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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재 부장의 [스포츠 파워人터뷰(1)]-K-리그 우승 최용수 FC서울 감독

 

 <제이누리>의 새로운 발랄 인터뷰가 시작됩니다. 한국 스포츠계가 주목하는 인물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정영재의 파워人터뷰>가 새로이 여러분을 만납니다. 정영재 부장은 스포츠계의 숨겨진 뒷 이야기와 핵심인사들의 삶을 꿰고 있는 스포츠 전문기자입니다. 인터뷰 기사는 <제이누리>와 <중앙일보>가 함께 매달 한차례씩 게재합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 바랍니다. / 편집자 주

 

 

 

 

 
▲ 최용수 감독의 선수 시절 별명은 ‘독수리’였다. 사령탑이 된 뒤엔 ‘여우’ 같은 지략으로 감독 부임 첫해 FC서울을 우승으로 이끌었다. 최 감독이 지난달 27일 서울 강남의 한 음식점에서 축구 이야기를 하며 눈빛을 반짝이고 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미워하는 미워하는 미워하는 마음 없이, 아낌없이 아낌없이 사랑을 주기만 할 때, 백만송이 백만송이 백만송이 꽃은 피고…’.

 

 심수봉이 부른 ‘백만송이 장미’(번안곡)를 그는 매일 아침 듣는다. 훈련장으로 향하는 승용차 안에서다. 그러고는 다짐한다. ‘오늘도 미워하는 마음을 버리고 선수들에게 아낌없이 사랑을 주자’.

 

 백만송이는 아니지만 아름다운 꽃 한 송이가 활짝 피었다. 최용수(39) 감독이 이끄는 FC 서울이 프로축구 K-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팀당 44경기를 치르는 장기 레이스에서 서울은 29라운드부터 1위를 지켰고, 3경기를 남기고 16개 팀 중 1위를 확정지었다. ‘세리머니의 대가’답게 최 감독은 지난달 25일 시상식이 열린 서울월드컵경기장에 말을 타고 나타났다. 시상식 분위기는 후끈 달아올랐고, 최 감독은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한 몸에 받았다.

 

 지난달 27일 서울 강남의 한 음식점에서 최 감독을 만났다. 장안의 화제가 된 ‘승마 세리머니’ 얘기부터 시작했다.

 

●말 타는 건 본인의 아이디어였나.

 

 “그렇다. 요즘 말춤이 유행인데, 난 이미 세포 자체가 굳어 율동이 나올 몸이 아니다.(웃음) 아예 말 위에 타서 손만 몇 번 흔들어도 진정한 말춤이 아닐까 생각했다.”

 

●샴페인을 맞은 말이 놀라 최 감독이 떨어질 뻔했는데.

 

 “떨어졌다면 아마 외신에도 나왔을 거다. 태어나서 처음 말을 탔는데 아파트 3~4층에 올라간 느낌이었다. 세리머니에 동물을 이용했다는 게 좀 미안한 마음도 든다.”

 

●두 달 전부터 생각했다고 하던데.

 

 “선수들한테 우승하면 말 타고 입장할 거라고 공표했다. 우리 팀의 장점 중 하나가 보안 유지가 잘된다는 거다. 우리끼리 한 얘기가 외부에 흘러나가면 내부에서 분란이 생길 수 있다.”

 

●우승을 해 보니 어떤가.

 

 “구단과 선수들이 꿈 하나를 향해 한마음으로 달려왔고 마침내 이뤄냈다는 게 가슴 벅찼다. 중간에 위기도 있었지만 하나 된 힘으로 극복해 냈다.”

 

●흰머리가 많이 늘었다. 언제가 가장 힘들었나.

 

 “라이벌 수원 삼성을 상대로 연패를 끊지 못할 때였다. 하루는 수원에 지고 집에 와서 다섯 살 딸아이 그네를 태워 줬다. 그런데 내 머릿속은 온통 경기 생각뿐이었다. 아이가 자기 얘기 안 들어준다고 울더라.”

 

●수원에 진 날 서울 팬들이 구단 버스를 가로막은 적도 있었다.

 

 “한 시간 반 동안 경기장 주차장에 갇혀 있었다. 선수들이 버스 안에서 전부 내 뒤통수만 보고 있었을 것이다. 솔직히 팬들이 시간을 더 끌어 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 시간 동안 선수들도, 나도 독기를 품었고 ‘우리는 FC 서울이다’는 자부심과 책임감을 새기게 됐다.”

