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4·3 당시 토벌대의 강경진압을 지시, 다수의 양민 희생을 낳았던 고(故) 박진경 대령(1918~1948)이 국가유공자로 등록된 사실이 알려지면서 제주사회가 크게 반발하고 있다.
제주4·3기념사업위원회는 10일 성명을 내 "국가보훈부가 그를 무공수훈자라는 이유만으로 국가유공자로 인정한 것은 수많은 희생자의 억울한 죽음을 부정하는 행위"라며 국가유공자 등록 취소를 촉구했다.
위원회는 "가해 책임이 있는 인물을 국가유공자로 추앙하는 것은 희생자와 유족 명예를 다시 한번 짓밟는 행위"라며 "지금이라도 국가유공자 인정을 취소하고, 역사의 단죄 대상이 국가유공자가 다시는 될 수 없도록 관련 제규정 정비에도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더불어민주당 문대림(제주시갑) 의원도 SNS를 통해 "'제주도민 30만을 모두 희생시켜도 무방하다'는 발언을 했던 인물에게 '애국정신의 귀감'이라는 표현이 담긴 증서가 수여된 것은 4·3 희생자와 유족, 도민 아픔을 외면하는 처사"라며 유감을 표했다.
문 의원은 "국가유공자 제도가 역사의 진실을 왜곡하거나 희생자들의 명예를 훼손하는 방향으로 운영되어서는 안 될 것"이라며 잘못된 유공자 지정이 바로잡힐 수 있도록 힘쓰겠다고 밝혔다.
민주노총 제주본부도 성명을 내 "국가폭력 내란을 딛고 들어선 이재명 정부가 이래선 안된다. 국가폭력 역사에 대한 철저한 청산과 단죄 없이 내란의 완전한 종식도 없다"며 규탄에 가세했다.
아울러 "국가폭력 행위에 동조하고 정의로운 역사에 반하는 국가보훈부 장관을 즉시 해임하고 4·3 유족에게 사과하라"고 요구했다.
조국혁신당 제주도당도 "국가보훈처는 박진경 대령의 국가유공자 자격을 즉각 취소해야 한다. 이것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가 최소한의 정의와 양심을 회복하기 위한 의무"라고 강조했다.
진보당 제주도당도 "진정한 해원은 4·3의 올바른 진상규명과 함께 다시는 4·3 왜곡이 이뤄지지 않는 것이다. 이재명 정부는 그 해원의 길에 재를 뿌렸다"고 비판하며 유공자 증서 철회를 촉구했다.
보훈부는 지난 10월 20일 서울보훈지청장 명의의 ‘국가유공자 등록결정 안내문’을 통해 “故 박진경 님을 국가유공자법 제4조제1항7호(무공수훈자) 적용 대상자로 결정했다”고 박 대령 유족에게 통보했다. 해당 조항은 무공훈장을 받은 사람은 국가유공자로 인정받도록 규정하고 있다.
박 대령 유족은 같은 날 무공훈장 수훈 등을 근거로 보훈부에 박 대령을 국가유공자로 등록해달라고 신청했다. 지난달 4일에는 이재명 대통령과 권오을 보훈부 장관 직인이 찍힌 국가유공자증도 유족에 전달됐다.
일제강점기 오사카 외국어학교를 나와 일본군으로 제주도에 주둔한 바 있는 박진경 대령은 1948년 5월 제주에 주둔한 국방경비대 9연대장으로 부임, 진압 작전을 이끌다 암살됐다. “조선민족 전체를 위해서는 제주도민 30만을 희생시키더라도 무방하다”, "양민 여부를 막론하고 도피하는 자에 대하여 3회 정지명령에 불응하는 자는 총살하라"고 발언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4·3단체들로부터 양민 학살 책임자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부임 한 달여 만인 1948년 6월 18일 대령 진급 축하연을 마치고 숙소에서 잠을 자던 중 휘하의 문상길 중위가 손선호(올해 4월 본명이 손순호로 확인) 하사에 지시해 박대령을 권총으로 살해했다. 박 대령의 장례식은 육군장 제1호로 치러졌고 문 중위, 손 하사는 재판을 거쳐 그해 9월 사형에 처해졌다.
정부는 한국전쟁 중이던 1950년 12월 30일 박 대령에게 을지무공훈장을 수여했다. 전몰군경(戰歿軍警)으로 인정받은 박 대령은 현충원에 안장됐다.
박진경 추도비는 1952년 당시 도내 기관장 등이 관덕정 경찰국 청사 내에 세웠다. 이후 제주시 충혼묘지로 옮겨졌다가 최근 국립제주호국원이 개원하면서 한울공원 인근 도로변으로 이전됐다.
제주도는 박진경 추도비를 비롯해 4·3 왜곡 논란이 있는 시설물에 대해 객관적 사실에 근거한 안내판을 해당 시설물 인근에 설치하기로 한 바 있다. [제이누리=양성철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