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4 (수)

  • 흐림동두천 1.0℃
  • 흐림강릉 1.3℃
  • 서울 3.2℃
  • 대전 3.3℃
  • 대구 6.8℃
  • 울산 6.6℃
  • 광주 8.3℃
  • 부산 7.7℃
  • 흐림고창 6.7℃
  • 흐림제주 10.7℃
  • 흐림강화 2.2℃
  • 흐림보은 3.2℃
  • 흐림금산 4.4℃
  • 흐림강진군 8.7℃
  • 흐림경주시 6.7℃
  • 흐림거제 8.0℃
기상청 제공
검색창 열기

[이재근의 시평세평] 촛불정국에서 직접민주주의의 가능성을 본다

 

 

극악한 세상이 갑자기 정의로운 세상으로 방향을 바꾼 듯하다. 어제까지 불의에 가득차 있던 세상이 오늘은 정의의 가능성을 조금씩 엿보이게 한다.

 

국회에서 대통령 탄핵이 가결되는 순간, 촛불집회를 생각지 않을 수 없는 것처럼 모든 것이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은 당연한 이야기다. 변화의 욕구가 임계점에 닿았음을 느낀다. 무엇이 바뀔 것인가.

 

2년이 넘도록 세월호 7시간 동안 지도자의 행적은 오리무중이고 마치 주류인 듯 행세하던 어버이연합이나 박사모 등이 홍위병처럼 온 사회를 뒤덮었다. 시간을 되돌리려는 시도가 정당한 듯 억지가 자연스러웠던 시간들이었다. 1980년대 민주화운동을 통해 이뤄낸 성과가 하루 아침에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가고 그 시절 인물들이 기득권의 첨병이 되어 권력과 재벌의 이익만을 대변하는 자리를 자처했다.

 

이뿐 아니다. 급기야는 국민의 삶을 70년대 유신시대로 회귀시키려는 시도가 사회 전 분야에서 추진됐다. 기득권에 반대하는 모든 것을 종북좌파의 틀로 몰아 극단화하려는 시도, 독재를 찬양하고 역사를 획일화하려는 국정교과서, 대한민국 정부수립을 건국절이라며 일제강점에 대해 역사적 법통성을 부여하고 친일을 합리화하려는 시도 등 시대를 역행하는 수많은 일들을 지켜봐야 했고, 그에 따른 부역자들도 마치 훈장을 찬 듯 득의양양해 했다.

 

그러나 그 순간에도 세상은 다르게 변하고 있었다. 네트워크는 정보만이 아니라 생각의 방식과 대처 방법에 이르기까지 차마 혼자서는 생각지도 못할 집단지성을 만들어 냈다. 지도부 중심의 단일 체계가 아니라 각 개인은 수많은 개인과 연결되어 개별적이면서도 이미 모든 합의를 마친 듯 입장을 통일하고 촛불에 참여했다.

 

일련의 과정을 보며 불현듯 현 정치체제가 한계에 달했다는 생각을 한다. 제6공화국의 헌법이 낡아서 현 체제를 담지 못할 그릇이라거나 개헌의 당위성을 언급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 저변에 깔린 대의제 민주주의 시스템이 더 이상 맞지 않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는 주제는 네티즌들이나 SNS를 통해 사실 확인이 즉각 이뤄지고 의견의 수렴과정은 어느 때보다 빨리 이뤄진다. 각 개인이 지닌 네트워크의 다층적인 확산이 가져온 결과다. 사이버수사대라는 이름으로 사람들은 숨겨진 정보를 찾아내 공유했고 제대로 된 언론은 이를 다시 이슈화했다.

 

탄핵에 대한 의견은 바로 여론조사를 통해 민도를 가늠할 수 있는 수치로 나타났다. 이후 국회의 탄핵표결은 여론조사의 찬성율과 거의 동일한 수치를 기록했다. 이후 국정조사 과정에서도 의원들은 실시간으로 증인에 대한 질의를 추가적으로 업로드하고 거짓을 찾아냄으로써 발빠른 움직임을 보였다.

 

몇 가지 예로 단언하기는 어렵지만 일련의 사태는 대의제 민주주의 시스템이 더 이상 효율적으로 기능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민주주의는 그동안 숫자가 많다는 이유로 자신의 의견을 대표하는 대표자들을 통해 의견을 전달하는 시스템을 선택했지만 대표자가 오히려 권력이 되고 민의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한계를 노출했다.

 

그러나 상황이 조금 달라졌다. 시스템과 네트워크의 발전은 많은 국민들이 즉각적으로 의견을 제시할 수 있게 했고 이를 발빠르게 수렴할 수 있는 데이터 처리방법 등이 실시간으로 적용되면서 대의제라는 시스템은 비효율성을 극명하게 드러냈다.

 

민회라거나 작은 규모에서부터 직접민주주의를 실현하자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예전에는 차마 꿈꿔보지도 못했던 많은 숫자의 의견이 바로 가시적인 결과로 드러날 수 있는 장치가 지속적으로 가능하다면 결국 대의제 민주주의는 논제를 모아서 드러내고 자의적으로 결정하는 전횡에서 벗어날 수도 있을 것이다.

 

논의를 드러내는 역할까지만 하고 결국 결정은 시민들이 직접하는 직접민주주의 본래의 방법이 가능해 진다.

 

물이 수중기로 바뀌는 순간은 100도이지 99도까지는 여전히 물로 남는다. 잔을 넘치게 하는 것은 마지막 한방울이다.

 

어쩌면 100도가 되고 마지막 한방울이면 잔이 넘치는 그 순간이 왔는데 우리는 알아채지 못했을 수도 있다. 그리고 시간을 과거로 되돌리기 위해 발버둥치는 순간에 바로 코앞에 와버린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재근=제이누리 논설위원]
 

 

추천 반대
추천
0명
0%
반대
0명
0%

총 0명 참여


배너

배너
배너

제이누리 데스크칼럼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실시간 댓글


제이누리 칼럼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