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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정옥의 세상풍경(17) ... 20대 국회의원 당선자에게 바란다

 

 

‘선거는 축제’임이 분명하다. 그렇지 않고서야 선거가 끝난 마당에 부부가 나란히 꽃목걸이를 걸고 꽃들보다 더 화안하게 웃을 수 있으랴. 만약 선거가 ‘국회의원’을 거머쥐기 위한 싸움이나 특정지역을 차지하기 위한 전쟁이라면 이웃들이 화환을 걸어주면서 얼싸안고 환호하며 기뻐하진 않으리라. 실제로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선거기간 동안 ‘선거는 축제다’라는 전시회를 서울랜드와 청계천에서 열었다.

 

후보자간 치열하게 경쟁을 벌이는 선거가 궁극적으로는 ‘민주주의 축제의 한마당’임을 알리기 위한 의도였다. 가수, 작곡가, 작가, 만화가, 디자이너 등이 총출연하여 희망, 약속, 참여, 축제 등 선거가 가지는 소중한 가치를 그림으로 표현하였다. 지나가던 행인의 눈에도 선거가 아니면 맛볼 수 없는 횡재였다.  

 

하지만 지난 13일 동안 제20대 국회의원을 뽑기 위해 제주에서 벌어진 공식 선거운동기간 중에 매스컴을 장식한 후보들의 입에서는 비방, 과시, 허위, 흑색, 투기, 신고, 개입, 심판 등과 같은 전쟁용어들이 마구 튀어나왔다.

 

결코 아름다운 축제일 수 없는 분위기요,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풍경이었다. 다만 대형빌딩을 장식하며 내걸린 현수막에선 소통, 정책, 바람, 청정, 참신, 희망, 선택, 설계와 같은 용어들이 봄바람에 흔들거리면서 따뜻한 기대를 모으고 있었다. 그것들이 문장을 이루어서 ‘그러한 국회의원이 되겠다’며 다짐하는 얼굴들에선 햇살같은 미소가 행인들의 눈길을 끌었다.

 

내가 주로 공부하는 사무실에서도 ‘기다리던 그 사람’이란 현수막이 사람 좋은 웃음과 함께 바람에 휘날리고 있었다. 그것은 ‘이제는 다선의 힘, 도정과 국정의 큰 설계자’ 등과 같은 캐치프레이즈들과 다른 느낌을 주었다(이런 얘기는 이제 잔치가 다 끝났으니 가능한 소리다. 유감스럽게도 나는 이번 선거운동 기간 동안 어느 후보의 유세장에도 가보지를 못하였다). 마치 언젠가 어떤 정치인이 내놓았던 ‘저녁이 있는 삶’처럼 가슴에서 아지랑이를 피워 올리는 말이었다. 기다리던 그 사람이라니...., 나는 과연 어떤 사람을 기다리는 것일까?

 

문득, 어렸을 적 읽었던 나다니엘 호돈의 ‘큰 바위 얼굴’이란 소설이 떠올랐다. 주인공인 어니스트는 어린 시절부터 얼굴 모양의 바위산을 보면서 자랐다. 어머니로부터 '언젠가 저 바위산과 닮은 얼굴의 위대한 인물이 등장할 것‘이란 예언을 들으며, 그런 인물이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큰 바위 얼굴의 위인이라면 사람들을 알아보고, 따뜻한 미소를 지으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격려를 해 줄 것 같았다. 그러던 어느 날, '개더골드(Gather Gold: 황금을 긁어모은다)란 별명의 재력가가 등장하였다.

