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세계대전이 한참이고 온 유럽이 독일의 군홧발에 짓밟힐 때, 영국은 여러 나라의 저항군 세력들을 모아 특수부대를 만들었다. 독일은 영국과 유럽의 공격에 대비하고, 중요하게는 스웨덴에서 운송해오는 철광석을 보호하기 위해 노르웨이를 점령한 상태다. 1943년, 노르웨이 출신들로 이루어진 부대원 12명은 독일군의 주요 거점을 파괴하려는 작전을 부여받고 노르웨이로 상륙을 시도하게 된다. 배가 미처 육지에 닿기도 전에 독일군 함정에 발각되어 11명은 잡혀서 모진 고문을 받다가 처형당하지만 혼자 살아남은 12번째 군인, 얀(토마스 굴레스타드)의 탈출기를 영화는 담고 있다.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영하 20도가 넘는 날씨와 얼어붙은 바다와 눈 덮인 산에서 맨발로 걸어야 했고, 4㎞나 되는 바다를 헤엄쳐야 하는 등 인간이 보여줄 수 있는 극한 상황은 모두 담는 듯하다. 마을 사람들의 도움으로 외딴 오두막에 숨겨진 얀은 잡히면 죽는다는 공포감으로 매일 밤 악몽을 꾸었고, 심한 동상을 입은 발가락들은 괴사되기에 이른다. 결국 검게 죽어버린 발가락들을 자기 손으로 잘라내야 했다. 탈출하는 과정에서 얼어붙은 바다를 몇 시간 동안 헤엄쳤던 것, 눈사태를 만나는 것이나 눈 속에 며칠이고 묻혀야만 했던 상황들이 있었지만, 영화에서 가장 처절하게 보였던 부분이 바로 자기 발가락을 잘라서 뜯어내는 장면일 것이다. 자신의 발가락을 잘라내야 하는 동상 우리 몸은 추워지면 체온을 유지하기 위해 말단부의 혈관을 수축시켜 열이 발산되는 것을 막으려는 경향이 있다. 신체의 끝부분인 귀, 손가락, 발가락들이 동상에 걸리고도 치료받지 못하고 추위에 장시간 노출하게 되면 결국 혈액을 공급받지 못해서 괴사, 즉 썩어버리게 된다. 심한 경우에는 점점 더 괴사 부위가 넓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 절단하게 되는 경우도 많다. 잘려진 발가락으로 제대로 걷기도 힘들면서 중립국이던 스웨덴으로 가는 험난한 여정 속에서 급기야는 눈사태까지 만나서 피투성이가 되어 몸은 만신창이가 된 얀. 그를 돕는 노르웨이 사람들은 한결같이 말한다. “얀, 당신이 살아있다는 건 다 이유가 있는 거예요.” “독일인들이 당신을 찾지 못하는 건 우리 노르웨이인들에게는 자긍심이 되고 있어요.” 오두막에 숨겨준 사람들, 썰매를 만들어서 거동이 힘든 얀을 옮기던 사람들, 독일군의 위협에도 목숨 걸고 국경을 넘게 만든 사람들..... 그들을 만나면서 얀에게는 살아서 탈출해야만 하는 이유가 점점 강해져만 갔다. 탈주 63일째, 결국 얀은 스웨덴으로 탈출하게 되고, 안전하게 영국으로 돌아가 훈련 교관이 되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이 영화는 노르웨이 영화로 대자연과 설경을 배경으로 하고 오로라도 보여주면서 아름다운 장면들을 연출하고자 애쓴 흔적이 보인다. 하지만 감독은 아름답게만 봐야 할 배경 속에서 살기 위해 극한의 몸부림을 치는 얀의 투쟁을 담으며 역설의 미를 드러내려고 했던 것 같다. 동상은 추운 곳의 이야기를 담는 영화에서 볼 수 있는데, 북극 탐험대의 이야기를 다룬 ‘잃어버린 시간 속에서(Against the ice, 2022)’라는 작품에서도 극한의 추위 속에서 얼어버린 손가락, 발가락을 잘라야 하는 모습을 보게 되면 그 힘든 상황을 알 수 있을 것 같다. 동상과 비슷하지만 다른 참호족 동상과 비슷한 것으로 참호족이라는 것이 있다. 영어로는 ‘트렌치 풋(Trench foot)’이라고 한다. 말 그대로 참호(Trench) 속에 오래 있다 보니 발생해서 만들어진 질병 이름이다. 나폴레옹의 러시아 원정 기간 중에 이 병이 많이 생겨서 프랑스의 군의관 도미니크 장 라레(Dominique-Jean Larrey, 1766~1842)가 1812년 처음 이 병의 원인과 치료 등을 기술하였다고 한다. 라레는 부상당한 병사들을 효율적으로 운송하는 방법을 고안하다가 마차를 개조한 구급차를 만들어 전장에 투입해서 많은 병사들을 살렸다. 훗날 구급대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의사다. 이후 1차 세계대전에서 참호전(Trench warfare)이 주로 벌어졌고, 여기에서 많이 발생하다보니 이름도 참호족이 되었다. 참호는 또 훗날 멋쟁이들의 대명사가 된 트렌치 코트의 기원이기도 하다. 비를 막아주면서 따뜻한 안감을 댄 긴 외투는 참호에서 입기 좋은 옷이 되어 당시 장교들의 공식 군복이 되었다. 그래서 지금도 민간에서 입는 트렌치 코트에는 계급장을 부착하던 견장, 수류탄이나 탄창을 걸 수 있는 허리의 디자인들이 그대로 남아있다. 동상과 참호족은 증상이나 위험성이 비슷하기 때문에 혼동될 수 있다. 동상(Frostbite)은 말 그대로 얼어버릴 만큼 아주 차가운 조건에서 생기는 반면에 참호족은 15℃ 안팎의 다소 따뜻한 온도에서도 생길 수 있다는 차이가 있다. 그리고 동상은 신체의 말단인 귀나 손, 발이 손상되는데, 참호족은 며칠이고 군화를 신은 채로 적과 대치하느라 발이 오래도록 습하게 군화 속에 갇혀있어서 발에만 주로 발생하게 된다. 동상은 감염과 크게 관련 없이 인체의 방어작용으로 자신의 일부를 없애는 자연스런 작용이라면, 참호족은 방치하고 오래 두게 되면 세균 감염으로 살이 썩게 되는 ‘괴저(Gangrene)’가 생기면서 패혈증으로 사망하기도 한다. 다행히 참호족은 환기가 잘되고 혈액 순환을 원활하게 해주면 원상회복 되는 경우가 많다.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고병수는? = 제주제일고를 나와 서울로 상경, 돈벌이를 하다 다시 대학진학의 꿈을 키우고 연세대 의대에 입학했다. 의대를 나와 세브란스병원에서 가정의학 전공의 과정을 마쳤다. 세브란스병원 연구강사를 거쳐 서울 구로동에서 개원, 7년여 진료실을 꾸리며 홀로 사는 노인들을 찾아 다니며 도왔다. 2008년 고향 제주에 안착, 지금껏 탑동365의원 진료실을 지키고 있다. 열린의사회 일원으로 캄보디아와 필리핀, 스리랑카 등 오지를 찾아 의료봉사도 한다. '온국민 주치의제도'와 '주치의제도 바로 알기' 책을 펴냈다. 한국일차보건의료학회(KAPHC) 회장, 한국장애인보건의료협회(KAHCPD) 부회장,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이사장 등을 맡아 보건의료 선진화 방안과 우리나라의 1차 의료 발전방안을 모색하는 보건정책 전문가다. 2020년 4.15 총선에 정의당 후보로 나와 제주갑 선거구에서 분루를 삼켰지만 총선 직후 곧바로 코로나19 감염이 창궐하던 대구행 의료자원봉사에 나서 숱한 이들에게 잔잔한 감동을 선사했다. 정의당 제주도당위원장을 역임했다.
사람은, 재능이 있는 사람은, 재능이나 포부를 드러내지 말아야 한다. 모든 일에 요란하게 떠벌이거나 기세등등해서는 안 된다. 효과적으로 자신을 보호할 바에야, 충분하게 자기 재능을 발휘할 수 있는 바에야, 맹목적으로 교만하고 우쭐대는 이상심리를 배제하고 이겨내고 더더욱 겸허하고 양보하는 미덕을 길러야 한다. “꽃은 반쯤 피었을 때, 술은 반 정도 취했을 때가 좋다.” 그렇지 않은가. 모든 꽃이 활짝 피어 아름다울 때면 사람들에게 꺾이거나 시들기 시작한다. 술에 만취하면 좋은 꼴을 보이기 어렵지 않던가. 인생도 이와 같다. 뜻이 이루어져 득의만만할 때 의기양양해 거드름을 피우거나 안하무인이 되어서 저밖에 없다고 뽐내서는 안 된다. 그렇지 않으면 타인에게 과녁이 되기 쉽다. 어떤 출중한 재능과 지혜를 가지고 있던지 간에 명심하여야 한다 : 자신을 굉장히 뛰어나다거나 지극히 빼어나다고 여기지 말라. 구국제민의 성인군자인 것처럼 오만방자해서는 안 된다. 칼끝을 거두어들이고 꼬리를 오므리라. 겸허하게 사람을 대하라. 옛날에, 칼끝을 너무 드러내 화를 입은 전형이 있다. 공로가 혁혁해 군주의 위세를 압도한 신하다. 강산의 주인이 되려고 다툴 때 각지의 영웅들은 한 장군의 지휘아래 모여들게 된다. 재능이 전부 드러난다. 하나같이 출중한 능력을 갖추고 있다. 군주는 자신이 도모하는 천하재패의 야심을 실현하려고 개개인의 재능이 필요하다. 그런데 천하가 안정되면 그런 용장과 공신의 재능은 황제 마음속의 근심이 되어버린다. 그렇기에 개국 초기에 공신을 주살하는 일이 여러 차례 벌어졌다. “날던 새가 모두 없어지면 좋은 활은 갈무리되고 적국이 무너지면 중요한 신하는 죽는다.” 토사구팽이다. 한신(韓信)은 미앙궁(未央宮)에서 피살되었고 송 태조는, “술잔 들면서 공신들의 병권을 없앴다.”〔배주석병권(杯酒釋兵權)〕 주원장(朱元璋)은 공신들을 모아 연회를 베풀면서 경공루(慶功樓)를 불태워 버렸다. 예외는 없었다. 『삼국연의』를 읽어본 사람이라면 유비(劉備)의 죽음에 주의하였을 것이다. 유비가 죽자 제갈량(諸葛亮)은 큰일을 하지 않은 듯 보였다. 운주유악하고 풍부한 경륜의 칼끝을 몽땅 노출하였던, 유비가 살아있을 때와 같은 행동은 하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유비와 같은 명군이 있을 때는 제갈량은 시기나 질투를 받을 걱정을 할 필요가 없었다. 유비도 정도를 벗어나지 않았다. 그렇기에 제갈량은 온힘을 다하여 자기 재능을 발휘하면서 유비를 도와 천하를 공략하였다. 천하삼분의 형세를 완성하였다. 유비가 죽자 아들 아두(阿頭)가 계승하였다. 유비는 여러 신하 앞에서 말했다. “만약 이 녀석을 보좌할 수 있거들랑 잘 보필해주시오. 그런데 이 녀석이 군주의 재목이 아니라면 그대가 군주의 자리에 앉으시오.” 제갈량은 갑자기 식은땀이 흘렀다. 어찌 할 바를 몰랐다. 울며 땅에 엎드려 말했다. “신이 어찌 온힘을 다하지 않을 수 있겠나이까. 충정의 절개를 죽을 때까지 어찌 게을리 할 수 있겠나이까?” 말을 마친 후 피가 흐를 때까지 머리를 땅바닥에 조아리며 절했다. 유비가 아무리 어질고 의롭다고는 하나 국가를 제갈량에게 넘길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그가 제갈량에게 군주가 되라고 한 말은 진심이었을까? 유비가 제갈량을 죽일 마음이 없었다고 얘기할 수 있을까? 이후 제갈량은 한편으로는 행동을 겸허히 하고 조심하며 신중하게 하여 자기 모든 것을 다 바쳤고 한편으로는 일 년 내내 밖에서 정벌전쟁을 벌이면서 ‘천자를 끼고 있다’는 약점이 생길 구실을 없앴다. 게다가 그는 칼끝을 완벽하게 거두어들였다. 일부러 자신은 나이가 들어 쓸모없다는 것을 나타내면서 화가 자신에게 미치는 것을 피했다. 이것이 도광양회(韜光養晦)의 계책이다. 칼끝을 거두어들인 것은 제갈량이 대단히 총명했음을 대변한다. 