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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회의 '영화로 읽는 한국사회' - 글래디에이터 (14)

막시무스에게 코모두스는 그야말로 불구대천의 원수다. 코모두스는 막시무스가 아버지처럼 모신 아우렐리우스 황제를 목졸라 죽이고, 막시무스의 사랑하는 아내와 아들까지 불태워 죽인다. 막시무스는 하루아침에 로마 최고의 장군에서 노예검투사로 전락한다. 코모두스 때문에 ‘모든 것을 잃은’ 한 사내의 처절한 복수극이 시작된다.

 

영화 글래디에이터를 볼 때 한가지 짚어볼 게 있다. 막시무스의 불행은 모두 코모두스 때문이었을까. 누가 뭐라 해도 직접적 원인은 코모두스가 제공했음이 분명하다. 하지만 간접 원인들은 따로 있다. ‘간접 원인’이 없었으면 ‘직접 원인’도 발생하지 않는다는 점을 감안하면 어느 게 ‘진짜 원인’인지는 알 수 없다. 그럼 막시무스를 불행으로 이끈 간접 원인은 무엇이 있을까. 

이 모든 사태를 만든 ‘간접 원인’은 어쩌면 게르만족의 침입이었을 듯하다. 북방 게르만족이 로마를 침략하지 않았다면 막시무스는 로마 최고의 장군이 될 기회를 얻지 못했을 거다. 아우렐리우스 황제 역시 아들 코모두스를 제쳐두고 막시무스를 후계자로 ‘찜’할 이유도 없었다.

어쨌거나 게르만의 침략을 당한 아우렐리우스 황제는 코모두스로는 안 된다는 걸 잘 안다. 자신이 죽은 후에라도 막시무스만이 로마를 지켜줄 것으로 믿고 아버지로서 차마 못할 결단을 내린다. ‘이게 다 코모두스 때문’이 아니라 사실은 ‘이게 다 게르만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이게 모두 게르만 때문’이란 추정은 맞는 말일까. 게르만도 ‘주범’이라기에는 석연치 않다. 게르만 역시 동쪽에서 밀고 들어오는 흉노족(Huns)에게 쫓겨 어쩔 수 없이 로마 국경을 넘을 수밖에 없었다. 

그럼 ‘이게 다 흉노 때문’일까. 흉노족 또한 진시황제가 중국 대륙을 통일하고 만리장성을 쌓아 흉노를 막아버리고, 한(漢)나라 무제(武帝)가 국력을 기울여 흉노족 토벌에 나서니 견딜 수 없다. 한나라보다 만만한 서쪽 게르만 땅을 침범할 수밖에 없다.
 

‘만만한’ 게르만은 사치와 향락에 젖어 흉노족보다 만만한 로마로 몰려갔다. 결국 막시무스의 비극은 진시황제의 만리장성에서 시작된 셈이다. 더 따지고 보면 진시황제가 7개 나라로 나눠진 중국 대륙을 통일할 수 있게 만든 나머지 6나라의 ‘얼빵한’ 군주들도 막시무스의 비극에 책임이 있다.

이쯤 되면 막시무스 불행의 ‘진짜 원인’이 무엇인지 알 길이 없다. 모두의 책임일 수도 있다. 모두가 책임이 있다는 것은 결국 누구의 책임도 아니라는 말과도 같다. 막시무스에게 불행이 밀려든 원인은 ‘예정’된 운명일 수 있다. 그래서 ‘진짜 원인’을 알 길 없는 불행에 ‘원망’과 ‘복수’를 하는 건 참으로 어이없는 일이다. 

막시무스가 진시황제에게 달려가 ‘왜 쓸데없이 만리장성을 쌓아 나를 이렇게 불행하게 만들었냐’고 책임지라고 할 수 없으니 당장 눈앞에 보이는 ‘만만한’ 코모두스의 멱살만 잡고 흔들 뿐이다.

현자(賢者) 황제였던 아우렐리우스 황제의 스승이자 정신적 지주였다는 로마 철학자 에픽테투스(Epictetus)는 ‘보통사람들은 자신의 불행에 남을 탓하고, 조금 똑똑한 사람들은 자기 탓을 한다.

그러나 진정한 현자는 아무도 탓하지 않는다’는 말을 남겼다. 운명론(fatalism)이다. 에픽테투스의 가르침을 받은 아우렐리우스 황제 정도의 현자라면 아마도 아들에게 목졸려 죽었어도 아무도 탓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아우렐리우스 황제를 존경했다는 막시무스는 모든 것을 코모두스 탓으로 돌리고 복수에 나선다. 에픽테투스의 가르침이 막시무스에게까지 전해지지는 않은 모양이다. “최고의 복수는 적을 닮지 않는 것”이라는 아우렐리우스 황제의 유명한 말씀도 마음에 담지 않은 듯하다.

누군가를 향한 원망도 많고 복수와 설욕의 다짐도 많은 시절이다. 원망과 복수심에 재판도 많고 폭력사건, 살인사건도 많다. 모두 ‘원망’과 ‘복수’의 대상이 정확한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모두들 자신의 불행을 불러일으킨 ‘인과관계’를 분석한 것엔 한치의 오차도 없이 자신만만한 듯하다.
 

하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인과관계’란 대단히 모호한 것들이다. 인과관계 분석을 생명으로 하는 최고의 우주물리학자 스티븐 호킹(Stephen Hawking) 박사도 마지막에는 ‘인과관계란 한낱 환상에 불과하다’고 결론지었다. 

우리 고전에도 에픽테투스급 현자들이 많이 등장하는데 우리는 선조들에 비해 어쩐지 점점 단편적이고 살벌해진다. 「춘향전」의 퇴기 월매는 옥에 갇혀 죽게 된 춘향이를 살려줄 유일한 희망이었던 이도령이 과거시험에 낙방하고 거지꼴로 돌아오자 “수원수구(誰怨誰咎, 누구를 원망하고 누구를 탓하리오)”라며 가슴을 친다. 심청이도 공양미 300석에 팔려 죽을 길을 떠나며 ‘수원수구’라는 말을 남긴다. 

모두 ‘보통사람’들이지만 에픽테투스급의 현자들이다. 에픽테투스와 월매, 심청의 깊은 통찰력을 2009년 5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유서에서 다시 만난다.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 운명이다.” 

분명한 건 ‘인과관계’ 규명이란 불가능한 일에 복수를 꿈꾸면 미리 무덤을 2개 준비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간디는 ‘눈에는 눈’으로 보복하면 세상에는 애꾸눈만 남을 것이라고 했지만 간디는 너무 낙관적이다. 눈 하나라도 남아나는 사람이 없을 듯하다. [본사 제휴 The Scoop=김상회 정치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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