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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정옥의 세상풍경(11) ... 을미년 제주의 어머니에게 바치는 글(2)

 

아버지는 동네에서 힘이 세기로 소문난 장정이었다. 사람들이 일을 하다가 힘에 부치면 아버지를 찾아서 ‘힘을 보태 달라’고 요청할 정도였단다. 게다가 만능 일꾼이라서 집을 짓는 건축이나 밭담을 다는 석수일, 밭을 가는 쟁기질은 물론 갈치나 자리를 잡는 어부 일도 능숙하였다. 우리가 사는 집도 아버지가 지으셨다. 술과 담배를 하지 않았던 아버지는 동트는 새벽에 밭갈이를 시작하면 해가 기우는 어스름까지 ‘이랴 이럇’ 소리를 멈추지 않았다. 일이 끝나면 소를 어루만지면서 친구에게 하듯이 ‘속았다(수고했다)’며 다독였다.

 

남이 이틀 걸려 하는 일을 아버지는 하루 만에 해치웠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일을 할 때 별로 말이 없었다. 그저 일이 돌아가는 상황에 눈을 맞추면 손발이 척척 돌아가는 커플이었다. 남의 손을 빌리지 않고서도 산남에서 1등 가는 보리, 유채, 고구마를 거둬냈다. 그처럼 아버지가 차별적으로 농사일의 경쟁력이 높았던 데는 남다른 비결이 있었다. 그것은 아버지의 밥에만 식구들 몰래 참기름을 듬뿍 뿌려놓는 어머니의 마음이었다. 고래(古來)로부터 먹은 만큼 힘이 나는 게 삶의 진리가 아니던가? 지금도 어머니는 꿈속에서 가끔 아버지와 같이 일을 하신단다. 보고 싶은 얼굴은 보이지 않지만, 옛날처럼 부지런히 손발을 놀리다가 아버지가 지치겠다 싶어서 ‘쉬게 마씸’ 하면, 잠에서 깨어나 혼자가 된다고.

 

꿈에도 일을 하는 어머니의 억척스러움은 농한기인 겨울철에 훨씬 더 두드러졌다. 온 동네가 고요히 잠들어 있는 새벽 두 세 시에 일어나서 횃불을 들고 밤바르를 나갔다. ‘밤바르’란 썰물이 잘 나가는 겨울밤에 바다에 나가서 해산물을 채취하는 일이다. 낮에는 물이 깊어서 잠수를 해야 하는 바다가 밤이 되면 완전히 물이 빠져서 자갈밭처럼 마른다. 그 시절에는 얼마나 해삼이 흔하던지 발에 밟혀서 미끈거리는 바람에 자빠질 정도였단다. 소라, 해삼들이 돌멩이처럼 뒹구니, 그냥 보이는 대로 주워 담으면 그만이었다. 다소 과장돼 보이긴 하지만, 그렇게 수확이 좋은 밤바르를 마을에서는 거의 어머니 혼자서 도맡았다. 눈이 허옇게 쌓인 밤바다에 매서운 하늬바람을 맞으면서 횃불을 들고 나서기란 무섭고도 끔직스런 일이었다.

 

그러나 어머니를 바라보는 9명의 자식들이 그 일을 마다할 수 없게 만들었다. 어머니가 잡은 물건들은 언니와 내가 중문장과 서귀포장에서 난전을 펼쳐 팔았다. 앉아서 손님을 기다리기엔 마음이 너무 바쁜 나머지, 어머니는 아예 물건을 등에 지고 가가호호 방문판매를 하였다. 정오쯤 되어 집으로 돌아온 어머니는 점심도 뜨지 않고 바다로 내달렸다. 배고프게 물질하실 어머니를 생각하며 우리는 힘없이 숟가락을 놓았다.

 

‘잠녀 아긴 일뤠만에 것 멕인다(해녀 아기는 이레만에 밥 먹인다)는 속담이 있는 걸 보면, 어머니의 고역은 어머니만의 일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쉐로도 못나난 제주예자로 나신예(소로도 못나서 제주여자로 태어났다)‘라는 말은 고생이 제주도 어머니들의 일상임을 보여준다. 김종두 시인의 ’제주여인 6‘에는 이러한 제주도 어머니들의 생활상이 그대로 녹아 있다. ‘조밥 먹으멍 조냥허곡, 물질허멍 조냥허곡, 설룬 애기(서럽게 태어난 자식) 키우잰, 이 고생허멍 살아수게. 어두룩헐(어스름 할) 때 일어낭, 물항(물 항아리) 고득 물질어 놔뒁, 솖아 낸 보리밥 혼직(한 숱갈) 뜨는둥 마는둥, 갈중이(갈옷) 걸치멍 벨레왓(암석이 깔려 있는 밭)으로 내돌아십주.’

