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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제주人] 제주 100% 유기농 커피브랜드 '투빅커피' 김기주 대표, 조영 운영이사
"만덕 할머니 '장사원칙' 본 받아 제주서 인정받겠다 ... 목표는 제주의 '삼성'"

첫 번째, 싸게 그러나 많이 판다. 두 번째, 알맞은 가격으로 사고판다. 세 번째, 정직한 믿음을 판다. 거상 김만덕의 원칙을 내세우는 이들이 있다. 서서히 제주도민들의 입맛을 사로잡아가는 바리스타들이다.

 

"믿을 수 있는 커피로 믿을 수 있는 제주를 전국에 알리고 싶다"는 김기주(49) 투빅커피 대표이사와 조영(43) 투빅커피 운영이사.

 

이들이 합심해서 만든 유기농 커피브랜드 ‘투빅커피‘는 지난 1월 서귀포 남원점에 1호점을 열었다. 그리고 10개월 여 만에 매장을 4곳으로 불렸다. 순항중이라기보단 비약적 성장세다.

 

이들은 누굴까? 두 사람은 각자 다른 도시에서 접점이 없는 삶을 살았다.

 

김기주 대표는 대형 식품기업인 CJ 본사에 근무하면서 외식업의 매력에 일찍 눈을 떴다. 대기업인만큼 외식업의 시스템을 익히면서 배우는 것이 많았다. 하지만 단점도 있었다. 대기업 특유의 피 말리는 피라미드형 승진 구조도 일찍 깨닫게 됐다. 진급 누락에 따른 자발적 퇴사와 상시 구조조정 등이 실시간으로 눈앞에 펼쳐졌다.

 

불안했다. 만약, 아무런 대비 없이 40대에 덜컥 퇴사하게 된다면 그땐 과연 뭘 할 수 있을까? 그가 소위 ‘선망 직장’이라 불리는 대기업에 2년 반만에 사표를 내고 자영업에 뛰어든 이유다. 2006년, 33세의 나이에 그는 자신만의 브랜드를 만들자고 결심했다.

 

치열한 경쟁사회, 쌓인 피로 ... 인생 2막을 꿈꾸다

 

제주에 내려오기 전까지 약 8년간 세계 곳곳에 발자취가 남을 만큼 치열한 삶을 살았다. 한식당 등 자신있던 외식 브랜드로 세계 무대에 도전했다. 가까운 중국, 일본부터 말레이시아, 호주, 미국 등 10개국에서 매장을 열었다. 베트남에서는 어쩌면 무모한 도전일 수도 있는 쌀국수 현지식당을 창업하기도 했다. 현지음식으로 현지인과 경쟁하는 무모함이었다.

 

김 대표는 사실 이 때만해도 커피를 잘 마시지 않았다. 외식업을 하는 사람은 커피와 담배를 입에 대선 안 된다고 생각했다. 특유의 진한 냄새가 음식의 향과 맛을 느끼는데 걸림돌이 되는 것 같았다.

 

그 즈음이다. 조영 운영이사는 LG전자 하청업체의 휴대폰 소프트웨어 개발자로 일하고 있었다. 10년 가까이 일하면서 산전수전을 다 겪은 수석 개발자였다. 흔히 알려진 것처럼 밤샘과 야근이 잦았다. 정신을 차리기 위해 커피를 마셨다. 일명 ‘믹스커피’였다. 자판기를 누르기만 하면 나오는 게 참 편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속이 부대꼈다. 더 이상 몸이 받아들이지 않는 듯 했다. ‘좀 더 건강을 생각해보자’는 동료와의 다짐이 출발점이었다. 처음에는 취미로 원두 커피를 접했다. 단순히 마시는 것을 넘어서 만드는 영역까지 넓혀가니 원두 종류부터 커피머신 작동법까지 새로운 세계가 열렸다.

 

새로운 세계가 열리니 눈도 뜨였다. 조 운영이사는 소프트웨어 개발자로서 미국 등 해외출장이 잦았다. '이 나라엔 카페가 참 많네'라고 슥 넘겨버렸던 감상이 '우리나라도 이랬으면 좋겠다'로 새롭게 다가왔다. 