칼끝(재능)을 노출하지 않으면 영원히 중용되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 칼끝을 너무 노출하면 오히려 사람에게 모함받기 쉽다. 잠시 성공은 얻을 수 있으나 자신이 자기 무덤을 파게 될 것이다. 우리가 자신의 재능을 펼칠 바로 그때, 위기의 씨앗도 함께 뿌려진다. 그렇기에 재능을 밖으로 드러낼 때에는 적당한 정도에서 그쳐야 한다. 오직 겸허하며 조심하고 신중해야만 사람의 존경을 받는다. 그래서 『주역』은 말한다. “겸손하고 겸손한 군자이니, (겸손으로써) 큰 내를 건너더라도(건넘이) 길하다.” 겸허하면서도 조심하고 신중한 군자야말로 겹겹이 쌓인 곤경을 극복할 수 있다. 모든 장애를 없앨 수 있다. 결국에는 안전하고 길하며 상서롭게 된다. 『주역』은 또 말한다. “부유하지 않고도 이웃함이니, 침벌(侵伐)을 씀이 이로우니(이롭고), 이롭지 않음이 없으리라.” 무슨 말인가? 비록 부유하지 않더라도 산골짝이만큼 깊이 겸허하고 두 마음이 없음을 맹세하듯 의지가 굳으면, 가까운 이웃과 함께 거만하고 난폭하며 안하무인인 사람을 정벌하는 데에 이롭고, 어떤 불리한 결과도 생기지 않는다. 계곡만큼이나 깊은 겸허함이 있어야만 더 많은 인재를 만날 수 있다. 끊임없이 타인에게서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특히 호적수에게서 자신이 부족한 점을 충분히 찾아볼 수 있다. 자신의 ‘적수’는 자기의 최고 스승이다. 끊임없이 장점을 취하고 단점을 보완하면서 자신의 실력을 키워나가라. 그래야 거만하고 건방지게 되지 않는다. 자만하여 자신의 처지를 잊어버리지도 않게 된다. 복잡하고 다변하는 사회에서 사람 마음은 갈수록 들썽해지고 있다. 들썽하면 사람이 경망스럽게 된다. 자신의 처지를 잊어버리기 쉽다. 그러면 우리는 너무 많은 것을 잃게 된다. 아름다운 꽃을 곁에 두려면? 사업을 끊임없이 발전시키려면? 지금부터라도 겸허하고 조심하고 신중해지자. 계곡처럼 깊은 겸허함을 가지려 노력하자. ***** 謙卦 ䷎ : 地山謙(지산겸), 곤(坤 : 坤☷)상 간(艮: ☶)하 겸은 형통하니, 군자가 끝마침이 있다.(謙,亨,君子有終.) 「대상전」에서 말하였다 : 땅 속에 산이 있는 것이 겸(謙)이니, 군자가 그것을 본받아 많은 것을 덜어내 적은 데에 더해 주어, 물건을 저울질하여 베풂을 고르게 한다.(象曰,地中有山,謙,君子以,裒多益寡,稱物平施.) 겸은 높으며 빛나고, 낮아도 넘을 수 없으니, 군자의 끝마침이다./겸은 높은 사람은 빛나고, 낮은 사람도 넘볼 수 없으니, 군자의 끝마침이다.(謙,尊而光,卑而不可踰,君子之終也.) 겸은 형통하니, 군자가 끝마침이 있다.(謙,亨,君子有終.) 땅 속에 산이 있는 것이 겸(謙)이니, 군자가 그것을 본받아 많은 것을 덜어내 적은 데에 더해 주어, 물건을 저울질하여 베풂을 고르게 한다.(地中有山,謙.君子以裒多益寡,稱物平施.) 부유하지 않고도 이웃함이니, 침벌(侵伐)을 씀이 이로우니(이롭고), 이롭지 않음이 없으리라.(不富,以其鄰,利用侵伐,无不利.) [傳] 겸괘(謙卦䷎)는 「서괘전」에서 “크게 소유한 자는 가득 차게 할 수 없으므로 겸괘로써 받는다”라고 했으니, 그 소유함이 이미 큰 것은 가득 차는 데까지 이르게 할 수 없고 반드시 겸손하고 덜어냄이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대유괘(大有卦䷍) 다음에 겸괘로 받은 것이다. 괘의 형태는 곤(坤☷)이 위에 있고 간(艮☶)이 아래에 있으니, 땅속에 산이 있는 것이다. 땅의 몸체가 낮아서 아래에 있는데, 산이 높고 큰 물건이면서 땅의 아래에 있으니 겸손함의 상이며, 숭고한 덕으로 낮은 것의 아래에 있으니 겸손함의 뜻이다. ☞이권홍은? =제주 출생. 한양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나와 대만 국립정치대학교 중문학과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국현대문학 전공으로 『선총원(沈從文) 소설연구』와 『자연의 아들(선총원 자서전)』,『한자풀이』,『제주관광 중국어회화』 등 다수의 저서·논문을 냈다. 현재 제주국제대학교 중국어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지금 원도심 칠성통에는 '찾아가는 미술관, 첫번째 재생;칠성통'이라는 전시가 한창이다. 7월 3일 까지 진행된다. 위 그림은 이 기획전시에 출품된 작품이다. 전시되고 있는 공간은 일반 갤러리가 아니고 원도심 칠성통에 있는 4층 건물로 현재 비어있으며 오래되고 상징적인 건물이다. 벽과 바닥 천정이 거칠게 노출되어 있으며 벽에 작품을 걸 수 없는 상태다. 그래서 아이디어를 내 건축공사 현장에서 쓰이는 비계에 작품들이 설치되어 있다. 그러한 공간에 작품이 어울리려면 작품크기도 커야 하고 화면도 강한 질감과 붓질이 필요할 듯 해서 일부러 이호해수욕장의 제주자연모래를 퍼와 모래의 거친 질감을 바탕으로 표현해 보았다. 제주의 자연모래를 사용한 것도 나름 의미가 있다 하겠다. 그리고 아크릴을 이용하여 과감하고 즉흥적인 드로잉과 붓질을 통해 생명과 자연의 기운을 전달하려 한 작품이다. 전체적인 화면은 새로운 새벽이 시작된다는 의미로서 블루를 깔았고, 포인트는 하늘에 떠 있는 일곱색의 무지개 빛이다. 그 빛이 건물들 사이로 스며드는 것을 주안점으로 삼고 있다. 이 전시는 뉴미디어 아트를 포함, 다채로운 시각예술장르의 작가11인이 참여하여 함께 만든다. 낙후되고 쇠퇴한 원도심에 생기를 불어 넣고자 칠성통쇼핑타운 입구 4층짜리 비어있는 건물 전층을 활용한 뮤지엄급 전시라 자부한다. 오는 26일 일요일 오후 6시에는 전시 이벤트행사로 제주민요패 소리왓 공연이 펼쳐진다. 많은 관심을 가져주면 좋겠다. 이 전시는 처음부터 이러한 취지의 전시로 기획되어진 것은 아니었다. 제주애월고 외부강사로 있었던 나를 포함하여 몇몇 사람들이 애월고를 관두게 되는 바람에 서로 그동안 정도 들고 헤어지기 아쉬워 의기투합, 만들어졌다. 다들 평소 작업에 갈증을 갖고 있던터라 흔쾌히들 수락하였다. 전시에 대한 여러 가지 담론을 모색하다가 중간과정에 먼저 입도한 건축가이면서 미술기획을 경험했던 고향선배와의 만남이 담소 레지던시 선배 작업실에서 우연히 이루어졌다. 뒤이어 또 제주에 내려와 있던 과거 내 제자 미술큐레이터의 적극적인 참여로 본격적인 이 전시기획이 시작되게 되었다. 전시기획이 확장되면서 서로 인연된 만남들이 또 귀한 인연을 낳고 새로운 만남이 이어졌고 무언가 필요한 상황이 될 때나 어떠한 순간에 함께할 사람들이 이 전시 프로젝트에 동참할 사람들이 나타나고 모이기 시작하였다. 모두 각자의 영역에서 프로의 길을 걷는 사람들이었다. 살다보면 사람이 상처도 주기도 하지만 사람이 용기와 희망을 주기도 한다. 사람이 있어 모든 일은 이루어지고 만들어진다. 사람이 곧 자산이기도 한 이유다. 내 일같이 적극적으로 참여해주고 함께 문제를 풀어가는 고마운 만남이 쉽지는 않을 터인데 '너영나영'이라는 제주어처럼 각자가 모여 함께 큰일을 만들어 가는 것 그 자체가 예술이 아닐까 한다. 이 전시는 이른바 문화예술지원금 없이 시작한 전시다. 그래서 오히려 더 값진 전시라 생각한다. 발로 뛰어다니면서 순전히 개인적인 후원과 협찬으로 이루어졌다. 600만원의 금액으로 모든 전시기획에 필요한 요소를 충족한 것은 기적이라 할 수 있다. 그만큼 이 전시에 물적.심적으로 후원과 협찬을 통해 도움준 사람들, 친구들, 지인들 그리고 전시기획에 참여하여 프로기질로 자기 역량을 십분 발휘해준 사람들 등, 어느 한사람이라도 빠지면 이 전시는 성사될 수 없었다. 이 자리를 빌어 모두에게 감사하다는 마음을 전한다. 그래서 기적은 사람이 만들기도 하는 것이리라. 기획은 또 하나의 예술이다. 사람들이 모여 전체적인 짜임새를 갖춰가야 하고 하나의 기획을 실행하기까지 무수한 일들을 해결해야 한다. 여기까지 크게 무리없이 진행된 것만 해도 감사할 일이지만, 지나보면 모든 일들이 참 신기한 일들이 연속이었음을 알 수 있다. 고민하던 문제가 수월히 해결되고 오히려 의외의 성과를 낳는 것을 보면 모인 사람들이 탁월한 역량과 노력의 몫도 크지만, 모든 것이 우연같아 보이지만, 우리가 알 수 없는 필연적 운명같은 보이지 않는 힘들이 작용하고 있음 또한 부인할 수 없겠다. 억지로 되는 것보다 순리대로 된다는 것은 이기적인 욕심과 집착, 아집과 교만같은 자기의 억지힘보다 이타적인 배려, 감사, 사랑에 더 큰 부등호를 그릴 때 모든 일은 저절로 풀리기도 함을 배운다. 칠성통을 포함한 구제주 원도심이 예전의 영광도 찾고, 거주하고 있는 모든 이들이 활기와 생기를 찾아 함께 번영하길 기대해본다. 마지막으로 이 전시의 목적과 취지 그리고 위 작품의 본래 내용을 기록으로 남긴다. <찾아가는 미술관/첫번째재생/칠성통>을 시작하며 주요한 시대마다 형성기를 지나 번영기 그리고 쇠퇴기가 존재하듯 각 도시들도 마찬가지로 나름의 번영과 쇠퇴의 역사를 지니고 있다. 구도시는 신생도시에게 자리를 내어주며 추억의 한켠으로 자리한채 한 때의 번영은 서서히 옅어지고 만다. (찾아가는 미술관,첫번째 재생:칠성통)은 제주의 정치,경제,역사의 중심을 담당했던 원도심 칠성통 거리에 비어 있는 유휴공간을 지역주민과 예술,제주와 타 지역간 소통을 위한 기회의 자리로 만들고자 기획되었다. 숨을 쉬고자 물밖으로 뱉어 내는 해녀들의 거친 ‘숨비소리’처럼 예술가와 지역민들의 가쁜 삶의 숨소리를 이 전시를 통해 들려주고, 자신만의 시선으로 도시와 일상, 제주의 삶을 해석한 다양한 작가들의 작품을 선보여 문화예술로 제주 원도심의 재생을 꾀하고자 한다. 관람객들의 방문으로 칠성통 원도심거리에 생기를 불어넣고 다채로운 장르의 시각예술작품을 통해 ‘재생과 지속 가능한 공존의 길은 어디에 있는가?라는 질문과 함께 고민해 나가고자 마련되었다. ............................................ 일곱개의 빛. 이젠 빛바래고 낡아버린 과거의 추억속의 사진처럼 변해버린 내고향 제주 원도심 칠성통. 칠성의 빛 , 일곱개의 무지개 빛이 재생의 빛이 되어 칠성통에 다시 임하고 내려앉아 예전의 왕성하고 활력이 넘치는, 새로운 희망의 무지개가 뜨는 거리가 되기를 마음모아 그려본다 인간의 상상은 현실로 구현된다. 주어진 모든 것에 감사하다.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한상범은? = 제주제일고, 홍익대 미술대학 동양화과를 나와 홍익대 미술대학원에서 동양화를 전공했다. 담묵회 창립회원, 아티스트그룹 '정글' 회원, 민족미술협회 회원, 한국미술협회 노원미술협회 회원, 디자인 출판 일러스트작가, 한강원 조형물연구소 디자이너, 서울 제주/홍익조형미술학원 원장, 빛 힐링명상가로 활동하고 있다.
