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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제주人] <제주어에 담긴 제주다움> 책 낸 김완병 제주도 민속자연사박물관 학예연구사
"다친 새가 다시 날 수 있도록 치료해주는 것처럼 제주어도 다시 날 수 있도록 돌봄 필요"

 

<제주어퀴즈> 다음중 신체부위를 일컫는 제주어가 아닌 것은?(정답은 기사 말미에 있습니다)

①배떼기 ②둑지 ③이멩이 ④양지 ⑤귄닥사니

 

‘제주 새 박사’라면 단번에 떠오르는 이가 있다. 40여년간 제주 전역을 뛰어다니며 야생 조류를 연구하면서 서식 환경이 갈수록 악화하는 제주 생태계 현장을 고발해왔다. 주요 저서도 ‘제주조류도감’ 등 새 분야다. 간간이 내놓는 칼럼도 제주 생태자원에 관한 것이었다. 

 

그런데 그가 이번에 색다른 책을 냈다. 제주어 문제집이다. <제주어에 담긴 제주다움>이라니, 제주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면 호기심이 슬쩍 생긴다. 

 

김완병(55) 제주도 민속자연사박물관 학예연구사. 그가 ‘새들의 천국’ 제주에서 점점 떠나는 새들과 제주어를 붙잡기 위한 특별한 기행을 나섰다.

 

40여년 외길 인생  '새 박사', 이제는 제주어까지 지킨다

 

제주시 한경면 고산리에서 태어난 그는 여느 제주아이들처럼 바다와 오름 등 제주 자연을 쏘다니며 자랐다. 마을 앞 바다에서 낚싯대를 드리워 해산물을 낚았으며, 오름에 올라 꿩이나 지네를 잡기도 했다. 자연에 푹 빠져 살던 소년은 ‘시내 학교’인 오현고에 진학하면서 일종의 문화충격을 받았다. 당연히 옆에 있겠거니 생각했던 넓은 자연과 생태는 고향인 ‘촌’을 벗어나니 찾아보기 드문 것이었다.

 

촌에서 온 소년은 처음 본 세상에 곧 적응했다. 고등학생 때 처음으로 잡은 목표는 사범대학에 가서 교사가 되는 것이었다. 이과였던 그는 별다른 선택지가 없어 제주대 과학교육과에 진학했다. 그때만해도 꼭 교사가 될 줄만 알았다. 하지만 그로부터 딱 1년 후, 그는 평생의 업(業)이 될 가볍고도 중차대한 선택을 하게 된다.

 

‘물리교육’과 ‘생물교육’ 중 생물교육을 골랐던 건 단순히 물리학이 어려워서였다. 그렇게 생물 쪽으로 왔더니 이번엔 여기서 또 전문분야를 고르란다. 그는 당시만 해도 적성을 잘 몰랐다. 그저 잘 지냈던 선배를 따라 함께 조류 현장조사에 나갔을 뿐이었다.

 

 

하지만 눈앞에서 처음으로 새를 접한 순간, 그 보드라운 깃털과 날카로운 부리에 한껏 빠져들고 말았다. 10여년 만에 다시 제주의 산, 들, 바다를 누비기 시작했다. 까맣게 잊고 있었던 소년시절로 돌아온 것 같았다.

 

평일이나 주말 없이 새벽부터 밤까지 제주시 구좌읍 하도양어장, 한경면 용수저수지 등지에서 철새를 관찰했다. 밤늦게까지 자료를 정리하는 것도 즐거웠다. 제주를 찾는 새의 관찰기록은 전쟁이 나더라도 누군가는 해야 한다는 비장한 의무감도 들었다.

 

슬슬 주변에서 “저놈은 새 밖에 모른다”는 말을 하기 시작했다. 졸업하고도 새 연구를 계속하고 싶어서 제주대 생물교육과 조교로 3년 지냈다. 석사 학위를 받고 제주도 민속자연사박물관에 취직하고 나서도 새에 대한 사랑은 계속 됐다. 마침내 2010년, 흑로의 번식생태에 관한 연구로 이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제주에서 이뤄지는 학술조사나 연구보고서 발간에 새 분야 전문가가 필요하면 모두가 그를 찾았다. 명실상부한 ‘제주대표 새 박사’가 된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그가 제주어를 지키기로 마음먹게 됐을까?

