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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회의 '영화로 읽는 한국사회' - 파고(Fargo) (9) 정치가 헌신 위해 권력 사용하지만
정치꾼 자신의 이익 위해 권력 써 ... 희귀종 돼버린 우리 시대 정치가

영화 속에서 최악의 청부업자 게어 그림스루드(Gaear Grimsrud)와 칼 쇼월터(Carl Showalter)가 남편 제리 룬더가드(Jerry Lundergaard)로부터 청부받은 대로 제리의 아내를 납치하기 위해 브레이너드(Brainerd)라는 작은 도시의 경계를 넘어 들어갈 때, 도시 입구에 웬 거대한 조형물과 표지판이 화면 가득 찬찬히 클로즈업된다.
 

 

그 표지판엔 다음과 같은 글귀가 적혀 있다. “폴 버니언(Paul Bunyan)의 고향에 온 것을 환영합니다(Welcome to the home of Paul Bunyan).” 폴 버니언은 “주민들이 감사한 마음에 십시일반(十匙一飯) 모아주는 곡식 한 됫박만 받고 미국 대륙의 울창한 산림을 개간했다”는 전설적인 벌목꾼이자 ‘노동 영웅’의 상징과도 같은 인물이다. 

브레이너드시 경계에서 폴 버니언이 그의 충직한 조수인 자그마한 ‘푸른 소(Blue Ox)’를 데리고 큼지막한 도끼를 어깨에 얹고 환하게 웃고 있다. 물론 미국 도처에 조형물이 있는 폴 버니언의 고향이 ‘브레이너드시’란 근거는 없다. 

중국인들도 모든 ‘좋은 것’의 원조는 무조건 자기네라고 한다. 우리네 정치인들도 훌륭했다는 자기 선조 어르신이 지나가다 국밥 한 그릇만 먹고 간 지역도 자기 연고지라고 들이대며 출마하곤 한다. 이 영화를 만든 코언 감독이 무슨 말을 하고 싶어서 도끼를 둘러 맨 폴 버니언의 조형물을 화면 가득 보여주는지 궁금해진다.

게어와 쇼월터는 브레이너드시에 들어서자마자 우선 ‘Blue Ox’라는 모텔에서 2명의 창녀들과 뒹군다. 폴 버니언의 ‘블루 옥스’를 욕보인다. 제아무리 모텔이라도 죽을 때까지 무거운 통나무를 끌었을 ‘블루 옥스’의 이름이 붙은 모텔에선 그러면 안 된다. 

게어는 쇼월터와 돈의 분배를 놓고 수틀리자 곧바로 폴 버니언의 고향에서 폴 버니언의 그 도끼로 나무 아닌 쇼월터를 찍어버리고, 폴 버니언이 잡목을 정리했을 나무 분쇄기에 잡목 대신 자기 동료 쇼월터를 구겨 넣고 갈아버린다. 하얀 설원에 니무 분쇄기에서 뿜어져 날리는 쇼월터의 살점들이 빨간 눈처럼 내려 쌓인다.

아마도 코언 감독은 관객들에게 불교의 입문서라 할 수 있는 「초발심자경문(初發心自警文)」에 나오는 ‘우음수성유 사음수성독(牛飮水成乳 蛇飮水成毒, 같은 물이라도 소가 마시면 사람을 살리는 우유가 되고, 독사가 마시면 사람을 죽이는 독이 된다)’의 경고를 시각적으로 보여주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요리사가 잡아야 할 칼을 강도가 잡으면 요리 대신 사상자가 나오고, 국군이 쥐어야 할 총을 정치군인들에게 쥐여주면 광주 민주화운동 같은 비극이 터진다. 같은 도끼도 폴 버니언이 휘두르는 도끼질은 많은 사람을 위한 신성한 노동이지만, 청부업자 게어가 휘두르는 도끼는 그저 탐욕스럽고 끔찍한 폭력일 뿐이다.
 

 

권력의 고민도 이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20세기 최고의 사회학자라는 데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 막스 베버(Max Weber)는 그의 명저 「직업으로서의 정치(Politics As a Vocation)」 1장에서 정치라는 직업의 특수성을 밝힌다. 

간단히 정리하면 정치란 정치권력자에게 독점되는 무시무시할 수도 있는 경찰·검찰·세무서·그리고 군대 등의 도끼와도 같은 ‘물리적 강제력’을 동원해서 ‘좋은 일’을 해야 하는 직업이다. 