 

조 운영이사가 한창 해외출장을 다녔던 2007년 당시 세계 커피시장 전문조사기관인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우리나라 커피가게 시장규모는 미화 6억 달러에 불과했다. 같은해 미국의 커피숍 시장 규모는 147억 달러. 당연히 커피 브랜드도, 카페의 수도 미국에 비해 현저히 적었다. 

 

커피 소비성향도 달랐다. 당시 우리나라의 원두 및 믹스커피 시장은 11억 달러로 커피숍 시장 규모(6억 달러)보다 컸다. 그만큼 커피숍 보다는 가정이나 직장에서 원두나 믹스커피를 타 마시는 경향이 강했다는 뜻이다. 

 

 

특히 우리나라 직장인이 커피를 마시는 이유 중 1순위가 ‘잠을 깨기 위해서’란다. 당시 격무에 시달리던 조 운영이사처럼 말이다. 하지만 해외출장 중 만난 커피는 향과 분위기를 즐기는 문화, 그 자체였다. 피로를 쫓아내는 ‘약’ 대용품이 아니었다. 

 

성장을 확신할 수 없는 작은 시장규모, 아예 다른 직종으로 뛰어든다는 불안감이 그를 망설이게 했다. 취미로만 커피를 대했던 그가 ‘이 길이 내길’이라고 확신한 것은 커피에 대한 경험치가 어느정도 쌓였던 2011년, 32세였다. 그는 IT업계에서 발을 뺐다. 

 

커피 세계에서도 '엔지니어'는 필수였다. 커피머신을 설치하고 수리, 관리하는 한편 커피에 대한 전문지식이 필요한 머신 세팅까지 다룬다. 전자통신학과를 졸업하고 쭉 개발자로 살았던 그는 우선 이런 기술부터 전부 내 것으로 만들자고 생각했다.

 

커피 전문 엔지니어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그는 첫 커피 브랜드 '쿠나(Kuna) 커피'를 만들었다. 드립백(Drip Bag, 커피를 마시기 좋도록 미리 분쇄.소분한 후 종이 여과지에 담아 파는 형태의 커피)사업을 주력으로 하는 브랜드다. 경기도 의왕시에서 3년간 버텼다. 드립백 1세대라는 자부심이 있었지만, 아쉽게도 대기업의 물량공세에는 버티지 못하고 문을 닫게 됐다. 1억원 상당의 값비싼 기계 처분도 속이 쓰렸다. 

 

이왕 0부터 시작하는 거 제주로 내려가보기로 했다. 커피사업 자체가 레드오션이라곤 하지만 제주는 전국에서도 ‘탑급’이었다.

 

제주 커피시장은 저가부터 고가까지, 또 ‘맛’으로 승부하는 곳부터 ‘뷰’를 내건 곳까지 말 그대로 온갖 모델이 다 모여있다. 그만큼 커피머신 또한 저가부터 고가까지 각양각색이었고 생산년도마저 천차만별이었다. 그래서 대형 커피 브랜드는 회사 자체에서 제주로 조사차 직원을 보내기도 했다. 경험이 곧 자산인 법. 그에게 제주는 기회의 땅이었다. 가능한 한 많은 기계를 접하고 싶었다. 

 

이 즈음 김 대표는 지쳐 있었다. 자신만의 브랜드를 론칭하면서 해외 곳곳에 매장을 열었지만 어쩔 수 없는 ‘비즈니스’가 그의 목을 움켜쥐었다. 서울을 기점으로 중국 등을 오가며 매일매일 술과 싸워야 했다. 이렇게 마시다간 죽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살고 싶었다. 2014년, 42세에 그가 도시와 멀리 떨어진 섬 제주로 내려온 이유다.

 

제주로 오니 살 것 같았다. 제주는 평화 그 자체였다. 한숨 돌리니 주변이 보였다. 어쩌면 기업가 본능이 되살아난 것일지도 모른다. 제주에는 참 커피전문점이 많았다. 여행하면 식도락이고, 그 중 절반이 카페라니 그럴 만했다.

 

제주에는 특히 아름다운 ‘뷰’를 제공하는 카페, 인테리어가 독특해 제주에서의 ‘인증샷’을 찍기 좋은 카페, 공항에 가기 전까지 머물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는 카페가 많았다. 많은 관광객들이 제주에서의 추억을 카페에서 남기고 있었다.

