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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정옥의 세상풍경(16) ... 국내 최대해역을 거느린 제주를 자각하자

 

2월 한 달 동안 범도민적 기대와 관심을 모았던 세계수산대학(World Fisheries University: WFU) 유치전에서 제주가 부산에 승리를 내주고 말았다. 탐라대 부지가 마치 이 일을 위해 준비된 것처럼 여겨졌던 상황이라 제주사회의 안타까움이 몹시도 컸다. 제주도가 제시한 약속들, 예컨대 태평양을 바라보는 10만평의 부지와 건물, 100억원의 대학발전기금, 그리고 온 도민의 열렬한 환영은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없는 지원정책이다.

그런데 WFU가 부산으로 가게 된 이유가 입지환경면에서 제주․충남보다 훨씬 더 높은 점수를 받은 게 결정적 요인이었다는 후문이다. 부산시가 세계수산대학의 입지로 제시한 부경대학교는 과거 국립부산수산대학교의 부지다. 이 학교는 1941년에 설립된 부산시 최초의 대학교로, 70여 년 동안 이 자리를 지켜 왔다. 그러므로 거리상은 부산의 해안순환도로망인 북항대교와 광안대교가 인접한 해안가지만, 실상은 사방이 도시화 되어 있어 도심의 일부라 해도 무방한 위치다. 비교적 평지인 게 장점이긴 하지만, 부경대학의 캠퍼스 내에 WFU가 들어선다면, 시원한 바다를 조망하면서 수산자원과 해양산업의 미래를 꿈꾸고 구상하기엔 답답함이 있을 것이다. 바다를 매립해서 만들어진 이곳은 면적이 359,509㎡(108,942 평)이고, 1만여명의 학생들이 현재 바글거리면서 생활하고 있다.

탐라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던 시절, 나는 경영학의 비전을 설명할 때마다 어린왕자의 저자인 쌩 떽쥐 베리를 인용하곤 하였다. “만일 당신이 배를 만들고 싶다면, 사람들을 불러 모아 목재를 가져오게 하고 일을 지시하고 일감을 나눠주는 일은 하지 마라. 그 대신 그들을 높은 산으로 데리고 가서 끝없는 바다에 대한 동경심을 키워줘라!” 그리고 창문을 열어서 드넓게 펼쳐진 바다를 마음껏 바라보게 하였다. 해발 400 고지의 탐라대학은 바다를 향한 어떠한 꿈도 모두 끌어안을 수 있는 훌륭한 위치였다. 심지어 우리는 더 큰 비전을 품기 위해 영실을 기어올라 윗세오름에 다다르기도 하였다. 선작지왓의 거칠 것 없는 평원에서 바다를 내려다보며 고함을 치면서, 바다를 향한 꿈은 바닷가보다 높은산에서 더 원대하게 품을 수 있음을 알았다.

하지만, 이 프로젝트의 관계자에 의하면, ‘부산시가 입지로 내세운 부경대는 수산분야 노하우가 축적돼 있고 수산 관련 인프라가 잘 갖춰진 곳인데 반해, 제주의 후보지인 옛 탐라대는 폐교 상태인데다가 교통의 불편성 등이 불리하게 작용하였다’고 한다. 대신에 제주가 부산보다 더 적극적인 재정지원과 부지 및 시설에 대한 지원계획을 제시해, 이 점에서는 비교적 높은 평가를 받았다는 얘기다. 참고로 WFU의 후보지 선정기준은 지자체 지원계획, 수산 교육 및 R&D 인프라, 국제협력 역량, 입지환경 등 4개 항목이었다.

이 결과를 두고 ‘제주도가 정보 부재 및 준비 부족으로 WFU 유치에 실패했다’거나, 뒤늦게 도전장을 던져 ‘괜히 둘러리만 서고 체면을 구겼다’는 등의 혹평들이 나돌고 있다. 심지어 ‘제주도정의 중앙 절충력이 한계에 이르렀다’, ‘충남지사와 제주지사가 예비대선주자라 불리하게 되었다’, ‘2004년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유치처럼 도세가 약해서 부산에게 밀렸다’ 등의 뒷말도 무성하다. 사실과 진위 여부를 떠나서 제주도에 거의 도움이 안 되는 말들이다.

