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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드 제주] 용암해수단지 '좋은친구들' 신기성 대표 ... 국내 첫 액상소금으로 제주 알린다
"사람과 사람이 만날 때 가능성 태어난다 ... 사람이 오가는 섬 제주, 다 함께 사랑하고 아껴야"

 

매일 수백t씩 제주 바다에 버려지는 보물이 있다고 하면 믿겠는가? 정말 놀랍게도 10여년 간 대부분 존재조차 모르고 외면했던 제주의 보물이 있다. 그런 가운데 과감히 제주 바다로 뛰어든 이가 있었다. 세계에서 오직 제주만이 가진 자연의 선물을 되살리겠다는 일념이다. 

 

신기성(64) '좋은친구들' 대표. 

 

제주 용암해수로 만든 '제주 소금'으로 국내 소금시장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덕불고 필유인(德不孤 必有隣), 덕이 있는 자에겐 반드시 이웃이 있다

 

되돌아보면 인생의 변곡점에 늘 귀인이 있었다. 신 대표는 스스로를 '인복이 많은 사람'이라고 칭했다. 누군가와 인연을 맺고, 서로 도움을 주고 받고, 베풀 수 있는 것은 베풀고... 뜻하지 않은 인연에 인생이 바뀌기도 한다. 한 번 맺은 소중한 인연은 예나 지금이나 그에게 은혜이자 축복이었다. 

 

예를 들면 첫 취업도 그랬다. 20대 중반, 우연히 설악산에 올랐다가 모 의류회사의 사장님과 안면을 트게 됐다. 당시 그는 '인상이 좋다', '늘 웃고 있어 보기가 좋다'는 평을 자주 들었던가. 몇 마디 대화를 나눴는데 그 사장님 또한 신 대표를 좋게 본 모양이었다. 하산한 후에도 연락을 주고받다가 감사하게도 "젊은이가 반듯하니 여기 와서 일을 좀 해달라"는 제안을 해주셨다.

 

그렇게 우연히 입사한 의류회사에서 수년간 힘쓰는 동안 또 다른 빛이 그를 찾아왔다. '틈새시장'이란 것을 본 것이다. 임부복이었다. 1990년대 당시만 해도 임부복은 유명 브랜드가 없었다. 의류 시장은 옷 사이즈에 따른 생산을 걱정해야 했는데, 임부복은 구매자가 직접 끈으로 조절하니 크게 위험부담이 없어보였다. 그렇다고 유행을 따라가는 분야도 아니었다.

 

그가 창업을 고민하고 있다는 것을 안 지인들이 그를 독려했다. 도움을 줄 수 있다면 얼마든지 도와주겠다는 것이다. 

 

문득 대학시절이 떠올랐다. 10.26 사태가 있었던 1970년대 후반, 그가 다녔던 대학에도 휴교령이 내려졌다. 당시 그는 아르바이트로 식탁보, 포크 등 독일제 주방상품을 파는 도매일을 했었다. 물건을 1000원에 떼와서 1200원에 파는 식이었다. 돈도 돈이었지만 '오더'를 딸 때마다 너무 좋아서 하늘로 날아갈 것만 같았다. 사람 만나는 데 재미를 붙이니 정직원인 과장보다 실적이 더 나왔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 손을 잡는 뿌듯한 성취감. 어쩌면 다시 맛볼 수 있을지도 몰랐다. 그는 생애 첫 창업으로 '미스 플라워'라는 임부복 브랜드를 냈다. 지인들은 그가 더 많은 고객들과 만날 수 있도록 생산과 유통과정에 많은 도움을 줬다. 덕분에 그의 임부복 브랜드는 전국의 수 많은 백화점과 대형마트에 입점하면서 그야말로 '잘 나갔다'.

 

하지만 곧 위기가 들이닥쳤다. 기업의 줄도산과 대량실업이 잇따랐던 1998년, 전국 각지의 중소 백화점들이 IMF 외환위기를 기점으로 줄줄이 쓰러지기 시작했다. 부도난 백화점에 입점했던 작은 업체들은 돈을 받지 못하고 쫒겨나듯 나앉았다. 

