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9년 추자마을미술 조형물 중 추자의 'ㅊ' 조형작품(하석홍 작가) 제주도는 ‘2020 마을미술 프로젝트 참여 작가 전시회’를 시작으로 올해 마을미술(추자예술섬) 사업을 본격 추진한다고 6일 밝혔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고 (재)아름다운 맵과 (재)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이 주관하는 이번 공모 사업에 제주도와 (사)문화조형연구센터가 최종 선정됐다. 사업비 8억2000만원이 투입된다. 이번 전시회엔 6일부터 다음달 20일까지 추자면 후포갤러리에서 마을미술(추자예술섬)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작가 8명의 작품이 전시된다. 앞으로 전시회 참여 작가를 주축으로 추자도에 7개의 예술작품을 설치하고, 추자 지역주민이 참여하는 8개의 프로그램을 운영할 계획이다. 지난해에는 추자도에 미술작품 6개소가 설치됐다. 주민프로그램은 10개가 운영됐다. 마을미술프로젝트 책임 작가인 하석홍씨는 “추자도의 주민들과 뜻을 모아 아름다운 보물섬 추자도가 우리나라에서 가장 매력적인 문화예술의 섬으로 거듭나길 바란다”고 말했다. 강승철 제주도 문화체육대외협력국장은 “추자예술섬 프로젝트 사업이
“제주도 산북지역에서는 옥돔을 ‘셍선’이라 부르는데 왜 산남지역에서는 ‘솔라니’라고 부를까요?” 제주는 좁고도 넓다. 그러나 제주 사람들이 향유해온 문화는 결코 작지 않다. 제주 사람들이 사용해온 언어를 보면 알 수 있다. 제주시를 중심으로 동쪽과 서쪽의 말이 다르고, 한라산을 중심에 두고 남쪽과 북쪽의 말이 다른 경우도 있다. 왜일까? 그 궁금증을 풀어줄 책이 나왔다. 언론인이자 방언학자인 제주학연구센터 김순자 센터장이 펴낸 '제주도 방언의 언어지리'다. 저자가 10년 전에 발표했던 박사학위 논문을 깁고 보태 엮은 책이다. 논문의 오류를 바로 잡고, 글을 쉽게 고쳐 누구나 읽을 수 있도록 했다. 저자는 조사 어휘 중 분화상이 뚜렷한 155개의 어휘를 지도 위에 표시해 방언 구획을 했다. 제주도 방언 구획이 고려 말 행정체제인 동서도현과 조선시대 삼읍체제가 주요 요인임을 밝혔다. 언어 지도는 방언 조사를 바탕으로 방언의 지리적 분포 상태를 표시한 지도다. 이 언어지도를 통해 지리적 조건에 의하여 언어가 분화한 현상을 밝히는 학문이 곧 언어지리학인 셈이다. 따라서
제주인의 공동체 문화와 역사를 상징하는 팽나무를 기록한 작품집이 나왔다. 글과 사진으로 제주의 가치를 알려온 사진가 강정효가 제주도 곳곳의 팽나무를 기록한 사진집 ‘폭낭, 제주의 마을 지킴이’다. '폭낭'은 팽나무를 이르는 제주 말이다. 제주에서 폭낭은 마을의 상징과도 같은 존재로, 마을에서 가장 큰 나무일뿐만 아니라 마을의 신목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마을 공동체와 함께 해 온 마을의 상징이라 할 수 있다. '폭낭'은 제주마을 공동체와 함께해온 팽나무 사진 140여 점을 수록하고 있다. 사진은 크게 신당의 신목으로서의 폭낭과 4‧3 당시 잃어버린 마을에 덩그러니 남아 역사를 증언하는 폭낭, 그리고 마을 안의 정자나무 등 세 가지로 구분된다. 작품집은 4‧3의 학살 현장을 지켜봤던 폭낭을 비롯해 마을이 불태워지며 사람들이 떠나버린 잃어버린 마을의 폭낭도 담고 있다. 폭낭은 북촌리 당팟에서의 학살 장면을 지켜봐야 했다. 집단학살에 앞서 주민들을 소집했던 동복리 장복밧에도 폭낭이 서 있었다. 뿐만 아니라 4‧3 이후 복구되지 못한 잃어버린 마을 130여 곳을 묵묵히 지키며 역사를 증언하고 있는 폭낭도 볼 수 있다. 또 지금은 그 모습이 사라진 나무들도 상당수 볼
