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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회의 '영화로 읽는 한국사회' - 복수는 나의 것 (6 )영화 속 무정부주의자 영미
정부 있어야 무정부주의도 있어 ... 사상가들 쏟아낸 국가의 기원
토마스 홉스 주장 설득력 있어 ... 개개인 국가에 물리적 강제력 신탁
국가의 힘은 결국 국민의 힘 ... 힘의 행사, 신중하고 제한적이어야

영미(배두나 역)는 ‘혁명적 무정부주의자 동맹’이라는 단체에 가입한 스스로를 열렬한 무정부주의자로 자처하는 당돌한 아가씨다. 막연한 무정부주의자가 아니라 나름 활동도 한다. 그런데 영미의 ‘무정부주의’ 활동은 그다지 혁명적이지 않고 조금 김빠진다.
 

 

영미에게 무정부주의 활동은 교통체증 도로에 나가 담배 하나 꼬나물고 운전자들에게 ‘무정부주의 지라시’를 들이미는 게 고작이다. 황당한 건 영미가 나눠주는 붉은색 전단지에 인쇄된 내용이다. “재벌해체, 미군철수.” 아마도 무정부주의자들의 단골메뉴인 ‘자본주의 타도’를 ‘재벌해체’로, ‘전쟁 반대’를 ‘미군철수’로 단순화한 구호인 듯하다. 

그러나 이 장면이 ‘블랙 코미디’처럼 느껴지는 건 정부를 없애버리자는 영미의 ‘혁명적 무정부주의자 동맹’이 정부를 향해 자신들의 꿈을 이뤄달라고 호소하는 역설적 상황이기 때문이다. 이 나라에서 재벌을 해체하고 미군을 철수시킬 권능을 가진 곳은 정부밖에 없다. 정부가 없으면 이 무정부주의자들의 꿈도 이뤄질 수 없다는 기묘한 논리가 된다.

유치원생 외동딸을 영미에게 유괴당한 중소기업 사장 동진(송강호 역)은 또 다른 모습의 무정부주의자다. 정부와 경찰을 믿지 못하고 자신이 직접 해결하려고 나선다. 내 딸은 내가 구한다. 영화 ‘테이큰’의 리암 니슨(Liam Neeson)의 한국 버전이다. 

그런데 경찰을 믿지 못하고 직접 해결에 나선 동진은 정부에 속한 현직 베테랑 형사를 매수해 자신의 사설탐정처럼 부려서 유괴범을 추적한다. 그다지 특별해 보이지도 않고 ‘얼빵’해 보이는 현직 형사를 매수한 것으로 봐서 그만이 보유하고 있는 탁월한 ‘개인기’에 기대를 걸었다기보다는 그가 접근할 수 있는 정부의 ‘공권력’을 매수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듯하다. 결국 동진은 정부를 믿지는 못하지만 어쩔 수 없이 정부에 의존하는 무정부주의자다.

편의적으로 무정부주의로 번역하는 ‘아나키즘(Anarchism)’은 정확히는 그리스어로 ‘지배자(archos)가 없다(an)’는 말에서 비롯됐다. 따라서 정부뿐만 아니라 국가·종교·단체·자본 등 개인의 자유를 지배하고 억압하는 모든 것을 부정한다. 그러나 ‘킬리만자로의 표범’처럼 혼자 고고하게 살아갈 수 없고 어딘가에 소속돼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게 인간의 숙명이라면 아나키즘이란 허황된 이상일지 모른다. 

영미나 동진 모두 국가가 없는 자유로운 세상을 꿈꾸면서도 그들에 의탁하는 모순 속에서 살아간다. 우리들 모두 영미나 동진과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의 생각과 행동 자체가 국가라는 울타리를 쉽게 벗어나지 못한다. 어쩌면 국가에 기대하는 것이 많을수록 국가를 불신하는 마음도 커지는지 모르겠다.