 

그는 빈틈없고 재빠른데다가 하늘이 내려준 비상한 재능-세상 사람들이 흔히 '재수'라고 부르는 행운 덕분에 엄청나게 많은 돈을 축적하였다. 재산이 모두 얼마나 되는지를 다 알 수 없는 부자여서, 아버지가 살던 초라한 농가 터에 요술처럼 엄청난 건물을 세웠다. 그처럼 막대한 재산을 가졌으니 곧 자선의 천사가 되어서 큰 바위 얼굴과 같은 미소로 자비롭고 너그럽게 모든 사람들의 생활을 돌보아줄 것 같았다. 하지만 그는 영악하고 탐욕스러운 인상에다 구걸하는 거지에게 동전 몇 푼을 던져주는 ‘스캐터 코퍼(Scatter Copper: 동전을 뿌리는 자)'에 불과하였다.

 

두번째 인물은 올드 블러드 앤드 선더(Old Blood And Thunder: 피와 천둥의 노인)라는 유명한 전쟁 영웅이었다. 그는 수많은 전투를 승리로 이끈 덕택에 얼굴에는 정력이 넘쳐흐르고, 강철같은 의지가 드러나 있었다. 하지만 정작 큰 바위얼굴에 스며있는 온화한 빛과 선량한 지혜, 깊고도 따뜻한 자애심은 찾아볼 수 없는 피비린내 여전한 장군에 다름 아니었다.

 

세번째 인물은 올드 스토니 피즈(Old Stony Phiz: 늙은 바위 얼굴)라는 성공한 정치가였다. 그는 일찌감치 고향을 떠나 법률과 정치 분야에서 세계적인 명사로 성장했으며 웅변을 잘하는 것으로 유명하였다. 그가 입을 열면 청중들은 그의 말을 믿지 않을 수 없었다. 마음만 먹으면 틀린 것도 옳게 여기고, 정당한 것도 잘못으로 여기게 만들 만큼 달변이었다. 그의 혀는 부자의 재산이나 군인의 칼을 합친 것보다 더 강력한 힘을 발휘하였다. 그러나 그 얼굴의 후광에서는 큰바위 얼굴의 장엄함이나 위풍, 위대한 사랑이나 영적인 기운보다 권력과 명예욕에 찌들어 지쳐버린 우울과 교만, 피곤이 가득하게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 역시 큰바위 얼굴이 아니었다.

 

그렇게 덧없는 기다림이 계속되는 사이에 어니스트도 어느덧 노인이 되었다. 이마에는 주름살이 생기고, 두 뺨에도 고랑이 파였다. 어느 날 해가 질 무렵, 그는 동네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섰다.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서거나 앉거나 기대어서 편안한 자세로 모여들었다. 어니스트는 마음속 생각을 청중에게 차분히 털어놓기 시작했다. 그의 얘기는 자신의 사상과 일치되어 힘이 있었고, 그 사상은 일상과 조화되어 현실성과 진실함이 가득하였다. 그가 하는 말은 단순한 음성이 아니라 생명의 부르짖음이었다.

 

그 속에는 선량한 행위와 진정한 사랑으로 농축된 그의 일생이 녹아 있었다. 그때, 서쪽으로 기우는 태양의 황금빛 속에서 큰 바위 얼굴이 모습을 드러냈다. 언제나처럼 유쾌하고 장엄하고 자애로웠다. 그 광대하고 자비로운 광채가 어니스트의 얼굴을 비추며 ‘닮은 형상’을 보여줬다. “보시오! 어니스트야말로 저 큰 바위 얼굴과 똑같습니다."라는 외침에 동네사람들은 모두 어니스트를 쳐다보았다. 사실이었다. 예언이 실현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말을 마친 어니스트는 아직도 자기보다 더 현명하고 착한 사람이 큰 바위 얼굴로 나타나기를 기원하며 조용히 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우리의 기다림도 일단은 끝이 났다. 제주를 대표하는 3명의 국회의원 당선인들은 과연 우리가 기다려 온 그런 사람들일까? 우리의 기대에 부합되는 인물들인가? 제 20대 국회에서 이들이 함께 풀어가야 할 제주 현안은 녹록지가 않다.

