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에 만들어진 ‘철의 심장을 가진 남자(The Man with the Iron Heart)’는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당시, 독일군 고위 장교 하이드리히 암살사건을 다룬다. 전쟁 중의 내용을 다루면서 영화는 감염병 역사의 중요 순간을 다루면서 지나간다. 영화에서 의학의 내용을 꼭 집어서 소개하는 필자로서는 그 장면을 놓치지 않고 소개해보려고 한다. 1942년 5월 어느 날, 프라하 교외에 있는 대저택의 넓은 정원이 보이고, 맑은 햇살 속에 분수가 뿜어지고 있다. 아이들이 평화롭게 뛰어노는 가운데 한 남자가 저택 안으로 들어간다. 하켄 크로이츠(나치 최고의 영예인 철십자 훈장)를 왼쪽 가슴에 단 그는 잠시 후 컨버터블(convertible)을 탄 채 프라하의 복잡한 시내를 지난다. 커브를 돌다가 속도가 줄어지는 순간, 갑자기 나타난 정체 모를 남성이 나타나 차를 막고 기관총을 들이댄다. 그리고 영화는 과거로 돌아간다. 때는 1929년의 독일 어느 해군기지. 해군사관학교를 거쳐 해군 장교가 된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제이슨 클락)는 문란한 사생활을 했다는 이유로 군사법정에서 심문을 받고는 불명예제대를 하게 되었다. 이후 파티장에서 우연히 독일 명문가 집안 출신 리나(로자먼드 파이크)를 만나게 되는데, 리나는 하이드리히에게 ‘나의 투쟁’이라는 히틀러의 책을 보여주면서 나치당에 관심을 가져보라고 권한다. 리나의 도움으로 당시 나치 권력 서열 2위라고 볼 수 있는 SS 수장 힘러까지 만나게 되면서 SS의 정보부대 임무를 맡는다. 하이드리히는 자비란 원래 가지고 있지 않았던 사람처럼 잔인하면서도 일을 신속하고 확실히 처리하면서 정보부대의 역할을 높여 힘러의 신임을 얻게 된다. 독일이 체코를 점령하자 히틀러의 신임 속에 그는 지금의 체코 영역인 보헤미아와 모라비아 지역 총독 자리에 오른다. 하이드리히는 프라하를 독일제국에서 유태인 없는 최초의 도시를 만들겠다며 유태인 ‘청소’를 하기 시작하면서 악명이 높았고, 사람들은 그를 ‘금발의 짐승’, ‘프라하의 백정’이라고 부를 정도였다. 히틀러는 그의 충성심을 칭찬하며 ‘철의 심장을 가진 남자’라고 치켜세운다. 그러나 그는 영화 첫 장면처럼 영국에서 훈련받은 체코 레지스탕스에 의해 암살 대상이 되었다. 하이드리히 암살사건이 중요한 이유는 당시 나치 고급 장성 중 최초로 암살당한 인물이면서 히틀러를 크게 분노케 한 사건이기 때문이다.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결국 하이드리히는 폭탄에 부상을 입고 프라하의 종합병원에 입원해서 독일에서 급파된 최고의 의사들에 의해 수술을 받는다. 히틀러는 자신의 주치의까지 보내면서 치료하게 했지만, 잠시 회복하는 듯 하다가 심한 고열과 통증이 지속되면서 결국 패혈증으로 사망하고 만다. 물론 수술은 잘 되었을 것이고, 당시 개발된 항생제인 ‘프론토질’이라는 설파제도 거듭 투여하였다. 그 당시 서양은 수술 기법이 상당히 발달한 시대였기 때문에 웬만한 외상으로는 죽는 일이 거의 없었다. 아직 항생제 개발과 투여가 보편화되지도 않아서 세균 감염으로 대부분 죽던 시대였다. 이전의 1차 세계대전 당시만 해도 전장에서 다친 독일군인들 중 10~20만 명이 상처감염으로 사망했다는 보고가 있을 만큼 폭탄과 총알보다도 ‘박테리아’라는 놈이 더 무서운 적군이었다. 항생제의 역사에서 기억해야 할 인물들 이처럼 인류는 오래도록 감염의 위험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수많은 과학자들이 노력을 하는 중에 항생제 역사에서 기념비적인 업적을 남긴 세 인물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연구자들에 의해서 ‘606호’라고 이름이 붙여진 ‘살바르산’이라는 항균물질을 만들어 매독 치료의 새로운 장을 연 독일의 파울 에를리히(Paul Ehrlich, 1854~1915)는 항생제 역사에서 첫 테이프를 끊었다고 할 수 있다. 옷감을 물들이던 염색 방법으로 세균(박테리아)도 색깔을 입혀 현미경으로 볼 수 있게 된 과학자들은 세균 속에 침투하는 염료를 이용해서 세균을 죽일 수도 있지 않을까, 하고 연구하던 때였다. 화합물을 변조하고 쥐 실험을 하기를 수백 번 반복하다가 살바르산은 606번째 만들어졌기 때문에 개발 초기에는 ‘606호’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독일의 게르하르트 도마크(Gerhard Domagk, 1895~1964)는 1934년에 ‘프론토질’이라는 황화합물로 여러 세균에 효과를 보이는 광범위항생제를 만들어냈으며, 대량생산을 가능하게 해서 전 세계에 사용되었다. 아직까지도 흔히 ‘설파제’라고 부르는 항생제의 효시로서 인류 최초로 대량생산이 가능하도록 개발된 항생제라고 보면 될 것이다. 세 번째 인물은 1944년에 최초로 결핵 치료 물질인 스트렙토마이신을 개발한 미국의 왁스먼(S. A. Waksman, 1888~1973)이다. 항생제의 역사에서 우리는 영국의 알렉산더 플레밍(Alexander Fleming, 1881~1955)을 떠올리기 쉽다. 우리가 항생제의 시초라고 알고 있었던 알렉산더 플레밍은 1928년에 실험실에서 우연히 푸른곰팡이를 통해 페니실리움이라는 항균 물질을 발견한 것일 뿐, 정제된 항생제로 대량생산이 가능했던 것은 1935년 경 플로리와 체인이라는 과학자들에 의해서였다. ‘철의 심장을 가진 남자’에서 하이드리히가 자동차 밑에서 터진 수류탄에 의해 외상을 입었지만 끝내 소생할 수 없었던 이유는 뭘까? 당시 도마크에 의해서 개발된 프론토질은 웬만한 감염병에 효능을 보여서 ‘마법의 탄환’이라는 명칭까지 붙었고, 하이드리히에게도 투여됐다. 영화에서는 보여주지 않았어도 훗날 의학자들은 세균 감염에 항생제가 효과를 발휘하지 못했고, 혈액으로까지 감염이 번져 패혈증이 되었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프론토질이 시판된 1930년, 1940년대 전 세계는 그 약에 열광하면서 무분별하게 사용하였다. 머리나 배가 아파도, 감기만 걸려도 세균 감염이 아닌 거의 모든 병에 프론토질을 투여했다. 용량도 정해지지 않아서 ‘약을 탈탈 털어 먹었다’고 해도 과장이 아닐 정도로 남용을 하였다고 한다. 하이드리히는 이미 내성이 생겨버린 설파제의 희생자였을까? 감독은 하이드리히가 군 최고의 요직에 오르기까지의 과정을 소상히 담으면서 한편으로는 체코 출신이면서 영국에서 군사 훈련을 받은 레지스탕스 얀과 요제프, 쿠르다 3인이 프라하로 침투해서 체코 레지스탕스들과 암살사건을 주도하는 것까지 연출하면서 서로의 상황들을 보여주려고 했다. 워낙 중요한 사건이어서 관련된 영화들이 과거에도 몇 차례 나왔다. 대부분의 영화들은 ‘국뽕’ 영화처럼 게릴라들이 작전을 수행하는 내용에 초점을 두었지만, 이번 영화는 감독이 하이드리히가 권력의 핵심에 오르기까지의 과정과 그의 일상을 보여주는데도 각별히 신경을 썼다. “우리는 함께 하는 거야, 친구.” “그래, 저 세상에서 다시 만나자.” 몸을 피하고 최후까지 저항하던 얀(잭 오코넬)과 요제프(잭 레이너)의 마지막 대사이다. 이 사건과 관련된 영화 중 가장 유명한 것은 ‘새벽의 7인(Operation Daybreak, 1975)’이다. 잘생긴 티모시 바텀즈가 주연하였고, 당시 암살 작전에 투입된 요원들의 비장한 연기가 차가운 프라하의 분위기와 어울려 지금까지도 명화로 꼽힌다. 영화의 배경인 체코 프라하에는 아직도 지하실 좁은 창문 외벽에 총탄 자국이 있는 성당이 하나 있다. 바로 얀과 요제프가 최후까지 저항하다 자신들의 머리에 총을 겨누고 죽음을 택한 지하실이 있는 ‘성 키릴과 메소디우스 성당(St. Cyril and Methodius Cathedral)’이다. 사람들은 그들의 숭고한 죽음을 기리고자 그곳을 보존하고 있다고 한다.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고병수는? = 제주제일고를 나와 서울로 상경, 돈벌이를 하다 다시 대학진학의 꿈을 키우고 연세대 의대에 입학했다. 의대를 나와 세브란스병원에서 가정의학 전공의 과정을 마쳤다. 세브란스병원 연구강사를 거쳐 서울 구로동에서 개원, 7년여 진료실을 꾸리며 홀로 사는 노인들을 찾아 다니며 도왔다. 2008년 고향 제주에 안착, 지금껏 탑동365의원 진료실을 지키고 있다. 열린의사회 일원으로 캄보디아와 필리핀, 스리랑카 등 오지를 찾아 의료봉사도 한다. '온국민 주치의제도'와 '주치의제도 바로 알기' 책을 펴냈다. 한국일차보건의료학회(KAPHC) 회장, 한국장애인보건의료협회(KAHCPD) 부회장,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이사장 등을 맡아 보건의료 선진화 방안과 우리나라의 1차 의료 발전방안을 모색하는 보건정책 전문가다. 2020년 4.15 총선에 정의당 후보로 나와 제주갑 선거구에서 분루를 삼켰지만 총선 직후 곧바로 코로나19 감염이 창궐하던 대구행 의료자원봉사에 나서 숱한 이들에게 잔잔한 감동을 선사했다. 정의당 제주도당위원장을 역임했다.