 

신 대표도 예외가 아니었다. 망연자실한 찰나 도움의 손길이 다시 닿았다. 기적이었다. 잘 지내던 원단공장의 사장이 "일단 원단을 밀어줄테니까 다시 해 봐라"고 한 것이다. "이거 만들어서 못 팔면 못 갚는다"고 해도 "괜찮다. 만들어드리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간 덕분에 많이 벌었다"며, 그 수입 다 날려도 괜찮으니 이제는 본인이 도움을 주겠다는 것이다. 

 

LG홈쇼핑에서 일하던 후배도 손을 내밀었다. "임부복이라는 게 홈쇼핑에서 될지 안 될지 모르지만 일단 해봅시다" ... '대히트'였다. 임부복 브랜드 론칭은 한국 홈쇼핑 사상 그의 브랜드가 처음이었다. 완판에 이어 2회차 판매까지 갔다. 줄줄이 부도난 백화점 때문에 대금이 물려 한때 신용불량까지 갔었지만, 덕분에 모든 빚을 다 갚고 기적적으로 되살아날 수 있었다.

 

 

사람과의 연, 제주와의 인연이 되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인연은 또다른 지평선을 열었다. 2002년, 월드컵 붐이 대한민국을 휩쓸고 지나간 해였다. 어느날 신 대표에게 한 친구가 찾아왔다. 삼성 연구원으로 일하면서 기계를 잘 다뤘던 친구였다. 별안간 자신의 아들이 스님이 되게 해달라고 했다. 신 대표 근처에는 항상 사람이 많았고, 덕분에 불교계에도 인맥이 넓었다.

 

말을 들어보니 상인에게 사기를 당했다고 했다. 닭꼬치 기계를 개발했는데, 어떤 상인의 '고속도로 등 휴게소에 기계를 풀어주겠다'는 말을 믿고 계약했다가 그만 큰일을 치른 것이다. 이대로라면 10대 아들이 학교고 뭐고 먹고 살기도 힘들테니 스님이 되면 의식주는 해결될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하소연하는 친구를 위로하는 한편, 신 대표는 친구가 개발했다는 닭꼬치 기계를 살펴봤다. 당시만해도 닭꼬치는 검은 연기를 풀풀 날리며 야외에서 굽는 것이 보통이었다. 하지만 이 기계는 원적외선으로 익히는 방식이라 냄새도, 연기도 나지 않았다. 신 대표는 친구에게 동업을 제안했다. 친구는 기계 생산을 담당하고, 신 대표는 유통을 전담하기로 했다.

 

또 '대박'이었다. 연기가 나지 않는 닭꼬치 기계라니 혁신이었다. 전국의 스키장과 리조트에서 물 밀듯 주문이 들어왔다. 전국 도로를 누비는 푸드트럭 업체에도 주문이 들어왔다. 원래하던 의류 유통에 닭꼬치 기계 사업, 그리고 식자재 도매업까지. 덕분에 40대부터 50대까지 "아주 정신이 없었다". 

 

제주와 연이 닿은 것은 모든 사업을 정리하고, '멘토'로서 젊은 사업가들의 성장을 조언과 투자로 돕던 때였다. 잘 알던 제약회사에서 용암해수로 여성청결제를 만들고 싶다며 연결을 부탁했다. 서울에서만 쭉 살았던 신 대표는 그 길로 비행기를 타고 제주 용암해수단지를 찾았다.

 

제주 용암해수는 2011년부터 용암해수 일반산업단지 내에서 매해 1만5000t 생산돼 입주 업체에 공급되고 있다. 지하수지만 바다로 배출돼 바닷물과 뒤섞이다보니 바로 식수로 쓰기 어려운 물이 용암해수다. 그 제주의 천혜자연이 준 선물인 용암해수는 제주 동부지역의 화산암반층에 의해 정화와 여과 과정을 거쳐 희귀 미네랄을 다량 함양하고 있다. 그 뿐만 아니라 자연 여과 과정으로 중금속과 미세 플라스틱 걱정이 없다고 했다.

 

귀가 솔깃했다. 신 대표는 두부 등 식자재를 다루기 시작하면서 오래 전부터 '건강한 소금'에 깊은 관심을 갖고 전국 각지의 소금을 조사하고 있었다. 새로운 사업과 돈벌이를 넘어서 국민건강에 도움이 되고 싶다는 취지였다. 사람의 혈액 0.9%는 염분이고, 이는 인체 생리기능을 유지하는 데 필수 성분이다. 사람들은 평생 일정량의 소금을 매일매일 섭취해야 건강을 유지한다. 그 소금 자체도 깨끗하고 건강하다면 더할나위 없다고 생각했다. 

