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1 총선이 기성정치의 구태를 벗지 못해 유권자들로부터 외면받고 있다.
특히 기대했던 여야의 인적 쇄신 실패와 공천 탈락->탈당->무소속 출마라는 '구태' 재연, 네거티브 선거전, 정책선거의 실종으로 선거 막판까지 후보 선택을 유보한 부동층이 두텁게 형성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여야 공천이 마무리됐으나 '감동'을 줄 만한 결과는 고사하고 새 인물을 발굴하지 못한 채 기성정치인물의 재도전 수준을 크게 벗어나지 못한 '싱거운 선거전'이 예고되고 있다.
정치권의 인적 쇄신 실패로 각 정당과 후보 진영이 선거분위기를 만들어가지 못하는 데다 선거판도 여야 중앙정치권의 '제주해군기지 정쟁'에 묻혀 지역 선거판을 흔들만한 이슈도 없다는 점에서 표심잡기에 나선 정당과 후보들도 어려움을 겪기는 마찬가지다.
각 후보 진영이 22~23일 후보등록을 마치고 본격적인 선거전에 돌입하면 경합 선거구를 중심으로 정책 대결보다는 흠집내기, 폭로전으로 네거티브 전략으로 바꿀 태세다.
17, 18대 총선에 이어 내리 세번째 격돌하는 5선의 새누리당 현경대(73) 전 의원과 3선을 노리는 민주통합당 강창일(60) 의원 사이에 인신공격성 비방전이 벌어지고 있다.
두 후보는 오현고와 서울대 선후배 지간으로 현경대 의원의 현역시절 ‘의원-보좌관’으로 한솥밥을 먹었다.
현경대 후보는 국회의장 자격이 주어지는 6선 고지인 2004년 17대 총선에서 당시 열린우리당 강창일 후보에게 금뱃지를 내줬다.
2008년 18대 총선에선 현 후보가 한나라당 공천을 받지 못하자 탈당, 무소속으로 출마했지만 역시 통합민주당 강창일 후보에게 밀려 석패했다.
이번엔 새누리당-민주통합당 후보로 맞붙고 있다.
상호 비방전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다. 연일 비난성명전이 이어지는 등 과열선거 양상을 보이고 있는 지역이다.
강창일 후보가 지난 10일 개소식에서 현 후보를 '비계 낀 돼지고기'에 비유했다고 당시 이경수 통합진보당 후보가 논평을 통해 폭로했다.
그는 "강 후보는 평소 자신을 3선 국회의원으로 지지해 달라며 ‘초선은 돼지로 치면 60㎏, 재선은 80㎏이고 3선이 딱 먹기 좋고 맛이 좋은 100㎏’이라는 표현을 자주 써왔다"며 "그런데 강 후보는 5선의 현경대 후보를 비유한 듯 '4~5선은 비계가 껴서 맛이 없다. 잠만 자고...초·재선만 못하다'는 천박한 비유를 쓰며 깎아 내렸다"고 강 후보를 비난했다.
그는 "사학을 전공한 학자출신이 사적인 자리에서도 하기 힘든 어찌 그런 저속한 표현을 공개적으로 할 수 있단 말인가?"라며 "아무리 선거기간이라 하지만 자신이 보좌관으로 지내며 직접 모시기도 했던 정치 스승을 어떻게 ‘잠만 자는 비계 낀 돼지고기’에 비유할 수 있는가?"라고 꼬집었다.
정작 당사자인 현 후보는 강 후보의 발언에 대해 노코멘트했다.
하지만 지난 20일 현 후보는 대변인 논평에서 강창일 의원이 자신이 발의한 법안에 반대표를 던졌다며 국회에서 코미디의 진수를 보였다고 포문을 열었다.
강 후보가 '국회 입법우수의원 선정'을 홍보 타이틀로 내건데 대해 흠집을 내기 위한 의도로 풀이된다.
현 후보는 “2010년 6월 강창일 의원이 자신이 공동 발의한 ‘장애인복지법 개정안’에 대한 본회의 표결에서 반대표를 던졌다”며 “당시 취재 중이던 KBS 기자가 ‘어이없는 경우’도 있다며 인터뷰를 시도할 정도였다. 취재 기자는 제대로 법안을 보지 않고 실적 쌓기식으로 발의를 하는 관행이 원인이라 지적했다”고 전했다.