새 연재를 시작합니다. 고병수의 '영화와 만난 의학'입니다. ‘영화관에서 만나는 의학의 세계’는 영화 속에서 드러난 의학 이야기를 다룹니다. 감염병의 역사와 감염 질환 이야기, 정신의학뿐만 아니라 여러 질병들을 영화 속에서 찾아내 소개합니다. 오랫동안 지역 의료현장에서 진료를 하며 보건의료 정책 및 교육 활동을 하는 고병수 의사가 필진으로 나섭니다. 많은 애독바랍니다. /편집자 주 수천 년 동안 인류를 괴롭히던 감염병이라고 하면 두창(천연두), 중세 때 유럽을 휩쓸었던 페스트, 콜레라 같은 것들을 들 수 있다. 오래도록 눈으로 볼 수 없어서 그 실체를 모르기 때문에 뭉뚱그려서 역병(疫病)이라고 불렀다. 최근에는 1918년 스페인 독감 정도가 전 세계를 떨게 만든 것이었을 뿐, 세균학이 발달하고 항생제가 넘쳐나는 근래에 “그깟 세균이나 바이러스가 무슨 문제냐”고 우리 인류는 자신했다. 게다가 사스(SARS), 메르스(MERS), 신종플루가 기승을 부렸어도 잠시 그때뿐이었던 기억을 해보면 과거처럼 대규모 감염병은 불가능하다고 여겼다. 공상과학 영화나 상당히 과장된 드라마가 아니면 생각할 수 없던 문제로 받아들였다. 1995년에 만들어져서 상영될 때만 해도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동원해서 과장했구나'하고 생각했던 ‘아웃브레이크(Outbreak)’라는 영화가 있다. 코로나19 감염병이 전 세계를 휩쓸고 있는 근래에 다시 본 사람들은 영화에서 나오는 상황이 바로 우리 눈앞에서 벌어지는 모습을 보면서 25년 전에 만들어져서 미래를 예견한 이야기에 감탄하게 된다. 영화는 그 당시 세계보건기구(WHO)에 보고되던 에볼라바이러스의 위험이 아프리카에서 심각한 상황이라는 현실을 보고 상상력을 가미해서 만들어졌다. 에볼라바이러스 질환은 ‘에볼라 출혈성 열성질환(EHF, Ebola hemorrhagic fever)’이라고 부를 정도로 고열과 연이은 출혈 경향으로 다발성장기부전에 빠져서 사망하게 된다. 감염되면 치사율이 평균 50%에 이를 정도로 치명적인 바이러스 감염병이다. 1976년에 아프리카 남수단과 콩고에서 발생하여 처음 보고된 이후 현재까지도 간헐적으로 국지성 유행을 일으키고 있는데, 워낙 사망률이 높기도 하고 심한 출혈이 나타나니까 극적인 상황을 연출하면서 영화로 만들기에 좋은 소재였을 것이다. 영화를 보다 보면 감염을 일으킨 괴바이러스의 모양이 기다란 털실이 꼬여있는 것으로 화면에 비치는데, 에볼라 바이러스의 모양과 닮았다. 영화는 1967년 어느 날, 아프리카 자이르(Zaire, 콩고공화국의 옛 이름)의 모타바 강 계곡에 있는 미군 캠프에서 알 수 없는 전염병이 나도는 상황에서 시작한다. 무엇엔가 감염되어 갑자기 죽어가는 군인들이 많아지고, 부대에서는 본국에 긴급 의료지원 요청을 하지만 파견된 요원들은 혈액 샘플만 채취한 뒤 비밀리에 부대에 폭탄을 투하하여 몰살시켜 버린다. 극비리에 진행된 이 작전은 세월이 지나면서 아무에게도 알려지지 않는다. 30년 정도의 시간이 흐른 뒤, 자이르의 같은 지역에서 비슷한 전염병이 돈다는 보고를 받고 육군 대령 샘 다니엘즈(더스틴 호프만)가 급히 파견되어 조사를 벌인다. 혹시나 모를 미국으로의 바이러스 유입이 걱정되어 본국의 의사들에게 경고를 해야 한다고 보고하지만, 아무도 그의 말을 들어주지 않는다. 그러던 중 모타바 강 근처에서 잡힌 원숭이가 미국 캘리포니아의 시더 크릭이라는 작은 마을로 반입되어 전염원이 되고, 그 원숭이를 데리고 있던 청년도 감염되어 바이러스를 전파시킨다. 이 과정에서 원숭이를 데리고 있던 한국 화물선인 태극호가 등장하면서 한국말이 나오니 영화를 보는 우리에게 흥미를 더해준다. 감염자와 접촉했던 사람들이 고열을 앓다가 갑자기 죽어간다. 잠복기는 24시간이 안 되고, 치사율은 100%. 백악관에서는 30년 전과 비슷한 방식으로 미국 내 최초 감염 지역을 봉쇄하고 몰살시키려는 계획을 긴급히 세운다. 감염 환자들을 돌보던 미국 질병관리본부(CDC) 연구원이자 샘의 전 부인 로비(르네 루소)는 문제의 괴전염병을 연구하다가 감염자 주사기에 찔려 감염된다. 샘은 상황을 숨기려는 정부와 상관들의 비협조 속에 몰래 감염원인 원숭이를 찾아 나선다. 사람들은 죽어 나가지만 그 원숭이는 오래도록 살아있기 때문에 항체를 만드는데 도움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샘은 원숭이를 찾아서 로비를 살리고, 죽어가는 사람들을 살릴 수 있을까? 영화의 제목인 ‘아웃브레이크(Outbreak)’라는 말은 쉽게 표현해서 유행성 감염병이라는 뜻이다. 특정 지역을 중심으로 토착화해서 발생하면 풍토병이라고 하지만, 아웃브레이크는 전염성이 강해서 주변으로 퍼질 수 있고 다소 통제가 가능한 상황을 말한다. 최근의 코로나19처럼 통제하기 힘들고 전 세계에 유행해버리는 것은 팬데믹(Pandemic), 즉 대유행이라고 할 수 있겠다. 상상할 수도 없었던 상황이 현실로 목도하고 있는 2020년 이후의 세계..... 영화는 선견지명이 있었던 걸까, 아니면 가능하지 않았던 상황을 짐작하며 상상의 날개를 펼친 것일까? 요즘의 우리도 영화에서처럼 완전히 밀폐된 방역복을 입은 모습을 쉽게 보고 있고, 확진자라는 사람들을 격리하고 있다. 지금껏 볼 수 없었던 상황이다. 만일 우리도 아웃브레이크와 같은 일이 벌어진다면 국가는 어떤 자세를 보여줄까? 이제는 현실이 되어버린 영화 속 이야기들을 느껴보며 이 영화를 다시 보는 것도 흥미로울 것이다. 다소 젊은 시절의 더스틴 호프만을 보는 것도 덤으로 얻게 되고, 지금은 쟁쟁한 배우들인 르네 루소, 모건 프리먼, 케빈 스페이시 등이 함께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이와 비슷한 영화로는 2011년 개봉한 ‘컨테이젼(Contagion)’이 있다. 맷 데이먼과 미국 내 최초 감염자면서 초기에 죽는 것으로 나오는 기네스 펠트로, 감염병 전문가인 로렌스 피쉬번과 마리옹 꼬띠아르, 개나리꽃이 치료제라고 사기치는 인물 주드 로 등 쟁쟁한 배우들이 등장하는 것만으로도 눈이 황홀해진다. 컨테이젼은 ‘전염’이라는 뜻을 가진 단어인데, 최근의 한글맞춤법으로는 ‘컨테이전’이라고 써야 맞다. 영화는 무엇보다도 이전의 아웃브레이크나 한국 영화 감기와 달리 극적인 상황 연출을 자제하면서 유행하는 감염병에 대해 대처하는 여러 인물들을 보여주려고 한다. 가족을 살리려는 이기적인 모습, 자신이 살아야 하는 상황에서도 다른 감염자들을 배려하려는 사람들, 이런 상황에서도 자신들의 이익을 챙기려는 회사, 개나리꽃이 치료약이라며 사기를 치는 인물 등..... 영화가 보여주려는 설정이나 인물들을 따라가다 보면 다소 지루하게 느껴지겠지만 생각할 점들이 그만큼 많아진다는 매력이 있다. 영화의 또 다른 특징은 섬세한 내용들을 집어넣었다는 점이다. 감염 경로와 접촉자들을 면밀히 파고드는 역학조사 모습은 영화가 전문적인 자문을 잘 받았다는 것을 알게 하고, 백신이 개발되지만 누가 먼저 수혜를 받을 것인지 논란이 되는 것, 생일 날짜를 기준으로 백신을 제공하게 되는 점, 백신을 맞았다는 증명 표시 등은 코로나19 시대에 사는 우리가 접한 현실과 너무 똑같다. 영화는 후반부에 지본의 탐욕으로 숲이 망가지고, 서식하던 박쥐들이 인간 사회와 접촉점이 많아지면서 바이러스가 돼지, 그리고 사람에게 옮기는 내용을 보여주는데, 너무나 사실을 반영한 내용이라서 감탄이 나올 정도이다. 한국 영화인 '감기(The Flu, 2013)'는 극적인 상황을 만들어내면서 국가와 시민의 관계를 중요 갈등으로 가지고 가며 대규모 감염병을 다룬다. 한국 포스터에서 제목은 감기라고 했지만, 영어 제목으로는 플루(Flu)라고 했다. 플루는 인플루엔자(Influenza)의 약자로 ‘독감’을 말하기 때문에 엄밀히 말하면 다른 의미인데, 가볍게 생기면서 종국에는 심각한 폐해를 입히는 것으로 보이기 위해 독감이 아닌 감기라는 제목을 사용한 걸까? 인류 역사에서 수없는 감염병들이 있었지만 일부 지역에서 유행했다. 유럽을 중심으로 대규모로 유행했던 것은 3차례 있었다고 기록돼 있다. 첫 번째 대유행은 541~750년 동안에 유럽을 휩쓸었던 ‘유스티니안 역병(Plague of Justinian)’이다. 기독교 성인의 이름을 따서 붙여졌는데, 당시 유럽 인구의 절반이 사망(2500만~5000만 명)했을 정도로 초토화됐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전염병의 원인을 몰라서 장티푸스, 두창(천연두), 홍역, 에볼라 등으로 추정했으나, 2011년 네이처(Nature)지에 대역병의 원인균이 페스트균임을 밝혀내서 인정이 되는 중이다. 두 번째, 세 번째 대유행은 중세와 근대에 돌았던 페스트이다. 그 외 콜레라나 많은 감염병들이 있었지만, 크게 인류를 위험에 빠뜨린 감염병 역사는 세 차례였다. 지금의 코로나19는 지금 우리가 난리를 치지만, 한때 유행했던 작은 유행병 정도로 역사는 기록할 것이다.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고병수는? = 제주제일고를 나와 서울로 상경, 돈벌이를 하다 다시 대학진학의 꿈을 키우고 연세대 의대에 입학했다. 의대를 나와 세브란스병원에서 가정의학 전공의 과정을 마쳤다. 세브란스병원 연구강사를 거쳐 서울 구로동에서 개원, 7년여 진료실을 꾸리며 홀로 사는 노인들을 찾아 다니며 도왔다. 2008년 고향 제주에 안착, 지금껏 탑동365의원 진료실을 지키고 있다. 열린의사회 일원으로 캄보디아와 필리핀, 스리랑카 등 오지를 찾아 의료봉사도 한다. '온국민 주치의제도'와 '주치의제도 바로 알기' 책을 펴냈다. 한국일차보건의료학회(KAPHC) 회장, 한국장애인보건의료협회(KAHCPD) 부회장,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이사장 등을 맡아 보건의료 선진화 방안과 우리나라의 1차 의료 발전방안을 모색하는 보건정책 전문가다. 2020년 4.15 총선에 정의당 후보로 나와 제주갑 선거구에서 분루를 삼켰지만 총선 직후 곧바로 코로나19 감염이 창궐하던 대구행 의료자원봉사에 나서 숱한 이들에게 잔잔한 감동을 선사했다. 정의당 제주도당위원장을 역임했다.
