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 자매살인사건 범인에 대해선 부모와 친구들이 지난달부터 전국을 돌며 사형촉구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다.
“남편ㆍ누나ㆍ자식을 무참히 살해한 자를 용서할 수 없다.” 살인범을 못 잡는 경찰, 살인범에게 응당한 죗값을 묻지 않는 사법부를 앉아서 볼 수만 없다. 억울하게 가족을 잃은 유족들의 피 끓는 분노가 느껴진다. 똑같은 심정일 순 없겠지만 깊은 공감을 느낀다.
이젠 흉악범 응징에 가족이 직접 나서는 시대다.
지난 8월 어느 날 오후 10시, 50대 부부가 용인 한 전원마을 자신의 집 앞에서 괴한 2명의 기습을 받았다. 남편은 둔기에 여러 차례 맞아 13일 만에 숨졌다. 외딴 곳이라 목격자도 없었고 비가 와서 부인은 범인을 자세히 볼 수 없었다.
수사는 오리무중이다. 가족들은 계획적 범행으로 단정 지었다. 남편은 부동산업을 하면서 최근 여러 명과 다툼을 겪었다. 협박 전화가 걸려오는가 하면 집에서 기르던 개가 끔찍하게 죽은 채 발견되기도 했다.
“억울하고 분해서 살 수가 없어요. 제발 좀 잡아줘요”(피해자 노모). 누가 내 남편, 내 아들을 죽인 것일까. 가족들은 집을 포함해 전 재산을 내놓더라도 살인범을 잡아야겠다는 각오다.
지난 18일 서울고법이 수원 엽기살인사건의 범인 오원춘을 무기징역으로 감형했다. 사회성과 유대관계가 결여된 채 살아왔고, 사전에 치밀하게 범행을 계획하지 않았고, 인육 사용 동기가 분명치 않은 점으로 볼 때 원심 형량(사형)이 무겁다는 이유였다.
그러자 올레길서 변을 당한 피살자의 동생이 ‘끔찍한 선언’을 했다. 원하는 판결(사형)이 나오지 않으면 자신이 공개 자살을 하겠다는 것이다. 한 언론사가 이 선언을 여과없이 전했다.
국회도 사법부에 압력을 넣었다. 한 의원은 “법원이 사회적 여론을 의식해 판결해도 안되지만 국민 여론이나 사회적 분위기에 무관심하거나 반해서 일반국민 의식과 괴리가 생기는 판결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울산에선 “자매를 죽인 범인을 죽여달라”고 2만5000여 명이 서명했다. 두 딸을 잃은 부모는 자식의 친구 등 30명으로부터 사형 촉구 탄원서도 받았다. 재판부에 사형 촉구 서명서와 함께 제출하기 위해서다. 부모는 “인명을 경시하는 사회 풍조를 없애기 위해 잔혹한 살인범에게 사형 선고를 촉구하는 취지”라고 했다.
고려 경종 때 이런 일이 있었다. 선대 왕인 광종이 죽자, 아버지(광종) 때 많은 공신이 무고로 죽는 걸 목격한 아들(경종)은 특이한 법을 선포했다. 이른바 복수법이다. “억울함이 쌓인 사람들의 분노를 모두 풀어줄 수 없다”고 생각한 경종은 개인이 직접 복수하는 걸 허용했다.
관청에 소(訴)를 올려 재판을 받을 필요 없이, (광종대에) 모함했던 나쁜 놈을 찾아가 죽여버려도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 어처구니 없는 법은 왕족들까지 무차별 복수를 당하고서야 폐지됐다.
조선시대 신하와 유생들이 왕에게 특정인에 대해 극형에 처할 것을 요구하는 경우가 있었다. 중대한 반역 혐의가 대부분이다.
21세기 대한민국에선 어떡해야 흉악한 범죄를 막을 수 있을까? 피해자가 직접 ‘응징’에 나서서 본보기를 보여줘야만 하나? 이런 현실을 보는 게 답답하다.
☞조한필은?=충남 천안 출생. 고려대 사학과를 나와 동 대학원에서 한국고대사를 전공, 석사학위를 받았다. 중앙일보 편집부·전국부·섹션미디어팀 기자를 지냈다. 현재는 충청타임즈 부국장 겸 천안·아산 주재기자로 활동하면서 공주대 문화재보존학과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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