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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정옥의 세상풍경(9) ... 제주감귤로 맺은 10년 인연의 역할

한라산에 눈이 쌓이면 백두산의 얼음을 생각하며 눈물짓는 이들이 있다. 바로 동토(凍土)의 땅을 탈출해서 따뜻한 남쪽 나라, 제주에 정착한 190여명의 북한이탈 주민들이다.

 

북한의 겨울은 만물이 얼어붙는 시기라 초근목피는커녕 찬물도 구하기가 어렵다. 수도관이 꽁꽁 얼고 강조차 얼어붙어 얼음을 녹이려 해도 땔감이 없다. 평양을 제외하곤 전기도 연탄도 끊긴다. 물과 불이 없는 집에 쌀이 있을 리 만무다. 겨울 추위에 배조차 곯으니 삶의 서러움과 쓰라림이 뼛속에 사무친다. 생명이 죽음보다 더 가혹한 저주로 느껴지는 곳, 저 북녘 땅처럼 냉혹한 삶터가 지상에 또 어디 있으랴.

 

이 세상에 사람으로 태어나면 먹고 사는 것뿐만 아니라 존엄하게 살아갈 권리가 주어진다. 바로 인간으로서 당연하게 누려야 할 인류 보편적 가치, 즉 인권(Human Rights)이다. 인권은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권리이므로 국가나 국제사회가 합의하고 승인함으로써 보장되고 발현되어진다.

 

이 때문에 지난 18일 유엔총회는 북한인권 상황을 국제형사재판소(ICC)에 회부토록 권고한  ‘북한인권 결의안’을 흔쾌히 통과시켰다. 이를 위하여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북한인권 상황에 관한 보고서’를 통해 국제사회는 북한의 중대한 인권침해 책임을 묻도록 요청하였다.

 

보고서에 의하면, 북한에서는 지난해 12월 장성택 처형 이후 대대적인 숙청이 이루어졌고, 탈북 후 북송된 사람들에 대한 처형과 고문 등 박해가 극도에 달했으며, 식량권․건강권 및 아동․여성․장애인의 권리가 생명을 위협하는 수위까지 추락하였다.

 

사실, 김정은 정권이 들어선 후 북한의 인권실태는 나날이 악화일로를 치달아 왔다. 사법기관에 끌려간 후 생사를 알 수 없는 행불자들이 계속 늘어나고 있으며, 구속된 주민들에 대한 고문만행도 더욱 잔인해지고 있다. 마치 북한 사회가 거대한 감옥을 방불케 하는 형국이다. 고문과 공개처형, 살인과 몰살, 강제적 실종, 강제 낙태와 성폭력, 정치범 수용소의 인권유린 행위, 최고의 영유아 사망률 등 북한 최고위층의 정책에 따라 자행된 ‘반인도적 죄악의 실상’이 널리고 또 널려져 있다. 탈북자의 70~80%가 여성인 것은 북한의 인권 실태와 경제 위기의 실상을 보여주는 방증이다.

 

최근 들어 미국의 소리(VOA)에 보고된 국제사회의 반응을 보면, 특히 강제수용소와 연좌제에 의한 가족처벌, 강제 낙태 등 북한의 인권상황은 ‘전적으로 개탄스럽다’는 평가다. 심지어 공산주의체제를 경험한 동유럽의 슬로바키아조차도 북한 당국자들과 정치적 대화를 나눌 때마다 인권문제를 거론해 왔으며, 인권기록이 개선돼야 번영도 따를 것임을 누누이 강조할 정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의 북한인권 관련 법안은 2005년 국회에서 처음 발의된 이래 10년 동안 ‘계류중’이다. 대한민국 국민 과반수가 북한정권의 반발과 무관하게 북한인권법이 제정되기를 바라마지 않는데도 말이다. 이러한 바람의 근저에는 헌법제정 이래 오늘날까지 일관되게 우리의 헌법 제3조가 대한민국 영토를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규정하고 있으며, 대법원이 ‘북한 주민도 헌법상 대한민국 국민’을 천명한 판결이 실재한다. 요컨대 한반도상의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지니므로 대한민국은 마땅히 북한주민의 기본권 보장을 위해서도 노력해야 할 의무가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때에 제주도정이 새삼  ‘북한 감귤 보내기를 검토중’이라 한다. 제주도는 1998년 12월부터 2010년 2월까지 총 12회에 걸쳐서 약 4만 8천 톤의 감귤을 보냈다. 이는 남북관계에서는 유일하게 지방자치단체와 민간단체가 한마음이 돼서 추진한 민관협력 대북지원 사업의 선례다. 동시에 '세계 평화의 섬'인 제주도가 솔선하여 대북 인도적 지원에 앞장서서 통일기반을 다져 나간 모범이기도 하다. 이에 대한 반응으로 북한은 제주도민 대표단의 방북을 초청하였고, 2002년 4월부터 2007년까지 네 차례에 걸쳐서 835명의 제주도민들이 대거 북한을 방문하기에 이르렀다. 다른 지역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파격적 이벤트로 ‘한라에서 백두까지’라는 구호를 평화통일의 캐치프레이즈로 명문화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그런데 이 역사적 사건이 발산하는 북한의 특별한 호의를 뒤쫓다 보면 1991년 4월 중문에서 이루어진 노태우 대통령과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한·소 정상회담이 눈에 띈다. "양국은 한반도의 냉전 종식을 위해 북한의 개방 등 필요한 노력을 공동으로 촉진한다"며 미소 짓는 두 정상의 건배사가 한반도 평화의 서곡으로 울려퍼졌다. 중국 장쩌민, 미국 빌 클린턴, 일본 하시모토 류타로와 고이즈미 준이치로 등 세계 정상들이 후속 제주 방문은 '평화의 섬'을 연주한 릴레이 바통이었다.