 

 최 감독의 현역 시절 별명은 ‘독수리’였다. 날카로운 눈매로 골을 노리는 모습이 독수리를 연상시켰다. 그런데 정작 두 차례 월드컵 본선(1998 프랑스, 2002 한·일)에서 그는 골을 넣지 못했다. 그뿐만 아니라 숱한 골 찬스를 놓쳤다. 2002 월드컵 미국전에선 경기 종료 직전 이을용(37·강원 FC 코치)이 만들어 준 완벽한 기회를 허공으로 날려 버렸다. 그 한이 아직도 남아서였을까. 그는 지난 7월 열린 2002 월드컵 10주년 기념경기에서 골을 넣은 뒤 웃통을 벗고 관중을 향해 고함을 치는 ‘발로텔리(22·이탈리아) 세리머니’를 했다. 그런데 최 감독의 출렁이는 뱃살이 화면에 잡히면서 ‘뱃살텔리 세리머니’라는 이름이 붙었다.

 

 

●망가진 몸매를 드러내는 용기를 보여 줬는데.

 

 “원래는 (박)지성이처럼 히딩크 감독에게 달려가 안기는 장면을 보여주려 했다. ‘그때 왜 나에게 기회를 많이 안 주셨어요’라고 투정이라도 부리고 싶었다. 그런데 벤치까지 거리가 너무 멀더라.(웃음) 그래서 힘 안 드는 발로텔리 세리머니로 대체했다.”

 

●2002 월드컵 미국전에서 골을 놓쳤을 때 기분이 어땠나.

 

 “내가 이것밖에 안 되나. 난 충분히 할 수 있다고 확신을 갖고 나섰는데 너무 분했다. 이게 신이 내게 내려 준 운명이구나 싶었다.”

 

●그때 이을용이 뭐라고 했나.

 

 “그것도 못 넣느냐고. (그때 생각하면) 아, 또 갑자기 확 치밀어 오르네. 선배가 못 넣을 수도 있지, 요즘 애들은 공경심이 없어요.(웃음)”

 

●2002년의 실패가 없었으면 지금의 최용수도 없다고 했는데.

 

 “당시 골을 넣고 스타로 떴다면 나한테 어떤 목표가 남았을까. 아마 흥청망청 살다가 선수 생활을 일찍 접었을 것이다. 내 인생 자체가 도전, 실패, 또 도전의 시간과 기다림, 다시 올라섬이 있었다. 내년엔 또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그래서 우승 축하 메시지를 받아도 실감이 안 난다.”

 

●실패를 통해 무엇을 배웠나.

 

 “나한테 찾아온 마지막 기회를 놓치는 순간 ‘아, 너무 내가 경직돼 있었구나’ 싶었다. 지금은 즐기는 축구 얘기를 하고 ‘즐기는 사람을 이길 수 없다’는 말도 하지만 당시는 그렇지 못했다. 난 20년 동안 ‘찬스가 오면 내가 해결한다’는 생각이 세뇌가 돼 있었다. 당시 장면을 보면 내가 왜 그렇게 편안하게 못했나 싶다.”

 

 최용수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이중적이다. 독수리의 날카로움과 더불어 ‘촌사람’ 이미지도 겹친다. 그도 스스로를 부산 촌놈이라 하고, “진짜로 어리바리하다. 작은 것 잘 못 챙긴다. 커피값이나 택시비도 잘 계산 못한다”고 말한다. 그런데도 스타들이 즐비한 FC 서울을 한 치의 빈틈없이 끌어가고 있다.

 

●자신만의 선수 관리 원칙이 있나.

 

 “철저한 내부 경쟁을 통해 평등하고 공정하게 선수 구성을 하려고 한다. 외국인 선수라고 해서 무조건 주전에 넣지는 않는다. 시즌 초반 골잡이 데얀(31·몬테네그로)이 태업성 플레이를 할 때 과감하게 뺐다. 공격수 몰리나(32·콜롬비아)도 홈 경기에서 뺀 적이 있다. 내 말에 책임을 지고 약속은 반드시 지키려 한다.”

 

●약속이라면 출전을 보장한다는 뜻인가.

 

 “그건 아니다. K-리그의 최고가 될 수 있게끔 도와주겠다는 것이다. 데얀에게는 2년 연속 득점왕을 향해 같이 가자고 했다. 스스로 몸 관리를 하고 팀과 융화되면 경기장 안에서 수비를 분산시켜 득점을 올릴 수 있도록 하겠다는 약속이다. 우리는 걸출한 엑스트라가 많다. 그들이 수비를 분산시키면 결국 골은 데얀과 몰리나가 넣게 돼 있다.”