 

사실 WFU는 2012년 부산시와 부경대가 자체용역을 통해 국내 설치를 위한 여론을 조성하고, 2013년 정부에 유치 의사를 표명하면서 태동되었다. 이를 받아들인 정부가 2013년 6월 로마에서 개최된 제38차 FAO총회에 참석해 ‘인적자원 교육을 통한 개발도상국의 능력 배양 필요성’을 제기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이어서 동년 11월에는 뉴욕에서 개최된 제 68차 유엔총회 수산결의안 비공식회의에 참석해, ‘FAO를 포함한 유엔체제 하에서 개발도상국들의 수산분야 역량강화를 위해 회원국 상호간 협력을 촉진하자’는 문안을 제안하였다.

2014년 1월에는 로마의 FAO 본부에서 ‘수산양식 연구 및 역량 구축 분야 협력에 관한 양해각서’를 체결하였다. 그리고 3월, 몽골 울란바토르에서 열린 제32차 FAO 아시아-태평양 지역총회에서는 ‘교육훈련을 통해 개발도상국 수산 분야의 역량강화를 촉진하자’는 문안을 제안하였다. 동년 6월에는 로마에서 개최된 제 31차 FAO 수산위원회에 참석해. WFU 설립이 FAO가 역점 추진하고 있는 녹색성장정책(Blue Growth Initiative: BGI) 목표를 구현하는데 기여할 수 있음을 강조했다. 그리고 11월, 뉴욕에서 열린 제69차 유엔총회 수산결의안 비공식회의에 참석해 FAO를 포함한 유엔체제 하에서 개발도상국의 수산분야 역량강화를 위해 회원국 상호간 협력을 촉진하자는 문안에 ‘양식업’을 추가할 것을 제안하였다. 이는 12월에 열린 유엔총회에서 만장일치로 채택되었다. 마침내 2014년 12월, 해양수산부는 세계해사대학 및 UN 대학 사례연구 등 WFU 설립을 위한 예비 조사를 실시하였고, 이 연구는 2015년 7월에 종료되었으며, 9월말 사업제안서를 제출하기에 이르렀다. 동시에 FAO는 2015년 4월, WFU의 한국 내 설립에 관한 타당성 조사를 실시하였고, 9월 경 완료하였다.

이상은 우리 정부가 FAO에 제출한 ‘WFU 설립 제안서’에 담겨진 내용으로, 우리에게는 2016년 1월 12일 해양수산부가 17개 시‧도를 대상으로 ‘FAO 세계수산대학 설립 입지 선정 공모’를 발표함에 따라 알려지게 된 사실이다. 이에 따라 1월 15일, 제주는 즉각적으로 15명의 유치위원회를 구성해 긴급하게 유치전쟁에 돌입하였던 것이다.

이 일의 선봉에서 입술이 부르트게 뛰어다녔다는 유치위원장의 신문기고에 의하면, 결국은 미리부터 준비한 부산이 선정됐지만, 제주도가 만만치 않음을 보여주는 좋은 계기로 평가된다. ‘국가의 공모과제마다 다 선정되면 좋겠지만, 모든 게 전국적 경쟁이다 보니 안 될 수도 있다. 실패를 하더라도 도전하는 것은 중요하다. 실패를 통해 역량을 키워가는 게 아닌가?’라는 그의 소감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더욱이 세상일을 어찌 미리 단정할 수 있겠는가? 도전하다 보면 예기치 않은 이득도 떨어지는 법인 것을.