 

하지만 정작 북으로 간 감귤은 ‘장군님의 충성 선물’로 둔갑했다. 노동당 간부와 군 고위층, 그리고 평양의 일부 시민들에게만 전달됐다. 원래 그 감귤의 수취인인 북한 주민들은 노란색 껍질조차도 구경을 해보지 못했다. 소문으로만 듣던 감귤을 제주에 와서 직접 맛보고, 좀 더 일찍 접하지 못한 이유를 알게 된 제주 거주 북한이탈주민들의 고백이다. 말하자면 그동안 북한으로 올라간 제주감귤은 과일을 제대로 맛보지 못하는 북한주민들에게 최상의 비타민 C를 공급해 주기 위한 인도적 차원의 사명을 다하지 못한 셈이다.

 

바야흐로 감귤 인심도 훈훈한 온정의 계절이다. 그러나 감귤이 ‘한라에서 백두’를 잇는 통일의 비타민이 아니었음을 알게 된 지금, 제주도는 북한 인권문제에 대해 더 이상 침묵하지 말아야 한다. 내년 5월의 제주포럼에 북한을 초청한 원희룡 지사가 남북한 교차관광뿐만 아니라 북한의 인권에 대해서도 이제는 관심을 표명할 때가 됐다. "제주도는 북한과 신뢰기반을 갖고 있어 언제든 북측과 가슴을 열고 대화하겠다"는 원 지사의 결의 속에서 북한 인권의 진정한 개선을 기대해 본다.

 

감귤 보내기와 제주도민 방북이 우리 제주만이 구축한 대북 교류협력의 노하우이자 정녕 북한과 쌓아온 신뢰의 산물이라면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다. 그 신뢰의 길을 다져온 제주감귤의 10년 북한 사랑이 북한주민의 얼어붙은 인권 위에 따뜻한 봄바람으로 녹아들기를 소원한다. 북한인권에 대해 훈수 둘 수 있는 평화의 메신저가 바로 제주감귤이기를 요구한다.

 

다만 이제부터는 북한 내 감귤의 배달경로와 투명성을 확인하고, 그게 전제되지 않는 한 북한에 대한 신뢰성도 없음을 분명히 밝히는 제주도정이 되어야 할 것이다. ‘제주’ 하면 ‘따뜻한 곳, 평생에 꼭 한 번은 구경 가고 싶은 곳’으로 그려진다는 북한주민들에게 감귤은 단순한 지원물품이 아니라 통일의 가교요 삶의 희망이리라.

 

새해에는 단절된 제주감귤의 북한행이 속히 재개되기를 기원한다. 동시에 40년간 제주인의 생명이 되어 온 감귤이 어렵사리 목숨을 이어가는 북한주민들에게 생명의 과일로 선사되기를 기도한다.
 

 

☞허정옥은?
=
서귀포시 대포동이 고향이다. 대학 진학을 위해 뭍으로 나가 부산대학교 상과대학에서 회계학을 공부하고 경영대학원에서 석사과정을 마친 후 미국 볼티모어시에 있는 University of Baltimore에서 MBA를 취득했다 주택은행과 동남은행에서 일하면서 부경대학교에서 경영학 박사학위를 이수했고, 서귀포에 탐라대학이 생기면서 귀향, 경영학과에서 마케팅을 가르치면서 서귀포 시민대학장, 평생교육원장, 대학원장을 역임했다. 2006년부터 3년간 제주국제컨벤션센터(ICC JEJU)의 대표이사 사장과 제주컨벤션뷰로(JCVB)의 이사장 직을 수행했다. 현재는 서울과학종합대학원에서 서비스 마케팅과 컨벤션 경영을 가르치고 있다. 한수풀해녀학교 2기를 수료했으며, 언젠가 해녀가 되어 서귀포바다를 얼싸안고 살아가고 싶은 게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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