 

관광객들은 대개 제주여행 필수코스로 카페를 넣는다. 멋진 풍광을 바라보면서 음료를 마시며 제주를 느끼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맛 자체보다 뷰나 인테리어에 신경을 쓴 커피전문점이 많은 것일지도 몰랐다.

 

불편했다. 제주는 확실히 아름다운 관광지다. 하지만 그 이전에 청정한 자연의 섬이다. 제주에 있는 커피 전문점이라면 “맛은 그럭저럭인데 뷰가 예뻐요”라는 평보다는 “역시 제주는 커피조차 믿을 수 있다”는 방향이 맞지 않을까? 피 튀기는 레드오션 속에서 아무도 찾지 않은 틈새를 발견한 것이다.

 

김 대표는 그때부터 커피를 마셨다. 하루에도 3~4잔씩 마셨다. 오랜 기간 커피를 접하지 않았던 덕에 코와 혀가 커피의 향과 맛에 예민하게 반응했다. 커피라고 다 같은 커피가 아니었다. 원두의 품질은 물론 바리스타의 실력 등이 커피의 품질에 크게 영향을 미치는 걸 알았다. 

 

서서히 다가오는 두 사람의 인연, 시너지를 꿈꾸다

 

점점 다가올 운명이던가? 조 운영이사는 제주 커피업계에서 차차 발판을 넓혀가고 있었다. 그가 가족과 함께 제주로 완전히 이주한 것은 2018년 말.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아무런 연고없이 ‘맨 땅에 헤딩’한 것이다.

 

제주시 해안동에 제주로 내려오기 전 7여년간 쌓은 커피에 대한 지식과 운영 경험을 총망라한 사업체 더베스트(THE BEST)를 차렸다. 커피머신 판매.설치.수리 및 커피관련 제품 유통, 그리고 카페 창업 컨설팅을 하는 한편 전문 커피인 양성까지 커피에 대한 모든 것을 다뤘다. 처음엔 작은 블로그를 개설하고 일지를 올려 어렵게 사업체를 알려갔지만, 시간이 지나니 "카페 사업과 관련된 건 모두 다 있다"는 호평이 입소문으로 퍼졌다. 

 

도내 고등학교에서 바리스타 강의도 도전했다. 그간 자신을 끌어줄 멘토가 없었던 것이 한이었다. 그래서 셀 수 없는 방황과 실수를 거쳤다. 바리스타를 꿈꾸는 아이들이 있다면, 그 아이들만큼은 최대한 편한 길을 걷게 하고 싶었다. 숱한 면접과 탈락을 반복했다. 한 번 혈맥이 뚫리니 나뭇가지가 퍼지듯 술술 풀렸다. 제주중앙고, 함덕고, 대정고에서 미래의 바리스타들을 길렀다. 3년간 강의를 다니니 실제로 바리스타가 된 제자까지 나왔다. 

 

 

김 대표가 조 운영이사를 만난 것도 이쯤이다. 2021년 초, 김 대표는 자신이 생각한 '제주다운' 커피전문점을 함께 이끌어나갈 전문가를 찾고 있었다. 건너건너 소개를 받고, 직접 발품을 팔다가 조 운영이사까지 인연이 닿았다. 같이 사업을 하려면 생각이 일치해야 한다. 깊고 진솔한 얘기를 나누던 두 사람은 세 가지 공감대를 형성하게 된다.

 

첫째, 한국에 '삼성'이 있는 것처럼 '제주도'하면 딱 떠오르는 대표 브랜드가 있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제주도민 중 10명 중 7명은 자랑스러워 했으면 좋겠다. 둘째, 그러기 위해선 단순히 돈만 벌어들이는 브랜드가 돼서는 안 된다. 우리는 제주로 와 새로운 인생을 얻었으며 제주 땅에서 제주의 물과 음식을 먹으며 살고 있다. 그러니 제주와 함께 성장하고 작은 결실이라도 보답하고 싶다. 일명 사회적 환원이다. 셋째, 제주대표 브랜드라면 먼저 제주도민에게 인정을 받아야 한다. 도민들이 언제 어디서든 편안하게 우리 커피를 마셨으면 좋겠다. 매일 마셔도 좋은 데일리(daily)커피다. 가격은 싸지만 결코 품질이 떨어져선 안 된다. 제주도가 청정 관광 1번지인 것처럼 내놓는 상품도 그래야 한다.