 

오죽하면 ’좀녀 아기 나뒁 사을이민 물에 든다(잠녀는 아기 낳고 사흘이면 물질한다)‘는 말도 안 되는 소리가 남아 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80세가 넘어서도 물질을 하는 해녀들은 자식들의 마음을 아프고도 속상하게 한다. 육지에서는 걷기조차 힘들어 보이는 할머니들이 바다에서는 오리발을 차면서 몇 시간씩 작업을 하니 말이다.

 

제주시의 조사에 의하면 80세 이상 해녀가 전체의 12%를 차지한다. 제주도 전체로는 2013년 현재 4507명의 해녀 중 70세 이상이 51%에 달한다. 작년에는 제주도에서 7명의 해녀가 물질하던 중 사고사를 당했는데, 모두가 70세 이상이었다. 물질은 고되고 힘든 작업인 만큼 고령 해녀에게는 참으로 위험한 노동이다. 하지만 90세가 넘어서도 여전히 물질을 하는 해녀가 있다. 제주도 해녀는 60세 이상이 83%에 달한다니, 다른 직업군에서는 대부분이 은퇴하는 나이에 목숨 건 작업들을 하고 있는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통상의 제주도 할머니들은 장수를 한다. 2014년 12월에 발행된 제주발전연구원의 보고서에 따르면 제주지역의 장수도(65세 이상 노인인구 가운데 85세 이상 비율)와 인구 10만명당 100세의 인구비율이 전국에서 최상위에 속한다. 이와 관련해서 2014년 11월의 통계청 조사를 살펴보면, 제주도에는 100세 이상 노인들이 204명에 달한다. 이중에서 183명이 할머니들로, 전체 인구의 0.03%를 차지한다. 우리나라 100세 이상 할머니의 비율이 0.02%이고 보면, 확실히 제주도 할머니들이 더 오래 사는 편이다. 80세 이상 인구 중에서 제주도 할머니는 1만4303명 할아버지는 4513명으로, 할머니들이 76%를 기록하고 있다. 할머니가 할아버지보다 3배 이상 많은 수치다.

 

참고로 우리나라 국민들의 기대수명은 82세이고, 남녀의 수명차이는 6.5세로 예측된다. 이 기준에 의하면 동갑내기일지라도 할머니는 할아버지보다 6~7년을 더 살게 된다. 제주도는 2014년에 이미 고령사회(전체 인구 대비 65세 이상의 비율이 14%)로 진입했고, 2025년에는 초고령사회(65세 이상 인구비율이 20% 이상)로 진입할 게 예상된다. 제주의 고령사회 진입은 지난 1996년 고령화사회(전체인구 중 65세이상 인구비율이 7% 이상)에 도달한 후 18년 만의 일이다. 그런데 고령사회에서 초고령사회로 들어가는 데는 10년밖에 걸리지 않았으니, 그만큼 고령화 속도가 빨라졌단 얘기다.

 

 

요즘은 고령화가 사회의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부담요인으로 인식되고 있다. 하지만 300년 전에는 정반대로 해석되었다. 조선시대 숙종임금 시절(1702년), 이형상 제주목사가 제주 전역을 순력하면서 경로잔치를 베푼 후 조정에 올린 보고서를 보면, ‘장수가 나라의 길조’로 간주된다.

 

"120여 세를 사는 사람이 있었는데 숙종 21년(1695)과 숙종 22년 사이에 전염병을 앓은 뒤 그만 사망해버리고 말았습니다. 지금 살아있는 이는 102세가 1인, 101세가 2인, 90세 이상이 16인, 80세 이상이 94인입니다. 세상에서 70세면 이미 드문 나이입니다. 80, 90세 이상은 사람들이 일컬어 ’나라에 복되고 길한 일‘이라 합니다. 하물며 100세 이상이야 어찌 지극히 귀한 나이가 아니겠습니까?"