 

제2공항과 제주신항 등 대규모 인프라 확충, 제주4·3의 완전 해결, 1차산업 경쟁력 강화, 제주특별자치도 완성 등 제주의 미래를 좌우하는 중요 과제들이 산적해 있다. 특히 강정의 갈등은 ‘국방부 가만두지 않겠다’고 큰소리를 쳐서 해결될 일이 아니다. 외국인 카지노, 영리병원, 예래동 사업중단, 제2공항 갈등과 같은 문제들은 이미 제주도정과 당선인들 간에 정책방향의 차이를 보이고 있다.

 

 

 

게다가 소중한 자신의 한 표를 행사한 지역주민들은 각계각층에서 이런저런 요구들을 다양하게 내놓는다. 농업인은 농산물의 품목별 생산·유통·판매 계획과 대책을 수립해 달라 하고, 대학생은 청년 일자리 창출과 취업 활성화 공약을 지켜내라 한다. 관광사업자는 제주관광 만족도를 높이기 위해 출혈을 감수하는 가격 덤핑을 제한하는 법안을 요구하고, 시장 상인은 시장 전체가 활성화되고 특색 있는 상권이 조성되도록 아이디어를 발휘하란다.

 

다행히 어느 언론계가 당선인들을 초청해서 개최한 토론회를 보니, ‘한 표 한 표의 소중함을 되새기며 유권자의 뜻을 의정활동에 반영해 도민을 주인으로 섬기는 국회의원이 되겠다’는 다짐이 뜨거웠다. 그러나 국회의원의 역할을 진지하게 들여다보면 이 또한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국회의원이란 국가입법과 관련하여 헌법과 법률을 개정‧제안하고, 국가재정과 관련하여 정부의 예산안을 심의 확정하고 결산을 심사하며, 일반국정과 관련하여 감사와 조사를 실시하는 자리다. 이중에서 우선순위를 따지자면 입법이 첫째요, 그 다음이 예산, 마지막이 국정감사다. 국회의 역할이란 행정부의 견제와 감시가 주된 목적이지만, 의원 한 사람이 전 국민의 의견을 귀담아 듣기에는 시간적·물리적으로 한계가 있다.

 

그러므로 각자의 지역구가 있는 것은 그 지역민의 소리를 귀담아 듣고, 지역민의 뜻을 국정에 반영하라는 취지다. 이 점에서 볼 때, 국회의원이 지역민의 뜻을 입법과 정책으로 반영시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특히 제주는 ‘특별자치도’라는 특수한 상황과 권한에 비해 지역의 비중이 대단히 취약하다. 국회의원의 역할이 그만큼 중요하단 얘기다. 이 때문에 제주의 선거는 일찍부터 나라 전체의 판세를 가늠하는 바로미터로 여겨질 정도로 절묘하게 이루어져 왔다.

 

이러한 배경에서 오는 5월 30일 금배지를 달고서 국회로 들어가는 3명의 국회의원에게 다음의 세 가지를 제안한다. 첫째, 제주도에서는 걸어 다니는 한 사람의 도민이 되고, 여의도에서는 차를 타고 활약하는 도지사가 되기를 바란다. 선거를 통해 반영된 민심을 읽어보면 도민들은 힘 있거나 잘 나거나 많이 배운 사람을 선호하지 않았다.

 

내가 편안하게 다가가서 사정을 말할 수 있고, 내 말에 가만히 귀기울여줄만한 서민적인 일꾼들을 선택하였다. 말하자면 나와 생활과 생각의 눈높이가 비슷해서 소통이 잘 될 것 같은 심부름꾼을 고른 것이다. 그러니, 제발 지역구 행사장의 높은 자리나 비행기의 VIP 라운지, 축사와 연설을 너무 좋아하지 않았으면 한다. 도지사와 어깨를 세우며 좌정하기보다 지역민과 나란히 앉아서 동네 이야기에 귀 기울여 보기를 권한다.

