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가 중국인 범죄의 온상으로 전락하고 있다. 강도와 폭행 같은 강력범죄는 물론 최근에는 살인사건까지 빈번해지면서 치안당국의 강경 대응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제주는 2022년 코로나 엔데믹 이후 무사증(무비자) 제도를 재개하며 외국인 관광객이 급증했다. 그러나 이를 악용한 범죄도 함께 늘어나 도민들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제주경찰청에 따르면 2019년부터 2023년까지 제주에서 검거된 외국인 범죄자는 2917명에 달한다. 이 중 약 66%가 중국인이었다. 이는 전국 평균인 45%를 크게 웃도는 수치다. 코로나 팬데믹 기간 동안에는 국제 이동이 줄어 범죄 발생도 감소했다. 하지만 엔데믹 이후 강력범죄가 연이어 발생하고 있다. ◆ 잇따르는 중국인 범죄, 가상화폐 새로운 소재 =지난달 24일 제주시 한 특급호텔에서 중국인 일당이 환전 과정에서 8500만원을 갈취한 후 피해자를 살해하는 강도살인 사건이 발생했다. 이들은 범행 직후 공항으로 이동해 출국을 시도했으나 경찰에 긴급체포됐다. 비슷한 사건은 지난 달에도 있었다. 호텔 객실에서 가상화폐 환전을 미끼로 중국인 일당이 현금 9억원가량을 빼앗아 도주하는 범행이 발생했다. 두 사건 모두 가상화폐 환전
이거 가저 강, 테워 불라 “성근 어멍아, 이것들 가저 강 테워 불라.” 아니! 이 멀쩡한 음식들을 태워버리라니.... 이해가 안 됐다. 그렇다 해도 지엄하신 시어머니 말씀인지라 주섬주섬 챙겨 나와 마당에서 태워버리려고 하는데, “메누리야, 뭐 허젠 햄시니? 그걸 무사 ᄉᆞ라불젠 햄디야?” 아니! ‘태우라’해서 태우려고 하는데, 왜 갑자기 ‘소라’가 나오지? 그날 시어머니가 ‘테우라’라고 했던 말은 ‘나눠주라’라는 의미였다. 그런데 며느리가 그걸 들고 나가 태워버리려고 하다니, ‘무사 그걸 ᄉᆞ라불젠 햄시니?’라며 시어머니가 놀랄 건 당연했다. 아무리 일 시켰기로서니, 시댁 어른들 앞에서 귀한 음식들을 ‘ᄉᆞ라불젠 허는’(태워버리려고 하는) 큰며느리가 두렵기까지 했을 거다. “성근 어멍아, 그거 캄저 확 뒈쓰라!” ‘뒈쓰라’, 이건 또 뭘 하라는 말이지? 영문몰라 하고 있는데, 시어머니가 주방으로 뛰어 들어와 프라이팬을 뒤집으며 기겁을 한다. “아까부터 이거 뒈쓰랜 안 해냐! 이거 다 카부런 하나도 못 먹게 되부러신예!" 이미 숯이 되어 버린 녹두전 앞에서, '도대체 내가, 어느 부분에서 무슨 잘못을 저질렀지?'를 꼼꼼하게 복기해 봐도 당시로선 도저히 알지
'허니문 1번지' 제주의 명성을 이끌었던 특급호텔들이 역사의 뒤안길을 맞고 있다. 대한민국 신혼여행의 중심지였던 제주도의 주역이었지만 이젠 매각과 영업중단이란 파고에 직면하고 있다. 197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제주도는 국내 신혼부부들에게 최고의 여행지로 자리 잡았다. 그 중심에는 제주KAL호텔, 서귀포KAL호텔, 제주그랜드호텔(현 메종글래드 제주)이 있었다. 이들 호텔은 해외여행이 자유롭지 않던 시절, 국내 신혼부부와 일본 등 해외 관광객을 끌어들이며 제주 관광 산업을 이끌었다. 그러나 해외여행 자유화, 저가 항공사의 등장, 새로운 호텔과 리조트의 경쟁 속에서 점차 입지가 좁아졌다. 여기에 2020년대 들어 코로나19 팬데믹이 겹치면서 경영 악화와 매각이 이어지고 있다. 1974년 개관한 제주 칼호텔은 지하 2층, 지상 19층 규모로 당시 제주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자 도내 첫 특1급 호텔이었다. 320개의 객실을 보유한 이 호텔은 한라산과 바다를 동시에 감상할 수 있는 파노라마 뷰를 제공하며 관광객들에게 사랑받았다. 그러나 제주 칼호텔의 등장은 도민들에게 경이로움을 선사하는 동시에 한라산 조망을 방해한다는 논란을 불러일으키며 이후 제주시 55m, 서귀포