바꿔 말하면 아무한테나 물리적 강제력(도끼)을 맡겨서는 안 되고, 가장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사람에게만 쥐여줘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다. 그렇지 않고 게어와 같은 미친놈에게 맡기면 영화 속 그 끔찍한 장면이 우리의 이야기가 돼버린다.

정치란 결국 누가 그 도끼를 독점하는가의 문제이고, 선거란 우리가 안심하고 도끼를 맡길 사람을 찾는 일이다. 그 도끼를 게어같이 ‘미친놈’처럼 휘두르지 않고 폴 버니언처럼 곡식 한 됫박만 받고도 오직 우리를 위해 휘둘러 줄 사람을 찾는 일이다.

그들 손에 쥐여준 도끼를 사용하는 방식의 차이가 ‘정치가(政治家)’와 ‘정치인(政治人)·정치꾼’의 차이이다. 막스 베버의 분류법에 따르면 ‘정치가’란 ‘제한된 가치를 사회 전체를 위해 권위적으로 분배’하기 위한 정치의 목적에 헌신하기 위해 그들에게 주어진 권력을 사용하는 자들이다. ‘정치인·정치꾼’이란 그런 정치의 목표 위에 기생(寄生)하면서 자신의 욕망을 달성하고 생계를 유지하는 자들이다.

막스 베버의 분류법이 조금 관념적이라면, 하버드대학 신학과 교수였던 제임스 클라크(James Clarke)의 분류법은 조금 더 구체적이다. “정치인은 다음 선거를 생각하고, 정치가는 다음 세대를 생각한다(A politician thinks of the next election. A statesman thinks of the next gener ation)”고 정리한다.

2023년 40세에 타임지 역사상 가장 젊은 편집국장으로 취임한 정치부 기자 출신 샘 제이콥스(Sam Jacobs)의  ‘정치인·정치꾼’ 분석은 뼈를 때린다. 클라크 신부의 분류법을 알아듣기 쉽게 친절하게 설명해주는 듯하다. 오랫동안 현장에서 온갖 ‘정치꾼’들의 징글징글한 행각을 지켜본 젊은 정치부 기자답게 사회학자 막스 베버나 클라크 신부처럼 젊잖게 돌려 말하지 않고 매우 직설적이다.

# 정치가는 다음 세대를 생각하지만 정치인은 항상 허공에 손가락을 뻗쳐 수시로 바뀌는 풍향을 확인하고, 유권자들의 심장 박동에 귀를 기울이고 매일매일 요동치는 그들의 이기적인 욕망에 답한다.

# 정치인은 정치가들처럼 자신의 직을 자신의 지역구민이나 국민의 삶을 개선하거나 미래세대의 이익을 지켜주기 위해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부패와 ‘포주(抱主)’와 같은 음침한 알선을 통해 자신과 가족의 모든 이익을 극대화하는 데 사용한다.
 

 

# 다른 일을 하기 위해 스스로 물러나는 정치인은 없다. 이들은 공공의 이익을 뒤통수쳐서 살아가는 외에는 달리 할 줄 아는 것이 없는 자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원숭이는 나무에서 떨어져도 원숭이지만 선거에서 떨어진 정치인은 인간도 아니다.

# 정치가는 낙선보다 양심을 저버리고 사회에 옳지 않은 일을 하는 것을 더 두려워한다. 그러나 ‘정치인’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오직 낙선뿐이다. 식인종 마을의 표가 필요하면 사람도 갖다 바칠 수 있는 자들이 이들이다. 그러나 슬프게도, 현대 자유민주주의에서 정치가보다는 정치인들이 선택을 받는다.

제이콥스 국장의 마지막 말이 정말 슬프다. 우리 도끼를 마음 놓고 맡길 수 있는 폴 버니언과 같은 ‘정치가’는 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는 희귀종이 돼간다. 왜 ‘노무현’ 이름 앞에 ‘바보’라는 호號가 따라붙게 됐는지도 알 듯하다. 

‘의심 마귀’가 들었는지 우리 도끼는 지금 누구에게 쥐여주고 있는지, 또 어떤 사람들이 지금 우리 도끼를 자신을 믿고 맡겨달라고 읍소하고 있는지 불안하기만 하고 아무에게도 믿음이 안 간다. [본사 제휴 The Scoop=김상회 정치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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