 

국회의원선거기간 중 어느 한 순간도 ‘도민을 주인으로 섬긴다’며 머슴을 자처하지 않은 적이 어디 있었던가? 그 한 표를 호소하며 간절하게 머리 숙이던 초심을 잃지 않았으면 좋겠다. 설사 제주에서는 현안을 두고 도지사와 각을 세우고 견제할지라도, 서울에서는 협력하고 하나가 되는 동지로 행동하기를 기대한다.

 

둘째, 끊임없이 현장을 살피고 공부하여 ‘걸어 다니는 입법부’의 역량을 발휘하기 바란다. 우리가 뽑은 국회의원이 부지런히 필요한 법안을 세우고 국회 내에서 다양한 세미나를 개최하며 지역현안을 제 때에 해결해 나가면 참으로 기쁘고 고마울 것이다. 그러나 한 걸음 더 나아가서 국가의 중대사에 도민의 뜻을 반영하고 현안의 주역이 되어 애쓰고 땀 흘리면 더욱 자랑스러울 것이다.

 

이따금 TV의 아침 저녁 뉴스에서 국가 행사의 주역으로 등장하여 환하게 웃어준다면 그 이상의 보람도 없을 것이다. 국회의원의 그 막중한 책임과 권한을 제대로 행사하려면 얼마나 많은 공부와 토론이 필요할 것인가. 하지만 오직 의원님밖에 길이 없어서 속 타는 심정으로 상경한 도민들에게는 언제나 만나주고 겸허하게 귀기울여주고 다정한 웃음을 보내준다면, 더 깊은 감동과 감사가 솟구칠 것이다.

 

셋째, 약속을 지키는 사람, 겸손한 사람, 깨끗한 사람, 부지런한 사람, 검소한 사람이 되어주기를 바란다. 이러한 제주인의 고유한 성품을 통해서 제주의 브랜드를 마음껏 발휘하여 1인 5∼6역의 국회의원이 되어달라는 얘기다. 국가예산이나 국제 행사, 국제기구를 유치하기 위해 지방도시간 경쟁을 벌일 때, 제주는 언제나 국회의원이 3명뿐인 섬의 한계에 부딪친다.

 

MICE 도시로서 대규모 국가행사를 유치할 때, 부산이 작정을 하고서 국회의원 18명이 중앙부처를 향해서 한꺼번에 한목소리를 낸다면 십중팔구 행사는 그들의 것이 된다. 그러니 제주의 위치와 장점을 활용해서 전국의 국회의원들과 협력적인 관계를 맺음으로써 제주가 변방의 섬이 아니라 국가의 보물섬임을 인식시켜 달라는 당부다.

 

3명의 국회의원님! 우리들의 의원님들이여! 서울에서는 언제나 유쾌하고 장엄하고 지혜롭게 행동하되, 제주에서는 따뜻한 미소를 지으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하고, 가만히 귀 기울여 듣는 사람, 이름하여 제주의 큰바위 얼굴이 되어 주기 바란다.

 

☞허정옥은?
= 서귀포시 대포동이 고향이다. 대학 진학을 위해 뭍으로 나가 부산대학교 상과대학에서 회계학을 공부하고 경영대학원에서 석사과정을 마친 후 미국 볼티모어시에 있는 University of Baltimore에서 MBA를 취득했다 주택은행과 동남은행에서 일하면서 부경대학교에서 경영학 박사학위를 이수했고, 서귀포에 탐라대학이 생기면서 귀향, 경영학과에서 마케팅을 가르치면서 서귀포 시민대학장, 평생교육원장, 대학원장을 역임했다. 2006년부터 3년간 제주국제컨벤션센터(ICC JEJU)의 대표이사 사장과 제주컨벤션뷰로(JCVB)의 이사장 직을 수행했다. 현재는 서울과학종합대학원에서 서비스 마케팅과 컨벤션 경영을 가르치고 있다. 한수풀해녀학교 2기를 수료했으며, 언젠가 해녀가 되어 서귀포 바다를 얼싸안고 살아가고 싶은 게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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