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죽은 자는 빨리 잊혀진다. 자기가 실존하고 있다는 것은 우리 현실 세계와 현재 교감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오래 살고자 하기 때문에 “남(他者)은 먼저 죽어도 내가 먼저 죽는다”는 사실을 전혀 실감하지 못한다. 사실상 죽음은 당위(當爲)이지만 사람들은 현실에서는 관심을 쓰기 조차 싫어한다. 일종의 회피다. 요즈음 죽음의 모습은 어떤가. 모든 망자에게 죄송스럽게도 장례는 놀라우리만치 상품 사회가 작동하는대로 마치 공장에서 제품을 다루듯 시간 타임에 따라 빨리 빨리 죽음이 처리된다. 이걸로 봐서는 모든 사람들이 오로지 자신만은 결코 안 죽으리라 생각하여 타자의 죽음에 대해서는 그리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사실은 한 사람의 죽음은 큰 일 중에 제일 큰 일이다. 그러나 죽음이 이상하게도 큰 일이면서 큰 일이지 않게 넘어가는 것을 보면 시대적인 간편 코스가 따라주기 때문이다. 온 세상이 돈에 미친 세상이지만, 시간이 돈이 되면서 시간을 되도록 적게 잡아야만 서로(의뢰자와 의뢰 받은 자)가 이익인 사회가 되다보니 미래에 자신이 죽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죽음이 남의 일처럼 가볍게 여기게 된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 보면, 과연 우리가 돈을 버는 이유가 뭘까? 우리의 삶의 목적은 무엇이었을까? 길어야 3일 만에 가까운 사람들이 자신 앞에서 사라진다. 엊그제까지만 해도 곁에 있었던 사람을 잃은, 눈물이 채 마르기도 전에 아침 이슬처럼 순식간에 잊어버리는 것은 공포에 다름아니다. 2. 산담, 사라지는 헤테로토피아 기념물 헤테로토피아(Hétérotopies)는 일종의 비밀스러운 장소의 바깥에 있는 유토피아다. 무덤 또한 장소 바깥의 공간이다. 주변 환경으로부터 고립되지만 열림과 닫힘이 있다. 무덤은 죽은 자만 기거하고 산담은 그들의 울타리 공간이었다. 거기에서는 금기가 적용되기 때문에 일종의 산 자들의 반(反)공간이 된다. 무덤은 비장소이기도 하다. 죽은 자와 산 자의 만남이 이루어질 때 열려 있지만 의례가 끝나면 다시 닫힌다. 즉, 의례만 치러지고 일상으로 복귀되는 소멸되는 공간이며, 이후 다시 반공간이 되기도 한다. 망자들에게는 유토피아이지만 산 자들에겐 지워지는 공간이었다. 육지의 민묘는 곡장 없이 한 구역의 산등성이를 타서 사성(莎城:흙두둑)을 하고 위계질서에 따라 묻힌다. 가족 공동체를 충실히 따르고 있다. 그러나 제주도는 오름 등성이나 밭머리에 산담을 하고 묻힌다. 산담은 제주 사람들의 개인이나 부부의 독립성을 보여주는 혼백의 집으로, 제주 문화의 이녘만썩(개인만의) 문화와 ᄀᆞᆸ가름(분배)의 문화를 잘 보여준다. 3. 산담, 죽음의 돌문화 제주의 문화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돌문화이다. 제주의 돌문화는 제주인의 오랜 역사적 조형물로서 제주사람들의 정신문화와 물질문화를 잘 담아내고 있다. 제주섬 자체가 거대한 돌로 된 타원형의 배처럼 남태평양으로 나아갈 듯한 형세다. 화산 섬의 풍토를 그대로 간직한 제주 섬은 현무암 석상의 보물섬이었다. 또한 제주섬은 사방의 돌로 막혀 있어 과거에는 천연 요새의 역할도 했다. 제주의 문화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끼친 제주의 돌문화는 크게 4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즉, 생산성, 생활성, 공공성, 종교성의 돌문화가 그것이다. 1) 기념비적인 산담이 쓰레기 취급을 당하고 불교, 무속, 도교(민간신앙) 등과 관련된 돌문화로서 동자복 미륵, 서자복 미륵, 포제단, 공덕비, 마애명, 갯당, 본향당, 미륵, 돌코냉이, 조천석 등이 있다. 이것들은 신앙행위나 의례행위와 관련이 깊었다. 유교의 돌문화는 단연 산담이 최고였다. 산담은 석물을 세트로 거느리고 있었는데 봉분을 중심으로 문석인(간혹 돌하르방 무석인), 동자석, 망주석, 상석, 비석, 돌잔, 토신단 등 산담 속의 돌문화 무리가 있었다. 지금은 그 세트가 비었고 케이스마져 위태롭다. 가장 먼저 동자석이 사라졌으며, 문석인, 망주석 다음으로 산담 차례가 왔다. 산담은 기념비성이 있어 집안의 자랑으로써 위세로 삼았다. 벌써 아득한 소리가 돼버렸지만, 한때 조상을 숭배하고, 추앙하는 이념이 담겨 있어서 기념적인 가치를 뽐내기도 했었다. 조상을 잘 모시게 되면 그에 상응하는 은덕을 받는다는 것이다. 자손이 조상을 잘 모시면, 조상도 자손에게 잘 되게 해준다는 것이 동기감응이라는 풍수이론이다. 그러나 이제는 이 효성어린 기념비도 수명을 다해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있다. 산업이 바뀌면서 일찍부터 혐오시설이 되더니 장묘제도가 달라지면서 화장을 한 후 평장이나 수목장을 거행하고 있다. 산담은 이제 갈 길을 잃어버리고 오히려 처분을 기다리는 쓰레기 취급을 당하고 있다. 600년 전통이 너무나도 허무하게 하루 아침에 무너지고 있고, 산담의 가치를 아는 이 또한 없다. 가장 제주다웠던 제주의 뼈대가 잘려나가고 있다. 2) 죽음의 의례도 변해버린 장묘제도와 함께 사라지고 상·장례는 통과의례로서 매우 중요하다. 제주인들은 그것을 ‘큰일’이라고 한다. 장례문화는 오랜 역사와 전통이 있으나 제주에는 조선후기에 유교직 관혼상제가 집중적으로 장려되었고, 무속적 여성문화와 유교적 남성문화가 타협을 하게 되면서 영혼관, 의례에 깊이 습합되었다. 제주 상장제례의 독특한 의례나 형식을 간단하게 살펴보면 ❶토롱, 헛묘, 망사비 ❷까마귀 모른 식게, 식게밥 돌리기 ❸문전코시, 조왕코시, 칠성상 ❹귀양풀이 ❺팥죽쒀가기, 물부조 ❻철리와 철리터 방법 ❼토신제 지내기 ❽산테우리(상여매기, 봉분, 산담쌓기 하는 마을의 청년들), 암창개, 죽은 ᄒᆞᆫ서 등이 있었다. 그러나 그 누구도 이제는 이런 의례를 하지도 않고, 할 이유가 없어진 것이다. 산업의 변화는 무서운 속도로 지난 시간의 역사와 문화들을 파괴해 버린다. 이제 그 자리에 건물이 들어서고, 그 안에서는 자본주의 상품이 나날이 우리들에게 행복한 삶을 보장하겠노라고 드라마 광고가 메아리친다. 4. 무덤과 산담 무덤, ‘주검을 묻은 공간’이다. 산 사람을 그대로 묻는 것을 생장(生葬)이라고 한다. 인류의 출현에서부터 이 무덤의 역사는 시작된다. 무덤의 형태는 지역이나 풍토, 생사관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등장했다. 제주에서 무덤은 산이라고 부른다. 이 산은 산처럼 봉긋한데서 이름을 붙인 것이다. 육지에서는 이 산을 산소, 봉분, 묘소, 분묘 등으로 부른다. 제주에서 부르는 ‘산(山)’은 중국 진제국 때 이미 ‘산’이라고 부른 사례가 있다. 이후 후대의 제왕들이 분묘는 모두 ‘산릉(山陵)’이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그 산릉의 다른 말이 산이다. 제주에 이 용어가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이 신기하다. 그렇다면 ‘산’이라고 부르는 봉분은 어떤 이유에서 만들었을까? 봉분을 만든 이유에 대해서는 크게 세 가지로 말할 수 있다. 첫째가 무덤을 보호하기 위함이며, 둘째가 장식하기 위함이고, 셋째가 기념물로 삼기 위함이다. 제주의 ‘산’인 경우, 육지처럼 흙더미(莎城)로 무덤 뒤쪽을 병풍처럼 두르지 않고 무덤에 돌담을 두른 것이 다르다. 이 돌담을 ‘산담’이라고 하는데, 산담은 과거 제주 지역의 산업이 목축이 주류였다는데서 무덤보호를 위해서 비롯된 것이다. 들에 마소들이 ‘산’을 파헤치지 않게 하기 위해 만든 것이다. 또한, 야화(野火)가 번지거나, 경작지가 침입되는 것을 막는 것 또한 무덤의 보호라는 측면이 강했다. 무덤의 장식은 산담의 형태나 조형적인 요소, 망주석, 동자석, 문석인, 돌잔 등 석물을 설치한데서 알 수 있다. 산담의 규모, 석물의 설치에서 알 수 있듯이 가문의 경제력을 보여주는 것이다. 무덤의 기념비성은 비석에 묘주(墓主)의 행적, 벼슬이나 품성, 가족의 계보 등의 기록에서 가문의 자랑과 위엄을 나타내거나 그의 위세를 알리고자하는 무덤 치장이라는 장식적인 측면, 즉 사회적으로 과시하고 있다는 것을 엿볼 수가 있다. 물론 옛 이야기지만. 무덤은 인류의 역사를 밝히는 중요한 고리다. 우리가 현재 누리고 있는 많은 수의 유물은 무덤에서 출토된 부장품이다. 이런 유물들은 ‘명기(明器)’라고 하는데 죽은 자를 위해 사후 세계에서 그 물건을 쓰도록 한데서 비롯되었다. 고대에는 이 명기 말고도 산사람까지 함께 묻었다. 이런 순장(殉葬)에는 왕의 후궁들이나 그의 종들이 많았다. 후궁들에게 생존 시에 많은 부귀와 특혜를 주는 것은 왕이 죽으면 산사람들이 같이 무덤에 가는 조건에서였다. 5. 산담, 사자(死者)를 위한 산자(生者)들의 상징 온 섬에 뒹구는 제주의 돌은 신의 선물일까 아니면 재앙일까? 농부의 일손을 더디게 할 때는 잠시 재앙이 되지만, 돌이 이처럼 흔치 않았다면 사람과 짐승의 집은 물론 죽은 자의 영혼이 쉴 무덤 또한 제대로 지을 수 없었을 것이다. 제주 사람들은 돌로 울타리를 세운 집에서 태어나 평생을 살다가 죽으면 다시 돌담이 둘러쳐진 무덤에 누웠다. 그렇게 돌은 제주사람들의 삶과 죽음 모두에 깊숙히 관여해 왔다. 제주 곳곳에서 볼 수 있는 돌담 가운데 무덤을 둘러싼 돌담을 ‘산담’이라 부른다. 산담은 여러 용도의 돌담 중 유독 신성시되는 것으로, 무덤 속 혼백을 보호하기 위한 울타리이자 영혼의 집임을 표시하는 경계선이기도 하다. 산담은 한 줄로 쌓은 외담과 겹줄로 쌓은 겹담으로 나뉘는데, 외담은 다시 모양에 따라 원형 산담과 도토리 모양의 산담, 사각형 산담으로 구분된다. 그리고 무덤 뒷부분을 좁게 조성한 사다리꼴의 겹담도 있다. 