◆ 비괘(否卦)(1) 비(否)는 좋지 않다, 불가하다, 불만, 불선의 뜻이다. 좋지 않은 길은 바로 가로막힐 수 있다. 가로막히면 곳곳이 통하지 않는다. 뜻하지 않은 일도 천지를 뒤엎을 기세로 다가온다. 앞길은 깜깜하게 된다. 중요한 길에서 한 걸음 잘못 나아가면 곳곳이 장애다. 그리하여 조급해지고 불안해지며 견디지 못할 정도로 피곤하게 된다. 그렇기에 분투하는 과정에서 때때로 생각하여야 한다. 일마다 숙고하여야 하며 끊임없이 자기의 앞길을 위하여 넓고 평탄한 길을 닦아야 한다. 막다른 골목으로 들어가는 것은 안 된다. 그렇게 해야 운무를 거둬낼 수 있고 때가 되어 좋은 운이 돌아오게 되면서 내내 막힘없이 잘 통하게 된다. 그러면 마음 편안하고 무사태평한 희열을 향유하게 된다. 진퇴유곡에 빠지면 어떻게 하여야 할까? 사람에게는 슬픔과 기쁨, 이별과 만남이 있다. 달에는 흐리고 맑고 차고 이지러짐이 있다. 비관에 빠졌을 때, 헤어졌을 때, 우리 마음이 검은 구름에 휩싸였을 때에 어떻게 하여야 할까? 『주역』은 말한다. “비는 사람 같지 않은 사람이니, 군자가 올바름을 지키기에는 이롭지 못하다. 큰 것이 가고 작은 것이 올 것이다.” 순조롭지 못한 것이나 장애는, 사람이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자연 운행의 규율이다. 인위적으로 자연 규율을 고치려 한다면 불리한 일이 발생하게 된다. 눈앞에 펼쳐진 길이 갈 수 있는 길이면 가고 올 수 있는 길이면 오면 된다. 우리는 처음부터 끝까지 평상심을 유지하여야 한다. 방관자적 마음으로 생활 속의 불균형을 대해야 한다. 마음을 느슨하게 하여야 한다. 머리는 깨어있어야 한다. 옛사람이 말하지 않았는가? “화라는 것은 복이 의지하는 바이고 복이라는 것은 화가 잠복하는 곳이다.”1) 옛날 어느 날, 정체불명의 말이 갑자기 어떤 집 대문을 박차고 들어왔다. 날 듯 다가온 그 횡재를 보고는 가족 모두 좋아 어쩔 줄 몰랐다. 세월이 어느 정도 지나, 집안의 어린아이가 말을 타고 밖으로 놀러나갔다가 일순간 실수로 말에서 떨어져 다리가 부러졌다. 가족이 가슴 찢어지게 슬퍼하였다. 다시 세월이 지나, 북방에 전쟁이 벌어졌다. 그 가족이 살고 있는 마을로 군인이 들이닥쳐 군대에 충원하기 위하여 장정을 잡아갔다. 온 마을의 건장한 청년은 모두 잡혀갔는데 오직 예전에 다리가 부러져 절음발이가 된 청년만 그 재난을 피할 수 있었다.(『새옹지마(塞翁之馬)』) 사람들은 늘 말하지 않던가. “화로 인하여(화를 토대로) 복을 얻는다.” “재물 손실은 액땜이다.”2) ‘태(泰)’의 앞길이 ‘비(否)’이다. ‘비’도 ‘태’를 위해서 있다. 장애가 오래되면 반드시 통한다. 통하고 난 후 다시 적체되고 막힌다. 이것이 규율이다. 『주역』에서도 마음이 좋지 않은 것은 순조롭지 못한 데에서 근원한다고 하지 않았는가. 순조롭지 못한 일은 마음을 좋지 않게 하는 근원이다. 인생의 십중팔구는 뜻대로 되지 않는다. 순조롭지 못한 일을 피하기도 쉽지 않다. 그렇기에 자신의 심경과 상태를 고치고 자신의 사유방식을 조정하며 자기의 사상(생각, 관념)을 바꿔야만, 비로소 자신을 견딜 수 없을 만큼 피곤한 상태까지 빠져들지 않게 할 수 있다. 순조롭지 못하고 막혀 있는 상태에 빠졌을 때 초조하고 불안하게 될 것은 분명하다. 대단히 낭패당하고 곤경에 빠지게 될 것이다. 그럴 때 필요한 것이 냉정이다. 눈을 감으라. 심호흡 하라. 평정을 찾으라. 번잡한 일은 하늘 저 멀리 날려버려라. 막다른 골목에 들어섰다면 결사적으로 안쪽으로 파고들지 말아야 한다. 멈추고 얼마간 제대로 쉬어야 한다. 어쩌면 다른 풍경을 발견하게 될지 모른다. 아니면 고개를 돌려 새로운 출구를 찾아보라. 그러면 무의식중에 확 밝아질 수도 있다. “산 겹겹 물 겹겹 더 이상 길이 없는 줄 알았더니, 버드나무 그늘 짙고 꽃 밝게 핀 곳에 다시 한 마을이 있구나.”3) 바로 그런 도리를 말하고 있다. 이때에 우리 한번 뒤돌아서서 이전에 자신이 가장 기뻤던 일을 회상해 보자. 가장 감미롭고 아름다운 추억, 가장 재미있었던 경험, 가장 사랑했던 사람을 회상해 보자. 자신이 가장 사랑했던 사람과 포옹하는 상상을 해보자.…… 알고 보면 우리는 행운아이다. 자신을 자랑스러워할 가치가 우리에게 있다. 비관할 이유가 없다. 상심하고 고통스러워하여야 할 이유가 하나도 없다. 그저 기쁨만 있을 뿐이다. 화와 복이 서로 전환되고 순조로움과 순조롭지 못함이 서로 맞물려있으며 장애(막힘) 뒤에 거침없는 통함이 숨어있다. 사물의 전개가 극에 달하면 반드시 반전하지 않던가. 고통과 시련이 끝나면 좋은 시절이 오고 좋은 시기가 극에 달하면 고난의 시기가 다시 온다4)고 하지 않던가. 기왕에 그렇다면 우리가 자신의 순조롭지 못한 상황에 있는 자신을 마음에 둘 필요가 뭬 있겠는 가? 자신을 믿어야 한다. 순조롭지 못한 상태가 되거들랑, 막힘없이 통하는 것과 순조로움이 우리 곁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점차 다가오고 있다고 자신에게 이야기하라. 길을 걸어가는 것과 같다. 처음 길을 만들 때는, 출발할 때는 곳곳이 장애다. 막혀있다. 가시덤불을 헤치고 가야한다. 새로운 길을 뚫고 나가야하기도 한다. 그리하면 막힘없이 통하게 된다. ☞이권홍은? =제주 출생. 한양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나와 대만 국립정치대학교 중문학과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국현대문학 전공으로 『선총원(沈從文) 소설연구』와 『자연의 아들(선총원 자서전)』,『한자풀이』,『제주관광 중국어회화』 등 다수의 저서·논문을 냈다. 현재 제주국제대학교 중국어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1) 禍兮福之所倚,福兮禍之所伏 : 화복의복(禍福倚伏)(『노자老子』) 2) 因禍得福 ; 재물 손실로 재앙을 면하다(破財消災). 3) 山中水復疑無路,柳暗花明又一村.(육유陸游『유산서촌遊山西村』) 4) 物極必反 ; 否極泰來,剝極而福.
노신(魯迅)은 『고향』에서 이렇게 썼다 : 낡고 허름한 집이 내게서 더 멀어졌다. 고향의 산수도 점점 내게서 멀어져 갔다. 그런데 나는 떠나기 서운한 어떤 미련도 느끼지 못했다. 나는 내 사방에 보이지 않는 높은 담벼락이 있는 것을 느낄 뿐이었다. 나를 혼자 격리시키고 있어서, 나를 무척 답답하게 만들고 있었다. 그 수박 밭의 은 목걸이의 작은 영웅의 형상을 나는 원래 명확하게 알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갑자기 모호해 졌다. 그게 나를 무척 슬프게 했다. 노신이 묘사한 이런 짙게 깔린 참담, 냉담, 비애의 광경은 정말 사람을 질식시킨다. 도대체 왜 그럴까? 세태염량, 유수 같은 세월, 풍물은 여전한데 이미 변해버린 인간사, 소통의 정지 때문이다. 물론 진부하게 변질된 봉건왕조도 그렇다. 인간에게 소통이 없다면 얼마나 무섭게 변할 것인가를 알 수 있다. 침묵은 금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하지만 침묵을 유지하면 벙어리나 겁쟁이가 되어 버린다. 사람의 마음은 뱃가죽을 사이에 두고 있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외곬로만 방비한다면 우리 마음의 벽은 더욱 높아질 뿐이다. 세상은 각박하다, 사람 마음은 헤아리기 어렵기에 결국 속임을 당할까 두렵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하지만 우리가 목이 멘다고 먹기를 그만두거나, 작은 장애 때문에 긴요한 일을 그만두거나, 모든 외부 세상과의 왕래를 단절할 수는 없지 않는가. 소통이 부족하면 서로 이해할 수 없다. 피차의 정신, 마음 사이에 한 층의 ‘두꺼운 장벽’이 존재하게 된다. 나아가 서로 의심하게 되고 서로 믿지 못하게 된다. 그렇게 되면 낭패다. 소통을 잘 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는 것은 성취욕, 일에 대한 열정, 책임감에 대한 구체적인 검증이다. 소통은 졸렬하고 속된 ‘관계학’이 아니다. 첫째, 소통은 원칙이라는 기초 위에서 사람 사이의 단결 문제를 처리하는 것이다. 무원칙 위에서 그저 좋게 지내려고 해서는 안 된다. 개인의 이익을 위하여 서로 결탁해서도 안 된다. 이익이 되는 일을 다투어서도 안 된다. 얻을 이익이 없을 때 교분을 나누어 소원하게 되는 ‘붕당’ 행위도 해서는 안 된다. 성취를 위하여 분투하는 공동의, 이상이라는 기초 위에서 소통해야만 진정으로 단결할 수 있다. 둘째, 소통은 사상(생각, 견해)이 중요하다. 매일 만나 얼굴을 맞대면서도 의견을 나누는 데에 소홀하면 안 된다. 사상이 소통되지 않으면 감정은 어우러지기 어렵다. 사상을 소통하면서 감정의 기반을 굳혀, 업무에서 서로 도와야 한다. 방법과 정책을 결정할 때 서로 보완하여야 한다. 삶에 서로 관심을 가져야 한다. 소통은 일상적으로 하여야 한다. 일이 바쁘면 바쁠수록 단체가 단결이 잘 되면 잘될수록 수시로 마음을 털어놓고 이야기해야 한다. 견해를 나누어야 끊임없이 응집력을 증대시킬 수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이 있다. 소통은 진실이 중요하다. 표면적인 호의를 베풀어서는 안 된다. 그저 영합하거나 허풍 떨거나 과정해서는 안 된다. 구성원의 결점이나 문제점이 보이면 진심을 가지고 형제와 같은 정으로 제때에 지적하고 성심성의껏 동료가 알지 못하는 부분을 도와주어야 한다. 경험을 종합해 서로 도와주고 배우는 목표를 이루어야 한다. 그래야만 진짜로 한 번의 소통으로 더 좋은 감정을 쌓았고 더 많이 깨우침을 받았다고 할 수 있다. 소통하려면 반드시 성심으로 사람을 대해야 한다. 자기 마음으로 남의 마음을 헤아려야 한다. 입장을 바꾸어 생각하여야 한다. 소통하는 데에 진심이 부족하면 모든 것은 허위가 된다. 아무런 의미가 없게 된다. 모든 교류는 내포된 뜻이 깊이가 없으면 타인을 믿게 만들지 못한다. ‘형통태평(亨通泰平)’이란 막힘없이 통해야만 태평할 수 있고 무궁한 복을 얻을 수 있다는 뜻이다. 거침없이 통하려 한다면 서로 융합하여야 한다. 상하가 단결하여야 한다. 피차 이해하여야 한다. 우리가 진보하고 앞서 나아가려면 소통이 가장 중요하다. 교류하여야 한다. 