 

두 사람은 이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2022년 1월14일, 서귀포시 남원에 '투빅커피' 1호점 문을 열었다. 제주에서 태어난, 100% 유기농 원두만을 사용하는 유기농 커피 전문점이다. 

 

서귀포 남원점을 1호점으로 개점한 이유는 살아남을 가능성을 가늠해보기 위해서였다. 인구가 많거나 주변에 사무실이 많은 장소는 아니었다. 오히려 그 점이 마음에 들었다. 여기서 살아남는다면 사업을 생각대로 넓혀도 괜찮을 것 같았다.

 

감사하게도 많은 분들이 찾아주셨다. 덕분에 1호점 개점 약 4개월 만에 2호점을 열게 됐다. 당시 점주는 원래 다른 브랜드와 계약 직전까지 갔었다고 한다. 하지만 계약 당일 우연히 '투빅커피'를 맛보고 나서 "여기 커피가 더 맛있다"며 마음을 돌렸다고 한다.

 

2호점인 서귀포 효돈점을 오픈한 당일, 이번엔 3호점 오픈 문의가 들어왔다. 역시 커피를 맛보고 "너무 맛있다"며 가맹을 하고 싶다고 하셨다. 그렇게 2호점 오픈 후 3일 만에 3호점 계약을 하게 됐다.

 

3호점인 서귀포 동홍점을 오픈하고 나니 더 많은 가맹 문의가 들어왔다. 오픈 6개월 만에 판이 너무 커졌다. 요청하는대로 가맹을 다 내줄 수 없는 노릇이었다. 하지만 "제주 브랜드인데 왜 제주시에는 없느냐"는 물음이 마음을 움직였다. 투빅커피 4호점이자 첫 제주시 지점인 이도점의 탄생 계기다. 
 

 

김 대표와 조 운영이사의 '투빅커피'는 제주대표 브랜드를 목표로 한다. 그러다보니 각 지점 위치도 관광객의 동선보다는 제주도민의 생활동선과 훨씬 가깝다. 카페 인테리어 또한 각별히 신경썼다. 제주귤의 주황색을 기본 바탕으로 곳곳에 제주지역의 상징을 심어놨다.

 

예를 들면, 효돈점에는 효돈동에서 바라보는 한라산 벽화를 그려 포토존을 조성했다. 이도점에는 투빅커피의 장사정신 토대가 된 거상 김만덕을 소개하는 벽 장식을 걸어놨다. "만덕을 알리고 싶다"는 진심에 흔쾌히 수락해준 김만덕기념관의 호의이기도 하다. 

 

제주에서 알게 된 김만덕, 그에게서 배우다

 

거상 만덕의 장사정신을 고집하다보니 만덕의 일화처럼 억울한 일도 겪었다.

 

거상 김만덕은 어린 나이에 부모를 잃어 관기의 수양딸로 지내다 양인신분을 회복한 후 곧바로 물산객주를 열어 유통업을 시작했다. 뛰어난 수완으로 대부호가 됐으나 그만큼 경쟁 객주들의 시기를 사 부정축재로 허위신고를 당하는 등 고초를 겪었다.

 

투빅커피 또한 억울한 고발을 다섯 번이나 당했다. 고발자는 누군지 알 수 없다. 같은 업계의 경쟁사이겠거니 추측만 할 뿐이다. 유기농 인증 커피는 프리미엄이 붙어 다른 커피보다 높은 가격을 받을 수 있다. ‘유기농’이 붙은 채소나 과일이 더 비싼 것처럼 말이다. 이처럼 고발자는 유기농 원두 커피를 이렇게 싸게 팔 리 없으니 사기라는 주장을 펼치는 것 같았다. 이에 서귀포시측에서 매장을 직접 방문하기도 했다.

 

직접 방문해서 원두의 정체를 확인한 서귀포시 측은 잇따른 오해가 안타까웠는지 ‘차라리 유기농 인증 코드를 마케팅으로 쓰는 게 어떠냐’고 살짝 조언하기도 했다. 그 조언 때문만은 아니지만, 투빅커피는 매장 바깥과 컵 홀더에 매장에서 쓰는 원두의 유기농 인증 코드를 떳떳하게 붙여놨다. 장사의 기본은 믿음. 도민의 신뢰를 얻는 것이 우선이라는 생각에서다.