산담에는 영혼이 다니는 신문(神門)인 ‘올레’를 둔다. 올레는 제주에 5개가 있다. 산자들의 골목에 해당하는 집올레, 잠녀들이 바다로 가는 바당올레, 신당으로 가는 당올레, 전설 속에 나오는 해저의 길목 용궁 올레, 그리고 혼백이 사는 집인 산담 올레가 그것이다. 올레는 산담 좌측 혹은 우측에 약 40~50cm 정도의 너비로 사이를 터놓은 영혼의 출입 통로를 말한다. 그리고 그 터진 공간 위에 긴 돌 1~4개를 올려놓아 마소나 사람의 출입을 통제한다. 필자는 20년 전에 올레 사이를 가로질러 놓은 긴돌을 ‘정돌’이라고 명명했다. 정돌의 의미는 집올레의 정낭을 빗대어 부른 것이다. 예를 들어 집올레의 정낭이 말의 키 크기에 따라 1~5개를 걸쳐 놓은 것이라면 산담의 올레 또한 너비에 따라 1~4개까지 긴 돌을 걸쳐 놓은 것에서 유추한 것이다. 산담의 너비에 따라 정돌의 숫자가 다르게 된다. 올레의 방향이 좌우로 나뉘는 기준은 무덤 주인의 성별이다. 남자의 무덤은 망자의 시점에서 볼 때 좌측에 만들고 여자는 우측에 만들며, 합묘인 경우 남자를 중심으로 좌측에 만든다. 간혹 산담 앞쪽에 올레를 만든 사례도 있으며, 쌍묘에서는 특별히 좌우 양쪽에 올레를 내는 경우도 있다. 산담은 원래 밭머리가 아닌 들판에 있었고, 바로 그 때문에 들불놓기로 인한 소실, 또는 마소 등 짐승의 침입으로부터 무덤을 보호하기 위해 필요했다. 하지만 들판이었던 땅이 점차 경작지로 변하면서 밭머리에 위치하게 된 것이다. 물론 친인척에 의한 관리의 편의성을 도모하기 위해 밭 한쪽에 무덤을 만들고 산담을 조성했다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아무리 인가(人家) 근처에 있더라도 산담의 돌은 어느 누구도 함부로 손댈 수 없는 터부의 대상이다. 타당한 이유나 정해진 날 외에는 허락 없이 산담을 함부로 들어가서는 안 되었다. 그러나 예외는 있었다. 먼 길을 가는 나그네가 길을 잃었을 때에 한해서는 산담 안에 들어가 잠을 자면 무덤 속 영혼이 보호해 준다고 믿었다. 산담에는 일반 돌담과는 달리 돌을 다루는 제주 사람들의 기술을 가늠할 수 있는 품격이 다른 조형적 미학이 배어 있다. 그 조형성을 간단히 정의하면 ‘한국적인 선의 미학’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가령 한국의 기와집은 처마의 선이 좌우로 갈수록 부드럽게 하늘을 향해 들려 있어 마치 가볍게 날아오를 것 같은 리듬감을 느낄 수 있다. 산담의 선도 이와 유사한 아름다운 리듬감을 보인다. 이는 사람들의 본능처럼 물에 뜨도록 직선보다는 양쪽을 살짝 들어 올려서 부드럽게 파도를 타는 듯한 형태가 되는 것이다. 산담 측면에서 보면 높이가 낮은 산담 뒤쪽에서부터 천천히 내려올수록 위를 향해 들리듯 올라가면서 앞쪽 좌측 끝에 오면 담장의 각은 하늘을 향해 살아나 유연한 선을 그리며 올라가서 멈춘다. 이 선이 산담 좌측에서부터 중앙으로 이동할수록 서서히 잠기듯 낮아지다가 반대편 우측 끝으로 갈수록 다시 같은 방식으로 살아나서 좌측 끝과 대칭을 이룬 듯 멈춰 선다. 더 나아갈 수 없이 살짝 멈춰 버린 산담의 선은 바라볼수록 유연하여 자연스럽다. 혼백의 심부름꾼 동자석 산담 안에 세우는 동자석은 이름 그대로 어린 남자 또는 여자아이의 모습을 하고 있다. 동자석은 여러 기능으로 죽은 이의 영혼을 위해 예를 갖춘다. 그중에는 숭배적 기능, 봉양적 기능, 수호적 기능, 장식적 기능, 교훈적 기능, 주술적 기능, 유희적 기능이 있다. 제주의 동자석은 내륙으로부터 온 여러 성씨의 입도 시조나 부임하는 목사(牧使), 제주 출신의 양반 토호나 유배객들에 의해 전파되었다. 하지만 제주 동자석은 불교적 색채가 미처 가시지 않은 채 약간의 지역적 특징만 더해진 내륙의 대다수 동자석들과는 사뭇 다르다. 유교 문화의 중심권인 한양 지역에서 잉태된 무덤 조각인 동자석이 멀리 남쪽 끝 변방인 제주까지 흘러오는 동안 각 지역의 독특한 풍습과 여러 신앙이 결합되고, 여기에 제주의 풍토와 사상이 더해지면서 매우 독특한 동자석으로 재탄생했다. 다시 말해 제주의 동자석은 불교, 무교, 도교 및 토속 민간신앙의 다양한 요소가 함께 어우러져 반영된 점이 특징이다. 제주의 동자석은 매우 친근한 정감을 준다. 특히 18세기 조선 영·정조대에 만들어진 동자석들은 눈이 크고 선이 부드러우며 보다 정교한 특징을 지녔다. 이는 육지 왕래의 영향이라고 볼 수 있다. 제주 사람들은 국상(國喪) 때마다 능역(陵役)을 지원하여 육지에 다녀온 적이 있다. 인조 재위 때인 1629년에 내려진 출륙금지령으로 인해 육지 출입이 쉽지 않았던 탓에 능역 자원 봉사는 제주 사람들이 육지로 나갈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그때 그들이 왕릉 조성 과정에서 보고 기억한 석상을 재현한 것이 지금의 제주 동자석이다. 문석인을 모방해 만든 것인데, 기술이 부족한 아마츄어 제주 장인들의 손에서 전혀 다른 형태의 석상으로 변모한 것이다. 그 결과 제주 동자석은 육지에서는 보기 드문 현무암을 사용해서 매우 다른 모습으로 만들어졌으며. 오늘날에는 고유의 단순미에서 우러나는 건강한 생명력으로 인해 제주의 매력적인 얼굴로 널리 사랑받고 있었으나 지금은 거의 도굴되었고 600년 산담마저 사라져가고 있다. 회복할 수 없는 제주 토착성은 역사속으로 잠기고 있는데 석상의 보물섬이 사라져 버리면서 전국 평균적인 획일적인 땅이 되버렸다.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김유정은? = 최남단 제주 모슬포 출생이다. 제주대 미술교육과를 나와 부산대에서 예술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미술평론가(한국미술평론가협회), 제주문화연구소장으로 일하고 있다. 저서로는 『제주의 무신도(2000)』, 『아름다운 제주 석상 동자석(2003)』, 『제주의 무덤(2007)』, 『제주 풍토와 무덤』, 『제주의 돌문화(2012)』, 『제주의 산담(2015)』, 『제주 돌담(2015)』. 『제주도 해양문화읽기(2017)』, 『제주도 동자석 연구(2020)』, 『제주도 산담연구(2021)』, 『제주도 풍토와 문화(2022)』, 『제주 돌담의 구조와 형태·미학(2022)』 등이 있다.
최근 채식은 MZ 세대를 중심으로 새로운 식생활 트렌드로 자리잡고 있다. 서양의 레스토랑에서는 채식 메뉴를 손쉽게 접할 수 있지만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채식주의자를 위한 메뉴를 따로 준비해 놓는 식당을 찾는 것은 어렵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도 채식 인구가 증가함에 따라 식품 회사에서는 채식 전용 제품을 생산하고 있고, 대형마트나 편의점에서 편하게 구입할 수 있다. 다이어트나 건강을 위해서 채식을 하는 경우가 많은데 최근에는 동물복지와 환경보존을 위해 채식주의를 고수하는 소비자들이 늘고 있다. 가축의 비윤리적인 사육 환경과 도축에 대한 거부감 또는 사육 과정에서 다량 발생하는 온실 가스를 줄이고 기후 위기에 대한 대응으로 일상에서 채식을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채식주의자(베지테리언, vegetarian)를 채소나 과일만 먹는 사람으로 아는 경우가 많은데 꼭 그런 것은 아니고 아래의 표와 같이 베지테리언에도 여러 단계가 있다. 우리가 흔히 채식주의자의 대명사로 알고 있는 비건(vegan)은 동물성 식품은 전혀 먹지 않는 엄격한 채식주의자를 말한다. 심지어는 동물성 원료가 들어간 화장품도 사용하지 않고 동물의 털로 만든 옷도 입지 않는다. 비건보다 더 엄격한 것이 프루테리언(fruitarian)인데 식물에 해를 끼치지 않는 부위인 열매 위주로 먹는다. 락토 베지테리언은 비건에서 우유나 유제품을 더 먹을 수 있고, 오보 베지테리언은 달걀은 먹는다. 락토-오보 베지테리언은 우유(유제품)와 달걀을 먹을 수 있다. 페스코 베지테리언은 생선과 조개류까지 먹을 수 있고, 폴로 베지테리언은 닭고기까지도 먹는다. 최근에는 상황에 따라서 육식을 하는 플렉시테리언도 늘고 있다. 완벽하게 채식을 하는 것은 매우 어렵기 때문에 채식하는 요일이나 날을 정해서 실천하는 플렉시테리언도 있다. [베지테리언의 단계] 비건은 동물성 원료가 들어간 식품은 전혀 먹지 않기 때문에 식품을 구입할 때 어떤 원료가 들어갔는지 꼼꼼히 신경 쓰게 된다. 그렇지만 콜라겐이나 젤라틴과 같이 원료명이 쓰여 있을 때는 그 원료가 동물성인지 식물로부터 얻은 것인지를 아는 것은 정말 어렵다. 우리나라에서도 채식 인구가 늘어남에 따라 비건을 위한 제품이 많아지고 있고, 비건 인증을 통해 소비자들로 하여금 안전하게 선택할 수 있게 하고 있다. 비건 인증기관에서 인증을 받으려면 동물에서 유래된 원재료를 이용하지 않고, 제품에 대한 실험이나 연구에 동물을 직간접적으로 이용하지 않아야 하며, 생산 시설을 비건이 아닌 제품과 공유할 경우 철저한 세척과 생산 시간 분리로 교차오염이 없어야만 한다. 수출을 할 경우에는 각 나라의 인증 조건을 따라야 하고, 수입식품은 우리나라의 비건 조건을 만족해야 인증을 받을 수 있다. 우유, 달걀 또는 생선을 먹는 선택적 채식주의자에게서는 큰 문제가 되지 않지만 엄격한 채식주의자인 비건은 장기간의 채식으로 인해 특정 영양소가 부족할 수 있으니 주의가 필요하다. 영양소 중 필수 아미노산, 필수 지방산, 비타민, 무기질(미네랄)은 우리 몸에서 만들 수 없기 때문에 반드시 식품을 통해 섭취해야 한다. 필수 아미노산은 주로 동물성 단백질로부터 얻을 수 있지만 식물성인 콩 단백질이 대신할 수 있다. 채식을 하더라도 콩, 견과류와 같은 다양한 식물성 단백질 공급원을 충분히 섭취해야 한다. 콩과 식물(대두, 검은콩, 렌틸콩, 병아리콩 등)과 견과류(호두, 아몬드 등)에는 단백질뿐만 아니라 필수 지방산도 많이 들어 있어 몸에 좋다. 최근에는 두부, 된장, 간장 외에도 콩에서 분리한 단백질로 만든 콩고기, 밀 글루텐으로 만든 밀고기, 버섯 단백질 등의 대체육이 제조·시판되고 있을 정도로 식물성 단백질의 공급원이 다양화되고 있다. 