이처럼 국가와 정부라는 틀을 벗어날 수 없게 만드는 힘은 아마도 그들이 독점적으로 소유하고 있는 ‘물리적 강제력’에서 나오는 듯하다. 내로라하는 여러 이름난 사상가들이 ‘국가의 기원’을 두고 나름대로의 논설을 펼치지만, 그중에서 1600년대 영국의 사상가 토머스 홉스(Thomas Hobbes)의 그것이 여전히 가장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인간은 도구를 사용하면서 ‘서로가 서로를 죽일 수 있는 동등한 능력(equal ability to kill each other)’을 보유한 유일한 동물이 됐다. 그런데 인간은 만족을 모르고 그 욕망의 끝이 없는 유일한 괴상한 동물이기도 하다.

이 두가지 특성이 결합하면 결국 만인萬人을 향한 만인의 투쟁 상태(all against all)에 빠져 모두 죽을 수밖에 없다. 그것을 깨달은 인간들로선 서로가 서로를 죽일 수 있는 물리적 강제력을 모두 함께 국가라는 집단에 신탁信託하고 자신들을 대신 보호해달라고 요청하는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모든 개개인이 자진 반납한 ‘무기’들을 보유한 국가는 어마어마한 물리적 강제력을 독점적으로 보유하는 무서운 존재가 돼버린다. 토머스 홉스는 이렇게 탄생한 국가의 모습을 ‘리바이어던(Leviathan)’이라고 불렀다. 

왕정시대의 절대군주나 현대국가의 국가수반이나 모두 리바이어던이다. 리바이어던은 구약성서 욥기(Book of Job)에서 악의 화신로 등장하는 거대한 바다 괴물로 무시무시한 힘을 상징한다. 욥기는 이 괴물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땅 위에 그것과 겨룰 만한 것이 없으며, 그것은 처음부터 겁이 없는 것으로 지음을 받았다. 모든 교만한 것을 우습게 보고, 그 거만한 모든 것 앞에서 왕 노릇을 한다.”

욥기는 그 모습을 아무것도 뚫을 수 없는 철갑으로 무장한 거대한 도마뱀이나 악어와 비슷하며, 코에서는 연기를 내뿜어 세상 모든 것을 질식하게 하고, 입에서 뿜는 불길은 세상 모든 것을 불태워버린다고 상세히 묘사한다. 괴수계의 절대지존 ‘고질라’의 원형쯤 되는 것 같다.

리바이어던이란 존재는 워낙 무시무시하다 보니 어떤 이유에서든지 한번 격노라도 하면 그 격노의 정당성이나 이유 여하를 따지기 전에 우선 모두가 숨을 곳부터 찾아야 한다. 무심코 한 번만 몸을 들썩여도 주변은 초토화된다. 혹시 리바이어던이 공연히 제 성질에 못 이겨 날뛰거나 ‘뻘짓’이라도 한번 하면 그 회복불가능한 재앙은 짐작하기조차 어렵다.
 

 

사상가 토머스 홉스는 1600년대 중반 강고했던 군주정이 흔들리면서 발생하는 사회혼란을 목도하고 강력한 절대군주제를 옹호하기 위해 리바이어던을 집필했지만, 홉스가 무조건 아무 절대군주(리바이어던)를 옹호한 것은 아니다. 

리바이어던이 독점한 거대한 힘은 국민들이 그들을 믿고 맡긴 힘일 뿐이다. 그러므로 그 힘의 행사는 극도로 신중해야 하며, 또한 그 힘의 행사는 자신의 이익이 아닌 국민들의 이익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는 게 홉스의 생각이다. 

‘국헌(國憲)’을 준수하고 오직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기 위해 헌신하겠다고 약속하고 국민들의 ‘물리적 강제력’을 인수받는 우리들의 리바이어던들은 지금 토머스 홉스가 그린 길들여진 리바이어던일지, 욥기가 기록하는 무시무시한 날것 그대로의 리바이어던에 가까운 것인지 가끔은 혼란스럽다. [본사 제휴 The Scoop=김상회 정치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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