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굴살이 15년'인 '제주판 로빈슨 크루소'가 발견됐다. 경찰관에 의해 우연히 발견된 40대 남성이 15년 토굴생활을 청산하게 됐다.
제주동부경찰서 남문지구대 현봉일 대장과 대원들은 2일 제주시 월평동 영주고 인근을 순찰하다 토굴 속에서 살고 있던 정모(47)씨를 발견했다.
순찰중 하천 아래에서 불에 타는 냄새를 맡고 그 흔적을 따라간 결과였다. 하천아래에서 남루한 행색의 한 남성이 토굴 안에서 끼니를 준비중인 것을 발견했다.
토굴 안에선 비닐로 둘러싼 간이침대와 돌을 쌓아 만든 아궁이도 있었다. 또 땔감용 나무와 신문, 칫솔, 비누 등이 널여 있었다.
부산출신인 정씨는 18살 시절 집을 나와 제주로 왔다. 하지만 일자리를 찾지 못해 10여년간 떠돌이 생활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다 15년 전 제주시 월평동 서낭당에서 술과 음식을 얻어먹고 난 뒤 주변 하천을 배회하다 이 토굴을 찾았다.
이 때부터 정씨의 '토굴살이 15년'이 시작됐다.
정씨는 고사리를 꺽어 먹거나 먹다 남긴 음식으로 끼니를 때우며 막노동판을 전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우선 정씨를 아라동주민센터에 넘겼다. 발견당시 정씨는 영양실조와 당뇨합병증으로 몸이 쇠약해질 대로 더 쇠약해 진 상태였다.
정씨를 담당한 아라동주민센터 임기숙 주무관은 "정씨에게 컵라면을 건네니 허겁지겁 먹으면서도 함께 준 쌀밥은 너무 오랜만이어서 먹기가 거북하다고 할 정도로 끼니를 거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또 임 주무관은 "정씨가 한번은 교통사고를 당해 뇌경색 증상을 앓았는데도 가해자의 말만 듣고 합의금으로 200만원 밖에 받지 못했다며 억울해 하는 모습을 보니 안타까웠다"고 전했다.
정씨는 제주대 병원에서 우선 건강검진을 받고, 아라동 주민센터에서 주선해 준 제주시 용담동에 일단 임시거처를 마련했다. 일단 5개월여의 거주비용을 제주도사회복지공동모금회 측에서 대납할 것으로 전해졌다.
정씨는 "많은 관심과 지원을 해줘서 너무나 고맙고 도와주신 분들에게 누가 되지 않도록 열심히 살겠다"고 전했다.
경찰은 "정씨가 아버지를 찾길 원해 신원확인 등을 통해 정씨의 가족을 찾겠다"고 전했다. [제이누리=박수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