언어의 보물창고 '제주도의 생명력을 키워 온 다양한 문화유산 가운데서 가장 제주 원형을 읽을 수 있는 자산이 바로 제주 언어다. 이 때문에 학자들은 제주도를 언어의 보물창고라고 했다.' 이는 평생 제주어를 연구해 온 제주어 연구 2세대 강영봉 제주대 명예교수의 지론이다. 제주의 삼보(三寶)는 바다, 식물, 언어가 보물이라는 뜻이다. 제주 언어는 제주 사투리·제주도 방언·제주어·제주말이라고도 한다. 2010년대 이후 학계에서는 제주말을 ‘제주도 사투리' 혹은 ‘제주도 방언'이 아니라 ‘제주어'로 접근하고 있다. 일반 대중들 사이에서도 독립된 언어로, ‘제주어'를 인식하는 관점이 보편화 되고 있다. 현재 유네스코와 제주도, 제주도의회, 국제 표준화 기구에서는 ‘제주도 방언’이 아닌 ‘제주어’로 분류하고 있다. ‘제주어’란 제주특별자치도에서 사용되는 언어 중에서 제주의 문화 정체성이 담겨있고, 제주 사람들의 생각이나 느낌을 전달하는 데 쓰이는 전래적인 언어를 말한다(제주어 교육 활성화 조례, 제주특별자치도 조례 제1495호). 조선 중기 문신 김상헌이 1601년 8월부터 제주도에 6개월 체류하며 쓴 여행 일기인 『남사록(南槎錄)』에 보면, '귀양살이를 한 신장령(
을사년 봄의 시작을 알리는 탐라국입춘굿이 입춘(2월 3일)을 하루 앞둔 2일 제주 원도심에 있는 제주목 관아 일원에서 개막했다. 한 해의 무사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는 제주 입춘굿은 탐라국 시대부터 이어온 새봄 맞이 풍농굿이다. 하지만 입춘굿이 오랜 세월 명맥을 이어오다 일제의 문화 말살 정책으로 인해 영영 사라질 위기에 처했던 사실은 제대로 알려져 있지 않다. ◇ 옛 입춘굿 사진은 일제에 의해 연출된 것 국립중앙박물관은 1910년대 관덕정 앞마당에서 펼쳐진 입춘굿놀이 모습을 담은 유일한 사진자료를 소장하고 있다. 이들 사진 12장에는 많은 제주도민이 관덕정 앞에 모여 심방('무당'을 뜻하는 제주어)들이 펼치는 입춘굿놀이를 구경하는 모습이 담겼다. 탈을 쓴 심방들이 춤을 추고 사설을 읊으며 흥을 돋우고, 어른과 아이들이 그 주위를 둘러싸고 서서 진지하게 지켜보고 있다. 사진만 얼핏 보면 입춘을 맞아 입춘굿이 성대하게 펼쳐지는 모습으로 보인다. 제주 입춘굿은 탐라국의 왕이 풍년을 기원하며 몸소 농사를 짓고 농업을 장려하던 친경적전(親耕籍田) 의식에서 비롯된 새봄 맞이 풍농굿이다. 그러나 사진 이면에는 반전이 숨겨져 있다. 사진 왼쪽 상단에 세로로 쓰인 '大正三,
무조건 재밌게 해라! 1998년 가을 대학원 박사과정을 마치고 고향 제주로 내려온 나는 인생 첫 대학강의를 하게 되었다. 기왕 하는 김에 한 다리 건너지 않아도 훤히 다 아는 좁은 지역사회에서 최소한 강의 못 한다는 소리는 듣지 말자 싶어서, 강의 경력 30년의 대학교 때 은사님을 찾아가 그 ‘비법’을 여쭈었다. 무조건 재밌게 해라! 단 1분이라도 빨리, 끝내라! 명강! 명강해도 휴강만 한 명강은 없다. 궁리 끝에 나는 재밌게 수업하기 위해 제주도 사투리를 써 보기로 했다. 당시 야간 강의에는 종일 업무에 시달리다 출석한 직장인들이 많아 그런지 꾸벅꾸벅 조는 학생이 많았다. 이런 상황에서 난 단 한 명이라도 덜 졸게 하는 게 최우선 목표였다. 다행히 그 방법은 먹혔다. 새침한 30대 중반 신참 강사의 입에서 80대 촌 할머니의 구수한 제주도 사투리가 무심코 쏟아져 나오는 장면에서는 다들 재밌어했다. 제주의 언어는 한라산 남쪽과 북쪽이 조금 다르다. 게다가 조선 시대 행정구역인 제주, 대정, 정의(지금의 성읍) 지역마다 쓰는 단어가 약간씩 다르다. 서귀포시 예래동에서 태어나 중문동에서 자란 나는 매미를 ‘재열’이라고 불렀다. ‘왕재열’, ‘폿재열’, ‘구재기재
