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질생활이 나날이 발전하고 있는 오늘날은 그런 금욕주의 성격을 지닌 ‘공안락처(孔顔樂處)’1)는 어쩌면 과하게 제창할 가치는 없다하더라도 안회가 도달한 경지는 사람들의 추앙을 받고 있다. 냉정하게 논하면 우리 대부분은 엄격한 의미에서 군자도 아니요 철두철미한 소인도 아니다. 늘 그 둘 사이에 놓여있다. 바로 그렇기에 우리는 ‘탄탕탕(坦蕩蕩)’한 흉금도 지니고 있고 ‘장척척(長戚戚)’한 체험도 했다.2) 그러면서 오랜 세월이 흐르는 동안 도대체 어떤 상태가 더 본질적이고 더 행복하며 더 의의가 있는지 진정으로 깨우치고 이해하게 된 것이다. 세상에 살아가는 동안 우리는 개인적 수양을 끊임없이 하여야 한다. 모든 사람은 어쩌면 악마의 일면과 천사의 일면을 다 가지고 있을 수도 있다. 우리는 끝없이 수련하면서 자기 정신적 탐욕과 투쟁하여야 한다. 정직한 사람이 되어야 하고 동정심이 많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 자기 일생 동안 어떤 방면에서라도 업적을 세워야 한다. 자신에게는 엄격하고 타인에게는 관대하여야 한다. 탐욕을 너무 부려서는 안 된다. 지혜로운 자는 자신의 부족한 면을 인식할 수 있는 사람이다. 평상심으로 타인을 대하고 평상심으로 자신을 보면서 삶에 있어 너무
◆ 무망괘(无妄卦) 망(妄), 황당하다, 터무니없다, 상궤를 벗어나다 뜻이다. 무망(无妄)은 황당하지 않다, 상궤를 벗어나지 않다, 속이지 않다 뜻이다. 자아를 표현해내야 한다. 객관적이어야 하고 진실하여야 한다. 한 말에 책임지고 말한 대로 행동하여야 한다. 일을 함에 정정당당하고 광명정대하여야 한다. 하늘을 떠받치고 땅 위에 우뚝 서야 한다. 위선적이면 어떻게 하여야 할까? 유명한 동화 『벌거벗은 임금님(The Emperor's New Clothes)』이 이야기이다 : 벌거벗은 임금님이 의장대의 호위를 받으며 거리로 나섰다. 도성의 사람들은 앞 다퉈 임금님의 새 옷을 보러 나왔다. 그들은 소리쳤다. “우리 임금님의 새 옷이 정말 예쁘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고귀한 옷이다!” 이처럼 우스꽝스럽다. 그러면서도 슬프기도 하고 가엽기도 하다. 이것은 무지와 권력의 압제로 만들어진 집단 허위(거짓)다. 사람됨은 솔직하여야 한다. 솔직하고 본분을 지켜야 착실한 삶을 살 수 있다. 모든 사람이 거짓되고 비열하면서도 도덕군자인양 점잔을 뺀다면 세상은 얼마나 무섭게 되겠는가. 『주역』은 말한다. “무망은 크게 형통하고 곧게 함이 이로우니, 바르지 않으면 허물이 있을
◆ 복괘(復卦) 복(復)은 복귀하다, 반복하다. 잘못을 저질렀지만 제때에 돌아오면 형통하다. 잘못을 고집해 깨닫지 못하여 헤매지 말라. 산에 호랑이가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산으로 가는 것은 어리석다. 결과를 뻔히 알면서도 기어이 그 일을 하려 들지 말라. 잘못해 옆길로 빠졌는데 스스로 빠져나오지 못하면 후회막급일지니. 잘못을 알면서도 고치지 않으면 어떻게 하여야 할까? 옛 그리스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Herakleitos, B.C544~484)는 명언을 남겼다. “우리는 똑같은 강물 속에 두 번 들어갈 수 없다.” 변화 이외에 영원한 것은 없다, 변화 이외에 남는 것은 하나도 없다는 뜻이다. 우리가 가장 잘 알고 있는 말도 있다. “사람은 같은 곳에서 두 번 넘어져서는 안 된다.” 잘못을 저지르는 것은 그리 대수로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잘못을 저질렀으면 고쳐야 한다. 잘못을 저지르고도 고치지 않고 다시 잘못을 저지르면 바보일 뿐이다. 『주역』은 말한다. “돌아옴에 혼미하여 흉하니, 재앙이 있어 군사를 동원하는 데에 쓰면 마침내 크게 패하고 그 임금에게까지 흉하여 십년이 될 때까지 가지 못할 것이다.” 방향을 잃고서도 반복하면 아주 위험하다. 재난이다. 만약