▲ 도리깨질하는 농민들. [제주도] 어떤 사람 팔재 좋앙 고대광실 높은 집에 팔재 좋게 저마는 요네 팔재 험악 허영 불더위에 요 마당질 허야도 홍아 타작(打作)은 곡식 이삭을 떨어 낟알을 거두는 농사일이다. 바심, 풋바심이라고 한다. 조+바심=조바심=조의 이삭을 떨어서 좁쌀을 만듦. 추수는 감사하나, 타작은 그렇게 마음 졸이는 작업이다. 그러나 걱정은 우리를 힘들게만 할 뿐 어디에도 데려다 주지 못한다. 제주에서는 밭 구석이나 마당에서 도리깨를 이용하여 보리나 조, 콩 등 잡곡을 타작했다 도리깨로 타작하는 곡식이 주로 보리였기 때문에 ‘보리 타작소리’라고 했다. 또한 콩이나 팥도 도리깨로 타작하기 때문에 그냥 ‘타작노래’라 부른다. 아울러 도리깨를 사용하는 일이므로 ‘도리깨질 소리’, 주로 마당에서 타작이 이루어졌음으로 ‘마당질 노래’라고 했다. 욜로(여기서) 요레(여기) 누게나(누가) 앉고 허야도 홍아 설룬(서러운) 정례(貞女) 말이로구나 두드렴시민(두드리다보면) 부서나진다 ᄒᆞᆫ(한) 번
▲ 60년대 해녀 -출처 제주해녀박물관 “어떤 사람은 복도 좋아 앉아 살리. 우리네는 바람이랑 밥으로 먹고 구름으로 똥을 싸고 물결을 집안 삼아, 부모 동생 떼어놓고 오늘도 바다에 든다.” “요 물질하여 소를 살까, 밭을 살까. 한 손에 빗장, 다른 한 손엔 호미 들고 미역, 생전복 따다가 어린 자식 공부시켜 판사 만들려고 힘들어도 바다 위에서 시달리는 불쌍한 이내 몸아. 어느 때면 이내 몸도 좋은 세상 만나서 남들처럼 잘 살 수 있으려나.” 힘든 바다 물질해서 벌어들인 소득으로 소나 밭을 사거나, 자식 교육시켜 판사 만들어 생활이 나아지기를 바라는 염원을 담은 해녀노래다. 노 저어 차귀도나 비양도 등 주변 섬으로 물질 작업 가거나 육지로 출가 물질 가며 불렀다. 테왁 짚고 물에 뛰어들어 ‘갓물질’ 작업 위해 헤엄치며 불렀다고도 한다. 어떤 사름(사람) 복도 좋앙 앚아(앉아) 살리 우리네는 ᄇᆞ름(바람)이랑 밥으로 먹곡 구룸(구름)으로 똥을 싸곡 물절(물결)이랑 집안 삼앙(삼아) 부모 동싕(동생) 떼여 두곡 오Ƴ
▲ 2020년도 한라산국립공원 지정 50주년 기념 사진 공모전 당선작. 고영석의 '왕관릉과 오름군' (최우수) 제주도 세계유산본부는 한라산국립공원 지정 50주년을 맞아 이달 16일부터 다음달 31일까지 한라산 자연생태 및 경관 사진 공모전 수상작 야외전시 ‘숲 속 전시회 휴식(休息)’을 연다고 17일 밝혔다. 숲속 전시회 ‘휴식(休息)’은 코로나19 감염확산 방지를 위한 사회적 거리두기에 지친 도민과 관광객에게 한라산 숲이 주는 심리적 안정감과 치유효과로 심신의 재충전 기회를 제공하고자 야외전시로 기획됐다. 한라산 관음사 탐방로 일대에서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 자유롭게 관람할 수 있다. 단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마스크를 착용한 후 관람객 간 2m이상 거리유지를 지키고 지정된 위치 내에서만 관람할 수 있다. 야외 전시회는 한라산의 자연생태 및 경관사진 부문 공모전에서 당선된 47점을 세 가지 테마로 나눠 전시한다. 계절 정상부 전경 26점은 이달 16일부터 30일, 한라산 주변 풍광 21점은 다음달 5일부터 16일, 공모전 장려상 이상 수상작 16점은 다음달
