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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회의 '영화로 읽는 한국사회' - 잉글리시 페이션트 (8)

헝가리 출신 알마시는 개인의 자유를 박탈하고 구속하는 ‘국가와 민족’이란 집단을 회의적인 시각으로 바라본다. 더 나아가 적개심까지 느낀다. 그래서인지 알마시의 꿈은 왜소하고 멸시당하는 헝가리 민족을 벗어나 세계인이 되는 거다. 알마시의 조국 헝가리의 역사는 우리와 닮은 구석이 있다. 

 

 

근대 이후 헝가리는 주변 강대국 오스트리아, 독일, 러시아(옛 소련)의 세력 및 관계 변화에 따라 이리저리 찢겨나간다. 헝가리 역시 살아남으려 이쪽저쪽에 붙어보지만 약소국의 결과는 항상 참담하다. 

헝가리 귀족가문 출신이자 엘리트인 알마시는 헝가리란 국적 때문에 이웃 강대국의 귀족가문이나 엘리트로부터도 무시당하는 자신의 처지에 분노하기도 한다. 

자신의 ‘민족정체성’이 헝가리란 사실을 부정하려는 듯, 그는 헝가리어를 쓰지 않고 독일어와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며 그들과 어울린다. 알마시는 항공기 추락으로 처참한 화상을 입고 아무것도 기억 못하지만 신음 속에 구사하는 그의 영어만은 영국인이 들어도 틀림없는 영국인의 발음이었던 모양이다. 신원을 밝혀줄 아무런 증명서도 없는 상태에서 그렇게 그는 ‘잉글리쉬 페이션트’로 공인받는다. 그 정도면 알마시는 남루한 ‘헝가리인’에서 벗어나 진정한 ‘세계인’으로 거듭난 셈이다.

전쟁 와중에 ‘중환자’ 알마시는 캐나다 간호사 해나(Hana)의 보살핌 속에 안전지대로 옮겨지던 중 해나와 단둘이 이탈리아의 성 안네 수도원(Monastery of St. Anne)에 남는다. 알마시의 상태가 후송을 버텨낼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는 해나는 수도원을 임종 장소로 선택한다. 그곳에서 알마시는 해나에게 자신의 모든 비밀을 들려준다. 유네스코 인류문화 유산으로 등재된 유서 깊은 수도원의 풍광과 분위기가 알마시의 참회를 더욱 경건하게 해주는 듯하다.

해나와 알마시 둘이 남은 수도원에 어느날 불청객 하나가 찾아온다. 알마시의 첩자질 때문에 자신이 독일군에게 잡혀 손가락이 잘리는 고문을 당했다고 믿는 카라바지오(윌렘 대포)다. 알마시는 자신의 평온한 임종을 깨는 카라바지오의 등장이 마땅치 않다. 그런데 해나는 카라바지오가 자신과 같은 캐나다 출신이란 사실 하나만으로 난생처음 보는 인상 고약한 그 남자를 향한 경계심을 풀고 오랜 친구나 친척을 만난 듯 대한다.

그런 해나에게 알마시가 불길에 다 녹아내린 입술을 겨우 움직여 조롱한다. “너는 캐나다에 돌아가면 거리에서 어떤 남자를 만나든 그와 결혼할 것 같다. 그 남자도 캐나다인일 테니까.” 알마시는 ‘민족’이라는 ‘상상의 공동체’를 조롱한다. 

대한민국 국민 중에서 내가 직접 아는 사람은 몇명이나 될까. 제아무리 마당발이라 해도 5000만명 중 1만명을 넘기기 어렵겠다. 하루 종일 길을 걸어도 길에서 아는 사람 하나 마주치기는 쉽지 않다. 

그렇지만 우리는 내가 모르는 나머지 49 99만명도 마치 내가 아는 사람들인 것처럼 남다른 유대감을 느낀다. 알마시는 다 죽어가면서도 베네딕트 앤더슨(Benedict Anderson)이 명명한 민족이란 ‘상상의 공동체(Imagined Community)’를 조롱한다.
 

 

알마시의 조롱에 해나의 반응이 참으로 인상적이다. 해나는 알마시의 조롱에 반박하지도 수긍하지도 않고 다만 말없이 웃어보인다. 아이의 철없는 투정을 들어주는 엄마의 미소 같기도 하다. 

이태백의 시 한 구절을 떠올리게 하는 미소이기도 하다. “누군가 나에게 왜 푸른 산속에 사느냐고 묻는다. 아무 대답 않고 그저 웃어주니 마음은 절로 편하더라(問余何意棲碧山 笑而不答心自閑).”

민족이란 ‘상상의 공동체’에 불과한 부질없는 것이라는 지적은 이태백에게 왜 산속에 사느냐고 묻는 것처럼 가치 없는 짓이다. 자기 민족에 특별한 사랑을 느끼는 것은 그것이 옳으냐 그르냐를 따질 문제가 아니라 그저 자연스러운 것이다. 이태백이 그 부질없는 질문에 그저 웃어보인 것처럼, 해나도 같은 민족끼리 느끼는 특별한 유대감과 사랑을 조롱하는 알마시에게 그저 웃어보인다. 

중생의 고통에 찬 모든 신음에 답하는 반가사유상(半跏思惟像)의 모든 궁극적인 깨달음에 도달한 온유한 미소 같기도 하다. 알마시는 해나의 반가사유상과도 같은 말 없는 미소에 더 이상 할 말을 찾지 못한다. 아마 알마시도 해나가 느끼는 ‘민족애’라는 그 특별한 감정이 부러웠을지도 모르겠다. 그 특별한 ‘사랑’을 느끼지 못하는 자신이 참담했을지도 모르겠다.

3ㆍ1절 기념식에서 대통령이 느닷없이 일본에 당한 원한은 모두 묻어두고 미래로 나가자는 화두를 던지자 여기저기서 참호 속에서 지휘관의 돌격명령만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일장기를 내거는 목사님도 나오고, ‘기꺼이 친일파가 되련다’는 도지사님도 나온다. 

모두들 알마시처럼 우스꽝스러운 ‘상상의 공동체’에 특별한 감정을 느끼고 집착하느라 손해 보고 불편한 것이 촌스럽다고 느끼는 모양이다. 올림픽 금메달만 딸 수 있다면 중국 대표가 되든 러시아 대표가 되든 아무 상관없다는 스케이트 선수들이나 이들 모두 아마 자신들이야말로 너절한 애국심에 구속받지 않는 세련된 ‘세계인’이라고 자부하는지도 모르겠다.
 

 

이탈리아 독립과 통일의 영웅 주세페 마치니(Giuseppe Maccini)는 ‘국가를 모르는 당신은 여러 민족 사이에서 이름도, 권리도, 세례도 받지 못하는 인류의 사생아’라고 단언한다. 민족국가 시대에 인간(human)이 된다는 것은 민족화됨을 의미하고, 개인(individual)이 된다는 것은 민족을 대표하는 의미가 된다.

3ㆍ1절에 일장기를 내거는 목사님이나 ‘기꺼이 친일파가 되겠다’고 선언하는 ‘세련된’ 도지사님에게 달리 할 말을 찾기 어렵다. 그저 해나가 알마시에게 말 없이 지어보인 미소를 보낼 수밖에 없겠다. [본사 제휴 The Scoop=김상회 정치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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