영주실, 시로미 ‘최초의 동북아 탐험가’ 혹은 ‘희대의 사기꾼’으로도 전해지는 서복 동도의 목적은 불로초를 구함이다. 확실하게 입증되지는 않았지만 전해 내려오는 전설에 따르면, 시황제의 방사 서복이 한라산에서 구했다는 불로초가 바로 ‘시로미’라는 이야기도 있다. 시로미는 ‘영주실(瀛洲實)’이라고 불렀다. 영주(제주도)에서 나는 열매라는 의미이다. 제주도의 자연과 풍속에 대해 기록한 『남환박물(南宦博物)』(1704)에는 “한라산 꼭대기에 나는데 열매는 능금 같다. 빛은 검고 달다.” 김정호가 쓴 『대동지지(大東地志)』(1861∼1866년경)에도 “영주실은 한라산에서 나는데 조금 검고 달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시로미는 시로미과 시로미속의 상록 활엽관목이다. 열매의 맛이 달지도 않고 시지도 않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암고란(巖高蘭)이라고도 한다. 한자로 오리(烏李), 즉 까마귀의 자두라는 뜻이다. 영어로는 크로우베리(crowberry)이다. 제주도 한라산 고산지대나 백두산 고산지대에서 자라는 식물이다. 안토시아닌이 풍부해 항산화 효과가 매우 뛰어나다. 허리를 튼튼하게 하고 뼈를 단단하게 해주는 효능이 있어 예로부터 한방에서 허리나 무릎이 시큰거릴 때 약으로
거칠고 투박한 현무암으로 쌓은 돌담은 섬 어딜 가나 쉽게 만날 수 있는 제주만의 풍경이다. 농부가 일하는 밭에서도, 말과 소가 풀을 뜯는 목장에서도, 해녀가 물질하는 바닷가에서도 어김없이 돌담을 마주하게 된다. 오랜 세월 제주 사람이 지켜온 돌 문화와 이를 보존하기 위한 정책적 노력을 소개한다. ◇ '밭담', '원담' 다 같은 돌담이 아니다 제주의 돌담은 흙이나 시멘트 등을 사용하지 않고 자연 그대로의 돌을 모양에 따라 맞물리면서 쌓아 올린다. 돌 틈 사이로 바람이 통과할 수 있도록 해 태풍이 불어닥쳐도 쓰러지지 않는 견고함을 지녔다. 제주에 존재하는 모든 경계선에 쌓였다 해도 과언이 아닌 돌담은 어떤 목적으로 어디에 쌓느냐에 따라 이름이 달라진다. 집 주변을 둘러싸면 집담, 밭 경계를 표시한 밭담, 집으로 들어가는 길가에 쌓으면 올레담이다. 공동목장 경계용으로 쌓은 잣담(잣성), 해안가 공동어장을 만든 원담, 무덤을 둘러싼 산담도 있다. 가지각색 이름을 가진 돌담에는 옛 제주인의 지혜가 녹아있다. 밭담은 밭을 일구다 나온 돌덩이를 한쪽 편에 쌓아 만들어졌다. 밭과 길의 경계 역할뿐 아니라 거센 바람으로부터 토양 유실을 막고 곡식을 보호했다. 제주지역 밭담을
서귀포를 아~시나요? 진짜! 서귀포를 아시나요? 우리가 살면서 국어 교과서에 발췌된 지문을 조금 읽었을 뿐인데 원작을 다 읽은 듯이 얼렁뚱땅 넘어간다거나, 맛보기 영화 프로그램 주섬주섬 보고 나서 전편 다 봤다는 듯이 착각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부분만 대강 알면서 전부를 훤히 다 안다고 애써 떠벌리기도 한다. 서귀포가 고향인 난 단 한 번도 서귀포에 살아본 적이 없다. 1981년 서귀읍과 중문면이 서귀포시로 통합되기 전까진 중문 살다가, 고등학교 진학하면서 제주시로 갔다. 이런 연유로 난 어릴 적부터 대한민국 가장 남쪽에 있는 도시 이름에 왜 서쪽을 나타내는 ‘서’가 들어갈까? 왜 서귀포하면 항상 ‘칠십리’를 떠올릴까? 왜 어머니는 매년 집에서 직접 한라산 ‘시로미’로 술을 담갔을까? 그게 많이 궁금했다. 다들 아는 척해도 정확히 알진 못하는 눈치다. “서귀포만의 특별함은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이해합니다. 서귀포를 안다는 점은 서귀포 지역의 문화적 다양성과 환경적 특성을 이해하며 서귀포 사람들과 소통한다는 뜻입니다.” 2013년 설립된 서귀포 귀농귀촌협동조합 대표 안광희(52)씨의 말이다. 진시황 불로초 전설 서귀포시 지명유래에는 역사적 사실과