▲ 아낙들이 물허벅에 물을 지고 집으로 가고 있다. [제주도] 제주사회는 전통적으로 삼무(三無)사회였다. 거지 없고(乞無) 도둑 없고(盜無) 대문이 없었다(大門無). 이에 대한 해석은 두 갈래다. 이를 미풍양속으로 보면, 서로 믿고 존중하며 다 아는 사회여서 도둑이 없었다. 그래서 굳이 대문이 필요 없었다. 다만 가축 출입을 통제하고 집주인 출타 상황 알림 기능을 하는 정낭만 있으면 된다. 이를 불편한 진실로 보면, 다들 물질적 삶이 궁핍하여 가져갈 재물과 나눠줄 식량이 없어 도둑과 거지가 없었다. 그래서 대문이 없다. 이 해석은 한때 삼무정신을 계승가치(이념)로 삼아 교육했던 입장에서는 받아들이기 힘들 수 있다. 그러나 이를 경제사 관점에서 잉여(surplus) 부족으로 설명할 수 있다. 간단히 말해 예전 제주사회는 저생산 사회였기 때문에 축적할 만한 잉여(剩餘)가 부족했다. 곳간에서 인심난다. 그러면 빈 곳간에서는? 지역마다, 시대마다 빈곤(가난)에 대한 대처가 다르다. 나라야마 부시코(1983 제작, 1999 개봉)라는 일본 영화가 있다. 윤리, 도덕, 제도 발생 이전, 본능 특히 성욕과 종족 보존, 야만성만이 존재하던 사
▲ 테우. 테우는 연안에서 자리와 갈치를 낚거나 해초 채취할 때 사용했던 통나무배다. 여러 개 통나무를 엮어 만든 뗏목배로 ‘떼배’, ‘터위’, ‘테’ 등으로 불렸다. 원래 테우는 부력이 뛰어난 구상나무로 만들었기 때문에 제주바다 암반지대에서 비교적 이용이 수월하다. 연안 낚시나 해조류 채취뿐 아니라 가까운 바다로 물질 가는 해녀들의 이동수단으로 사용했다. 80~90년 전 한라산 구상나무 많던 시절 해안마을에서 집집마다 테우를 만들어 이를 미역, 듬북 등 해초를 걷어 옮기는데 이용하거나 그물로 자리돔 잡을 때 이용했다. 지금은 ‘테우 축제’ 같이 전통 어로활동 재현이나 관광객 체험용으로 거듭나고 있는 실정이다. 이호 테우 해변, 쇠소깍 테우 체험. ‘테우 젓는 노래’는 ‘흥셍이 소리’로 선유가(船遊歌)다. 어부들이 자리돔이나 갈치 잡을 때, 해녀 물질 갈 때 노 저으며 부르던 민요다. 테우는 보통 세 사람이 노를 젓는다. 가창 형식은 선후창으로 부르거나 독창으로 부른다. 노랫말에 순풍에 돛 달아 노 젓
▲ 밤바다에 불 밝힌 갈치잡이 배 어느 순간 갈치가 비싸졌다. 은갈치, 먹갈치, 흑갈치, 산갈치, 갈치회, 통갈치 구이, 갈치조림, 갈치속젓. 그래봐야 갈치다. 개인적으로 각재기국은 어찌 어찌 먹겠는데 갈치국은 도저히 못 먹겠다. 갈치국에 들어간 늙은(?)호박은 더 싫다. 갈치는 굽거나 튀겨 먹어야 제 맛이다. 이보다 더 맛있게 먹는 방법은 갈치 가운데를 횡으로 갈라 넓게 편 다음 말려서 구워 먹는 거다. 이러면 뼈까지 먹을 수 있다. 은어(銀魚)도 그렇다. 천제연과 베릿내 은어를 몇 십년간 독식하셨던 외할아버지 비법이다. 베릿내 포구 축항 이후 그 은어는 모두 사라졌다. 분당에서의 신혼시절 얘기다. 장손 얼굴 보러 제주에서 올라온 어머니는 산후 부기(浮氣)있는 임산부에 좋다며 갈치호박국을 특별식으로 끓이셨다. 어릴 적부터 호박을 안 먹는 내가 은비늘 둥 둥 뜬 갈치호박국을 먹을 리 없다. 그런데 육지 며느리인 아내는 맛있다며 그 호박국을 다 먹었다. 갈치호박국 먹을 줄 알면 그걸로 제주 ‘사름’ 다 된 거다. 더하여 자리젓도 주저하지 않고 대가리부터 먹는다면 필시 전생에 제주바다에서 나고 자란 섬놈이다.
