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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회의 '영화로 읽는 한국사회' - 글래디에이터 (11)

막시무스의 등장으로 촉발된 코모두스 황제의 정치적 위기는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머리 좋은 책사 팔코 의원의 계략에 따라 로마 북부군과 원로원, 누이 루실라까지 가담한 쿠데타 음모를 겨우 막아내지만, 바람이 멈추지 않는 한 파도는 계속 밀려올 수밖에 없다. 
 

아버지를 죽이고 황제 자리를 찬탈한 코모두스. 이제 어느 파도에 그의 배가 뒤집힐지 알 수 없다. 파도를 만드는 것은 바람이고, 바람은 곧 민심이다. 콜로세움에 모인 군중들의 목소리가 민심을 대변한다면 민심이라는 바람은 이미 그에게서 돌아선 것이 분명하다. 

세상 돌아가는 모습을 명쾌하게 정리한 고전이라 할 수 있는 「한시외전(韓詩外傳)」은 권력과 민심의 단순명쾌한 관계를 이렇게 규정한다. “임금은 백성이 함께하면 편안하고, 백성이 도와주면 강해진다.

그러나 백성이 얼굴을 돌리면 위태로워지고, 백성이 등을 돌리면 끝이다(百姓與之卽安 輔之則强 非之則危 背之則亡).” 민심을 얻으면 모든 걸 얻을 수 있고 민심을 잃으면 모든 걸 잃는다는 뜻이다. 

지금 코모두스를 향한 로마의 민심은 얼굴을 돌리고 있는 듯하다. 지금이야 얼굴 정도지만, 언젠가는 완전히 등을 돌릴지도 모른다. 이럴 땐 무슨 수를 써야만 한다. 민심이 도와주진 못해도 최소한 함께해줘야 권력을 유지할 수 있다. 민심을 일거에 되돌릴 방법을 고민하던 코모두스는 ‘데우스 엑스 마키나(기계에서 튀어나온 신ㆍDeus ex machina)’를 동원하기로 작정한다. 

‘데우스 엑스 마키나’라는 용어는 고대 그리스 연극에서 기원한다. 그리스 2류 작가들이 쓴 극(劇)중엔 곤경에 빠진 주인공이 돌파구를 찾을 수 없을 때 올림포스의 신이 크레인에 매달린 채 등장해 모든 걸 해결해주는 장면이 유독 많았다.
 

이렇게 메시아가 출현하는 방식을 로마 극작가들은 조롱하곤 했는데, 이때 사용한 용어가 ‘데우스 엑스 마키나’다. 이는 한번 불기만 하면 모든 적이 물러가고 병이 낫고, 바다가 잔잔해졌다는 신라의 신비한 피리 ‘만파식적(萬波息笛)’과 같은 신물(神物)이다. 이것만 있으면 안 되는 게 없다. 인간들이 지지고 볶는 자리에 신이 강림해버리고 메시아가 출현하고 ‘만파식적’이 등장하면 인간들은 더 이상 할 것이 없다.

황당하고 우스꽝스러운 ‘데우스 엑스 마키나’가 무대에 등장하면 상식적으로 타당하면서도 참신한 결말을 기대했던 관객들은 황당하게 된다. ‘데우스 엑스 마키나’는 우리말로 하면 아마 ‘형이 거기서 왜 나와?’쯤 될 듯도 하다. 

코모두스가 동원하기로 결심한 ‘데우스 엑스 마키나’는 로마 시민들 앞에서 저들의 영웅 막시무스와 1대1 결투를 벌여 멋진 승리를 거두는 일이다. 그렇게만 된다면 막시무스에 쏠렸던 시민들의 마음도 한방에 돌아올 수도 있다며 코모두스와 그의 측근들은 머리를 굴린다. 정치를 정치로 풀지 않고 시민들의 눈을 속이는 ‘황당한 쇼’로 해결하기 위함이다.

각본은 대략 이렇다. “막시무스를 미리 죽지 않을 만큼만 칼로 찔러놓고 다 죽어가는 막시무스와 콜로세움에서 ‘정정당당’하게 결투쇼를 벌인다.”

2류 극작가들은 자신이 지금까지 어지럽게 써 갈긴 이야기가 자신의 필력筆力으론 도저히 수습이 안 될 때 난데없이 ‘데우스 엑스 마키나’를 동원해 자신이 원하는 결론으로 몰아간다. 주인공이 갑자기 불치병에 걸리거나 교통사고를 당하기도 하고, 기억을 잃기도 하며, 돌연 깨어나기도 한다. 부모가 바뀌기도 하고, 재벌 친부모가 나타나기도 한다.
 

모두 기적 같은 사건들이다. 그야말로 난데없이 크레인에 매달려 무대에 등장하는 ‘데우스 엑스 마키나’급 황당함이다. 소위 ‘막장 드라마’의 공식이다. 코모두스가 1대1 검투 결투에서 막시무스를 꺾는 모습의 연출은 ‘데우스 엑스 마키나’의 기획과 다르지 않다.

우리들의 막장 드라마 작가들이 동원하는 ‘데우스 엑스 마키나’가 어이없는 돌발변수들이라면, 우리 막장 정치인들에게 그것은 북쪽의 김씨 일가를 갑자기 크레인에 매달아 정치 무대 한복판에 등장시키고, 온 나라의 검사들을 불러들여 무대를 장악하는 방식인 듯하다. 

정상적인 상상력이 부족한 드라마 작가들이 ‘데우스 엑스 마키나’의 유혹에서 벗어나기 힘든 것처럼, 정치력과 비전이 결여된 정치인들 역시 ‘데우스 엑스 마키나’의 유혹을 떨쳐버리기 어려운 모양이다.

참으로 기이한 건 시도 때도 없이 ‘데우스 엑스 마키나’가 등장하는 ‘막장 드라마’가 심심찮게 대박을 친다는 점이다. 현실에서도 마찬가지다. 국민들은 북쪽 김씨 일가의 추앙과 비난, 검사들의 ‘막장 정치’ 등을 욕하면서도 열심히 봐준다. 아마 그래서 ‘막장 드라마’와 ‘막장 정치’의 생명력이 참으로 질긴 모양이다. [본사 제휴 The Scoop=김상회 정치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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