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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수첩] 교권 보호 대책 잇따랐지만 '여전' … 교사는 여전히 '홀로'

 

"학생을 지키려다 제가 무너졌습니다."

 

제주시 한 고등학교 교사 A씨가 남긴 말이다. 그가 마주한 상황은 한마디로 무방비였다. 신체 접촉 피해를 입고도 아무런 보호 조치 없이 가해 학생과 수학여행을 떠나야 했고, 신고를 했지만 돌아온 건 "화해하라"는 말과 "수행평가 때문에 복귀해달라"는 요구뿐이었다.

 

결국 A씨는 병가와 특별휴가를 연달아 사용한 끝에 교단을 떠났다. 학교는 침묵했고, 교사는 끝내 혼자였다.

 

사건은 지난 5월 수업 중 발생했다. 휴대전화를 사용하던 학생을 제지하자 학생은 갑자기 A씨를 껴안으려 했고, 뿌리쳐도 다시 강하게 팔을 붙잡았다. 이후에도 새벽 시간에 문자가 왔고, 복도에서 위협적인 접근이 반복됐다.

 

A씨는 학교에 피해 사실을 알렸지만 분리 조치는 없었다. "교권보호위원회에 신고되기 전까진 어렵다"는 설명이 전부였고, 보호 매뉴얼도 없었다. 상황이 담긴 CCTV 영상조차 A씨가 직접 확보해야 했다.

 

가장 충격적인 건 닷새 뒤 그 학생과 함께 수학여행에 인솔 교사로 떠나야 했다는 사실이다. "도저히 함께할 수 없다"는 A씨의 호소에도 학교는 묵묵부답이었다.

 

그 뒤로 이뤄진 분리 조치는 고작 5일. 병가에 들어간 A씨에게는 "수행평가 문제를 출제해달라", "직접 와서 채점해달라"는 연락이 이어졌다. 규정을 들어 거부하자 그제야 연락은 끊겼지만 A씨는 이미 탈진 상태였다.

 

 

이 사건은 단발적이지 않았다. 같은 달 제주시 한 중학교 교사였던 고(故) 현승준씨가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무단결석과 흡연 문제를 지적한 학생을 타이르다 정서적 학대 민원에 휘말렸고, 학생 가족은 하루 수차례 문자와 고발을 반복했다.

 

해당 학부모는 "왜 아이에게 폭언을 하느냐"고 항의했고, 현 교사는 사과했지만 "벌을 받아야 한다"는 말이 돌아왔다. 병가를 미뤄가며 등교를 이어가던 그는 '학교에 찾아가겠다'는 연락을 받고 끝내 학교에 남았다. 그러나 학부모는 끝내 나타나지 않았고, 사흘 뒤 현 교사는 유서를 남기고 생을 마감했다.

 

현 교사의 죽음이 알려진 지 닷새 뒤 제주시 한 고등학교 인근 거리에서는 또 다른 사건이 벌어졌다. 교사 폭행 전력으로 교외 봉사 활동 중이던 학생이 지도 교사를 향해 돌을 들고 위협하며 주먹을 휘두르고, 휴대전화를 빼앗았다. 도교육청은 퇴학 조치를 내렸고, 경찰은 상해 혐의로 A군을 검찰에 송치했다.

 

교권 침해는 학생에게서만 오는 것이 아니었다. 제주시 한 초등학교에서는 한 학부모로부터 교직원 10명이 아동학대 혐의로 무더기 고소당했다. 전화·이메일·방문 항의가 이어졌고, 담임교사에겐 "죽이겠다", "결혼식장에 찾아가겠다"는 협박까지 가해졌다.

 

결혼을 앞둔 교사는 예식 당일에도 학부모가 나타날까 전전긍긍해야 했다. 하지만 교육청이나 학교는 끝내 법적 대응에 나서지 않았다.

 

 

서이초 사건 이후, 도교육청은 '통합 민원 대응팀'을 만들었다고 밝혔지만 현장의 교사들은 "그게 뭔지도 몰랐다"고 한다.