어느 날 강둑에서 운동을 하던 사람들이 시체 한 구를 발견한다. 시체는 흉측한 모습으로 피폐해져 있었다. 그뿐 아니라 며칠 사이에 여기저기 전국 물가에서는 사람 시신들이 떠오른다. 신고가 빗발치고, 사태가 심각해지자 정부는 비상대책본부를 구성한다. 하지만 전문가들과 함께 모인 대책본부 내에서도 정확한 원인을 못 찾고 신종플루 같은 새로운 바이러스설, 북한에서 강으로 퍼뜨린 생화학 무기설 등 근거 없는 주장만 오고 간다. 사람들이 갑자기 미친듯이 물을 찾거나 물로 뛰어들면서 자살을 해 버리는 황당한 현상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시간이 지나면서 원인이 기생충인 ‘연가시’란 놈임을 알게 된다. 그것들은 사람들이 물에 들어갔을 때 항문이나 구강을 통해 인체 내로 들어가 기생하다가 뇌에 영향을 주면서 사람들을 미치게 만들어 물로 뛰어들게 만들었다는 결론을 얻는다. 연가시란 놈은... 연가시는 철사 모양으로 기다랗고 흑갈색의 유선형 기생충이다. 물속에서 모기의 애벌레인 장구벌레 같은 중간숙주를 거쳐서 최종숙주인 육상 곤충의 배 속에 들어가 영양분을 빨아먹으며 20㎝ 내외 크기인 성충으로 자라는데, 2m까지 긴 것도 보고가 된다. 연가시가 최종숙주로 삼는 육상 곤충들은 다양해서 사마귀, 귀뚜라미, 딱정벌레, 심지어는 바퀴벌레에까지 기생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곤충 배 속의 양분을 다 가로채면서 내장 기관이나 체강 내부에 몸을 꼬고 살아가다가 산란기가 시작되면 곤충으로 하여금 물로 뛰어들어 죽게 만든다. 그래서 연가시의 학명은 ‘물’이란 뜻이 들어있는 ‘Gordius aquaticus’라는 용어를 쓴다. 자기를 먹여 살린 곤충이 물에서 죽어갈 때 연가시는 항문으로 유유히 빠져나온 후 물속에서 암수가 어울려 짝짓기를 시작한다. 얼마 후 암컷은 물속 나뭇가지 같은 것에 수백만 혹은 수천만 개의 알을 낳고, 2주 정도 지나면 애벌레가 된다. 그것을 장구벌레가 잡아먹고, 장구벌레가 성충 모기가 되어 육상 활동을 하다가 사마귀 같은 상위 포식자에게 잡아먹히면 연가시 애벌레는 그대로 사마귀에게 옮겨가게 된다. 이후 최종숙주인 사마귀 같은 육상 곤충의 배 안에서 연가시 성충으로 자라는 것이다. 최종숙주 안에서 자란 성충은 배란기가 될 때 곤충이 물로 들어가도록 혼란을 일으키는데, 이것은 연가시가 직접 신경전달물질을 만들어내기도 하지만, 숙주인 곤충의 유전자를 변형시켜서 신경전달물질을 많이 만들도록 조작하여 정신 착란을 일으켜 물속으로 빠져 자살하게 만든다고 알려져 있다. 연가시가 사람에게 들어간다면... 자연에 존재하는 연가시는 사람 몸속에서 살 수 없다. 설사 우연히 들어왔어도 번식을 하지 못하고 죽어버린다. 그래서 영화에서처럼 연가시란 놈을 만났다 해도 공포에 떨 필요가 전혀 없는데, 영화는 이것을 소재로 두려움을 극대화한 것이다. 사람들을 미치게 만들어 죽게 하는 이 기생충을 영화에서는 ‘변종 연가시’라고 명명하였다. 기생충에 대해서 상식으로 알아둘 점은 바이러스나 박테리아와 다르게 기생충은 변종이 쉽게 생기지 않는다는 점이다. 기생충에서 변종이 생긴다 하더라도 수십 년 정도의 상당히 긴 시간이 지나야 가능하다. 도대체 어떤 연유에서 이것들이 변종이 됐으며 사람 속에서 기생하게 된 걸까? 그 이유는 영화 중간에 밝혀진다. 연일 관련 보도가 뉴스 앞부분을 장식하고, 사망자는 100만 명, 200만 명 기하급수적으로 늘어가자 사람들의 불안은 극에 달한다. 보통의 구충제로는 효과가 없고 유일한 치료약은 생산이 중단된 ‘윈다졸’이라는 구충제. 제약회사 영업사원인 재혁(김명민)도 가족들이 걱정되어 주의하라고 말하지만, 결국 그의 부인도 감염을 피하지 못했고 점점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영화가 진행되면서 변종 연가시에 대한 의문점들이 하나, 둘씩 벗겨진다. 윈다졸을 만들던 제약회사가 사람 속에 들어가서 기생할 수 있도록 변종 연가시를 만들었다는 사실과 그 치료제를 개발해서 떼돈을 벌겠다는 속셈이었다. 제약회사는 슬슬 품절된 윈다졸 성분 공개를 미끼로 7000억원의 가치를 지닌 회사를 정부에 5조 원에 팔려는 협상을 한다. 보통 이런 바이러스나 감염 관련 재난 영화들은 의사 혹은 감염병 전문가가 영웅처럼 활약해서 치료 방법을 찾아내면서 끝이 난다. 하지만 이 영화는 회사 제품을 홍보하기 위해서 병원장의 허드렛일도 마다하지 않는 평범한 제약회사 직원인 재혁으로 하여금 문제 해결을 하게 만들었다는 점이 영웅이 등장하는 영화들과 다른 점이다. 영화에서는 보통의 구충제(기생충약)가 효과가 없는 것으로 나온다. 간흡충(간디스토마)이나 촌충 따위는 특별한 약물로 치료하지만,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기생충인 회충‧요충‧구충(십이지장충)‧편충과 같은 선충류(유선형으로 생긴 기생충들)들에게는 메벤다졸, 알벤다졸, 플루벤다졸 같은 구충제가 확실한 효과를 보여 준다. 연가시도 선충류의 일종으로 이 계통 약이 효과가 있을 것이다. 이 약들은 오래 전부터 복용했던 약이고, 영화에서 설정한 것처럼 내성이 생기거나 효과가 없지 않다. 단순한 기생충을 소재로 전 국민에게 한동안 검색 순위 1위를 하게 만들면서 공포감을 일으킨 연가시 영화는 재미와 더불어 기생충 상식을 덧붙여서 본다면 의미가 더 할 것이다. 기생충 관련 영화는 찾기 힘들다. 2019년에 개봉한 ‘기생충(Parasite)’은 제목만 보면 징글징글하고 속을 메슥거리게 만들어진 영화일 듯하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봐서 알다시피 어느 부잣집에 ‘기생’해서 사는 한 가족의 이야기를 다소 엽기적으로 다루고 있다. 봉준호 감독의 연출력과 송강호 등의 연기력이 좋아 황금종려상, 아카데미상을 비롯해서 2019년에 국내외 영화제 상을 싹쓸이 해버린 영화이다. 기생충이 실제 나오지 않았어도 부잣집 사람들을 동경하면서도 질시하는 양가감정이 드러나고, 기생충이 몸속에서 살다가 몸을 망가뜨리는 지경까지 이르게 되는 것을 절묘하게 비유해서 만들었다. 참고로 기생충은 한자로 ‘寄生’이란 말을 사용하는데, 예전에 잔치나 술자리에서 노래나 춤 등으로 멋스럽게 흥을 돋우는 일을 직업으로 삼는 여성을 이르던 말인 ‘기생(妓生)’으로 아는 사람들도 있다.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고병수는? = 제주제일고를 나와 서울로 상경, 돈벌이를 하다 다시 대학진학의 꿈을 키우고 연세대 의대에 입학했다. 의대를 나와 세브란스병원에서 가정의학 전공의 과정을 마쳤다. 세브란스병원 연구강사를 거쳐 서울 구로동에서 개원, 7년여 진료실을 꾸리며 홀로 사는 노인들을 찾아 다니며 도왔다. 2008년 고향 제주에 안착, 지금껏 탑동365의원 진료실을 지키고 있다. 열린의사회 일원으로 캄보디아와 필리핀, 스리랑카 등 오지를 찾아 의료봉사도 한다. '온국민 주치의제도'와 '주치의제도 바로 알기' 책을 펴냈다. 한국일차보건의료학회(KAPHC) 회장, 한국장애인보건의료협회(KAHCPD) 부회장,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이사장 등을 맡아 보건의료 선진화 방안과 우리나라의 1차 의료 발전방안을 모색하는 보건정책 전문가다. 2020년 4.15 총선에 정의당 후보로 나와 제주갑 선거구에서 분루를 삼켰지만 총선 직후 곧바로 코로나19 감염이 창궐하던 대구행 의료자원봉사에 나서 숱한 이들에게 잔잔한 감동을 선사했다. 정의당 제주도당위원장을 역임했다.
◆ 겸괘(謙卦) 『설문』은 풀이한다. “겸(謙)은 경(敬)이다.” 겸허해야만 다른 사람의 경모하는 마음을 얻을 수 있고 다른 사람의 환영과 신뢰를 받을 수 있다는 말이다. 겸허는 사람을 진보하게 한다. 겸허는 다른 사람의 장점을 받아들일 수 있게 한다. 자신의 결점을 고칠 수 있게 한다. 자만하여 자신의 처지를 잊어버리면 어떻게 하여야 할까? 사람들은 자주 ‘득의망형(得意忘形)’을 이야기한다. 득의양양할 때 자신의 본모습을 잊고 자아를 잃어버려 바른 길에서 벗어나는 것을 가리킨다. (원래 ‘득의망형得意忘形’이란, 뜻을 얻어 자신의 형체마저 잊어버리다 뜻이다) ‘득의망형’의 전고는 이렇다. 동진(東晉)시대 완적(阮籍)은 걷잡을 수 없이 방탕하였다. 시와 문장에 능했다. 어떤 때에는 집에서 공부하면서 수개월을 은거하며 밖에 나오지 않기도 했다. 어떤 때에는 산수 간에 놀며 즐기면서 열흘이나 보름을 집에 돌아오지 않기도 했다. 즐거울 때는 정신 나간 사람처럼 행동하였다. 너무 흥분하여 모든 것을 잊어버렸다. 심지어 자기 자신이 어떻게 된지도 모를 정도였다. 까마귀가 득의망형 할 때는 자기 입에 물고 있는 고기를 떨어뜨려버려 늑대가 대신 먹어버릴 정도다. 모기가 득의망형 할 때는 거미줄에 걸려 목숨까지 잃을 정도다. 『봉신연의(封神演義)』에 명장면 한 단락이 있다. 소달기(蘇妲己)가 향락의 녹대(鹿臺)를 완공한 후 여러 여우가 수련하여 변신한 신선을 청하여 연회를 베푸는 장면이다. 어리석은 주왕(紂王)이 달기를 총애해 하루 종일 음악을 연주하고 연회를 베풀었다. 녹대를 지으라고 명하면서 병란이 사방에서 일어났다. 백성은 변혁을 바라는 지경에 이르렀다. 2년 4개월 후에 녹대가 준공되었다. 주왕은 달기의 신선과 선자를 초청해 구룡천자(九龍天子)에게 가서 연회를 베풀었다. 달기는 39의 여우가 변신한 신선을 초청하였다. 주왕은 조가(朝歌)에서 두주불사로 소문난 승상 비간(比干)을 파견해 술자리 상대가 되어 어울리도록 했다. 9월 15일 밤, 신선들은 약속대로 도착하였다. 오는 신선마다 선인의 풍채와 도사의 골격(선풍도골)이요 기백과 도량이 비범하였다. 그런데 뜻밖에도 연회 중 ‘신선들’이 기쁨을 이기지 못하고 자신의 형체마저 잊어버렸다. 술 두세 잔을 마시자마자 주량을 이기지 못하고 하나하나 꼬리를 노출하는 게 아닌가. 비간이 대장 4명을 파견해 알아본 결과 원래 그 신선이라 것들은 성 밖 35리 떨어진 헌원(軒轅)묘에 살고 있는 매구 무리였다. 이에 군사를 보내 구멍을 막고 불태워 버렸다. “금에는 순금이 없고 사람 중에 완벽한 사람은 없다.” 이 속담, 대단히 적절하지 않은가. 세상의 모든 것에는 장점과 단점이 존재한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자신을 알려면 자신의 장점, 가지고 있는 잠재력을 인식하여야 할 뿐 아니라 자신의 결점, 잘못을 인식하여야 한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장점을 잘 이용해 자신의 부족한 면을 바로잡아야 한다. 장점을 발양하고 단점을 없애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자기 결점을 보고서도 모른 척 하면 진종일 오만하여 눈에 보이는 게 없게 되고 자신의 본체마저 잊어버리게 된다. 그렇게 되면 자기의 결점은 매구의 꼬리처럼 다른 사람 눈앞에 펼쳐지게 된다. 상대방은 그 결점을 이용해 아주 쉽게 승리를 쟁취할 것이고. 자신을 정확하게 보고 자기의 장점을 발휘하고 자기의 결점을 고칠 생각이 있거들랑 겸손하고 조심하며 신중하여야 한다. 『주역』은 말한다. “겸은 형통하니, 군자가 끝마침이 있다.” 무슨 말인가? 겸허의 미덕은 모든 일을 순조롭게, 막힘없이 통하게 만든다는 뜻이다. 그런데 겸허는 모든 사람이 견지해 나갈 수 있는 게 아니다. 그저 군자라야 할 수 있다. 우리가 일하는데 마음이 들썽하게 되면, 일을 도중에서 그만두게 되면, 전심으로 어떤 일에 뛰어들 방법이 없다면, 자신에게 문제가 있다고 생각이 들지 않을까? 가슴에 손을 얹고 내가 겸허하지 않아서, 조심하며 않아서, 신중하지 못해서 그런 것이 아닐까라고 스스로 반성해야 되지 않겠는가? “교만하면 손해를 보고 겸손하면 이익을 본다”(『대우모大禹謨』) 이 말은 옛 어른들의 신심을 닦고 교양을 쌓는 도리였다. “만족을 모르는 자는 손실을 더 보게 되고 겸허한 사람은 복을 더 받는다.”(구양수(歐陽脩)『역혹문(易或問)』) “스스로 자랑하는 사람은 공을 세울 수 없고 스스로 과시하는 사람은 뛰어나지 않다.”(『노자(老子)』) 모두 같은 도리다. 당나라 오긍(吳兢)은 『정관정요·정체(政體)』에 당태종의 한 말을 기록하였다. “천하가 조금씩 안정되면 더욱 두려워하고 삼가야 한다. 만일 경솔하게 교만하고 방자하면 실패하게 된다.” 이는 사람이 거만하고 자만하면 화를 불러오게 된다는 경고다. 자신을 정확하게 보아야 한다는 옛말이 또 있다. 자신의 능력이나 결점을 정확하게 알려면 타인의 의견을 들어야 한다고 했다. “남을 대할 때는 완전함을 바라지 말고 자신을 점검할 때는 늘 부족한 것처럼 하라.”(『상서·이훈(伊訓)』) “남을 아는 사람은 지혜롭고 자신을 아는 사람은 명철하다.”(『노자』) “자신이 겸허하면 (남의 말을) 듣기를 즐긴다.”(유우석(劉禹錫)『위생병요술(魏生兵要述)』) “군자는 타인의 말을 받아들이면서 총명하게 된다.”(위원(魏源)『묵고(默)觚·치편(治篇)12』) “덕이 있는 사람은 총애를 받을수록 (자신을) 경계한다.”(『진어(晉語)』) “겸하여 듣는 밝음이 있으나 떨쳐 자랑하는 용모가 없으며, 겸하여 덮어주는 두터움이 있으나 덕을 자랑하는 낯빛이 없다.”(『순자·정명(正名)』) 『주역』은 말한다. “땅 속에 산이 있는 것이 겸(謙)이니, 군자가 그것을 본받아 많은 것을 덜어내 적은 데에 더해 주어, 물건을 저울질하여 베풂을 고르게 한다.” 무슨 말인가? 땅 속에 산이 있다는 것은 높은 산은 지하에 표상을 숨겨놓는다는 뜻이다. 뛰어난 재능과 미덕은 마음속에 감추어 두고 밖으로 노출하지 않는다는 것을 상징한다. 그렇기에 겸(謙)이라 하는 것이다. 군자는 결국 손해는 많고 이익은 적다. 각종 사물을 따져보고 평가한 후 장점을 취하여, 단점을 보충하여 균형, 평형을 이루게 한다. ☞이권홍은? =제주 출생. 한양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나와 대만 국립정치대학교 중문학과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국현대문학 전공으로 『선총원(沈從文) 소설연구』와 『자연의 아들(선총원 자서전)』,『한자풀이』,『제주관광 중국어회화』 등 다수의 저서·논문을 냈다. 