식물성 대체육에는 콜레스테롤이 들어 있지 않기 때문에 건강에도 도움이 된다. 필수 지방산과 대부분의 비타민, 무기질은 채식으로 충당할 수 있지만, 몇몇 비타민과 무기질은 부족할 수 있기 때문에 이것들이 많이 들어 있는 식물성 공급원을 찾아서 섭취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비타민 B12는 부족 시 악성빈혈, 식욕저하, 무력감 등이 올 수 있는데, 주로 육류 및 유제품에 들어 있기 때문에 채식을 통해 섭취하기는 쉽지 않다. 콩에는 비타민 B12가 거의 검출되지 않지만 된장이나 청국장 등으로 발효 과정을 거치면서 미생물에 의해 비타민 B12의 함량이 증가하므로 콩 발효식품의 적절한 섭취가 필요하다. 또한 비타민 B12는 김, 매생이, 청태 등에도 꽤 들어있기 때문에 해조류를 좀더 섭취하는 것이 좋다. 이외에도 효모를 발효시켜 생산한 비타민 B12를 영양제로 섭취하거나, 비타민 B12가 보강된 곡물이나 두유를 먹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무기질 중에는 철분이 부족할 수 있는데 빈혈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철분이 많이 들어 있는 콩류, 녹색 채소(시금치, 브로콜리 등), 견과류 등을 적극적으로 섭취해야 한다. 칼슘은 부족 시 골다공증을 야기할 수 있는데 식물성 식품인 두부는 좋은 공급원이다. 두부에는 칼슘과 마그네슘이 풍부하여 뼈와 근육 건강에 도움을 주고, 필수 아미노산도 충분히 들어 있어 채식주의자들을 위한 훌륭한 식품이다. 한편 비건과 할랄(ḥalāl) 식품을 비슷하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있는데 둘은 성격이 완전히 다르다. 우리나라에도 해외 유학생들과 취업자들이 많아 지면서 이슬람교를 믿는 무슬림을 쉽게 접하게 된다. 같이 식사하는 경우도 있는데 고기가 들어간 것은 전혀 먹지 않고 채식 위주의 식사를 하는 것을 보고는 무슬림을 채식주의자로 착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무슬림은 종교적인 이유로 할랄 식품만 먹을 수 있고, 할랄은 식품뿐만 아니라 화장품과 의약품에도 적용된다. 할랄은 ‘허용된 것’을 뜻하는 말로 이슬람 율법에서 허용된 원료를 사용해서 허용된 방식으로 만들어야 인정받는다. 할랄 식품에는 과일, 야채, 곡류, 어류, 우유 등이 포함되고, 소고기, 양고기, 닭고기는 이슬람의 도축 방식에 의해 얻어진 것만 허용된다. 이슬람에서 금지하는 돼지고기, 술, 동물의 피는 절대 먹어서는 안되고, 이것을 원료로 한 식품, 화장품, 의약품도 사용할 수 없다. 우리나라 식당에서는 이슬람 방식으로 도축한 고기를 쓰지 않기 때문에 무슬림들은 어쩔 수 없이 생선을 먹거나 채식을 하는 것이다. 무슬림들이 종교적인 이유로 할랄 식품을 먹는다면 그와 반대로 종교적인 이유로 할랄 식품을 반대하는 목소리도 존재한다. 하지만 전 세계 무슬림 인구가 약 20억명으로 세계 인구의 28.3%를 차지하고, 2023년 전 세계 할랄 식품 시장은 1조5000억달러(약 2000조원)로 전 세계 식품 시장의 약 17%를 차지할 정도로 할랄 식품은 무시할 수 없는 매우 큰 시장이다. 우리나라의 식품 회사들도 무슬림 시장 진출을 위해 다양한 할랄 제품을 개발하여 시판하고 있다. 할랄과 유사한 것으로는 유대인들을 위해 유대교의 율법에 따라 합당한 음식으로 결정된 코셔(Kosher)가 있다. 할랄 또는 코셔 식품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공인된 기관에 의한 인증이 필요하고, 수출을 위해서는 해당 나라에서 인증을 받아야 한다. 최근에 세계 최대 이슬람 인구를 가진 국가인 인도네시아와 할랄 상호인정협약을 체결하여 내년 10월부터는 우리나라 인증기관에서 인증한 할랄 식품을 별도의 인증 없이 인도네시아로 수출할 수 있게 되었다. 건강을 위해서, 동물 보호와 환경 보전을 위해서 또는 종교적인 이유로 채식주의자가 되거나 먹거리를 가리는 사람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이미 해외에서는 식사 초대를 할 때 못 먹는 것을 물어보는 것이 문화로 자리잡았고, 비건을 위해 콩이나 버섯으로 만든 식물성 대체 고기를 준비하는 것도 흔한 일이다. 하지만 우리는 음식을 권하는 것을 예의로 알고 맛 있으니 한번 먹어보라고 또는 도전해보라고 얘기를 하는 경우가 여전히 많이 있다. 건강 상의 이유든 신념 또는 종교적인 이유든 서로 간의 다름과 취향 차이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문화가 자리잡을 필요가 있다. 채식주의를 지향할 경우 채식을 하는 목적이 무엇인지에 따라 채식의 범위를 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엄격한 채식주의자인 비건의 경우 필수 영양소가 부족하지 않게 식물성 영양공급원을 꼼꼼히 살펴야 하고 필요하다면 식물이나 미생물 유래의 영양 보충제를 섭취하는 것이 좋겠다.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 김동청 교수는? = 연세대 생화학과를 졸업했다. 연세대 대학원 생화학과 이학석사 및 서울대 대학원 농화학과 농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대상㈜ 중앙연구소 선임연구원, 순천제일대 조교수, 영국 캠브리지대 방문연구원, 성균관대 기초과학연구소 연구교수를 거쳐 현재 청운대 인천캠퍼스 화학생명공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식품기술사 자격도 갖고 있다.
좌절 - 제르맹 드로오헨브로트(Germain Droogenbroodt) 인생에는 좌절이 찾아오는 법이다. 심한 좌절이, 내가 더는 알 수 없을 정도의! —César Vallejo 인생의 나날에는 천장도 없고 음울한 그런 날들이 있지 그 자신의 슬픔에 잠기는. 비록 어느 곳에든 어떻든 피난처와 빛이 있겠지만 항상 눈에 띄지 않을 때도 있다. 출처: '존재의길' 서던애리조나프레스, 2023 SETBACKS There are setbacks in life, so fierce, I don't know anymore! —César Vallejo There are days in life so roofless and gray that in their own sadness they threaten to drown. Although somewhere —how or wherever?— there must be shelter and light but not always in sight. Germain Droogenbroodt from “The Road of Being” Southern Arizona Press, 2023 ◆ 제르맹 드로오헨브로트(Germain Droogenbroodt) = 벨기에의 시인, 에세이스트 및 번역가이다. 그는 20여 권의 시집을 출판하였으며 30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되었다. 드로오헨브로트의 시는 종종 존재의 본질, 의미 탐구 및 인간의 삶에 대한 주제를 탐구하고 있으며 그의 작품은 철학적이고 사유적인 성격과 선명한 상상력과 음악적인 언어 사용으로 알려져 있다. 중국, 인도 및 아프리카 시인들의 작품을 포함한 많은 시인의 작품을 번역하였다. 국제 시 번역 및 연구를 촉진하는 문화 기관 IPTR (International Poetry Translation and Research)의 창립자이다. 1985년 몽스시에서의 Grand Prix de la Ville de Mons, 2003년 Nosside International Poetry Prize, 그리고 2015년 Nosside Lifetime Achievement Award를 포함한 수많은 상을 받았다. 또한 30년 이상의 기간 POINT 출판사(POesie INTernational)에서 세계 여러 지역의 현대 시인들의 수많은 시집을 출판했다. ☞ 강병철 작가 = 1993년 제주문인협회가 주최하는 소설부문 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며 문단에 데뷔했다. 2016년 『시문학』에서 시인으로 등단했다. 2012년 제주대에서 국제정치전공으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제주대학교 평화연구소 특별연구원, 인터넷 신문 ‘제주인뉴스’ 대표이사, (사)이어도연구회 연구실장 및 연구이사, 충남대 국방연구소 연구교수, 제주국제대 특임교수, 한국해양전략연구소 선임연구위원, 제주통일교육센터 사무처장 등을 역임하고 현재 한국평화협력연구원 연구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제33대 국제펜클럽한국본부 인권위원이며 국제펜투옥작가회 위원으로 활동했다. 제34대 국제펜클럽한국본부 인권위원으로 재선임됐다. 국제펜투옥작가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신장위구르 자치구역의 대표적인 위구르족 작가 중의 한 명인 누르무헴메트 야신(Nurmuhemmet Yasin)의 「야생 비둘기(WILD PIGEON)」를 번역 『펜 문학 겨울호』(2009)에 소개했다. 2022년에는 베트남 신문에 시 ‘나비의 꿈’이 소개됐다. ‘이어도문학회’ 회장을 역임하였으며 이어도를 소재로 한 단편소설 ‘이어도로 간 어머니’로 월간 ‘문학세계’에서 주관한 ‘제11회 문학세계 문학상’ 소설부문 대상을 받았다. 한국시문학문인회에서 주관하는 제19회 ‘푸른시학상’을 수상했다. 강병철 박사의 시와 단편소설은 베트남, 그리스, 중국 등 여러 나라 언어로 번역돼 소개되고 있다. 최근엔 중국의 계간 문학지 《국제시가번역(国际诗歌翻译)》에도 강 작가의 시 두편이 소개되었다.