◆ 박괘(剝卦) 박(剝)은 싹둑 자르다, 벗겨내다, 쇠패(衰敗)하다 뜻이다. “삼십년은 황하의 동쪽이요 삼십년은 황하의 서쪽이라.”(『유림외사(儒林外史)』) 10년이면 강산도 변하는 것처럼 세상사는 돌고 도는 것이다. 발전과 쇠패는 결국 상대적이다. 정상적이다. 발전했다고 우쭐거릴 필요 없고 쇠패했다고 의기소침할 필요 없다. 태연하게 맞이하라. 시대의 추세에 순응하라. 적절하게 도움을 구하면 난관을 빨리 벗어날 수 있다. 쇠패하게 되면 어떻게 하여야 할까? 눈 깜짝할 사이에 모든 것이 다 ‘연기처럼 없어지거나 사라지’게 된다. 얼마나 많은 산이 평지가 됐는가? 높다란 건물이 얼마나 많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던가. 그렇다. 견고한 성벽도 무너질 때가 있다. 아무리 완벽하다 하여도 결국은 쇠패(衰敗)할 시간은 도래한다. 속세의 모든 것은 끊임없이 생겨나고 사라진다. 당신이 사물 발전의 규율을 파악했다면 쇠패는 늦출 수 있다. 심지어 쇠퇴(衰退)해 가는 형세를 만회할 수 있다. 쇠패를 마주하면 우리는 시대의 추세에 순응하면 된다. 『주역』은 말한다. “박(剝)은 가는 것이 이롭지 않다.” “박(剝)은 깎아냄이다. 부드러움이 굳셈을 변화시킨 것이니, ‘가는 것이 이롭
사교의 상황이 허락만 된다면 특별한 옷을 입고 모두의 주의를 끌 수 있도록 해도 된다. 그러면 타인이 멀리에서 우리를 보더라도 좋은 인상을 가질 수 있다. 어쩌면 상대방이 어떤 구실을 찾아 곁으로 오면서 물을 수도 있다. “죄송하지만, 제가 당신을 주의하여 봤는데, …… 입으신 게 뭐지요?” 이 방법은 여성에게 더 중요할 수도 있다. 그렇더라도 주의하여야 할 것이 있다. 의복의 독특성이 상궤를 너무 벗어나면 안 된다는 점이다. 그렇지 않으면 타인에게 환심을 사려고 별짓을 다 한다는 나쁜 인상을 심어줄 수 있다. 너무 최신 유행만을 따라가면서 유별난 옷차림을 하면 타인이 가볍고 천박하다는 느낌을 가질 수 있다. 더 심하게 말하면 웃기게 볼 수도 있다. 반면에 복식이 너무 시대에 뒤떨어지면 사람들이 융통성 없는 수구이고 낡아빠진 독단가로 여길 수 있다. 정결하면서도 적절한 복장 의용은 상대방에게 좋은 인상을 남기게 된다. 시기적절한 차림은 타인의 마음속 지위를 높일 수 있을 뿐 아니라 일종의 예의이기도 하다. 오늘날은 개성을 중시하는 사회다. 형상은 중요하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만 좋은 형상을 이룰 수 있을까? 첫째, 신용을 지킨다. 타인에게 동의하거나 승낙한
◆ 비괘(賁卦) 비(賁)는 문식하다, 꾸미다 이다. 정치, 경제 제도 등을 포함한 인류의 생활방식은 바로 인류의 문식이다. 그래서 인문(人文)이라 한다. 사람의 복장, 형상, 기질, 수양은 인문에 속한다. 바로 인문이 있기에 인류의 광범위한 교류와 소통이 있다. 몸가짐과 옷차림이 맞지 아니하면 어떻게 할까? 개인 형상은 점포의 외관과 같다. 개인의 형상이 좋고 나쁨은 사람 간 교제의 성패를 직접적으로 결정한다. 개인 형상은 자신이 끊임없이 노력하여 자신의 도덕수양을 충실히 높임으로서 반영된다. 그래서 옛 사람이 말했다. “뿌리가 없으면 제대로 서지 못하고, 무늬가 없으면 제대로 실행되지 않는다.”(『예기禮記·예기禮器』) 우리는 살면서 어느 지도자는 친화력이 강하고 어떤 사람은 붙임성이 좋아 모두가 그와 교류하기를 원한다는 얘기를 자주 듣는다. 이것이 개인형상이 비교적 좋다는 표현이다. 개인형상은 하루사이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좋은 개인형상은 세월이 쌓여서 만들어진다. 좋은 방면을 끊임없이 타인에게 드러내면서 좋지 않은 점은 점차 개선해 나가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좋은 개인형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반드시 자신의 언행을 주의하여야 한다. 『주역』은 말한다.