현재 제주국제대학교 중국어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에이즈 환자의 인권에 대한 영화 두 편을 소개하고자 한다. 이 영화들을 보기 위해서는 에이즈란 무엇이고, 우리는 어떤 편견을 가지고 있는지 점검할 필요가 있어서 다소 어렵지만 글 중간에 설명을 덧붙이게 되었다. 소개할 영화는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Dallas Buyers Club, 2013)’과 ‘필라델피아(Philadelphia, 1993)’다. 달라스(Dallas)는 미국 남동부 텍사스주의 도시 이름이다. 바이어(Buyer)는 구매자를 뜻하니 영화의 제목은 달라스에 있는 구매자들의 모임인 셈이다. 보수적이기도 하고 마초들이 득실댈 것 같은 남부 도시 달라스에서 무엇을 팔기에 모임까지 만들었을까? 공사장에서 기술자로 일하는 우드루프(매튜 맥커너히)는 코카인에, 로데오 경기 도박에, 오늘을 방탕하게 살며 내일이 없는 인간이다. 우연히 병원에서 검진을 받고 에이즈에 걸렸다고 판정을 받는다. 이미 면역력이 떨어진 상태여서 살 수 있는 날이 겨우 30일 정도라고 의사로부터 얘기를 듣는다. 당시에 에이즈는 말 그대로 불치병이고, 진단이 내려지는 것은 사형선고나 다름없었다. 록 허드슨과 함께 세상에 알려진 에이즈의 공포 이 영화의 배경은 1985년경이며, 로널드 우드루프라는 인물의 실제 이야기를 다뤘다. 이 해는 ‘자이언트(Giant, 1956)’ 영화의 주인공이자 미국인들이 사랑하는 록 허드슨(Rock Hudson, 1925~1985)이 에이즈로 죽은 해이기도 하다. 그로 인해 전에 없던 죽음의 병을 세상이 다 알게 되었고, ‘달라스 바이러스 클럽’ 영화에서도 록 허드슨의 이름이 언급된다. 그는 사람면역결핍바이러스(HIV)가 원인 바이러스라는 게 밝혀진 이후 사망했지만, 아쉽게도 그가 사망한 해는 치료 약제가 만들어지기 전이었다. 록 허드슨은 게이라는 사실을 나중에 밝혔고, 죽기 전까지 에이즈 치료와 예방을 위해서 노력했다. 에이즈라는 괴물이 세상에 알려지게 한 최초의 유명인이었기 때문에 이 질병이 동성애와 등치되는 오해를 만든 걸까? 우드루프는 동성애자나 걸리는 병에 왜 자기가 걸렸는지 알아내려고 도서관에서 신문을 검색해본다. 열심히 자료들을 찾아보니 동성애자들이 많이 걸리고, 콘돔을 사용하지 않을 경우에 이성애자도 성 접촉으로 충분히 걸리며, 마약 중독자들이 필로폰을 투여할 때 주사기를 함께 쓰다 보면 걸리기 쉽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코카인은 가끔 애용하지만, 필로폰 주사는 사용하지 않았기에 원인 제공처는 자신의 여성 친구일 것이다. 담당 의사인 이브가 상담을 마치고 환자 후원 모임을 권하자 우드루프는 비아냥대며 말한다. “난 곧 죽을 거예요” “그런 사람한테 호모들이나 만나라는 거예요?” 단골로 다니던 술집을 가도 사람들이 슬슬 거리를 두며 피한다. 친구 놈이 말다툼하다가 우드루프의 침이 튀자, “젠장. 침이 튀었어. 비누 어딨지?” 당장 죽을 듯이 설레발치며 화장실로 가서는 손을 박박 씻어댄다. 우드루프는 살아보려고 병원에서 임상시험 중이던 AZT(아지도티미딘, 최근에는 ‘지도부딘’으로 불림)라는 약물을 몰래 구해서 먹기도 한다. 용량도 모르고 함부로 먹다가 부작용으로 쓰러지고 입원하기를 반복하던 어느 날, 옆 침대에 누워있는 남자와 말을 나누며 친해지게 되었다. 우드루프는 그를 남자 아가씨라고 부르는데, 같은 에이즈 환자이면서 자신이 죽도록 싫어하는 트랜스젠더이다. 남자 아가씨는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을 만들 때 중요한 동업자가 된다. 에이즈의 원인균 발견 1981년, 미국 의학계는 원인 모를 병에 대한 보고서를 발표했다. 성소수자(대게는 게이를 말함) 중에 면역결핍 증상을 보이면서 폐렴 등 감염병을 이겨내지 못하고 속수무책으로 사망하는 사례들이었다.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고, 오직 알 수 있는 것은 면역력이 극도로 떨어져 있다는 점, 그로 인해 결핵, 폐렴 등 감염병에 취약해서 사망률이 아주 높다는 점이었다. 많은 학자들이 이에 대한 연구를 하던 중 1983년, 프랑스 파스퇴르 연구소의 미생물 학자 바레-시누시(Françoise Barré-Sinoussi, 1947~), 몽타니에(Luc Montagnier, 1932~) 박사가 세계 최초로 그 원인 미생물을 찾아내어 존재를 알렸다. 나중에 이 원인 바이러스를 ‘사람면역결핍바이러스(HIV, Human Immunodeficiency Virus)’라 부르게 되었다. 이 두 사람은 자궁경부암이나 콘딜로마를 일으키는 사람 유두종바이러스(HPV, Human papillomavirus)를 발견한 독일의 미생물학자 추어 하우젠(Harald zur Hausen, 1936~)과 함께 2008년 노벨생리의학상을 공동 수상하였다. 에이즈를 일으키는 원인 미생물이 밝혀졌으니 치료 방법이 활발히 연구되기 시작한다. 보통의 바이러스나 박테리아(세균)들은 우리 몸에 들어왔을 때 직접 질병을 일으키는 게 대부분인데, 사람면역결핍바이러스(HIV)는 다른 바이러스들과 아주 다르게 활동한다. 그들은 사람 몸 안에 들어와 면역세포들을 파괴하고 면역체계를 약화시켜서 다른 흉악한 질병들, 예를 들면 건강할 때는 문제가 되지 않던 세균이나 곰팡이에 감염되어 결핵, 폐렴, 칸디다증(곰팡이 감염) 등이 생겨서는 회복하지 못하게 만들어버린다. 우리 면역계가 억제력을 잃게 되면 체력도 떨어져서 말라가며, 백혈병이나 카포지 육종과 같은 암도 발생하기 쉽다. 직접 병을 만들기보다는 다른 놈들이 들어와서 병을 일으키도록 몸을 약화시키는 것이다. ‘에이즈’라는 뜻은 사람면역결핍바이러스에 걸려서 체내의 면역 기능이 저하되어 몸이 피폐해지며, 그러한 병에 걸려 오랜 시간 고생하거나 심하면 사망하게 되는 상태를 말하는 질병 이름이다. 그래서 우리말로는 ‘후천성면역결핍증’이라 부르고, 영어로는 AIDS(Acquired Immune Deficiency Syndrome)라고 한다. 에이즈에 대한 잘못된 인식 흔히 사람들은 ‘HIV 감염자 = AIDS 환자’라고 오해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AIDS 환자는 거의 동성애자’라는 인식도 우리 주변에 널리 퍼져 있다. HIV 감염자는 말 그대로 사람면역결핍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람을 말하지만, 모두가 에이즈 환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건강을 유지하거나 치료제를 잘 복용하면 요새는 웬만해서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한국에서도 국내 최초의 감염자가 아직까지 건강을 유지하며 살고 있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치료가 안 되거나 다른 이유로 면역력이 파괴되는 현상이 생길 때 에이즈라는 병명을 붙이기 때문에 둘을 같은 개념으로 보면 안 된다. 또 하나 잘못된 인식은 '성소수자들은 대부분 에이즈에 걸린다'라는 오해다. 사실 성소수자들에게서 동성간 성관계로 인해 HIV에 감염되는 경우가 많긴 하지만, 전체 에이즈 감염자 수로 비교해보면 절반 정도일 뿐이다. 나머지 절반은 이성간의 성관계에 의해서다. 2019년 한국 정부의 HIV/AIDS 역학조사 보고서에서는 이성간 성접촉에 의한 것은 전체 감염자의 46.1%, 동성간에는 53.7%라고 발표했다. 나머지 0.2%는 극소수로서 필로폰 주사 공동 사용 등으로 생긴다. 이성이든, 동성이든 어떤 형태이든지 감염자로부터 성관계 혹은 생식기나 항문의 상처를 통해서 전염되는 것이지, 그 원인이 꼭 동성애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반증이다. 대부분 성관계가 원인이 되는 이유는 사람면역결핍바이러스에 감염된 정액이나 질액이 상대방의 성기 내 상처를 통해 옮겨가기 때문이다. 모유를 통한 수직감염, 마약 투여시 주사기를 같이 쓰는 경우도 있다. 수혈은 최근 철저한 관리로 인해 거의 원인이 되지 않는다고 한다. 처음 HIV 치료약으로 개발된 것이 주인공 우드루프가 몰래 훔쳐 복용하던 AZT다. 처음에는 항암제로 만들어졌지만, 면역세포를 활성화시켜서 사람면역결핍바이러스를 공격하기 때문에 효과를 인정받아 에이즈 치료약으로 허가를 얻었다. 영화 달라스 바이러스 클럽의 우드루프는 AZT의 심각한 부작용에 대해서 몸소 경험을 하게 된다. 그러다가 우연히 접하게 된 단백질 영양제(펩타이드 T)를 복용했더니 자신의 상태가 많이 호전되는 것을 알았다. 영양제이기 때문에 특별한 관리를 받지 않아도 돼서 에이즈에 걸렸거나, 걸릴까봐 걱정하는 성소수자들을 중심으로 이 영양제를 파는 회원 모임을 만든다. 이름하여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 미국 식품의약품안전청(FDA)은 우드루프를 고소하지만, 재판 과정에서 오히려 제약회사가 숨기려 했던 부작용이 드러나고, 덕분에 용량을 줄여서 독성을 완화시킨 AZT와 펩타이드 T를 복합해서 에이즈 치료에 사용하게 되는 계기를 만든다. 우드루프는 최초의 에이즈 치료약 AZT 고용량 단독요법으로 속절없이 죽을뻔한 많은 이들을 살린 인물이 되었고, 30일 정도 살 것이라는 예측을 벗어나 1992년 9월 12일, 첫 진단 후 7년을 더 살고 죽는다. 주인공 우드루프역의 매튜 맥커너히는 이 영화를 위해서 살을 엄청나게 빼서 진짜 환자처럼 보이기도 하고 명연기를 펼쳐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텍사스가 고향인 맥커너히는 영화에서 그곳 사투리를 썼을까 궁금해진다. 또 다른 영화, 필라델피아(Philadelphia, 1993) 에이즈 환자의 인권에 대해 관심을 가진 분들에게는 또 다른 영화 ‘필라델피아(Philadelphia, 1993)’를 권한다. 우수한 성적으로 법학전문대학원을 졸업하고 대형 로펌에 취직해서 일하는 앤드류 베켓(톰 행크스)은 장래가 촉망받는 변호사다. 그는 게이라는 것을 회사에 말하지 않고 숨기며 지내다가 몸이 안 좋아 받은 혈액검사에서 HIV 양성 판정이 나왔다. 이미 시간이 오래 지나고 몸이 나빠져 에이즈로 진행된 상태였다. 일하던 법률회사는 이를 알게 되어 그를 해고하자 해고 자체가 부당하다면서 소송전이 벌어진다. 하지만 어떤 변호사도 그의 소송을 맡아주려고 하지 않는다. 단지 그가 게이이면서 에이즈 환자라는 사실 때문이다. 영화가 제작된 당시는 여전히 성소수자들에 대한 지독한 편견과 에이즈에 대한 무지로 가득 차 있어서 HIV 감염자들에게 세상은 중세 수준의 인권만이 존재할 뿐이었다. 몸이 안 좋아진 앤드류는 평소 자기와 감정이 좋지 않았던 조 밀러(덴젤 워싱턴)를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찾아갔으나, 그 역시 성소수자에 대한 안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어서 거절당한다. 재판을 위해 10번째로 찾아간 건데 어렵게 되자 절망에 빠진다. 그러다가 아프리카계 미국인인 조는 인종차별로 온갖 멸시와 차별을 받는 자신들의 처지와 차별받는 동성애자들의 상황을 동일시하는 생각을 하게 되고, 결국에는 앤드류의 신념과 노력에 좋은 인상을 받아 변호를 맡게 된다. 거대 로펌을 상대로 길고 지루한 공방전이 이어지고, 부당하게 해고됐다는 것을 증명하기도 만만치 않다. 재판이 진행되는 긴 시간 동안 앤드류는 점점 몸이 쇠약해진다. 영화에서도 처음 장면에서부터 시간이 지날수록 살이 빠지고 창백해지는 그의 얼굴을 볼 수 있다. 주인공 톰 행크스도 그 과정을 표현하기 위해 몸무게를 20㎏이나 뺐다고 한다. 마지막 재판에서 변호사인 조는 강변한다. “이 법정에 모인 모두가 성적 기호에 대해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동성애자에 대한 혐오, 미움, 그리고 두려움 또한 존재합니다. 우리는 그 미움이 어떻게 이 사람을 해고했는지 밝히려고 이 자리에 섰습니다.” 왜 제목이 필라델피아일까? 미국 독립선언문이 만들어지고 자유의 종이 있는 곳이 바로 필라델피아다. 영화는 재판이 성소수자들에게 역사적인 날이 될 것임을 상징으로 보여주려고 한 걸까? 유명한 주제곡 “Streets of Philadelphia”의 드럼 소리가 잔잔히 들리며 끝나기 때문에 자막이 다 올라갈 때까지 영화를 음미하며 기다려도 좋다.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고병수는? = 제주제일고를 나와 서울로 상경, 돈벌이를 하다 다시 대학진학의 꿈을 키우고 연세대 의대에 입학했다. 의대를 나와 세브란스병원에서 가정의학 전공의 과정을 마쳤다. 세브란스병원 연구강사를 거쳐 서울 구로동에서 개원, 7년여 진료실을 꾸리며 홀로 사는 노인들을 찾아 다니며 도왔다. 2008년 고향 제주에 안착, 지금껏 탑동365의원 진료실을 지키고 있다. 열린의사회 일원으로 캄보디아와 필리핀, 스리랑카 등 오지를 찾아 의료봉사도 한다. '온국민 주치의제도'와 '주치의제도 바로 알기' 책을 펴냈다. 한국일차보건의료학회(KAPHC) 회장, 한국장애인보건의료협회(KAHCPD) 부회장,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이사장 등을 맡아 보건의료 선진화 방안과 우리나라의 1차 의료 발전방안을 모색하는 보건정책 전문가다. 2020년 4.15 총선에 정의당 후보로 나와 제주갑 선거구에서 분루를 삼켰지만 총선 직후 곧바로 코로나19 감염이 창궐하던 대구행 의료자원봉사에 나서 숱한 이들에게 잔잔한 감동을 선사했다. 정의당 제주도당위원장을 역임했다.