 

90을 넘어선 후로 어머니는 점점 어린 아이와 같아졌다. 걷다가 넘어지기를 잘 하고, 음식을 먹다가 흘리기도 잘한다. 무슨 일에 쉽게 기뻐하고 곧잘 토라지기도 한다. 혼자이다 싶으면 사방에 전화해서 사람들을 부르고, 누구라도 찾아오면 더없이 좋아서 한없이 얘기한다. 92세가 되어서는 아침과 저녁을 분간치 못해, "어두웜시냐, 볼감시냐?(어두워지고 있니, 밝아지고 있니)"를 무시로 확인한다. 약이나 음식도 먹고 나서 돌아선 후 금방 또 달라신다. 잠을 자다 보면 자꾸 내 자리로 파고들면서 ‘네 자리는 왜 이리 따뜻하냐?’고 투정이다. 밤중에 갑자기 내복차림으로 방밖으로 뛰쳐나가기도 하고, 대문 밖에 나가서는 ‘여기가 어디냐고’ 되묻기도 하신다. 혼자 밖으로 나갔다가 길을 잃어버리기도 하고, 위급한 상황이 발생해서 응급실로 달려갈 때도 드물잖다.

 

하지만, 어머니는 영원히 어머니시다. 내가 힘들어 보이거나 우울해 보이면, ‘걱정하지 말아라. 살암시믄 다 살아진다’며 내 손을 단단히 잡아주신다. 그리고 대문가에 놓인 의자에 앉아서 무시로 기도를 하신다. ‘네 아버지가 늘 우리 곁을 지켜보고 계신다’면서. 아니나 다를까, 어머니는 늘 아버지가 마치 우리와 함께 사시는 듯 행동한다. “네 아버지는 이 집을 참 좋아하신다. 이렇게 남향이라서 햇볕도 잘 들고 식물도 잘 자라니, 지긋이 바라보면서 얼마나 만족해하시는지....”

 

이쯤에서 이 사적인 글의 목적을 드러내려 한다. 어느 날, 어머니와 나란히 누워서 아버지의 임종 얘기를 듣고 있었다.

 

"미국에서는 병실에 보호자가 마음대로 드나들거나 함께 있지를 못한단다. 면회도 정해진 시간에 규정된 사람 수대로 해야 하니, 아무리 위독하다고 해도 온 가족이 몰려가서 기다릴 수가 없지 뭐냐. 아버지가 돌아가시던 그 날은 네 오빠가 병실을 지키고 있었다. 나는 집에 혼자 남아서 기도하다가 언뜻 잠이 들었는데, 아버지와 함께 어딘가를 부지런히 걷고 있었다. 새 집으로 이사를 가는 중이었단다. 드디어 어떤 큰 집에 도착했는데, 왠지 지저분하고 복잡해서 불편한 생각이 들더구나. 내가 ’이집은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싫어했더니, 아버지가 빙긋이 웃으면서 손가락으로 다른 곳을 가리키셨다. “여기는 우리가 잠시 머물렀다 갈 곳이고, 저기 보이는 저 길을 따라 좀 더 걸어가면 우리가 살 집이 따로 마련되어 있어.’ 그곳을 바라보니 아주 깨끗한 길을 따라서 양쪽으로 꽃들이 만발하여 살랑거리더라. 그 모양이 얼마나 환하고 빛나고 좋던지, 저런 곳이라면 ‘정말 살고 싶다’는 생각이 바짝 들더구나. 참 포근하고 행복한 기분이 밀려와서 ’감사하다‘고 생각하는데, 그만 눈이 떠져서 꿈을 깨고 말았단다. 이 집으로 이사 온 후, 늘 ’네 아버지가 선물해 준 곳‘이라 여겨지는 게, 여기는 아침 해가 뜰 때부터 저녁 해가 질 때까지 언제나 햇볕이 들잖니. 게다가 봄, 여름, 가을, 그리고 겨울에도 늘 꽃이 피어 있는 게 신기하고 놀랄 정도다. 네 아버지는 결코 나를 두고 혼자 가지 않으셨다."

 

아, 아버지는 어머니를 내게 부탁하시면서 살 집도 미리 준비해 놓으신 거였다.

