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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종교.법.교육.의료의 권위가 무너진 세상? ... 중요한 건 인성과 지혜

흔히 교육은 국가의 백년지대계(百年之大計)라 한다. 100년을 내다보고 시행해야 한다는 의미다. 우리나라와 같이 자원이 빈약한 나라에서는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우리나라가 2차 대전 후 독립한 나라들 중 유일하게 민주화와 산업화에 성공한 것은 교육에 힘입은 바가 크다고 하겠다. 비록 이승만 대통령과 박정희 대통령이 독재자라고 비난을 받고 있지만, 이 대통령께서 민주주의 국가인 미국에서 활동하면서 민주주의가 체질화 되어 신생 조국에서 민주주의 교육에 힘을 쏟았기에 4.19 의거가 일어날 수 있었다. 국민들이 대통령께서 연임하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국민이 원하면 물러나야지’ 하며 선선히 물러나 우리나라에 민주주의가 지속되도록 하였으며, 박 대통령께서는 경제가 뒷받침 되어야 진정한 민주주의가 뿌리내릴 수 있다는 신념으로 세계가 불가능하다고 여겼던 산업화를 추진하고 이룰 수 있었던 것도 교육된 인재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요즘 우리나라 교육은 붕괴직전이라고 하여도 과하지 않을 것 같다. 날마다 학교폭력이 난무하고 교사들은 의욕을 잃은 채 체념하거나 방황하고 있다. 이런 상태로 지속하다가는 우리나라는 회생불가의 상황에 빠지게 되지나 않을까 걱정이다.

 

사회가 온전히 굴러가기 위해서는 사회에 꼭 필요한 권위들이 지켜지고 존중되어야 한다. 특히 네 가지 영역의 가치가 존중되어야 한다.

 

그 첫째는 종교의 권위다. 종교의 권위가 지켜지지 않으면 종교가 성립될 수 없고, 종교가 무너지면 사회의 올바른 가치관이 사라진다. 공자님께서도 ‘무신불립(無信不立)’이라고 설파하셨듯이 특히 ‘믿음’이라는 가치가 사라지면 정상적인 사회는 존립할 수 없다. 성직자들도 사람이다. 성직자들이 나보다 더 배워서, 더 똑똑하여 존중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도 잘못할 수 있고 실수할 수도 있다.

 

둘째는 법의 권위다. 법의 권위가 무너지면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이 무뎌지고, 결국 사회는 혼란에 빠진다. ‘무전유죄, 유전무죄’라든가 ‘무권유죄, 유권무죄’라는 말이 돈다는 것 자체가 우리 법조계의 부조리를 나타내고 있다고 하여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셋째는 교육의 권위다. 교육의 권위가 없어지면 교육 자체가 제대로 이뤄질 수 없다. 학생들에게 권위를 인정받지 못하는 선생님에게서 올바른 교육의 성공을 기대하는 것은 연목구어(緣木求魚)다.

 

넷째는 의료의 권위다. 환자에게서 신뢰를 받지 못하는 진료는 성공하기 어렵다. 환자가 의사를 믿지 못하면 의사의 지시에 따르기 어렵고, 의사의 지시를 따르지 않으면 기대했던 치료효과를 제대로 얻기 어렵다.

 

이 네 가지 권위의 공통점은 잘못한 사람이 손해를 보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이 피해를 입는다는 것이다. 성직자가 잘못된 교리를 퍼뜨리면 신자가 피해를 입으며, 판사가 잘못 판결을 내리면 피고가 피해를 입고, 교사가 잘못하면 학생이 피해를 입고, 의사가 잘못하면 환자가 피해를 입는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네 직종에는 나름대로의 윤리규칙이 따로 있다. 이 윤리규칙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것을 인정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분야에 종사하는 분들은 끊임없이 자정작용이 적용되어야 한다. 그래서 국민들의 신뢰를 유지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지금 우리나라는 많은 문제를 안고 있는데, 그 중에서도 해결하기가 어려운 것에 교육과 의료가 있다. 이 문제들의 공통점은 소명의식의 저하와 신뢰의 붕괴라는 현상에 있다.