화교 제일 부자 이가성(李嘉誠)은 처음에 합성수지 사업에 투신하였다. 자신의 합성수지 공장을 장강(長江)이라 명명하였다. 나중에 합성수지 공장을 팔고 부동산업에 뛰어들었다. 회사이름도 장강부동산회사라 지었다. 나중에 사업이 확대되자 이름을 장강실업이라 했다. 사업 영역이 어떻게 변하였든지 간에 이가성은 ‘장강’이라는 명칭에 깊은 애정을 가졌다. 이가성은 말했다. “장강이라 이름을 지은 까닭은 개울물도 마다하지 않는 이치1)를 장강이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장강처럼 활달한 흉금을 가지고 난 다음에야 개울물을 받아들일 수 있을 것입니다. 작은 개울물이 없다면 어찌 장강을 이룰 수 있겠습니까? 그런 드넓은 가슴을 가지고 있어야만 스스로 교만하지 않게 되고 자신이 ‘최고’라고 여기지 않게 됩니다. 다른 사람의 장점을 인정하게도 되고 타인의 도움을 얻을 수 있게도 됩니다. 이것이 옛사람이 말했던 ‘포용할 줄 알면 크게 된다’는 도리입니다. 예를 들어 현재 많은 사람이 나를 대신하여 일하지 않는다면 내가 삼두육비(세 개의 머리와 여섯 개의 팔을 가짐, 신통력 있는 사람)라 할지라도 그렇게 많은 일에 대응할 방법이 없게 됩니다. 그렇기에 사업을 성취하는 데에 가장 중요한 것은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이 있어야 하고 즐겁게 당신과 함께 일하려는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내 철학입니다.” 이가성은 장강의 정신을 중시하였다. 따지고 보면 장강의 품격과 성정을 중시하고 숭상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장강은 어떤 품격과 성정을 가지고 있는가? 장강은 모든 하천의 물을 받아들인다. 개울물을 마다하지 않는다. 수없이 꺾여도 절대 굽히지 않는다. 끊임없이 세차게 흐른다. 영원히 마르지 않는다. 장강의 품격을 배우면 산골짜기만큼 큰 겸허한 마음을 가질 수 있고 사람에게 겸손할 수 있다. 도량이 넓고 포용력이 크며 인재를 널리 받아들일 수 있다. 이가성은 품성 수련에 대단히 뛰어나다. 그래서 그는 사업 연장에서 진기하면서도 아름다운 인연을 만들어냈다. 뭇별처럼 친구를 사귀었다. 이것이 바로 ‘운명(하늘)에 응하여 때에 맞게 행하여진다’는 것이요 결과는 ‘크게 형통하게’ 되는 것이다. 이가성은 말했다. “나는 우호적인 교역을 좋아합니다. 사람들이 주동적으로 찾아오는 사업을 좋아합니다. 나는 아들 두 명에게 상대방의 이익을 고려하는 데에 주의하고 정당치 못한 방법으로 이익을 취해서는 안 된다고 늘 가르칩니다.” 그의 아들 이택해(李澤楷)는 말했다. “어릴 적부터 어른이 될 때까지, 심지어 지금도, 아버지는 우리에게 어떻게 돈을 벌 것인가를 가르쳐준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어떤 돈은 벌어서는 안 된다, 어떤 방식으로는 절대 돈을 벌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늘 우리에게 일깨워주십니다.” 젊은 억만 부자 이택해는 부친의 그런 품성 수양 덕분에, 특히 도덕 수양 부분에서 간곡하게 타이른 덕분에 부친처럼 좋은 인간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그는 직원에게 주동적으로 일부의 주식을 내놓았다. 인간미가 넘쳐난다. 그저 상징적으로 그들에게 1원씩 받았다, 이 점 하나만으로도 직원들이 목숨을 걸고 회사를 위하여 근무하기에 족하지 않은가. 품성 수양에 있어 인품과 덕성을 중시해야할 뿐 아니라 성격과 태도도 중시하여야 한다. 후자는 인품, 덕성과 긴밀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전면적이어야 하고 실제적이어야 하며 쉽게 이룰 수 있어야한다. 에머슨(Emerson)은 말했다. “우리의 성격이 우리의 선택을 결정한다. 이 관점은 숙명론이 결코 아니다. 사람은 비록 기타 모든 생물과 같이 자신을 결정하는 힘에 제약을 받기는 하지만, 유일한 이성의 동물이요 그런 힘을 인식하는 유일한 생물이다. 더불어 그런 인식에 근거해 자신의 운명의 안배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고 선을 찾는 요소를 강화해 나간다.” 개인의 성격이 자신의 운명을 결정짓는다. 그렇다면 우리가 현재의 우리 성격을 고치지 않으면 우리는 우리의 운명을 거절할 권리가 없다. 참고로, ‘대유’는 소유한 것이 많다는 뜻이다. 『주역』에서 ‘대(大)’는 양을 가리킨다. 대유괘는 내괘가 하늘이고, 외괘가 불로서 태양이 하늘위에서 빛나는 형상이다. 태양은 지상의 만물을 남김없이 비추기 때문에 ‘대유’가 된다. 괘상 전체를 보면, 하나의 음효가 천자의 위치인 5효에 있고 5개의 양효가 상하에서 둘러싸고 있다. 이것은 자신을 비운 겸손한 천자에게 많은 현자들이 귀복(歸服)하는 상으로 육오(六五)의 입장에서 보면 5개의 양을 소유한 것임으로 ‘대유’가 된다. 괘사에서, “대유는 크게 형통하다.” 라고 말한 것은 이와 같은 이유 때문이다. 대유괘는 구오(九五) 하나의 양과 5개의 음효로 구성된 비괘(比卦)와 대비된다. 비괘는 강건한 천자에게 서민(庶民)들이 호응하는 상이므로, 비록 구오(九五)의 강중(剛中)이 대유 육오(六五)의 유중(柔中)보다 우월하지만, 괘사에서, “비는 길하니…허물이 없을 것이다.” 라고 하여 대유괘만 못하게 평가하고 있다. 괘사에서 곧바로, “크게 형통하다(元亨).” 라고 말한 곳은 대유괘와 정괘(鼎卦) 뿐이다. 이것은 이 괘들이 현자를 높히고 기르는 괘이기 때문이다. 많은 것을 소유한 자는 교만해지기 쉽다. 초구(初九)에서 “해롭지 않으니 허물이 아니다. 그러나 어렵게 여기면 허물이 없을 것이다.” 라고 한 것은 부를 소유한 것 자체가 잘못은 아니지만, 자칫하면 사치하고 교만해지기 쉬움으로 항상 경계해야 함을 말한 것이다. 구사(九四)의 경우 중간을 넘어서서 소유한 것이 지나치게 많아 흉구(凶咎)하게 되기 쉽지만, 성다(盛多)함에 처하지 않으면 허물은 없을 것이라고 효사는 말하고 있다. 이 괘는 겸허해야 진실로 소중한 것을 풍족하게 얻을 수 있고 또한 지킬수 있음을 강조한 것이다. ***** 大有卦 ䷍ : 火天大有(화천대유), 리(離 : ☲)상 건(乾: ☰)하 대유(大有)는 크게 형통하다.(大有,元亨.) 「단전」에서 말하였다 : 대유(大有)는 부드러운 음이 존귀한 자리를 얻었고, 크게 가운데에 있으면서 위와 아래가 그에 호응하므로 대유라고 하니, 그 덕이 강건하면서 문명하고, 하늘에 호응하여 때에 맞게 행한다. 이 때문에 크게 형통하다.(彖曰,大有,柔得尊位,大中而上下應之,曰大有,其德,剛健而文明,應乎天而時行.是以元亨.) 「상전(象傳)」에서 말하였다 : 불이 하늘 위에 있는 것이 대유(大有)이니, 군자가 그것을 본받아 악을 막고 선을 드날려서 하늘의 아름다운 명을 따른다.(象曰,火在天上,大有,君子以,遏惡揚善,順天休命.) 대유는 부드러움이 존귀한 자리를 얻었고 크게 가운데 있으면서 위아래가 응하므로 대유라고 한다. 덕이 건실하며 운명(하늘)에 응하여 때에 맞게 행하여진다. 이 때문에 크게 형통하다(크게 통하게 되는 것이다).(大有,柔得尊位,大中而上下應之,曰大有.其德剛健而文明,應乎天而時行,是以元亨.) [傳] 대유괘(大有卦)는 「서괘전」에 “다른 사람과 함께 하는 자는 물(物)이 반드시 그에게로 돌아온다. 그러므로 대유(大有)로 받았다”고 하였다. 다른 사람과 함께 하는 자는 물(物)이 그에게로 돌아오는 바가 되기 때문에 대유괘가 동인괘(同人卦䷌) 다음에 온 것이다. 괘는 불[☲]이 하늘[☰]위에 있으므로, 불이 높은 곳에 있기 때문에 밝기가 멀리까지 미쳐서 만물(萬物)이 비추어 드러내지 않는 것이 없으니, 대유괘의 형상이 된다. 또 하나의 유순한 음(陰)이 존귀한 자리에 있어서 여러 양(陽)들과 함께 응하고 존귀한 자리에 있으면서 유순함을 굳게 지키니 물(物)이 돌아오는 바이며, 위와 아래가 응하니 대유괘의 뜻이 된다. 대유괘는 성대하고 풍요롭게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권홍은? =제주 출생. 한양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나와 대만 국립정치대학교 중문학과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국현대문학 전공으로 『선총원(沈從文) 소설연구』와 『자연의 아들(선총원 자서전)』,『한자풀이』,『제주관광 중국어회화』 등 다수의 저서·논문을 냈다. 현재 제주국제대학교 중국어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1) 泰山不辭土壤,河海不擇細流: 태산은 한줌의 흙도 버리지 않고, 강과 바다는 작은 시냇물이라도 마다하지 않는다 ; 川澤納汚,山薮藏疾: 하천이나 못은 더러운 물도 받아들이고, 산과 숲은 독을 가진 짐승도 감추어 준다.
이 작품은 2005년 제작되었다. 발표 기회가 없다가 2010년 제14회 한국미술협회 산하지부 노원미술협회 정기전에 출품된 작품이다. 지금은 사진으로만 남아있고 서울살이할 때 이사가 잦아서 어딜 갔는지 지금도 기억이 없다. 2004-5년 군상시리즈로 20여점 제작된 작품중 하나로 나름 애착이 있는 작품이라 액자까지 하고 전시출품도 해서 조금은 아쉽지만 어딘가에 잘 있으리라 본다. 이 그림은 참선하는 사람형상의 다양한 실루엣들을 흰여백으로 남기고 배경은 검은 먹으로 처리하여 명도대비를 강하게 주어 참선하는 사람의 형상들이 좀더 부각되어 보이게 제작한 것이다. 당시에는 육체를 통한 호흡수련과 기공수행으로 영적 관심이 많았던 때라 이런 그림을 자연스럽게 그리게 되었는데 이제는 호흡수련이나 기공같은 난행 고행을 안하고 모든 존재의 근원인 빛을 상념하고 참회와 감사의 명상으로 바뀌었다. 과거의 흔적을 통해 내 삶을 뒤돌아보면 이 모든 것들이 예기치 않게 내 힘이 아닌 보이지 않는 다른 힘이 작용해 왔음을 알게 된다. 원래 서양화를 전공하려 했는데 예술적 운명이 서양화의 길이 아닌 한국화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고, 진리와 영적 탐구의 관심과 여정 또한 예술의 길과 함께 거부할 수 없는 운명처럼 내 삶에 놓여져 있는게 아닌가 싶다. 그림속 형상들은 가만히 앉아 있어도 번뇌, 망상, 망념에 늘 들끓고 흔들리고 휘둘리는 모습들이다. 그 형상의 일그러진 모습들이 우리모두의 모습이고 곧 나의 모습임을. 모든 그림은 화가의 자화상이다. 그림에 보여지는 형상의 흰 여백에 점과 선과 면으로 드로잉하여 실체는 본질이 본디 공(空)하고 점, 선, 면, 입체로 보이는 이 모든 것이 파편화 되고 달라보이지만 그역시 본질은 하나임을 얘기하고자 한 작품이다. 어렵고 추상적이고 관념적 얘기지만. 그리고 화제를 불교 용어인 무명(無明:무지를 뜻하는 용어로 일체 사물에 대한 도리를 밝게 알지 못한다는 뜻으로 사용되거나 진리에 대한 무지로 통용되고 있다)으로 삼은 것 또한 과거의 기연과 연관지어져 있다. 운명처럼. 2003년 미국 L.ADP에 있는 아스토 갤러리에서 친구와 함께 첫 개인전을 열었다. 개인전 도록을 제작하며 도록에 필요한 서문 서평을 누구에게 부탁할까 하다가 생각난 분이 젊은날 방황의 시기에 짧지만 강렬하게 만났던 서예와 전각 선생님이셨던 석경(石鏡) 고석칠 선생님이셨다. 이분이 지금의 내 호(號)로 쓰고있는 일보(日步)를 하사해 주신 분이다. 방황의 시기에 서예를 통해 다시 붓을 든 나를 받아주고 서예와 전각을 익히는 그 기간 동안 나의 모습을 여실히 보아준 선생님께 개인전 도록에 들어갈 서문을 부탁하기로 한 것이다. 선생님 또한 내 개인전을 축하해주며 기쁘게 반갑게 흔쾌히 허락하여 주셔서 첫 개인전 도록에 ‘공간, 그 마음의 문을 열며‘라는 멋진 제목의 글을 장식하게 되었다. 그 감사한 마음 잊지않고 선생님의 글을 일부 소개해본다. 선생님은 나를 만난 후 내가 다시 서울로 올라와 때늦은 대학을 졸업하며 졸업작품전에 실린 내 그림의 작품설명에서 무명(無明)이라는 단어를 쓰고 있는걸 알고 계신 상태였다. 선생님의 글이다. “老子에 無名은 天地의 시작이요, 有名은 만물의 어머니이다.”라는 말이 있다. 모든 지식은 배우는 즉시 버려야 하고 쌓아놓으면 쌓아 놓을수록 본인에게는 좋은 일이 없다. 지식이 쌓이면 집착이 생기는데 집착은 대단히 경계해야 하는 것 중의 하나이다. 그러면 노자의 無名과 상범이의 無明과는 어떤 관계가 있는 것인가? 상범이의 無明은 有明을 전제로 한 무명인 것이다. 상범이는 늘 메모하는 습관이 있다.메모의 생활화는 참 좋은 습관이다.그러나 그 속에서 천재성이 하나씩 없어질수도 있다. 직관도 마찬가지이다. 바로 보려고 하면 그 대상이 있어야 한다. 대상이 생기면 모르는 사이에 집착도 쌓이게 된다. 결국 무명 유명 직관은 다 같이 마음에 있는 것이다. 모든 것은 마음속에 있고 마음이 여기에 있으니 문은 언젠가는 열릴 것이다..... 20년 전 글인데도 버리고 비우고 내려놓는 마음의 강력한 힘을 통찰하고 계셨던 참 통쾌한 글이다. 그때는 어려 이 단순하고 심오한 뜻을 헤아리지 못하였지만 이제와서 읽어보니 이글이 너무나 감사하고 마음에 와 닿는다. 나의 어리석은 무명과 방황을 걷어주고 벗겨주시려 한 그 따뜻한 마음. 그때는 몰랐었다. 이 거부할수 없는 운명의 끈이 지금도 이어져 감사하게도 서예와 전각을 배울 때 지어주신 일보(日步)라는 호(號)의 의미처럼 어둠이 아닌 밝은 빛의 길을 추구해 가는 영적 탐구의 길이 지속되고 있고 현재도 나에게 펼쳐지는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닐 것이다. 모든 만남과 시절인연, 순간순간 펼쳐지는 상황들, 사건들 모두 그러함을. 그리고 마음의 욕심과 집착, 아집과 교만의 억지힘을 쓰고 있는 과정이 곧 무명으로 그 무지가 불행을 낳고 고통으로 만들어짐을 순간순간 알아차리고 조금이라도 억지힘을 뻬고 순리대로 살아가려 노력해야겠다. 선생님의 글을 다시 마음에 새기며 문이 열릴때까지 . 더불어 빛에 늘 감사하며 나와 연결된 모든 이들에게 도움되는 삶이 되기를 오늘도 주어진 모든 것에 감사하며 기원해본다. 내가 부족하여 선생님을 자주 찾아뵙지 못하는 우를 범하고 있지만 선생님처럼 나를 이끌어주고 만들어주고 도움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를 전한다. 잊지않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덕분입니다.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한상범은? = 제주제일고, 홍익대 미술대학 동양화과를 나와 홍익대 미술대학원에서 동양화를 전공했다. 담묵회 창립회원, 아티스트그룹 '정글' 회원, 민족미술협회 회원, 한국미술협회 노원미술협회 회원, 디자인 출판 일러스트작가, 한강원 조형물연구소 디자이너, 서울 제주/홍익조형미술학원 원장, 빛 힐링명상가로 활동하고 있다.
