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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드 제주] 제주가정위탁지원센터 … 제도 밖에서 아이를 품은 사랑과 책임

 

제주시 연삼로 22, 제주가정위탁지원센터 회의실.

 

창밖은 고요했지만 회의실 안에서는 삶의 복잡한 결들이 차곡차곡 쌓이고 있었다.

 

오랜 경력을 지닌 고참 직원, 오랜 시간 아이를 품어온 위탁부모, 그리고 이제 막 위탁 홍보 업무를 맡은 신입 사회복지사까지.

 

각자의 얼굴에는 다른 역할과 시간의 무게가 담겨 있었다.

 

이들은 혈연이 아니더라도 한 아이의 인생을 바꿀 수 있다는 믿음 아래, 서로 다른 위치에서 같은 길을 걷고 있었다. 조용하지만 단단한 이들의 이야기는 '위탁'이라는 단어를 넘어 가족의 새로운 정의를 만들어가고 있었다.

 

제주가정위탁지원센터는 2003년 보건복지부 승인을 받아 설립된 제주지역 아동복지 전문기관이다. 제주도와 협력해 위기 아동의 보호와 양육을 지원하고 있다. 수시·상시 위기가정 보호가정을 모집하고 있다. 전문상담과 교육, 일시위탁 등 다양한 프로그램도 운영 중이다.

 

현재 센터에는 10여명의 직원이 함께 근무하며 위탁가정과 아동을 연결하는 일을 맡고 있다.

 

센터 관계자는 "특히 36개월 미만의 유아는 시설보다 가정에서의 보호가 최우선"이라며 "보호가 필요한 아동은 계속 늘고 있지만 이들을 품어줄 가정은 여전히 부족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센터는 이러한 제도에 대한 사회적 이해를 높이기 위해 매년 5월 '가정위탁기념주간'(5월 22일 위탁가정의 날 포함)에 거리 캠페인과 대중 홍보를 함께 이어가고 있다.

 

 

엄마가 된다는 건 서류보다 마음이 먼저입니다

 

하지만 제도를 알리는 일보다 더 어려운 것은, 그 제도를 '아이 한 명 한 명의 삶'에 녹여내는 일이다. 그 최전선에는 김진경 교육상담팀장이 있다. 

 

김 팀장은 10년 넘게 위탁아동과 위탁가정을 연결해온 실무자다. 처음엔 아이들을 '귀엽고 안쓰러운 존재'로 바라봤지만 시간이 흐르며 그 시선은 '보호자의 책임'으로 바뀌었다고 했다.

 

"예쁘다는 감정만으론 안 돼요. 방임이나 학대를 겪은 아이들은 마음에 깊은 상처를 안고 있고, 그 아이들을 회복시키는 건 단순한 보살핌을 넘어선 환경과 전문성이 필요해요."

 

그는 특히 제주에서 구조적으로 부족한 점으로 '단기 치료 보호시설'의 부재를 꼽았다.

 

"병원에서 치료받고 집에서 회복해야 하는 아이들이 많지만 그 과정을 이어주는 공간이 없어요. 당장 아이가 지낼 안전한 집은 마련돼도, 정서적 치료나 진단이 동반되지 않으면 회복은 더뎌질 수밖에 없습니다."

 

기억에 남는 한 아이가 있다. 초등학교 1학년이었지만 한글을 읽지 못했고, 말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심한 방임과 정서적 결핍이 있었던 아이다.

 

"그 아이를 맡은 위탁 어머니는 정말 헌신적이었어요. 새벽 2시에도 '제가 이 아이를 잘 돌보고 있는 걸까요?'라며 저에게 전화를 하셨어요. 잘하고 있다, 혼자 버티지 말라고 위로했지만 사실 제가 더 많이 배우고 있었습니다."

 

1년 후, 그 아이는 교실에서 친구들과 어울리며 일기도 쓰고 발표도 할 수 있을 만큼 성장했다. 김 팀장은 그 변화의 중심에 있었던 건 '서류상의 보호자'가 아닌 '진짜 엄마의 마음'이었다고 말했다.

 

"위탁은 단순한 대안이 아니에요. 어떤 아이에겐 인생을 바꾸는 시작점입니다. 그래서 저도 아직 이 일을 놓지 못하고 있어요. 저에게도 그 아이들이 ‘누군가의 아이’가 아니라 함께 책임져야 할 아이들이니까요."

 

 

아이를 낳지 않았지만 마음만은 누구보다 진짜입니다

 

위탁모 A씨는 올해로 10년째, 한 아이의 '엄마 같은 사람'이다. 40대 중반에 처음 위탁을 시작했고, 지금은 초등학생인 아이를 키우고 있다.

 

"한 번도 '남의 아이'라고 생각해본 적 없어요. 아이가 열이 펄펄 날 때 밤새 곁을 지켰고, 학교 발표회에선 제일 앞에 앉아 응원했어요. 그런데 막상 병원에서는 보호자 서명조차 못 하고, 여권을 만들 땐 단수 발급밖에 안 되더군요. '내 아이'라 여겼지만 행정상 나는 그저 '동거인'일 뿐이라는 현실이 가장 서글펐죠."

 

그는 이 같은 간극이 위탁부모 모두의 공통된 상처일 거라고 했다.

 

"세월이 쌓일수록 가족으로 살아온 시간이 법보다 앞설 때가 많아요. 하지만 서류는 그런 걸 인정하지 않죠. 매번 설명하고, 설득하고, 기다려야 해요."

 

그럼에도 그는 담담하게 말한다.

