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괘(隨卦) 수(隨), 사이좋게 지내다, 유순하다, 뜻대로 하다, 생각대로 하다, 감각에 따라 가다, 임기응변하다 뜻이다. 일할 때 융통성 있게 하고 너무 고집 부리거나 너무 보수적이지 말라고 교도한다. 너무 고집부리면 자기 길을 막게 되고 스스로 돌로 자기 발을 찍게 된다. 독선적이면 어떻게 하여야 할까? 달의 흐리고 맑음과 차고 이지러짐에 따라 바닷물은 만조, 간조가 된다. 철새는 계절 변화에 따라 이동하고 번식한다. 국가 정치는 민의에 따라야 하고 과학을 따라야 하고 진리를 따라야 한다. 옛 사람은 천시, 지리, 인화를 중히 여겼다. 어떤 일이든 하늘의 이치, 자연의 법칙을 따라야 했다. 지리에 순응하고 사람을 따라야 했다. 그러면 쉬이 성공하였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이와는 상반되게 행했다. 흑백, 시비곡직도 묻지 않고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하며 자기 의견만을 고집하였다. 끝내 여지없이 참패당했다. 우회하면서 시간을 헛되이 낭비하였다. 실로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많았다. 특히 지금 청소년 세대는 예전과는 완전히 다르다. 곳곳에서 기존의 규칙에 도전한다. 왜 그럴까? 마음이 들썽하고 공허하고 삶의 목표가 없어서다. 자신을 지탱할 균형점을 찾지 못해
◆ 예괘(豫卦) 예(豫)는 즐거움, 화기애애하다, 화락하다 뜻이다. 우리는 즐겁게 살아야 한다. 곤란에 처했더라도 쓰러져서는 안 된다. 곤경이 우리에게 고개 숙일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 적극적, 열성적으로 즐거움, 낙관을 추구하는 인생관을 향락주의와 동등하게 봐서는 절대 안 된다. 진정한 즐거움은 완강하게 필사적으로 싸우는 데에서 온다. 타인을 돕는 데에서 온다. 쾌락을 추구하면 어떻게 하여야 할까? 고생을 낙으로 삼는 사람이 있다. 만족할 줄 알고 항상 즐겁게 살며 고생 속에서 즐거움을 찾고 고생을 낙으로 여긴다. 스스로 기쁨을 느끼며 자기 혼자서 즐기는 사람도 있다. 미소로 참담한 인생을 대면하는 사람도 있다. 묵묵히 희생하는 것을 긍지로 여기는 사람도 있다. 부지런히 농사짓는 것을 행복으로 여기는 사람도 있다. 어떤 일을 특별히 좋아하여서 거기에 몰두하거나 탐닉하여, 낙이 있으면 고생도 있다고 생각하며 살아가는 사람도 있다. 즐거움, 기쁨, 행복은 본래 좋은 것이다. 그런데 과도하게 기쁨을 추구하면 나쁜 것으로 변한다. 즐긴다는 것, 즉 즐거움은 양날의 칼이다. 즐기면 즐길수록 유쾌해지는 사람은 성공의 길로 나아가게 된다. 즐거움이 슬픔으로 변하는 사
사람은, 재능이 있는 사람은, 재능이나 포부를 드러내지 말아야 한다. 모든 일에 요란하게 떠벌이거나 기세등등해서는 안 된다. 효과적으로 자신을 보호할 바에야, 충분하게 자기 재능을 발휘할 수 있는 바에야, 맹목적으로 교만하고 우쭐대는 이상심리를 배제하고 이겨내고 더더욱 겸허하고 양보하는 미덕을 길러야 한다. “꽃은 반쯤 피었을 때, 술은 반 정도 취했을 때가 좋다.” 그렇지 않은가. 모든 꽃이 활짝 피어 아름다울 때면 사람들에게 꺾이거나 시들기 시작한다. 술에 만취하면 좋은 꼴을 보이기 어렵지 않던가. 인생도 이와 같다. 뜻이 이루어져 득의만만할 때 의기양양해 거드름을 피우거나 안하무인이 되어서 저밖에 없다고 뽐내서는 안 된다. 그렇지 않으면 타인에게 과녁이 되기 쉽다. 어떤 출중한 재능과 지혜를 가지고 있던지 간에 명심하여야 한다 : 자신을 굉장히 뛰어나다거나 지극히 빼어나다고 여기지 말라. 구국제민의 성인군자인 것처럼 오만방자해서는 안 된다. 칼끝을 거두어들이고 꼬리를 오므리라. 겸허하게 사람을 대하라. 옛날에, 칼끝을 너무 드러내 화를 입은 전형이 있다. 공로가 혁혁해 군주의 위세를 압도한 신하다. 강산의 주인이 되려고 다툴 때 각지의 영웅들은 한 장군
