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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누리 기획연재소설 프롤로그] 라이브 카페-나는 서툴다, 고로 존재한다.

‘기획 연재물 콘텐츠의 강자’ 제이누리가 이제 웹픽션(Web Fiction)으로 여러분에게 다가섭니다. 오동명 작가가 집필하는 신개념 수필 소설 <라이브 카페-나는 서툴다. 고로 존재한다>입니다. 오 작가는 이 소설을 통해 제주의 한 라이브카페에서 벌어지는 유쾌한 상상과 즐거움을 풀어냅니다. 일상의 여유 속에 돌연 다가온 재발견의 세상, 노래에 얽힌 사연이 이야기로 풀립니다. 창간 7개월을 맞는 6월4일부터 매주 한차례씩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많은 애독바랍니다. / 편집자 주

 

<작가소개>

오동명은?=서울 출생.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뒤 사진에 천착, 20년 가까이 광고회사인 제일기획을 거쳐 국민일보·중앙일보에서 사진기자 생활을 했다. 1998년 한국기자상과 99년 민주시민언론상 특별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저서로는 『사진으로 세상읽기』,『당신 기자 맞아?』, 『신문소 습격사건』, 『자전거에 텐트 싣고 규슈 한 바퀴』,『부모로 산다는 것』,『아빠는 언제나 네 편이야』,『울지 마라, 이것도 내 인생이다』와 소설 『바늘구멍 사진기』, 『설마 침팬지보다 못 찍을까』 등을 냈다. 3년여 전 제주에 정착, 현재 제주의 한 시골마을에서 자연과 인간의 만남을 주제로 카메라와 펜, 또는 붓을 들고 있다. 더불어 한라산학교에서 ‘옛날감성 흑백사진’을, 제주대 언론홍보학과에서 신문학 원론을 강의하고 있다.

<프롤로그=이야기를 시작하며>

 

生世之樂, ‘이왕 태어난 거 즐겁게’

 

들리는 소리마다 모두 힘들다고 한다.
빠듯하게 살아가는 주변 우리들을 보면 웃으라는 얼굴에선 웃음은 없고 다양해야 할 표정은 오로지 무표정, 무뚝뚝하기만 하다.
이들에게서 이들과 다를 바 없는 나를 본다. 내 얼굴이 사납고 이러니 내가 나를 보기가 무섭다.
문득 오래 전 흘겨 읽었던 ‘테레사 효과’가 떠오른다.
‘스스로 봉사는 물론, 남이 봉사하는 모습에서 흐뭇해하는 것만으로도 몸에서 면역체가 늘어난다’는 하버드 의대의 실험결과 나온 용어란다.
내 얼굴을 사납게 하고 남을 즐겁게 할 수는 없다.
무섭기까지 한 무뚝뚝한 내 표정부터 바꾸어야겠다, 했고
지금의 나를 변화시키지 않고서는 앞으로도 여전히 불만투성이의 나로 살 수밖에 없을 것이고,
해서 상상한다.
나부터 억지로라도 기쁜 일을 끄집어내려 했고
없어도 얼굴을 웃게 만들어야 했다.
있을 수 있는 일, 할 수 있는 일로 상상하는 것.
힘들 때일수록 나부터 자주 웃어야 하고 더욱 기뻐야 한다는 것.
너무나 당연해서 소홀했던 일상의 깨달음.
이러려면 주변의 작은 일들에 관심을 갖고
이에 만족하려는 마음에서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生世之樂, ‘이왕 태어난 거 즐겁게’ 이러하길 바라면서, 나도 그리고 우리 모두도.

 

어느 날, 사귀며 지내던 한 여자가 내 옆 모습을 톺아보며 이랬다. 장동건 닮았다고. 장난치지 말랐더니 정말, 진짜란다. 잘 생겼다는 칭찬이었을 게다. 진지한 걸 보니 진짜, 진짜 같았다. 그러나, 난 대뜸 화를 내버렸다.
“날 모욕하지마!”