교류 중에 발전이 있다. 소통하는 중에 타인을 이해하고 자신을 이해하게 된다. ***** ䷊ : 天地泰(천지태) 곤(坤: ☷)상 건(乾: ☰)하 태(泰)는 본래 ‘미끄럽다(滑)’ ‘미끄럽게 하다’라는 의미를 지닌 글자이다. 여기에서 ‘통하다’는 뜻이 파생되었다. 태괘(泰卦)는 작은 것이 가고 큰 것이 오니, 길하고 형통하다.(泰,小往大來,吉亨.) 태는 작은 것이 가고 큰 것이 오니 길하여 형통할 것이다. 천지가 교합해 만물이 소통되며, 상하가 교합해 그 뜻이 같다.(泰,小往大來,吉亨.則是天地交,而萬物通也,上下交,而其志同也.) 천지가 교류하는 것이 태이니, 임금이 그것을 본받아 천지의 도를 마름질하고 천지의 마땅함(바른 운행)을 도와서 백성을 돕는다.(天地交,泰,后以財(裁)成天地之道,輔相天地之宜,以左右民.) 안은 순양으로 가득 차 군자가 건실하고 밖은 순음으로 채워져 소인이 잘 따르니 군자의 도는 잘 자라고 소인의 도는 쇠퇴해 가니 태평하다.(內陽而外陰,內健而外順,內君子而外小人,君子道長,小人道消也.) [傳] 태괘는 「서괘전」에 “실천하여 태평하게 된 뒤에 편안해지기 때문에 태괘로 받았다”라고 했다. 실천한 것이 제자리를 얻으면 여유로워 태평해지며 태평하면 편안하니, 리괘(履卦) 다음에 태괘가 오게 됐다. 태괘는 유순한 곤의 몸체가 위에 있고 굳센 건의 몸체가 아래에 있으니, 천지음양의 기운이 서로 사귀어 조화되면 만물이 생성되므로 통하여 태평한 것이 된다. ☞이권홍은? =제주 출생. 한양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나와 대만 국립정치대학교 중문학과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국현대문학 전공으로 『선총원(沈從文) 소설연구』와 『자연의 아들(선총원 자서전)』,『한자풀이』,『제주관광 중국어회화』 등 다수의 저서·논문을 냈다. 현재 제주국제대학교 중국어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돼지가 새끼를 낳을 때 10마리, 15마리씩 낳거든. 이때 족은걸 한 마리 상 잘 먹이고 키웡 그걸로 잔치든 장례든 큰일을 다 치르는 거야.(이때 작은 새끼 돼지 한 마리를 사서 잘 먹이고 키워 그 돼지로 잔치든 장례든 큰일을 치르는 것이다.)" 제주에서 돼지는 사람들에게 매우 각별한 존재다. 과거 혼례와 초상, 대소상 등 집안에 큰일(경조사)이 있을 때 가정에서 손님들에게 대접하는 가장 귀한 음식이 바로 돼지고기였다. 그래서 사람들은 돗통시(돼지우리)에서 원래 키우던 돼지 외에 큰일에 대비해서 돼지 한 마리를 더 키우곤 했다. '자릿 도세기'다. 돗통시에 넣고 기르는 두 마리의 돼지 중 어미젖을 뗀 새끼 돼지를 일컫는다. 인분을 처리하고 거름을 만드는 귀한 돼지를 바로 잡아 쓸 수 없으니 값이 싼 새끼 돼지를 미리 사서 앞날에 대비하는 것이다. 생활의 지혜다. 길게는 1년, 짧게는 3∼5개월 동안 잘 먹이며 몸집을 키운 뒤 운명의 그 날(?)이 되면 돼지를 잡았다. 상례와 같이 갑작스럽게 맞이한 큰일이 생긴 때에는 급한 대로 이웃집에 있는 여분의 돼지를 구하거나 오일장에서 돼지를 샀다. 제주시 한림읍 동명리 출신 변성용(84) 씨는 "돼지 100근(60㎏)짜리 정도면 대단히 컸지. 한 마리를 잡으면 그걸로 음식을 해다가 온 동네 사람들을 대접하고…. 그 옛날 그 없는 살림 속에도 부모가 돌아가시면 부모에 대한 정성을 다했다"고 설명했다. 지금은 혼례와 초상을 치를 때 예식장과 장례식장에서 치르지만, 옛날에는 모두 가정집에서 처리했다. 보통 혼례는 3일간, 초상은 3∼5일간 치렀다. 특히, 제주에선 혼례를 '잔치'라 일컬으며, 잔칫집에 갈 때 '잔치 먹으러 간다'고 표현했다. '먹는다'는 행위에 방점이 찍힌 듯한 이 표현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온 동네 사람들이 잔치를 즐기고 그만큼의 음식을 장만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돼지를 잡고, 음식을 장만해 며칠 동안 많은 손님을 대접하는 일을 한 가정에서 도맡아 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그래서 혼례와 상례가 있을 때마다 온 마을 사람들이 함께 도왔다. 개인의 집안일이 아닌 마을 공동체의 일로 여겨 함께 기뻐하고 슬퍼하며 큰일을 다 치를 때까지 모두가 함께했다. 이때 눈에 띄는 역할이 있었다. 바로 도감(都監)이다. '제주도의 도감의례'(문순덕)를 보면, 도감은 혼례와 상례 때 모든 의식을 총괄하는 감독관을 가리키는 말이었지만, 지금은 돼지고기를 썰어 분배하는 사람의 의미로 축소됐다고 한다. 고기가 귀했던 시절 행사에서 가장 중요한 음식인 돼지고기의 분배는 매우 중요한 일이었다. 돼지 한 마리를 잡든, 두 마리를 잡든 많은 손님에게 부족함 없이 고기를 골고루 나누는 것이 도감의 역할이다. 손님에게는 '고깃반'이라고 해서 한 접시에 돼지고기 2∼3점, 마른두부 1점, 순대 1점을 넣어 대접했는데, 1명에 1고깃반이 원칙이다. 도감은 적은 양이라도 최대한 많은 사람을 대접해야 하므로 하객 또는 문상객 수를 파악해 고기를 종잇장처럼 얇게 썰어서 접시에 가득하게 보여야 했다. 도감의 역할과 책임이 큰 만큼 도감의 권한은 막강했다. 도감은 주인도 마음대로 고깃반을 가지고 갈 수 없도록 철저하게 관리했고, 도감 주변에는 고기 부스러기라도 얻으려고 사람들이 기웃거렸다고 한다. 먹을거리가 풍족한 오늘날 과거의 이러한 풍습을 선뜻 이해하기 쉽지 않다. 그런데도 이러한 풍습과 문화를 통해 어려울 때 이웃끼리 서로 도와 일하던 제주의 나눔정신인 '수눌음 정신'을 엿볼 수 있다. 갈수록 개인주의가 만연한 오늘날 우리가 이어가야 할 제주의 전통이다. 제주대학교박물관이 펴낸 '할망 하르방이 들려주는 제주 음식 이야기'(허남춘·허영선·강수경 저)에서 저자들은 "혼례 잔치에 작지만 평등하게 돼지고기를 나누던 풍속은 어려웠던 시절 공동체가 함께 사는 지혜를 보여준다. 제주의 돼지고기는 단지 하나의 먹을거리가 아니라 삶이 녹아있는 문화인 셈"이라고 말한다. ◇ 돼지를 활용한 혼·상례 음식 제주 혼례와 상례에는 돼지를 활용해 다양하진 않지만, 토속적이면서 소박한 음식들이 나왔다. 제주 사람들에게 돼지고기는 언제나 즐겨 먹는 음식이라기보다 마을 잔치가 있을 때나 어렵사리 먹을 수 있었던 행사용 음식이었다. 집안의 대소사에 손님 접대를 위해 돼지를 잡고 뼈나 내장 등 부위는 국물 음식으로 이용했고, 살 부위를 도마에서 썰어 대접했다. 일명 '돔베고기'다. 다른 지역의 편육과는 달리 삶은 고기를 누르지 않고 뜨거울 때 도마에서 썰어서 먹던 데서 유래했다. 돔베는 도마의 제주 사투리다. '고깃반'이라고 해서 한 접시에 돼지고기 2∼3점, 마른두부 1점, 순대 1점을 넣어 대접했다. 이외에 'ㅁ+ㆍ+ㅁ국'(정확한 아래아 발음은 아니지만 '몸국' 정도로 발음, 이하 '몸국'으로 표기)이 있다. '몸'은 '모자반'이란 해조류를 뜻하는 제주 방언이다. 돼지를 삶았던 국물도 아까워서 음식을 만들었는데 바로 이게 '몸국'이다. 몸국은 돼지를 삶아낸 국물에 모자반과 배추, 무 등을 넣고 끓인 국이다. 몸국은 가문잔칫날(잔치 하루 전날) 일꾼들과 친척, 손님들에게 대접한 제주의 대표적인 잔치 음식이었다. 상례 때는 몸국을 먹지 않고 돼지 삶은 국물에 무나 무청을 넣고 적당히 끓여서 대접했다고 한다. 또 수에('순대'를 뜻하는 제주어)가 있다. 수에는 돼지고기로 접시를 채우기 부족해 접시에 놓을 음식의 가짓수를 늘리기 위함이었다. 제주에서는 돼지의 창자 속에 메밀가루와 보릿가루 등을 넣어 만들다 나중에는 찹쌀밥과 다양한 양념이 추가됐다. [연합뉴스=변지철 기자]| [※ 이 기사는 '제주도의 도감의례'(문순덕), '할망 하르방이 들려주는 제주 음식 이야기'(허남춘·허영선·강수경 저), '제주전통음식문화의 현대적 의미 모색'(강수경 저) 등 책자와 논문을 참고해 제주 돼지문화를 소개한 것입니다.]
이번에 소개할 작품은 내가 회원으로 있고 현재도 아티스트 그룹으로 활동하고 있는 ‘정글프로젝트2013’ 에 출품한 작품이다. 사연이 많은 작품이라 짧은 지면으로는 많은 얘기를 소개하긴 힘들지만 에피소드 한두가지라도 남겨보려 한다. 아직도 내 작업실에 소장하고 있는 작품이며 볼 때마다 만감이 교차하고 애뜻한 마음이 드는 소중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2013년 인천에 있는 한중문화관 기획초대로 열린 전시에 출품한 작품이다. 100호와 10호 두점을 함께 출품 전시하였는데 100호는 내가 소장하고 있고 10호 그림은 다른 한점과 함께 지금 얘기하고자 하는 사람들 중 한 사람에게 소장되어 있다. 당시 같이 하던 일을 접고 서울 방학시장에 돈까스집을 개업하면서 내가 선물로 드렸다. 이 당시의 나는 결혼후 운영하고 있던 학원경영 악화로 현실적 어려움을 겪고 있던 상태였다. 따라서 경제적인 부족함을 해결하려 여러 가지 돌파구를 찾아보던 시기였다. 그리고 모든 일들이 내 뜻대로 내 맘대로 안되는 상황과 일들이 벌어지면서 스스로 자신감 자존감이 위축되고 그 나약함을 술에 의지하던 때였다. 우울감과 불안한 생각들과 그로 인한 모든 일들이 악순환되는 안좋은 상황들이 교차되는 시기였다. 그런 와중에 어찌어찌 서울 방학동 집 근처 우이동 제일교회에 다니는 사람들과 인연이 생겨 길거리에서 호떡을 팔게 되는 상황이 되었다. 그 당시 그림을 그리는 선배가 우이동 제일교회를 다니고 있었는데, 그분을 통해 소개받은 사람들이 호떡을 판다는 사실을 전해 듣고 관심을 갖고 찾아가게 된 것이다. 당시에는 뭐라도 해서 돈을 벌어야 했기에 마음먹고 호떡을 팔기로 결심을 굳히고 누나한테 융통한 약간의 보증금을 지불하고 나중에 돌려받기로 하여 마침내 내 인생에서 뜻하지 않은 호떡팔기가 시작되게 된 것이다. 같이 호떡을 팔자고 했던 선배는 안하고 ... 사실은 그 사람들도 이제 막 호떡 판매를 시작한지 얼마 안된 사람들이었다. 이 분들 생각에는 시장에서 흔히 보던 호떡을 새로운 발상으로 기름을 적게 쓰고 내용물이 다양한 호떡을 만들어 이른바 바닥부터 직접 몸으로 파는 길거리 노점상부터 경험하면서 시제품을 테스트해보기로 한 것이었다. 그리고 나서 나중에 반응이 좋으면 노점상들을 통해 납품을 늘려가고 향후 요식업 프랜차이즈 까지 확대해보려는 야심(?)을 갖고 있던 분들이었다. 