◆ 겸괘(謙卦) 『설문』은 풀이한다. “겸(謙)은 경(敬)이다.” 겸허해야만 다른 사람의 경모하는 마음을 얻을 수 있고 다른 사람의 환영과 신뢰를 받을 수 있다는 말이다. 겸허는 사람을 진보하게 한다. 겸허는 다른 사람의 장점을 받아들일 수 있게 한다. 자신의 결점을 고칠 수 있게 한다. 자만하여 자신의 처지를 잊어버리면 어떻게 하여야 할까? 사람들은 자주 ‘득의망형(得意忘形)’을 이야기한다. 득의양양할 때 자신의 본모습을 잊고 자아를 잃어버려 바른 길에서 벗어나는 것을 가리킨다. (원래 ‘득의망형得意忘形’이란, 뜻을 얻어 자신의 형체마저 잊어버리다 뜻이다) ‘득의망형’의 전고는 이렇다. 동진(東晉)시대 완적(阮籍)은 걷잡을 수 없이 방탕하였다. 시와 문장에 능했다. 어떤 때에는 집에서 공부하면서 수개월을 은거하며 밖에 나오지 않기도 했다. 어떤 때에는 산수 간에 놀며 즐기면서 열흘이나 보름을 집에 돌아오지 않기도 했다. 즐거울 때는 정신 나간 사람처럼 행동하였다. 너무 흥분하여 모든 것을 잊어버렸다. 심지어 자기 자신이 어떻게 된지도 모를 정도였다. 까마귀가 득의망형 할 때는 자기 입에 물고 있는 고기를 떨어뜨려버려 늑대가 대신 먹어버릴 정도다. 모기가 득
화교 제일 부자 이가성(李嘉誠)은 처음에 합성수지 사업에 투신하였다. 자신의 합성수지 공장을 장강(長江)이라 명명하였다. 나중에 합성수지 공장을 팔고 부동산업에 뛰어들었다. 회사이름도 장강부동산회사라 지었다. 나중에 사업이 확대되자 이름을 장강실업이라 했다. 사업 영역이 어떻게 변하였든지 간에 이가성은 ‘장강’이라는 명칭에 깊은 애정을 가졌다. 이가성은 말했다. “장강이라 이름을 지은 까닭은 개울물도 마다하지 않는 이치1)를 장강이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장강처럼 활달한 흉금을 가지고 난 다음에야 개울물을 받아들일 수 있을 것입니다. 작은 개울물이 없다면 어찌 장강을 이룰 수 있겠습니까? 그런 드넓은 가슴을 가지고 있어야만 스스로 교만하지 않게 되고 자신이 ‘최고’라고 여기지 않게 됩니다. 다른 사람의 장점을 인정하게도 되고 타인의 도움을 얻을 수 있게도 됩니다. 이것이 옛사람이 말했던 ‘포용할 줄 알면 크게 된다’는 도리입니다. 예를 들어 현재 많은 사람이 나를 대신하여 일하지 않는다면 내가 삼두육비(세 개의 머리와 여섯 개의 팔을 가짐, 신통력 있는 사람)라 할지라도 그렇게 많은 일에 대응할 방법이 없게 됩니다. 그렇기에 사업을 성취하는 데에 가장 중요
◆ 대유괘(大有卦) 대유(大有)는 대단한 풍작, 대풍년이다. 화천대유(火天大有)는 하늘 가운데 붉은 해가 높이에서 비추며 만물에 혜택을 준다. 천하의 모든 사람이 함께 경축한다. 초목이 무럭무럭 자라서 무성하다. 큰 과일이 주렁주렁 열린다. 향기가 날아 흩어져 사방에 진동한다. 오만하면 어떻게 하여야 할까? 사업 발전이라는 큰 길에서 가장 금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 자고자대, 즉 거만하고 자만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자기를 잃어버리고 군중을 잃어버린다. 전진할 동력을 잃어버린다. 『주역』은 말한다. “어렵게 여기면 허물이 없을 것이다.” 창업 초기에는 크게 수확할 가능성이 많지 않다. 그때는 더욱 경계하고 방비한다. 지난날을 회상하고 여러모로 앞날을 생각한다. 앞뒤를 재며 출로를 찾는다. 잘못해 굶주릴까 염려하고 실패할까 두려워한다. 교만 떨다가 실수를 저지르는 데까지는 이르지 않는다. 사업이 발전하면서 여러 성취를 얻기 시작하면 더 향유하려 하고 안일한 생활을 하려 한다. 투지를 잃어버리고 마음이 들뜨기 시작한다. 자만해 자신의 처지를 잊어버리고 군중에게서 멀어지기 시작한다. 그렇게 아주 쉽게, 자신이 부족하다는 것을 노출시키면서 타인에게 약점 잡혀 코
