제리 룬더가드(Jerry Lundergaard)의 아내납치 청부사건으로 평화롭던 브레이너드 시에는 쓰나미 같은 ‘파고’가 휩쓸고 지나간다. 그 사건과 정면으로 부딪쳐 해결한 경찰서장 마지(Marge)의 삶에도 뭔가 트라우마 같은 상처가 남았을 법한데 의외로 마지는 쉽게 평화로운 일상으로 돌아간다. 

영화의 마지막 시퀀스는 뜻밖에도 영화 내내 존재감 ‘0’에 수렴하던 노엄(Noam)이 장식한다. 청둥오리 ‘덕후’ 노엄이 이 세상에서 가장 편한 잠옷을 입고 가장 편한 자세로 침대에 기대고 리모컨을 쥔 채 이리저리 채널을 돌려가며 TV를 보고 있다. ‘시청’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딱히 달리 둘 곳 없는 ‘시선’을 두고 있다는 느낌이다. 눈은 화면에 두고 있지만 생각은 다른 곳에 있는 게 분명하다. 

만삭의 마지 역시 가장 편한 잠옷을 입고 침대에 올라가 노엄 어깨에 기대어 앉아 노엄과 똑같이 TV 화면에 시선을 둔다. 한참 만에 여전히 시선은 TV에 고정한 채 노엄이 심드렁하게 혼잣말처럼 중얼거린다.

노엄: “우체국 우표 도안 공모에 내 오리 그림이 뽑혔어.”
마지: “뭐?! 어머, 어머 너무 잘됐다. 축하해. 당신이 너무 자랑스러워!”
노엄: “그런데… 3센트짜리 우표야. 내 친구 오리는 29센트짜리에 뽑혔어.”

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노엄이 미국 최고의 ‘국민 화가’이거나 우체국 우표도안 전속화가쯤 되는 인물로 착각할 만큼 심드렁한 기색이다. ‘백수’의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방 안에 청둥오리 박제를 놓고 그려왔던 노엄 입장에서 그 그림이 무려 우표도안으로 채택됐다는 건 휴대전화 판매원 폴 포츠(Paul Potts)가 어느 날 갑자기 세계적인 가수가 된 것과 같은 사건임에 분명한데, 왠지 노엄은 흥분하기는커녕 잔뜩 골이 나 있다.

바로 자기도 잘 아는 누군가의 그림도 채택됐고, 그것도 29센트짜리에 선정됐기 때문이다. 기본 우표값 29센트가 3센트 올라서 32센트가 되면 기존 우표를 다량 구입해놨던 소비자들의 편의를 위해 인상분 3센트짜리 우표를 새로 발행한다. 노엄은 친구의 그림은 당당히 29센트짜리에 뽑혔는데, 그와 ‘비교’해서 자신의 그림은 ‘보조 우표’에 채택된 것이 생각할수록 기분 고약하다.

혹시 경찰서장 아내 마지 대신 살림을 하면서 마지의 ‘보조역’쯤으로 살아가는 자신의 모습이 투영돼 ‘보조 우표’라는 것에 더욱 참담함을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마지가 상냥한 초등학교 선생님처럼 골난 ‘노엄 어린이’를 달랜다.  

마지: “3센트짜리 우표라고 29센트짜리보다 못한 게 절대 아니에요. 생각해 봐요. 3센트짜리 없으면 29센트짜리도 아무 데도 못 써요. 그러니 이게 얼마나 중요해요?”

노엄:  “….” 
 

 

노엄은 여전히 TV에 시선을 고정한 채 표정이 밝아지지 않는다. 그렇게 영화가 끝난다. 어쩌면 코언 감독은 이 마지막 장면으로 지금껏 행복했던 마지의 가정이 노엄이 29센트와 3센트의 우표를 놓고 ‘비교’에 눈을 뜨면서 불행의 ‘빌드업’이 시작되리라는 것을 암시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비교’ 때문에 마땅히 기뻐해야 할 일을 기뻐하지 못하고 우울해진 노엄의 모습은 미국 26대 대통령(1901~1909년 재임)이었던 시어도어 루스벨트(Theodore Roosevelt)가 남긴 “비교는 기쁨을 훔쳐가는 도둑놈(Comparison is the thief of joy)”이라는 어록을 절감하게 한다. 

루스벨트는 지독한 ‘마이웨이(My Way)’ 스타일로 유명한 인물이다. 누구의 눈치도 안 보고 아무것도 곁눈질하지 않고 불굴의 의지로 자기 길만을 갔던 인물이다. 1919년 퇴임 10년 만에 대통령직 재도전을 앞두고 자던 중 급사했던 대통령인데, 정적(政敵)이었던 부통령의 논평이 재미있다.

“어제 저승사자가 그가 잠든 사이에 그를 데려갔다. 만약 그가 깨어있었다면 저승사자도 그와 한바탕 싸워야만 했을 것이다.” 루스벨트는 저승사자의 말도 안 들을 만큼 자기만의 주관이 무시무시하게 뚜렷했다는 의미였던 모양이다.

아마 그런 그의 ‘마이 웨이’ 스타일이 미국인들의 ‘배짱’과 맞았기 때문인지, 러시모어산(Mt. Rushmore)에 조각된 단 4명의 위대한 대통령(조지 워싱턴·토머스 제퍼슨·에이브러햄 링컨) 거상의 일원으로 남아있다. 우리나라 입장에서는 일본의 대한제국 강제병합을 지원했던 ‘을사 10적’에는 충분히 들어갈 만한 인물이라 러시모어산까지 보기 불편하게 만드는 인물이기는 하다.

미국 교육철학자로 뉴욕타임스 선정 베스트셀러 도서에 6번 이름을 올리고, 저명인사 초청 특강 테드 토크(TED TALK)의 가장 인기 있는 초청연사이기도 한 브레네이 브라운(Brené Brown)도 자신의 수영 경험을 빌려 사람들의 행복을 망치는 주범으로 ‘비교’를 지목한다. 

“나는 수영장에서 레인(lane)을 따라 수영하는 것을 참 좋아한다. 그런데 옆 레인에 눈길을 주고 의식하는 순간, 나도 모르게 그를 따라잡으려고 하고 뒤처지지 않으려 하고, 우쭐해지기도 하고 초라해지기도 한다. 한마디로 좋아하는 나의 수영을 즐기지 못한다. 얼마나 우스꽝스러운 일인가?” 아마 마지도 노엄에게 이 말을 해주고 싶었을 듯하다.
 

 

그런데 비교가 항상 우리의 기쁨을 훔쳐가는 도둑놈이 되는 것만은 아닌 모양이다. 누군가에게는 비교야말로 부끄러움을 잊게 해주는 ‘만병통치약’이 되기도 한다. 우리 정당들과 그 지지자들은 그들이 부끄러워해야 일이 터지거나 밝혀지기만 하면 ‘너희들도 그랬잖아?’ ‘우리는 그래도 너희보다는 덜하다’고 치열한 비교질에 돌입한다. 이들에게는 비교야말로 어떤 곤경에 빠져도 그들을 구원해주는 구세주와 같다. 

앞니 두어개쯤 빠진 두 사람이 마주 보고 서서 상대방의 모습을 보고 낄낄대는 모습을 보는 것 같아 참으로 손발이 오그라든다. 서로 네 꼴에 비교하면 내 꼴은 양반이라고 한다. 손으로 앞니 빠진 입을 가릴 생각도 안 하고 마음껏 낄낄거린다. 그중에서 비교적 덜 웃기게 앞니 빠진 사람을 선택해야 하는 우리만 진땀 난다. [본사 제휴 The Scoop=김상회 정치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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