▲ 통시 [사진=디지털서귀포문화대전] ᄃᆞᆺ거름을 ‘ᄃᆞᆺ걸름’으로 발음하는 분들이라면 안다. 세월이 많이 흘렀구나. 옛날 말 하는 거 보니 나도 늙긴 늙었구나. 어쩌다 거울보고 ‘큼착’ 했다. 거기에 돌아가신 아버지가 날 쳐다보고 계셨다. ᄃᆞᆺ거름은 예전 제주에서 ‘통시’나 ‘ᄃᆞᆺ통’에서 만들었던 퇴비(堆肥)다. 통시는 변소 겸 돼지우리로 몽고와 동남아시아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다. ᄃᆞᆺ통은 ᄃᆞᆺ, 뒷간 돼지 통, 돼지우리(豚舍)다. 우리는 통시보다 ᄃᆞᆺ통이 더 친숙하다. ᄃᆞᆺ통에 반드시 긴 막대기가 놓여 있었던 걸 기억하는 분들은 더욱 그러실 거다. 통시에서 ᄃᆞᆺ거름을 꺼내 마당에 쌓으면 밑에서 새어 나오던 황토색 물과 그 냄새. ‘
▲ 애기구덕. [사진=제주도] 제주사람들은 머리가 좋다. 어릴 적 구덕에서 자랐기 때문이다. 이는 애향심 발로로 근거가 약해 보인다. 그래도 ‘두상은 좋다’라면 얼추 끼워 맞출 수 있다. 아이 키울 때 두상 예뻐지라고 돌려가며 눕히곤 한다. 구덕 흔들면 아직 굳지 않은 아기 머리가 자연스레 둥글게 된다. 구덕에 아기 눕혀 흔들면 아기들이 자게 되는 이유는 뭘까. 미국까지 구덕 공수해 가서 딸 둘 키운 동생 생각처럼, 어지럽고 멀미나 억지로 자는 건 아닌지. 온실 속 화초가 아닌 야생화처럼 아이를 키워야 한다. 제주말로 ‘몽그리멍’ 키워야 한다. 흙도 ‘좁아' 먹어 가면서. 그래서 구덕에 눕혀 익스트림 생존력을 높였나 보다. 구덕에 눕혀 흔든다고 애기들이 다 자는 건 아니다. 일부 ‘시무쟁이’ 궂은 애들은 구덕 ‘흥글’ 때만 잠시 자는 척 하다 멈추면 바로 눈 뜬다. 구덕 흔드는 속도나 리듬이 일정치 않기 때문이다. 간혹 누워 발로 흔들다가 구덕이 엎어지는 참사(?)가 발생하기도 한다. 구덕은 원래 수요자의 입장, 즉 아기의 라
▲ 망건 만드는 과정을 보여주는 강전향 할머니(중요무형문화재 제66호 망건장 보유자). [사진=뉴시스] 갓 사러 갔다가 망건 산다. 갓 사러 갔는데 갓이 없어 대신 망건을 샀거나, 아니면 가는 도중 마음이 바뀌어 갓 대신 망건 샀거나, 뭘 사러 갔는지 깜박하고 비슷한 거 샀거나, 그도 저도 아니면 주머니 사정에 맞춰 망건 샀거나. 나이, 성별, 지역에 따라 다르겠다. 조선시대 선비들은 잠잘 때 제외하고 일상생활에서 늘 망건을 착용했다. 잠자리 들 때서야 상투 풀고 망건 벗어 두었다가 아침에 세수 한 후 다시 동여맸다. 이처럼 몸 가까이 두는 망건을 귀하게 여겼다. 사용하지 않을 땐 둘둘 말아 망건통에 넣어 보관하였다. 망건통 역시 소중하게 여겨 최대한 좋은 재료로 제작하였다. 이때 신분이 높고 낮음이나 부(富)의 정도에 따라 망건통을 나무로 만들거나 그 위에 상어껍질을 비롯한 고급재료로 장식했다(한국민속대백과사전). 망건과 탕건은 조선시대 선비들이 착용하던 관모(冠帽)이다. 그 당시 관모공예품 대부분은 제주여성들의 손기술과 땀으로 만들어졌다. 망건은 갓 쓰기 위해 상투 틀 때 머리털을 위로 걷어 올리려고 이마에 두르는 띠를 말한