 

제주시 한 고등학교 교사는 "누구에게 연락해야 할지도 몰라 결국 우리가 모든 민원을 응대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제주도교육청이 밝힌 2023년 기준 악성 민원 대응 실적은 단 2건에 그쳤고, 법적 대응은 단 한 건도 없었다. 제도는 있었지만 시스템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 사이 제주에서는 올해에만 학생과 교사 간 폭행 사건이 3건 더 일어났다.

 

이 중 1건은 이미 교권보호위원회 심의를 거쳐 조치가 내려졌고, 나머지 2건은 현재 심의 절차를 앞두고 있다. 참고로 지난해에는 모두 7건의 학생·교사 간 폭행과 관련해 교권보호위원회가 열렸다. 이는 제도적 장치와 실제 작동 간의 괴리를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김광수 교육감은 지난 25일 취임 3주년 기자회견에서 "선생님들이 외롭고 고통받지 않도록 현장이 원하는 실질적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고 현승준 교사 사건에 대한 교육청 차원의 진상조사 추진 여부에 대해선 말을 아꼈다.

 

그는 "순직 처리를 위해 필요한 서류에 영향을 줄 수 있어 진상조사위원회 준비만 하고 있다"며 "여기까지만 말씀드리겠다"고 했다.

 

도교육청은 뒤늦게 교권 침해 대응책으로 QR 연락처 시스템, 무기명 인식조사, 학교 민원 현장지원단 운영 등을 내놨다.

 

하지만 교단에 서 있는 교사들의 반응은 냉소적이다. "QR 신청은 받았지만 이후 아무런 안내도 없었다", "민원 대응팀? 뉴스로만 접했다", "현장은 지금도 달라진 게 없다"는 목소리만 이어진다.

 

 

전교조, 교총, 교사노조 등 교원 3단체는 새로운 제도를 만드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미 존재하는 제도가 제대로 작동하는 구조를 갖추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이를 위해 필요한 구조 개편 방안을 다음과 같이 제시하고 있다.

 

우선, 학교 현장에서 교사 개인에게 민원이 직접 전달되는 관행은 반드시 차단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모든 민원은 공식적인 창구를 통해서만 접수되도록 하고, 교사 개인의 휴대전화나 메신저 등 사적인 수단으로 민원이 들어오는 일은 제도적으로 막아야 한다는 것이다.

 

또 악성 민원에 대해서는 학교나 교사가 대응하는 것이 아니라 교육청이 직접 나서 법적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단순히 민원을 중재하거나 조정하는 수준을 넘어서 명확한 책임 구조 속에서 피해 교사를 보호하는 실질적인 대응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교권보호위원회의 역할도 강화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현재는 위원회의 판단이 '권고' 수준에 머무르고 있지만 앞으로는 해당 조치를 반드시 이행해야 하는 '의무'로 전환하고, 초등학교와 중학교에서도 학생에게 퇴학 등의 실질적인 징계가 가능하도록 관련 규정도 정비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리고 피해를 입은 교사에 대한 지원도 보다 적극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사건 발생 직후부터 법률 자문은 물론 외부 전문가에 의한 심리 치료가 신속히 제공돼야 하며 병가 후 업무에 복귀할 때도 일정 기간 업무 조정을 통해 회복을 도울 수 있는 배려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교원단체들은 제도적 장치 그 자체보다 그것이 실제로 현장에서 작동할 수 있도록 구조를 바꾸는 것이 지금 가장 시급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제주교사노조 관계자는 말했다.

 

"서이초도, 현승준 선생님도, 그리고 지금도 고통받고 있는 교사들 모두 누군가를 지키려다 스스로 무너졌습니다. 하지만 그들을 지켜야 할 시스템은 단 한 번도 작동하지 않았습니다."

 

지난달 현직 교사가 생을 마감했을 때도, 그리고 한 달이 지난 지금도 취재 과정에서 교사들이 가장 많이 꺼낸 말은 하나같았다.

 

"그때와 똑같습니다."

 

대응팀은 있지만 움직이지 않고, 매뉴얼은 있지만 작동하지 않으며 QR은 붙어 있어도 교사를 지켜주는 보호막이 되지 못했다.

 

지금 필요한 것은 또 다른 제도가 아니다. 이미 있는 제도를 '실제로 작동하게 만드는 체계'다. 그 구조를 만들지 못한다면 교사의 '다음 죽음'은 또 예정돼 있다. [제이누리=김영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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