분명한 것은, 충돌은 쌍방 당사가 모두 불리하다는 점이다. 각자의 사업에 악영향을 초래하게 된다. 큰일을 이루고자 하는 사람은 불필요한 충돌을 피해야 한다. 여러 가지 갈등을 온힘을 다하여 없애고 자기에게 여유롭고 조화로운 생활환경을 만들어 줘야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만 다른 사람과 충돌을 방지할 수 있을까? 첫째, 포용력을 가져야 한다. 멀리 앞을 내다보아야 한다. 모든 일은 대세를 읽어야 하고 풍격이 있어야 하며 단결하여야 한다. 모든 적극적인 요소를 동원해 공동의 목표를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 둘째, 주의를 기우려 조사하고 연구하여야 한다. 제때에 다른 사람의 사상, 동태를 파악해 여러 가지 모순을 풀려고 노력하면서 우환을 미연에 방지하여야 한다. 그러면서 사람 사이의 틈을 감소시키거나 없애야 한다. 셋째, 이해하려는 입장에서 타인을 대해야 한다. 모든 사람은 자신만의 개성과 특징이 있다. 다른 장점과 단점이 있다. 우리와 똑같은 지향이나 흥취를 가질 수는 없다. 넷째, 타인의 잘못을 너그럽게 받아들여야 한다. 누구나 결점은 있다. 누구나 잘못을 저지를 가능성이 있다. 타인이 우리 자신의 과오를 이해해주기를 희망하듯이 타인에게도 잘못을 고칠 기회
◆ 서합괘(噬嗑卦) 서(噬)는, (깨)물다 뜻이다. 합(嗑)은 합하다 이다. 서합은 입 안에 물건을 넣고 씹는 것이다. 무엇인가를 씹을 때는 입을 움직여야 한다. 입을 벌려야 교류할 수 있고 소통할 수 있으며 서로 이해할 수 있다. 이해한 후에야 오해를 풀 수 있다. 막힌, 두절된 것을 없애야만 일을 처리하는 데에 간단하게 할 수 있으며 큰일을 아무 것도 아닌 작은 일로, 중대한 문제는 사소한 것으로 하고 사소한 문제는 끝난 것으로 만들 수 있다. 막힘이 생기면 어떻게 하여야 할까? 막힘, 두절이 생겨 통하지 않는 문제가 발생할 때 더 교류하고 더 소통하면서, 간결하면서도 힘차게 단도직입적인 방법을 채택하여 큰일은 작게 만들고 작은 일은 끝난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주역』은 말한다. “서합(噬嗑)은 형통하니, 옥(獄)을 쓰는 것이 이롭다.” ‘씹다’는 말은 소통을 진행하는 것이다. 심리하여 막힘, 두절을 없앨 수 있다. 소통은 어디에나 있다. 소통이 있어야만 갈등을 해소시킬 수 있고 단절을 없앨 수 있다. 허베이 어떤 지역에 두 집안이 있었다. 동쪽 집 아기가 놀다가 실수로 손에 들고 있던 자그마한 돌이 담을 넘어 서쪽 집 아주머니의 머리를 때렸다. 서쪽
◆ 관괘(觀卦) 보다, 관찰하다, 시찰하다, 쳐다보다, 우러러보다, 의식에 참관하다 등이 모두 관(觀)이다. 본 후에야, 확실해질 수 있고 명확해질 수 있다. 인생을 꿰뚫어 볼 수 있고 삶을 느껴 깨달을 수 있다. 자아를 자세히 살펴볼 수 있고 타인을 관찰할 수 있다. 그리하여 경험을 총결하고 자아를 완벽해지게 할 수 있다. 자신을 알지 못하면 어떻게 하여야 할까? 사람의 최대의 적은 타인이 아니다. 자신이다. 자신을 이해할 생각이 있으면 반드시 자아를 자세히 살펴봐야 한다. 늘 자신을 반성하여야 한다. 그래야 자신이 자기의 부족과 잘못을 인지할 수 있다. 그리하여 자신을 고치고 자아를 높일 수 있다. 『주역』은 말한다. “내가 내는 행동을 보되(니) 군자다우면 허물이 없으리라.” 자신의 행위를 관찰하니 군자는 잘못도 없고 재앙도 없다는 말이다. 자신만이 자기를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다고 이야기하는 사람이 있다. 그런데 사실 어떨 때에는 자기가 자신을 이해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스스로 기만하고 남을 속이기도 한다. 앞쪽에 함정이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곧장 부딪쳐 들어가기도 한다. 많은 사람이 성공하지 못하는 까닭은 다른 사람의 손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손
