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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인터넷신문기자협회 공동기획]②한국의 세계기록유산과 4.3기록물 등재 추진 방향

평화롭던 제주 섬에 불어닥친 4.3의 광풍이 제주 전역을 휩쓴 지 75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그간 4.3의 정의로운 해결을 다양한 움직임이 있었다. 진상 규명에 이어 국가 보상금 지급, 재심 재판을 통해 현재까지 1191여명이 무죄를 선고받고 명예를 회복했다. 이제 제주4.3은 화해와 상생으로 국가폭력을 극복, 전 세계 과거사 사건 중 모범적인 해결 사례로 꼽히고 있다. 그럼에도 '완전한 해결'까지는 갈 길이 멀다. 아직도 의도를 알 수 없는 명예훼손과 역사왜곡 발언이 무분별하게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이에 75년 통한의 세월을 관통하는 4.3기록물의 중요성도 커지고 있다. 국가폭력의 직접적인 기록과 함께 진상규명과 화해, 국가의 보상으로 이어진 과정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제주도인터넷신문기자협회(미디어제주·제이누리·제주의소리·제주투데이·헤드라인제주)는 제주4·3기념사업위원회와 공동으로 75년 간의 기록과 역사에서 제주4.3이 세계에 전하는 진정한 평화를 짚어본다. /편집자주

 

 

우리나라의 기록물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처음 등재된 것은 1997년이다. 그 해 ‘훈민정음 해례본’과 ‘조선왕조실록’이 그 중요성과 영향력을 인정받아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될 수 있었다. 

 

이 두 기록물이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제될 수 있었던 것은 기록물이 가지는 전세계적 중요성과 독창성, 대체 불가능성을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특히 훈민정음의 경우는 그 이전까지 한자로는 쓸 수 없었던 우리나라의 말을 완벽하게 표기할 수 있게 만들었다는 점에서 그 당시 조선 문자체계의 혁명을 불러왔다. 또 그 당시 의사소통의 한계를 극복하게 만들어주는데 이바지하기도 했다. 여기서 더 나아가 민족문화의 발달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 훈민정음의 이와 같은 영향력은 장기적으로 유네스코의 ‘문맹 퇴치 운동’에 기여하기도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훈민정음 해례본과 함께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조선왕조실록은 전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긴 기간인 472년간의 기록물이라는 점과, 6400만자의 글로 작성된 다양하고 풍부한 내용을 담고 있는 세계적인 역사서라는 점, 특히 조선의 정치·외교·사회·경제·학예·종교는 물론 천문과 지리 등 과학적 사실과 일반 민중의 생활기록 내용까지 종합하고 있다는 점, 신빙성이 높다는 점 등이 인정을 받았다. 

 

이외에 조선만이 아니라 그 당시 동아시아 역사 연구에 있어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사료라는 점도 전세계가 함께 지켜나가야할 기록유산으로 등재되는데 영향을 미쳤다. 

 

이 두 편의 기록물을 시작으로, 이후 국내의 중요한 기록물이 연이어 그 중요성을 인정받아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기 시작했다. 2001년에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본인 ‘직지심체요절’과 290여년에 걸쳐 국정 전반이 기록된 ‘승정원 일기’가 세계기록유산 목록에 이름을 올렸다. 

 

2007년에는 ‘해인사 대장견판 및 제경판’과 ‘조선왕조의궤’가, 2009년에는 ‘동의보감’이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됐다. 이어 2011년에 조선 임금의 일기인 ‘일성록’과 국내는 물론 세계 민주화 운동에 큰 영향을 미친 ‘5.18 민주화운동 기록물’이 세계적 중요성을 인정받았다. 

 

이어 2013년 ‘난중일기’와 ‘새마을운동 기록물’, 2015년 ‘한국의 유교책판’과 ‘KBS 특별생방송 이산가족을 찾습니다 기록물’, 2017년 ‘조선왕실 어보 및 어책’과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조선통신사 기록물’ 등이 등재됐다. 

 

이렇듯 국내 기록물 중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것은 모두 16건이다. 이는 세계에서 네 번째로 많고,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는 가장 많은 수준이다. 

 

 

이처럼 다양한 국내의 세계기록유산 중 제주4.3 기록물의 세계기록유산 등재 추진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은 2011년 등재가 이뤄진 5.18 민주화운동 기록물과 2017년 등재된 국채보상운동 기록물이다. 