 

두 사람은 임을대기근 당시 천금을 내어 굶주린 제주 백성을 살린 김만덕처럼 '투빅커피'로 제주 지역사회에 나눔정신을 실천하고 싶다. 

 

김 대표는 베트남에서 쌀국수 현지식당을 운영할 때 직원 자녀의 유치원비를 지원한 경험이 있다. 조 운영이사는 도내에서 3년간 꾸준히 고등학생들에게 바리스타로서의 노하우를 전수하고 있다. 이들은 투빅커피가 더 커진다면 멘토 등 인적 교류는 물론 장학금 등의 물적인 형태로도 제주 학생들을 후원하고 싶다고 한다. 

 

실제로 김 대표는 2호점을 연 기쁨에 100만원을 들고 제주도청을 찾아간 적이 있다. 장학금을 내고 싶어서다. 하지만 도청은 "돈을 받을 수 있는 구조가 아니고, 그런 부서가 없다"는 답변을 내놨다. 이번엔 1호점이 있는 남원읍사무소로 갔다. 거기도 안 된다 하니 이번엔 리 사무소로 갔다. 그러나 또 안 된다는 답을 들었다. 장학금을 내려면 뭔가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그 100만원으로는 제주를 알릴 수 있도록 돌하르방 캐릭터를 만들고 이를 활용한 양말과 모자를 제작해 주변에 나눠줬다. 장학금이든 현물이든 어떤 형태로든 지역사회에 환원하고 싶다는 바람은 변함이 없었다.

 

이미 그들은 제주인이다

 

이 마음을 도민들이 알아줄 때면 특히 기쁘다. 효돈점의 한라산 벽화를 그리던 중 들은 이웃 할머니, 할아버지의 "야, 여기 이런 게 생겼구나"라는 감탄과 김만덕을 알리는 벽 장식을 본 주민의 "제주 사람들도 생각하지 못했던 건데, 감사하다"는 인사가 돌아왔다. 

 

특별히 알리지도 않았는데 진심을 알아봐주는 이들이 슬슬 생겨났다. 언젠가 지역번호로 전화가 와서 받았더니 제주도청이었다. "제주 브랜드로 저렴하고 제품이 좋다는 얘기를 들었다. 착한 가게로 등록하는 건 어떠냐"는 제안이었다. 특히 최근엔 어떻게 알았는지 바다 건너 뭍에서도 제주에서 태어난 제주 브랜드라는 이유로 가맹점 요청이 자주 들어온다고 한다. 

 

하지만 두 사람은 "먼저 제주도민에게 인정을 받아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제주도민이 인정하지 않는 제주 브랜드는 무슨 소용이냐는 말이다. 우선 제주도내 10호점까지 내는 것이 목표다. 제주도민에게 제주 브랜드로서 가치를 인정받은 후, 그제서야 뭍으로 나가 '제주 제품은 이렇게 훌륭하다'고 알릴 수 있다는 말이다.

 

만약 그 단계까지 갈 수 있다면 제주청년들의 해외진출 발판이 돼주고 싶다. 청년들이 해외에서 배우고 네트워크를 쌓아 돌아온다면 그 청년 개인은 물론 제주 지역사회와 투빅커피의 동반성장이 가능하지 않겠냐는 의미다.

 

투빅커피배 스포츠대회도 제주에서 열고 싶다. 아직 종목도 정하지 않은 막연하고도 원대한 계획이다. '제주에서는 해마다 투빅커피배 대회가 열린다'는 인식을 만들고 싶다. 대회가 열리면 상품이나 상금이 있을 것이고, 이 또한 제주의 좋은 제품을 외부에 알릴 수 있는 자리가 된다.  

 

두 사람은 제주출신은 아니다. 하지만 제주에 와 또다른 인생을 얻었고, 도민으로서 제주를 누리고 살아가고 있다. 제주로부터 받은 은혜를 도민은 물론 제주사회와 나누려고 한다. 태어난 곳은 중요하지 않다. 살고 있고, 마음을 둔 곳이 바로 고향이다.

 

제주를 사랑하고, 제주와 함께 성장하고, 제주를 널리 알리고자 하는 자. 두 사람은 제주인이다. [제이누리=이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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