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일 오후 제주4·3평화교육센터 대강당에서 열린 제주4·3 희생자 신원확인 보고회에서 참석자들이 헌화와 분향을 하고 있다. [제주도 제공]](http://www.jnuri.net/data/photos/20230209/art_16775717686817_52faa4.jpg)
"75년 만에 처음 아버지라고 부르려니…."
생이별을 했던 아버지 고(故) 강창근씨가 75년이 흘러 유해로나마 딸의 품으로 돌아왔다.
28일 오후 제주4·3평화공원 평화교육센터 대강당에서 열린 제주4·3 희생자 신원 확인 보고회에서 강씨의 딸 술생(77)씨는 겨우겨우 나오는 목소리로 준비해 온 편지를 읽어내렸다.
아버지 강씨는 1948년 8월 어머니 심부름을 하러 나갔다 행방불명됐다. 몇 달이 지나서야 주정공장에 감금됐다 경찰서로 이송됐다는 소문이 들려 왔다. 그러나 생사는 확인되지 않았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강술생씨는 "아버지는 18살에 결혼해 19살 때 행방불명됐다"며 "내가 갓난아기 때 아버지가 행방불명되면서 평생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불러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이어 "아버지를 영원히 볼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이렇게 꿈에 그리던 아버지가 돌아와 믿을 수가 없다"며 "내가 죽기 전 생각지도 못하게 아버지 유해를 찾아 평화공원에 모실 수 있게 돼 감사하다"고 전했다.
이날 영면에 든 희생자는 김칠규(사망 당시 34세)·강창근(사망 당시 20세)·김두옥(사망 당시 26세)씨 등 3명이다.
희생자 김칠규씨는 1948년 12월 30일 제주읍 이호리 집을 나갔다가 토벌대에 잡혀간 후 행방불명됐다. 불법 군법회의 수형인 명부에서 이름이 확인된 김씨는 1949년 6월 28일 옛 정뜨르비행장(현 제주국제공항)에서 사형이 집행된 것으로 추정된다.
희생자 김두옥씨는 1948년 11월 중순께 살던 마을이 토벌대에 공습을 받아 지낼 곳이 없자 야산에서 숨어지냈다. 1948년 12월께 일가족이 희생된 현장에서 시신을 수습하고 부친, 동생과 화순리에서 살던 중 누군가 '중산간에서 내려왔다'고 신고하는 바람에 군경에 끌려갔다.
1949년 7월 옛 정뜨르비행장에서 총살당했다는 이야기가 들렸다. 당시 부친이 현장을 확인했지만 시신은 찾을 수 없었다.
이들 유해는 모두 2008년 제주국제공항 남북활주로에서 발견됐다.
하지만 유해 발굴 이후에도 10년 가까이 유족을 찾지 못해 신원을 확인하지 못하다가 지난해 추가로 채혈을 한 유족 279명의 DNA와 대조한 끝에 신원이 확인됐다.
제주도와 재단은 2006년부터 제주시 화북천을 시작으로 2007~2009년 제주국제공항, 2021년 표선면 가시리, 서귀포시 상예동 등 도내 곳곳에서 제주4·3 희생자 유해 411구를 발굴했다. 이 중 신원이 확인된 희생자는 141명이다. [제이누리=양은희 기자·연합뉴스]
![28일 오후 제주4·3평화교육센터 대강당에서 열린 제주4·3 희생자 신원확인 보고회에서 참석자들이 헌화와 분향을 하고 있다. [제주도 제공]](http://www.jnuri.net/data/photos/20230209/art_16775722391171_e09e2e.jpg)
![28일 오후 제주4·3평화교육센터 대강당에서 제주4·3 희생자 신원확인 보고회가 열렸다. [제주도 제공]](http://www.jnuri.net/data/photos/20230209/art_16775722673457_4f1258.jpg)
![28일 오후 제주4·3평화교육센터 대강당에서 제주4·3 희생자 신원확인 보고회가 열렸다. [제주도 제공]](http://www.jnuri.net/data/photos/20230209/art_16775724830693_afb753.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