◆ 대유괘(大有卦) 대유(大有)는 대단한 풍작, 대풍년이다. 화천대유(火天大有)는 하늘 가운데 붉은 해가 높이에서 비추며 만물에 혜택을 준다. 천하의 모든 사람이 함께 경축한다. 초목이 무럭무럭 자라서 무성하다. 큰 과일이 주렁주렁 열린다. 향기가 날아 흩어져 사방에 진동한다. 오만하면 어떻게 하여야 할까? 사업 발전이라는 큰 길에서 가장 금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 자고자대, 즉 거만하고 자만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자기를 잃어버리고 군중을 잃어버린다. 전진할 동력을 잃어버린다. 『주역』은 말한다. “어렵게 여기면 허물이 없을 것이다.” 창업 초기에는 크게 수확할 가능성이 많지 않다. 그때는 더욱 경계하고 방비한다. 지난날을 회상하고 여러모로 앞날을 생각한다. 앞뒤를 재며 출로를 찾는다. 잘못해 굶주릴까 염려하고 실패할까 두려워한다. 교만 떨다가 실수를 저지르는 데까지는 이르지 않는다. 사업이 발전하면서 여러 성취를 얻기 시작하면 더 향유하려 하고 안일한 생활을 하려 한다. 투지를 잃어버리고 마음이 들뜨기 시작한다. 자만해 자신의 처지를 잊어버리고 군중에게서 멀어지기 시작한다. 그렇게 아주 쉽게, 자신이 부족하다는 것을 노출시키면서 타인에게 약점 잡혀 코가 꿰어 끌려간다. 그러면 당신의 사업은 수포로 돌아간다. 그래서 옛사람은 말했다. “부유함은 본래 허물이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람이 부유함 때문에 스스로 허물을 만드는 것일 따름이다. 만약 부유함을 향유하면서 어려움을 안다면 허물이 없게 된다.” 예전에 갈대밭 옆에 자기 밭을 가지고 있던 농부가 있었다. 갈대밭에는 들짐승이 자주 출몰하였다. 자기 밭의 농작물이 들짐승에게 훼손될까 걱정이 되어서 활과 화살을 들고 밭과 갈대밭 사이 경계지에서 순시를 돌았다. 어느 날도 농부가 밭 주변에서 농작물을 살피고 있었다. 황혼이 지기 시작하는 시간이 되자 피곤을 느껴서, 갈대밭 옆에 앉아 쉬고 있었다. 그러다 갈대숲 속에서 갈대꽃이 갑자기 흩날리고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공중에 둥둥 떠서 이리저리 오갔다. 궁금했다. “이상하다. 내가 갈대를 흔들지도 않았는데, 바람도 한 점 없는데, 갈대꽃이 어찌 흩날리지? 갈대숲에 어떤 들짐승이 움직이는…….” 이런 생각이 들자 농부는 더욱 경계의 날을 곧추세우고 몸을 일으켜 갈대숲 속을 들여다보았다. 조금 있으니 숨어있던 호랑이 한 마리가 눈에 들어왔다. 호랑이가 이따금 머리를 젓기도 하고 때때로 꼬리를 흔들기도 하면서 깡충깡충 뛰고 있었다. 기뻐 죽겠다고 쾌재를 부르고 있는 듯 보였다. 호랑이가 왜 저렇게 마음껏 뛰고 있을까? 농부가 가만히 생각해 봤다. 어떤 짐승 하나를 잡은 게 분명하였다. 사냥을 끝낸 호랑이가 모든 걸 잊어버리고 주위에 어떤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지도 잊은 채 계속해서 갈대숲에서 뛰어오르는 것이었다. 그러다가 농부의 눈에 들게 된 것이고. 농부는 은밀하게 몸을 숨겼다. 화살을 활시위에 대고 호랑이가 보인 곳을 조준하고는 다시 뛰어오르기를 기다렸다. 호랑이 몸이 갈대숲 위로 떠올랐을 때 화살을 쏘았다. 호랑이는 처량하고도 날카롭게 울부짖고는 갈대숲 속에 쓰러졌다. 농부가 가만가만 건너가 살펴봤다. 호랑이 옆에 죽은 노루 한 마리가 쓰러져 있었다. 호랑이는 노루를 잡고서는 대단히 기뻐 날뛰다가 생각지도 못하게 화살을 맞아 죽게 된 것이었다. 즐거움 끝에는 슬픈 일이 생긴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조심하고 신중하게 일을 하여야 한다. 일시적인 승리에 도취되어서 이성을 잃고 위험에 대한 경계를 늦춰서는 안 된다. 그렇지 않으면 매복돼 있는 재난에 파묻힐 수 있다. 거만하고 자만하는 것은 해악이 실로 적지 않다. 큰일을 이루고 싶거들랑 자기를 제어하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자기 언행을 제어하고 자기감정을 추스르며 자기 욕망을 억누르고 자기 상태를 조절하여야 한다. 평온한 마음과 온화한 태도를 유지하여야 한다. 시시각각, “약자는 정서, 기분에 따라 행위를 제어하고 강자는 행동으로 정서를 제어한다.” 라는 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주역』은 말한다. “대유는 부드러움이 존귀한 자리를 얻었고 크게 가운데 있으면서 위아래가 응하므로 대유라고 한다. 덕이 건실하며 문명하고 응하여 때에 맞게 행하여진다. 이 때문에 크게 형통하다.” 대풍작을 거뒀을 때 유순하고 겸손하여야 한다. 유순하고 겸손할 때만 존귀한 자리에 앉을 수 있다. 가장 중요한 위치에 있을 때 위아래 모두 호응한다. 이것이 이른바 ‘대풍년’이다. 이때에는 강건하다. 문치가 흥성한다. 하늘에 순응하고 시기에 맞추어 행동하면 가장 형통하게 된다. 유순함은 사람됨의 철학이다. 유함으로 강함을 이긴다는 것은 유순의 지고한 경지를 반영하고 있다. 물은 유순함이다. 그러기에 물이 파고들지 못하는 틈이 없다. 아무리 견고하여도 다 부술 수 있다. 그만큼 힘이 세다. 유순함은 결코 연약함이 아니다. 강건함의 원활한 변통이다. 무협소설 『사조영웅전(射雕英雄傳)』 속의 곽정(郭靖)은, “충직하며 성실하다. 심지에 의협의 마음을 가지고 있다. 성격은 순박하고 인정이 두텁다. 말을 잘 듣는다. 소박하고 온화하며 선량하다. 생각이 단순하고 잡념이 거의 없다. 마음씨가 곱고 천성이 너그럽다. 의협의 마음씨, 어진 마음가짐을 지녔다. 관대하게 사람을 대하면서 위기가 닥쳤을 때 사람을 구하는 것을 잊지 않는다.” 이렇듯 곽정의 품성이 고상하기에, 인재가 되는 과정에서 명망 있는 많은 무림고수의 진실한 지도와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인품과 덕성은 자신에게 이익이 될 뿐 아니라 후인에게도 이익이 된다. 후인이 인재가 되는 것을 도와주기도 한다. 매란방(梅蘭芳)은 선천적으로 재능이 그리 뛰어나지 않았다. 일찍이, “조사께서 그에게 먹을 밥도 주지 않았다.” 라고 악평하기도 했다. 그런데 그의 할아버지가 어질고 너그럽게 사람을 대했다. 곳곳에서 여러 사람을 도와주었다. 매란방의 스승 오(吳)선생도 할아버지 살아생전에 사심 없는 도움을 받은 적이 있었다. 그 결과 매란방은 갑절로 되갚는 무한한 은혜를 입었다. 매란방은 깊은 감명을 받았다. “내가 이런 성취를 이룰 수 있는 것은 역시 선조께서 일생 동안 의기를 중시해 재물을 가볍게 여겼으며, 충직하고 온후하게 남을 대했던 덕을 받았기 때문이다. 오선생님이 제게 준 열정은 바로 그분이 조상님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기 때문에 고인을 추념하여 나를 눈여겨보면서 특별히 중시하셨던 것이다.” ☞이권홍은? =제주 출생. 한양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나와 대만 국립정치대학교 중문학과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국현대문학 전공으로 『선총원(沈從文) 소설연구』와 『자연의 아들(선총원 자서전)』,『한자풀이』,『제주관광 중국어회화』 등 다수의 저서·논문을 냈다. 현재 제주국제대학교 중국어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 동인괘(同人卦) 동인(同人)은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것이다. 모이면 교류하여야 한다. 교류하여야 이해할 수 있다. 이해하여야 일치된 의견을 이룰 수 있다. 서로 한데 뭉치고 단체에 융합되어 들어가니 조화를 이루고 행복이 충만하다. 혼자 서서 홀로 가면 어떻게 하여야 할까? 강하의 물은 물결을 일으키며 세차게 흘러가니 대단히 도도하다. 시내 물은 졸졸 흐르니 온화하고 조용하다. 큰 강과 시냇물은 기세 상으로 보면 도무지 맞지 않아 서로 배척할 것 같은데 결국에는 서로 손잡고 ‘같은 큰 가정’으로 유입된다. 사람이 늑대를 말하면 머릿속에서는 흉악하고 잔인하며 사람을 위압하는 대단한 기세를 가진 모습을 떠올리게 된다. 그런데 예부터 지금까지 사람이 외경하는 동물인 늑대는 여태껏 오랫동안 흥성하며 생존해 왔다. 늑대 대가족은 견줄 상대가 없는 응집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단결, 맞붙어 끝까지 싸우는 끈기, 향상능력, 간담상조, 생사고락을 같이하는 정신을 가지고 있다. 얼음은 딱딱하다. 굳어있다. 여러 얼음조각을 한 곳에 놓아두면 어찌 두더라도 같이 융합되지 않는다. 그런데 그것을 녹여 물로 만들면 자동으로 일체가 된다. 어떤 격의도 없이 매우 친밀한 친우가 된다. 강에 있든 바다에 있든 호수에 있든 아니면 산골짜기에 있든 들이나 산맥에 있든 결국 용맹하게 기세 좋게 공동의 목표를 향하여 앞으로 나아간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사람의 마음이 서로 융합될 때 단결하고 협조하게 되고 깊은 사랑을 나눈다. 비할 데 없는 강력한 힘을 발휘하게 된다. 기세 드높게 큰일을 너끈히 해낸다. 뇌봉(雷鋒)은 일찍이 말했다. “한 떨기 꽃은 아름다운 봄날을 장식하지 못한다. 한 사람이 앞서 나아가면 결국 단기필마일지니, 여러 사람이 앞서 나아가야 산을 옮기고 바다를 메울 수 있나니.” 그렇다. 오늘날은 단체의 시대다. 어떤 대단한 능력을 가진 사람도 혼자 힘으로는 위대한 업적을 만들어 내기 쉽지 않다. 반드시 광활한 무대로 나와 자기를 보여주어야 한다. 튼튼한 뒷받침이 자신을 지지해 줘야 한다. 서로 융합된 단체가 자신에게 협조해 줘야 한다. 그렇게 해야만 현 사회 속에서 강력한 지혜를 충분히 발휘할 수 있고 갈수로 더 강력하게 변할 수 있다. 『주역』은 말한다. “광대한 들판에서 사람과 함께 하니 형통하다. 대천을 건너는 것이 이로우니 군자는 바르게 함이 이롭다.” 사람들이 넓고 넓은 아름다운 곳에 모여, 하고 싶은 말을 시원하게 다 말하고 형제처럼 친하게 지내며 한마음 한뜻이 되고 상하가 한마음으로 뭉치면, 천지와 그 덕을 합치고 일월과 그 밝음을 합치며 여러 사람과 그 이익을 합치면, 가장 좋고 길하다. 그렇게 되면 천재지변이나 인재나 고통과 빈곤을 만나더라도 해결하기 어렵지 않다. 만약 큰 사업을 할 생각이 있다면 반드시 집단에 융합돼 들어가야 한다. 사회에 융합돼 들어가야 한다. 사람과 화목하고 함께 지내야 한다. 당신이 타인과 화목하고 함께 지낸다면 다른 사람도 당신과 한데 뭉쳐 어울리게 될 것이다. 우리는 자주 읊조리지 않던가, 일을 이루려면 먼저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사람됨을 첫 번째 위치에 놓으면 사업은 줄기차게 발전할 것이다. 사람은 인연을 중하게 여겨야 한다. 인연을 만들 생각이 있으면 반드시 단체와 한데 뭉쳐 어울려야 한다. 단체에 융합돼 들어갈 생각이 있다면 적극적으로 주동적으로 다른 사람과 소통하고 교류하여야 한다. 다른 사람의 마음의 소리를 이해하여야 한다. 타인이 생각하는 바를 생각하고 타인의 어려운 일을 도와야 한다. 그래야 다른 사람의 마음을 얻을 수 있다. 단체에 융합돼 들어갈 생각이라면 사귐성이 있어야 한다. 겸허하고 신중하여야 한다. 다른 사람의 비평과 교육을 용감하게 받아들여야 하고 좋은 관점과 의견을 잘 제시하여야 한다. 평등하게 사람을 대하고 특별취급해서는 안 된다. 권위를 내세우지 말아야 한다. 신축적으로 자제하고 섬세함과 강인함을 아울러야 한다. 어진 이를 예의와 겸손으로 대해야 한다. 『주역』은 말한다. “사람과 함께 문에 있으니, 허물이 없다. 문을 나서 사람과 함께 하니 또 누가 허물이 있겠는가.” 동문, 친척과 화목하고 함께 지내면 나쁠 것이 없다. 밖에 나갔을 때 마땅히 다른 사람과 화목하고 함께 지내며, 사귐성 있게 만나고 일시동인(一視同仁)하는 게 당연하지 않은가? 무엇이 그리 어렵겠는가? 기원전 11세기, 상(商) 왕조가 멸망한 후 서주(西周) 왕조는 그 정권을 공고히 하려고 분봉제도를 추진하였다. 귀족과 공신에게 사방을 나누어 봉하고 건도 입국하였다. 강태공(姜太公)은 제(齊) 지역을 분봉 받아 제나라를 건립하였다. 주공(周公)의 아들 백금(伯禽)은 노(魯) 지역을 분공 받아 노나라를 세웠다. 강태공이 제 지역을 분봉 받아 건국한 지 5개월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제나라를 안정시키고 주공에게 제나라에서 시행한 정치 상황을 보고하였다. 당시 주공은 놀랍고도 기이하다고 느껴 물었다. “어떻게 그리도 빨리 하셨소?” 