최근 형사 1심에서 무죄 판결이 나온 후 2심에서는 유죄 판결이 선고된 형사사건이 있다. 이를 소개한다. A씨는 면허가 없는 상태에서 운전을 하다가 길가에 주차된 차량을 들이받게 되었다. 형사 처벌을 받는 것이 너무나 두려운 나머지 B씨에게 경찰에 “내가 운전을 했다”고 허위진술할 것을 요청했다. 이에 B씨는 경찰서에 자신이 운전을 했다고 허위진술을 한 후 위 피해자와 합의서도 B씨 명의로 작성을 하여 경찰에 제출하게 되었다. 그런데 그 이후 A씨와 B씨 사이가 악화되었고, 이에 B씨는 변심을 하여 실제 운전을 한 자는 A씨이고 본인은 A씨의 사주를 받고 허위 진술을 하였다고 지속적으로 자백을 했다. 그런데도 형사 1심 재판부는 A씨와 B씨에게 둘 다 무죄 판결을 선고하였다. 어떻게 이런 결과가 나올 수 있을까? 형사소송법 제310조에는 피고인의 자백이 그 피고인에게 불이익한 유일의 증거인 때에는 이를 유죄의 증거로 하지 못한다고 규정되어 있다. 이는 피고인이 임의로 자백을 한 경우에 법관이 유죄의 심증을 얻었다고 하더라도 별도의 보강증거가 없다면 유죄판결을 할 수 없다는 원칙을 의미한다. 이에 위 형사 1심 재판부에서는 B씨가 범죄 사실에 대한 자백을 하는 상황에서도 B씨의 자백을 보강할 증거가 있는지를 면밀하게 살피게 된 것이다. 그런데 형사감정결과, B씨 명의로 작성된 교통사고 피해자와의 형사 합의서의 필적이 A씨 것인지, B씨 것인지 불분명하게 나와서 B씨 자백을 보강할 증거가 없을 뿐 아니라, B씨 본인 자백의 진술도 지속적으로 번복되었기 때문에 신빙할 수 없다는 이유로 B씨에게 무죄를 선고한 것이다. 그리고 A씨는 애시 당초 범죄사실을 부인하고 있었고, A씨의 범죄사실을 입증할 증거가 없는 상황이었으므로 A씨에 대해서도 무죄가 선고된 것이다. 결국 A씨와 B씨가 범죄를 저지른 사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형사소송법상의 자백 보강 법칙에 따라 A씨, B씨에 대해서도 무죄가 선고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물론 위 형사사건 2심 재판부에서는 다시 위 허위로 작성된 합의서에 대하여 법원 감정을 진행하여 결과를 바로 잡아 A씨와 B씨에게 유죄를 선고(A씨도 결국 자백을 하였음)하여 정의로운 결과가 도출되었다. 그렇다면 왜 형사소송법에서는 피고인이 자백을 하더라도 형사 처벌을 할 수 없도록 규정한 것일까. 이는 과거부터 여러 이유로 피고인이 허위 자백 또는 강압적인 자백을 할 수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이를 방지하여 잘못된 재판을 바로 잡고, 형사 피고인의 인권 침해를 방지하기 위함이다. 오랜 과거부터 피고인에 대한 인권 침해가 다수 이루어져 왔고, 실무상 피의자 또는 피고인의 방어권의 행사에 사실상 제약이 많은 점에 비추어 볼 때 매우 타당한 제도인 것으로 생각된다. ☞홍광우는? = 대한변호사협회 부동산 및 형사전문변호사다. 현재 서귀포경찰서에서 경미범죄심사위원회 시민위원, 선도심사위원회 전문위원, 수사민원 상담센터 법률상담 변호사 업무를 맡고 있다. 또 서귀포시교육청 지방공무원인사위원회 위원, 서귀포지역 건축사회 법률자문위원회 위원, 서귀포시 노인복지관 고충처리 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셋째, 기회 앞에서는 모호하게 행동하지 말자. 당당하자. 직업 생애 중에서 우리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기회는 그리 많지 않다. 그렇기에 상사나 경영자가 일부러 자신을 발탁할 때에는 반드시 용감하게 나서야 한다. 자립, 자신, 자강의 태도와 업무 능력을 통하여 상사에게 희망을 볼 수 있게 하여야 한다. 자기 발전에 지극히 중요한 기회가 왔을 때 반드시 신속하게 나서야 한다. 용감하게 기회를 포착하여야 한다. 주동적으로 그 ‘수놓은 공’을 받아들여야 한다. 결코 과도한 겸손으로 자아 가치를 실현할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된다. 넷째, 적당하게 자신을 선양하자. 업무 중에 적당한 때에 상사에게 자신이 이미 이루어놓은 성적을 펼쳐 보여줘야 한다. 창신적이 방법과 독창적인 업적을 보여주면서 자신이 ‘성장 잠재주’이니 자신을 육성하여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 그리하여 ‘금’과 같은 자신을 빛날 수 있도록 도와주게 만들어야 한다. 이것이 판매책이 우회로를 피할 수 있게 한다. 재능이 있으면서도 펼 기회를 만나지 못하는 불운을 피할 수 있는 지름길이다. 자기 자신을 잘 홍보할 줄 알아야 한다. 상사와 ‘친밀한’ 접촉을 통하여 자기의 빛나는 점을 끊임없이 상사 앞에서 번쩍이어야 한다. 물론 가장 중요한 전제는 먼저 자신을 우수한 ‘상품’으로 만드는 것이다. 끊임없이 스스로 새로이 창조해 나가야 한다. 다섯째, 책략을 강구하여 겸손하자. 겸허는 열등감이 아니다. 그런데 과도한 겸허는 왕왕 열등의식으로 변한다. 열등의식에 빠진 사람은 업무 중에 상사의 인정을 받기 힘들다. 겸허는 적당하게 하여야 한다는 것에 주의하여야 한다. 지나치게 겸손하면 나약하게 된다. 조금 겸손하지 못하면 시건방지거나 경망스럽게 된다. 겸허는 상대를 분명하게 가려야 한다. 겸손한 상사나 경영자에게 적절하게 겸손하면 상사의 공감을 얻어내 호감을 살 수 있다. 자신감이 넘치고 선양하기를 좋아하는 상사나 경영자에게 당신의 겸손은 무능하다고 느끼게 만들 수도 있다. 여섯째, 개인 브랜드를 만들어보자. 적당한 시기에 독특한 자기 개성을 표현하고 자기의 중요한 가치를 나타내어 자기만의 ‘황금’을 때때로 빛을 발하게 하여야 한다. ‘함축’적으로 ‘지하’에 묻어 놓아서는 안 된다. 겸손도 좋고 자신감도 좋다. 모두 자신만이 가지고 있는 브랜드를 만들어낼 수 있어야 한다. 우수한 인재는 개인 브랜드를 만드는 데에 용감하고 강하다. 겸손은 개인이 성장하는 데에 보조 추진 장치라는 것을 알아야 하지만, 적당한 자아 발양도 자기 발전의 단계를 높여 준다는 것도 명백하게 알아야 한다. 그렇게 자신이 출류발췌, 같은 무리보다 뛰어나다는 것을 알려서 자신을 표현하고 자신을 발휘해나가야 한다. 어떤 사람이든 지나치게 겸손하면 위축된 생활을 하게 된다. 매일 “전전긍긍하게 되고 얇은 얼음을 밟는 것처럼 살게 된다.” 이러한 사람은 자기가 가지고 있던 이상은 물거품이 된다. 그럭저럭 살아가는 것에도 문제가 생기게 된다. 『주역』은 말한다. “‘자주 겸손하니 부끄러움’은 뜻이 궁한 것이다.” 무슨 말인가? 변덕스러운 사람은 누구를 따라야 할지, 누구의 말을 믿어야 좋을지 모르게 만든다. 뜻을 실현시키기 어렵게 만든다. 자기의 뜻을 실현시킬 생각이라면 생활의 자세한 부분에 주의하여야 한다. 일하는 데에 시종일관 하여야 한다. 변덕스러워서는 안 된다. 일할 때는 철저히 끝을 내어야 한다. 물론 훌륭하게 끝을 내는 것은 더 좋다. 한나라 때 유향(劉向)의 저작 『열녀전·모의(母儀)』의 기록이다 : 어릴 적 맹자 이야기이다. 어느 날 어린 맹자는 학교를 무단결석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맹자 어머니는 베를 짜고 있다가 물었다. “공부, 어땠니?” 맹자가 답했다. “어제와 같았어요.” 어머니는 맹자의 아랑곳하지 않는 모습을 보고는 칼로 짜던 베를 잘랐다. 맹자가 까닭을 묻자 어머니는 간곡하고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공부는 베를 짜는 것과 같다. 한 촌 한 촌이 모여 한 척이 되고 한 척 한 척이 쌓여 한 장이 된다. 네가 향상하려 하지 않은 것이 내가 이 짜던 베를 자르는 것과 같다!” 맹자는 문득 모든 것을 깨달았다. 이때부터 아침부터 저녁까지 열심히 공부하였다. 마침내 유명한 사상가, 교육자, 문학가가 되었다. 우리 모두는 각자 다양한 인생 역정을 가지고 있다. 가슴에 손을 얹고 스스로 물어보자. 모든 일을 완전하게 했는가? 후회는 없는가? 그렇다고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이 많을까. 어떤 일을 하는데 우리 능력을 벗어났다면 제대로 처리하지 못했다하여도 정상을 참작할 만하다. 그런데 우리 능력이 닿는 범위에서 일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했다면 유감이다. 그것 때문에 중도에서 그만두는, 변덕스러운 습관이 형성되었을 것이다. 이것이 가장 염려되는 일이다. ***** 巽卦 ䷸ : 손위풍(巽爲風) 손(巽: ☴)상 손(巽: ☴)하 손(巽)은 조금 형통하니, 가는 것이 이로우며 대인을 보는 것이 이롭다.(巽,小亨,利有攸往,利見大人.) 구이는 겸손함이 상(牀) 아래에 있으니, 사관(史官)과 무당을 쓰기를 많이 하면 길하고 허물이 없을 것이다.(九二,巽在牀下,用史巫紛若,吉,无咎.) 「상전」에서 말하였다:“자주 겸손하니 부끄러움”은 뜻이 궁한 것이다.(象曰,頻巽之吝,志窮也.) 상구는 겸손함이 상(牀) 아래에 있어서 물자와 도끼를 잃으니, 곧음에 흉하다./ 상구는 겸손함이 상(牀) 아래에 있어서 물자와 도끼를 잃으니, 곧더라도 흉하다.(上九,巽在牀下,喪其資斧,貞,凶.) [傳] 손괘(巽卦)는 「서괘전」에서 “나그네가 되어 받아들일 곳이 없기 때문에 손괘로 받았고 손(巽)이란 들어감이다”라고 했다. 나그네가 되어 친한 사람이 적으니 공손하고 유순하지 않으면 어디에서 받아들여질 수 있겠는가? 진실로 공손하고 유순할 수 있다면 비록 곤궁한 나그네 일지라도 어디를 간들 들어갈 수 없겠는가? 손괘가 여괘(旅卦) 다음에 오는 까닭이다. 괘는 하나의 음이 두 양의 아래에 있어서 양에게 공손하고 유순하니, 이 때문에 손괘가 됐다. ☞이권홍은? =제주 출생. 한양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나와 대만 국립정치대학교 중문학과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국현대문학 전공으로 『선총원(沈從文) 소설연구』와 『자연의 아들(선총원 자서전)』,『한자풀이』,『제주관광 중국어회화』 등 다수의 저서·논문을 냈다. 현재 제주국제대학교 중국어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당신은 숙녀입니다 - 안젤라 코스타(Angela Kosta) 숙녀 여러분, 연약한 순교자, 속삭임이 없는 잃어버린 길에서 돌아와, 더러운 삶에 필사적으로 울부짖고, 피눈물, 고통받는 영혼을 지닌 손톱 긁힌 몸; 숙녀 여러분, 일어나세요! 