2014년 5월, 제주국제컨벤션센터(ICCJEJU)에서 개최된 ‘제28차 BPW 세계대회’가 바로 그러한 예다. 2008년 5월, BPW 한국연맹이 ‘세계대회 유치를 위해 국내 개최도시를 선정한다’는 정보를 제주도가 입수한 때는 후보도시가 내정되어 있다는 소문이 은근히 나돌고 있었다. 한국연맹이 이미 두 차례나 도전하는 과정에서 국내 도시들 간 치열하게 경쟁이 벌어진데다가 다시 세 번째 하는 도전이고 보니, 익숙한 도시와 미리 짝짓기를 해놓은 듯하였다. 하지만 제주가 어떤 곳인가? 대한민국에서 ‘여자’ 하면 제주가 넘버원 아닌가? 그 뜨거운 가슴으로 제주 유치를 위한 제안서를 준비하고, 반드시 제주여야만 하는 이유를 호소하는 현수막까지 만들어서 발표현장에 도착하였다. 대세는 이미 대구로 기울어진 분위기였고, 부산․광주․서울은 벌써 재미없는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그러나 길고 짧은 것은 대봐야 아는 법. 우리가 한국 최초의 전문직 여성이 제주 해녀임을 강조하고, 여성 기업가인 김만덕 할망의 나눔정신을 내세우며, 삼다도의 돌․바람․여자의 의미를 열정적으로 설명하는 사이, 기류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여기저기서 제주여성의 독특한 생활과 문화에 대한 질문이 쏟아지더니, 유치전략과 지원규모 등을 물으며 분위기가 서서히 달아올랐다. ICC JEJU의 아름다운 전경과 BPW 제주지회의 적극적인 유치 열망이 어우러지면서부터는 장내가 한껏 뜨거워졌다. 그리고 질의응답 과정에서 ICC JEJU의 대표가 직접 발표를 한 점이 가산점을 더하였다. 결국 이 유치전은 예상을 뒤엎고 전혀 기대 밖이었던 제주가 후보지로 선정되는 이변을 낳았다. 가끔은 하늘이 스스로를 돕는 이들에게 깜짝선물을 준다는, 바로 그 날이었다.

이 BPW 세계대회는 물론 대규모 국제회의들은 대부분 앞서 열거한 WFU 유치에 못지않은 절차와 과정, 시간이 소요되는 작업들이다. 부산의 경우처럼 제주도 또한 미리 가능한 국제회의를 발굴해서 한국의 관계기관에 유치를 제안하고 2∼3년의 배양과정을 거쳐서 개최의 꽃을 피우는 게 많다. 물론 유치에 도전하고 온갖 수고를 다하고도 끝내 탈락의 쓴 잔을 마시는 경우도 있다. 2000년 ASEM(아시아․유럽 정상회의)과 2005년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이 그러한 예다. 그러나 유치 실패가 모든 것의 상실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제주에 유치하는 데는 실패했지만, 도전을 통해 결과적으로 더 큰 성과를 얻게 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ASEM의 실패가 ICC JEJU를 낳았고, 마침내 ICC JEJU가 2008년 ASEM 재무장관 회의를 품을 수 있었다. 넓은 의미에서 보면, APEC의 실패가 2009년 한․아세안특별정상회의로 이어졌듯이, 물 건너간 WFU가 결국은 더 좋은 결과를 우리에게 안겨줄지 누가 알겠는가? 정부가 주관하는 어떤 공모에도 응모 자체가 완전한 물거품으로 사라지지는 않는다. 어떠한 형태로든 성과가 남는 법이다. WFU의 석패를 토로하는 자리에서 원희룡 지사가 내놓은 대도민 약속이 바로 그것이다. “앞으로 제주도민의 힘을 한데모아서 제주수산의 무한한 가치를 활용해 미래 수산업발전을 위하여 적극 지원하겠다”는 의지가 실현된다면 말이다.