 

이 중 5.18 기록물이 4.3 기록물의 세계기록유산 등재 추진에 영향을 주게 된 것은 5.18 기록물이 그 이전까지의 기록물들과는 다른 특이점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먼저 5.18 이전 국내에서 등재가 이뤄진 유산은 모두 서책 혹은 목판 등이다. 하지만 5.18 기록물은 그 종류부터 다양하다.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5.18 기록물은 5.18 민주화운동의 시작과 진행과정, 그 이후 진상규명 및 보상 등과 관련해 나온 정부와 국회, 언론, 시민단체 등의 자료를 망라한다. 여기에는 각종 성명서와 선언문, 기자들의 취재수첩, 일기, 재판기록 등 문자화된 기록물만이 아니라 온갖 종류의 사진과 영상 등도 포함된다. 국회 청문회 자료와 영상도 들어가 있다. 

 

4.3 역시 이와 같은 5.18의 선례를 따라 가고 있다. 제주4.3당시의 각종 기록은 물론 그 이후 진상규명 자료와 화해 및 상생 관련 자료 등 모두 3만303건의 자료에 대한 세계기록유산 등재 추진이 이뤄지고 있는 상황이다. 

 

4.3기록물 등재 추진이 5.18기록물에서 받은 또다른 영향은 5.18이 끼친 파급력이다. 

 

5.18기록물이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될 수 있었던 것은 5.18 및 그 기록물이 국내 민주화에 중추적인 역할을 했을 뿐만 아니라 1980년대 후반 세계 각지의 민주화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기 때문이다. 아울러 진상조사에서 보상까지 이뤄지는 일련의 과정과 그 기록물이 전세계 인권 신장에 미친 긍정적 영향 역시 기록유산 등재 주요 요소로 작용했다. 

 

4.3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추진위원회는 5.18 기록물의 이 영향력에 주목했다. 4.3과 그 기록물 역시 5.18 못지 않게 인권 신장 등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요소들이 있기 때문이다. 4.3은 나아가 국가폭력 등으로 고통받고 있는 지역에 ‘화해’와 ‘상생’을 통한 아픔의 극복을 보여주는 모범적 요소로 작용할 수도 있다. 

 

이 때문에 4.3기록물 등재추진위는 5.18기록물의 선례를 참고로 인권 신장과 과거사 문제 해결 과정의 긍정적 영향력을 강조하는 방향에 집중하고 있다. 

 

4.3이 참고 하고 있는 또다른 기록 유산은 국채보상운동 기록물이다. 이는 국채보상운동이 전세계에서도 손에 꼽을 정도의 규모를 가진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 운동이기 때문이다. 

 

국채보상운동은 1906년 대한제국의 대일 국채가 1300만원까지 불어나자 국민 차원에서 자발적으로 “이 국채를 갚아 경제 자립을 실현하고 국권을 회복하자”며 일어난 운동이었다. 즉, 국가가 아닌 국민 차원에서 시작된 ‘아래로부터의 운동’이었다. 

 

당시 국민의 25% 정도가 이 운동에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이는 외신의 주목도 받았다. 나아가 다른 피식민지국가에도 자극을 주었다. 이와 관련된 기록물은 국가적 위기에 자발적으로 대응하는 국민의 진면목을 보여준다는 점과 책임의식을 보여주는다는 점에서 그 중요성을 인정받았다. 

 

4.3기록물 등재추진위 역시 이 국채보상운동이 ‘아래로부터의 운동’이라는 점에 주목했다.  4.3 역시 그 해결 과정에서 국가나 가해자가 먼저 나선 것이 아닌, 피해자와 제주도민 사회가 자발적으로 나선 ‘아래로부터의 운동’이었다. 

 

4.3기록물 등재추진위는 ‘인권 신장’과 ‘화해 및 상생’에 더해 이 ‘아래로부터의 운동’ 등이 세계적으로 중요한 영향력을 줄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할 예정이다. 이외에도 냉전 시기 초창기에 벌어졌던 강대국 사이의 다툼이 한 지역의 마을까지 침투해 그 지역을 황폐화 시키는 과정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그 역사적 중요성 역시 부각될 것으로 보인다. 

 

4.3기록물 등재추진위 관계자는 “등재 과정에서는 아무래도 세계적인 중요도를 따져보게 된다”며 “냉전과 관련된 역사적 기록물이라는 점 이외에도 화해와 상생 운동으로 나아가면서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모습과 자발적 해결 의지를 통해 진상규명을 이루는 모습이 충분히 그런 중요성을 갖고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미디어제주=고원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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