당신 안에 있는 "여신"을 부정하는 모든 것을 멀리하십시오. 인내와 폭력의 경계를 넘어 빛바랜 베일을 벗겨내세요. 어둠의 영원한 가면; 당신에게 합당하지 않은 사람들로부터 자유로워지세요. 입술에 촉촉한 미소; 숙녀 여러분, 다시 살아가세요! 머리를 들어보세요 생명의 힘을 쥐고 주먹을 펴세요. 다시 피어 노래를 부르세요… 미소를 지으세요… 증오의 감옥에서 벗어나 자유를 누려보세요. 숙녀 여러분! 당신은 훌륭해요 당신은 독특합니다 당신은 거룩해요. 즐기며 행복하게 살아요! YOU ARE A LADY... (By Angela Kosta) You ladies, A fragile martyr, Return from the lost path where there is no whisper, Desperate crying of dirty life, tears of blood, nail scratched bodies having distressed soul; You ladies, Rise! Stay away from everything that negates the "goddess" in you; Cross the border of patience and violence Tear off your faded veil. The dark eternal mask; Free yourself from people who don't deserve you, your moist smile on the lips; You ladies, Live again! Raise your heads Open fists holding the power of life; Bloom again to sing…. Smile…. Enjoy your freedom coming out of the prison of hatred. You ladies! You are great You are unique You are holy; Enjoy and live happily! ◆ 안젤라 코스타(Angela Kosta) = 1973년생으로 알바니아의 엘바산(Elbasan)에서 태어났다. 그녀는 이탈리아와 모국인 알바니아에서 출판된 다양한 소설, 시집, 동화의 저자이다. 그녀는 1995년부터 이탈리아에서 살고 있다. 그녀는 번역가, 시인, 작가, 홍보 담당자이자 Albania Press 신문의 부편집장이다. 그녀는 칼라브리아 라이브 신문 (Calabria Live Newspaper)에 기사를 쓰고, – 예술과 문화의 세계 국제 비월 잡지 "Le Muse"를 위해 이탈리아 시인들의시를 알바니아어로 번역하고, 이탈리아 알바니아 신문 "Le Radici-Roots"에서 이탈리아 역사가와 학자 및 알바니아 학자의 다양한 기사를 번역한다. – 국제 문학 잡지 "Saturno Magazine"에 글을 쓰고 있으며 알바니아 신문 "Gazeta Destinacioni", Alb – Spirit, Word, Approach과 잡지 "Orfeu – Pristina" 등에 기사와 시를 쓰고 있다. ☞ 강병철 작가 = 1993년 제주문인협회가 주최하는 소설부문 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며 문단에 데뷔했다. 2016년 『시문학』에서 시인으로 등단했다. 2012년 제주대에서 국제정치전공으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제주대학교 평화연구소 특별연구원, 인터넷 신문 ‘제주인뉴스’ 대표이사, (사)이어도연구회 연구실장 및 연구이사, 충남대 국방연구소 연구교수, 제주국제대 특임교수, 한국해양전략연구소 선임연구위원, 제주통일교육센터 사무처장 등을 역임하고 현재 한국평화협력연구원 연구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제33대 국제펜클럽한국본부 인권위원이며 국제펜투옥작가회 위원으로 활동했다. 제34대 국제펜클럽한국본부 인권위원으로 재선임됐다. 국제펜투옥작가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신장위구르 자치구역의 대표적인 위구르족 작가 중의 한 명인 누르무헴메트 야신(Nurmuhemmet Yasin)의 「야생 비둘기(WILD PIGEON)」를 번역 『펜 문학 겨울호』(2009)에 소개했다. 2022년에는 베트남 신문에 시 ‘나비의 꿈’이 소개됐다. ‘이어도문학회’ 회장을 역임하였으며 이어도를 소재로 한 단편소설 ‘이어도로 간 어머니’로 월간 ‘문학세계’에서 주관한 ‘제11회 문학세계 문학상’ 소설부문 대상을 받았다. 한국시문학문인회에서 주관하는 제19회 ‘푸른시학상’을 수상했다. 강병철 박사의 시와 단편소설은 베트남, 그리스, 중국 등 여러 나라 언어로 번역돼 소개되고 있다. 최근엔 중국의 계간 문학지 《국제시가번역(国际诗歌翻译)》에도 강 작가의 시 두편이 소개되었다.
최근에 상담하였던 사건이다. 편의상 내용을 일부 각색하였음을 미리 밝힌다. 의뢰인은 몇 년 전에 교통사고를 당하였는데, 허리를 다치게 되어서 오랜 기간 치료를 받았다고 한다. 다행히도 치료 이후 사고 부위인 허리는 이제 움직이는데 문제가 없는데, 갑자기 전신에 견딜 수 없는 정도의 통증이 지속되어 여러 병원을 찾아서 진료를 받아보았다. 의뢰인은 예전 교통사고의 후유증일 가능성도 있다는 이야기를 여러 의사들로부터 들었다고 한다. 계속 병원을 다니며 치료를 받아도 간헐적으로 발생하는 전신통증이 가라앉지 않고 있으며, 일단 통증이 생기면 너무 고통스러워 서있을 수조차 없어 일상생활 자체가 어렵다고 한다. 의뢰인은 이러한 후유장애를 근거로 가해차량의 보험회사에 손해배상 청구를 하고 싶은데 사건을 맡을 수 있는지 문의하였다. 나는 사건을 맡지 못하겠다고 하였고, 그 이유는 과거 교통사고와 현재 전신통증의 연관성, 즉 인과관계를 입증하기가 매우 어렵기 때문이라고 설명하였다. 의뢰인은 과거 교통사고도 사실이고, 현재 자신이 겪고 있는 전신통증도 사실이며, 그 사이에 연관성이 있다는 것은 담당의도 인정하고 있는 것인데 무엇이 문제냐고 반문하였다. 문제는 소송절차에서 교통사고와 전신통증 사이의 인과관계가 있다는 신체감정을 받는 부분이다. 신체감정을 통하여 인과관계에 대하여 인정받는다는 것은 상당히 어렵다는 것을 경험상 알고 있기에 의뢰인이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없을 것으로 보여 맡기 어렵다고 추가적으로 이야기 해 주었다. 의뢰인이 겪고 있는 후유장애인 전신통증을 의학적으로는 ‘신경병증성 통증’이라고 부르며, '통증을 지속시키는 기전이 중추신경계나 말초신경계의 체감각성 과정의 이상으로 기인된 어떤 종류의 급성 또는 만성병적 통증증후군'이라고 정의를 내리고 있다. 그 주요 증상은 ‘전신통증, 이로 인한 수면장애 및 정서장애, 우울증, 사회적응력 저하’이며, 그 병인으로는 ‘당뇨병, 영양 불균형, 알코올, 항암화학요법, 감염, 자가 면역, 신경외상 등’ 다양한 원인들이 환자별로 개별적으로 작용한다고 알려져 있다. 신체기관이라는 것은 유기적으로 연관된 것이기에 한 부분에 이상이 생기면, 다른 부분에도 충분히 이상이 생길수도 있다. 비록 의뢰인의 허리 부상은 완치되었지만 사고 과정에서 손상된 신경계가 치료 이후에도 제대로 기능하지 않아 전신통증으로 충분히 이어질 수 있다고는 생각한다. 그러나 실제 소송에서 나의 개인적인 생각은 증거가 되지 않으며, 전문가의 견해를 담은 ‘신체감정서’가 증거로 쓰여 소송의 결과를 좌우한다. 그 중요한 ‘신체감정서’에 어떠한 내용이 담길지 확신할 수 없다. 허리 부상이라면, 허리에 통증이 있음은 당연하다. 그러나 허리를 다쳤는데 전신이 아프다고 하면, 이러한 인과과정에 대한 의학적인 설명이 필요하다. 교통사고 이후 통증이 다른 부분으로 옮겨질 수 있고, 현재 그러한 통증을 겪고 있다는 사실에 대하여 많은 교통사고 환자들이 입을 모아 이야기하더라도 구체적인 사건에서 판결을 받기 위해서는 ‘신체감정서’가 필요하다. 실제 후유장애에 관하여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하면, 상대방인 보험회사는 교통사고와 전신통증과 인과관계가 없다면서 원고의 청구를 기각하여야 한다고 답변한다. 그러면 소송에서 원고가 된 의뢰인에게 입증책임이 생기며, 교통사고와 전신통증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음을 입증해야 한다. 그러한 입증을 위한 주요한 방법으로서 ‘신체감정서’를 받아야 하는 것이다. 공정성을 위하여 법원에서는 치료한 병원을 감정기관으로 지정하지 않는다. 치료한 병원에서는 그동안 환자로서 형성된 관계가 있으니, 사실이 아님에도 교통사고와 전신통증이 인과관계가 있다는 결론을 내릴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때문에 아무리 의뢰인이 담당의를 통하여 교통사고와 전신통증이 인과관계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어도, 신체감정을 맡아 감정서를 작성하는 의사는 다른 사람이기에 감정결과를 보장할 수 없다. 만약 의뢰인이 당뇨병이나 뇌경색 등의 다른 질병을 앓고 있다면 이러한 질병을 기왕증이라고 부르며, 이러한 기왕증이 호르몬이나 혈관 등에 영향을 주어 중추신경계나 말초신경계에도 영향을 미치고, 의뢰인이 후유장애라 생각하는 전신통증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판단되어 감정에 불리한 결과가 나올 가능성이 있다. 법정에서 대기하다보면 다른 재판을 방청하게 되는데, 유사하게 후유증으로 인한 전신통증이 문제가 되는 재판에서 감정인으로 지정된 의사들이 재차 감정을 거절하여(아무래도 감정이 어렵기 때문이라고 추측된다) 피해자 측에서 입증이 어려워져 소송대리인이 재판부에게 입증의 곤란함을 호소하는 장면을 목격하기도 하였다. 전신통증을 느낀 후 오랜 시간이 지난 후 소송을 제기하면 소멸시효의 문제도 숨어 있다. 여러 병원을 전전하면서 치료를 받다가 별다른 차도가 없다가, 주변에서 교통사고 후유증일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뒤늦게 소송을 준비하다 보면 3년의 시간은 금방 흘러간다. 당사자에게는 너무나도 당연한 사실일지라도, 그 사실이 재판에서 인정되는 것에는 생각지도 못한 난관들이 있다. /한동명 법무법인 더바로 변호사