그래서 나도 운좋게 끼었다는 생각과 함께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서로 의지하며 노력해서 꿈을 이루어보자는 희망을 갖게 되었고 열심히 살아보자는 마음을 갖게 되었다. 처음에는 누나에게 빌린 돈으로 호떡을 납품받아 지금도 타고 다니는 스타렉스 뒤 트렁크를 약간 개조하고 가스통과 불과 집기들을 설치하여 단속이 뜸한 길거리나 골목에서 팔기 시작했다. 그러다 소개 소개로 연결된 교회 빈공터, 수락산 등산로 입구, 선배가 사는 아파트 단지 앞, 큰 동서가 운영하고 있던 한의원 건물 옆 등 여러 지인들의 도움으로 영업장소를 점차 넓혀가게 되었다. 급기야 나중엔 진입하기 힘든 남대문 시장과 수유역 가판대까지 진출하였다. 호떡을 팔던 2년반 남짓 많은 우여곡절과 모르던 세계, 새로운 세계, 다양한 사람들과의 만남, 신기한 일 등 많은 일들을 겪었는데 지면상 다 얘기할 수 없지만 내 인생에서 아주 특별한 시간이었다는 것은 분명한 팩트다. 당시 나는 종교가 없었다. 이 우연인지 필연인지 모를 이상한 인연과 계기로 만난 교회 사람들과의 인연이 그쪽 입장에서는 일종의 전도가 되어 나는 결국 우이동 제일교회를 다니게 되었고 주일예배에 매주 참석하는 신도가 되었다. 신기한 일은 지금부터다. 이 내용은 교회에서 하는 간증같은 일인데 그 내용은 이렇다. 첫 예배를 마치고 나서 그곳 교회 목사와 전도사와 함께 사진을 찍고 거기서 만든 책 한권을 받게 되었다. 끝나고 인사하고 내 차에 들어와 대수롭지 않게 받은 책을 무의식적으로 펼쳐 보았는데 생전 처음보는 ‘야베스의 기도’ 라는 제목과 문장이 선명히 눈에 들어왔다. 그러면서도 그런가 보다 하고 그냥 대수롭지 않게 읽어 내려 갔는데 놀라운 것은 처음보는 기도 내용이 한줄 한줄 정말 당시에 내게 필요한 내용의 기도이어서 적잖이 놀랐다. 기도도 할줄 몰랐던 나에게 내게 꼭 필요한 기도가 갑자기 등장한 것이다. 지금도 생각해 보면 신기하고 감사한 일이다. 야베스의 기도를 외우고 호떡을 팔 때마다 기도하는 일이 내 삶에 벌어진 것이다. 나만을 위한 기도 야베스의 기도를 보면 이렇다. ‘’원컨대 주께서 내게 복에 복을 더하사 나의 지경을 넓히시고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나로 환난을 벗어나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 이 기도를 호떡을 팔 때마다 외치며 그 힘든 시기를 버티며 보냈다. 나중에는 술 한잔 먹고 답답한 감정이 치솟을 때 교회에 가서 무릎굻고 ‘하나님!! 이젠 내맘대로 내뜻대로 아무것도 안됩니다. 죽이던지 살리던지 알아서 하십시오’라고 하는 장족의 발전(?)을 이루는 때도 있곤 했다. 지나보면 알게 되듯이 이제 되돌아보면 지나친 자아에 억지로 부자연스럽게 힘주며 살았던 그 억지힘을 빼고 하나님께 온전히 맡겨보자던 마음이 일었던 감사한 시절이었고 끝없이 추락할 것만 같았던 마음이 바닥을 치며 일어날 수 있었던 기회의 시절이었음을 이젠 느낀다. 참 감사하다. 전혀 다른 인생의 행로를 만나면서 나의 부족함을 여실히 느끼게 하던 그 시절, 그런 생활을 2년반 남짓 하던 시기에 이 작품은 제작되고 탄생되어 아직도 내곁에 남아있게 된 것이다. 이 작품의 제목은 당시 절박했던 나의 심정과 ‘예술보다 삶이 먼저다’라는 의미로 ‘마이 라이프’라 명명하였다. 바탕은 불판을 상징하는 블랙을 칠하였고, 당시 팔았던 호떡들을 프린트하여 리페인팅하거나 찟거나 오려 붙이면서 꼴라쥬를 덧붙였다. 더불어 조형적인 요소를 감안하여 블랙 바탕에는 남대문 시장에서 일본인 관광객, 외국인 관광객들을 상대로 호객행위할 때 부르짖던 단어인 ‘오이시’, ‘야사이’ 같은 일본단어와 영단어들을 써 넣었다. 당시만 교회를 다니고 지금은 교회를 안 다니지만, 이 고난과 역경의 시절을 보내고 또 한번 맞닥뜨린 운명처럼 기연이 된 빛힐링과 명상을 통해 개인적인 육체와 영적 치유의 경험을 하면서 그 당시에 나에게 복음처럼 등장했던 ‘야베스의 기도’가 이젠 내 자신에 대한 참회와 반성, 그리고 현재 주어진 모든 것에 대한 감사의 기도, 타인을 위한 기도, 신에게도 사람들에게도 그 시절 인연자들에게도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게 하여 달라고...로 변해갔고 이 때 처음 만난 기도가 지금은 매일 행하는 일상의 중요한 내 생활의 일부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또 한 가지는 이 호떡으로 맺어진 짧고도 강한 인연이 되었던 분들과는 나중에 형편이 어려워 그랬겠지만 서로의 깊은 유대감이 받지 못한 보증금 문제로 점차 소원해지고 전화를 걸어도 받지 않는 일이 빈번해지고 내가 힘들 때 도움은커녕 돌아보지도 않는 행동들에 마음 한구석에 섭섭함이 생기게 되었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보면 내가 힘들 때 뜻하지 않게 등장한 소중한 인연이었고 귀한 인연이었음을 이제는 알기에 그런 조그만 생각들은 접기로 하였다. 용서가 아닌 감사의 마음이 더 크기 때문에... 섭섭함이 감사의 마음으로 바뀌는 것도 어찌보면 내게는 신기한 일이다. 지난시절 어둠속 무저갱처럼 내 힘으로는 빠져나오지 못했던 나에게 다가온 이 한줄기 빛은 분명 모든 종교를 망라하고 초월한 하느님의 빛, 부처님의 빛이었다는 것을 이제는 말할 수 있다. 개인적인 경험이라 이해를 바라면서 조심스럽게 꺼내본다. 감당할 만큼의 시험을 통해 그 고통들이 연단이 되어 알게 모르게 나를 눈뜨게 하고 알아차리게 하고 단련하신 그 뜻을 아직도 부족한 삶이지만 이제는 조금은 느끼고 있음도 참 다행하고 감사한 일이다. 모든 부질없는 시절을 거치면서 그 기나긴 무명의 시간을 살아오면서 교만과 아집속에 갇혀 참회도 하지 않은 무지함과 어리석은 나를 맑히고 밝히는 근원의 빛!! 생명의 빛!! 작금의 국내는 물론 전 지구적으로 혼란하고 어수선하고 힘든 시기에 상념으로나마 그 빛을 모든 이들이 알고 붙잡고 받아들여서 그 밝음의 빛으로 어둠을 물리치고 우리의 어리석은 영혼의 마음 또한 악심이 선심으로 바뀌고 한없는 사랑으로 내리는 빛으로 은혜와 축복이 가득한 빛으로 모든 이들이 늘 행복하길 오늘도 간절히 바래본다. 지금 이 순간 오늘도 감사하다.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한상범은? = 제주제일고, 홍익대 미술대학 동양화과를 나와 홍익대 미술대학원에서 동양화를 전공했다. 담묵회 창립회원, 아티스트그룹 '정글' 회원, 민족미술협회 회원, 한국미술협회 노원미술협회 회원, 디자인 출판 일러스트작가, 한강원 조형물연구소 디자이너, 서울 제주/홍익조형미술학원 원장, 빛 힐링명상가로 활동하고 있다.
◆ 태괘(泰卦) 태(泰)는 지극히 큰 것이다. 지극히 크면 안정을 얻을 수 있다. 안정은 행복과 아름답고 원만함을, 화목 단결을, 번영 부강을 가져온다. 안정을 원하거들랑 반드시 소통하고 성심으로 신용을 지키며 사람을 대하라. 그러면 이해가 증진된다. 유무상통(有無相通), 있는 것과 없는 것이 서로 융통한다. 교류에 능하지 못하면 어떻게 할까? 사람은 군집생활을 하는 동물이다. 군집생활은 서로 협조하여야 하고 서로 어울려야 하며 교류하고 소통하여야 한다. 소통은 마음의 문을 열어야 한다. 성심으로 사람을 대해야 한다. 용감하게 자아를 드러내고 자신을 분석하여야 한다. 가까운 사람과 친구에게 자신을 더 이해시키고 믿게 하고 관심을 보이게 하고 깊이 사랑하게 하여야 한다. 오늘날은 경쟁의 시대다. 국가와 국가 간에 다투어 발전하는 시대다. 그렇기에 소통을 더 강화하여야 한다. 어디에서나 소통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주역』은 말한다. “태, 작은 것이 가고 큰 것이 오니 길하여 형통할 것이다. 천지가 교합해 만물이 소통되며 상하가 교합해 그 뜻이 같다.” 무슨 말인가? 사람 마음이 크면 순조롭게 왕래하고 교류에 능숙하다. 인간관계가 순조로우면 부유해지고 운수대통, 모든 일이 순조롭게 된다. 만약 천지간이 소통되면 만물은 막힘없이 통할 것이다. 때맞춰 비가 오고 바람이 불게 될 게다. 물과 물고기가 한데 어우러진다. 활짝 핀 온갖 꽃이 비단같이 펼쳐지고 큰 과일이 주렁주렁 열릴 게다. 사람과 사람이 소통되면 이해가 증진된다. 서로 겸양하고 의기가 투합 한다. 지향하는 바가 같게 된다. 정치가 잘 이루어져 인심이 부드러워지게 된다. 그야말로 국태민안이다. 소통은, 사람 사이에서 자아를 표현하고 감정을 토로하며 의견을 교환하는 형식을 통하여 피차간에 이해를 증진시키고 감정을 배양하여 장벽과 오해를 없애는 과정이다. 막 세상에 나온 갓난애는 말은 못하지만 응애응애 울 때 배가 고픈지 응가 했는지 어머니는 확실하게 안다. 시각장애인 학교의 학생은 자연적인 언어로 대화하지는 못하지만 수화로 피차간에 일반인처럼 비할 데 없이 순조롭게 교류한다. 정각장애 친구는 존재하는 사물은 보지 못하지만, 점자와 말소리 소프트웨어가 출현하면서 일상적으로 책 읽고 쓰며 인터넷에 접속해 출판 매체나 인터넷으로 자기 생각과 사상을 표현할 수 있다……. 어쨌든 어떤 처지나 상황에 관계없이 사람은 온갖 방법을 동원해 소통하려 한다. 소통은 인류생활 중 가장 중요한 요소다. 울음소리든 손짓이든, 눈빛이든 웃음이든, 포스터든 표어든 상관없다. 모든 것이 소통이다. 소통은 일치단결해 사업을 구축하는 중요한 기초가 된다. 사람 사이에는 갈등이나 틈이 생기지 않을 수 없다. 제때에 소통하고 풀지 않으면 점점 더 매듭지게 되고 더욱 꽉 쪼이게 되면서 갈등이 생기고 ‘매일매일 만나면서 낯은 익으나 내면 깊은 곳에는 벽이 생기는’ 상황이 만들어진다. 업무할 때 소통해야만 협조가 긴밀하게 이루어지면서 협력할 수 있게 된다. 생활하면서 소통해야만 사람 사이에 관심과 이해가 깊어질 수 있다. 사상에 있어서도 소통해야만 오해를 없애고 문제에 대한 인식이 통일될 수 있다. 감정에 있어서도 소통해야만 우의와 정감을 증진시킬 수 있다. 그런데 어떤 것이 진정한 소통인지 모르는 사람이 있다. 그저 자기 의견과 일치되는, 뜻 맞는 사람과 한데 뭉치기만을 좋아한다. 어떤 이는 자기 의견과 다른 사람에 대해서는 절대 접촉도 하지 않는다. 하루 종일 남과 어우러지지 못한다. 어떤 이는 가까운 사람에게는 마음의 문을 열고 오만소리를 다하면서도 여타 사람에게는 입을 다물고 말을 삼가면서 교류하지 않는다. 