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귀포시 성산읍 수산1리가 고향인 강훈(42)씨.
밀짚모자에 까만 얼굴, 자르지 않은 수염. 얼핏 봐도 농사꾼임을 알 수 있다. 농사꾼에게 농사일보다 더 중요한 일이 뭐가 있을까 만은 만사를 제쳐두고 그는 14일 오전 9시부터 피켓을 매달고 시위를 벌이고 있다.
강씨에게 농사일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자녀교육’이다. 또 모교가 사라지는 것을 막는 것도 중요했다. 그리고 고향도 지켜야 한다.
강씨는 1남2녀를 둔 가장이다. 큰 아이와 둘째 아이는 중학교 3학년과 1학년이다. 막내딸은 수산초등학교 4학년이다.
그는 수산초등학교를 34회로 졸업했다. 고등학교를 제주시에서 다녔다. 군 생활을 한 것을 제외하면 태어나서 지금까지 주욱 수산1리에서 살고 있다.
그런데 내년부터 막내딸이 다니는 모교가 문을 닫을 위기에 처해있다. 학생 수 감소로 인해 인근 동남초등학교로 흡수된다. 분교가 될 수도 있지만 문을 닫을 가능성이 더 높다.
막내딸이 읍내로 통학을 해야 할 처지가 됐다. 항상 곁에서 친구들과 웃으면서 동네 학교를 다니던 막내딸의 모습을 볼 수 없게 된다. 이제 많은 학생들이 다니는 큰 학교에서 경쟁을 벌여야 될 처지가 됐다.
그의 요구사항은 ‘폐교는 물론, 분교도 안 된다’는 것이다. 그를 비롯한 수산초등학교에 자녀를 둔 학부모들이 모두 똑 같은 마음이다.
“모교가 사라진다는 생각에 나 혼자 가슴 아픈 것이 아니다. 아이들이 적다고 교육이 안 되는 것도 아니다. 예전처럼 집 옆에 학교가 있고 그 학교를 다니면서 순수하게 자랐으면 한다. 학생 수가 적어도 좋다. 작은 학교라도 유지시켜야 한다”
강씨는 학교 폐교로 마을의 황폐화도 우려하고 있다. “학교가 폐교되거나 분교가 되면 막내딸을 궁여지책으로 이웃학교로 보낼 수밖에 없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그렇지 않다. 시내로 보내겠다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마을이 삭막해질 것이다. 어릴 때 다니던 학교가 문을 닫으면 사후관리도 안 될 것이다. 지금 폐교된 학교를 보면 뻔할 ‘뻔’자다”
수산초등학교는 예전부터 학생 수가 적은 학교는 아니었다. 강씨가 학교 다닐 때만 해도 동창생이 모두 72명이었다. 2개 반으로 나눠 수업을 받았다. 전교생이 350~400명 정도 될 정도로 규모가 있는 학교였다.
“학교가 바글바글했다. 운동회 때가 되면 운동장이 가득 찰 정도로 학생들과 학부모 교사들이 모여들었다. 그랬던 학교가 지금 학생 수가 30명밖에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통폐합시켜 없앤다는 것 자체가 이해되지 않는다. 성적이 나쁜 것도 아니다. 인성교육에도 오히려 더 낫다. 아무런 문제가 없는데 통폐합이라니…”
현재 수산1리와 수산2리는 학교를 살리기 위해 지난해부터 학부모들뿐만 아니라 주민들까지도 모두 힘을 모으고 있다. 마을예산으로 집을 지어 임대사업을 하기 시작했다. 4채의 주택에 초등학교 자녀를 둔 가구를 대상으로 임대했다. 올해 학생 수 8명이 늘었다. 떠나는 고향사람 대신 육지에서 새로운 이웃들이 찾아온 것이다.
빈집을 수리해 빌려주는 사업도 추진 중이다. 올해 말에는 마을 총회를 거쳐 임대주택을 추가로 지어 학생 수를 늘릴 방침이다.
강씨의 몸 앞과 뒤에는 걸린 피켓에는 ‘경쟁보다는 공동체를 먼저 배우는 교실에서 수동적인 공부가 아닌 자연체험장에서 능동적인 공부를 할 수 있는 농산어촌 작은 학교를 살려주세요’라고 쓰여 있다. 그의 절절한 요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