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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수첩] 쓰러지는 교사, 반복되는 악성 민원과 폭력 … "가르치고 싶다"는 교사들의 외침

 

화창한 5월 초여름 날씨.

 

운동장에서는 아이들의 환한 웃음소리가 담장을 넘어 들린다. 교실 창문 너머로 비치는 밝은 햇살, 바람에 실려오는 노랫소리와 체육시간을 알리는 호루라기 소리.

 

스승의 은혜를 다시금 되새기는 5월, 그러나 교실 안에서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다.

 

제주도내 한 초등학교 교사 고모씨(35)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보람을 느낄 줄 알았다"면서도 "이제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보다 언제 나를 향할지 모를 민원의 공포와 싸워야 하는 게 더 무섭다. 교사라는 이유로 매일이 긴장의 연속이다"고 말하고는 고개를 떨궜다.

 

제주의 교실 안에서 교사들이 맞서고 있는 것은 단순한 업무가 아니라 '폭력과 민원'이라는 보이지 않는 적이었다.

 

결혼을 앞둔 또 다른 초등학교 교사는 "죽이겠다', "결혼식장에 찾아가 깽판을 치겠다"는 협박을 매일같이 들어야 했다.

 

또 다른 교사는 "창문만 봐도 혹시나 찾아오지 않을까, 집에 가도 그 목소리가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며 "법적으로 대응하면 더 큰 해코지가 돌아올까 무서워서 아무 말도 못 했다"고 토로했다.

 

이 학부모는 10명의 교사를 정서학대 혐의로 고소했고, 교육청과 학교에는 100번이 넘는 민원을 쏟아냈다. 교실은 이미 '전쟁터'로 변해 있었다.

 

제주도교육청은 "악성 민원인에 대해 고발 등 강력 대응을 하겠다"고 밝혔지만 이미 교사들은 상처투성이였다.

 

 

지난 22일에는 제주 한 중학교 창고에서 고(故) 현승준씨가 숨진 채 발견됐다. 학생 가족의 집요한 민원과 항의 전화에 시달리다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다.

 

같은 학교의 한 교사는 "아이들에게 누구보다 따뜻했던 분이었는데 그 따뜻함은 반복되는 민원 앞에서 무너지고 말았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현씨의 제자 고모군은 "여전히 복도 끝에서 웃으며 인사해 저희와 장난쳐주시던 선생님 모습이 선명하게 생각난다. 선생님은 언제나 어려운 처지의 학생을 돌봐주셨고, 언제나 우리 곁에 계셨다"며 "선생님께서 그토록 힘든 시간을 보내고 계셨다는 걸, 우리는 왜 더 빨리 알아채지 못했을까"라고 안타까워했다.

 

현씨는 안심번호조차 신청하지 않았다. "있어도 소용없을 것 같았다"는 체념과, "민원 대응팀이 있다는데, 현장에선 그 존재조차 느낄 수 없다"는 교사들의 냉소가 이 현실을 말해준다.

 

제주 초등학교 교사 장모씨(28)는 "민원을 받으면 학교가 나를 보호하기는커녕 '네가 뭘 잘못했냐'고 되묻는다"며 "아이들에게 웃는 얼굴로 수업하자고 다짐했는데 그게 결국 내 인생을 무너뜨리는 흉기가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또 다른 교사는 "학생에게 올바른 길을 알려주는 순간이 이제는 교사에게 가장 위험한 선택이 되어버렸다"고 토로했다.

 

이들의 목소리는 오늘날 교실의 자화상이다. 

 

 

폭언과 민원뿐만이 아니다. 학생이 교사를 폭행하는 사건도 이어지고 있다. 지난 28일 제주서부경찰서는 제주의 한 특성화고에서 남학생이 수업 중 교사를 주먹으로 폭행한 사건을 수사 중이라고 밝혔다.


2023년 전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서이초 교사 사망 사건 이후에도 변한 것은 없었다. 오히려 날개 잃은 교권의 추락이 더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교사노동조합연맹의 최근 설문조사에서는 교사의 교직 만족도가 5점 만점에 2.9점에 불과했다. 교사의 절반 이상(58.0%)은 최근 1년간 이직 또는 사직을 고민했다고 답했다. 교육부의 2020~2024년 자료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정년을 채우지 못하고 중도 퇴직한 교원은 3만6748명. 2020년 6512명에서 꾸준히 증가해 지난해엔 9194명으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최연선 인천교사노조 수석부위원장은 "한국 학교에서 교사는 교육자이자 행정가이자, 학교의 프런트 데스크 역할까지 도맡고 있다"고 꼬집었다.

 

이어 "학교마다 '학생행정지원실'을 신설하고 전담인력을 배치해야 한다. 정작 교실에서는 아이들이 아닌, 행정업무가 교사의 시선을 빼앗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보미 교사노조연맹 위원장은 "지금처럼 교사 개인의 연락처로 민원이 곧바로 연결되는 구조부터 깨야 한다"며 "아이들을 지키고 싶은 교사들이 ‘나를 지킬 수 없다’며 교단을 떠나지 않도록, 국가와 교육당국이 먼저 움직여야 한다"고 말했다.

 

한정우 제주교사노조 위원장은 "교권은 교사 개인의 권리가 아니라 아이들이 안전하게 배우고 자랄 수 있는 울타리"라며 "그 울타리가 무너지고 교사가 쓰러지면 결국 아이들도 지킬 수 없게 된다"고 강조했다.

 

교육부는 서이초 사건 이후 '교권보호 4법'을 통과시켜 교사 보호를 약속했다. 그러나 여전히 현장에서는 교사들이 홀로 민원과 폭력의 표적이 된다.

 

대한초등교사협회도 "학교가 무너지기 전에 국가적 관심과 지원이 절실하다"며 "교사의 자리는 전화기 앞이 아니라 교실이어야 한다. 교사의 시선은 민원이 아니라, 아이들이 성장하는 순간을 향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제주도교육청은 교사 사망 직후 분향소를 단 3일만 운영하겠다고 했다가 비판을 받고서야 닷새로 연장했다. '추모조차 보여주기식'이라는 지적은 교육당국의 뒷북 대응을 겨냥한다. 또 추모 기간 동안에는 일선 교사들과 언론 간 접촉을 자제해 달라는 요청도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추모와 동시에 내부 입단속에 나선 점에 대한 비판도 적지 않다. 교사의 죽음과 반복되는 폭행, 민원 문제에 대해 정작 제대로 된 해명이나 대책은 내놓지 않은 채 오히려 교사들의 입을 막는 데만 급급했다는 비판이다. 책임을 통감하고 구조를 되돌아보기보다 또다시 문제를 덮으려는 모습으로 비춰졌다.

 

스승의 날이 있는 5월이면 교사들은 "내가 아이들을 가르칠 자격이 있나"를 먼저 고민한다. 학교라는 이름의 울타리가 더 이상 교사들에게는 안전한 공간이 아니라는 현실이 점점 더 분명해지고 있다.

 

아이들을 위한 가르침이 교사 자신을 무너뜨리는 짐이 되어서는 안 된다. "교사는 아이를 지켜야 한다"는 말이, 더 이상 "교사는 스스로를 희생해야 한다"는 뜻으로 왜곡되어서는 안 된다.

 

아이들이 마음 놓고 배우고, 교사들이 웃으며 수업할 수 있는 학교. 그 본질을 다시 세울 때다. 이제는 말뿐인 대책이 아니라 학교 울타리를 다시 세우는 진짜 변화가 필요하다. [제이누리=김영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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