어떤 이는 직업적인 왕래에만 집중하고 감정 교류나 사상적 소통은 소홀이 한다. 그게 오래 지속되다보면 필연적으로 간극이 생기고 단결하지 못하는 상황까지 이르게 된다. 사람 사이에 소통이 부족하게 되는 까닭은 여러 가지가 있다. 어떤 이는 늘 독선적이라 진리는 자기 쪽에만 있다고 생각해 다른 사람과는 비굴하게 교류할 필요가 없다고 여긴다. 어떤 이는 매일매일 만나기에 상황도 확실하고 문제도 분명하니 군더더기 ‘번쇄철학’은 말할 필요가 없다고 여긴다. 어떤 이는 마음속에 늘 ‘두려움’이라는 글자를 새겨두니, 걱정이 수두룩하여 의견을 교환할 때 내심을 보여주고 실정을 얘기하면 체면을 깎일까 두려워한다. 문제가 폭로되는 것을 두려워한다. 다른 사람이 문제를 틀어쥐고 놓지 않아서 자신에게 ‘후환’이나 ‘말썽’을 남길까 두려워한다. 더 중요한 이유가 있다. 바로 많은 사람이 소통은 효과를 볼 수 없고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여긴다는 점이다. 왜 그럴까? 소통이 직장생활과 긴밀한 관계가 있다는 것을 확실히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끝끝내 가장 중요한 작용을 하는 소통을 보잘것없다고 여기는 것이다. 테일 카네기(Dale Carnegie)는 자신의 저작 속에 끊임없이 제시하였다. “한 개인이 성공하느냐 못하느냐는 타인과의 소통능력에 따라 85%가 결정된다. 전문지식이 차지하는 것은 15%에 불과하다.” 소통은 피차의 관점을 서로 교환한 후 쌍방이 이해하고 일치시키는 과정이다. 소통은 다른 사람의 마음의 소리를 경청한 후 다시 당신의 관점을 상대의 마음속에 심어놓는 일이다. 소통은 이념을 표현하여 타인이 받아들이고 공감대를 형성하게 만드는 것이다. 소통을 잘하는 사람에게는 지지자가 확실히 많다. 다른 사람이 그를 이해하기 때문이다. 소통을 잘하는 사람은 분명 최고의 세일즈맨이다. 고객이 그를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소통을 잘하는 사람은 훌륭한 지도자이다. 아랫사람을 이해하기에 아랫사람도 그를 믿기 때문이다. 소통을 잘하는 사람은 분명 뛰어난 연설자이다. 청중의 마음이 그에게 쏠리기 때문이다. 소통을 잘하는 어머니에게는 말 잘 듣는 자녀가 있다. 소통이 있는 혼인이라야 행복하게 된다. 소통의 방식으로 학생을 교육할 수 있는 교사에게는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이 있기 마련이다. 이 세상 어디에서나 소통이 필요하다. 유감인 것은 대부분은 소통할 줄 모른다는 점이다. 학교에서도 우리에게 어떻게 소통하여야 하는지 가르쳐주지 못한다. 소통이란 우리를 머리 아프게 만드는 어려운 일이 결코 아니다. 다음 몇 가지에 주의하기만 하면 된다 : 소통은 상대방이 먼저 시작하게 만들어야 한다. 먼저 들은 후에 표현한다. 칭찬, 칭송을 기억하라. 상대방의 정확한 관점을 긍정하라. 관점이 충돌하는 상황이 생기면 반드시 기억해 둬야 한다, 자기 관점은 완곡하게 표현하라, 타인의 잘못을 지적하거나 질책하지 마라. 어조를 중시하라. 단호하게 거부하지 말라. 상대방의 저항, 대치를 최선을 다하여 모면하여야 한다. 소통하는 방식은 많다. 반드시 배워두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생존할 방법이 없다. 그 방법에 정통하게 된다면 성공할 희망이 커진다. 여러 직업에서 성공한 사람을 자세히 관찰해 보면 소통 잘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텔레비전을 켜서 한 번 살펴보라. 성공한 광고는 가장 소통을 잘하는 사람이 만든 것이다. ☞이권홍은? =제주 출생. 한양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나와 대만 국립정치대학교 중문학과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국현대문학 전공으로 『선총원(沈從文) 소설연구』와 『자연의 아들(선총원 자서전)』,『한자풀이』,『제주관광 중국어회화』 등 다수의 저서·논문을 냈다. 현재 제주국제대학교 중국어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 리괘(履卦) 리(履)괘는 조심하게 행동하는 것을 상징한다. 호랑이 꼬리 뒤를 따라 길을 가는데 호랑이는 고개를 돌려 사람을 물지 않는다. 당연히 형통하고 순조롭다. 이 괘는 사람의 실천은 반드시 행위 준칙을 따라야 한다는 것을 밝히고 있다. 조심하고 신중하며 겸손하고 예가 있어야 하며 행위에는 법칙이 있어야 한다. 하나라도 신중하지 않으면 사해에 우환을 남긴다. 한 순간도 신중하지 않으면 백년의 우환을 남긴다. 일의 마지막에 처음처럼 신중을 기하면〔신종여시(愼終如始)〕 망칠 일이 없다. 위험한 지경에 빠지면 어떻게 해야 할까? 『주역』은 말한다. “호랑이 꼬리를 밟아도 사람을 물지 않는다. 형통하다.” 호랑이는 양강(陽剛)의 동물이다. 호랑이 꼬리는 사람을 물지 않지만 호랑이 꼬리를 밟으면 위험하게 된다. 조심하게 행동해야만 비로소 ‘형통’하게 된다. 어디에서든지 조심하게 행동하라는 말이다. 연못 위를 밟는 것과 같다. 주의하지 않으면 빠지게 된다. 군자는 대의를 잘 알아야 한다. 예의를 따라 행하면 분명코 질서가 정연하게 된다. 이괘는 행위 준칙을 따라서, “신을 섬기고 복을 얻는다.” 라는 것처럼 경건하고 정성스러워야 된다고 경고하고 있다. “본래 밟아 나가는 대로 나아가면 허물이 없다.”1) 지위가 낮다. 위에도 상응하는 바가 없다. 무명옷을 입은 선비와 같다. 벼슬길에 들어간 적이 없다. 이때는 사물의 본래 모습을 유지할 수 있다. 겸손한 모습으로 조심하게 나아가면 어떤 위험도 있을 수 없다. “은사는 바르고 길하다./은사가 바르면 길하다.”2) 길이 평탄하고 순풍에 돛을 올린 듯 일이 순조롭게 진행될 때 너무 흥분해 모든 것을 잊어버려서는 안 된다. 겸손, 태연한 태도를 유지하여야 한다. 분수에 맞지 않은 생각은 버려야 한다. 유명한 기업가인 이가성(李嘉誠)은 언론과 인터뷰할 때 두 가지를 요구하였다. “당신이 어떻게 쓰던 상관없습니다. 다만, 첫째 타인에게 죄짓지 마십시오. 둘째, 남들이 나를 질투하게 만들지 마십시오. 사람은 말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이, 자신이 자기를 칭찬해서는 안 되고 자기 스스로 자신이 어떤 성취를 이루었다고 말해서도 안 됩니다.” 재능과 식견, 학문이 높은 사람일수록 겸손하게 자신을 낮춘다. 자신은 더 깊이 연마하려 애쓴다. 한 단계 더 높이려 노력한다. 그렇기에 그들은 포용하는 풍도를 갖추고 있고 비평을 받아들이는 아량을 가지고 있다. 바꾸어 말하면, 정통하지 못한 일에 아무렇게나 의견을 내서는 안 된다. 전문가가 들으면 자신이 말한 학식이 얕다는 것을 드러내는 일이 되기 때문이다. “애꾸눈이 능히 보며 절름발이가 능히 밟는다.” 성급하게 나아가는 형상이다. 마치 애꾸눈이 억지로 보려고 하거나 절름발이가 강행하는 것과 같다. 경솔하게 행동하면 호랑이 꼬리를 밟게 되고 잡아먹히게 된다. “호랑이 꼬리를 밟으니 사람을 잡아먹는다.”3) 이 말이 그 뜻이다. “호랑이 꼬리를 밟는다.” 라는 것은, 호랑이 뒤를 쫓아가는 것이다. 비록 모골이 송연하지만, “조심하고 두려워하면 끝내 길하다.” 조심하면서 공경하고 삼가면서 행하면 된다. 시시각각 경계심을 잃지 않으면 된다. 낮은 내를 건너면서도 깊은 강이라 여기면 끝내는 길상을 얻으리라. 그런데, “결단해 밟으나 바르더라도 위태하다.”4) 무슨 말인가? 남의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고 자기 고집대로만 아무렇게나 결단을 내리면 결과는 반드시 위험하게 된다는 말이다. 리(履)는 사람의 행동, 실천이다 ; 리(履)는 또 예(禮)이다. 사람이 반드시 따라야 하는 행위 준칙이다. ‘호랑이 꼬리’는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사물이다. 사물이 발전하는 과정에서 넘어서는 안 되는 한도요 기준이다. 호랑이 꼬리는 본래 사람을 물지 않는다. 그런데 우리가 객관 존재를 돌아보지 않고 고집스럽게 호랑이 꼬리를 밟으면 사람을 문다. 징벌을 받게 되는 것이다. 한두 잎을 자르지도 않으면 나중에 도낏자루를 찾아서 잘라야 하는 것처럼 한 때의 실수는 백 일이 걸려도 수습하기 어렵게 된다. 이 괘가 명백히 논하는 행위 준칙은 다음같이 개괄하고 있다. 첫째, ‘소리(素履)’다. 사물 본래의 모습을 유지하는 것이다. 겉을 보기 좋게 꾸미지 않는다. 순리를 따라 발전하는 것이다. 둘째, ‘유인(幽人)’이 되는 것이 좋다. 사물이 순리대로 발전할 때 흥분해 모든 것을 잊어버리면 안 된다. 처음부터 끝까지 겸손과 평안하고 고요한 심리 상태를 유지하여야 한다. 셋째, ‘색색(愬愬)’하여야 좋다. 시종 조심하고 신중하여야 한다. 상궤를 벗어난 일을 해서는 안 된다. 넷째, “밟아온 길을 보고 상서로움을 살핀다.〔시리고상(視履考祥)〕” 그래야 한다. 늘 자신의 행위를 조심해 살펴보아야 한다. ‘묘리(眇履)’는 맹목적인 행동이다. ‘파리(跛履)’는 억지로 하는 행위다. ‘결리(夬履)’는 남의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고 자기의 고집대로만 하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은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위험하다. 가장 멋있는 싸움은 사실 일이 벌어지기 전에 득실을 정확하게 계산하는 싸움이다. 성공하는 청사진을 다지는 데에는 4가지 요소가 있다. “계획을 잘 세워 성사시킨다〔호모이성(好謀而成)〕, 구역을 나누어 일을 처리한다〔분단치사(分段治事)〕, 서두르지 않아도 속도가 난다〔부질이속(不疾而速)〕, 하는 것이 없어도 다스려 진다〔무위이치(無爲而治〕).” 