제주향토음식명인이 생각하는 '제주의 맛'은 어떤 맛일까. 제주도 조례에 따라 지정되는 제주향토음식명인은 제주에 살면서 향토음식 관련 최고 수준의 기능을 갖추고 동시에 향토음식 육성 발전에 공헌한 사람을 일컫는다. 지난 2010년 김지순(88) 선생이 향토음식 초대명인으로 선정된 데 이어 8년 뒤인 2018년 고정순(81) 제주향토음식문화연구소 소장이 제2호 명인으로 지정됐다. 올해 부정숙(61) 사단법인 제주문화포럼 원장이 새롭게 명인으로 선정되며 15년간 세 명의 명인이 이름을 올렸다. 세 명인이 지금까지 연합뉴스와 인터뷰한 내용을 바탕으로 제주향토음식의 맛과 특징, 가능성을 들여다본다. ◇ 원재료 맛 살린 사계절 건강한 밥상 "천혜의 제주 자연환경을 바탕으로 한 다양하고 신선한 식재료와 최소한의 양념으로 원재료의 맛을 살린 건강한 밥상." 평생을 제주향토음식을 연구해 온 김지순 제1호 명인은 "제주향토음식은 복잡하지 않다"며 이같이 말한다. 김 명인은 "어패류 등 신선한 원재료의 맛을 살릴 수 있는 음식이라서 양념을 많이 쓰지 않는다"며 "예로부터 제주에선 고추농사를 짓지 않아 된장과 간장으로만 간을 했다"고 설명했다. 김 명인은 "제주 사람들은 계절을
우리나라 3대 소주(燒酒) 중 하나로 개성 소주, 안동 소주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술이 있다. 제주의 '고소리술'이다. 오늘날 시중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초록병 속의 소주라고 생각했다면 큰 오산이다. 재료의 맛과 향을 날린 순도 95% 알코올에 물을 탄 희석식 소주와 달리 고소리술은 발효와 증류·숙성의 과정을 거쳐 원재료인 좁쌀의 맛과 향을 느낄 수 있는 전통 소주라는 점에서 큰 차이가 있다. 지난달 25일 제주 서귀포시 표선면 성읍리 술익는집에서 제주 전통주인 고소리술의 명맥을 잇는 김희숙(65) 제주도 무형유산 기능 보유자를 만났다. ◇ 고려시대부터 내려온 제주 전통주 고소리술 제주에 '다끄다'라는 말이 있다. '술을 얻기 위해 증류시키다'란 뜻의 제주어인데 '술 다끄다'라고 하면 '밑술을 증류시켜 소주를 내린다'는 뜻이 된다. 화학적 용어인 '증류'를 일컫는 제주어가 있다는 사실도 흥미롭지만, 그 옛날 인위적으로 알코올 도수를 높인 증류주를 제주에서 만들어 마셨다는 사실도 신기하게 여겨질 법하다. 고소리술은 발효주인 오메기술을 증류해 만든 제주 전통주다. 증류기인 소줏고리를 뜻하는 제주어 '고소리'에서 나온 말로, 넓게는 고소리로 증류시켜 내린 술을 모
곶자왈은 제주도민의 보물창고 과거 제주 사람들은 곶자왈에서는 숯을 많이 구웠다. 숯 굽는 재료로 가시나무류, 밤나무, 산딸나무, 서어나무 등이 쓰였다. 예전 숯을 구웠던 숯 가마터가 곶자왈 곳곳에 남아 있다. 숯 굽기를 위해 설치되었던 숯막들도 함께 볼 수 있다. 숯을 굽는 숯가마와 함께 곶자왈에서 발견되는 생활유적으로 옹기 가마터가 있다. 옹기를 굽는 가마를 제주에서는 ‘굴’이라 불렀다. 노란 그릇을 만들던 가마를 ‘노랑굴’, 검은 그릇을 만들던 가마를 ‘검은굴’이라 했다. 노랑굴에서는 물허벅과 항아리, 된장독과 같은 생활용품을 만들었다. 검은굴에서는 떡시루, 사발, 대접 등 제사용품을 만들었다. 서귀포시 대정읍 신평리와 구억리, 제주시 한경면 산양리와 청수리 등의 옹기 가마터가 곶자왈 지대에 남아 있다. 곶자왈 지대에서의 수렵에 관한 기록은 『탐라순력도』의 「교래대렵」을 통해 알 수 있다. 임금에게 진상하기 위해 사슴, 멧돼지, 노루, 꿩 등을 수렵하였다. 노루를 잡기 위해 ‘노루텅’이라는 100~150cm 높이 함정을 만들기도 했다. 노루텅 흔적은 교래 곶자왈이나 선흘 곶자왈 등에서 발견된다. 제주도는 돌이 많아 농사를 지을 토지가 부족했다. 그래서 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