 

이 두 직종은 직업안전성이라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과거에는 소명의식이 더 강했으므로 어려움도 참아내고 성과도 더 낼 수 있었으나, 차차 직업안전성을 선호하는 분들이 많아지면서 상대적으로 소명의식은 약해진 것 같다. 일반 국민들은 이런 분야에 종사하고 있는 분들께서 소명의식을 가져주기를 기대하나 직업안전성에 중점을 둔 사람들은 세태가 WELL-BEING을 추구하니 소명의식을 희생하는 것으로 인식하는 경향으로 바뀌었다.

 

아이들을 잘 키우는 것은 모든 부모들의 바람이다. 여기에는 왕도가 없다고 생각한다. 두 가지, 선생님을 존경하고 아이들이 했으면 하는 대로 부모가 행동으로 모범을 보이면 된다.

 

과거에는 교사들이 상대적으로 교육수준이나 경제적 수준이 높았다. 그러니 자연히 지역 주민들의 존경과 지지를 받았다. 그러나 우리나라가 경제적으로 발전하면서 상대적으로 교사들보다 교육적 그리고 경제적 수준이 높은 분들이 많아졌다. 그리고 사회적 평판도 교육수준이나 경제력, 또는 지위에 따라 달라지니 예전에 비해 교사들에 대한 존경심이 약화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교육의 효과는 학생들의 교사에 대한 신뢰와 교사의 열정에 좌우되는데, 부모의 교사에 대한 존경심의 많고 적음이 바로 학생들에게 알려진다는 것이다. 즉 부모님이 교사를 존경하지 않으면 학생들도 교사를 존경하지 않으며, 이것은 결국 교육의 효과를 떨어뜨리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전에 읽은 글에 이런 것이 있다.

 

어느 시골에 경찰서장 아들이 초등학교에 다니고 있었는데 아주 개차반이었다고 한다. 이 학생이 3학년에서 4학년으로 올라갈 때에 3학년 담임선생님께서 4학년 담임선생님께 아무개가 경찰서장 아들인데 개차반이니 잘 다루라고 인계하셨다고 한다. 4학년 담임선생님께서 담임을 맡게 되자 “서장님, 저가 금년에 아드님 담임을 맡게 된 아무개입니다. 가정방문을 하여야겠으니 죄송하지만 대접을 해 주십시오.” 전화 드리니 서장께서 흔쾌히 “그럽시다.” 하고 날을 정해 잔칫상을 마련하고 선생님을 상좌에 모시고 자신은 아래쪽에 무릎 꿇고 선생님을 모셨다고 한다. 이에 자기 아버지가 제일 센 줄 알았는데 담임선생님에게 꼼짝 못하는 것을 본 학생이 이튿날부터 자세가 달라졌다는 것이다.

 

또 한 가지 예는 한 학생이 모르는 식물에 대해 선생님께 여쭈어 보았는데 선생님께서도 모르셨다고 한다. 그 학생이 집에 가서 식물학 교수인 아버지에게 선생님께서도 모르신다고 하면서 물어보니 그 교수도 잘 모르겠다고 하면서 찾아보자고 하였는데 이튿날 학교에 가니 선생님께서 자세히 말씀해 주셔서 “우리 선생님 대단하시구나.” 하였다고 한다. 그런데 사실은 그 교수님께서 그날 저녁에 선생님께 자세히 설명해 드렸다는 것이다.