한 고리 한 고리 서로 꿰어있듯 이 네 가지는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 서로 인과관계를 이루고 있다. ‘계획을 잘 세워 성사시킨다’는, 모든 일을 심사숙고하고 계획을 세워 의논하여서 결정한 후 움직인다는 말이다. ‘구역을 나누어 일을 처리한다’는, 사물의 이치를 통찰하고 순서에 따라 규정대로 진행시켜 착실히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간다는 말이다. ‘서두르지 않아도 속도가 난다’는 난제, 곤란은 당신이 그 일을 하기 전부터 이미 알 수 있고 충분한 준비를 한 까닭에 속에 이미 타산이 있어서 기회가 도래할 때 스스로 신속하게 파악하여 일발적중, 한 번에 모든 일을 처리할 수 있다는 말이다. ‘하는 것이 없어도 다스려 진다’는 말은 무엇을 가리키는가? 모든 일이 적절하게 안배가 된 후 사물, 사건이 순리대로 자연스레 발전하도록 하여야 한다. 강요해서는 안 된다. 평온하고 고요한 심리 상태를 유지하면서 최후의 결과를 기다려야 한다는 말이다. 아무도 듣지 않고 보지 않는 곳에 있다 하더라도 면목 없는 일은 절대 해서는 안 된다. 더욱이 생활이 곤궁해 초라하게 되어서 뜻을 얻지 못한다 하더라도 변함없이 의지, 목표를 잊어서는 안 된다. 그러한 사람이야말로 진정으로 성공할 능력이 있는 영웅이라 할 수 있다. 한 개인의 성취는 평상시에 방울방울이 모여 이루어진다. 의지, 인품과 덕성, 사람을 대우하는 것 어느 하나 작은 것부터 시작되지 않는 것이 없다. 일생동안 사업이 실패하느냐 성공하느냐는, 사람이 주의하지 않는 사소한 일에 달려있기도 한다. 장래성 있는 사람은 큰 곳에 눈을 두고 작은 곳에서 시작한다. 실패하더라도 나태하거나 거칠어지지 않는다. 신중함은 용감함의 한 부분이다. 독일에 명구가 하나 있다. “엄격함과 신중함은 지혜의 어머니이다.” 중국에도 옛말이 있다. “부지런히 일하면 가난을 극복할 수 있고, 삼가고 조심하면 재난을 극복할 수 있다. 재난은 신중한 집안의 문 안에 들어서기 어렵다.” 그렇기에 우리는 조심하며 신중하고 예를 따라야 한다. 경솔, 충동, 건성 등 좋지 않은 행동 습관을 억제하고 언제나 이성을 가지고 있어야 성공할 수 있다. **** 履卦 ䷉ : 天澤履(천택리) ; 건(乾: ☰)상 태(兌: ☱)하 호랑이 꼬리를 밟는데도 사람을 물지 않으니, 형통하다.(履虎尾,不咥人,亨.) 평소의 본분대로 가면 허물이 없을 것이다./ 평소의 본분대로니 가서 허물이 없을 것이다.(素履,往,无咎.) 다니는 길이 평탄하니, 은자[幽人]라야 곧고 길하다./ 다니는 길이 평탄하니, 은자이다. 곧고 길하다.(履道坦坦,幽人貞吉.) 애꾸눈이 볼 수 있고, 절름발이가 걸을 수 있다. 그러나 호랑이 꼬리를 밟아서 사람이 물리니 흉하고, 무인이 대군이 될 것이다.(眇能視,跛能履.履虎尾,咥人,凶,武人爲于大君.) 호랑이 꼬리를 밟으니, 두려워하고 조심하면 마침내 길할 것이다./ 호랑이 꼬리를 밟으나, 두려워하고 조심하면 마침내 길할 것이다.(履虎尾,愬愬,終吉.) [傳] 리괘(履卦)는 「서괘전」에 “만물이 길러지고 나서 예가 있게 된다. 그래서 리괘(履卦)로 받았다”라고 했다. 만물이 모이면 크고 작음의 구별과 높고 낮음의 등급과 아름다움과 추함의 구분이 있다. 이것이 만물이 길러진 뒤에 예가 생겨나며, 리괘가 소축괘의 뒤를 이은 까닭이다. ‘리(履)’는 예이니, 예는 사람이 실천한다. 괘상이 하늘이 위에 있고 못이 아래에 있는 것은 위아래의 직분과 신분의 높음과 낮음을 뜻한다. 이치의 마땅함이고 예의 근본이며 떳떳이 행해야 할 도이다. 그러므로 ‘리(履)’라고 하였다. ‘리(履)’는 밟는 것[천(踐)]이고, 까는 것[자(藉)]이다. 물건을 밟는 것이 ‘천(踐)’이고 물건 아래에 까는 것이 ‘자(藉)’이다. 유약한 음이 굳센 양에게 깔리는 것이므로 ‘리(履)’라고 했다. “굳센 양이 유약한 음을 밟는다”라고 말하지 않고, “유약한 음이 굳센 양에게 밟혔다”라고 말한 것은 굳센 양이 유약한 음을 타는 것은 떳떳한 이치이기 때문이니 굳이 말할 필요 없다. 그러므로 『주역』에서는 오직 “유약한 음이 굳센 양을 탄다”라고 말하며, “굳센 양이 유약한 음을 탄다”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굳센 양에게 밟히고 깔린다”라고 한 것은 바로 자신을 낮추고 순순히 기뻐하며 응하는 뜻을 나타낸다. ☞이권홍은? =제주 출생. 한양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나와 대만 국립정치대학교 중문학과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국현대문학 전공으로 『선총원(沈從文) 소설연구』와 『자연의 아들(선총원 자서전)』,『한자풀이』,『제주관광 중국어회화』 등 다수의 저서·논문을 냈다. 현재 제주국제대학교 중국어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1) 素履往,無咎. (素履往: 소박하게 밟고 나아가다) 2) 幽人貞吉 ; 幽人,隱士. 3) 履虎尾,咥人. 4) 夬履貞勵.
미루고 미루다가 이제야 밤늦게 글을 쓴다. 이 작품은 결혼한지 얼마 안되어 제작되었던 작품으로 미발표작이다. 아내가 임신하고 나서 서울 장모님집에 있을때 2층에 있는 빈방을 작업실로 쓰면서 수묵으로 제작했던 소품 25점 가량의 군상(群像) 시리즈 중 하나다. 가로 세로로 얽히고 설키게 표현된 군상들 가운데 작품 우측 아래 약간 진하게 표현된 형상이 곧 나의 모습이다. '나는 누구인가?'를 스스로 묻는 그림이다. 이 많은 가운데 나는 누구인가 나는 누구인가를 생각하는 나는 누구인가........... 화두처럼 끈임없는 질문을 던지던 시절... 방황의 시절, 술과 자학의 시절, 객기와 방탕의 시절, 때늦은 결혼을 하고 막막한 현실에서도 희망의 꿈을 꾸던 시절. 그 또한 젊음이었으리라. 지나보니 이 작품을 제작할 당시의 나는 준비되지 않은 아빠이자 남편이자 자식이었다. 그리고 자아의 교만과 아집, 객기와 방탕을 스스로 저지르고 있는 줄도 모르면서 한편으로는 고고한 도(道)를 좇는 어리석고 어두운 무명(無明)의 길을 걷고 있음을 알아차리지도 못하던 시절이었다. 또한 폭음으로 자학을 일삼고 그것이 어둠이 되어 향후 가족에게도 마음의 상처가 되어, 잘못된 인과와 과보가 되어 모든 관계와 모든 일들이 힘들어질 줄도 몰랐던 시절이었다. 그만큼 스스로 만든 어리석고 어둡고 무거운 시절을 보내며 그런 상태에서 벗어나 보려고 ‘나는 누구인가’를 그림으로 외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감사하게도 이젠 애기할 수 있다. 잘못된 인과와 과보, 실수를 알면 스스로 변해야 한다. 선택은 두가지밖에 없다. 사느냐 죽느냐처럼. 그러나 스스로의 선택과 의지, 노력도 중요하지만 내 경험상 내 힘이 아닌 또다른 보이지 않는 힘도 작용하고 있음을 주지하지 않을수 없다. 쉽지 않지만 스스로 힘을 빼고 순리와 자연에 맡기는 삶이 그것이다. 사실 모든일이 내 뜻대로 내 맘대로 되지 않는다에 많은 이들이 동의할 것이다. 고통가운데 지나간 부족하고 부질없는 것들에 대한 반성과 참회를 통해 어둠에서 나와 빛이 있는 곳으로 향해야 한다. 그것이 변화고 삶이고 생명의 길이다. 다같이 행복해지는 길! 내가 바로 서 있어야 하는 이유다. 우리에게 주어지는 모든 고통은 우리에게 변하라는 시그널이다. 과거의 그림속의 내 모습을 보면서 조금은 변화된 오늘의 나의 모습을 본다. 입도한지 얼마 안된 친구가 옛날에 살던 동네에 자기 건물을 매입, 1층에 사무실 2층에 와인바를 창업하려 하는 곳에 들렀다. 부탁을 받고 그곳에 어울리는 그림을 그려주기 위해서였다. 참 감사한 일이다. 함께 아는 친구가 운영하는 가게에서 술을 곁들인 저녁까지 먹고 새로운 인연도 맺었다. 서로 모르는 얼굴도 한다리 건너보면 인연이 연결되어 있는 제주는 참 좁은 동네임을 새삼 또 느낀 하루다. 1차를 하고 비가 온다는 핑계 아닌 핑계로 몇몇이 근처로 자리를 옮겨 파전과 오뎅탕 안주에 2차까지 하고 들어와 연재 소개할 그림을 이것저것 뒤적여보다가 이 그림을 뽑아놓고 이제야 이렇게 글을 쓰고 있는 것이다. 예전 같으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렇게 변화된 나의 모습은 술과 관련있다. 연재를 통해서 슬쩍 고백하기도 했지만 몇 번의 특별한 상황과 실수를 빼고 근 8년간 소주 독주를 거의 입에 대지 않았다. 맥주는 친구들끼리 모일 땐 가볍게 마실 때가 있고 집에서도 가끔 캔맥주 한 캔 정도 할 때가 있다. 어떨 땐 미술부 선배한테 최근에 배운 스킬로 소주잔에 물을 따르고 난 ‘수주(水酒)’ 라 하고 양해를 구하고 건배도 하면서 분위기를 함께 하기도 한다. 오늘도 그런 술자리를 지켰고 2차에서는 수주만 들이켰다. 그리고 술자리가 파하고 비가 오는 바람에 택시까지 안 잡혀 술 안먹은 내가 친구들을 집에까지 차로 데려다주고 온 것이다. 이만하면 술로 따지면 과거의 내모습과는 판이하게 달라진 모습이다. 술을 억지로 안마시는 것은 아니고 어느 순간 술 생각이 나지 않게 된 것이다. 참 신기하고 감사한 일이다. 누군가는 총량제에 들어서서 그렇다고 하긴 하지만 어쨌든 나를 새롭게 살게 해준 생명의 빛에 감사하다. 이젠 지나간 것도 아름다웠다고 말할 수 있다. 바로 지금 이 순간 행복할 때가 많아 감사하다. 비록 젊을 때 과한 술로 많은 시간을 부질없이 인생을 낭비하긴 했지만 낭만과 좋은 추억이 깃든 멋진 술도 많았다. 즐겁고 행복한 술자리들이 되면 좋겠다는 의미로 혼자만의 술을 드시는 사람에게도 멋진 술을 드시라는 의미로 이태백의 시 월하독작(月下獨酌)‘ 제4수중 1수를 남기며 두서없는 이글을 마무리한다. 꽃밭사이 술단지 하나놓고 대작할 이 없어 홀로 마시는 구나 잔을 들어 밝은 달을 맞이하니 달과 나와 내그림자가 비춰서 셋이 되었네. 달은 본래 술을 마실줄 모르고 그림자는 거저 흉내만 낼뿐이다. 잠시 달과 그림자를 벗을 삼아 봄날을 맘껏 즐겨보노라. 노래를 부르면 달은 서성이고 춤을추면 그림자가 어지럽도다. 취하기 전엔 함께 즐기지만 취한뒤엔 각각 흩어지니 영원히 엉킴이 없는 우정맺고저 아득한 은하에서 다시 만나세.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한상범은? = 제주제일고, 홍익대 미술대학 동양화과를 나와 홍익대 미술대학원에서 동양화를 전공했다. 담묵회 창립회원, 아티스트그룹 '정글' 회원, 민족미술협회 회원, 한국미술협회 노원미술협회 회원, 디자인 출판 일러스트작가, 한강원 조형물연구소 디자이너, 서울 제주/홍익조형미술학원 원장, 빛 힐링명상가로 활동하고 있다.