◆ 손괘(巽卦) 손(巽)은 순종, 비천이다. 겸허는 필요하다. 그러나 과한 겸허는 순종, 비천하게 된다. 순종하는 게 있고 비천하게 되면 노예 성품이 생기게 된다. 창조성이 없어지며 성과를 이룰 수 없다. 포부가 없어지게 된다. 과도한 겸손은 어떻게 하여야 할까? 겸허는 물론 좋다. 그러나 과도한 겸허는 나약함이다. 인생에서 여러 가지를 선택할 때 어떤 때에 겸허하여야 하고 어떨 때에는 선양하여야 하는지 알아야 한다. 신축성 있게 대처하여야 한다. 힘들이지 않고 여유 있게 일을 처리하여야 한다. 그렇게 하여야 자신이 개인 직업 발전에 최고에 이르게 할 수 있다. 『주역』은 말한다. “겸손함이 상(牀) 아래에 있어서 물자와 도끼를 잃으니, 곧더라도 흉하다.” 무슨 말인가? 지나치게 자신을 낮추고 고분고분 하는 것이 극에 달하여 침대 아래까지 굽히면 생계를 도모해야 할 자본을 잃게 되고 강인한 본성을 잃게 되기에 결과적으로 흉험하다. 사람은 강한 면도 있고 약한 면도 있다. 강하고 부드러운 두 가지에 조화를 이루어야 인생의 큰길에서 어디에 가서 승리할 수 있다. 사람이 강한 일면을 일단 잃어버리면 나약하고 무능하게 변해 버린다. 과도한 겸손은 강한 성품을 잃게 되어 비굴하게 된다. 열등의식에 빠져버린다. 열등의식이란 자아를 너무 지나치게 부정하면서 생성된, 남보다 못함을 스스로 부끄러워하는 정서적 체험이다. 자기의 능력, 학식, 품격 등 자신의 요소를 너무 낮게 평가하면서 나타난다. 심리적으로 받아들이는 능력이 연약하면 비교적 강한 자극을 견디어 내지 못한다. 너무 신중한 나머지 소심하게까지 된다. 늘 애수에 잠기고 감상적이어서 자주 의심하는 심리가 생겨난다. 행위가 위축되고 앞뒤를 너무 재어 우유부단하게 된다. 열등의식은 모든 연령에서 나타나고 다양한 신분에서도 나타난다. 재덕(才德)이 평범한 사람도 일생 중 ‘눈부신 성과’와 ‘뛰어난 점’이 도드라져 빛을 발하는 경우가 있다. 그런데 그들은 왕왕 “속세를 달관”하거나 “속세의 덧없음을 깨닫는” 감탄을 쉽게 발하여 “흐르는 물 떨어지는 꽃에 봄이 간다”1)와 같이 어찌할 수 없다는 심리를 표출한다. 심지어 비관적 실망을 인생의 기조로 삼기까지 한다. 전력을 다하여 분투해 사업에 성공하고 빛을 발했지만 이후에 ‘성공’이 다시 오지 않을 것이라 걱정하여 앞길이 막연하고 ‘세상 모든 현상은 공허하다’는 애탄에 쉬이 빠져드는 사람도 있다. 겸허는 겁 많고 나약한 것과 같음표가 아니다. 심지어 겸허는 강한 쪽이 약한 쪽을 대할 때 하는 행위다. 겸허의 척도는 알맞게 파악하여야 한다. 모태동(毛澤東)이 말한 적이 있다. “지나친 겸허는 교만함과 같다.” 그렇지만 사실적으로 말하면 지나친 겸허는 나약함과 같다. 겸허의 품격은 자신의 성취에 대한 평가 위에 체현 되어야 한다. 자기 앞에 놓인 사람과 일에 대해서 겸허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기에 겸허하면서 앞으로 나아가고 공경하면서도 스스로 비하하지 말아야 한다.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예절은 있어야 한다. 자기의 재능을 믿고 남을 깔보지도 말고 자신을 멸시하지도 말아야 한다. 이것이 진정한 겸허다! 어떻게 해야만 겸손이 지나치지도 않고 지극히 적당하게 할 수 있을까? 첫째, 공구를 적당하게 운용하자. 속담에 이런 말이 있다. “금강찬(金剛鑽)이 없으면 도자기 수리를 맡지 않는다.” 무슨 말인가? 어떤 일을 할 능력이 없다면 함부로 일을 착수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자신의 ‘금강찬’을 구비한 후에야 인생의 길을 걸으면 좋은 상품이 잘 팔리듯 인기를 누릴 수 있다. 되면 된다, 안 되면 안 된다 얘기하면 된다. 허풍 떨지 말고 책임을 회피하지도 말자. 이런 관계가 시간의 검증을 가장 잘 견디어 낼 수 있다. 그러한 서로의 관계가 일단 형성되면 당신은 기쁘고 즐겁게 된다. 업무 효율과 업무 생산력도 시간에 따라 변할 것이고 하루하루 발전해 나갈 것이다. 둘째, 겸허한 태도를 보여주자. 상사가 당신을 과장하며 칭찬할 때 자신은 상사에게 배울 점이 아직도 많다는 것을 인정하여야 한다. 동료가 당신을 찬양할 때면 성적을 내는 데에는 상대방의 협조와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을 명백히 알고 있어야 한다. 부하가 당신을 봉찬할 때에는 좌우 양쪽 팔이 병립해 호응해야만 모든 일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발전한다는 것을 확실하게 알고 있어야 한다. 마음속으로 명확하게 알고 입으로 정확하게 표현하여 상대방에게 당신의 성실함을 알게 하여야 한다. 늘 당신의 겸허한 태도를 표현하라. 그러면 당신은 상사의 찬동, 동료의 감탄, 부하의 존경을 받게 될 것이다. 1) ‘낙화유수(落花流水)’, 떨어지는 꽃과 흐르는 물이란 뜻이다. 가는 봄의 풍경을 묘사한 말이다. 뜻이 확대돼 힘이나 세력이 쇠퇴해가는 것을 비유하는 의미로 쓰인다. 당나라 때 이군옥(李群玉)이 은사 진련사(秦煉師)가 잠공산(岑公山)으로 돌아가는 것을 송별하면서 쓴 시 「봉화장사인송진련사귀잠공산(奉和張舍人送秦煉師歸岑公山)」 마지막 구절 ‘낙화유수원리금(落花流水怨離襟 : 떨어지는 꽃과 흐르는 물 떠나가는 게 원망스러워)’에서 유래하였다. 오대 때 남당(南唐) 이욱(李煜)의 사(詞) 「낭도사(浪淘沙)」에도 ‘유수낙화춘거야,천상인간(流水落花春去也,天上人間 : 흐르는 물 떨어지는 꽃에 봄이 가니 하늘의 인간 세계로다)’라는 구절이 있다. ☞이권홍은? =제주 출생. 한양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나와 대만 국립정치대학교 중문학과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국현대문학 전공으로 『선총원(沈從文) 소설연구』와 『자연의 아들(선총원 자서전)』,『한자풀이』,『제주관광 중국어회화』 등 다수의 저서·논문을 냈다. 현재 제주국제대학교 중국어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 르네상스, 만물의 중심은 인간 우리 인류세의 한 점인 르네상스라는 말은 많은 사람들이 즐겨 쓰는 말이다. 사람들은 무언가 혁신적인 일로 보이면 “새로운 르네상스를 맞이했다”라고 말하길 좋아한다. 우리 마음에는 늘 어떤 새로운 것을 갈망하는 욕구가 있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르네상스(Renaissance)란 이탈리아어 리내시멘토(Rinasimento)라는 어원을 가진 말로 프랑스 역사가인 미슐레가 프랑스어 Renaissance라는 말로 확립시켰다. 재생, 또는 부활을 의미한다. 이러한 재생이라는 관념이 이탈리아에서 확실한 토대를 가지게 된 것은 지옷토(Giotto, 1266~1337) 시대의 일이었고 지옷토는 고대 그리스 로마 미술의 진정한 부활을 유도해낸 인물로 칭송됐다. 다시 말해 중세의 이탈리아는 다른 유럽지역보다 낙후되었기 때문에 지옷토의 새로운 업적들이 그들에게는 엄청난 혁신으로 보였고, 예술에 있어서 가장 고귀하고 위대한 모든 것이 부활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14세기의 이탈리아 사람들은 예술과 과학과 학문이 고전시대에 번창했었으나, 이 모든 것들이 거의 다 북쪽의 야만인들에 의해서 파괴되었기 때문에 그들 스스로가 이 영광스러운 과거를 다시 부흥시켜서 새로운 시대를 열어야 한다고 믿고 있었다. 피렌체는 단테와 지옷토의 출생지이며 부유한 상업도시였기에 바로 이곳에서 15세기 초에 일단의 미술가들이 과거의 미술개념에서 탈피하고 새로운 미술을 창조하고자 시도했던 것이다(E.H.곰브리치, 1999). 이와 같이 르네상스 운동은 이탈리아 피렌체가 그것의 근원지가 되었다. 이 운동은 과거의 노스탈쟈가 아니라 현재 현실의 절박한 과제로서 유럽 전역으로 전파되었다. 피렌체 인문주의 정신은 한 마디로 요약하면, “만물의 중심은 인간이다.”라는 것이었고, 신 중심의 중세의 가치와는 달리 인간이 역사와 사회의 주역이 되었다. 이미 한 세기 전에 단테와 지옷토는 인문주의의 기초를 놓았던 것이다. 르네상스의 시작은 중세의 긴장된 종교의 공포로부터 벗어나려는 인간 회복의 운동이었다. 야코프 부르크하르트(Jacob Burck hardt, 1818~1897)에 의하면, “중세에는 인간 의식의 양면(兩面)이 있었는데, 바깥 세계를 향한 의식과 인간 내면을 향한 의식, 이 두 가지가 안팎으로 베일을 쓰고 꿈을 꾸거나 반쯤 깨어난 상태로 신앙과 어린애 같은 집착과 망상으로 짜여 있었기 때문에 그것을 통해 바라본 세계와 역사는 기묘한 색채를 띠었다. 그리고 인간은 자기 자신을 인종ㆍ민족ㆍ당파ㆍ 단체ㆍ가족 따위의 보편적인 범주로만 이해하였다.” 14세기 초부터 유럽은 온갖 종류의 재앙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여러 차례의 기근은 사람들을 약하고 병들게 만들었고, 흑사병이 창궐하면서 엄청난 인구가 죽어나갔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전쟁 또한 잇따라 일어나 행정은 엉망진창이 되었고, 시민들은 가중된 세금과 군인들의 약탈을 견뎌내야 했다. 사회적 상황이 극에 달하다보니 경제 성장은 곤두박질치고, 경제적 타격에 따른 피해는 고스란히 농촌의 농민들에게 전가되었다. 농민들은 농토를 영주들에게 뺏기듯 팔고는 도시로 가서 새 삶을 이루고자 했으나 거기에서 마주친 것은 오로지 빈곤과 고생뿐이었다. 결과는 모든 게 사회적 혼란으로 되돌아왔으며, 이런 현상은 전체 유럽 전역에 되풀이해서 나타났다. 13세기 유럽을 특징 지었던 통일성은 사라졌으며, 제국과 교회는 모두 분열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럽 대륙의 이 시기를 그저 파괴와 쇠퇴의 과정으로 단순화해서는 안 된다. 13~14세기 두 세기의 걸친 봉건적 분열은 왕권국가들에게 자리를 내주게 되었고, 이로부터 다른 유형의 행정체계가 서서히 발전해 나갔다. 유럽의 번영이 점점 회복되어 상업과 산업은 새로운 도약을 맞이했다. 1378년 프랑스 아비뇽에 새 교황청이 생기고, 또 로마에 교황청이 생기면서 두 명의 교황이 탄생하는 교회의 대분열(1296년~1417년)을 맞았지만 교회의 통일성이 회복되면서 다시 제자리를 차지하면서 종교생활과 관계된 새로운 표현양식들도 발달하게 되었다. 바자리의 『이탈리아 미술가 열전』에는 르네상스 시대 주역이라고 할 수 있는 브루넬레스키, 마사초, 도나텔로 등 세 명의 예술가가 있는데 젊은 예술가의 지도자는 필립포 브루넬레스키(Filippo Brunelleschi, 1377~1446)였다. 