 

고체 소금은 해수를 증발시켜 만든 것이다. 그렇다면 청정한 제주 해수로 만든 소금보다 더 건강하고 훌륭한 소금은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섭취할 수 있도록 탈염 작업을 거친 용암해수 농축수가 매일 500t씩 버려진다는 얘기도 마음에 걸렸다. 제주 자연이 준, 전국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보물을 활용할 방법이 없어 버릴 수 밖에 없다는 게 말이 되는가.

 

신 대표는 "내가 하겠다. 제주 용암해수로 한국의 소금문화를 바꾸겠다"고 선언했다. 62세, 이제는 미래세대를 응원하겠다며 사업 일선에서 물러난 지 3년 만이었다. 그렇게 신 대표는 2021년 제주 용암해수센터에 '좋은친구들'이라는 간판을 달고 입주했다.

 

제주 용암해수는 별도의 법 없이 '먹는물 관리법'에 염지하수로 분류된다. 신 대표는 이를 활용한 스프레이형 액상소금을 처음으로 기획했다. 첫 스타트를 끊는 셈이니 난관이야 예상했지만 이렇게까지 힘들 줄 몰랐다. 식품이니 팔기 전에 품목허가를 받아야 하는데, 식약처 입장에서 스프레이형 액상소금은 아주 생소한 개념이었다.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 소금은 곧 비닐봉지에 든 고체 소금이었다. 

 

'지금 바닷물을 팔겠다는 거냐', '기존 사례가 없어 곤란하다', '이게 뭔지 모르겠다. 조금이라도 비슷한 기존 타사 제품이라도 들고와 달라' ... 스프레이형 액상소금의 경우 몇 차례나 식약처의 문을 두드렸지만 식약처는 그때마다 난색을 표했다. 스프레이형 액상소금이 식약처의 허가를 받기까지는 1년 걸렸다. 가글, 치약, 물에 타 먹는 소금 등 제주 용암해수를 활용한 다른 제품 또한 허가를 받기까지 짧게는 6개월, 길게는 1년 이상 걸렸다. 

 

품목허가는 받았지만 제품 생산은 또다른 문제였다. 액상소금이라지만 해수를 그대로 쓰는 것이 아니라 농축과정을 반드시 거친다. 대상은 기계를 부식시키는 '소금'이었고, 일반 기계는 해수를 견뎌내질 못했다. 생산과정에서 제주와 뭍을 오가는 물류비도 무시할 수 없었다. 

 

 

제주의 보물은 나라의 보물 ... 세계서 유일한 자연이 준 선물

 

그때, 또다른 귀인이 손을 내밀었다. 예전 식자재 도매를 했을 때 공장에 세를 얻으면서 인연을 맺은 분이었다. 평범한 교회의 집사로서 소리소문없이 봉사활동을 다니고, 우리나라에 공부하러 온 동남아시아 유학생들을 뒷바라지하는 한편 자신이 직접 키운 과일을 주위에 나눠주는 등 이웃을 돕는, 그야말로 성인(聖人)의 표본으로 느꼈다. 그 분을 접하다보면 스스로 겸허해졌고, 신 대표가 '나도 저렇게 살아야지'라며 이웃에게 도움을 줄 방법을 찾기 시작한 계기가 된 귀인이기도 했다.

 

귀인은 신 대표의 "귀한 제주 용암해수로 국민 건강증진에 이바지하고 싶다"는 말을 듣곤 '좋은 일'이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선뜻 40억원이라는 거금으로 제주 용암해수를 감당할 수 있는 1600평 규모의 큰 공장을 김포에 지어 그를 밀어주었다. 