 

혹 부모님이 보시기에 선생님께서 가르치신 것이 잘못 되었던가 이해가 안 되면 바로 선생님을 비난할 것이 아니라 조용히 선생님께 자초지종을 알아보고 이해가 되면 자녀에게 설명을 해주고, 잘못한 것이 있으면 선생님께서 학생에게 사과하거나 시정할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혹 이해가 되지 않으면 교장선생님께 말씀을 드리도록 하자. 이때에 중요한 것은 선생님께서 진실 되게 대응한다는 것이다. 순간의 창피를 모면하려고 거짓을 택하는 것은 더 큰 잘못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교육이란 이런 것이다. 부모님께서 선생님을 존경하는 모습을 보이면 학생들도 자연히 선생님을 존경하고, 그러면 정상적인 교육은 이뤄지는 것이다. 다만 염두에 둬야할 것은 교사의 자세가 교육자다워야 한다는 것이다. 아무리 부모가 교사를 존경한다 해도 교사가 폭력적이거나 사리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면 학생들은 어긋난다.

 

또 한 가지는 자녀들이 했으면 하는 대로 부모가 하라는 것이다. 자녀들이 책을 읽었으면 하면 부모가 먼저 책을 읽고, 자녀들이 거짓말을 했으면 하면 부모가 먼저 거짓말을 하면 된다.

 

성공한 사람들의 뒤에는 존경하는 사람이 있었고, 실패한 사람의 뒤에는 대부분 문제 부모나 문제 교사가 있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다른 사람과 비교하여 못한다고 하면 화를 내지만 ‘허 허’ 웃는 경우가 두 가지 있다고 한다. 그 하나는 ‘네 아들이 너 보다 나아.’이고 다른 하나가 ‘네 제자가 너보다 나아.’라고 한다. 옛날에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라는 말이 있었는데 선생님을 임금과 부모와 동등하게 보아온 우리 선조들의 지혜를 오늘에 되살려야 하겠다.

 

우리나라는 교육의 지표를 ‘홍익인간’에 두었다. 그런데 경제화가 되면서 ‘공부 잘 하는 것’에 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공부를 잘 해야 좋은 대학에 들어가고, 좋은 대학을 나와야 좋은 회사에 취직하기 쉬우며, 좋은 회사에 들어가야 성공할 확률이 높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우리는 행복하게 살기 위해 이 세상에 태어났고, 행복하게 죽으려고 열심히 산다는 사실을 쉽게 잊어버린다.

 

물론 성공하면 행복할 확률이 높아지지만, 성공하는 것이 행복 하는데 꼭 필요한 것이 아니다. 때로는 사회적으로 성공하였지만, 불행한 경우를 우리는 너무 자주 본다. 인성이 갖춰지지 않은 사람이 일시적으로 성공한 것처럼 보이다가도 결국 불행의 늪 속으로 빠지고 만다.

 

반면에 공부를 좀 못 하더라도 인성이 갖춰진 사람들은 결국 자기 능력만큼 성공할 수 있다. 그러니 우리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지식보다는 인성과 지혜라는 것을 알아야 하겠다. 자연에서 지혜를 배우고, 사람과 어울리는 가운데 인성을 닦아간다면, 우리는 인생의 종착역에서 승리의 미소를 짓게 될 것이다.

 

우리의 학생들이 올바로 자라는 것이야말로 우리사회가 건전하게 발전하는 데 꼭 필요한 것이며, 이는 올바른 교육을 통해서만 이룰 수 있는 것이다. /이유근 아라요양병원 원장

 

성공이란 무엇인가 - 랄프 왈도 에머슨

 

자주 그리고 많이 웃는 것

현명한 이에게 존경을 받고

아이들에게서 사랑을 받는 것

정직한 비평가의 찬사를 듣고

친구의 배반을 참아내는 것

아름다움을 식별할 줄 알며

다른 사람에게서 최선의 것을 발견하는 것

건강한 아이를 낳든

한 뙤기의 정원을 가꾸든

사회 환경을 개선하든

자기가 태어나기 전보다

세상을 조금이라도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어놓고 떠나는 것

자신이 한때 이곳에 살았음으로 해서

단 한 사람이라도 행복해지는 것

이것이 진정한 성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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