 

더 말은 안 했지만 속으로 ‘그 따위에 비교해, 나를?’ 했었더랬다. 이건 실화다. 진짜 내게 있었던 이야기이다. 그 뒤 그 따위의 안목(?)에 실망한 나는 그녀를 만나봐야 신나질 않았고 이래서 더 만나주지도 않았다. 안다 알아. 일껏 칭찬을, 기껏 이 따위로 받아들이니, 못난 짓임을 안다 알아. 꾀까닭스러워서 졸렬해 보이고 치졸한 행동이라는 것도. 하지만...
아무리 어눌하고 못나게 늙어가더라도 남과 비교되는 것은 정말 싫었다.
나는 나의 개성으로서 진정한 보통사람들의 자존심으로 존중받고, 또 나와 비슷하게 허술해 보이지만 결코 같지는 않은 남들을 그러한 자존심으로 존중하고 싶었던 게다.
비록 겉모습일지라도. 사랑하는 사람에게선 더욱더.
서툴러도 ‘나는 나다. 나는 나여야 한다.’
지금 이렇게 내 가슴 속에다가 외치고 있는 것이다. 아니 악을 쓰고 있는지 모르겠다.

 

 

 

 

 

<라이브 카페, 나는 서툴다. 고로 존재한다>가 제이누리에 연재를 다 끝마치고 책으로 나온 뒤 어느 날, 전화가 걸려온다. 방송국이다. 방송출연을 해달란다. 주부들이 주로 보는 소위 시청률 높은 아침 프로다. 방송국 관계자-아마도 방송작가 또는 피디일 것이다-에게 사전에 약조를 받아놓는다. ‘방송국이 하라는 대로는 안 하겠다. 나 하는 대로 내버려둬라. 그러면 출연하겠다.’라고. 남들 하듯이 짜놓은 연출된 방송콘티대로 하라며 간섭하려 들면 난 방송출연 않겠다고. 피디는, 남 욕이나 시국발언만은 말아달라고 하기에, ‘피디님, 제 책을 봤나요? 누구 욕하던가요? 내가 왜 욕을 합니까.’ 하고 그 약속은 해준다. 나는 TV 카메라 앞에서 신명나게, 그리고 서슴없이 기타 치며 노래 부르며 방송에 나와 논다.

 

중년 나이의 권위도 잊고 베스트셀러작가의 명예도 아랑곳 않고 어쩌면 나의 못나고 추해 보일 수 있는 적나라한 모습을 그대로 TV 카메라 앞에서 드러내 보인다. 실수하면 다시 한다 하고, 반응이 좋을라치면 거듭 재탕해보기도 하며. 생방송에선 이러면 안 되는 거다. 하지만 나는 한다. 생방송이니 감출 게 하나도 없다. 생모습을 굳이 감춰야 할 일도 없다. 주부들만이 아니라 남녀노소 불문하고 모든 시청자들은 고루 이런 나를 재미있어 한다. 웃기고 자빠졌기 때문에 재미있어 하나 보다. 재방송을 하고, 시청률이 그 주 드라마를 포함한 모든 프로그램에서 단연 1위를 차지한다. 다른 방송국에서도 출연제의가 이어지고 5부작 <인간극장>에도 주인공이 된다.

 

그 뒤 또 다른 데서 전화가 걸려온다.「라이브 카페, 나는 서툴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라이브카페를 글이 아닌, 꾸밈의 상상이 아닌 진짜로 열고 싶다는 것이다. 카페를 만들고 싶다는 것이다.「라이브 카페, 나는 서툴다. 고로 존재한다」의 이름으로 프랜차이즈 체인사업을 벌여보겠다는 제안이다. 만나지 않을 이유가 있을까. 후다닥 만난다. 총매출액의 2%를 내게 주겠다고 하는데 미룰 이유가 없다. 또 만약 초빙 가수로 출연한다면 그 출연료는 별도로 계산해주겠다고 한다. 전국 카페를 돌며 꼭 출연을 해줘야 한다는 조건을 강조한다. 이러니 부수입이 더 많을 거라는 귀띔도 받는다.

