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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제주人] 전자공학도, 한의사 이어 사진작가로 인생 3막 연 김수오씨
제주 오름.들판 누비며 자연과 호흡 ... "우리가 지켜야 할 제주는 이렇게 아름답습니다"

삶은 속도가 아닌 방향이라고 한다. 나아갈 방향만 정했다면 시간을 들여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며 걸어도 괜찮다는 말이다. 무작정 앞만 보고 뛰어가는 것보다 오히려 좋다. 무심코 발치에 놓인 꽃 한 송이 짓밟을 일 없으니.

 

정신없이 돌아가는 도심에서 제주로 돌아와 이웃은 물론 자연과 함께 호흡하는 이가 있다.

 

사람과 제주를 품는 김수오(57) 사진작가.

 

100세 시대에서는 30세까지를 1막, 60세 까지를 2막, 그 이후를 3막이라고 하던가. 김 작가는 전자공학도에서 한의사로, 또 사진작가로 3개의 지평선을 뛰어넘었다. 50대 후반을 향하는 그는 비교적 일찍 인생 3막을 시작한 편에 속한다.

 

현 제주4.3평화공원 인근의 명도암에서 태어난 김 작가는 제주의 하늘과 바다를 보며 자랐다. 자연스레 자연의 이치에 관심이 갔다고 했다. 그래서 대입 원서도 자연의 이치를 공부하는 물리학과로 써내려고 했다. 공부는 동네에서 알아주는 수재였다.

 

하지만 원서를 내기 전날, 제삿집에 갔다가 서울에서 내려온 친척을 만났다. 인사를 나누다 “물리학과로 가려고 한다”고 하니 정색을 하시며 부모님까지 부르셨다. 물리학과는 서울의 여유있는 부잣집에서 보내는 것이지 제주의 보통 집에서는 형편상 안 된다고 하셨다. 물리학에 관심이 있고, 집안에도 부담을 안 주려면 전자공학과를 가는 편이 좋다고 설득하셨다.

 

그렇게 원서를 전자공학과로 바꿔서 냈다. 서울대 전자공학과다. 그의 성실함은 뜻하지 않던 분야에서도 빛을 발했다. 졸업 후 컴퓨터 개발부 등 최첨단 분야의 대기업 연구원으로서 6년간 일했다. 실용적이긴 했지만 아주 즐겁지는 않았다. 연구생활에 집중하다보니 위장병이나 비염 등 잔병을 달고 살았다. 그가 한의학의 세계에 매료된 경위다.

 

한의학에서는 사람의 몸도 자연 속 한 부분으로 본다. 자연의 이치대로 병을 돌보고, 건강하게 돌려놓는다. 참 신기했다. 자연 속 이치. 친척 분의 한 마디에 의해 바뀌었던 인생도 ‘원래 있어야 할’ 방향으로 돌려놓고 싶었다.

 

지금처럼 실용적인 것을 만들어 팔고 성과를 내는 삶은 원하는 방향이 아니었다. 고민 끝에 고향 제주처럼 이웃과 이웃이 정을 나누는 삶이 내 길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한의사로서의 인생은 그런 삶의 방식과 맞닿았다. 염려하는 부모님께는 딱 한 말씀 올렸다.

 

“아버님,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가 연구원으로서는 고향에 내려올 수 없지만, 한의사가 되면 제주로 올 수 있지 않습니까.”

 

그는 연구원으로 근무하면서 다시 대입시험을 치렀다. 놀랍게도 그해 모교에서 수능 수석자리를 꿰찼다. 경희대 한의학과에 진학, 박사학위까지 받았다. 뭍에서 한의원을 개원하고 진료와 대학강의를 병행하다가 십여년만에 고향 제주섬으로 돌아왔다. 만 47세. 전자공학도로서 제주를 떠난지 딱 28년 만이었다.

 

김 작가가 귀향한 2012년은 제주 해군기지 공사 강행에 따른 갈등과 긴장이 최고조에 이를 때였다. 2012년 3월7일, 서귀포시 강정마을 해안 구럼비 바위가 폭파됐다. 

 

폭파 저지 과정과 이후 공사강행 과정에서 강정마을 주민들과 성직자 및 곳곳에서 모여든 시민들이 공사차량의 구럼비 매몰현장 진입을 막다가 다치고 연행되는 날이 계속됐다.

 

제주시 노형동에 자리잡은 그의 한의원에도 공사 차량을 막다가 다친 강정마을 주민들이 치료받으러 오곤 했다. 몸 상태가 채 회복되지 않았지만 마을을 지키기 위해 공사를 막아야 하니 신제주까지 치료를 받으러 올 시간이 안 된다고 했다. “그렇다면 제가 강정마을로 가서 침 치료를 해드리겠습니다.” 진심에서 우러나온 약속이었다.

 

그는 약속한 대로 한의원 진료를 마치면 차를 몰고 강정마을로 갔다. 주민들은 천막에서 노숙까지 불사하며 24시간 공사를 막고 있었다. 그분들의 아픈 몸을 치료하다보면 이게 바로 제주의 아픔인가 싶었다. 밤이 저물고 천막 앞에서 두런두런 얘기를 나눌 때면 강정천이 흐르는 소리가 제주의 눈물인가 싶었다.