 

제주도는 땅의 면적, 인구, 국내총생산액(GDP), 재정규모 등이 우리나라 전체 대비 1%를 차지한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도세가 전국대비 1%란 얘기다. 하지만 바다면적 만큼은 우리나라에서 최고다. 대한민국 영해 면적 471, 296km²의 24.4%인 114, 950km²가 제주의 바다다. 게다가 수산자원 및 해양생물 다양성의 최대 보고이면서 아시아․태평양 해양물류의 관문이기도 하다. 뿐만 아니라 수온이 겨울에도 섭씨 13∼15도 이하로 떨어지지 않아서 외해양식의 적지로 주목되는 곳이다. 이는 지난 2월 17일 해수부가 대통령 주재 ‘제 9차 무역투자진흥회의’에서 보고한 수산업 투자 활성화 방안의 최적지임을 의미하는 것이다. 외해양식은 그동안 연안오염, 적조피해 등 내해양식의 한계를 극복할 대안이 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적정 입지 선정의 어려움, 높은 초기투자비용 등으로 활성화되지 못해 왔다. 따라서 정부가 참다랑어 등 유망어종을 중심으로 외해양식에 적합한 어종과 지역을 미리 선정한 후 양식단지를 개발해 민간에 분양하는 정책을 내놓은 것이다. 차제에 제주도가 이 프로젝트에 집중한다면 잃어버린 WFU를 만회하고도 남을 보물을 건지게 될 줄 믿는다.

사실, WFU는 유치도시에 10년간 1560억원의 생산유발효과와 625명의 고용효과를 제공한다지만, 따지고 보면 돈을 벌기보다 번 돈을 나눠주는 프로젝트다. 1965년, 우리나라가 FAO로부터 받았던 수산기술 원조를 50여년만에 국제사회에 되돌려주기 위한 공적개발원조(ODA)의 적극적 형태다. 수산자원은 세계 식량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중요한 식량자원 중 하나이기 때문에 지속가능한 수산업을 통한 안정적 식량자원 보급을 위해 개발도상국의 수산역량 강화 및 교육훈련이 필요한 것이다.

어쩌면 이와 같은 맥락에서 제주도가 외해양식업을 통해 어류양식기술의 산업화에 앞장선다면, WFU보다 먼저 개발도상국의 식량문제와 어업생산성을 향상시켜 줄 수 있을 것이다. 다행히 제주에는 이와 관련된 연구개발 및 산업연계 인프라가 잘 갖춰져 있고, 특히 ‘황금알을 낳는다’는 참다랑어에 관한한 외해양식의 산업화가 어느 정도 궤도에 올라서 있다.

 

차제에 제주도가 우리나라 바다면적의 24%에 달하는 바당밭에 전략적 관심과 투자를 집중한다면, 1%의 한계를 뛰어넘어 제주도가 꿈꾸는 GRDP(지역내총생산) 25조의 경제시대를 이 수년 내에 창출할 수 있을 것이다. 세계 최대의 연어 양식 기업인 노르웨이의 마린하베스트(Marine Harvest)는 오직 연어로 벌어들이는 매출액이 3조 722억원(2013년 기준)에 달한다. 제주도가 WFU를 유치하던 열정으로 바다의 히든 챔피언을 육성한다면, 외해양식이 새로운 생명산업이 되어 미래의 제주경제를 이끌어 가리라 확신한다.

 

☞허정옥은?
= 서귀포시 대포동이 고향이다. 대학 진학을 위해 뭍으로 나가 부산대학교 상과대학에서 회계학을 공부하고 경영대학원에서 석사과정을 마친 후 미국 볼티모어시에 있는 University of Baltimore에서 MBA를 취득했다 주택은행과 동남은행에서 일하면서 부경대학교에서 경영학 박사학위를 이수했고, 서귀포에 탐라대학이 생기면서 귀향, 경영학과에서 마케팅을 가르치면서 서귀포 시민대학장, 평생교육원장, 대학원장을 역임했다. 2006년부터 3년간 제주국제컨벤션센터(ICC JEJU)의 대표이사 사장과 제주컨벤션뷰로(JCVB)의 이사장 직을 수행했다. 현재는 서울과학종합대학원에서 서비스 마케팅과 컨벤션 경영을 가르치고 있다. 한수풀해녀학교 2기를 수료했으며, 언젠가 해녀가 되어 서귀포 바다를 얼싸안고 살아가고 싶은 게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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