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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회의 '영화로 읽는 한국사회' - 파이트 클럽 (6)
파이트클럽에 모여든 소외된 대중 ... 익명성 뒤 숨어 울분 토하는 이들
대중과 시민 차이 지적한 이 가세트 ... 시민 설 자리 좁히는 준비 안 된 대중

 

타일러 더든의 ‘파이트 클럽’에 하나둘 모여든 회원들은 각자의 기구한 사연들은 밝히지 않지만 모두 사회에서 이리저리 치이고 소외된 대중이다. 이들은 ‘파이트 클럽’에서 자기들끼리 맨몸, 맨주먹 격투를 통해 그동안 쌓이고 응어리진 울분을 쏟아내면서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파이트 클럽’의 운영자 더든은 어느날 회원들에게 기존과는 전혀 다른 ‘파이트’ 방향을 제시한다. 지금까지는 자기들끼리 파이트를 했다면 지금부터는 똘똘 뭉쳐서 세상을 상대로 파이트하라고 한다.

더든은 세상과의 파이트에선 폭탄의 사용도 허용한다. 지방흡입 시술을 하는 병원 폐기물 처리장에서 훔쳐온 인간들의 지방으로 제조한 폭탄이다. 철저하게 1대1 싸움으로 제한했던 격투 방식에도 변화를 준다. 이젠 집단을 공격하는 것도 가능하다. 

그런데 더든은 왜 폭탄을 들고 세상과 싸워야 하는지 그 이유를 설명하지는 않는다. 회원들 역시 더든에게 왜 그래야 하는지 묻지 않는다. 이의를 제기하거나 클럽을 탈퇴하는 이들도 없다. 오히려 그들의 눈빛이 용암처럼 이글거린다. 사회에서 소외된 자신들의 설움을 ‘세상’을 향해 토해내기 시작한다. 

더든에겐 ‘자본주의사회의 모순’을 해결하거나 혹은 아예 파괴해 버리겠다는 자기만의 뚜렷한 목표가 있지만, 그를 따르는 회원들은 단순히 자신들의 울분을 토해내기 위해 지도자 더든이 기획한 파괴공작에 나선다. 이 파괴공작에 나서는 파이트 클럽 회원들의 이름은 모두 지워지고 번호로만 불린다. 모두 익명성 뒤에 숨어 누군가 앞장서면 우르르 따라 뛰는 레밍과 같은 무리가 돼버린다.

파이트 클럽 회원들은 그들을 거부한 ‘캘빈 클라인’ ‘구찌’, 그들을 받아들이지 않은 성역과도 같은 매장, 그리고 ‘폭스바겐’을 폭파하고 불질러버린다. 그 목표를 제시한 더든에겐 나름의 논리라도 있을지 모르지만, 이름도 지워버린 회원들에겐 한바탕 신나는 굿판일 뿐이다. 이들은 결국에는 파이트 클럽의 지도자도 통제할 수 없게 된다.

레밍처럼 몰려다니며 못마땅한 세상에 무차별적인 파괴공작을 해대는 ‘파이트 클럽’ 회원들을 보고 있노라면 문득 스페인의 철학자 호세 오르테가 이 가세트(Jose Orte ga y Gasset·1883~1955년)가 어떤 이유에서 「대중의 반역(The Revolt of the Mass es·1932년)」이란 도발적인 제목의 책을 집필했는지, 그리고 그 책이 왜 대중사회의 본질을 파헤친 20세기 최고의 역작이라는 평가를 받는지 이해할 것도 같다.

 

 

이 가세트(y Gasset)는 이들 레밍 떼와 같은 모습을 보이는 ‘대중’을 현대민주정치의 반역자로 지목한다. 그가 말하는 ‘대중’은 주체적이고 합리적인 사회적 판단력을 가진 ‘시민’과는 다른 개념이다.

“오늘날(1930년대) 유럽에 나타난 가장 중요한 사실은 ‘시민’이 아니라 아무런 준비도 되지 않은 대중이 완전한 사회 주도세력으로 등장했다는 사실이다… 이들은 자기 자신의 생각을 의심하지 않고, 어리석으면서도 놀랄 만큼 아무렇지도 않다. 이들은 스스로를 평범하다고 생각하면서 평범함의 권리를 주장하고, 엘리트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다… 익명성에 의존하는 대중이 ‘다수’를 무기로 무차별적으로 힘을 과시하고 있다… 이들은 국가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존재해야만 된다고 생각한다. 가난과 같은 개인적인 책임까지도 국가에 미루고 국가가 즉시 개입해 해결해줘야 한다고 믿고 분노한다. 이른바 ‘삶의 국유화’다….”

“비대해진 이들의 권력과 여기에 영합하는 정치세력이 결합하면 자유주의와 민주질서는 파괴된다… 정치세력들은 이들에게 아부하고 온갖 감언이설을 늘어놓는다. 불행하게도 그런 사람들이 이들에게  선택받는다. 이들은 급기야 평범한 자신들과 달리 ‘평범하지 않은’ 자들을 차별하고 폭력을 행사한다. 때로는 비범함도 단죄의 대상이 된다. 이것은 결국 비非지성주의·반反지성주의를 낳는다. 자아 성찰과 통제를 상실한 이들은 불평등과 억압의 악순환을 연결해주는 고리 역할을 한다.”

의대 정원 2000명을 둘러싸고 벌어지고 있는 갈등을 언론에서는 ‘의(醫)·정(政) 갈등’이라고 지칭하는 모양인데, 무슨 영문인지 정부가 슬그머니 한발 뒤로 빠지면서 의사라는 엘리트들에게 분노하는 ‘국민의 목소리’를 앞세워 의사와 국민의 갈등으로 몰고가는 듯하다. 

사자 우리에 의사들을 던져버리듯, 의사를 ‘4억원짜리 철밥통’ 지키려 환자를 죽음으로 몰아가는 ‘의새’ ‘의레기’라고 악마화하고 분노한 대중에게 던져버린다. 이 논란에서 ‘시민’이 설 자리는 협소하다.
 

그 때문인지 반드시 거쳐야 할 치열한 논쟁도 사라져버린다. 적어도 20세기 이후 동서양을 막론하고 점차 황당해지고 천박해지는 정치의 밑바닥에는 사회에 참여할 준비가 되지 않은 채 점차 막강해지고 있는 ‘대중의 반역’이 자리잡고 있는 듯하다. 
 

 

더욱 딱한 건 대중이 ‘파이트 클럽’의 레밍과도 같은 ‘반역’을 일으키고 있다면 정부가 그것을 통제해야 할 텐데, 정부마저 거기에 편승해 무조건 2000명 증원 등을 막무가내로 밀어붙이고 있다는 것이다. 의사단체도 이성을 잃은 듯 정권 타도를 마구 내지른다. 

오르테가 이 가세트는 엘리트와 시민사회가 각자의 정체성을 깨닫고 자신의 역할에 최선을 다해야 대중사회가 맞닥뜨린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다는 처방전을 제시했다. 그런데 지금 우리사회는 대중과 엘리트, 그리고 정부까지 서로 질세라 자유민주주의에 반역하고 있는 듯하니 참으로 당황스럽다. [본사 제휴 The Scoop=김상회 정치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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