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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의 가치를 드높인 사람들 … 자부심 가질 수 있도록"
"요령·편법 없이 튼튼하게 쌓아라" 아버지의 가르침 이어가

 

제주에는 '돌챙이'라 불리는 사람들이 있다.

 

돌을 쌓아 집이나 밭, 무덤의 경계를 표시한 집담·밭담·산담을 만들고, 마을의 재앙을 막는 방사탑(防邪塔), 제주의 상징과도 같은 돌하르방 등을 만드는 기술을 가진 사람들을 일컫는다.

 

흔히 옹기장이, 칠장이, 대장장이와 같이 단어 뒤에 '관련 기술을 가진 사람'을 뜻하는 접미사 '장이'가 붙는 것과 같다.

 

'화산섬' 제주 지천으로 널린 돌.

 

이를 옮기고, 깨고, 다듬고, 쌓아 돌에 생명력을 불어넣고 사람들의 생활을 이롭게 만드는 이들이 그들이다.

 

한때 천하게 여기며 '돌챙이'라 낮잡아 불리던 이들을 우리는 이제 제주 문화를 대표하는 '장인'(匠人)이라 부르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 제주 역사·문화 녹아든 돌챙이의 삶

 

지난 2008년부터 15년간 돌담 쌓는 일을 해온 '돌챙이' 조환진(50)씨.

 

그는 최근 제주 돌문화를 대표하는 장인들을 만나 인터뷰한 책 '제주 돌챙이'(제주도문화원연합회. 비매품)를 펴냈다.

 

돌담 장인 안기남, 원담 장인 이방익, 대한민국 석공예 명장 송종원, 비석돌 장인 조이전, 비석에 글을 새기는 비석 각자 장인 고정팔, 초가장 축담 장인 김창석, 돌창고 장인 홍의백, 방사탑 장인 현태성, 돌을 깨는 장인 김상하, 돌하르방 조각 장인 김남흥, 옹기 돌가마 장인 김정근씨 등을 만나 그들의 삶과 작업을 기록했다.

 

이들 장인의 삶은 고스란히 제주의 역사, 문화와 맞닿아 있다.

 

4·3 당시 폐허로 변한 마을을 재건하는 과정에 동원돼 축담을 쌓아 초가집을 다시 짓고, 6·25 전쟁에서 돌아와 우연히 돌 일을 하게 된 과정 등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작업에 대한 설명과 자신만의 노하우가 전해지면서 자연스레 '돌챙이'로서 일에 대한 철학도 묻어났다.

 

"세상에 변치 않는 것이 어디 이서(있어)? 다 변하긴 하지만은 그래도 돌은 변치 않는다는 그 구절이 문뜩 떠오르는 거라. 뭔가 시키면 자기 몫을 다해낸다는 돌의 심성. (중략) 다 버리고 돌을 벗 삼앙 돌과 같이 살고 싶다. 경해서(그래서) 배운 거 다 팽개쳐 버리고 돌을 잡았지. 이제는 알파벳도 다 잊어부러서.(잊어버렸어)"

 

 

60년간 돌 조각을 해 온 대한민국 명장 제53호 송종원(87) 장인이 윤선도의 '오우가'를 읊으며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제주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나와 교직을 이수한 그가 돌을 벗 삼아 일하다 보니 알파벳도 다 잊어버렸다는 그의 말속에서 은근한 자부심이 느껴진다.

 

까마득한 후배 조환진씨가 이렇듯 선배 장인을 인터뷰 하게 된 이유는 무얼까.

 

조씨는 "예전에 제주학연구센터를 찾아갔는데 책꽂이에 수많은 제주 관련 책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는 걸 봤다. 하지만 그 안에 돌챙이와 관련한 책은 없었다. 제주민속자연사박물관에도 해녀의 도구, 사냥꾼들의 도구 등 옛 제주 사람들이 쓰던 각종 생활도구가 전시돼 있지만 돌챙이들이 쓰던 연장은 전시돼 있지 않았다. 제주돌문화공원도 제주의 화산폭발과 돌의 형성과정을 전시해 설명하고 있지만 돌을 쌓았던 사람들에 대한 전시를 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것이 제주의 현실이라는 것을 깨닫게 됐다"며 돌챙이와 제주의 돌 문화를 알리기 위해 책을 쓰게 됐다고 설명했다.