 

 

늘 자정을 넘기고 제주시로 넘어왔다. 낮 진료의 피로감, 강정의 가슴아픈 현장이 제주의 고요한 밤 위로 겹쳐졌다. 차에서 내려 한라산 위로 빛나는 별, 어둠 속에서 부드럽게 떠오르는 오름의 실루엣을 멍하니 바라보곤 했다. 그는 제주를 지키려고 한 사람들을 치료했고, 제주는 어두운 새벽으로 그를 치유했다.

 

낮의 번잡함이 사라진 제주는 평화로웠다. 모두가 염원했던 ‘평화로운 제주’는 바로 그런 풍광이 아닌가 했다. 카메라를 들고 제주 곳곳의 오름과 들판을 누비기 시작한 계기다. 그의 작품은 해가 진 저녁과 밤 시간대, 여명이 오르기 전 새벽 시간대에 집중돼 있다. 사람은 해가 들어가면 집으로 돌아간다. 제주의 자연이 호흡하는 시간대다. 그는 카메라를 통해 제주와 함께 숨쉬기 시작했다.

 

어느샌가 다시는 카메라로 담지 못하게 된 풍경도 있다. 급격한 개발로 지구상에서 아예 사라져버린 것이다. 그가 그 전에 찍어놓은 사진이 아니었다면 기억 속에서도 영영 사라질 터였다. 마음이 아팠다. 제주의 아름다운 모습을 남기려고 애쓰다보니 5년이 지났다.

 

“지키지 않으면 사라져버릴 제주의 풍경은 이렇게 아름답습니다.”

 

그의 작품 곳곳에 스며든 메시지다. 그래서 그의 작품은 제주의 자연과 가치를 지키고자 하는 행사와 전시장에 수년 동안 걸려왔다. 오는 30일까지 열리는 그의 생애 첫 개인 사진전 ‘신들의 땅' 또한 새벽과 저녁의 아름다운 오름 풍광과 제주의 자연 아래 노니는 소와 말 등을 담았다.

 

 

김 작가는 전시회를 치르는 동안 작품 하나하나에 담긴 의미를 이야기하면서 관객들과 공명했다. 그가 전달하려고 했던 메시지에 많은 분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제주 땅과 제주의 미래는 제주사람이 직접 지켜나가야 한다. 10년간 혼자 인적없는 오름을 누비면서 느꼈다. 그 고요함과 평화로움을 이제 시민들이 공감하고 있다. 제주를 지키기 위해 카메라를 든 벅찬 순간이었다.

 

그의 철학은 작업 순간에도 녹아들어있다. 단순히 보기에 멋지기만 한 작품은 지양한다. 조용히 스며들어 일부가 된 후 비로소 제주의 자연을 곁에서 담을 수 있다. 그의 작품 속 제주마들이 그토록 평화로워 보이는 이유다.

 

김 작가는 4년째 한라산 중산간 공동목장에서 제주마의 삶을 지켜보고 있다. 제주마는 본래 경계심이 강할터인데 이젠 김 작가가 멀리서 보이기만 해도 고개를 내민다. 간혹 긁어달라고 등을 맡기는 말도 있다. 이렇게 되기까지 2년 정도 걸렸다고 한다. 하루에도 몇 시간씩 자기네들 근처에 앉아 지켜보고 기록하다보니 이제 그가 함께 있는 게 당연해진 것이다.

 

척박한 제주 땅에 태어나 들판에서 태풍과 비바람을 견디고 눈보라도 견디면서 꿋꿋하게 살아가는 제주마. 그 속에서 망아지를 낳고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면서 순환해가는 생명체. 4.3의 광풍을 겪어내면서도 ‘살암시면 살아진다’며 꿋꿋하게 자식들을 길러온 제주민들의 생애가 겹쳐진다.

 

만약 그가 차기 전시회를 갖는다면 제주의 자연 속을 살아가는 제주마의 생애를 담고 싶다고 한다. 생명의 삶과 죽음을 모두 그리는 것인데, 과연 어떻게 표현할 것인지가 요즘 최대 숙제다.

 

말들은 서로 공동체를 이루며 함께 살아간다. 제주민도 그렇다.  이 땅 위에서 거친 자연과 풍파를 딛고 서로 나누며 도와주면서 살아갔다. 그의 어린시절 속 제주는 사람과 사람 사이 정이 오고 가는 따뜻한 노란빛이었다. 

 

'오래된 미래'(The Ancient Futures).  현대사회는 개인화되면서 모든 이가 소외돼 있다. 그들을 품을 수 있는 건 어쩌면 그가 어린 시절 보고 느꼈던 제주사람들의 공동체 문화가 아닌가 싶었다. 고향으로 돌아온 그는 한의사로서 이웃과 소통하며 마음을 나누고 있다. 또 아름다움과 아픔이 공존하는 제주의 자연을 지키기 위해 사진작가로서 분투하고 있다. 

 

그의 작품은 제주민, 그리고 제주를 향한 삶과 마음이 오랜 시간 배어들어 그 자체가 됐다. 김수오 사진작가. 그는 제주사람이다. [제이누리=이주영 기자]

 

 

 

 

☞ 김수오 
- 서울대 전자공학과 졸업
- 경희대 한의대 졸업
- 경희대 대학원 한의학 박사

- 늘푸른경희한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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