 

“선생님이 출연해줘야 합니다. 유명 가수? 그거,「라이브 카페, 나는 서툴다. 고로 존재한다」에선 소용없습니다. 선생님 하나면 족합니다. 방송에서 하셨듯이 그렇게 자연스럽게, 웃겨주시기만 하면 됩니다.”
그래도 믿지 못해하는 내 얼굴을 보고, 그는 예를 든다.

 

한 카페의 한 달 매출이 1000만원이라 가정하면, 그 2%는 20만원, 전국에 100군데「라이브 카페, 나는 서툴다. 고로 존재한다」가 있다고 또 가정하면, 20만×100=2000만원, 그러니까 한 달에 2000만원이 나의 별다른 노력 없이도 내 호주머니(입금전용통장이 생기겠지)에 들어오게 된다는 거다. 물론 부수입이 될 출연료는 아직 계산에 넣지 않았다. 당연히 그러라고 한다.

 

 

계약서를 꼼꼼히 헤아리고 따지는 중에 잠에서 깨어났다. 꿈이었다. 진짜가 아닌 가짜로, 실화가 아닌 허상임을 이내 알아챘지만 그 꿈에서 깨어나고 싶지 않았다. 아직 깨지 않은 감은 눈에선 이런 말을 중얼거리고 있었다.
‘없으라는 법 있어? 있을 수도 있는 일이야.’
개연성의 암시, 꿈이란 게 이래서 꾸고 이래서 좋은 게 아닌가.

 

꿈을 누가 막는단 말인가. 힘들어도 꿈은 꾸자. 힘들수록 꿈을 더 꾸자.
나는 서툴다. 고로 존재한다. 나는 서툴러서 꿈이라도 꾼다.

 

이런 꿈이 언제나 실현될까? 이런 서툰 꿈을 또 자주 꿀 것 같다. 그러나 이뤄지라고 마음 졸이진 절대 않는다. 오히려 즐거운 고민에 빠져 헤헤 웃고 비운 마음이 지어내는 꿈 속에서 살게 될 것이다. 즐거운 상상에 빠져서. 꿈은 이뤄지면 이미 꿈이 아니니깐 꾸는 것, 꿈꾸는 것만이라도 즐기고 싶다. 백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던가? 백번천번 꿈을 꾸다보면 언젠가 이뤄지겠지...... 꿈을 조금이라도 실천해가는 이 순간이 행복한 긴장의 시간이다.

 

서툰 자들의, 어눌하기 그지없는 우리네 진짜 평범한 사람들의 자기혁명을 꿈꾸면서......
꿈으로라도, 최고며 최상으로 살아보자. 너도나도 우리 모두가 다!
꿈마저 줄여 살지는 말자! 이뤄지든 말든 그거야 그 다음 문제다. 먼저 꿈을 꾸자.

 

이 꿈을 쓰는 동안 외국에서 분에 넘치게-아들의 꿈이다-하버드 로스쿨을 준비하고 있는 대학생 아들이 격려를 많이 해왔다.
“이 노래는 어때?”
“이 노래 가사에선 이런 이야기가 떠오르는데?”

 

이렇게 부축이며 내 꿈을 고무시켜줬다. 이러면서 아들도 까다로운 영문 원서로부터 잠시 벗어날 수 있었다. 아빠를 참견하면서 자기도 쉬려 했을 것이다. 그 속셈을 모를 리가 없다. 그 아름다운 속셈을 알아채고는 아름드리 포용으로 한 아름 아들을 포옹한다. 아들의 꿈을 껴안아준다. 아빠는 기타치고, 아들은 노래 부르고... 아들의 머리도 쉬게 해주고 싶었다. 아들과 나누던 이야기는 꿈이지만 진짜 같았다. 학비를 대주지 못한 대신 이렇게 유학생 아들과 1년 동행한다. 아버지를 닮아 아들도 무지 어눌하고 서툴다. 서툰 부자들이다. 어눌한 부자들이다. 하지만 상상하며 놀 때는 결코 서툴지만은 않았다. 상상하며 놀 땐 결코 어눌하다고 할 순 없었다.