 

"그런데도 아이가 저를 향해 '엄마'라고 불러주는 그 순간, 다 이겨낼 수 있어요. 하루에도 열두 번씩 '이 아이를 만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생각해요. 아이 덕분에 나도 다시 태어났다고 느낍니다. 지금 제 인생에서 가장 잘한 일이에요."

 

'엄마 아닙니다'라는 위임장 한 장, 마음이 무너졌죠

 

장애를 가진 초등학생을 위탁보호하고 있는 B씨는 "행정의 벽이 가장 견디기 힘들다"고 말했다.

 

식사, 목욕, 등하교는 물론 병원 진료까지 매 순간 아이 곁을 지켜왔지만 서류 앞에서는 늘 '부족한 보호자'였다.

 

"아이 이름으로 복지 지원금을 신청하려 했는데 담당 공무원이 '법정대리인이 아니라 자격이 없다'며 거절했어요. 결국 아이에게 직접 위임장을 받아야 했죠."

 

초등학생이 삐뚤빼뚤한 글씨로 꾹꾹 눌러 쓴 위임장 한 장. 그 안에는 단지 행정 절차를 위한 문서 이상의 감정이 담겨 있었다.

 

"한 글자, 한 글자 써 내려가는 아이를 보며 마음이 무너졌어요. 내가 진짜 보호자라는 걸 왜 꼭 아이가 증명해야 할까요?"

 

B씨는 아이의 발달과 학습을 위해 헌신하고 있지만 매년 학기 초가 되면 학교를 찾아가 담임교사에게 다시 설명해야 한다.

 

"'이 아이는 위탁아동입니다. 하지만 가족이에요. 편견 없이 대해주세요'라고 부탁드리죠. 그럴 때마다 아이에게 또 다른 선을 긋는 것 같아 미안해요."

 

그는 '엄마'라는 단어를 조심스럽게 꺼냈지만 그의 말투엔 확신이 묻어났다.

 

"법은 날 동거인이라 부르지만 저는 이 아이를 위해 울고 웃는 사람이에요. 그게 엄마라면 저는 이미 오래전부터 엄마였습니다."

 

 

홍보 부족보다 제도 거리감이 더 문제입니다

 

펜션을 운영하던 박선옥 제주가정위탁지원센터 신입 사회복지사는 중년의 나이에 새로운 길을 택했다. 돌연한 인생 전환의 배경엔 오래된 마음이 있었다.

 

"막연했지만 분명한 마음이었어요. 내가 받은 사랑을 누군가에게 다시 전하고 싶었죠. 그래서 사회복지를 배우고, 이 일을 선택하게 됐습니다."

 

센터에서는 주로 홍보 업무를 맡고 있다. SNS 운영, 카드뉴스 제작, 지역 인플루언서와의 협업, 캠페인 기획까지 혼자 도맡다시피 한다. 하지만 현실은 생각보다 더딘 속도로 바뀐다.

 

"여전히 '가정위탁'이 뭔지조차 모르는 분들이 많아요. 제도 자체보다 그 개념이 너무 생소하게 느껴지는 거죠. 홍보가 부족하다기보다 제도가 사람들 삶에서 너무 멀리 있다는 느낌이 들어요."

 

그는 말한다. 위탁은 특별한 사람들이 하는 특별한 일이 아니라 공동체가 함께 감당해야 할 보편적인 사회 기능 중 하나라고.

 

"모든 사람이 위탁부모가 될 수는 없어요. 하지만 누구나 아이들의 곁에 설 수는 있어요. 단 한 번의 관심, 생필품 한 상자, 위탁에 대한 오해를 덜어주는 말 한마디. 그것만으로도 아이들에겐 큰 힘이 됩니다."

 

그는 마지막으로 덧붙였다.

 

"위탁제도는 아동만을 위한 게 아니에요. 아이를 통해 어른이 바뀌고, 가족의 정의가 넓어지고, 지역이 따뜻해집니다. 지금 우리가 하는 일은 단지 보호가 아니라 새로운 관계를 세우는 일이에요."

 

센터 문을 나서던 위탁모의 마지막 한마디가 오래도록 귓가에 맴돌았다.

 

"서류상으론 동거인이지만 제 삶에선 분명히 엄마입니다."

 

제도와 현실의 간극, 법적 보호자와 진짜 보호자 사이에서 아이를 품고 있는 이들은 위탁이 단순한 보호 조치가 아님을 조용히 증명하고 있었다. 이들이 만드는 가족은 혈연이 아닌 '연결'로부터 시작된다. 그 연결은 사랑과 책임으로 완성된다.

 

제주가정위탁지원센터는 이러한 삶을 뒷받침하기 위해 지난 20년간 아동복지의 최전선에 서왔다. 단기 위기 대응부터 상시 위탁 가정 연결, 교육·상담과 정책적 기반 마련까지. 제주사회에서 '보이지 않는 부모들'과 아이들을 잇는 조용한 연결고리였다.

 

5월 22일은 위탁가정의 날이다. 아이를 품는다는 것. 그 시작은 '누구의 아이냐'보다, '누가 곁에 있어주느냐'에 달려 있다. [제이누리=김영호 기자]

 

 

☞ 5월 22일 '가정위탁의 날' 

보건복지부는 친가정과 위탁가정 두 가정(2)이 내 아이와 위탁 아이 두 아이(2)를 행복한 가정에서 잘 키우자는 취지에서 가정위탁을 활성화 하고 가정위탁제도를 적극적으로 홍보하고자 매년 5월 22일을 '가정위탁의 날'로 제정했다. 

 

<위탁⋅후원문의> 제주가정위탁지원센터 (064-747-3273), 홈페이지 및 SNS 안내 참조

 

"우리가 내디딘 한 걸음이, 어느 아이에겐 평생의 전부가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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