현 후보는“법안에 대해 종합적이고 체계적으로 심도 있는 검토를 하지 않음으로 인한 것”이며 “입법 활동이 건수 늘리기에 치중하기 보다는 법안의 질을 높이고 자신이 발의한 법안을 끝까지 책임지고 처리하는 의원들의 신중한 자세가 필요하다”고 꼬집었다.
강 후보가 발끈했다.
반박 논평을 내고 “새누리당 현경대 후보는 6선에 도전하는 국회의원 후보가 맞는지 의심스럽다”며 “국회의원 본연의 임무에 충실한 것을 두고 ‘코미디 진수’ 운운하는 현 후보가 국회의원 후보 자질이 있는지 의문”이라고 유치하기 짝이 없다고 반박했다.
이어 “현경대 후보의 상대후보 깎아내리기 단골메뉴냐”며 “2004년 의정활동 평가결과 국회의원 273명 중 243위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크게 면박을 당했던 기억을 잊었냐”고 비아냥거렸다.
강 후보는“당시 박은수 의원이 대표발의한 장애인복지법안에 공동발의 했으나 본회의 법안 처리에 앞서 민주노동당 곽정숙 의원의 반대토론에 공감해 본회의 표결 시 반대표를 던졌다”며 이는 법률안 제개정에 성실히 임해야 하는 국회의원 본연의 임무에 충실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현 후보는 5선 국회의원으로 국회 본회의 표결 과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며 “그럼에도 유치한 네거티브 방식으로 상대후보를 깎아 내리는 것은 5선 국회의원다운 모습이 아니다"며 5선 국회의원 답게 품격 있는 모습을 보이라고 반박했다.
이번엔 현 후보가 재반박 논평을 냈다. 그는 “자신이 공동발의 한 법안에 반대표를 던지는 어처구니없는 행동에 대한 반성 없이, 엄연한 사실을 ‘유치한 네거티브’라 역공세를 취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이어 “강 후보의 법률안 제·개정에 있어 찬성과 반대의 소신은 무엇인가”라고 묻고 “순간적으로 찬성이 반대로 바뀌는 국회의원 후보를 보고 도민들은 무엇을 약속하고, 무엇을 기대할 것인가”라고 반문했다.
강 후보도 가만 있지 않았다. 다시 논평을 내고 자중자애(自重自愛)하라고 현 후보를 공격했다.
그는 “상대후보의 법률안 재개정 찬성·반대 소신을 묻기 전에 자신이 국회의원 후보로서 자질이 되는지부터 진지하게 돌아보라”고 반박했다.
이에 “현 후보는 18대 총선에서 공천 결과에 불복종하며 탈당 후 무소속 출마했다”며 “공정사회에 역행하는 모습으로 정치인이기 이전에 법조인으로서의 자질도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또한 “4년 전 ‘마지막 출마’라는 도민과의 약속을 깨고 또 나왔다”며 “국회의원은 ‘신뢰’가 중요한데 4년 마다 말이 바뀌는 국회의원 후보를 도민들이 신뢰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꼬집었다.
강 후보는 “현 후보는 이미 두 차례 총선에서 연거푸 낙선했다”며 도민들이 이미 현 후보의 자질과 능력을 판단하고 심판했다는 일각의 지적을 뼈아프게 받아들이고 자중자애 할 때라고 질타했다.
이 처럼 네거티브가 기승을 부리면서 정책선거는 실종되고 있다.
제주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제주매니페스토운동본부는 총선 예비후보들의 242개 공약을 검증한 결과 '판박이 공약', '생각모음집 공약', '권한 밖 공약', '복지 포퓰리즘 공약', '전투적 공약', '엇비슷 공약' 등으로 넘쳐 실망스럽다고 진단했다.
제주경실련은 "새로운 정책 창출을 이끌어 내겠다는 고민이 담겨진 창조적인 공약보다는 과거에 이미 제시됐던 공약을 그대로 인용하거나 극히 일부 수정을 거쳐 내놓은 ‘판박이 공약’이 많다"며 "후보자가 제시한 공약은 자신을 알리는 중요한 상품이기 때문에 다양한 분야에 걸쳐 유권자들이 바라는 현안들을 심도 있고 깊이 있는 고민과 전문가 자문을 통해 공약으로 녹여내려는 노력이 따라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