 

 

제주도, 새들의 산(島)에서 사람 다니는 길(道)이 되다

 

그는 “제주 새를 쫒아다니다 보면 제주를 사랑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현장조사를 나가면 새 말고도 제주의 식물, 곤충 등 자연생태와 문화자원이 눈에 들어온다. 모두 새처럼 자연의 일부라서 그렇다. 육지부와는 다른 생태를 살피러 온 뭍의 연구원들과 만나면 제주에 사는 생물들만의 독특한 습성에 정이 더 깊어졌다. 새들도 ‘제주다움’이 있는데 제주사람이나 문화 등 제주의 모든 현상에도 ‘제주다움’이 있을 것이다. 새에 대한 기록은 어느 순간부터 제주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담은 기록으로 확대됐다.

 

그가 광치기 해변 인근 사구에서 흰물떼새를 관측하고 있을 때였다. 흰물떼새는 모래밭에 둥지를 틀고 알을 낳는다. 하필이면 올레길 탐방로 바로 옆이었을 뿐이다. 장소가 장소다 보니 오가는 관광객이 많았다. 사람들이 너무 가까이 다가왔다고 판단한 어미새가 잠깐 둥지를 떠났다. 관광객들은 제주의 아름다운 하늘과 바다에 감탄하느라 발밑을 신경쓰지 못했다. 한 순간이었다. 둥지가 밟혔고, 알이 깨졌다. 이게 바로 제주의 현주소인가 싶었다.

 

지금의 제주도(濟州道)는 ‘길 도’를 쓰지만 과거 ‘섬 도(島)’를 썼던 때도 있었다. 새(鳥)들의 산(山)이 사람이 다니는 길로 주인공이 바뀐 셈이다. 하지만 과연 새들이 떠난 환경에 사람이 잘 살아갈 수 있을까? 알이 짓밟힌 어미새처럼 둥지를 떠나는 새들을 보노라면 새들이 직면한 위험이 곧 제주사람에게도 들이닥칠 수 있다는 두려움이 엄습했다.

 

제주를 지켜야 한다. 그러려면 우선 사람들의 관심대상에 올려놓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새들은 의외로 사람들의 시선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채 살아간다. 하지만 눈에 잘 띄지 않는다는 이유로 생명조차 존중받지 못한다. 김 학예사는 박물관의 생태교육 프로그램 참가자들에게서 제주를 지켜낼 수 있는 힌트를 얻었다.

 

참가자들은 뭍에서 온 사람이나 제주에서 어린시절을 보내지 않은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어렵게 제주에 왔으니까 서울이나 경기도 등 일반적인 동식물센터에는 없는 ‘제주다운 특별한 무언가’를 원하는 눈치였다. 김 학예사는 시민강좌나 초등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현장학습에 나설 때 제주어를 조금씩 말하기 시작했다. “‘직박구리’는 제주어로 ‘비추’라고 한다”든가, 새 이름을 제주어로 알려주면 다들 신기하다며 호기심을 보였다.

 

 

떠나는 새, 자취를 감춘 제주어 ... 다시 돌아오게 하려면?

 

제주에 대한 관심은 곧 제주어에 대한 관심이 됐고, 결국엔 제주어를 쓰는 사람에 대한 호기심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제주사람이라도 평상시 제주어를 곧 잘 쓰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때 제주어는 학교에서도 훈육과 제재 대상이었다. 제주사람들은 학업과 직장을 위해 뭍으로 떠났고, 뭍에서 온 외지사람들이 길든 짧든 제주를 채워갔다. 제주어는 그렇게 몇 십년간 서서히 자취가 흐려졌다.

 

언어는 그 언어를 쓰는 사람들이 몇 세대나 걸쳐 쌓아올린 문화유산이다. 한 언어의 소멸은 생물학적으로 표현하자면 그 민족의 ‘멸종’을 뜻한다. 제주어는 이미 소멸위기 언어로 지정됐다. 제주 조류 전문가로서, 이학 박사로서 제주 생물종을 지키려고 애쓴다면, 제주사람으로서 제주어를 보전하기 위해 움직여야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떠난 새를 돌아오게 만드려면 새가 다시 올 마음이 들게끔 환경을 갖춰줘야 한다. 자취를 감추고 있는 제주어에게는 돌아올 자리가 필요했다. 우선 제주어를 많이 써야한다고 생각했다. 제주사람들조차 제주어를 안 쓰는데 어떻게 보전이 되겠는가.

 

김 박사는 제주어를 되살리기 위한 실천의 한 방법으로 근무하는 박물관에서 초등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촐람생이(장난꾸러기)들의 숨비소리 도전’을 기획하기도 했다. 제주전통문화와 제주 자연생태를 체험하고 느낀 감정을 제주어 동요로 만드는 과정이었다. 아이들의 감정에 딱 맞는 제주어를 찾고 표현할 수 있다는 게 참 좋았다.