 

꿈의 힘

 

‘사는 게 이런 거지.’
사는 게 힘들다고 꿈마저 팽개칠 순 없다. 꿈은 웃음과 같아서 많이 꾸면 꿀수록 몸에 좋고 정신에도 좋은 화수분이 된다.
꿈을 꾸는 것만으로도 내 꿈은 이뤄지고 있는 중이다. 꿈꾸는 동안 웃는 내 얼굴을 보게 될 것이며 긍정의 힘이 내 가슴에서 느껴질 것이기 때문이다. 며칠 전 의사후배와 전화통화 중 꿈은 병을 더 빨리 낫게도 해준다고 들었다. 꿈의 힘, 바로 그 안엔 희망이란 비타민과 미네랄이 들어있기 때문에 꿈은 모든 환자에게도 가장 안성맞춤 처방이다. 꿈은 실제로 엔도르핀을 촉진시켜준다. 몸에 힘이 되어준다는 얘기다. 우리 함께 남의 웃음으로도 행복할 수 있다는 ‘테레사 효과’를 내가 웃으면서 좀 더 능동적인 ‘테레사 효과’를 몸소 느끼고 한껏 즐겨보자.
힘들다고 하는 이제 지금, 우리는 이래야 한다. 하루라도 미룰 수 없는 게 우리의 삶이며 지금 이 시간이지 않은가!

 

초인

 

니체가 말한 강자 또는 초인(=위버멘쉬)이라는 게 별 건가. ‘각자가 지금의 삶에서 참된 자기를 극복하며 살아갈 때 초인이 실현된다.’고 니체가 그러지 않았던가. 초인은 권력자나 재력가들을 자기 아래에 두는 의식이며 자기의지로 자기를 극복할 수 있다면 누구나 초인이 될 수 있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들을 부러워만 하고 따라가려고만 한다면 약자에 불과하며 그들의 노예로만 살게 될 뿐이라고도 했다. 이제 우리, 여기서 진정한 초인이 되어보자!

 

수필소설 그리고 극단시

 

주변에서 흔히 듣고 볼 수 있는 이야기이기에 글이 가볍다. 이래서 수필이다. 하지만 가볍다고 하여 우리의 삶이 진지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이래서 수필적인 이야기, 수필소설이란 새로운 장르로 하루하루 살기 힘든 여러분에게 다가가려고 한다.

 

매 이야기마다 노래의 제목에 얽힌 사연들이 실릴 것이며, ‘나는 서툴다. 고로 존재한다’ 와 같이 음수율를 2·3·6으로 맞춘 극히 짧은 시로 시작한다. 2·3·6의 음수율은 월드컵 응원 때 우리가 소리 지르며 환호하고 환성을 지르며 손뼉을 치던 ‘짝짝 짝짝짝 짝짝짝짝짝짝’과 같다. 우선 나 자신에게 박수를 쳐주며 나를 격려하는 박수이며, 또한 힘내라며 여러분을 향해 치는 응원의 박수이기도 하다. 2·3·6 율의 이 시를 나는 <극단시>라고 이름을 붙인다. 이는 일본의 하이쿠(음수율 5·7·5의 세계에서 가장 짧다는 시로, 일본서민들이 자주 이 시를 읊조리곤 했다고 한다. 서민들의 삶이 더 서려있다는 시가 하이쿠다.)를 흉내 낸 듯하지만 이보다 더 짧은 시-이래서 극히 짧은 시라는 뜻에서 <극단시>라고 함-로써 서툴고 어눌한 우리들의 마음을 시로써 읊을 수 있는 여유를 갖자고 하는 데 의미를 두었다.

 

매주 한 꼭지의 이야기가 여러분 곁으로 찾아갈 예정이다.

 

이제 정말이지, 우리 삶이 흥얼흥얼 노래를 부르고 있어야 한다.

 

(끝으로, ‘그 따위’라 한 배우 장동건 씨에게 미안하다. 그러나 이 말의 진의는 무언지 배우이자 연기자이기도 한 장 씨가 더 잘 알고 있으리라 믿는다.) / 오동명
 

 

 

서툴러도 맘껏, 철없이 보여도 한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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