 

 

제주도 할머니들은 노동을 할 수 있는 한 자식들에게 기대어 살지 않는다. 자식이 장성하여 결혼을 하고 살림을 맡길 만 하면 앙끄레(안채)를 넘겨주고 바끄레(바깥채)로 옮겨 산다. 한 마당 안에 살면서도 밥을 따로 해 먹는다. 생활 자체가 아예 독립적이다. 우리의 경우는 한 집에 살면서도 어머니가 밥을 지을 수 있을 때까지 혼자 해서 드셨다. 그게 ‘편하다’고 하시니, ‘그러신가’ 하였다. 그런데 오몽하기(움직이기)가 힘들어 지면서 식사를 챙겨드리기 시작했다. 가만히 관찰해 보니, 어머니는 못 먹는 게 병이었다. 일단 무엇이라도 드시기만 하면 목숨은 걱정 안 해도 된다. 그리고 가끔 ‘위험하다’ 싶은 일이 발생하면서부터 어머니와 함께 이부자리를 펴기 시작했다.

 

어느 날 밤, 어머니께서 내 손을 붙잡으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제는 혼자 누워 있다가 아무도 몰래 죽게 될까 봐 걱정하지 않아도 되니, 참 좋구나.” 그 순간, 내 가슴이 서늘해 왔다. 그동안 어머니 혼자서 얼마나 힘든 밤들을 외롭게 보냈을까?

 

제주도는 65세 이상 고령자 중 홀로 사는 독거노인 가구가 16%에 이른다. 여성독거노인 비율은 13%에 달한다(제주특별자치도, 2013). 대부분의 독거노인들이 할머니인 셈이다. 지금의 제주도 할머니들은 4.3을 겪고, 6.25를 살아 내면서 일찍부터 혼자서 자식들을 키워온 세대다.

 

김종두 시인의 ‘제주여인 6’은 다음과 같이 이들의 삶을 묘사하고 있다. ‘불벹 더위에 나앉앙, 한나절 지신검질(많이 자란 잡초) 매당 보믄, 4․3사태 때 죽은 아방(남편) 생각 남니께. 눈멜라지게(눈이 쑥 들어가게) 살아 온 시상, 생각허믄 칭원허고(가슴 아프고) 칭원헙주만, 지내븐 일이라 잊엉 살아졈수다. 자식 하나 믿엉 살아 온 이 질긴 목심, 아~제주 여인의 삶이여.‘

 

장수노인에 관한 조사에 의하면, 제주도의 100세인들은 대부분이 가족과 함께 생활하고 있다. 독거인 경우는 매우 드물다. 물론 100세는 목표로 한다고 해서 도달 가능한 수명이 아니다. 다만 우리의 제주도 할머니들이 할아버지를 보내고 난 후에도 ‘행복하게 천수를 누렸으면’ 해서 써 본 글이다. 그러므로 소재로 사용된 내 어머니, 아버지, 나의 얘기가 자랑으로 오해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제주도의 모든 부모들은 한두 권으로는 모자랄 분량의 소설 같은 삶을 사시는 분들이 아닌가. 다만, 이 새해 벽두에 설문대할망, 조왕할망, 영등할망, 만덕할망 등으로 대표되는 제주도 할머니들이 여생을 평안하게 살아가는, ‘할망이 행복한 섬’을 기원하고 싶은 것이다.

 

할머니들의 기도는 오직 자손들의 복된 삶이 전부일 것이기에, 결국은 옛날처럼 오늘날도 제주도에 길한 일이 많아지지 않을까 한다. 누가 알겠는가? 할머니들 덕택에 제주도가 ‘장수의 섬’으로 더 유명해져서 세계적인 휴양지로 브랜드가치를 높이높이 휘날리게 될는지. 

 

☞허정옥은?
= 서귀포시 대포동이 고향이다. 대학 진학을 위해 뭍으로 나가 부산대학교 상과대학에서 회계학을 공부하고 경영대학원에서 석사과정을 마친 후 미국 볼티모어시에 있는 University of Baltimore에서 MBA를 취득했다 주택은행과 동남은행에서 일하면서 부경대학교에서 경영학 박사학위를 이수했고, 서귀포에 탐라대학이 생기면서 귀향, 경영학과에서 마케팅을 가르치면서 서귀포 시민대학장, 평생교육원장, 대학원장을 역임했다. 2006년부터 3년간 제주국제컨벤션센터(ICC JEJU)의 대표이사 사장과 제주컨벤션뷰로(JCVB)의 이사장 직을 수행했다. 현재는 서울과학종합대학원에서 서비스 마케팅과 컨벤션 경영을 가르치고 있다. 한수풀해녀학교 2기를 수료했으며, 언젠가 해녀가 되어 서귀포바다를 얼싸안고 살아가고 싶은 게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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