◆ 동인괘(同人卦) 동인(同人)은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것이다. 모이면 교류하여야 한다. 교류하여야 이해할 수 있다. 이해하여야 일치된 의견을 이룰 수 있다. 서로 한데 뭉치고 단체에 융합되어 들어가니 조화를 이루고 행복이 충만하다. 혼자 서서 홀로 가면 어떻게 하여야 할까? 강하의 물은 물결을 일으키며 세차게 흘러가니 대단히 도도하다. 시내 물은 졸졸 흐르니 온화하고 조용하다. 큰 강과 시냇물은 기세 상으로 보면 도무지 맞지 않아 서로 배척할 것 같은데 결국에는 서로 손잡고 ‘같은 큰 가정’으로 유입된다. 사람이 늑대를 말하면 머릿속에서는 흉악하고 잔인하며 사람을 위압하는 대단한 기세를 가진 모습을 떠올리게 된다. 그런데 예부터 지금까지 사람이 외경하는 동물인 늑대는 여태껏 오랫동안 흥성하며 생존해 왔다. 늑대 대가족은 견줄 상대가 없는 응집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단결, 맞붙어 끝까지 싸우는 끈기, 향상능력, 간담상조, 생사고락을 같이하는 정신을 가지고 있다. 얼음은 딱딱하다. 굳어있다. 여러 얼음조각을 한 곳에 놓아두면 어찌 두더라도 같이 융합되지 않는다. 그런데 그것을 녹여 물로 만들면 자동으로 일체가 된다. 어떤 격의도 없이 매우 친밀한 친우가
길이 개통되고 오래 지나면 노면은 훼손되기 마련이다. 통행이 불편하다. 장애다. 그러면 다시 고치면 된다. 완전하게 만들면 다시 잘 통하게 된다. 이게 계속 되풀이 된다. 한 바퀴 돌고 다시 시작하듯이 계속 순환한다. 인생의 길과 우리가 밟고 가는 길이 무슨 차이가 있는가? 그렇기에 어둠이 도래할 때 비관하지 말아야 한다. 실망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 마음을 잠시 늦추고 자기 정서를 다시 정리하여야 한다. 모든 사념과 잡념을 버리고 일심으로 순조롭게 통할 수 있는 방향을 찾아 전진하여야 한다. 겨울이 왔다고 봄이 더 멀리 있는 것이 아니잖은가? 아르키메데스가 말하지 않았는가. “내게 충분히 긴 지렛대와 서 있을 장소만 준다면, 내가 지구를 움직여 보겠다.” 생활이나 직업에나 애정에 있어 우리에게 충분한 지렛대만 주어진다면, 가장 최상의 처리 방법이 제공된다면 우리는 무슨 일이든 완전무결하게 해낼 수 있다. 그런데 완전무결이란 존재하는가? 지구를 들 수 있을 만큼 긴 지렛대를 찾을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우리는 모든 것을 완벽하게 막힘없이 잘 통하게 만들 방식이나 수단을 찾을 방법이 없다. 그렇게 본다면, 큰 규율의 문제에서 위인도 바꿀 방법이 없는데 하물
◆ 비괘(否卦)(1) 비(否)는 좋지 않다, 불가하다, 불만, 불선의 뜻이다. 좋지 않은 길은 바로 가로막힐 수 있다. 가로막히면 곳곳이 통하지 않는다. 뜻하지 않은 일도 천지를 뒤엎을 기세로 다가온다. 앞길은 깜깜하게 된다. 중요한 길에서 한 걸음 잘못 나아가면 곳곳이 장애다. 그리하여 조급해지고 불안해지며 견디지 못할 정도로 피곤하게 된다. 그렇기에 분투하는 과정에서 때때로 생각하여야 한다. 일마다 숙고하여야 하며 끊임없이 자기의 앞길을 위하여 넓고 평탄한 길을 닦아야 한다. 막다른 골목으로 들어가는 것은 안 된다. 그렇게 해야 운무를 거둬낼 수 있고 때가 되어 좋은 운이 돌아오게 되면서 내내 막힘없이 잘 통하게 된다. 그러면 마음 편안하고 무사태평한 희열을 향유하게 된다. 진퇴유곡에 빠지면 어떻게 하여야 할까? 사람에게는 슬픔과 기쁨, 이별과 만남이 있다. 달에는 흐리고 맑고 차고 이지러짐이 있다. 비관에 빠졌을 때, 헤어졌을 때, 우리 마음이 검은 구름에 휩싸였을 때에 어떻게 하여야 할까? 『주역』은 말한다. “비는 사람 같지 않은 사람이니, 군자가 올바름을 지키기에는 이롭지 못하다. 큰 것이 가고 작은 것이 올 것이다.” 순조롭지 못한 것이나 장애는
