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군정 시절 이른바 '맥아더 포고령'을 어긴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제주 4·3 일반재판 수형피해자들이 국가를 상대로 재심을 청구했다. 제주 4·3 특별법 개정안이 통과된 이후 첫 재심 청구였기에 그 결과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제주4·3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한 도민연대는 20일 제주지방법원 정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미 군정 당시 억울한 옥살이를 한 피해자들에 대한 재심청구에 나선다"고 말했다.
재심청구인은 모두 24명이다. 유일한 생존 피해자인 고태명(90)씨와 피해자 유족 23명 등 이들 대부분은 포고령 제1호와 제2호 등을 어긴 혐의로 기소돼 1947년 4월 미 군정 스티븐슨 대위에 의해 유죄판결을 받았다.
맥아더 포고령은 1945년 9월7일 미군이 한반도에 입성했을 당시 발표한 통치 내용을 담은 포고문이다. 이 포고문을 통해 미군은 한반도의 직접 통치를 선포했다. 분단 이후 미 군정의 시작을 알리는 공식 선언문이었다.
'조선인민에게 고함'이라는 글귀로 시작하는 포고 1호에는 북위 38도 이남 점령을 선포한다. 포고 2호는 점령지역의 공중치안질서의 안전을 기하기 위해 위반시 사형 또는 엄벌에 처한다고 적혀있다.
재심에 나선 청구인들은 이날 제주4·3과 관련, 1947년 3·1 총격사건과 3·10총파업과 1947년 여름 제주 안덕면 동광리 주민과 하곡수매 공무원들과의 충돌 과정에서 포고령 위반으로 붙잡혔다.
이들은 이후 미 군정이 직접 심리를 담당한 재판에서 모두 유죄판결을 받아 억울한 옥살이를 한 것으로 전해졌다. 당시 조병옥 경찰책임자는 3·1 총격사건과 3·10총파업이 진행된 시절 20여일 만에 제주도민 500여명을 붙잡은 것으로 조사됐다.
이들은 "1947년 미 군정 하에서 부당한 공권력의 피해는 사법정의의 이름으로 당당히 회복돼야 한다"면서 "늦었지만 이번 재심청구를 통해 73년 전 사건의 진상이 규명되고 피해자의 명예가 회복되는 역사적 판단을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유일한 생존 청구인인 고태명씨는 "불과 17살 시절 아무것도 모르고 잡혀가 전기고문을 당해 거짓 자백을 했다"며 "법원이 현명한 판단을 해주십사 하는 생각뿐이다"고 말했다.
소송을 대리하는 임재성 변호사는 "제주 4·3 특별법 개정안 통과 이후 처음으로 제출되는 재심 청구서"라며 "개정된 특별법에 따른 특별재심은 재심 사유에 대한 입증이 없어도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유족들이 비록 자신의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어떻게 고문이나 불법 구금을 당한 상황을 정확히 알지 못한다 하더라도 당시 4·3과 관련된 재판이라는 입증만 이뤄진다면 재심 개시 결정이 이뤄지지 않을까 싶다"고 덧붙였다.
개정된 제주4·3 특별법은 오는 6월부터 시행된다. 개정안에는 특별재심을 통한 수형인의 명예회복이 가능해진 점이 특징이다.
법은 4·3사건 당시 군사재판을 통해 형(刑)을 받은 2500여 명의 수형인에 대한 특별재심 조항을 신설했다.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 회복위원회’가 일괄, 유죄판결의 직권 재심 청구를 법무부 장관에게 권고하면 법무부 장관이 필요한 조처를 하도록 했다. [제이누리=박지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