 

●책을 많이 읽는다고 들었다.

 

 “최근 『디테일의 힘』이란 책을 읽었다. 내가 작은 것에 신경을 참 안 쓰는데, 경기 못 나가는 선수들을 신경 안 쓰면 한순간에 팀이 모래알이 될 수도 있다는 걸 느꼈다. 신문도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다방면으로 꼼꼼하게 읽는다.”

 

●젊은 선수들 다루는 노하우가 있나.

 

 “요즘 애들은 강압적으로 하면 따라오지 않는다. 폭언·폭행은 절대 금물이다. 선수를 때리는 건 그 가족을 때리는 것이다. 요즘 인터넷이 발달해 선수들이 스페인 1부 리그 14위 팀 감독·선수 구성도 다 안다. 나도 애들이 물어봤을 때 바로 답을 해줘야 한다. 물론 그런 질문 피해가는 방법도 알고 있다.(웃음)”

 

●요즘 축구가 야구에 비해 밀리는 느낌이 있는데.

 

 “실력은 물론 매너와 쇼맨십이 뛰어난 스타가 나와야 한다. 감독들도 판에 박은 것 말고 스토리가 있는 말과 행동을 해야 한다. ‘프로는 쇼’다. 축구가 잘된다면 난 얼마든지 망가져도 괜찮다.”

 

●돈도 많이 벌었을 텐데.

 

 “나는 돈 욕심은 없다. 선수 때도 연봉 때문에 마찰을 빚은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스포츠는 명예다. 나도 홍명보 선배처럼 소외된 계층을 돕는 재단을 만들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

 

 최 감독에게 지능지수(IQ)가 얼마인지 물었다. 그는 “한 94쯤 될 겁니다”고 했다. 확인할 순 없지만 아마도 아닐 것이다. 그는 보기보다 꼼꼼하고 상황 판단이 빠르다. 스포트라이트를 받았을 때 몸을 낮출 줄도 안다.

 

 최 감독은 “이번 우승은 허창수(GS그룹 회장) 구단주와 축구단 사장님, 프런트, 선수들과 팬들이 한마음으로 이뤄낸 것이다. 특히 자신보다 한참 어린 감독을 위해 헌신한 박태하(44) 수석코치의 역할이 컸다”며 공을 주위 사람들에게 돌렸다.

 

 인터뷰를 마지막까지 함께한 권혁재 사진전문기자가 자리를 정리하며 말했다. “최 감독, 독수리가 아니고 여우네 여우.”

 

최용수 감독은 …

 

생년월일 : 1973년 9월 10일
체격 조건 : 1m84㎝ 80㎏
출신고 : 동래중-동래고-연세대
A매치 성적 : 67경기 27골
가족사항 : 부인과 딸(5)·아들(1)
혈액형 : O형
취미 : 독서(분야를 가리지 않고 다독하는 편)
애창곡 : 안전지대의 ‘와인레드의 마음’(이치하라 시절 경기에서 이긴 뒤 기분이 좋아 라커룸에서 열창한 적이 있다), 심수봉의 ‘백만송이 장미’
좋아하는 음식 : 생크림 케이크(J-리그에서 뛰던 시절 제빵으로 유명한 일본에서 맛을 들였다)

 

정영재
는?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두 가지(스포츠ㆍ글쓰기)가 결합된 ‘스포츠 기자’를 하고 있어 행복하다는 사람. 2000년 시드니, 2004년 아테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을 현장 취재했고, 2002년 한ㆍ일 월드컵, 2006년 독일 월드컵 때도 결승전까지 현장에 남았다. ‘남들이 가지 않은 곳에 특종이 있다’는 원칙을 지켜 많은 특종과 기획 기사를 남겼다. <중앙일보>에 축구 전문 칼럼 ‘웰컴 투 풋볼’을, <중앙SUNDAY>에 스포츠 칼럼 ‘스포츠 오디세이’를 연재했다. 우리 사회 저명인사들의 스포츠 이야기를 담은 책 <너만의 승부수를 던져라>(을유문화사)를 썼다. “남다른 기사, 철학과 향기가 있는 문장을 쓴다”는 평판 속에 꽤 많은 고정 팬을 갖고 있는 스포츠 전문 기자다.연세대 국어국문학과, 연세대 언론홍보대학원을 졸업했고, 한국체대에서 박사과정(스포츠산업경영)을 밟고 있다. 현재 중앙일보 스포츠부장이며, 한국체육학회 상임이사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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