 

조씨는 "돌창고든 산담이든 밭담이든 그분들은 돈을 벌기 위해 직업으로 어쩔수 없이 일을 한 것이지만, 제주에서 그분들이 만들어낸 돌 문화는 아주 귀한 보물과도 같은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이어 "제주도의 가치를 드높인 사람들 중 하나인 돌챙이에 대한 새로운 평가. 그분들이 더 자부심을 가질 수 있도록 해드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 "우리 함께 돌담 쌓아봅시다! 다우게양∼"

 

"'돌챙이'라는 말은 어떻게 보면 정말 애틋한 단어에요. 돌챙이를 단순히 '석공'이라 표현하면 어색합니다. 느낌이 완전히 달라요. 이 일을 표현할 수 있는 말은 돌챙이 밖에 없어요."

 

그 옛날 중장비나 장갑도 없이 추우나 더우나 맨손으로 거친 돌을 깨고 다듬고 쌓았던 돌챙이의 삶은 고달팠다.

 

땅 한 뼘이라도 있었다면 농사를 지으며 살 수 있었겠지만, 여건이 안돼 돌이라도 쌓으며 살아야 했던 그들의 삶에 선택지는 없었다.

 

조환진씨의 아버지 역시 돌챙이었다.

 

조씨는 "아버지는 제가 돌담 쌓는 일을 하는 걸 싫어하셨다"고 말했다.

 

아들이 키가 작고 힘이 약해 신체조건이 맞지 않다고 여긴 데다 그 힘든 중노동을 대학 나온 아들이 하길 원하지 않았던 것이다.

 

조씨는 고민 끝에 아버지에게 자신이 살 돌집을 짓는 걸 도와달라 부탁을 했다.

 

2005년부터 3년간 아버지와 함께 집을 지으며 축담 쌓는 법을 익혔다.

 

오랜 작업 뒤에 아버지는 조씨에게 한쪽은 둥그렇고 한쪽은 납작한 작은 손망치 하나를 쥐어줬다.

 

평소 아버지가 사용하던 망치였는데 대장간에서 새롭게 손질을 하고 온 것이었다.

 

돌챙이 일을 해도 좋다는 무언의 승낙이었다.

 

조씨는 "아버지가 제게 가르쳐준 건 안 무너지게 튼튼하게 돌을 쌓는 걸 가르쳐주셨다. 요령이나 편법이 아닌 튼튼하게 쌓는 법"이었다며 "(제가) 보기 좋게 돌담을 쌓고 싶어도 아버지는 보기 좋은 건 둘째고, 무조건 튼튼해야 한다고 강조하셨다"고 말했다.

 

 

돌챙이가 된 조씨는 지난 2015년 50년 경력의 아버지와 함께 누구나 돌담 축조기술을 배울 수 있는 '돌빛나예술학교'를 설립했다.

 

제주 돌문화의 가치를 알리고 돌담 쌓는 기술을 대중에 전수하기 위한 학교다.

 

돌담축조 실기지도를 하며 돌담에 대한 다양한 질문에 명쾌한 답변을 했던 조씨의 아버지는 지난 2020년 98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조씨는 현재도 계속해서 돌빛나예술학교를 운영하면서 돌담 쌓는 일을 이어가고 제주의 돌 문화를 알리기 위한 다양한 활동을 준비하고 있다.

 

조씨는 "돌담 쌓을 때 옛날 방식을 고집하는 편이다. 시멘트의 접착력에 의지해 돌을 쌓는 게 아닌 돌들의 마찰력만으로도 튼튼한 돌쌓기를 하면서 돌담 쌓는 걸 배우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위한 교육도 계속해서 진행하려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제주에 새로운 문화가 유행하길 바라는 소망을 이야기하기도 했다.

 

조씨는 "제주에 있는 수많은 돌담을 잘 보전하도록 무너진 돌담을 다시 쌓아 복원하는 문화를 만들고 싶다"고 강조했다.

 

예를 들어 사람들이 바닷가 산책을 하며 쓰레기를 줍는 '플로깅'(Plogging)을 하듯이 제주를 걷다가 무너진 돌담을 보면 누구라도 가서 보수하는 일이 일종의 제주 문화처럼 되길 희망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러한 문화에 '다우게양'이란 이름을 붙였다.

 

그는 "'돌담을 쌓다'는 뜻의 제주어인 '다우다'란 말을 기본으로 '다우게양'은 '우리 함께 돌담 쌓아봅시다'란 뜻"이라며 "이를 통해 무너진 돌담을 보수하는 활동을 전파하는 이런 계획을 가지고 있다. 많은 참여를 바란다"고 말했다. [연합뉴스=변지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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