노신(魯迅)은 『고향』에서 이렇게 썼다 : 낡고 허름한 집이 내게서 더 멀어졌다. 고향의 산수도 점점 내게서 멀어져 갔다. 그런데 나는 떠나기 서운한 어떤 미련도 느끼지 못했다. 나는 내 사방에 보이지 않는 높은 담벼락이 있는 것을 느낄 뿐이었다. 나를 혼자 격리시키고 있어서, 나를 무척 답답하게 만들고 있었다. 그 수박 밭의 은 목걸이의 작은 영웅의 형상을 나는 원래 명확하게 알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갑자기 모호해 졌다. 그게 나를 무척 슬프게 했다. 노신이 묘사한 이런 짙게 깔린 참담, 냉담, 비애의 광경은 정말 사람을 질식시킨다. 도대체 왜 그럴까? 세태염량, 유수 같은 세월, 풍물은 여전한데 이미 변해버린 인간사, 소통의 정지 때문이다. 물론 진부하게 변질된 봉건왕조도 그렇다. 인간에게 소통이 없다면 얼마나 무섭게 변할 것인가를 알 수 있다. 침묵은 금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하지만 침묵을 유지하면 벙어리나 겁쟁이가 되어 버린다. 사람의 마음은 뱃가죽을 사이에 두고 있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외곬로만 방비한다면 우리 마음의 벽은 더욱 높아질 뿐이다. 세상은 각박하다, 사람 마음은 헤아리기 어렵기
◆ 태괘(泰卦) 태(泰)는 지극히 큰 것이다. 지극히 크면 안정을 얻을 수 있다. 안정은 행복과 아름답고 원만함을, 화목 단결을, 번영 부강을 가져온다. 안정을 원하거들랑 반드시 소통하고 성심으로 신용을 지키며 사람을 대하라. 그러면 이해가 증진된다. 유무상통(有無相通), 있는 것과 없는 것이 서로 융통한다. 교류에 능하지 못하면 어떻게 할까? 사람은 군집생활을 하는 동물이다. 군집생활은 서로 협조하여야 하고 서로 어울려야 하며 교류하고 소통하여야 한다. 소통은 마음의 문을 열어야 한다. 성심으로 사람을 대해야 한다. 용감하게 자아를 드러내고 자신을 분석하여야 한다. 가까운 사람과 친구에게 자신을 더 이해시키고 믿게 하고 관심을 보이게 하고 깊이 사랑하게 하여야 한다. 오늘날은 경쟁의 시대다. 국가와 국가 간에 다투어 발전하는 시대다. 그렇기에 소통을 더 강화하여야 한다. 어디에서나 소통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주역』은 말한다. “태, 작은 것이 가고 큰 것이 오니 길하여 형통할 것이다. 천지가 교합해 만물이 소통되며 상하가 교합해 그 뜻이 같다.” 무슨 말인가? 사람 마음이 크면 순조롭게 왕래하고 교류에 능숙하다. 인간관계가 순조로우면 부유해지고 운
◆ 리괘(履卦) 리(履)괘는 조심하게 행동하는 것을 상징한다. 호랑이 꼬리 뒤를 따라 길을 가는데 호랑이는 고개를 돌려 사람을 물지 않는다. 당연히 형통하고 순조롭다. 이 괘는 사람의 실천은 반드시 행위 준칙을 따라야 한다는 것을 밝히고 있다. 조심하고 신중하며 겸손하고 예가 있어야 하며 행위에는 법칙이 있어야 한다. 하나라도 신중하지 않으면 사해에 우환을 남긴다. 한 순간도 신중하지 않으면 백년의 우환을 남긴다. 일의 마지막에 처음처럼 신중을 기하면〔신종여시(愼終如始)〕 망칠 일이 없다. 위험한 지경에 빠지면 어떻게 해야 할까? 『주역』은 말한다. “호랑이 꼬리를 밟아도 사람을 물지 않는다. 형통하다.” 호랑이는 양강(陽剛)의 동물이다. 호랑이 꼬리는 사람을 물지 않지만 호랑이 꼬리를 밟으면 위험하게 된다. 조심하게 행동해야만 비로소 ‘형통’하게 된다. 어디에서든지 조심하게 행동하라는 말이다. 연못 위를 밟는 것과 같다. 주의하지 않으면 빠지게 된다. 군자는 대의를 잘 알아야 한다. 예의를 따라 행하면 분명코 질서가 정연하게 된다. 이괘는 행위 준칙을 따라서, “신을 섬기고 복을 얻는다.” 라는 것처럼 경건하고 정성스러워야 된다고 경고하고 있다. “본래 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