중국 혁명 중에서 2만 5천 리 장정은 세계전쟁사상 기적이라 아니할 수 없다. 당시는 장개석(蔣介石)이 제5차 ‘토벌〔위초(圍剿)〕’을 진행하는 중이었다. 왕명(王明) 등은 적아의 역량이 현격하게 차이가 나는 것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주동적으로 앞서, “출격해 국경 밖에서 적을 막아야 한다.” 라고 단편적으로 주장하였다. 모택동(毛澤東) 등이 제기한 깊숙이 적을 유인해 유격전을 전개하여야 한다는 의견을 단호하게 배척하였다. 결국 중앙 근거지에서 홍군의 ‘토벌 반격’은 실패하였다. 왕명 등은 모택동 등이 제기한 잠시 산악지대로 철수해 유격전을 벌이고 시기를 봐서 반격하자는 주장도 아랑곳하지 않았지만 그 후에는 게릴라주의를 실행하여, 한 방면의 홍군을 중앙근거지에서 출수시켜 장정을 시작하였다. 장정은 절박한 가운데 어쩔 수 없이 실행했다고 할 수 있다. 주요 원인은 당 지도부 사이에 ‘좌’경에 따른 잘못이 생겼기 때문이다. 장정 초기에도 그런 잘못이 계속되면서 홍군은 참담한 손실을 맛봤다. 나중에 지도부 일부가 실수를 인지하였다. 원래 노선을 계속하면 혁명역량이 전멸하게 된다고 보았다. 홍군을 구해야만 했다. 특히 존의회의(遵義會議) 이후 모택동 중심의 지도부가 실제 권한을 얻어 ‘좌’경 잘못을 바로잡았다. 홍군을 정확한 철수 노선으로 이끌면서 천신만고 끝에 섬서성 북쪽에 도착해 유지단(劉志丹)이 이끄는 섬서북홍군(陝西北紅軍)과 합류하였다. 장정은 홍군의 역량을 보존하는 작용을 했다. 이후 혁명에 힘을 축적하게 됐고 동시에 훈련하면서 부대의 전투력을 향상시킬 수 있었다. 각고 분투하는 홍군의 품성을 배양하였다. 도착한 곳에서 혁명사상을 선전할 수 있었다. 홍군과 혁명에 민중의 지지를 얻게 됐다. 이것이 바로 정도를 걸으면 위기는 있으나 허물이 없다는 뜻의 본보기이다. 처음 사회에 나설 때 우리 모두는 원대한 목표를 가지게 된다. 꿈꾸고 희망을 가진다. 청춘의 빛에 충만해 있다. 기세 드높게 사회에 들어선다. 하지만 결국 우리가 가졌던 희망은, 결과적으로 현실이 되지 못한다. 투자한 만큼 얻을 수 있는 게 맞느냐고 의심하기 시작한다. 하늘이 불공평하다고 탓한다. 하늘을 원망하고 남을 탓한다. 의기소침해지고 낙담한다. 실망하고 고뇌하고 방황한다. 그렇게 생활의 동력을 잃어버린다. 삶은, 생활은 크던 작던 늘 우리를 놀린다. 우리가 살아가는 길에 깊은 구덩이를 파놓는다. 우리 희망의 씨앗에 한 겹의 찬 서리를 얼려 놓는다. 우리가 분투하려는 격정 속에 냉수를 끼얹는다. 좌절을 많이 겪은 기구한 운명을 가진 사람은 하늘이 늘 사람을 놀린다고 탄식한다. 사실 따지고 보면 삶은, 생활은 모든 이에게 공평하다. 우리에게 충격을 주는 것은 우리가 삶이 고난이요 걸어가는 길이 평탄치 않음을 알게 하기 위함이다. 우리에게 고통 속에서 자신을 연마하게 만들기 위함이다. 아름다움 뒤에 고난이 가득하고 무지개가 나타나기 전에는 늘 비바람을 겪어야 하는 것과 같다. 그렇기에 우리 희망이 파괴될 때 우리는 굳세어야 하고 자신감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정정당당하게 곧추서 있어야 한다. 바른 마음을 가져야 하고 알아주지 않는다는 원망과 분함을 내려놓아야 한다. 환경이 좋다고 해서 너무 기뻐하거나 처지가 나쁘다고 해서 너무 슬퍼하지 말아야 한다. 우순풍조(雨順風調) 속에서나 광풍폭우(狂風暴雨) 속에서나 우리는 시시각각 평상심을 유지하여야 한다. 잠시의 실패가 어찌 영원한 완결이던가. 살아가는 과정 중의 짧은 간주곡일 따름이다. 하나의 음표요 충고요 교훈이다. 돌이켜 사색하도록 특별히 남겨둔 변통의 여지다. 멈추어 서는 것은 현명한 후퇴다. 한 걸음 물러서면서 더 한 층 굳건히 노력하여야 한다. 충분히 준비하여야 한다, 다음 단계의 두 걸음 나아감을 위하여. 송골매는 날지 않으면 그만이지만 날기만 하면 하늘 높이 오른다. 울지 않으면 그뿐이지만 한 번 울기만 하면 세상을 놀라게 하는 사람도 있다. 준비된 사람에게만 기회가 주어진다. 『주역』은 말한다. “소축은 형통하다. 우리 서쪽 들판에서부터 구름이 빽빽하나 비가 오지 않는다.” 무슨 말인가? 잠시 동안의 작은 멈춤은 형통하다. 그때는 구름이 빽빽하나 비가 내리지 않는 때이기 때문이다. 아직 성숙되지 않는 단계요 시기다. 우리 노력이 아직 부족하다. 우리 능력을 끌어올려야 한다. 우리의 원대한 포부는 아직 실현될 충분한 조건이 마련되어 있지 않다. 기다려야 한다. 서쪽 들판 가장자리에서 묵묵히 기다려야 한다. 깃털이 다 자라기를 기다려야 하고 꽃이 피는 따뜻한 봄날을 기다려야 한다. 기회가 오기를 기다려야 한다. 사람이 세상을 살면서 너무 어리석어서도 안 되고 너무 똑똑해서도 안 된다. “어리석게 보이기가 어렵다.” 이 도리를 잘 알아야 한다. 청나라 때 화가 겸 서예가로 유명한 정섭(鄭燮)의 글에서 나왔다. “총명하기도 어렵고 어리석기도 어렵다. 총명한 사람이 어리석게 되기는 더욱 어렵다. 집착을 버리고 한 걸음 물러서는 순간, 마음이 편안해지며 뜻하지 않고 있노라면 후에 복으로 보답이 올 것이다.”1) 손해 보는 것이 복이라는 교훈도 알아야 한다. ‘흘휴시복(吃虧是福)’이 그것이다. 해야 할 일은 반드시 해야 하고 놓아야 할 일은 마땅히 놓아야 한다. 해야 할 말은 해야 하고 침묵할 때는 한 마디 말도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배워야 한다. 『주역』은 말한다. “바람이 하늘 위에서 운행하는 것이 소축이다. 군자는 이것을 보고 문덕을 아름답게 꾸민다.” 무슨 말인가? 바람은 하늘에서 움직인다. 먹장구름이 모이기를 기다린다. 하늘에서 단비가 내리기를 기다린다. 모든 게 성숙되어 가는 중이다. 이때는 잠시 멈추는 것이 필요하다. 이 잠시 멈춤은 사실 기회이기도 하다. 바로 재능과 도덕을 축적할 가장 좋은 시기요 기회다. 이 기회를 포착하여야 한다. 하늘에서 큰 비가 내릴 때, 무지개가 내릴 때를 기다리면 마음에 품은 뜻을 펼쳐나갈 수 있다. 모든 곤란은 대나무가 칼집을 따라 쪼개지듯 순리적으로 문제가 해결된다. 그때가 되면 원대한 계획을 펼칠 수 있다. 하늘이 우리에게 멈추라고 한 바는, 우리 노력이 아직 부족하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다. 우리가 갖추어야 할 지식과 재덕이 부족하다는 말이다. 우리는 가만히 마음도 풀고 긴장도 풀고 정신을 가다듬으면 된다. 충전할 때 충전하고 웃을 때 크게 웃고 울어야 할 때 대성통곡하면 된다. 제갈량은 명언을 우리에게 남겼다. “군자의 행은 고요함으로 몸을 닦고 검소함으로 덕을 기른다. 담박하지 않으면 뜻을 밝힐 수 없다. 안정되고 고요하지 않으면 먼데까지 이르지 못한다.”(「계자서戒子書」) 무슨 뜻인가? 군자는 일할 때 잡념을 없애고 근검하고 소박하게 자신의 도덕수양을 드높여야 한다는 말이다. 마음을 깨끗이 하고 욕심을 버려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자기 의지를 다 드러낼 수 없다. 사상이 정밀하지 못하게 되어 원대한 목표를 실현하지 못한다. 공자는 일생을 수신하고 성정을 수양하였다. 열국을 주유하면서 각 나라의 군왕에게 도덕을 설파하였다. 사학을 열어 백성을 교화하였다. 온힘을 기울여 자신의 덕정과 인정을 악착같이 추구하였다. 부지런히 노력해, 자신의 이상사회를 위하여 필사적으로 싸웠다. 도덕과 재능은 하나하나 모이는 것이다. 축적은 오랜 과정이 있어야 한다. 고통의 과정이다. 큰 뜻을 품어야 한다. 자강하고 자립할 자신이 있어야 한다. 끝까지 투쟁할 용기를 가져야 한다. 고통을 기쁨으로 여기고 인생을 즐겨야 한다. 아침 첫 햇살이 우리를 향하여 손짓할 때 우리의 웃는 얼굴은 분명 찬란하리라. 봄이 대지를 감싸 돌 때 씨앗은 흙을 뚫고 나오리라. 나무 한 가득 열린 열매의 향기가 코를 찌를 때 즐거운 노랫소리는 우리 귓가를 맴돌 것이다. 우리가 의욕을 북돋을 때 성공은 우리 가까이에 다가오기 시작한다. ***** ䷈ : 풍천소축(風天小畜), 손(巽 : ☴)上 건(乾: ☰)下 소축은 형통하니 빽빽이 구름이 끼었지만 비가 오지 않음은 내가 서쪽들로부터 하기 때문이다./ 소축은 형통하나 빽빽이 구름이 끼고 비가 오지 않음이 내가 서쪽들로부터 하기 때문이다.(小畜,亨,密雲不雨,自我西郊.) 「상전」에서 말하였다. 바람이 하늘 위에 행함이 소축이니, 군자가 그것을 본받아서 문덕을 아름답게 한다.(象曰,風行天上,小畜,君子以,懿文德.) 소축은 형통하다. 우리 서쪽 들판에서 부터 구름이 빽빽하나 비가 오지 않는다.(小畜,亨.密雲不雨,自我西郊.) 바람이 하늘 위에서 운행하는 것이 소축이다. 군자는 이것을 보고 문덕을 아름답게 꾸민다.(風行天上,小畜.君子以懿文德.) 주역에서는 64괘(卦)중 9번째 괘(卦)인 소축(小畜)편에서 원만하게 가정을 이끌고 이를 기반으로 작은 성공을 이루는 것의 중요성을 설명하고 있다. ‘소축(小畜) 형(亨) 밀운불우(密雲不雨) 자아서교(自我西郊)’라는 첫 구절이 나온다. 이를 쉽게 풀이하면 이런 말이다. “작은 성공이나 행복도 일찍부터 노력해야 얻을 수 있다. 구름이 빽빽하나 비가 오지 않는 경우가 있듯이, 쉬워 보이는 작은 행복도 얻지 못하는 것은, 스스로 노력하지 않고 집 바깥에서 기다리고만 있기 때문이다.” [傳] 소축괘(小畜卦)는 「서괘전」에 “도우면 반드시 쌓이는 바가 있다. 그래서 소축괘로 받았다”라고 했다. 물건이 서로 돕고 따르면 모이게 된다. 모임은 쌓이는 것이다. 서로 친하여 도우면 뜻이 서로 쌓이니 소축괘가 비괘(比卦)의 다음이 된 이유이다. 쌓이는 것은 그침이다. 그치면 모이게 된다. 괘가 손괘가 위에 있고 건괘가 아래에 있다. 건괘는 위에 있는 물건인데 이에 손괘의 아래에 있다. 강건한 것을 쌓고 그치게 함은 손순(巽順)함만한 것이 없다. 손괘에 의해 그치게 되므로 소축(小畜)이 된다. 그러나 손괘는 음이고 그 몸체가 유순하다. 오직 손순함으로 그 강건함을 부드럽게 할 수 있다. 힘으로 그치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니, 쌓는 도의 작은 것이다. 사효는 한 음으로 제자리를 얻어 다섯 양의 기뻐하는 바가 된다. 제자리를 얻음은 부드럽고 공손한 도를 얻어 여러 양의 뜻을 쌓을 수 있기 때문에 쌓는 것이 된 것이다. 소축은 작은 것으로 큰 것을 쌓음에 이른다. 쌓여 모이는 것이 작고 쌓여지는 일이 작은 것은 음이기 때문이다. 「단전」에서 오로지 육사가 여러 양을 쌓이게 하는 것으로 괘가 이루어진 뜻을 삼고 두 몸체는 말하지 않았으니, 그 중요한 것만 든 것이다. ☞이권홍은? =제주 출생. 한양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나와 대만 국립정치대학교 중문학과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국현대문학 전공으로 『선총원(沈從文) 소설연구』와 『자연의 아들(선총원 자서전)』,『한자풀이』,『제주관광 중국어회화』 등 다수의 저서·논문을 냈다. 현재 제주국제대학교 중국어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1) ‘難得糊塗’ ; 정섭(鄭燮, 호 판교板橋); “聰明難,糊途難.由聰明轉入糊途更難.放一著,退一步.當下必安.非圖後來福報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