강태공이 대답하였다. “군신 사이의 예절을 간소화했고 현지의 풍속에 순응했기에 그렇게 빨리 시행된 것입니다.” 백금은 노 지역에 도착한 후 3년이 지나서야 주공에게 노 지역의 정치 상황을 보고하였다. 주공은 불만스러워 물었다. “어째서 이렇게 늦게야 보고하는 것이오?” 백금이 대답하였다. “그곳의 풍속을 개혁하고 그곳의 예법을 혁신하여서 3년 후에나 효과를 거둘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늦었습니다.” 주공은 저도 모르게 탄식하며 말했다. “아, 노나라의 후대는 장차 제나라의 신민이 되겠구나! 정치상의 법도와 규칙이 간략하고 쉽게 행하지 못하면 백성은 가까이 하지 못한다. 정치사의 법도와 규칙이 평화롭고 쉽게 행해지면 백성은 틀림없이 귀순해 따른다.” ‘풍속에 따르며 예절을 간소화하고 평이하여 쉽게 이해되는 것’이 강태공이 건국하는 3대 기본 국책 중 하나였다. 그는 제나라에 온화하고 달관하는 국풍을 마련하였고 자유롭고 낙관적인 민풍을 진작시켰다. 그리하여 제나라가 춘추시기에 패자가 되고 전국시기에 칠웅이 되는 데에 기틀을 다졌다. 같은 민족이든 다른 민족이든, 같은 종교든 다른 파벌이든 우리는 ‘같은 큰 가정’에서 생장하고 있다. 간접적이든 직접적이든 서로 융합되고 있다. 서로 격려하고 서로 돕고 있다. 아주 분주하게 돌아다니는 개미는 자기 집 주변을 왔다 갔다 한다. 그저 보기에는 새까맣게 모여들어 빽빽하게 어지러이 뒤죽박죽인 것 같지만, 실제로는 세밀하게 분업돼 있고 서로 협력하며 한창 진행 중인 ‘집 만들기 사업’을 질서정연하게 진행하고 있다. 모든 구성원 개개인이 평범하면서도 감탄할만한 위대한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 것이다. 개미는 한 곳에 어려움이 있으면 팔방에서 지원한다. 자신을 돌보지 않고 헌신하는 단체정신을 갖추고 있다. 견실하고 성실하게 힘을 다하여 열심히 일한다. 피차 조화롭게 공동의 ‘궁전’을 건축한다. 행복하고 원만하게 자기의 자손후대를 양육한다. 우리 인류가 배워야 하는 본보기이다. 단체가 최고인 사회에 우리는 살고 있다. 일단 한 개인이 단체를 벗어나면, 번잡한 사회의 장애를 멀리 벗어나려고 망상을 가지게 되면, 깊은 산속이나 숲속에 은거하거나 고인이 나타나기를 기다린다면, 개인영웅주의를 실행하여 모든 일을 누가 뭐라 하여도 평소 자기식대로 하면 타인과 고립될 수밖에 없다. 의견과 관점은 단편적이거나 극단적으로 변하게 된다. 그럼 문제가 생긴다. 공자(孔子)는 자신의 원대한 포부를 실현시키려고 세상을 두루 유람하고 사해를 떠돌아다녔다. 여러 나라를 주유하면서 가는 곳마다 학문을 설파하였다. 한번은 주유 도중에 농사짓는 은사를 만났다. 급히 나아가 겸손하게 은사에게 가르침을 청했다. 은사는 체면을 봐주지도 않고 공자가 바보라고 비웃었다. 그러자 공자가 말했다. “사람은 금수와 같이 살아서도 안 되고 현실을 도피하는 태도를 채용해서도 안 됩니다. 내가 사람과 같이 살지 않는다면 누구와 같이 살아야 한다는 말입니까?” 은사는 대답할 말이 없었다. 오늘날 우리가 소중히 하는 것은 단체정신이다. 단체정신이 요구하는 것은 여러 가지 소질이 전면적으로 발전한 인재다. 한 개인은 정밀하고 깊은 전공 기술 능력 이외에 멸사봉공의 정신을 갖추어야 한다. 융통성 있는 협조능력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고도의 책임감과 적극적인 창신 정신이 있어야 한다. 사사로운 욕망과 감정을 비워버린 공정한, 텅 빈 들판과 같은 마음으로 사람과 함께 할 때, 모든 사람이 일치된 마음으로 협동하며 살아갈 수 있다. 참고로, ‘동인(同人)’의 ‘동(同)’은 ‘화(和)’와 대립된 획일성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조화의 뜻까지 포함된 ‘같이 하다’, ‘함께 하다’ 의미로 사용된 것이다. ‘동인’은 ‘사람들과 같이하다’고 풀이될 수 있으며, 동인괘는 세상 사람들이 함께 더불어 화합하면서 살아가는 대동사회를 건설하는 방도를 제시한 괘라고 할 수 있다. 괘상을 보면 하늘 아래에 불이 있는데, 하늘은 위에 있고 불도 위로 타오르는 성질을 갖고 있으므로 하늘과 성향을 같이한다. 또한 구오(九五)와 육이(六二)는 각각 중정한 효로서 상호 감응해 상하가 함께 하고 있다. 그러나 2효에서 “일가친척끼리 함께하는 것이니 인(吝)할 것이다”라고 한 것처럼 혈연·지연·학연 등 사사로운 관계에 얽매인다면 파당을 짓게 되어 대동사회는 무너지게 되는 것이다. 동인괘는 더불어 사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그 주체가 되는 지도자가 무엇보다 사리사욕과 사사로운 인간관계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 同人卦 ䷌ : 天火同人(천화동인), 건(乾 : ☰)상 리(離 : ☲)하 초구는 사람들과 함께 하기를 문 밖에서 하니, 허물이 없다.(初九,同人於門,无咎.) 「상전」에서 말하였다 : 문을 나가 사람들과 함께 함을 또 누가 허물하겠는가?(象曰,出門同人,又誰咎也.) 광대한 들판에서 사람과 함께 하니 형통하다. 대천을 건너는 것이 이로우니 군자는 바르게 함이 이롭다.(同人於野,亨.利涉大川,利君子貞.) 사람과 함께 문에 있으니, 허물이 없다. 문을 나서 사람과 함께 하니 또 누가 허물이 있겠는가.(同人於門,無咎.出門同人,又誰咎也.) [傳] 동인괘는 「서괘전」에서 “사물[물(物)]은 끝내 비색할 수가 없기 때문에 동인괘로 받았다”고 하였다. 하늘과 땅이 서로 교류하지 못하면 비색하게 되고, 위와 아래가 서로 함께 하면 동인괘(同人卦䷌)가 되니, 비괘(否卦䷋)와 그 뜻이 반대가 되기 때문에 서로 이어지게 했다. 또 시대가 비색하게 되면 반드시 사람들과 함께 힘을 써야 구제할 수 있으니, 동인괘로 비괘를 이은 까닭이다. 괘의 모양은 건괘(乾卦☰)가 위에 있고 리괘(離卦☲)가 아래에 있다. 두 개의 상으로 말한다면, 하늘이 위에 있는데 불의 성질이 타 올라가서 하늘과 함께 하기 때문에 동인괘이다. 두 개의 몸체로 말한다면, 오효가 바른 자리에 있어 건괘의 주인이고 이효는 리괘의 주인이니, 두 효가 가운데에 있고 제자리에 있음으로 상응하면서 위와 아래가 서로 함께하니, 남들과 함께 한다는 뜻이다. 또 괘에 하나의 음만 있어 여러 양들이 함께 하고자 하는 것도 남들과 함께 한다는 뜻이다. 다른 괘에도 진실로 하나의 음이 있는 경우가 있지만, 남들과 함께 하는 때에 있으면서 이효와 오효가 서로 응하고 하늘과 불이 서로 함께 하기 때문에 그 뜻이 크다. ☞이권홍은? =제주 출생. 한양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나와 대만 국립정치대학교 중문학과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국현대문학 전공으로 『선총원(沈從文) 소설연구』와 『자연의 아들(선총원 자서전)』,『한자풀이』,『제주관광 중국어회화』 등 다수의 저서·논문을 냈다. 현재 제주국제대학교 중국어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한 남자가 코코넛 열매를 엮어 만든 작은 배에 올라서 조류를 따라 벼랑에서 멀어지고 있다. 짙푸른 바다는 거친 파도로 절벽의 바위들을 때려대고..... 나지막하게 음악이 흐른다. 영화 ‘빠삐용(Papillon, 1973)’의 마지막 장면이고, 음악은 영화의 주제곡이다. 억울하게 살인죄를 뒤집어쓰고 종신형을 선고받은 앙리 샤리에르(스티브 맥퀸)는 감옥에서 가슴에 새겨진 나비 문신 때문에 ‘빠삐용’이라고 불린다. 프랑스 말로 빠삐용은 나비라는 뜻이다. 위조지폐범인 루이 드가(더스틴 호프만)와 함께 둘은 프랑스령이면서 적도 부근에 있는 절해고도의 감옥에 갇힌다. 다혈질인 빠삐용은 탈옥을 여러 번 시도하다가 독방에 갇히기를 반복한다. 시간이 지나 몸도 허약해지고 나이가 든 두 사람..... 드가는 섬을 빠져나가기를 포기하고 섬에 안주하고자 하지만, 빠삐용은 끝내 코코넛 배가 벼랑에 부딪히지 않는 법도 알아내어 탈출에 성공하면서 영화는 끝난다. 두 번째 탈출을 시도하다가 섬의 한센병 환자들이 모여 사는 마을에서 도움을 요청하게 되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그 마을의 대장은 한센병이 심해 손가락은 잘린 채로 헝겊으로 감겨 있고, 어두운 움막 안에서 살짝 비춰지는 얼굴은 흉하게 얽었다. 웬만한 사람들이라면 쳐다보는 것은 물론 접촉을 두려워할 텐데, 대장이 입에 물고 있던 시가를 주자 빠삐용은 서슴치 않고 받아서 연기를 뻐끔대며 태운다. 그 모습을 보고 대장은 탈출할 수 있는 배를 구해주기로 한다. 징그러운 전염병이지만 피하지 않고 다가와준 빠삐용의 용기를 인정했다는 의미이다. 한센병의 역사 한센병은 전염력이 그다지 세지 않은 병이다. 단순한 피부접촉이나 입맞춤, 성접촉 정도로는 옮기지 않는데, 환자의 외형이 워낙 기형이고 피부나 관절 손상이 심해서 두렵게 보일 뿐이다. 호흡기나 상처가 난 피부를 통해서 옮길 수 있어서 주의하면 되고, 또 치료를 시작한 사람으로부터는 감염력이 없다. 하지만 빠삐용이 감옥에 간 1930년대에는 원인은 밝혀졌어도 치료법인 항생제가 개발되지 않을 때여서 사람들은 여전히 공포스러워 할 때이다. 빠삐용이 전염되는 것이 두려우면서도 한센병 환자가 물던 담배를 받아서 입에 댄 것은 '죽기 아니면 살기'라는 절박함 때문이었으리라. 한센병은 오래전 영화인 윌리엄 와일러 감독의 ‘벤허(Ben-Hur, 1959)’에도 중요한 소재로 나온다. 너무나 유명한 작품이라 나이 든 분들은 물론 젊은 사람들도 거의 한 번쯤 봤을 것이다. 세기가 시작할 무렵 로마의 통치를 받는 유태인 귀족 출신 주다 벤허(찰튼 헤스탄)의 파란만장한 일대기를 그렸다. 예기치 않은 사고로 집안은 풍비박산 나고, 어머니와 여동생은 쫓겨나서 유랑걸식 하다가 한센병에 걸리고 만다. 벤허가 황폐해진 집으로 돌아왔을 때, 반가워도 만나지 못하고 어둠 속에서 쳐다만 봐야했던 모녀..... 한센병 환자들이 모여 사는 동굴에서나 예수가 골고다 언덕에서 십자가에 못 박힐 때도 뭉그러진 손가락과 흉측해진 얼굴을 천으로 감싼 채 등장한다. 문둥병 또는 나병으로 불리던 한센병은 오래전부터 하늘이 내린 저주받은 병으로 알려져 왔다. 지독히 흉한 외모 때문에 외딴곳에 격리되는 게 일반이었고, 민가로 들어오면 폭행을 당해서 죽기도 했다. 기원전 2000년경 인도나 파키스탄의 미라에서도 발견될 정도로 오랜 역사를 지닌 한센병은 동아시아나 인도 지역에서 유럽으로 퍼진 전염병이라고 본다. 실체를 몰라서 공포의 병이었던 것이 노르웨이 출신 미생물학자 한센(G. H. A. Hansen, 1841~1912)에 의해 1873년 원인균이 ‘나균(Mycobacterium leprae)’이라고 처음 밝혀지면서 세상에 실체를 드러냈다. 1882년경, 독일의 미생물학자이면서 의사인 로베르트 코흐(Heinrich Hermann Robert Koch, 1843~1910)가 결핵균(Mycobacterium tuberculosis)을 처음 발견하고 보니 둘은 같은 가족이었다. 마이코박테리움 속(屬)에 속하고 치료도 일부 비슷한 약물을 사용하기도 한다. 문둥이, 문둥병이라는 표현은 장애를 가진 이들을 비하하는 것이어서 더 이상 쓰이지 않지만, 과거 문학 작품에서만 간혹 볼 수 있다. 공포의 전염병, 콜레라 한번 유행하면 몇 개의 나라를 초토화시켜 버리며 인류를 두려움에 떨게 했던 감염병들은 페스트, 콜레라를 들 수 있다. 한센병이나 두창(천연두), 홍역들은 흉측하거나 사망률이 높긴 하지만 거센 유행은 하지 않는다. 콜레라 이야기를 다룬 영화인 ‘페인티드 베일(The Painted Veil, 2006)’은 1920년대 영국 런던과 중국 상하이를 배경으로 한다. 춤추기를 좋아하고 보통의 남자로는 성에 차지 않는 키티(나오미 왓츠)는 부모님의 성화에 못 이겨 몇 번 만나지도 않았던 월터 페인(에드워드 노튼)과 결혼을 해버린다. 그리고 결혼하자마자 세균을 연구하는 의사인 월터를 따라 중국으로 떠나게 된다. 상하이에서도 현미경과 책만 들여다보고, 소심하면서 말주변도 모자라는 월터와의 신혼 생활은 키티에게는 무료하고 숨이 막힐 지경이다. 사교 모임에서 외교관으로 와 있는 찰리(리브 슈라이버)라는 남자를 만나게 되는 키티. 찰리는 결혼한 처지인 걸 알면서도 월터와 너무나 다른 매력에 이끌려 불륜을 저지르고 만다. 이런 사실을 월터가 알게 되어도 키티는 오히려 타박하듯이 말한다. “여자의 사랑을 못 받는 건 남자 탓이지, 여자 탓이 아니예요.” 보건소장 대리인 자격으로 월터는 콜레라가 창궐했다는 양쯔강 유역으로 가기로 자원을 한다. 감염된 절반이 죽는다는 얘기, 매일 실려 나가는 시체들, 구토나 심한 설사를 하는 사람들, 고열 등 콜레라가 가지는 여러 증상들이 영상으로 나온다. 월터는 조사 끝에 마을 사람들이 마시는 우물에서 콜레라균을 검출하고는 그 우물을 폐쇄하도록 조치를 한다. 