◆ 림괘(臨卦) 임(臨)은 위쪽에서 고개를 숙여 아래쪽을 보다, 즉 감시하다 뜻이다. 특히 상급자가 하급자를 감시하는 것을 가리킨다. 뜻이 다스리다, 통치하다, 관리하다 의미로 파생되었다. 세상은 안정되기를 바란다. 안정되어야 평화, 행복, 광명이 있다. 안정되려면 정돈되고 다스려져야 한다. 다스림에는 방법을 찾아야 하고 지혜로써 감화하여야 하며 덕행으로써 사람을 만들어야한다. 잘못 관리하면 어떻게 하여야 할까? 사람을 교육하거나 관리하려면 이치에 맞게 설복하여야 하고 지혜로써 해야 한다. 중용의 도를 견지하여야 한다. 정세에 따라 유리하게 이끄는 방법으로 교육하여야 한다. 그리하여 신뢰나 존중을 받아야 한다. 『주역』은 말한다. “모두(감동하여) 임하니 바르게 하여 길하다.” 무슨 말인가? 감화의 방식으로 다스리니(처리하니) 길하고 이롭다. 이롭지 않는 게 없다. “사람이 태어났을 때는 인성이 본래 선량하다.”(『삼자경三字經』) 사람은 본래 무지 무욕이다. 모든 것은 자연을 따랐다. 무지는 기교를 부릴 줄 모른다. 무욕은 추구하는 바가 없다. 욕심 없고 추구하는 바가 없는 것은 탐욕과 죄악이 없다는 말이다. 역으로 하면 청정(清静)을 지키고 사적인 욕망이
◆ 고괘(蠱卦) 고(蠱)는 그릇에 많은 독충을 넣고 서로 잡아먹게 만든 후 남은 최후의 독충이다. 음식물 속에 넣어 사람을 해치는 데에 쓴다. 고는 해독을 끼치다, 미혹시키다, 문제, 잘못, 변고가 생기다, 귀찮게 하다 뜻이다. 잘못은 모든 사람이 저지른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잘못을 저지르면 재빠르게 정정한다. 어떤 사람은 잘못을 저지르면 어디서부터 손을 써야할지 몰라 갈팡질팡한다. 큰 잘못을 저지르면 어떻게 하여야 할까? 인생의 길에서 잘못을 저지르는 것은 피할 수 없다. 그렇다면 잘못하면 어떻게 하여야 할까? 『주역』은 말한다. “고(蠱)는 크게 형통하다. 큰 시내를 건너는 것이 이로우니, 갑(甲)보다 삼일 앞서서 하고, 갑보다 삼일 뒤에서 한다.” 이는 폐해를 고치고 혼란을 정리한다, 어지러운 세상을 바로잡아 정상을 회복한다는 것을 상징한다. 시작부터 바로 형통이다. 뒤쪽의 고생과 어려움을 넘어서는 데에 이롭다. 그런데 큰일하기 전에 현재 상황을 고찰하고 사태를 분석하여야 한다. 이전의 과오를 뒷날의 경계로 삼고 병을 치료하여 사람을 구해야(사람의 잘못을 지적하여 고치도록 하여야) 한다. 즉 과거의 잘못을 후일의 거울로 삼고 병을 고쳐 사람을 구해야1
유비(劉備)가 조조(曹操)에게 얹혀 살아가고 있을 때, 조조의 의심을 살까 염려해 때를 기다리는 ‘도광양회’ 계책을 실행한다. 자기의 거처 뒤쪽 뜰에 채소를 심기 시작하였다. 조조가 청매를 내놓고 술을 데워서 그와 함께 영웅을 논하는 술자리를 만들었다. 조조가 갑자기 ‘유비는 진정한 영웅’이라는 말로 정통으로 찔러왔다. 유비는 당황했다. 어쩔 줄 몰라 젓가락을 떨어뜨렸다. 바로 그때 하늘이 도왔는지 공교롭게도 천둥 치면서 큰소리가 울렸다. 유비는 순간적으로 기지를 발휘하였다. 천둥소리에 겁을 먹은 척 귀를 막고 엎드렸다. 소심한 척 가장하여서 조조의 의심을 피했다. 임기응변 능력으로 자신을 구했다. 칼을 빼서 동탁(董卓)을 암살하려다 발각된 순간 조조는 기지를 발휘해 칼을 바치러왔다고 거짓을 꾸며 위기를 모면하였다. 조조가 탄 말이 놀라 농지를 밟자 재치를 발휘해 ‘머리를 대신하여 머리카락을 잘라’ 자기 말에 권위를 달았다. 이 모두 임기응변이란 지혜의 빛이 발한 이야기이다. 임기응변은 재능, 기지, 담력과 지모의 빛이 반짝이는 뛰어난 예술이다. 조조의 ‘머리를 대신하여 머리카락을 자른’ 것이 좋은 예이다. 아무리 상상의 날개를 펼쳐보아도 이런 결론밖에 내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