그는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선구자적 건축가 가운데 한 사람으로 그가 만든 주요 작품은 모두 이탈리아 피렌체에 있으며, 르네상스 건축의 창시자만으로 그치지 않았다. 미술의 조형적 영역에 있어서 획기적인 일이라고 할 수 있는 원근법(遠近法, perspective)은 브루넬레스키가 발견하고 알베르티가 체계적으로 이론화했다. 이 원근법은 그 후로부터 600년 가까이 오늘날까지도 서양미술에서 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 원근법과 환영주의 “Perspectiva라는 말은 라틴어로서, ‘통해서 봄(透視, Durchsehung)’이라는 의미이다.” 알프레히트 뒤러(Albrecht Dürer, 1471~1528)는 원근법(遠近法, perspective)의 개념을 독일어로 처음 의역하고 있으며, 완벽한 원근법과 인체비례를 처음으로 북유럽에 들여온 이도 바로 뒤러였다. 그런데 이 라틴어는 보에티우스(Boethius)에게도 나타난다. 뒤러는 말한다. “눈은 인간이 지닌 가장 고귀한 감각이다.”라고. 미술사학자 어윈 파노프스키(Erwin Panofsky, 1892~1968)는 투시법에 대한 나름의 정의를 내리고 있다. “투시법은 인간과 사물 사이에 일정한 거리를 두게 한다. 그러나 인간과 맞서고 있는 이 자립적인 세계를 인간의 눈으로 끌어옴으로써 인간과 사물의 거리를 제거하는 것이다.” 파노프스키는 이 투시법을 화가가 자신을 들러싼 세계를 바라보는 인식론적 행위로 이해하고 있는데, 이탈리아 르네상스 그림이 사실적인 그림이 아니라 그것은 인위적으로, 또는 수학적으로 재구성하고 재현한 그림으로 인식헸다. 이탈리아 르네상스시기에 들어와 인간이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사물과 세계에 대해 거리를 두는 능력을 갖게 되면서 그것을 자신의 관점에서 재구성해 재현하려는 시도로 만들어 낸 것이 투시원근법이라는 사실이다. 레오나르다빈치는 원근법을 세 가지 유형으로 구분한다. 선 원근법(線遠近法, perspective liniale):눈으로 볼 때 물체가 작아지는 크기를 다룬다. 색채원근법(色彩遠近法, perspective di colore):눈에서 멀어지면서 색이 변화하는(감퇴하는) 방식을 다룬다. 소멸원근법(消滅遠近法, perspective speditione):물체가 거리에 비례하여 덜 완성된 것(외곽선의 명확성으로 떨어져 보이는 것)을 다룬다. “회화에서의 으뜸은 물체가 튀어나오듯 보여야 하고 그 물체를 둘러싼 상이한 거리에 있는 바탕이 그림의 전경과 수직면상에 있듯이 보여야 한다.” “선 원근법은 눈의 구조에 의한 것이고, 색채원근법과 소멸원근법은 눈과 눈에 보이는 물체 간의 거리 사이에 존재하는 대기(大氣:공기)에 의한 것이다“라고 다빈치는 말한다. 사실 투시도법(선 원근법)은 3차원의 대상물을 평면에 그리고 입체효과와 원근감을 표현하려고 시도하는 기하학적 원근화법이다. 즉 소실점(vanishing point)의 기하학적 의미를 명확히 포착하는 기법으로,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기의 건축가 브루넬레스키에 의하여 1410년경에 발견돼 본격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원근법에 있어서 우리가 마사초((Masaccio, 1401 ~ 1428)를 기억해야 하는 것은 그가 그린 <성 삼위일체>가 처음 원근법을 이용하여 공간의 환영을 만들어낸 프레스코 벽화로써 환영주의 시초가 되기 때문이다. 그는 스물일곱 살 젊은 나이에 요절을 했지만 그의 작품은 오늘날까지 두고두고 회자되고 있다. <성 삼위일체> 그림을 보면 십자가의 예수를 중심으로 위에는 하나님이, 좌우로는 왼쪽에 성모마리아, 오른쪽에 사도 요한이 있고, 아치 문 입구 좌우로 주문한 가문의 부부가 서 있는 모습이다. 천정은 원근법을 이용하여 공간의 환영을 만들어내고 있다. 어두운 하단에는 석관 위에 해골의 시신이 누워 있고, 바로 그 위로 작은 글씨가 씌여있다. “나도 한 때는 그대였고, 그대 또한 내가 될 것이다.” 곧 당신도 나와 같이 죽어서 이런 해골의 모습이 될 것이다. 라는 경구이다. 미켈란젤로 제자이자 건축가이며 화가였던 지오르지오 바자리(Georgio Vasari, 1511~1574)는 브루넬레스키에 대해 말한다. “옛날 피렌체에는 명성이 자자하고 근면한 생활을 즐기던 사람이 있었다. (……) 피렌체의 건축가 겸 조각가 필립포 브루넬레스키는 원근법에 대해서도 열심히 연구하였다. 그 당시 원근법은 사람들에게 잘못 이해되고 있었으며 많은 오류를 범하고 있었다. 그는 이 원근법을 보다 정확하게 표현하는 기술을 개발하기 위하여 오랜 세월을 두고 연구한 끝에 투시도의 기본 지평선(地平線)과 표고(標高) 등의 교차선을 사용하였다. 이 천재적인 발견은 데생 기술의 발전에 크게 공헌하였다.” 앞서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말한 "회화에서의 으뜸은 물체가 튀어나오듯 보여야 한다"는 이론은 원근법을 극대화한 효과를 말하는 것이다. 서양미술에서 환영주의(幻影主義)라고 하는 것은 바로 비례의 정확성과 생생한 사실성에 기반을 둔 그림을 말하는 것이다. 환영주의의 시초는 15세기 르네상스 시대 탄생한 원근법에 기인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림을 그리는 화면이 2차원이라면 거기에 입체적인 형태를 그려 3차원의 세계를 보여줌으로써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실제의 사물인양 착각하게 만드는 미술의 기법을 가르쳐 환영주의라고 한다. 르네상스 시대에 등장하게 된 원근법의 영향으로 거리감과 형태를 3차원으로 표현함으로써 19세기까지 줄곧 대세를 이루었는데 우리는 그것을 사실주의라고 부른다. 우리는 눈앞의 현실을 재현하는 사실주의 미술에 매우 익숙해 있다. 1861년 구스타프 쿠르베는 사실주의를 한 마디로 정리한다. “무릇 회화란 본질적으로 구체적인 예술이며, 실재하는 현실을 표현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회화는 눈에 보이는 모든 사물을 단어로 삼는 물리적인 언어이다.” 사실주의 화가들은 현실 세계를 표현하기 위해서는 형상을 왜곡하는 것이 아니라 자세하고 촘촘하게 생동감 있도록 묘사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다. 라파엘로나 다빈치의 그림에서 보여주는 것처럼 이런 사실적인 그림이라도 결국 2차원의 평면에다가 실재의 세계처럼 눈속임에 불과한 그림인 것이다. 환영주의란 평면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진짜 현실세계로 착각하게 만든다는 ‘환영(幻影)’을 준다는 의미에서 환영주의(illusionism)라고 부른 것이다. 그림에 대한 환영주의의 이론적 기원은 르네상스시대 원근법 옹호자들 사이에서 발견된다. 그림이란 눈에 보이는 세계를 바라보는 ‘하나의 창(窓)이라는 생각을 처음 암시한 사람은 L. B.알베르티였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다음과 같은 말로써 이러한 생각에 구체적인 내용을 부여했다. “원근법이란 아주 투명한 유리창 뒤에 서서 보는 행위에 지나지 않는다. 그 유리창 표면에는 유리 뒤에 위는 물체들이 그려지게 될 것이다.” 서양미술의 전통은 20세기 현대미술이 도래하기까지 이 환영주의가 화면을 지배했다. 원근법에 기반을 둔 이 환영주의 미술은 19세기가 되면 초상화의 대체 수단으로써 마침내 화가들의 새로운 시도인 사진술이 등장하는 계기가 되었다.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참고문헌> 김정숙, 『연표로 읽는 서양미술사』, 현암사, 2021. 레오나르도 다빈치, 『레오나르도 다빈치 노트북』, 장 폴 리히터 편집, 루비박스, 2015, 루크레티우스,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 강대진 옮김, 아카넷, 2012. B.크로체, 『사고로서의 역사 행동으로서의 역사』, 최윤오 옮김, 새문사, 2013. 마르크 블로크, 『역사를 위한 변명』, 고봉만 옮김, 한길사, 2013. 박정자, 『마네 그림에서 찾은 13개 퍼즐 조각』, 기파랑, 2014. 스테파노 추피, 『신과 인간 르네상스 미술』, 하지은 외 옮김, 마로니에북스, 2011. 신준형, 『파노프스키와 뒤러-해석이란 무엇인가』, 사회평론, 2015. E.H.곰브리치. 『서양미술사』, 백승길외, 예경, 1999. E.H.곰브리치. 『예술과 환영-회화적 재현의 시리학적 연구』, 차미례 옮김, 열화당, 2003. E.H.카, 『역사란 무엇인가』, 김택현 옮김, 까치, 2015. 알베르티, 『회화론』, 김보경 옮김, 에크리, 2020. 야코프 부르크하르트,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문화』, 이기숙 옮김, 한길사, 2003. 에르빈 파노프스키, 『상징형식으로서의 원근법』, 심철민 옮김, 도서출판b. 2014. 위르겐 카우베, 『모든 시작의 역사』, 안인희 옮김, 김영사, 2019. 이언 자체크 책임편집, 『미술사연대기』, 이기수 옮김, 마로니에북스, 2019. 이상현, 『모든 역사는 현재의 역사다』, 삼화, 2017. 지오르지오 바자리, 『이탈리아 르네상스 미술가 평전』, 李根培 譯, 한명, 2000. G.G.콜링우드, 『서양사학사』, 김봉호 옮김, 탐구당, 2017. 프레데리크 들루슈 편, 『새 유럽의 역사』, 윤승준 역, 까치, 2009. ☞김유정은? = 최남단 제주 모슬포 출생이다. 제주대 미술교육과를 나와 부산대에서 예술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미술평론가(한국미술평론가협회), 제주문화연구소장으로 일하고 있다. 저서로는 『제주의 무신도(2000)』, 『아름다운 제주 석상 동자석(2003)』, 『제주의 무덤(2007)』, 『제주 풍토와 무덤』, 『제주의 돌문화(2012)』, 『제주의 산담(2015)』, 『제주 돌담(2015)』. 『제주도 해양문화읽기(2017)』, 『제주도 동자석 연구(2020)』, 『제주도 산담연구(2021)』, 『제주도 풍토와 문화(2022)』, 『제주 돌담의 구조와 형태·미학(2022)』 등이 있다.