시체를 강가에 묻는 마을 사람들의 풍습을 보고 조사 범위를 넓혔더니 강물도 오염된 걸 확인하게 된다. 강에 접근하는 것도 통제시키자 마을 사람들은 식수가 부족해져서 원망을 하고, 급기야 폭동 수준으로 치닫는다. 사람들은 계속 죽어나가고, 오지에서의 생활은 고난의 연속이다. 월터와 키티 부부는 사이가 좋아질 기미가 안 보이고..... 영화의 시대 배경인 1920년대는 유럽에서 여섯 번째 콜레라 유행 시기였다. 유럽에서 처음 콜레라가 창궐한 것은 1810년대이다. 원래 유럽이나 다른 대륙에서는 나타나지 않다가 식민지 확장과 교역이 활발해지면서 아시아권에서 유럽으로, 나중에는 점차 미 대륙으로 넘어갔다고 한다. 식민지 쟁탈에 이은 교역의 확대로 동아시아의 풍토병이던 것이 세계로 뻗어나가는 기회가 만들어진 셈이다. 1800년대 초‧중반에 세 차례 유행을 했는데, 이 때 기억해야 할 의사가 영국의 존 스노우(John Snow, 1813~1858)다. 그는 빅토리아 여왕 시대의 런던에 유행하던 콜레라의 원인이 오염된 식수임을 밝히고, 하수와 상수 시설의 정비를 강화하게 했다. 아직 그 원인을 모르고 단순히 역병이라고 부를 때였다. 존 스노우의 연구 방식은 지금까지 이어져서 역학의 기초가 되었다. 콜레라라고 흔히 얘기하는 것은 감염학에서 ‘비브리오 콜레라’를 말한다. 최근까지도 계속 발생하는 전염병이고, 과거에는 치사율이 50%, 즉 걸리면 절반은 죽어야 했다. 요즘은 위생과 치료 기술이 발달해서 이 병으로 인해 죽을 일은 거의 없지만, 세균의 존재를 모르던 당시에는 페스트에 비견하는 역병으로 여겨졌다. 콜레라는 1800년대 중반부터 말까지 다시 두 차례 대유행을 한다. 이 시기에 감염병 역사에서 중요한 업적이 이루어진다. 앞서 말한, 훗날 세균학의 아버지라고 불리게 되는 로베르트 코흐는 이 당시 콜레라 유행지역인 인도에서 이집트를 따라 조사하게 됐다. 원인이 콜레라균임을 증명(1884년)하고, 염색법과 현미경을 통해 처음 우리 눈으로 보게 하면서 그 실체를 밝힌다. 이제 원인균이 무엇인지 밝혀졌으니 치료할 일만 남는다. 하지만 감염병 치료인 항생제 개발은 그 후로도 50년의 시간이 지나야 한다. 어쩔 수 없이 당시에는 다른 방식으로 해결해야 했다. 1900년 초 유럽에서 다시 유행할 때 영국의 의사 레오나르도 로저스(Leonard Rogers, 1868~1962)는 콜레라의 치료 등 열대병 해결에 큰 역할을 한다. 콜레라 치료를 위해 짙은 농도의 식염수(hypertonic saline)를 사용해서 많은 사람을 살리는 업적을 남겼다. 그는 훗날 열대의학의 선구자라고 불리게 된다. 아직까지도 저개발국가를 중심으로 유행을 하는 이 콜레라 전염병은 최근의 연구에 의하면 항생제 치료가 중요한 것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쌀뜨물 같은 설사를 수없이 하다 보니 하루나 이틀만에 탈수로 죽기 때문에 수분(식염수) 공급만 원활히 하고 버티면 낫는 병이다. 이 영화는 ‘달과 6펜스’로 유명한 영국 작가 윌리엄 서머싯 모엄(William Somerset Maugham, 1874~1965)의 소설을 각색해서 만들었다. 그는 외교관의 아들로 자랐고, 의과대학을 마친 후 작가로 돌아섰기 때문에 이런 의학 내용을 담을 수 있었을 것이다. 영화는 원작의 영어 제목 그대로 사용했지만, 한국에서는 ‘인생의 베일’이라는 책으로 출간되었다. 또 다른 영화인 ‘콜레라 시대의 사랑(Love in the Time of Cholera, 2007)’은 콜레라가 중요한 소재로 나타날 것 같아서 봤다면 낭패를 보게 된다. 영화는 원래 콜롬비아 출신 가브리엘 마르께스(Gabriel G. Márquez, 1927~2014)의 소설 ⌜콜레라 시대의 사랑, 1985⌟을 원작으로 두고 있다. 마르께스는 마콘도라는 지역을 가상의 배경으로 삼아 부엔디아 가문의 역사를 몽상적으로 다루면서 남미의 현실을 사실주의 기법으로 써내려간 ⌜백년의 고독(One Hundred Years of Solitude, 1967)⌟이란 소설로 1982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의사와 결혼해버린, 사랑하던 여인 페르미나 다사(지오바나 메조기오르노)를 51년 9개월 4일 동안 기다려온 플로렌티노(하비에르 바르뎀)의 집요한 구애를 그려냈다. 플로렌티노는 슬픔을 이기지 못해 끙끙 앓아눕고, 어머니는 혹시 이 녀석이 콜레라에 걸린 게 아닌가 의심하면서 전전긍긍하게 된다. 당시 전 세계는 간헐적인 콜레라 유행으로 큰 곤욕을 치르고 있었고, 마침 콜롬비아를 비롯한 남미도 피해갈 수 없어서 수십만 명이 사망했다고 한다. 영화의 원작 제목이 ‘콜레라 시대의 사랑’이라고 한 것은 두 가지 의미를 지니는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하나는 콜레라가 남미에 유행하던 시대 배경을 뜻하고, 다른 하나는 그 감염병처럼 죽도록 열병을 앓게 되는 사랑이 담긴 이야기란 것이다. 콜레라라는 감염병이 잠깐의 소재로 쓰였지만, 마르께스의 원작이라 영화는 꽤 볼만하고, 하비에르 바르뎀의 능글맞은 연기가 기억에 남는다.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고병수는? = 제주제일고를 나와 서울로 상경, 돈벌이를 하다 다시 대학진학의 꿈을 키우고 연세대 의대에 입학했다. 의대를 나와 세브란스병원에서 가정의학 전공의 과정을 마쳤다. 세브란스병원 연구강사를 거쳐 서울 구로동에서 개원, 7년여 진료실을 꾸리며 홀로 사는 노인들을 찾아 다니며 도왔다. 2008년 고향 제주에 안착, 지금껏 탑동365의원 진료실을 지키고 있다. 열린의사회 일원으로 캄보디아와 필리핀, 스리랑카 등 오지를 찾아 의료봉사도 한다. '온국민 주치의제도'와 '주치의제도 바로 알기' 책을 펴냈다. 한국일차보건의료학회(KAPHC) 회장, 한국장애인보건의료협회(KAHCPD) 부회장,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이사장 등을 맡아 보건의료 선진화 방안과 우리나라의 1차 의료 발전방안을 모색하는 보건정책 전문가다. 2020년 4.15 총선에 정의당 후보로 나와 제주갑 선거구에서 분루를 삼켰지만 총선 직후 곧바로 코로나19 감염이 창궐하던 대구행 의료자원봉사에 나서 숱한 이들에게 잔잔한 감동을 선사했다. 정의당 제주도당위원장을 역임했다.
길이 개통되고 오래 지나면 노면은 훼손되기 마련이다. 통행이 불편하다. 장애다. 그러면 다시 고치면 된다. 완전하게 만들면 다시 잘 통하게 된다. 이게 계속 되풀이 된다. 한 바퀴 돌고 다시 시작하듯이 계속 순환한다. 인생의 길과 우리가 밟고 가는 길이 무슨 차이가 있는가? 그렇기에 어둠이 도래할 때 비관하지 말아야 한다. 실망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 마음을 잠시 늦추고 자기 정서를 다시 정리하여야 한다. 모든 사념과 잡념을 버리고 일심으로 순조롭게 통할 수 있는 방향을 찾아 전진하여야 한다. 겨울이 왔다고 봄이 더 멀리 있는 것이 아니잖은가? 아르키메데스가 말하지 않았는가. “내게 충분히 긴 지렛대와 서 있을 장소만 준다면, 내가 지구를 움직여 보겠다.” 생활이나 직업에나 애정에 있어 우리에게 충분한 지렛대만 주어진다면, 가장 최상의 처리 방법이 제공된다면 우리는 무슨 일이든 완전무결하게 해낼 수 있다. 그런데 완전무결이란 존재하는가? 지구를 들 수 있을 만큼 긴 지렛대를 찾을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우리는 모든 것을 완벽하게 막힘없이 잘 통하게 만들 방식이나 수단을 찾을 방법이 없다. 그렇게 본다면, 큰 규율의 문제에서 위인도 바꿀 방법이 없는데 하물며 우리와 같은 보통사람이야 무슨 말 하랴? 그렇기에 우리는 사회발전의 규율을 따를 수밖에 없다. 자연에 순응하여야 한다. 끊임없이 자신을 고쳐 사회에 적응하여야 한다. 『주역』은 말한다. “천지가 교류하지 않는 것이 비이니, 군자는 이것을 본받아 검소한 덕으로 재난을 피하고, 녹봉으로 영화를 누리려 하지 않는다.” 천지가 서로 교류하지 않을 때는 천재(天災)와 인재(人災)가 생겨난다. 군자는, 순조롭지 않을 때는 마땅히 자신의 재능을 수렴하고 자랑하지 않으면서 소인이 음해하는 재난을 피한다. 영화부귀를 쫓지 않아 소인의 질투를 피한다. 사람들이 말하지 않던가. “마음속에 사심이 없으면 천지가 넓다.” 이때가 되면 군자는 바다가 모든 강물을 받아들이듯이 넓은 도량을 품는다. 그래서 우리가 나아가는 길에 장애를 없애고 순조롭지 못한 데서 막힘없이 통하도록 유리한 조건을 우리에게 제공한다. 우리가 모든 것을 확실하게 꿰뚫고 모든 것을 내려놓을 때 사상(관념)은 더 높은 경지에 진입할 수 있다. 셀 수 없이 많은 번잡하고 소소한 일은 우리의 정서를 다시는 좌우하지 못한다. 심리상태도 자연스레 단정하고 평화롭게 된다. 신심도 평안하게 된다. 일도 갈수록 순조롭게 된다. 모든 문제도 순리대로 풀려나간다. 속담이 있지 않던가. “재상의 뱃속은 배도 저을 수 있다.”(마음이 넓어 다른 사람에게 아량을 베풀고 용서할 줄 안다는 말) 한 국가의 재상은 매일 온갖 정무를 처리하여야 한다. 전국의 크고 작은 일을 처리하려 동분서주하며 매일 눈코 뜰 새가 없다. 처리할 일이 너무 많아 거재두량이라 하여도 일일이 다 셀 수 없을 정도다. 근본적으로 기뻐하거나 슬퍼할 여지나 시간이 재상에게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가 너무 감정적이 된다면, 조그마한 일에 끊임없이 뒤엉키어 맴돈다면 그렇게 많은 일들을 어찌 다 처리할 수 있겠는가? 용량이 커야 능력도 크다. 담을 수 있는 커다란 용량의 도량이 있어야만 더 많은 물건을 담을 수 있고 기세 드높게 일을 처리할 수 있다. 번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헤맨다면 배워도 평화롭지 못하고 지순하지 못하게 된다. 그런 사람은 마음과 몸이 한꺼번에 지나치게 지치게 되어, 때 이르게 노쇠하게 되어버린다. 그렇게 되면 그는 즐거움, 긴장 완화, 격정, 자신감, 마음이 너그러우면 몸도 편하게 된다는 행복을 체험하기 어렵게 될 것이다. 하늘이 우리 눈앞에 재난을 내릴 때, 비관하지 말자. 실망하지 말자. 꿋꿋하자. 과도하게 고뇌하지 말자. 평상심을 갖자. 자연에 순응하자. 그래야만 자신의 심신을 이완시킬 수 있게 되어 이지적으로 길가의 가시와 잡초를 처리할 수 있다. 더 기쁘게 모든 것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다. ***** 否卦 ䷋ : 天地否(천지비), 건(乾: ☰)상 곤(坤: ☷)하 비는 바른 사람이 아니니, 군자의 곧음에 이롭지 않으니, 큰 것이 가고 작은 것이 온다.(否之匪人,不利君子貞,大往小來.) 비는 사람 같지 않은 사람이니, 군자가 올바름을 지키기에는 이롭지 못하다. 큰 것이 가고 작은 것이 올 것이다./비는 소인이 장악하는 시대를 말함이니 군자의 곧고 바른 도리에 이롭지 못하다. 큰 것이 가고 작은 것이 온다.(否之匪人,不利君子貞,大往小來.) *비인(匪人) : 행위가 바르지 않은 사람(行為不正的人) ; 사람 같지 않는 자 ; 나쁜 사람 천지가 교류하지 않는 것이 비이니, 군자는 이것을 본받아 덕을 안으로 거두어 들여서 피할 뿐이며, 녹봉으로 영화를 누리려하지 않는다./천지가 교류하지 않는 것이 비이니, 군자는 이것을 본받아 검소한 덕으로 재난을 피하고, 녹봉으로 영화를 누리려 하지 않는다.(象曰:天地不交,否.君子以儉德辟難,不可榮而祿.) 비(否)는 불(不)과 같은 자로, 본래는 ‘새가 위로 날아가고 아래로 내려오지 않는다’라는 뜻으로서 부정의 의미를 나타내는 문자다. 비괘에서는 ‘막힌다’ 의미로 사용된다. [傳] 비괘(否卦)는 「서괘전」에 “태(泰)는 통하니, 만물은 끝까지 통할 수만은 없기 때문에 비괘로 받았다”고 하였다. 만물의 이치는 가고 오며 통하여 사귀는 것이 극한에 이르면 반드시 비색해지니, 비괘가 이 때문에 태괘의 다음이 되었다. 비괘는 하늘이 위에 있고 땅이 아래에 있으니, 천지가 서로 교류하여 음양이 화창하면 태(泰)가 되고 하늘이 위에 있고 땅이 아래에 있으면 천지가 막히고 끊어져 서로 통하지 못하니, 비(否)가 된다. ☞이권홍은? =제주 출생. 한양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나와 대만 국립정치대학교 중문학과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국현대문학 전공으로 『선총원(沈從文) 소설연구』와 『자연의 아들(선총원 자서전)』,『한자풀이』,『제주관광 중국어회화』 등 다수의 저서·논문을 냈다. 현재 제주국제대학교 중국어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