 

하지만 그런 제주어의 힘을 기르는 과정도 코로나19가 터지면서 ‘올 스톱’됐다. 비대면의 시대가 왔고, 사람들은 실내인 박물관에 오지 않았다. 시민들과 함께하는 현장학습도 멈추면서 새와 제주어 이야기를 더 이상 전달할 수 없었다. 어떻게서든 박물관과 제주어의 소식을 전하고 싶었다.

 

돌파구는 가까이서 나왔다. SNS라는 비대면 공감 시스템이 있었다. 마침 ‘어떻게 하면 더 쉽고 친근하게 제주어를 접할 수 있을까’ 고민하던 때였다. 일방적인 가르침 말고, 너도 나도 제주어를 말하면서 떠들 수 있는 장(場)을 원했다. 누구나 볼 수 있고 댓글을 달 수 있는 SNS가 제격이었다. 김 학예사의 ‘제주어 퀴즈’는 코로나19가 막 시작된 2019년 태어났다.

 

처음에는 가벼운 마음으로 이틀에 한 번, 사흘에 한 번 퀴즈를 냈다. 새의 습성을 제주 이야기에 빗대면서 제주어 퀴즈는 제주의 생태, 역사, 문화 등으로 범위가 확대됐다. ‘왜 오늘은 퀴즈를 안 내냐’며 점차 기다리는 사람도 많아졌다.

 

김 학예사는 “퀴즈를 쉽고 재밌게 표현하려고 하다보니 제주 자연과 생태가 노는 세상이었던 어린시절의 추억이 많이 들어갔다. ‘그땐 그랬어’라며 우리 세대들이 많이 공감해준 것 같다”면서 “이래서 어린 시절의 기억이 중요하다. 아이들이 성장하면서 제주어와 제주문화를 많이 접해보고, 즐겁고 좋은 추억으로 남아야 후세대에도 제주어가 전승될 것”이라고 말했다.

 

제주어 퀴즈가 인기를 얻으면서 김 학예사의 일상도 조금 달라졌다. 퀴즈를 내기 위해 제주어 공부를 시작한 것이다. 혼자만 ‘이게 정답’이라고 우길 수 없는 노릇이니 기존에 있던 제주어에 대한 책이란 책은 다 섭렵했다. 퀴즈에 첨부할 예시 사진을 찍기 위해 더 바쁘게 돌아다녔다. 모임이나 술자리, 교육강연에 갈 때는 꼭 메모지를 챙겼다. 사람들과 대화하다보면 제주어 퀴즈에 대한 아이디어가 술술 나왔다.

 

수많은 이들의 소통과 호응을 거친 제주어 퀴즈는 <제주어에 담긴 제주다움>이라는 책으로 다시 태어났다. <제주어에 담긴 제주다움>은 수정과 삭제를 거쳐 567문제로 끝을 맺는다. 제주어의 보전을 위해서는 50, 60, 70대들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의미다.

 

김 학예사는 “10~30대 젊은 세대를 두고 ‘제주 살면서 제주어를 모른다’고 지적하지 말고, 제주어에 좀 더 익숙한 우리 세대부터 많이 쓰고 많이 알려줘야 한다”면서 “50~70대들이 경험했던 어린 시절은 제주의 유산이라는 것을 스스로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제주어에 담긴 제주다움>은 제주와 제주어에 대한 진심이 오간 흔적들”이라면서 “제주어로 된 콘텐츠가 하나 나오면 기존에 있던 제주 콘텐츠도 재조명받는다. 언어학자 등 전문가들만 제주와 제주어를 지킬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진심과 정성만 있다면 누구나 제주를 지키는 데 기여할 수 있다. 그런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 학예사에 따르면 새는 3번 태어난다. 알로서 처음 태어나고, 어미의 정성으로 부화한다. 사연 깊은 새는 생명의 끝에서 박물관으로 와 박제된다. 제주어는 현재 어디쯤 있을까? 새가 날지 못한다고 생명이 다한 것은 아니다. 제주어가 잘 쓰이지 않는다고 아예 사라진 것은 아니다. 새가 다시 날 수 있도록 치료하고 기다려주는 것처럼, 제주어도 다시 날 수 있도록 우리가 보살펴줘야 한다. 제주 자연으로부터 받은 은혜를 이제는 돌려줄 때다. [제이누리=이주영 기자]

 

※ 정답은 ⑤ 귄닥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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