바다는 꿈꾸고 있네 - 첸밍커(陳明克, Ming-Keh Chen) 바다는 꿈을 꾸고 있다 짙은 구름 틈으로 비스듬히 햇빛이 내리네 잠든 바다 위에 바다와 하늘이 만나는 곳에서 한 줄기 빛이 깜박이고 있네 오! 바다가 눈을 깜박이네 물이 모이는 바다 하지만 꿈은 그것은 이슬방울이지 풀 끝으로 떨어지는 모든 동물과 식물들도 바다의 꿈을 꾸지 그들 사이에 전쟁이 없는 것은 당연해 하지만 나는 인간이어서 이슬방울 속에서 일어서는 것을 꿈꾸지 잔디 끝에서 그리고 주위를 둘러보네 내가 또 누구를 찾을 수 있는지 The Sea is Dreaming (By Ming-Keh Chen) From the gaps of dense clouds the slanted sunlight falls upon the sleeping sea Where the sea meets the sky a beam of light is flickering Oh! The sea is blinking The sea has gathered so much water but dreams it is a dewdrop falling to the tip of a grass All animals and plants Also dream the sea’s dream No wonder no war is amongst them But I, a human being Dream I stand up from a dewdrop On the tip of a grass And look around Whom else I can find 海的夢 - 첸밍커(陳明克, Ming-Keh Chen) 密佈的烏雲縫隙 陽光斜斜落向 熟睡的海 海天相接處 一道光 忽亮忽暗 海眨著眼睛啊 匯集眾水的海 竟夢見 它是一顆露珠 飄落到草尖 所有動植物 也都夢見海的夢 難怪牠們沒有戰爭 做為人的我 卻夢見從草尖的露珠 站起來 張望 還有誰? ◆ 첸밍커(陳明克) = 1986년 칭화대학교에서 물리학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1987년에 그는 ‘립시(笠詩)’문학단체에 가입했다. 현재 그는 ‘립시(笠詩)’문학지의 편집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12권의 시집을 출간했으며, 1권의 시선집, 2권의 이중 언어 시집(중국어-영어 1권, 중국어-스페인어 1권), 중단편소설집 2권이 있다. 8개의 문학상을 받았다. 그의 작품은 은유적이며 삶의 의미를 탐구하고 있다. ☞ 강병철 작가 = 1993년 제주문인협회가 주최하는 소설부문 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며 문단에 데뷔했다. 2016년 『시문학』에서 시인으로 등단했다. 2012년 제주대에서 국제정치전공으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제주대학교 평화연구소 특별연구원, 인터넷 신문 ‘제주인뉴스’ 대표이사, (사)이어도연구회 연구실장 및 연구이사, 충남대 국방연구소 연구교수, 제주국제대 특임교수, 한국해양전략연구소 선임연구위원, 제주통일교육센터 사무처장 등을 역임하고 현재 한국평화협력연구원 연구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제33대 국제펜클럽한국본부 인권위원이며 국제펜투옥작가회 위원으로 활동했다. 제34대 국제펜클럽한국본부 인권위원으로 재선임됐다. 국제펜투옥작가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신장위구르 자치구역의 대표적인 위구르족 작가 중의 한 명인 누르무헴메트 야신(Nurmuhemmet Yasin)의 「야생 비둘기(WILD PIGEON)」를 번역 『펜 문학 겨울호』(2009)에 소개했다. 2022년에는 베트남 신문에 시 ‘나비의 꿈’이 소개됐다. ‘이어도문학회’ 회장을 역임하였으며 이어도를 소재로 한 단편소설 ‘이어도로 간 어머니’로 월간 ‘문학세계’에서 주관한 ‘제11회 문학세계 문학상’ 소설부문 대상을 받았다. 한국시문학문인회에서 주관하는 제19회 ‘푸른시학상’을 수상했다. 강병철 박사의 시와 단편소설은 베트남, 그리스, 중국 등 여러 나라 언어로 번역돼 소개되고 있다. 최근엔 중국의 계간 문학지 《국제시가번역(国际诗歌翻译)》에도 강 작가의 시 두편이 소개되었다.
간통죄는 2015년 2월 26일자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으로 사라졌다. 간통행위를 국가가 개입하여 처벌하는 것은 개인의 성적 자기결정권,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며, 가정의 유지는 당사자의 자유로운 의지에 맡겨야 할 것이지 형벌을 통하여 강제할 수는 없다는 이유였다. 상대 배우자에 대한 보호는 형법이 아닌 민사상 손해배상청구 등을 통해서도 충분히 달성할 수 있다는 것이다. 헌법재판소 결정에 관하여 당시에도 그렇고 현재까지도 찬/반 논쟁이 이어지고 있으나, 어찌 됐든 위 결정 이후에는 상대 배우자의 보호에 관하여는 민사소송에 그 해결이 맡겨져 있다. 외도문제를 민사소송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유책 배우자 또는 외도 상대방(상간녀 혹은 상간남)을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의 소를 제기한다. 외도 상대방에게 소를 제기한 경우 상대방의 대응은 크게 두 가지 입장으로 정리된다. 하나는 상대방이 결혼한 사실을 알지 못했으므로 불법행위의 고의가 없었다(자신은 불륜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만남의 기간이 짧고 횟수가 적으며, 유책 배우자와의 공동으로 한 점을 고려하면 원고가 청구하는 위자료 액수는 과다하다는 주장이다. 전자라면 결혼 사실을 알 수밖에 없었다는 전후 사정을 설득력 있게 풀어야 할 것이고, 후자라면 유책 배우자와 상간 상대방의 만남의 기간과 횟수가 잦았다는 점을 입증해야 한다. 만남의 기간과 횟수를 입증하기 위한 중요 증거 중 하나는 통신기록이다. 그간 통신사는 개인정보보호를 이유로 통신기록을 제출을 거부하여 입증에 어려움이 있었으나, 지난 7월 17일 대법원은 통신사가 법원의 문서제출명령을 거부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취지로 판결하여 향후 유책 배우자와 외도 상대방 사이의 통신기록을 조회하는 것도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위와 같은 과정을 거쳐 인용되는 위자료 액수를 고려하면 민사소송으로 상대 배우자에 대한 보호가 충분한지에 관하여는 의문이다. 위자료는 통상 1000만 원에서 3000만 원 사이로 형성된다. 최근 이혼소송에서 유책 배우자가 위자료 2억 원을 지급하라는 판결이 나와 화제가 되긴 하였으나, 상당히 이례적인 판단이고 통상 3000만 원을 초과하기 어렵다. 배우자의 불륜으로 인해 얻은 정신적 충격은 평생의 상처가 되는 점을 고려하면 턱없이 적은 금액이다. 더 나아가서는 외도 상대방에게 면책권을 부여해주는 꼴이 되어버리기도 한다. 배우자 상간의 사법적 해결방법이 손해배상청구가 유일하다는 점을 고려하여 위자료 액수를 상당 부분 증액할 필요가 있다. ☞김대현은? = 제주도 감사위원회, 법무법인 현답에서 근무하다 제주에서 개업했다. 대한변호사협회 대의원, 대법원 국선변호인, 헌법재판소 국선대리인, 제주지방법원 국선변호인 등으로 활동 중이다.
“고향을 염려하지만 고향만을 지키지 않는다. 감히 뛰어들며 나아갈지 물러설지를 안다. 자신은 하지만 자만하지는 않는다. 이익을 중시하지만 재물만을 지키지는 않는다.” 이런 정신으로 온주인은 중국에서, 세계에서 자신만의 세상을 만들었다. ‘밖으로 나아가’는 전략을 세웠다. 온주의 민간자본으로 ‘금지하지만 않으면 한다’1)는 다중 증식 형식을 형성시켰다. 온주 사람이 나가고, 온주 상품이 나가고, 온주 브랜드가 나가고, 온주 시장이 나가고, 온주 기업이 나가고, 온주 자본이 나가는 등 다양하면서도 생동적인 나가는 이상적인 경관을 창출하였다. 온주 사람은 어떤 것이나 다 생각하고 어떤 것이나 다 한다. 작은 것은 단추 구멍, 신발과 모자, 안경, 상표에서 큰 것은 복장, 가정용 전기기구, 물류센터까지 사람들이 생각해낼 수 있는 업무라면 모두 고생을 감내하는 온수 사람들의 그림자가 있다. “작은 상품, 큰 시장, 소규모, 큰 협력, 작은 기계, 큰 동력, 작은 사람, 큰 기백” 온주 유형은 온주 사람 특유의 지극히 강한 치부 욕망과 창업 정신이 결합해, 감히 생각하고 감히 행동하는 온주 사람을 평범한 사회에서 뛰쳐나오게 했다. 온주 특색의 발전해 나가는 길을 개척하였다. 온주의 신발 제조 기업, 의류 기업, 안경 생산 기업, 라이터 공장 등, 유시(柳市)의 저압 전기기구, 금향(金鄕)의 배지 휘장, 용항(龍港)의 인쇄, 영계(靈溪)의 포장 등 사람들의 눈에 차지 않는 것들을 온주 사람은 중국 제일, 아니 세계 제일로 만들어 냈다. 이것은 바로 ‘작은 상품, 큰 시장’의 승리다. 온주의 기업은 온주, 절강, 중국 시장을 뛰어넘어 모든 국제시장으로 시야를 넓혔다. 온주 사람들은 알고 있었다. 그저 중국 내 어떤 지역 시장만을 자신의 경영 대상으로 삼는다면 4000여 신발공장, 3000여 의류 기업은 생존할 수도 발전할 수도 없다는 것을. 온주 사람들이 자신의 발전 경험을 이야기할 때 다음과 같이 개괄하였다. “천산만수(千山萬水)를 돌아다녔고 천신만고(千辛萬苦)를 겪었으며 천방백계(千方百計)를 생각하였고 천가만호(千家萬戶)를 걸어 들어갔다.” 여기에서 ‘천산만수’와 ‘천가만호’는 실제로 시장 반경을 가리키는 것이고 온주 사람이 ‘돌아다녔고’, ‘걸어 들어갔다’는 말은 시장에 다가가고 끊임없이 시장을 개척한 사실을 가리키는 것이다. 16세 때에 조지 워싱턴은 집을 나서 스스로 세상을 돌아다니기 시작하였다. 버지니아 서부로 가는 탐험대 중 측량원의 학도가 됐다. 1년 후에 버지니아 컬페퍼 카운티를 측량하였다. 1753년, 21세 조지 워싱턴은 버지니아 당국에서 서부 펜실베이니아로 파견되었다. 프랑스 정부가 오하이오 주에서 손을 떼도록 요청하는 일이었다. 이런 경험을 탐험일기 『조지 워싱턴 소령 일기』를 발표하였다. 이 일기를 빌어 조지 워싱턴의 대담, 지혜, 책략 등 명성이 식민지 지역과 유럽에 알려지게 됐다. 조지 워싱턴이 나중에 어떻게 됐는지 더 이상 무슨 설명이 필요할까. 눈앞에 있는 대지만 마음속에 두고 단조로운 분위기와 사유 중에 자신을 가둬서 여가가 없어 나가지 못하는 것에서 나가려 하지 않는 것으로, 다시 나갈 수 없는 것으로 변하면 결국 어떤 발전성도 없게 된다. 밖으로 나가는 것은 쉽지 않다. 광활한 대지로 뛰쳐나간다는 것은 더더욱 쉽지 않다. 그러나 발전하고 싶거들랑 성공하고 싶거들랑 반드시 밖으로 나가라. 바깥세상을 받아들이라. 자기 사상과 세상을 합성해 보라. 그러면 진정한 자신의 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 旅卦 ䷷ : 화산려(火山旅) 리(離: ☲)상 간(艮: ☶)하 초육은 나그네가 자잘하니[쇄쇄( )], 이는 그 재앙을 취함이다.(初六,旅瑣瑣,斯其所取災.) 구사는 나그네가 거처하고 물자(物資)와 도끼를 얻으나 내 마음이 유쾌하지 않다.(九四,旅于處,得其資斧,我心不快.) [傳] 려괘(旅卦䷷)는 「서괘전」에 “풍(豊)은 큼이니, 큼을 다 한 자는 반드시 거처를 잃는다. 그러므로 려괘로써 받았다”라고 했다. 풍성함이 궁극에 이르면 반드시 편안한 바를 잃으니, 려괘가 이 때문에 풍괘(豊卦)의 다음이다. 괘가 리괘(☲)가 위에 있고 간괘(☶)가 아래에 있으니, 산[山]은 멈추어 옮기지 않고 불[火]은 행하여 머물지 아니하니, 떠나가서 거처하지 않는 상이다. 그러므로 나그네가 되고, 또 밖에 걸려 있으니, 또한 나그네의 상이다. 1) 법률, 행정 법규로 금지 하지 않은 기업 혹은 개인 경영의 업종과 항목에 그 경영을 허락하는 것을 말한다. ☞이권홍은? =제주 출생. 한양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나와 대만 국립정치대학교 중문학과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국현대문학 전공으로 『선총원(沈從文) 소설연구』와 『자연의 아들(선총원 자서전)』,『한자풀이』,『제주관광 중국어회화』 등 다수의 저서·논문을 냈다. 현재 제주국제대학교 중국어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