 

감사함과 함께 사명감이 샘솟았다. 어쩌면 몇 년간 적자만 낼 지 모른다. 그 위험을 무릅쓰고 받은 신뢰는 책임으로 갚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소금은 사람에게 유익한, 없어서는 안될 존재로서 비유한다. 곧 신의 선물이다. 세계 어디에도 없는 제주 만의 선물을 전 국민을 넘어서 세계 모두에게 알려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직접 현장을 다녀보니 난관에 다시 봉착했다. 사막의 축복인 오아시스가 아무도 모르게 숨겨져있듯, 제주 용암해수의 정체를 아는 사람이 드물었다. 잘 모르니 받아들이기 꺼려하는 듯 했다. 소금을 쓰는 식품 가공업체를 만나거나 하면 "그게 뭐예요?"라고 되묻는 말이 빠짐없이 돌아왔다. 식약처도 그게 대체 뭐냐고 물었는데 오죽하겠는가. 긴긴 설명 끝에 "일단 줄테니까 한 번이라도 테스트처럼 써 봐 달라"고 밀어붙였다. 

 

반전이 생겼다. "소금 하나 바꿨다고 김치가 이렇게 맛있어질줄 몰랐다"는 연락을 받았을 때는 뛸 듯이 기뻤다. "확실히 일반 소금하고 다르지요?"라고 뿌듯해하기도 했다. 그 기세를 업고 현재는 김치 및 절임류 식품공장, 도내 족발회사 등 소금을 쓰는 국내 여러 업체에 제주 용암해수로 만든 소금을 납품하고 있다. 치약, 샴푸, 과자, 음료 등 제품 범위도 넓혔다. 

 

그래도 갈 길은 멀다. 식품회사가 아닌, 생활에서 소금을 쓰는 일반 국민들은 '제주 용암해수 소금'의 특성과 장점은 고사하고 용암해수의 정체도 아직 잘 모른다. 그래서 신 대표는 최근 제주 용암해수를 국민들에게 알리는 데 힘을 쏟고 있다. 이렇게 좋은 것을 모두 함께 나누고 싶었다. 공장은 김포에 있지만, 미팅을 할 때는 업체를 꼭 제주로 초대하려고 한다. 어떻게든 '제주 용암해수'라는 눈도장을 찍기 위해서다. 이는 쭉 서울에서 가족과 함께 살았던 신 대표가 64세라는 적지 않은 나이에 홀로 제주에 내려와 사는 이유다. 

 

제주만의 특색을 담은 제품이니 '오직, 제주에서만'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달고 제주도내 기념품 가게에 제품들을 배치해 관광객과 만나게 한다. '제주에는 이런 게 있구나'하고 자연스레 알리기 위해서다. 전국 각지의 국민들은 물론 세계인이 몰리는 부천영화제에서도 제주 용암해수 가글 CF를 내보내기도 했다. 

 

신 대표의 1차 목표는 국내 소금문화의 변혁이다. 모두들 '천일염', '신안'만 생각하지, 제주의 깨끗한 자연을 그대로 담은 소금도 있다는 걸 왜 모를까? 또, 왜 소금은 천일염처럼 고체여야만 할까? 제주를 품은 깨끗한 해수를 원형에 가깝게 쓸 수 있다면 신체건강에 더 좋을텐데. 

 

이에 더해 신 대표는 제주 용암해수 소금의 세계화까지 노리고 있다. 한국에서 제일 깨끗하고 좋은 소금으로 세계 모든 사람이 건강해졌으면 좋겠다. 이를 위해 수출에도 노력하고 있다. 다만, 국내에선 액상소금이 수출된 적 없다보니 물품통관을 위한 품목분류 코드 허가가 1년째 지연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또 행운이 오는걸까? 후쿠시마 오염수 파문이 불거지는 요즘 천일염 사재기까지 벌어진다고 하더니 그 불똥(?)이 '용암해수 소금'으로까지 튀고 있다. 전례 없이 바빠지는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신 대표는 "제주 용암해수는 제주의 보물을 떠나서 나라의 보물이며 세계에 단 하나 밖에 없는 자연의 선물이다. 제주에는 용암해수 뿐만 아니라 잘 알려지지 않은 보물이 참 많다. 이런 특별한 선물을 모두들 잘 모르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한다.

 

그의 첨언 하나 더. "제주는 천혜의 자연을 품은 섬이기도 하지만 사람과 사람이 오가는 섬이라고도 생각한다. 인구가 70만명인데 매해 1300만명의 방문객이 오간다는 것은 그만큼 특별한 일이다. 사람과 사람이 만날 때는 반드시 새로운 가능성이 태어난다. 세계의 보물인 제주를 우리 함께 사랑하고 아끼자." [제이누리=이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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